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하나의 80년대 별이 지다. Cars 음악

어제 비보가 (또) 전해졌습니다. The Cars 의 리더였던 릭 오케이섹이 70세의 나이로 영면하셨지요.

한국에서는 조용했지만, 전미 방송에서 헤드라인으로 뜨고, 아침방송에선 더 카스의 음악을 틀어준 하루였습니다 (그들의 1985년 Greatest hits는 무려 미국에서만 600만장 이상을 기록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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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빌보드 전쟁터에서도 카스는 특이한 존재였습니다.

락밴드도 완전한 신스팝도 아닌것이, 보컬은 빼빼 마른 쥐어짜는 목소리에, 미남밴드도 아닌것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그들만의 색감이 확실한 밴드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70년대의 카스는 기타를 중심으로 한 전형적인 New wave 락밴드였지만, 80년대에는 수많은 70년대 밴드들이 그러했듯 신스팝으로 노선을 바꿉니다. 그런데, 그냥 신디사이저로 완전히 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락밴드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죠.  

그들은 아래 표에서 보이듯 78년에서 87년까지 10년간 빌보드에서 대성공을 거둡니다. 표 오른쪽에 보이듯 플래티넘이 수두룩했지요. 이 밴드가 놀라운 것은 무려 24년만에 선보인 2011년의 신보 역시 빌보드 앨범차트 7위에 랭크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공의 요인은 여러가지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카스만의 재치어린 신스팝 색감에 흔치 않은 락밴드로서의 정체성.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릭 오케이섹이라는 보컬의 특이한 창법에 있었습니다.

아래의 히트곡 퍼레이드를 보시면 알겠지만, 그의 보컬은 쥐어짜는 듯한 색감으로 묘하게 매력적이었습니다. 
2019년 9월 16일이후 더 이상 그의 보컬을 듣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만, 그래도 그에게 위안은 바로 작년 2018년 Rock & Roll Hall of Fame에 카스가 입성했다는 것이겠지요. 릭 오케이섹은 얼터너티브 락밴드 위저의 90년대 레전드 데뷔앨범인 [The Weezer (일명 블루앨범)]의 프로듀서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후반이후 80년대 스타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요즘... 익숙해질런도 하건만 익숙해지질 않는군요.

이보다 순위상 더 히트한 싱글들도 있지만 (예: You might think (MTV 최초의 뮤직비디오 어워드수상작, 1984), 아래는 필자가 고른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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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앨범과 함께 그들의 가장 대표적인 상업적 성공작이었던 84년의 [Heartbeat City]의 히트싱글. 그 자체로 80년대중반입니다.

The Cars- Hello, Again (Heartbeat city, 1984)



위의 곡과 자동으로 연관검색되는 또다른 신스팝 히트곡.

The Cars- Magic (Heartbeat city, 1984)



600만장이상을 기록한 이듬해 85년의 히트곡모음집에서 싱글컷되어 따로 히트한 발라드.

The Cars- I'm not the one (The greatest hits, 1985)



역시 히트곡집에서 따로 싱글컷된 80년대중반 신스팝느낌이 물씬 나는 히트곡.

The Cars- Tonight she comes (The greatest hits, 1985)



마지막으로 아마 모든 곡이 잊혀져도 카스하면, 80년대를 대표하는 이 발라드곡과 Shake it up의 두 곡은 영원히 남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돌아가신 릭 오케이섹의 부인이 된 모델 ' Paulina Porizkova'가 18세의 나이로 출연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중간 파올리나, 오른쪽 릭 오케이섹)

그들은 이 뮤비를 계기로 5년후인 1989년 결혼.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로 작년인 2018년 이혼을 했었다고 합니다 (they say 'peaceful separation'). 바로 다음해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둘 다 몰랐겠지요.

The Cars- Drive (Heartbeat city, 1984)



막상 이렇게 되고보니, 릭에게는 바로 작년이 그의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락앤롤 명예의 전당 입성과 또 반대로 그의 전성기를 함께한 반려자인 파올리나와의 황혼이혼이라는 극단적인 두 가지 일이 함께 일어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많은 감정이 교차했겠지요...

팝의 황금기의 커다란 퍼즐이었던 릭 오케이섹. 모두 잊고 편히 잠드시길...




Beatles- 노란 잠수함 (1968년 트레일러) 음악

60년대라는 시대는 태어나기도 전이지만, 진심 예술적으로 대단한 시기였다는 생각...

볼때마다 어떻게 이런 화풍의 애니메이션이 있었을까 싶다. 그리고 비틀즈라는 밴드는 이 시기가 없었다면 매력의 50%는 삭제되었을 것.

이 작품 자체가 그냥 플라워 무브먼트시대의 애시드 그자체같은...

비틀즈- Yellow Submarine Original Trailer (1968년)



New York Voices- Open Your Eyes, You Can Fly (2019) 음악


2019년에 이런 식의 느긋한 Jazz ensemble 곡이라니...

좋습니다.

뉴욕 보이시스- Open your eyes, you can fly (2019년)




추석연휴의 끝자락에 보는 생생한 18세기말 정월대보름 모습 역사전통마

윤기(尹愭, 1741~1826년)가 상세히 묘사한 18세기의 정월입니다.

추석과 묘한 접점이 느껴지는 신비한 당시 정월 대보름날의 정취를 함께 느껴보시라고 올립니다 (조상들은 설날보다 이 날에 더 축제가 많았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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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3책 
정월 대보름 고사46운 〔又記東俗 四十六韻〕 또 우리나라 풍속을 기록하였다.

새해에 열닷새가 되면 / 新歲遒旬五
아름다운 명절 대보름 / 佳辰標上元
한당의 고사는 멀어지고 / 漢唐遺事遠
형초의 옛풍속 성행했네 / 荊楚舊風繁

소동파 범성대가 많이 읊었고 / 蘇范恣吟賞
채군모 왕우옥은 은총 넘쳤네 / 蔡王詑寵恩

고장이 달라 고유 민속 많으니 / 殊方多俚俗
우리나라 풍속은 중국과 달라라 / 東國異中原
대보름엔 등불놀이 하지 않고 / 不用張燈戱
오직 달구경 소리 요란하구나 / 惟聞翫月喧 (주: 당시에도 중국과 다른 우리 명절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는 귀한 구절)

도성의 다리를 두루 밟느라 / 踏橋卄四遍
거리 가득 인파들 분주하네 / 塡巷萬羣奔

야금 풀어 나졸들 입을 닫고 / 放夜金吾啞
조정에서는 윤음 온화하구나 / 臨朝玉旨溫

어린아이에서 늙은이까지 / 垂髫仍戴白
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며 / 驅馬或乘軒
곳곳에 둘러앉아 풍악 잡히고 / 處處笙歌匝
사람마다 즐겁게 웃고 떠드네 / 人人笑語爰

은파는 삼보의 백성들에게 끼치고 / 波分三輔屬
우레는 오군의 군문에 울리네 / 雷動五軍門
맑은 강 기슭으로 다투어 달려가고 / 競向淸流岸
푸른 버들 거리를 뒤질세라 헤집고 다니네 / 爭穿綠柳村

규장각은 예원에서 으뜸이요 / 奎章高藝苑
장용영은 병영에서 으뜸이라 / 壯勇首戎垣 (주: 이 구절에서 이 시가 최소 1785년 이후에 지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장용영은 정조가 1785년 만든 호위군대이지요. 또한 당시 이 군대를 일반이 어떻게 인식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화려하게 새 옷으로 차려입고 / 闘靡新衣飾
성대하게 창과 깃발 세웠어라 / 誇殷列戟旛 (주: 마치 요즘 국군의 날처럼 특별한 날 무력시위한 듯.)
장용영



아쟁은 애절하고 피리는 급하여 / 絲哀兼管急
바람처럼 모이고 구름처럼 뭉쳤어라 / 風驟更雲屯

미녀의 목에 간드러지는 노랫가락 곱고 / 曲愛嬌喉囀
비단 소매 펄럭이는 춤이 아름다워라 / 舞憐繡袖飜

칠보 반합 열어 음식을 집고 / 揀羞開寶盒
금 술통 부어 술을 데우네 / 煖酒瀉金樽
19세기 조선찬합


부호가 앞에서 수레를 멈추고 / 富戶停輪鞅
푸줏간 앞에서 구운 고기 주문하네 / 屠門喚炙燔 (주: 역시 고기가 일상이던 18세기조선- 참고글 [18세기 소고기는 일상의 반찬 (부제: 살벌한 고기소비)])

어찌 모두 시문 짓는 모임이랴 / 豈皆文字飮
단지 권세가들의 술자리라네 / 直以勢威尊
성세의 풍류가 아름답고 / 盛世風流美
태평시대 기상이 있어라 / 升平氣象存

여염에선 무슨 놀이 즐기나 / 里閭何所事
민간 풍속도 말함직 하지 / 俗尙又堪論

저녁달을 보고 풍흉을 점치고 / 厚薄徵宵月
아침 해를 보고 날씨를 점치지 / 陰晴卜曉暾
아이들 서로 부르며 더위를 팔고 / 迭呼兒賣暑
맹수 대비해 머슴들 울타리 손질하지 / 豫備僕修藩

부럼을 깨무니 밤에서 소리나고 / 嚼腫栗生響
귀밝이술로는 맑은 청주 마시네 / 治聾酒不渾

대나무장대 세워 낟가릿대 만들고 / 竪竿象積築
과일나무 시집보내어 많이 열리게 하네 / 嫁樹指豐蕃
낟가릿대


윷가락 세 번 던져 점괘를 보고 / 擲柶三看繇
개야 올빼미야 부르며 쌍륙을 하네 / 呼盧衆賭梟
쌍륙놀이 (18세기 동시대, 신윤복)
 
할아버지는 며느리 손자와 함께 앉아 / 老翁偕婦孺
닭과 돼지 잡아 맛난 요리 즐기네 / 妙饌殺雞豚 (주: 고기 고기...)

새벽에 우물물 길어 용알을 뜨고 / 汲井攘龍卵
개 목줄 만들어 앉혀놓고 걸어주네 / 環繩施狗蹲 (주: 목줄이 있는 개, 있었습니다. 이미 조선전기에도...)


참고그림 (이암(李巖, 1499 ~ ?)의 모견도 (16세기초)


종이 버선 만들어 처마에 끼우고 / 簷挑裁紙襪
옷과 두건 벗어 길에 버린다 / 路棄脫衣幡

긴 빗자루로 집 안을 소제하고 / 屋宇勤長箒
목화솜으로 묵은 뿌리 감싸주네 / 木綿被宿根

대추와 과일 섞어 약밥을 찌고 / 飯蒸抣棗果
나물 제수를 사당에 올리네 / 廟薦間蘋蘩

고기만두 전골은 새로 끓이고 / 餶飿新需爛
무나물 고사리 미리 장만하지 / 葑薇舊蓄煩

물고기 먹이려 각종을 던지고 / 飼魚沈角粽
고치 켜며 누에 농사 축원하네 / 抽繭祝蠶盆

송편을 자주 집어먹으니 종들은 배부르고 / 奴飽頻持斧 (주: 송편은 필수, 모양도 도끼모양으로 지금과 흡사)
저녁밥 주지 않으니 강아지는 굶주리네 / 猧飢不除飧 (아니 왜 안줘...물고기도 주면서..)

하늘에서 달이 막 돋으면 / 天方吐素魄
사람들은 황혼을 기다리지 / 人盡待黃昏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농사 점치고 / 指點談禾麥
정성스레 자손 번창케 해달라 빌지 / 虔誠願子孫

달 먼저 보려고 성가퀴에 오르고 / 先觀登睥睨 (주: 성가퀴에 오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는...)
동산에 올라 늘어서서 절하네 / 羅拜陟山園
횃불 들고 둥글게 늘어서고 / 炬火紛環列
제웅은 마구 끌며 부순다 / 芻人任曳掀 (주: 아래 그림이 제웅. 관련 포스팅은 여기로..[제웅, 초용(草俑)․초우(草偶), 그리고 신라의 짚단병사들])
불쌍한 조선시대 제웅녀석들 (打芻戱)...

종이연에 실 매어 바람 타고 띄우고 / 紙鳶風引線
죽마를 만들어 형과 아우 함께 타네 / 竹馬弟携昆 (주: 조선 아이들 죽마)

액을 피하는 방법 유난히 많고 / 度厄偏多術
복을 받는 방법도 매우 자세하지 / 迎祥細有言
옛 풍속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 古風難屈指
전래의 풍습을 누가 기원 알겠나 / 流習孰探源

다행히 전쟁 없는 성세 만나 / 幸値邊塵靜
도타운 교화를 함께 누리네 / 俱欣聖化敦

세상의 유행을 뉘 다시 금하랴 / 奔趨誰復禁
자취도 없건만 두루 전파되었네 / 傳播遍無痕

속절없이 검을 퉁기는 객만이 / 有客空彈鋏
조롱에 갇힌 새인양 가련해라 / 如禽未出樊
오직 병에 시름시름 시달리고 / 涔涔惟疾病
천지는 마냥 드넓기만 하여라 / 納納自乾坤

풍속 채집하노라니 온통 가슴이 아파 / 採俗渾傷感
시를 짓느라고 삼켰다가 뱉었다가 하네 / 裁詩半吐呑
단지 명절에 가름하고자 / 聊思酬令節 (주: 이런 구절을 보면 분명 지금과 달리 정월대보름은 설날의 연장선)
즐거운 일만 적어보노라 / 好事庶相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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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즐거운 일이 더 많은 가을-겨울이 되시길...



정선(鄭敾)이 가본 17세기 귀신나라 설화 야담 지괴류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 선생(鄭敾,1676~1759년)은 '귀신나라'에 가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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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鄭敾)이 가본 귀신나라

겸재(謙齋) 정선이 말하였다. 

영춘(永春) 남쪽 동굴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지역 사람 몇몇이 모여 횃불을 들고 함께 그 굴속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굴속을 들어가는 데 혹은 깊고 혹은 넓고 혹은 높고 혹은 낮고 하였다. 점점 더 깊이 수십 리를 가자 횃불도 다 꺼졌는데 공중에서 별빛이 희미하게 비쳐서 가는 길을 분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상했지만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문득 확 열리더니 해와 달이 비추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밭도 있고 마을도 있고 보통 가축들도 있으며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 다를 바 없었다. 

이미 멀리 와서 모두들 배가 고파서 한 집에 들어가 먹을 것을 구하나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주인의 몸을 잡고 흔들자 주인은 비로소 놀라며 ‘이는 필시 무엇이 붙은 것이다’라고 하며 밥을 물에 말아서 주는데, 마치 무당이 귀신을 쫓는 것과 같았다. 사람들이 배가 고파 함께 나누어 먹고 다른 집에 갔지만 전에 갔던 집과 마찬가지로 하였다. 사람들은 비로소 이 세계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 반대임을 알았다. 

길을 찾아 나오는데 한 동네에 갔더니 위로 기어 올라가게 되어서 올라가니 문득 나가게 되었는데, 그 세계는 높은 봉우리의 맨 꼭대기였다. 저 멀리 바라보니 바닷가에 배 한 척이 보여 그 배를 불러서 타고 돌아왔다. 뱃사람이 말하기를 그 봉우리는 바로 단양왕 순봉(丹陽王筍峰)이었다. 이 일은 어떤 사람이 친히 경험한 이야기를 내가(겸제 정선) 일찍이 전해 들었다.

- 학산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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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출처는 [한국문화대백과-링크]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원전출처가 없습니다. 고전DB를 비롯한 어디에도 원전을 찾기가 힘듭니다.

만약 '겸재선생이...경험했다'는 식이라면 '구전민담'을 채록한 기록으로 추정할 수도 있을텐데, 이 글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야담집의 형식인 본인이 직접경험했거나 누군가 (이 기담의 경우 정선선생)가 직접 말한 것을 들은 (즉 당대의 기록) 것을 적은 형식입니다. 따라서 어딘가 '원전'이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찾으면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 블로그 이웃이신 게렉터님께서 원전을 18세기초반 신돈복 (辛敦複, 1692~1779년)의 [학산학언]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즉, 겸재 선생과 거의 동시대의 인물로 이 이야기가 더 와닿습니다.


내용은 매우 신비롭습니다. 마치 [강원도의 조선중기 무릉도원武陵桃源, 그리고 위치추적 (4년전 글)]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플롯의 길이는 짧으나 무엇보다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일치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매우 기이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정선선생이 발견한 영춘동굴 속 세상은 세속의 반대급부라는 점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하면, 이 기이한 세상은 완전히 거울처럼 현세(당시 조선)와 같은 모습인데, 이 세상에서 주인공인 '정선'은 보이지 않는 '귀신취급'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 지하동굴의 사람들은 아마도 지상으로 나오면 '귀신'이 되는 것이겠지요 (필자의 추정이 아니라 제목에 '귀신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플롯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매우 신기한 구성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보통은 이런 세상에서 나오면 그 출구가 어딘지는 나오지 않는데 이 기담은 그 지점도 명확합니다. 바로 '단양왕순봉'이란 곳. 자 이 이야기의 지리정보를 조금 더 파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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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굴과 왕순봉

우선 이야기의 첫 부분 "겸재(謙齋) 정선이 말하였다. 영춘(永春) 남쪽 동굴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지역 사람 몇몇이 모여 횃불을 들고 함께 그 굴속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굴속을 들어가는 데 혹은 깊고 혹은 넓고 혹은 높고 혹은 낮고 하였다."

영춘남쪽동굴이란 지명이 나옵니다. 과연 여기는 실제하는 곳일까요? 

충북 단양군  영춘면 하리 산62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제261호인 "온달동굴(溫達洞窟)"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동굴의 옛이름이 바로 영춘남굴(永春南窟)이지요. 석회동굴인 이 곳은 고구려 평원왕 때 온달장군이 성을 쌓은 온달산성 밑에 있으므로 온달동굴로 더 익숙합니다. '영춘남굴', 즉 이야기의 '영춘 남쪽 동굴'입니다. 

이 곳은 약 4억5천만 년 전부터 생성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굴과 지굴의 길이가 760m나 되는 석회암 천연동굴입니다. "점점 더 깊이 수십 리를 가자 횃불도 다 꺼졌는데"라는 구절이 이해가 가지요. 이 동굴은 석회암층 담백색 종유석과 석순이 잘 발달되어 내부의 비경이 웅장하며, 지표수가 유입되어 수심 1m 정도의 물이 동굴 내부를 항상 흐르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 특징은 이 기담의 중요한 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 조금후에 이야기하고... 일단 영춘남굴의 모습입니다.
웅장하고 기괴한 영춘남굴 내부 (사진출처 링크)

바로 이 동굴밑에 하늘과 별이 따로 보이는 모든 것이 거꾸로인 귀신의 세상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곳을 헤매던 정선 선생이 빠져나온 곳이 있으니 바로 이 부분. "...찾아 나오는데 한 동네에 갔더니 위로 기어 올라가게 되어서 올라가니 문득 나가게 되었는데, 그 세계는 높은 봉우리의 맨 꼭대기였다. 저 멀리 바라보니 바닷가에 배 한 척이 보여 그 배를 불러서 타고 돌아왔다. 뱃사람이 말하기를 그 봉우리는 바로 단양왕순봉(丹陽王筍峰)이었다."

'단양왕순봉'이라는 곳은 또 어디일까요?

단양에는 '왕순봉'이란 봉우리는 없습니다. 대신 아주 유명한 "옥순봉(玉筍峰)"이 있지요.
옥순봉(玉筍峰)
왕순봉(王筍峰)

점 하나 차이입니다. 즉, 필자는 이 곳이 '단양옥순봉'이라 추정합니다. 옥순봉은 김홍도도 그림으로 남길만큼 유명한 골짜기였습니다.
 '병진년 화첩' 20폭 중 첫째 그림인 '옥순봉도' (보물 제782호)

자, 이렇게 되면 루트가 이렇습니다.

단양 영춘남굴(永春南窟)-> 지하세계-> 단양 옥순봉(玉筍峰)

두 곳 모두 단양군에 있습니다. 과연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다음의 지도를 봐주세요.
두 곳은 단양군을 가로질러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하를 통해서 빠져나왔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기담일 뿐 실제성을 따지긴 싫습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최소한의 실제적 근거를 추정해보는 것은 필자의 재미입니다.

지도를 다시 봐주십시오. 영춘남굴에서 옥순봉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물줄기'가 통하고 있지요. 앞서 영춘남굴에 대해 설명할 때 이 부분이 기억나시나요?

"이 동굴은 석회암층 담백색 종유석과 석순이 잘 발달되어 내부의 비경이 웅장하며, 지표수가 유입되어 수심 1m 정도의 물이 동굴 내부를 항상 흐르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렇게 물이 흐릅니다.
사진출처 (링크)

그렇습니다. 이 동굴은 항상 수심 1미터나 되는 깊이의 물이 동굴내부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혹시 정선 선생은 이 동굴내부의 물줄기를 따라 저 봉우리로 연결된 지하통로를 지나간 것은?...

상상은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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