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역대주제가 메들리 (셜리 베시부터 빌리 아이리쉬까지 1964~2021) 애니메이션/만화 & OST


작품으로는 2탄 [골든핑거] (1964년)부터 작년 최신작인 [노타임투다이](2021년)까지 모든 오프닝 곡을 다룹니다. 1편인 [닥터 노]는 오프닝곡이 연주곡이라 제외한 듯.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시나 이스턴의 [For your eyes only]가 너무 잔잔하게 나와서 실망했지만, 나머지 곡들은 원곡의 느낌을 잘 살려서 정말 멋지게 구현한 듯 하네요. 곡의 순서는 연도별이 아니라 무작위입니다. 007의 오랜 팬이라면 10년별로 음악분위기가 그 시대를 대표하듯 바뀌는 걸 즐기실 수 있을 듯. 저렇게 섞어놔도 아 이건 60년대, 이건 80년대, 이건 2000년대 딱 알아맞췄습니다. ㅎㅎ

시리즈가 넘사벽으로 오래되다 보니 대중음악의 하나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는 효과가 생겨버린...@.@

007 시리즈 메들리 (1964~2021)



그리고 음악팬들에겐 좀 놀라울 수도 있는 팩트를 알았습니다. 보사노바의 명곡이자 재즈 클래식인 The look of love (by 더스티 스프링필드)가 1967년 나온 비공인 007 영화이자 코미디장르 작품이었던 [카지노 로열]의 주제가였다는 사실...

이 곡의 오랜 팬으로 007의 팬으로 즐거운 놀라움이었네요.

The look of love (1967년)



1천개의 음악글중 역대 최다 연대별 태그를 달았다는.....


배지헌 기자님께 뒤늦은 감사 (혹시나 제 글을 보셨다면...) 스포츠전통마

얼마전 우연히 반가운 기사를 찾아냈습니다. 바로 개인적으로도 익숙한 이름인 스포츠전문기자이신 배지헌 기자님의 2019년 12월 10일자 기사입니다. 제목은 [엠스플 이슈] 1982・1983년 ‘베스트 10’은 왜 KBO 역사에서 지워졌나].

이 글보다 2년 앞선 2017년 본 블로그에서 정확히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바 있는데요. 다음의 글입니다.

우선 배 기자님의 기사중 주요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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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년 골든글러브 멤버들을 보면, 그해 최고 선수라기엔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이름이 적지 않다. 원년 투수 황금장갑은 24승 투수 OB 박철순이 아닌, 팀 동료 황태환이 받았다. 황태환은 그해 27경기에서 6승 5패 3세이브 평균자책 3.86으로 나쁘지는 않지만 썩 좋다고 하기도 애매한 성적을 남겼다.

포수 부문 수상자 김용운은 타율 0.244에 3홈런 29타점을 기록했고, 2루수 차영화의 성적은 타율 0.259에 1홈런 12타점에 불과했다. 타격성적이 아닌 수비율만 갖고 수상자를 선정한 결과다.

수비율 대신 투표 방식을 도입한 1983년에도 골든글러브 수상자 명단은 그해 ‘최고 선수’와 거리가 멀었다. 1루수 부문 수상자가 김성한(타율 0.327 7홈런 40타점)이 아닌 신경식(타율 0.268 5홈런 50타점)인 게 대표적인 예다.

정작 그해 최고 선수들이 받은 상은 따로 있었다. 1982년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박철순은 그해 최우수선수와 함께 ‘베스트 10’ 투수로 선정됐다. 그 외에도 포수 이만수, 1루수 김봉연, 2루수 구천서, 3루수 이광은, 유격수 오대석, 외야수 이종도, 장태수, 윤동균, 지명타자 백인천 등이 원년 베스트 10의 주인공이다. 지금으로 치면 ‘골든글러브’에 해당하는 이름들이다.

1983년 베스트 10 명단도 화려하다.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한 김성한이 베스트 10에서는 최고의 1루수로 선정됐고, 외야수 부문에서는 도루왕 김일권이 이름을 올렸다. 골든글러브에는 설 자리가 없던 김봉연이 베스트 10에서는 지명타자 수상자로 선정됐다.

실제 프로 초기만 해도 골든글러브는 크게 비중 있는 상이 아니었다. 한국 프로야구 창립 기념일인 12월 11일 열리는 시상식이란 의미는 있었지만, 수상기준과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베스트 10’ 쪽이 훨씬 무게감이 컸다.

과거 언론 보도를 찾아봐도 1982년과 1983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비중 있게 다룬 기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베스트 10’은 최우수선수를 포함한 부문별 타이틀 시상식과 같은 날 상이 주어져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83년 리그 최고 투수였던 재일동포 장명부는 베스트 10에 선정된 뒤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 해태 투수 이상윤에 대해 “베스트 10도 못 되고 개인상도 못 타 올해 최고의 ‘애석상’”이라 소개한 신문기사도 있다. 당시 베스트 10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중략.

골든글러브와 베스트 10을 별도로 시상했던 프로야구는 1984년부터 두 상을 하나로 통합해, 지명타자까지 10개 포지션별 최고 선수를 선정하는 상으로 재정립했다.

문제는 상의 명칭이 ‘베스트 10’이 아닌 ‘골든글러브’로 통합되면서 생겼다. 베스트 10에 쏟아졌던 스포트라이트가 골든글러브 쪽으로 이동하면서, 원년과 1983년 베스트 10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원년과 1983년 골든글러브 수상자들은 1984년 통합 이후 수상자들과 함께 KBO 홈페이지는 물론 각종 간행물에도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반면 골든글러브에 흡수된 베스트 10 수상자들은 점차 기록에서 사라졌고, 팬들의 기억에서도 흐릿해졌다. 이제는 옛날 신문이나 잡지 기사를 뒤져야만 찾을 수 있는 이름이 됐다.

프로 원년 골든글러브와 지금의 골든글러브는 전혀 성격이 다른 상이다. 당시엔 오히려 베스트 10이 지금의 골든글러브에 해당하는 무게감을 갖는 상이었다. 그렇다면 KBO는 베스트 10 선수들을 별도의 페이지를 통해 소개하거나, 적어도 골든글러브 수상자들과 함께 소개할 필요가 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에서도 지워진다. 내년이면 KBO리그도 벌써 39번째 시즌을 맞는다. 이제는 역사를 제대로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년과 1983년 베스트 10 수상자들이 KBO리그 역사에서 제대로 된 자리를 되찾기를 기대해 본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http://www.spochoo.com/news/articleView.html?idxno=66263 (기사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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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필자의 글과 배지헌 기자님의 기사에서 비슷한 요지가 몇부분 있어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우선 당연히 말씀하신 문제제기는 물론, 특히, 아래 신문사진에 대한 글은 완전히 일치하며, 마지막으로 KBO에서 베스트 10 선수들에 대한 별도의 기록소개를 공개적으로 홈페이지에 써야한다는 이야기는 필자글의 제안부분과 일치했습니다.

무엇보다 따로 1982년과 1983년의 기사들을 검색해 보시지 않으셨다면 블로그 글에서 무엇보다 이 부분 "과거 언론 보도를 찾아봐도 1982년과 1983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비중 있게 다룬 기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은 자세히 다룬 바 있습니다.

아래는 볼로그 글중 특정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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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내용은 1983년의 여러 스타들에 대한 소개와 정리, 그리고 수상자들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그런데 사진이 눈에 띕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장명부 선수와 해태 타이거즈의 김무종선수가 울고 있습니다.

설명을 볼까요? 아래 빨간 부분을 봐 주시길.
83 프로야구 [베스트 10]에 뽑힌 재일동포 해태의 김무종(왼쪽)과 
삼미의 장명부가 약속이나 한듯 왼손으로 감격의 오늘쪽 눈물을 닦고 있다.

뿐만이 아닙니다. 아예 이 기사제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베스트 10상]을 수상한 위의 두 선수가 주인공이며, 당시 해태우승의 주역인 에이스 이상윤투수는 [베스트 10도 못되고 개인상도 없어 올해 최고의 애석상 주인공]이란 요지입니다.

이 사진내용과 신문면에서 사진의 크기등은 당시 [베스트 10]이란 상의 위상을 잘 보여줍니다. 즉, 현재의 골글이 바로 1982년과 (위키에선 아예 사라진 걸로 나오는) 1983년의 베스트 10상인 것입니다 (골든글러브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이 눈물어린 감격의 수상기록은 현재 옛날신문외엔 어디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
살펴 보았듯 1982년과 1983년 두 시즌의 가장 중요한 포지션별로 수여한 무게감있는 상은 절대로 골든글러브가 아닌, [베스트 10상]입니다.또한 위키백과 역시 1983년 시즌 또한 베스트 10상이 존재했으며 당 시즌도 수비율로 골글을 주었다는 사실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당시 골든 글러브수상자를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재의 골글의 위상과 가치를 가졌던 이 두 시즌의 "베스트 10상" 기록은 어떤 식으로든 KBO 홈페이지와 각종 시즌정보에 추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처럼 완전한 망각으로 들어가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이런 식으로 왜곡되기 마련이지요.

최소한 다음 KBO의 역대기록 페이지에 이 두 시즌의 [베스트 10상]에 대한 정보가 올라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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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의 시차를 두고 우연히 본 블로그글과 배기자님의 기사가 일치했을 수도 있을테고, 어쩌면 졸필을 보시고 영감을 받으셔서 기사를 작성하셨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이 주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공식적인 기사로 작성해서 알려주셨다는 점에서 매우 기쁩니다. 기사의 마지막 부분, 바로 본 블로그의 존재이유입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에서도 지워진다. 내년이면 KBO리그도 벌써 39번째 시즌을 맞는다. 이제는 역사를 제대로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년과 1983년 베스트 10 수상자들이 KBO리그 역사에서 제대로 된 자리를 되찾기를 기대해 본다." 


(그나저나 새해가 되고도 2주가 되서야 첫 포스팅...)

누자베스- Aruarian Dance (Departure, 2004) 음악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참프루]의 수록곡으로 널리 알려진, 1969년 로린도 알메이다의 곡을 샘플링해 만든 작품.
아마도 누자베스의 곡중 가장 유명한 곡일듯.

올해도 이렇게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마무리...

누자베스- Aruarian Dance (2004년)



누자베스- Luv, Sic, Part 3 (Modal Soul, 2005) 음악

36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요절한 누자베스의 명반 [Modal Soul]중 가장 좋아하는 곡.
역대급 서정적인 힙합곡...

Nujabes- Luv (Sic), part 3 (2005년)




하루키 수필- 크리스마스 독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테레오를 사 들였을 때, 그것과 함께 빙 크로스비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딸려 왔다. 그런 걸 보면 그때가 크리스마스에 즈음한 계절이었나 보다. 여름에 산 스테레오에 빙 크로스비의 크리스마스 캐롤집이 딸려 올 리가 없으니까 말이지.

레코드는 네 곡이 수록 돼 있는 컴팩트판으로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징글벨> <아베 마리아> <고요한 밤>이 들어 있었다. 이 정도만 있으면 꽤 멋진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다. 하기에 벌써 20년하고도 몇년이나 지난 옛날 이야기니까, 크리스마스 캐롤이래야 네 곡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것도 빙 크로스비가 부르는 걸. 그 이상 더 바랄 게 없잖아.

1960년 12월, 우리는 아주 심플하고, 아주 행복하고, 아주 중산계급다웠다. 그리고 빙 크로스비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불렀다.

-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중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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