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Pop 8곡 by 타츠로 & 마리야 커플 음악

시티팝이란 장르의 전성기를 이야기할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커플이 바로 야마시타 타츠로 & 다케우치 마리야입니다.

아마도 역대 최강의 대중팝 커플을 꼽을때 세계적으로도 빠지지 않을 커플로, 이들의 전성기곡들은 70-80년대 동시대 아시아음악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빼어났던 최고수준의 작곡/편곡능력, 그리고 서로의 보컬을 극대화하는 곡소화능력까지 보석처럼 빛났습니다.
젊은 시절 보컬뿐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로써 70년대말 신인왕을 거머쥐며 그 능력을 보이던 26세의 마리야와 결혼에 골인한 당시 이미 뉴뮤직 팝계의 스타 타츠로는, 당시 보통 여성의 경우 결혼후 그 능력이 시드는 것과 대조적으로 둘다 승승장구하는 윈윈커플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결혼전후할 것 없이 이 둘의 앨범은 거의 모두 오리콘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습니다.

둘의 곡은 간헐적으로 예전에도 소개한 바 있지만, 오늘은 요즘 시티팝열풍에 어울리는 곡들 위주로 선정해봅니다. 모든 곡이 이들의 대표곡이자 장르의 명곡들로 곡별소개는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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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츠로- Ride on time (1980년, Ride on time 앨범)


마리야- 플라스틱 러브 (1984년, VARIETY 앨범)



타츠로- Windy Lady (1976년, CIRCUS TOWN 앨범)



마리야- 꿈의 연속 (1987년, REQUEST 앨범)



타츠로- 달콤하고 위험한 향기 (싱글only, 1982년)



마리야- 모닝 글로리 (1980년, Miss M 앨범)



타츠로- 토요일의 연인 (1986년, POCKET MUSIC 앨범)



마리야- Oh no, oh yes (1987년, REQUEST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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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타츠로의 경우 발라드만 해도 시티팝에 정말 어울리는 작품이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많은데 (예: touch me lightly) 유튜브에 없는 곡이 많은지라...이 정도로 선정해봅니다. 마지막 곡은 Night Fly의 다른 연주버젼.

타츠로- 夜翔 (NIGHT FLY)- 1982년 Melodies 앨범



고대일본인이 그린 신라 탈춤과 마술 (신서고악도) 역사전통마

신라시대에 그려진 그림이 현전하는 것은 국내에서는 오래전 소개한 [대방광불화엄경](754-755년추정)의 일부밖에 없습니다 (벽화제외).

그런데 1100년대 (추정) 일본 헤이안 말기에 만들어진 [신서고악도(信西古樂圖)]에 나오는 무악도(舞樂圖)에 매우 흥미로운 그림이 전합니다. 舞樂圖라는 것은 말 그대로 '춤 무', '노래 악'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입니다.

신서고악도에는 전형적인 중세 일본 두루마리화첩으로 14가지 악기, 44가지의 무악(舞樂)과 산악(散樂)이 그려져 있습니다. 당대 중국, 신라, 그리고 일본의 문화풍습이 그려져 있는데, 정확한 제작연대와 작가는 불명입니다. 실은 화첩의 제목 역시 추정으로 부르는 것인데, 12세기 경인 헤이안 시대의 귀족이자 승려인 후지와라노 미치노리(藤原通憲)의 호인 '신서(信西)'가 두루마기에 적혀 있어서 [신서고악도]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치노리의 생몰년대인 1106~1160년이 '최소'연대이며 이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본 블로그에 가끔 오시는 분이라면 이 연대는 북송의 사신 서긍(徐兢, 1091~1153년)이 1123년에 그린 [선화봉사고려도경]과 같은 시대임을 알아차리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화첩은 2001년이 넘어서야 국내에 조금씩 알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그림들을 구경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서고악도-신라박(新羅狛)

신라박에서 '박狛'이라는 글자는 '이리 박, 짐승 박'이란 뜻으로 즉 '신라의 짐승'으로 직역되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시대의 북청사자와 달리 손발까지 모두 짐승머리가 있으며 '서 있는 형태'라는 점입니다.

신서고악도-신라악(新羅樂) 입호무(入壺舞)

신라악과 입호무라고 쓰여있는 그림으로 한 세트죠. 즉, 신라의 음악을 배경으로 '入壺'즉 항아리에 들어가는 춤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연기하는 것인지, 혹은 한 사람이 저런 묘기를 부리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군요. 아무튼 고대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마술, 묘기 형태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그림에는 좀 더 북청사자과의 신라 짐승탈과 신라인들 세명이 그려져 있습니다.
신서고악도-신라인과 사자춤

마지막으로 작은 사자같은 녀석도 보입니다 (오른쪽 아래).
9세기, 통일신라의 명사였던 최치원(崔致遠, 857~908년)은 [삼국사기]의 '향악잡영시'에서 '산예'라는 부분에서 짐승탈을 쓰고 춤추는 공연을 묘사한 바가 있습니다.
 
일만리 머나먼 길 사방 사막(沙漠) 지나오느라(遠涉流沙萬里來)
털옷은 다 해지고 티끌만 뒤집어썼네(毛衣破盡着塵埃)
머리와 꼬리를 흔드는 모습, 인덕이 배어 있도다(搖頭掉尾馴仁德)
영특한 그 기개, 온갖 짐승 재주에 비할소냐(雄氣寧同百獸才)

이런 형태의 짐승탈을 쓰고 추는 춤과 묘기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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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고화질로 그림을 한번 더 소개하겠습니다.
소개하는 이유는 역시 '널리 쓰였으면' 좋겠다는 바램때문이지요. 앞으로 전통무용으로도 쓰이고, 여러 매체에서도 쓰이길 바랍니다.



한국의 2018년 현재 급박한 시대정신 독서

이 영상에 앉아있는 저 아마도 전문가분들은 과연 이 강의를 알아들은 걸까. 영상을 보면서 든 의문...

"작금의 우리사회에서는 전문가를 종종 비판을 잘하는 이로 착각하지만, 실은 선진사회의 지식인은 '걱정하는' 사람이다."

정말 철학적 멘토로 삼을 국내학자가 없어 아쉬웠는데, 몇년전부터 알아가다가 이제는 확신하게 되는 분.

거창하게 들리지만 개인적인 인생의 철학적기반을 노자에 두고 있는데, 오래전 개인적 스승님외에 논리적으로 가장 명쾌한 설명을 해 주신 분이 바로 최진석교수님이다 (개인적으로 노자강의중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내공은 있다. 예를 들어 강신주선생은 이분야에선 아님).
아래 강의는 올해 2월 여시재라는 곳에서 (아마도) 여러방면의 전문가들앞에서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껏 본 많은 우리 사회의 과제나 미래를 다룬 강의중 현재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근본적 문제와, 이에 따른 시대요구정신의 핵을 이렇게 잘 설명한 강의는 어디에서도 본 일이 없다.

시간이 있으신 분은 꼭 처음부터 찬찬히 끝까지 한번 보시길...(끝까지 봐야 논점이 완성된다).

최진석 교수님 2018년 2월 강의

사족으로 만약 앉아있는 청중이 여시재이사들이라면 이런 분들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이사장직을 맡고 있고 정창영 삼성언론재단 이사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김도연 포항공대 총장, 안대희 전 대법관,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이공현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a], 이재술 전 딜로이트 회장[a]이 이사(감사)로 재직중이다. 과거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이사직을 맡기도 했다.'

정말 실천가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 20여년간 재직했고 이제는 따스한 자리일 서강대 철학과 자리를 최근 박차고 나오셨다. 더 이상 대학의 구시대적 프레임과 자신의 철학이 나아가는 길이 맞지 않는 옷이라 생각하셨다고... 알기로는 학과장까지 역임하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11월- 머물고 싶은 순간 (11월, 1990) 음악

활발했던 90년대의 음악씬에서도 정말 안 알려진 보석같은 작품. 사실 이 '머물고 싶은 순간'이라는 곡은 같은 시기 발표되어 큰 사랑을 받은,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정도로 알려져야 하는 곡이라 생각한다. 만약 드라마주제가로 쓰였다면 크게 사랑받았을 곡...

참고로 11월의 이 데뷔앨범은 2007년 발표된 것 이전인 1998년 발표된 [한국 대중음악 100대명반]에서 75위에 올랐다 (당시 98년 리스트는 그다지 2007년 다시 발표된 리스트에 비해 인지도가 없었다. 2007년에는 제외).

빛과 소금과의 언플러그드앨범이 정말 좋은데 CD를 찾을 길이 없다...

11월 - 머물고 싶은 순간 (1990년)


머물고 싶은 순간- 11월

수줍은 듯 바라보는 눈빛
포근하게 스며드는 미소

사랑에 찬 내가슴에 그대를 안고서
영원히 머물렀으면

어여쁘게 삐져버린 모습
화가난 척 돌아서는 순간

너무 예뻐 나도 몰래 입맞춰 버린
이 순간 영원했으면

내 눈에 비춰지는 모든 것
사랑에 흠뻑 젖었네

지금 이 느낌 놓치긴 싫어
머물고 싶은 순간
영원히

내 눈에 비춰지는 모든 것
사랑에 흠뻑 젖었네
지금 이 느낌 놓치긴 싫어

머물고 싶은 순간
영원히

영원히 그대와 영원히 

1910년 찍힌 보통문의 怪人(괴인 ?)- 평양 보통문 기담 설화 야담 지괴류

오랜만의 역사관심판 기담입니다.

평양성의 서북관문이자 수많은 전투를 겪어낸 대표적 성문중 하나인 보통문.

보통문에 대해서는 지금도 '신비로운' 기담들이 꽤 전합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평양성을 강점하였을 때 아무리 보통문의 문을 굳건히 닫아걸어도 우리 의병들이 접근하면 스스로 열리고 닫히고를 반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하지요 (폴터가이스트). 거꾸로 왜적들이 의병을 치기 위하여 이 문을 통하여 일단 성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에는 문이 열리지 않아 우리 의병들의 추격을 받고 문 앞에서 몰살하였다고...

뿐만 아니라, 왜적들이 패주하면서 평양시가에 불을 질러서 온 시가가 불길에 휩싸였으나 보통문만은 타지 않고 거연히 솟아 있었다... 그리하여 보통문은 신이 지키는 문이라고 하였다고 지금도 전합니다. 이 고사는 사실 조선인들뿐 아니라 명군들이 전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1760년 [연행록총서]를 보면 이런 구절이 전합니다.

연행록총서 
북원록 1760년(영조36, 경진) 

그런데 누각이 우뚝하고 굉활(宏豁)하여 쾌재정과는 우열을 따질 수 없었다. 향사당에 돌아오니 증산에 사는 족형이 찾아와서 또 이별해 주었으며, 필회(弼恢)가 뒤에 떨어져 있다가 돌아가는 길에 서울로 보내는 편지를 부쳤다. 날이 저문 뒤에 길을 떠나서 서문으로 나아가니 안에 있는 현판에 ‘서문쇄약(西門鎖鑰)’이라 하였고, 밖에 있는 현판에 ‘보통문(普通門)’이라 하였다. 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안에 있는 누각은 옛날부터 장중하고 화려하였다. 그런데 계사년에 있었던 전란에 미쳐서 모두가 다 불에 타 없어졌고, 홀로 이 문에 불화살이 모인 것이 고슴도치의 털과 같았는데 우뚝하게 홀로 남아 있었으니 중국 사람들이 칭찬하여 말하기를, ‘신성한 문이다.’라 하였다.

즉, 이 문만은 불화살이 고슴도치 털처럼 빽빽히 박혀도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런데 여기 흥미로운 부분이 등장합니다. 
날이 저문 뒤에 길을 떠나서 서문으로 나아가니 안에 있는 현판에 ‘서문쇄약(西門鎖鑰)’이라 하였고, 밖에 있는 현판에 ‘보통문(普通門)’이라 하였다

西門鎖鑰이라는 말은 '서쪽 문을 쇠사슬로 걸어잠그다'라는 뜻입니다. 이 '서문쇄약'이란 글귀는 어쩌면 조선조정이 임란을 겪은 후 일본에게 치를 떤 관용구로 쓰인 것인 가능성도 있는 것이 평양보통문외에도 부산 자성대 선문 돌기둥에 현재도 새겨져 있는 글귀이기도 합니다. 현재도 이 내부현판이 보통문 내부에 전한다는 정보는 구할 길이 없으니 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귀는 보통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번 기담편에서는 (필자맘대로) 이렇게도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밖에 있는 현판에는 '보통문', 문안쪽에 있는 글귀는 '서문쇄약'. 즉,

"서쪽문(보통문)을 걸어잠그라 (안에 있는 것이 못나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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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보통문에서의 끔찍한 사고들

신문아카이브를 들여다보면 특이하게 1920년대에 보통문에서 유독 살인, 유기, 자살, 사고등이 거의 매해 끊이지 않습니다. 동아일보 하나만 들여다보아도 그런데, 다음은 그 중 몇가지 사건입니다.

우선 1923년 5월의 기사입니다. 5살배기 어린아이가 신의주발 급행열차가 보통문으로 들어왔을 때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당시 신문은 꽤나 적나라해서 '차바퀴에 치어 머리와 몸뚱이가 서로 따로 떨어지고 붉은 피투성이었다고 끔찍하게 묘사하고 있지요. 아이의 신분은 평양신양리에 사는 최관봉이라는 사람의 둘째아들.

1923년 5월 27일 동아일보, 5살 유아참사


1927년의 사건은 더 괴기스럽습니다. 27년의 추운 겨울 (1월 17일) 밤 10시에 이 보통문에서 정주방면 기차에 어떤 청년이 치입니다. 외성서리에 살던 이 사람은 '전종부'라는 20세의 청년인데 이 날 오른팔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다음날 '정신이상'으로 판명됩니다. 이것이 보통문에서 당한 사고때문인지, 원래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이 기사에서는 '정신에 이상이 생긴듯 하더라'라고 적고 있어 이날의 사고로 정신이상이 온것으로 묘사합니다.

1927년 1월 17일, 죽지는 않았으나 정신병이 들다

일제시대 평양시내를 누비던 전차

같은 해 여름, 이번에는 37세의 남자가 머리가 박살나서 골이 쏟아진 상태로 발견됩니다. 사인은 불명. 박정옥이라는 사람으로 발견 2주전에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간다고 한것이 마지막 모습. 

개인적으로 이상한 것은 평양의 보통문이면 당시에도 시내중심가로 머리가 박살난 사람이 선로에 놓여있는 것을 무려 11일동안 발견못했다는 점입니다 (사고일 8월 10일, 발견일 8월 21일). 어쩌면 행방불명된 날 사망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잡혀간 후 후에 죽임을 당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1927년 8월 23일, 보통문 전차길 의문의 시체
이 1927년에는 끔찍한 일이 많이도 발생합니다. 같은 해 겨울인 12월 4일, 이번에는 보통문안에서 고작 태어난지 2-3일밖에 안된 신생아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신생아시체유기도 끔찍한데 더 심한 것은 등에서 다리까지 화상을 입은 것. 이에 평양서에서는 '어떤 범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수사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1927년 12월 4일, 괴이한 아이시체 발견
다음해인 1928년 가을. 이번에는 보통문앞에서 60세된 남자가 원인불명의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합니다. 대동문노동조합 문승문이란 사람으로 두다리가 부러진 끔찍한 모습으로 죽습니다.

1928년 10월 3일, 60세 노인의 자살
희안하게도 이러한 사건은 20년대이후 30년대부터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신문에서 사라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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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문의 怪人

여기서 알아두셔야 할 정보 한 가지. 현재 포털에서 제공하는 동아일보 옛기사는 1920년부터입니다. 즉 1920년이전의 신문기사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10년대에도 이런 사건사고가 보통문근처에서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요.

그런데 필자는 일제가 만든 [조선고적도보]에서 흥미로운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아래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고적도보 11권에 나오는 대동문-보통문 부분에 있는 것으로 '보통문내부'를 찍은 사진입니다. 찍힌 시점은 1910년. 왜 사진은 얼핏보기에는 아무런 이상한 점이 없어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녀석이 보였습니다. 바로 붉은 원부분.
확대해볼까요?

목각인형인지 뭔지 모를 두눈이 뻥뚫린 이상한 형체가 보입니다. 뭔가 착각일지 모르지만, 마치 심령사진처럼 보이는 이 괴인(?)…. 유독 이 시기에 일어난 많은 사건사고는 혹시… 저 '서문쇄약(西門鎖鑰)’이라는 주술부적이 내부에서 떨어졌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30년대가 되면서 누군가 다시 걸어잠근 것일까요.

재미로 쓴 근대의 도시괴담이니 감안하시고 읽어주세요. ㅎㅎ.

"서쪽문을 걸어잠그라 (안에 있는 것이 못나오도록)"...
"서쪽문을 걸어잠그라"...
"서쪽문을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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