영조(1694~1776년)시대 수학문제 수준 역사



주해수용 내편(籌解需用內編)에 나오는 수학문제입니다. 위의 것은 체적을 구하는 문제이고 아래는 '근의 공식'을 이용한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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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3각형의 면적이 84척이고 한 편의 길이와 중선의 길이의 합이 26척이면 매변의 길이와 중선의 길이는 각각 얼마인가?

[답] 매 변의 길이 : 14척
중선의 길이 : 12척
[풀이] 면적 84척을 배로 한다. 직사각형의 면적이 된다 또 이 결과로 4 곱하면 672를 얻는다.
[참고] 84×2=168, 168×4=672가 된다.
중선과 한 변의 길이의 합 26척을 제곱하면 676이 되는데 이 수에서 672를 빼면 나머지는 4가 된다. 이 수를 실수로 하고 이것을 개평하면 2척을 얻는다. 이 결과는 면중교(面中較)가 된다. 이것에 중장화(中長和)를 더하여 절반하면 변의 길이가 된다. 이 변의 길이에서 면중교(面中較)를 빼면 중선의 길이가 된다.

[참고] 원문의 ‘……得二尺……中長尺’이라는 것을 쉽게 숫자로 표시하여 보면 (26+2)÷2=14(척)이 된다. 이것이 한 변의 길이이다. 이 수에 면중교(面中較) 2척을 빼면 즉 14-2=12인데 이 수가 곧 중선[中長]의 길이가 된다. 위의 방법을 현대수학으로 풀이하여 보고 위의 방법과 비교하면 꼭 같은 방법으로 즉 1원 2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이용하여 풀이하고 있음을 이해할 것이다. 지금 정삼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l이라 하고 중선은 그 삼각형의 높이와 일치하므로 중선=높이=h라 하면, 3각형의 면적 S는 다음 식으로 표시되므로 즉,
S=lh/2…………①
이다. 그리고 주어진 문제의 가정에서
l+h=26…………②
와 같은 ②식을 얻는다. ②식에서
h=26-l…………③
식을 얻고 ③식을 ①식에 대입하면
l²-26l+2S=0…………④
와 같은 1원 2차 방정식을 얻는다.



이므로 면적을 배로 한다는 것은⇔2S이며 또 그 결과에 4로 곱한다는 것은⇔4×2S, 그리고 중선과 한 변의 길이의 합을 제곱한다는 것은⇔26²이며 그것을 서로 빼면 나머지가 4라는 사실은⇔26²-4×2S와 같다. 또 그 결과를 개평하면 2가 된다는 사실은⇔


라는 것을 말한다. 또 그 결과와 중선과 한 변의 길이를 합한 26을 더한다는 사실은⇔26+2이며, 또 이것을 절반으로 한다는 사실은



이 꼭 같은 것이다. 이상 실지 계산 방법을 하나하나 대조하여 가면 실제로 근의 공식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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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급수문제.

지금 저울이 있어 그 추를 잃어버리고 그 경중을 모를 경우 곧 그 추를 사용해서 이 물건을 저울질할 때 8근 2냥이었다고 한다. 지금 딴 추로서 이 같은 물건을 저울질한즉 6근이었다고 하면 이 방법에 의하여 계산하여 본래의 추 무게를 아는 방법이다.

돈 1문을 매일 1배씩 증가시키면 30일간이면 돈은 얼마나 되는가?
[답] 1,073,741,824문(文)
작전(作錢)하면 1,000이 된다. 737,418냥 2전 4푼
[풀이] 1문을 8로 곱하고 그것을 10번 제곱하면 된다. 8은 이것이 3일의 배수, 1문을 주어 이것을 8로 곱하는 것을 10차(次), 1차는 단 8, 2차는 64, 3차는 512, 4차는 4,096, 5차는 32,768, 6차는 262,144, 7차는 2,097,152이고, 8차는 16,777,216, 9차는 134,217,728, 10차는 구하는 답에 합당하며 이것이 그 한 방법이다
또 1문을 32로 곱하여 곧 5일 배수 그 결과를 3번 제곱하여 얻은 수를 또 제곱한다. 32를 3차 곱하면 곧 15일 분이다. 1문을 두어 32로 이것을 곱한 것을 3차한 후에 제곱한다. 1차는 32이고, 재차(再次)는 1,024, 3차는 32,766 이 수가 득수(得數)인데 이 32,766을 32,766으로 곱하면 답에 합당한 것이고 이것 또한 간단하다. 원문 중에서 ‘……○三十一○再次……’에서 ‘三十二’라고 하여야 할 것 같다.
또 1문을 64로 곱하고 그 결과 5번 제곱하면 된다. 64는 이것이 6일의 배수이다. 위의 3법이 모두 가하다. 1문을 두고 64로 이것을 곱한다. 처음 곱한 결과는 64, 재차 곱하면 4,096, 3차이면 262,144, 4차하면 16,777,216, 5차하면 답에 합당한 것이 된다.

[참고] 이 문제를 현대수학에서는 급수 문제에 해당하며, 급수 중에서 특히 등비급수에 해당하며 그 공비가 2인 등비급수이며, 또 항의 수가 30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문제의 뜻에 의하여 식을 세워보면 다음과 같다.
으로 해석되어 1문을 8로 곱하여 그 결과를 10번 제곱한다는 뜻이다.
이므로 1문을 32로 곱하여 그 결과를 3번 제곱하고 또 그 얻은 수를 다시 제곱한다는 뜻이다.
이므로 1문을 64로 곱하여 그 결과를 5번 제곱한다는 뜻이다.
이상의 결과에 모두 2를 빼야 구하는 결과를 얻는다. 이 사실을 관찰할 때 우리들은 이미 이 시대에 등비급수의 해법을 이해하고 이용하였음을 상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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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洪大容) 1731~1783년)이 지은 [주해수용]이란 책은 이름만 들었었는데 실제 내용을 보니, 대단하네요.

하긴, 682년 통일신라대 수학책이 이정도니...



황룡사 금당내부에 장식하면 좋을 봉정사 古式 용기둥 (雲龍紋)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황룡사등 한국의 고대건축물을 재건할 때 난점중 하나가 바로 내부장식입니다. 아무리 외형을 잡아두어도 고대-중세의 장식미를 구현하지 못하면 앙꼬없는 찐빵이 되버리겠지요. 오늘은 현재 진행중인 경주고대건축복원사업에서 꼭 살펴보면 좋을 것 같은 古式의 운룡문, 즉 구름을 타는 용무늬 기둥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예산 수덕사, 영주 부석사 혹은 안동 봉정사니 할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정보는 매우 일천한 편입니다. 즉, 수덕사 대웅전과 봉정사 극락전 및 대웅전, 그리고 부석사 무량수전등 고려중/후기 건축물이 있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면 '주심포'양식의 기둥을 맛볼 수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에 비해 그 내부장식과 그 가치에 대한 담론은 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심이 필요합니다. 건축물이 7-800년씩 오래되었다면 외부의 변화와 함께 변형은 있었을지언정, 내부장식 역시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 역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역시 우리건축역사에서 가장 고식(古式)이라 할수 있는 봉정사 대웅전안에는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주 흥미로운 기둥이 두 개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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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대웅전 불단 쌍 雲龍紋 (용기둥)

1989년 조사당시 모습

이제까지 유일하게 만나볼 수 있는 이 기둥에 대한 연구는 무려 반세기전인 1975년 당시 홍익대학원에 석사과정이던 장경호씨가 쓴 [한국목조건축에 나타난 포(包)에 관한 연구 장경호(張慶浩), 1975년]이 현재까지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언급입니다 (이조차 불단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이 아닌 지엽적 언급에 그칩니다).

참고로 장경호선생은 80년대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문화재청 문화재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분입니다. 이 분은 80년대 미륵사지 조사단장을 맡기도 한 고건축 전문가시죠. 주로 백제와 통일신라건축에 대한 연구를 하신 분입니다.

이 오래된 연구에 따르면 이 기둥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다음의 부분입니다:
대웅전의 단청은 금단청인데, 색조는 극채색(極彩色)으로 조선초기에 많이 쓰던 단청 색조이다. 외부단청은 많이 퇴락하였으나, 내부단청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내부고주에 그려진 운룡문(雲龍紋) 등에서 고형을 잘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대웅전외부단청과 달리 내부단청은 1975년 당시 선명하며, 조선초기식임을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부기둥에 그려진 운룡문, 즉 구름용무늬 기둥은 '고형' 즉 옛형식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봉정사 대웅전이라는 건물자체의 연대를 다시 살펴봐야겠습니다.

원래 이 건물은 확실한 건립연대를 모른채 아마도 고려후기의 것이라는 추론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나 2000년이 되어 해체수리를 하게 되는데 이때 4종의 묵서가 새로 발견됩니다. 여기 아주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등장하죠.

2000년 발견된 봉정사 대웅전 상량문

조선초기 세종조 17년 (1435년)에 쓴 봉정사 대웅전에서 발견된 이 상량문에 "신라대 창건이후 500여년에 이르러 법당을 중창하였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기록으로 봉정사 대웅전의 창건연대가 1435년에서 약 500년이상 거슬러 올라가므로 800-900년대까지 올라갈 여지가 생겨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상량문에는 2층 누각의 신축, 단청을 그린 시기, 왕에게 하사받은 토지, 사찰규모등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는데 무려 500결의 토지와 팔만대장경까지 보유하던 중요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0년당시 대웅전 지붕의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북서쪽 종보 보아지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이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쓴 저자는 당시 경상도 관찰출척사.

宣德十年乙卯八月初一日書
중국연호인 선덕 10년 (1435년, 조선조 세종 17년)에 쓴 글

新羅代五百之余年至 乙卯年分法堂重倉
신라대 창건 이후 500여년에 이르러 법당을 중창하다
 
이와 함께 대웅전 내 불단 바닥 우측에서 또다른 묵서명이 등장하는데 바로 불단에 관한 것입니다.

辛丑支正二十一年 鳳亭寺 啄子造成 上壇有覺澄 化主戒珠 朴宰巨
지정 21년 (1361년, 공민왕 10년)에 탁자를 제작해 시주하다.시주자 박재거.

즉, 이 기록들에 따르면 이 불단은 최소 1361년에 건립된 것으로 현존하는 한국의 모든 불단중 최고(最古)의 불단임이 확인된 것입니다.
2012년 [안동 봉정사 대웅전 목부재의 연대측정](박원규, 김요정 저)를 보면 이 추론에 대한 탄소연대측정 분석결과가 등장합니다. 결과에 따르면 불단과 기둥에 대한 연대측정은 하지 않았지만 지붕을 받치는 '도리'를 연대측정한 결과 1413~22년으로 추정이 되는데 이 연구의 중요성은 바로 저 기록들의 신빙성을 받쳐준다는 점입니다.

현재까지 연륜연대가 측정된 봉정사 대웅전 부재 23점은 수피를 가지고 있거나 수피 흔적이 남아있는 부재의 마지막 연륜이 1434년으로 측정되어 이들 부재들은 종보 통보아지 상부에 쓰인 `법당중창기’에 기록된 1435년 중창 기록과 일치하였다. 부재 23점에는 보 1점, 도리 6점, 장여 3점 등 가구 부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연구결과의 결론부분에 등장하는 구절로 즉 '법당중창기'의 1435년과 지붕수리의 흔적목재가 일치하는 결과를 보여준 것입니다. 즉, 이 말은 더 나아가 저 1435년으로부터 500여년전에 건립된 (즉 이 건축의 애초건립시기가 무려 900년대로 올라간다는) 것이라는 상량문의 정보의 진위여부에서 그 Credibility를 한층 올려준 연구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연구의 뒷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번에 측정된 연륜연대는 2000년 수리공사중 교체된 부재들을 위주로 실시된 것이며 당시 채취된 부재중 상당수가 아직도 연륜연대 측정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종보 통보아지 묵서에 기록된 중창연대인 1435년 이전인 부재들도 찾아질 가능성은 아직도 충분히 있다. 따라서 중창기록 연도인 1435년보다 이른 시기에 건축된 건물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보, 창 방, 평방, 소슬합장 등 주요 부재들의 연륜연대에 대한 추가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직 후속연구는 없는 실정인데, 결과에 따라 9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목재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 확실히 이 건물은 한국유일의 신라건축양식이 반영된 건축이 될 가능성마져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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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확실한 것은 이 용기둥이 서 있는 불단이 1361년 건립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란 점입니다. 또한 75년의 연구에 따르면 단청 역시 '고형'의 것으로 조선후기양식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용기둥의 승천하는 운룡문은 현존하는 사찰의 용무늬중 가장 고식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용그림을 처음 봤을때 그 '고대-중세적 느낌'에 작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포스팅을 통해 이전 연구결과로 인해 더욱 확신을 하게 되는군요.

마지막으로 이 용기둥이 불단에 속한 부속품인지 혹은 고려말인 1361년 더 이전에 만들어진 것인지도 연구가 필요합니다. 어느 경우건, 이 기둥의 무늬나 봉정사 대웅전내의 장식등이 황룡사 재건에 큰 레퍼런스가 되어야 함은 명확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황룡사 역시 예전에도 많이 소개했듯 이미 고려 건축양식을 굉장히 많이 담고 있었을 대사찰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포스팅 결론으로 오늘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고려전성기, 개경의 심볼과 같았던 연복사(보제사)는 개경이라는 접근성의 한계로 아직 제대로 된 발굴조차 한국측에선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 소개한 연복사 5층목탑의 기록은 고려대 같은 5층건물들인 사리각, 만복사 5층전각과 비교연구도 도움이 되지만, 황룡사 복원에도 큰 도움이 될 기록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황룡사 9층목탑이 원래 건설된 시기는 7세기인 645년입니다. 하지만, 고려대인 10세기 (945년) 벼락으로 목탑이 소멸하자 60여년이 지난 1012년 다시 재건을 시작하여 9년만인 1021년에 완성했고, 그 후 1035년과 1095년에 보수공사 3년(1012)에 고려전기 별궁중 하나였던 경주의 조유궁(朝遊宮)을 헐어서 9층탑을 수리하는 등 '고려건축'으로 보아도 될 만큼 중건과 재건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응현목탑은 1196년의 것이고, 연복사 목탑뿐 아니라 만복사 5층전각은 황룡사 9층목탑이 재건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11세기에 완공된 건축물들입니다. 즉, 연복사 5층목탑을 건설하던 당시, 동시에 황룡사 9층목탑이 같이 재건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당연히 고려대의 건축술이 신라의 것과 합쳐졌을 것이고, 당시 최신기술인 연복사 목탑 (이나 만복사 전각)의 내부구조와 비슷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12세기경 황룡사를 방문 목탑을 오른 고려중기 문인 김극기(생몰년미상)와 12-13세기 고려중기 승려인 혜심(慧諶, 1178~ 1234년)의 다음의 두 시는 11세기 연복사 목탑과 함께 재건립된 황룡사 목탑을 오른 것입니다.

황룡사 목탑을 올라

層梯繞欲飛空
萬水千山一望通
俯視東都何限戶
蜂窠蟻穴轉溟

층계 사다리 빙빙 둘러 허공에 나는 듯
수많은 하천과 산들이 한눈에 보이네.
굽어보니 옛 도읍지의 수많은 집들이
벌집과 개미집 같이 아득하게 보이네.

一層看了一層看
步步登高望漸寬
地面坦然平似削
殘民破戶平堪觀

한 층 다 둘러보고, 또 한 층을 보면서
걸음걸음 올라서 점점 더 멀리 바라보니
지면은 깎은 듯이 평평하게만 보이는데
가난한 백성들의 부서진 집을 차마 볼수 없구나.


봉정사 대웅전 상부 용무늬


시티팝 추천 명곡 15 작품 음악

[시티팝 명반 베스트 10]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오늘따라 듣고 싶은 곡들 위주로 선정해 보았습니다. 

모두 명곡들이긴 하지만, 시티팝장르에서 몇곡을 뽑기에는 너무 많은 좋은 곡들이 있는지라 순위나 톱 10등은 포기하고, 오늘 떠오르는 몇곡들을 선정해봅니다 (이 중 몇몇곡은 톱 10에도 무조건 들어갈 곡들도 있습니다만). 다만, 한 뮤지션당  한 곡만을 선정하려 했습니다 (타츠로의 경우만 제외).

그나저나 선정하고 보니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모든 해가 다 등장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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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은 몇번 소개했던 80년대중반 아이돌출신중 최근들어 시티팝의 아이돌로 거듭 평가받고 있는 키쿠치 모모코의 커리어 후기의 신스팝 밴드 '라무'의 명곡 '아오야마 킬러 스토리'입니다. 이 곡은 사실 그들의 유일한 앨범이자 역시 장르의 걸작 [Thanksgiving](1988)에도 실려 있지 않은 싱글컷된 곡으로 가사부터 분위기가 모모코곡중 가장 시티팝적입니다.

RAMU- 青山Killer物語 (Single- 1989년) 

며칠전 소개한 시티팝 명반 10중에서도 필자가 최고로 꼽는 마츠시타 마코토의 데뷔작 [First Light]의 히트곡. 시티 멜랑콜리감성의 끝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마츠시타 마코토- September Rain (First Light 앨범- 1981년)

원래 70년대중후반 일류 백보컬로 활동하다가 유일한 앨범인 [Cologne] (1988년)을 발표하고 사라진 카오루 아키모토의 명곡. 보컬톤부터 신스팝의 차가운 음색까지 시티뮤직의 한 색감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카오루 아키모토- Dress Down (Cologne 앨범-1988년)


70년대 후반 퓨전재즈밴드인 파라슈트의 키보디스트로 뛰다가, 80년대초반 본격적으로 솔로 앨범들을 발매하기 시작했던 뮤지션으로 최고 명반은 바로 이 [Prophetic Dream]입니다. 이 곡 [Letizian]은 시티팝 리스너들의 필청곡으로 특히 아스라한 맛의 후반부는 정말 일품.


아키라 이노우에- レティシア (Prophetic Dream 앨범- 1982년)


80년대 초반 싱어송라이터로 좋은 시티팝앨범들을 발매한 여성 뮤지션으로, 최고 히트곡은 이 곡 "Just a joke"입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도회적 세련미를 아주 잘 보여준 작품으로 유려한 멜로디속에 톡톡튀는 절정부가 최고입니다.

코쿠부 유리에- Just a joke (Relief 72 Hours 앨범- 1983년) 

다른 곡들이 조금만 더 올라와줬더라면 베스트 10에도 들 수 있을 뻔한 파이퍼의 최고명반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이 바로 이 곡으로 앨범커버와 매우 잘 어울리는 세련된 작품. 이 앨범커버는 개인적으로 언급한 [First Light]와 최고로 꼽는 시티팝커버.

Piper- Starlight Ballet (Lovers Logic 앨범- 1985년)


80년대 일음을 조금 듣는 분이라면 모를 수 없는 밴드 [1986 오메가 트라이브]의 수많은 히트곡 중 한 곡. 80년대중반 '청춘의 색감'을 가장 실체적으로 잘 구현한 그룹이 바로 이 오메가 트라이브로 많은 히트곡들이 시티팝의 부류에 들어갈 색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1986 OMEGA TRIBE- Stay Girl Stay Pure (Down Town Mystery 앨범- 1987년)


말이 필요없는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타츠로의 여름앨범. 80년대초중반 전성기 그의 곡들은 특이하게도 여름파, 겨울파로 딱 갈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곡이 실린 빅 웨이브 앨범은 작정하고 서프팝을 구현한 작품입니다. 이 매직같은 곡을 들으면 바로 여름.

야마시타 타츠로- Magic ways (Big Wave 앨범- 1984년)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아마 자국내에서도) 80년대의 숨겨진 Gem. 최고의 편곡을 뽐낸 앨범 "Complete samples"를 만든 신스팝 혼성듀오 [KEDGE]의 감각적인 수작 "Chime"입니다. 지루할 틈이 없는 화려한 연주와 감칠맛 넘치는 멜로디가 내내 흐르는 곡.

KEDGE- Chime (Complete Samples 앨범- 1988년)


베스트 10 앨범에서도 소개한 명반 [Communication]에 실린 겨울내음이 풀풀나는 히트곡 "캐시미어의 미소".
가사를 보고 싶으신 분은 예전 포스팅으로.

八神純子(야가미준코)- カシミヤのほほえみ (Communication 앨범- 1984년)


80년대초반 반짝 좋은 곡을 쏟아내고 사라진 혼성듀오 [나루민 & 에츠]의 최고 명곡중 하나로 여름의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잔디밭에 누워 듣고 싶은 곡. 
유튜브에 더 어울리는 좋은 백그라운드그림으로 실려 마땅한 곡. 

Narumin & Etsu- Summer touches you (東北新幹線 앨범- 1982년) 


80년대중반 애니메이션 주제가도 꽤 불렀던 가수로 가장 좋은 곡중 하나로 이 피그말리온이 있습니다. 시티팝계열의 곡으로 시티팝 컴필앨범에 빠지지 않는 넘버중 하나.

彩 恵津子 (사이 에츠코)- Pygmalion (PASSIO 앨범- 1986년)


여가수이자 배우이자 특파원이자 DJ까지 뛰는 팔방미인 카와구치 미사요의 훌륭한 시티팝넘버로 위에서 소개한 아키라 이노우에의 편곡솜씨가 돋보이는 곡입니다. 1981년 작품다운 80년대초반 AOR내음이 물씬 나는 달달한 곡.

카와구치 미사요 – Melty (SALUTE 앨범- 1981년)


거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으로 80년대초반 잠깐 활동하다가 ZZ건담의 주제가등 애니메이션 작곡가로 돌아선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이 양반은 93년 위에 소개한 [1986 오메가 트라이브]의 후신인 [브랜드 뉴 오메가 트라이브]의 보컬로 뛰기도 하지요. 80년대 후반 세장의 앨범을 발매하는데 그중 가장 훌륭한 싱글곡은 바로 이 곡 '너는 지금'.

아라히 마사히토- 君は今… (MASAHITO ARAI 앨범- 
1987년)


타츠로의 곡은 한곡만 소개하기는 아쉬우니, 지난번 베스트 앨범 10에서 아쉽게 소개하지 못한 1982년의 명반 [For you]중 한겨울밤 도심에서 드라이브하면서 들으면 항상 좋은 곡.

야마시타 타츠로- Every Night (For You 앨범- 1982년)


아래의 곡들은 유튜브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곡들로 클릭하면 바로 재생됩니다.

위에 소개한 카오루의 또다른 명곡. 꼭 들어보시길...

카오루 아키모토- 我がままなハイヒール (Cologne 앨범- 1988년)

겨우 16세에 데뷔 18세에 은퇴한 목소리라곤 느껴지지 않는 성숙함. 쿨한 신스팝도 잘 소화한 오카모토 마이코의 수작입니다.

오카모토 마이코- Fascination (Fascination 앨범- 1986년) 


대규모 64기 죽창함정(陷馬坑)& 해자 최초발굴- 강진 전라병영성 역사뉴스비평

이번주, 매우 흥미로운 유적이 발굴되었습니다. 바로 아래사진에 보이는 이 녀석. 둥근원형 구덩이 안에 뭐가 촘촘히 박혀있네요? 뭘까요.
뉴스를 한번 볼까요?

2017. 11. 16
조선시대 전라도와 제주도의 육군 지휘부였던 전남 강진 전라병영성에서 대나무 끝을 뾰족하게 깎은 죽창을 설치한 함정(陷穽) 유적 64기가 한꺼번에 출토됐다. 국내 성곽 방어시설에서 함정 유적이 대규모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강진군과 한울문화재연구원이 지난 4월부터 강진 전라병영성의 동쪽과 남쪽 외부에서 발굴조사를 시행해 함정과 해자 유적을 찾아냈다고 15일 밝혔다. 전라병영성의 남문 서쪽에서 발견된 함정은 해자 바깥쪽에 6∼8m 거리를 두고 2∼4열로 설치됐다.

지름은 3.5∼4.9m이고, 깊이는 최대 2.5m에 달한다. 원뿔을 뒤집어 놓은 듯한 형태로, 아래쪽으로 갈수록 좁아진다. 함정의 바닥에서는 죽창을 촘촘하게 꽂았던 흔적이 발견됐다.
강진병영성의 해자

대규모 해자와 64개의 죽창 함마갱

이 유적들은 다산(茶山) 정약용이 1812년에 펴낸 병법 서적인 '민보의'(民堡議)에 등장하는 '함마갱'(陷馬坑) 시설로 평가된다. 함마갱은 사슴 뿔 모양의 막대기인 녹각목(鹿角木)이나 대나무 조각을 심은 뒤 잡초나 지푸라기를 덮은 함정으로, 말이나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었다.

한울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함정이 조성된 시기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며 "아직 발굴조사를 하지 않은 지역이 있어서 더 많은 함정 유적이 나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해자 유적은 성의 동쪽과 남쪽에서 모두 확인됐다. 해자는 성벽에서 11∼17m 떨어진 지점에 설치됐으며, 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가장자리에 돌을 쌓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자의 폭은 3.9∼5.1m, 깊이는 최대 1.5m로 조사됐다. 남문 옹성의 바깥쪽에는 해자를 건널 수 있도록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다리의 나무기둥 유적과 돌을 늘어놓은 석렬(石列)이 출토됐다.

또 해자 안에서는 나막신과 나무 말뚝, 도자기, 기와 조각 등 조선시대 유물이 발견됐다. 전라병영성의 해자 규모는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됐다. 문종실록에는 성의 둘레 길이가 1천40m이고, 해자는 이보다 긴 1천213m라고 기록돼 있다.
중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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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런 구덩이가 해자밖에서 발견되는데 무려 그 수가 현재까지 64기 (더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은 죽창의 흔적입니다.
정약용선생의 [민보의]에 함마갱이라는 (말을 위한 함정) 구절이 나온다고 되어 있지요. 하지만 실은 이 단어는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뒤에 더 설명드리지요.

같은 11우러 16일자 동아일보에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동아일보]
바닥에 죽창 꽂고 수풀로 위장… 강진 전라병영성 해자 주변서 첫 발견

조선시대 성곽을 둘러싼 ‘인마(人馬)살상용 부비트랩(함정)’이 최초로 발견됐다. 바닥에 죽창(竹槍)을 꽂고 수풀로 위장한 부비트랩이 나온 것은 국내 유적을 통틀어 처음이다.

한울문화재연구원은 전남 강진군 전라병영성(全羅兵營城·사적 제397호) 발굴현장에서 성벽 남쪽 해자(垓子·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변에 못을 판 것)와 함정 유구 64개가 확인됐다고 15일 밝혔다.

함정은 남문을 에워싼 해자 밖에서 발견됐는데, 지름 3.5∼4.9m의 둥그런 구덩이를 약 2.5m 깊이로 팠다. 64개의 함정은 해자와 6∼8m 거리를 둔 채 2∼4열로 나란히 배치돼 있었다. 함정 바닥에는 끝을 쪼갠 대나무를 뾰족하게 다듬은 죽창들이 촘촘히 꽂혀 있었다. 위장용으로 함정 위에 살짝 덮어놓은 걸로 보이는 잣나무 가지와 풀들이 발견됐다.

이홍우 연구원 발굴팀장은 “함정 지름이 최대 5m나 되는 걸 감안하면 사람뿐만 아니라 말까지 살상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해자의 방어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나중에 만든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자 안에서는 조선 초기 도자기가 여럿 발견됐으나 함정에서는 이보다 시기가 늦은 자기 조각만 몇 개 나왔다.

고려 말인 1388년 현 광주에 세워진 전라병영은 왜적 방어를 위해 1417년 강진으로 옮겨졌다. 전라병영은 조선시대 내내 전라도와 제주도에 배치된 육군을 지휘하는 지방 사령부 역할을 했다. 올해는 강진 전라병영성이 축성된 지 6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번 발굴에서는 남문 쪽 해자 부근에서 성을 출입할 때 사용된 다리 흔적으로 보이는 나무기둥도 확인됐다.

조선시대 함정을 언급한 기록으로는 다산 정약용이 쓴 민보의(民堡議)가 대표적이다. 다산은 민보의에서 적의 인마를 살상하기 위해 대나무 조각 등을 심어놓은 함정인 함마갱(陷馬坑)을 다뤘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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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보면 단순히 함정만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위를 덮었던 수풀흔적까지 함께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함정의 규모가 나오는데 최대 5미터급이나 되는군요. 어마하게 큽니다. 또한 해자를 만들고 그 후에 방어기재로 추가로 팠을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
아직 파지 않은 구덩이가 훨씬 많습니다.

중국의 함마갱(陷馬坑) 기록

함마갱은 당나라의 명장이었던 이정(李靖, 571~ 649년)의 고대서적인 [이위공병법]중 공수전구(攻守戰具)에 나오는 구절에 등장합니다. 즉, 6세기초의 아주 오래된 기록이지요. 다음의 구절입니다.

“陷馬坑長五尺,闊一尺,深三尺,坑中埋鹿角槍、竹籤。其坑似亞字相連,狀如鉤鏁,以草及細塵覆其上,軍城營壘要路皆設之"
-唐 李靖 [李衛公兵法·攻守戰具].

항마갱의 길이는 5척, 너비도 5척, 깊이는 3척, 특히 이 구절 "坑中埋鹿角槍" (구덩이 한가운데 사슴뿔같은 창)"이 바로 '함마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나라기록이니 당척을 대입하면 1당척은 29.7㎝이니 당대 함마갱의 규모는 너비 1.5미터, 깊이 90센티정도로 꽤 얕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얕게 파고 대신 창을 꼽아둬서 슬쩍만 기마병이 빠져도 치명상을 입힌 것 같습니다. 그 구체적 생김새를 볼 수 있는 저서가 1044년에 완성된 북송대의 [武经总要] (무경총요)입니다.
무경총요 (1044년)

43권짜리 이 저서에는 11세기이전의 다양한 공성법, 무기들, 전투함등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중 함마갱이 나옵니다. 3번을 봐주세요.

障礙器材 (장애기재)- 1.蹄 2.地澀 3.陷馬坑 (함마갱) 4.鐵蒺藜 5.鐵菱角 6.鹿角槍 7.拒馬木槍 8.鹿角木

보시면 이번에 발견된 조선군의 죽창함정과는 달리 당대의 기록처럼 [鹿角槍] (즉 사슴뿔같은 창)모양의 무기가 꼽혀 있어 그 모습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6세기의 당나라기록과 11세기의 이 기록이 흡사함은 이 모습이 중국의 함마갱의 기본일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사실 이런 창을 꼽아놓은 함정은 현대전에서도 쓰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군이 파놓은 창함정입니다.  이런 식의 끔살을 당할 형태의 함정을 곳곳에 파두었었죠.
베트남전 당시 창살함정

함마갱의 경우 중국쪽에서도 이렇게 온전하고 대규모로 발굴된 예가 거의 없어보입니다. 매우 흥미롭고 귀중한 발견이지요. 무엇보다 알고 싶은 것은 이 함정들을 이렇게나 파놓게 된 동기. 아직 설명은 나오지 않고 있군요.

앞으로 발굴결과가 더 기대되며, 욕심이 있다면 꼽혀있던 죽창의 원형이 하나정도 발굴되어, 복원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연대가 엄밀하게 분석되면 그에 맞게 전쟁물 영화, 드라마, 만화등에서 이 함정을 응용하는 모습도 앞으로 나오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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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20&aid=000310845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9684992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1/15/0200000000AKR20171115044951005.HTML



왕립우주군- 오미아네스의 날개 (왕립우주군 OST, 1987) 애니메이션/만화 & OST

이런 극장판 애니 작품이 극장에 걸리는 날이 다시 올까.

역대 애니메이션 비행장면중 유일하게 미야자키 작품을 능가하는 씬.


80년대의 숨겨진 최고걸작중 하나로 이 음악이 나오는 이 엔딩... 정말 묘한 감동을 주곤 했다. 지금 봐도 이 정도인데...

오미아네스의 날개 (1987년)


특히 압권은 이 공중 전투장면 후에 가까스로 우주로 간 주인공 시로츠구가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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