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맨시니 - Lujon (Mediterranean) (1960) 음악

결국 이런 위대한 유산들이 80년대 히사이시 조 같은 또 다른 레전드들에게 영감을 준 것 같다...

5060년대 프렌치 이탈리안 작곡가들은 뭔가 살아보지도 못한 그 당시를 강하게 그립게 하는 느낌을 주곤 한다.

Henry Mancini- Lujon (Mediterranean) (1960년)



시카고- Call on me (Chicago VII, 1974) 음악

70s 시카고의 발라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명곡 중 하나.
추억이 함께 떠오르는 곡...

Chicago- Call on me (1974년)



이 곡을 들으면 그 겨울이 떠오른다.

15세기 조선초 찻집(다방) 기록 추가 역사전통마

예전에 고려시대 찻집과, 차 매매기록, 그리고 조선초 차상점에 대한 기록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 중 이 글 [고려시대 차 구입 기록 & 조선초기 차가게 기록 (14, 15세기)]에서 소개부분만 발췌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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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출판된 [차생활문화대전]이란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고려시대에는 상류 계층뿐만 아니라 일반 평민들도 차문화를 향유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거리에 일반백성들도 차를 사거나 마실 수 있는 다점(茶店)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러한 활발한 차문화를 통해 청자 다구가 발전했다."

오늘은 많지는 않지만 실제로 이런 '다점'(차가게)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문헌기록을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예전에 필자가 쓴 '고려 차문화'관련 글 세 개가 있습니다 (마지막 글은 이 글보다 더 후에 쓴 것). 이중 두 번째 글의 '다점'부분을 조금 더 다듬어 소개하고 새문헌을 연결시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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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에 더해 또 다른 귀한 찻집기록을 발견했기에 나누고자 합니다. 다음의 글을 읽어 주세요.

옛날에 조중온(趙仲溫)이라는 어떤 사인(士人)이 과거에 응시하였다. 갑자기 병이 나서 양쪽 눈이 충혈되면서 붓고, 눈동자에 예막(翳膜)이 생겨 길을 알아볼 수가 없었으며, 참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커서 스스로 죽으려고 할 정도였다. 하루는 친구와 시름을 달래려고 찻집〔茗肆〕에 함께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갈고리가 달린 창문에서 갈고리가 벗겨지면서 아래에 떨어져 조중온의 이마를 정통으로 때렸다. 

그의 발제(髮際)가 3~4치(寸) 정도 찢어지면서 검붉은 피가 두세 되(升) 흘렀다. 출혈이 그치자 그는 길을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을 스스로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귀가하였는데, 이튿날은 지붕의 수평마루〔屋脊〕를 알아볼 수 있었고, 그다음에는 기왓고랑〔瓦溝〕을 볼 수 있었으며, 며칠 지나지 않아서 옛날처럼 되었다.
-의방유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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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의방유취]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원문을 조금 살펴볼까요.
坐於茗肆中 차방(다방)에 앉아있었다.

또 흥미로운 정보로 고려시대 다방의 창문구조 (혹은 고려시대 창문)에 대한 부분이 등장하고 있지요.
忽鉤䆫脫鉤 갑자기 갈고리 창문의 갈고리가 빠지다.

우선 이 '창문'기록으로 고려시대 다방이 분명 마당같은 외부에 노출된 것이 아닌, 실내의 건축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긴 임춘의 기록에서 이미 다방 2층누각안에서 낮잠을 자는 모습이 나옵니다). 또한 당시 창문을 '갈고리'로 여닫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것은 언제의 기록일까요? [의방유취(醫方類聚)]는 1445년(조선 세종 27년)에 완성된 의학서입니다. 따라서 앞에서 살펴본 문헌의 연대들을 함께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목종대 기록- 11세기 (1002년) 
임춘(林椿, ?~?)의 12세기 고려 인종대 기록 
이숭인(李崇仁, 1347~1392년)의 기록
의방유취- 14455년

따라서 오늘 찾은 기록은 시기적으로 가장 후대의 기록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조선초기 (15세기중세)이지요. 다도문화가 융성했던 불교문화가 여전히 활발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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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제까지 필자 역시 찻집은 고려대~조선초기까지는 존재하다가 완전히 맥이 끊긴 후, 근대화 이후에나 다시 부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소개하는 이 조선말기에도 기록이 등장하기는 합니다.

사미헌집 제4권 / 서(書)
이공윤에게 답하다〔答李公允〕
별지(別紙)
문: 찻집과 술집의 출입에 대해서는 이미 옛사람의 훈계가 있으니,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이 불가함을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혹 어떤 사람을 그 사람이 거주하는 마을 술집 앞에서 만났는데, 그 사람이 진심으로 억지로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자고 하였습니다. 이때 그것을 거절하면 사람을 대하는 도리에 흠결이 있는 것이고, 힘써 그의 의견을 따른다면 거짓된 마음에 가깝습니다. 이에 제가 찻집과 술집에는 출입하지 않으니 그대께서는 강요하지 말라고 거절하니, 그 사람이 문득 부끄러워하면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끝내 시원하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답: 지우(知友)에게 끌려 부득이하게 찻집과 술집에 들어가는 것은 형편상 그러해야 할 것 같으니, 거기에 어찌 거짓된 마음이 있겠습니까?

茶肆,酒肆之行。찻집과 술집의 출입.
不得已入茶肆酒肆。부득이하게 찻집과 술집에 드나들다.

여기 보면 질문과 답하는 형식으로 정보가 나오는데 '찻집과 술집'에 출입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기록은 [사미헌집]에 나오는데 이 저작은 조선말기 유학자인 장복추(張福樞, 1815∼1900년)의 것입니다. 다만, 이 '찻집과 술집'의 표현은 소학등 유학서에도 등장하므로 관용구로 쓰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이런 관용적 표현(가능성)을 제외하더라도 위에 소개한 앞선 연대의 기록들의 경우 확실하게 당시의 다방이라든가 차를 파는 가게를 설명하고 있어 당시까지 확실히 이런 건물들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니스트리 (Ministry) - Work For Love 대 Burning Inside 음악

음악적 색깔이 커리어에서 많이 바뀐 뮤지션은 다수 있지만, 이 밴드만한 변신이 있을까.

보통은 '시대가 바뀌면서' 그 흐름에 맞춰 바뀌는 게 대부분이다. 이 글에서 소개한 것 처럼...

하지만, 미니스트리는 그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서 바뀐게 아니라, 그냥 스스로 음악적 색감을 확 바꿔버린 아주 특이한 예. 뉴웨이브 신스팝 밴드에서 인더스트리얼계의 대표주자로 바꾼 190도 카멜레온같은 밴드다.

Ministry - Work For Love (1983년)



같은 밴드다...

Ministry - Burning Inside (1989년)



소닉유스- From the Basement 풀세션 (2007) 음악

팬데믹 시대에 많은 전설들의 공연들을 넷에 공개하고 있는데... 

소닉유스다! 그들이 2007년 From the basement 세션에서 연주한 라이브를 공개했다. 오디오만 듣고 있으면 90년대 그대로다.

전성기의 연주를 그대로 보여주는 소닉유스. 진짜 선물같은 연주였다.

Sonic Youth- From the basement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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