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중) for me


“소설을 쓰지 않게 되면 아오야마 근처에 재즈클럽을 열고 싶어요.”

무조건 갑니다.

한소절이라도 불렀으면 레전드: USA for Africa- We are the world (1985) 음악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 덕에 [Live Aid]가 뜬금 다시 유명해졌고, 거기서 파생되어 그 라이브 에이드를 있게 만든 영국의 'Band Aid'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 (1984)도 알게 된 분들이 많지요.

사실 많은 이가 당시에 의아해했는데 왜 퀸이 이 슈퍼프로젝트에 끼지 못했는가는 이번 영화로 의문이 풀렸을 겁니다 (그룹이 와해상태). 이 밴드에이드에는 당시 영국의 슈퍼팝스타들인 폴리스(스팅), 듀란듀란, 컬처클럽, 죠지 마이클, 필 콜린스, U2, 바나나라마, 스펜다우 발레, 폴 웰러등이 참가했었습니다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팝락쪽 뮤지션들로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같은 하드락이나, 핑크 플로이드, 예스같은 프로그레시브락커들은 없었지요. 데프 레퍼드같은 당대 탑셀러 밴드도 불참).

바로 이 곡의 영향을 받고, 미국출신 뮤지션들도 참가한 Live Aid의 영향으로 이듬해인 1985년 이번에는 미국의 팝슈퍼스타들이 총 출동, 차트상으로는 더 큰 성공을 거두니 바로 USA for Africa라는 슈퍼프로젝트가 그것입니다. 

참가명단은 입이 아프니 생략 (아마 80년대초중반 미국 팝의 아이콘격인 가수는 거의 전부가 참가했다고 생각하면 될겁니다- 두 명만 더 왔으면 완성- 마돈나, 그리고 프린스 (휘트니 휴스톤은 아직 뜨기 전입니다, 바로 이 해에 데뷔)).

이 곡에서 '한 소절'이라도 잠깐 부른 분들은 그냥 레전드로 보면 무방합니다. 백 보컬들도 몽땅 당시 유명가수들.

다른 걸 떠나서 일단 곡이 너무 좋고, 또 모인 레전드들의 보컬이 너무나 각각 개성이 살아 숨쉽니다. 딱 들으면 누가 누군지 금방 구분이 되고, 장르도 모두 다름이 느껴지지요. 그렇게 개성이 뚜렷하고 다른데 이걸 한데 뭉쳐낸 퀸시존스와 마이클 잭슨이 정말 대단합니다.

프로젝트 동기를 떠나, 이런 전설들의 목소리와 얼굴을 한 뮤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자체로 대중음악 역사적인 기쁨이자, 축복.

USA for Africa- We are the world (1985년)- 음질 좋네요


여담으로 마돈나는 참가를 거절했는데 이럴 때만 참가하는 건 싫다고 했고 (라이브 에이드엔 참가), 프린스는 원래는 마이클 잭슨과 더블보컬로 넣으려 했으나, 다른 슈퍼스타들과 함께 작업하는 게 쑥스러워서 (...) 일단 거절. 녹음 다음날 전화해서 기타솔로라도 참가하길 원했으나 이미 이 하루짜리 프로젝트가 끝난 후였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아래 영상에 보이듯 한 소절을 완성하는데도 이런 노력이 필요했음을 요즘 알았습니다. 

메이킹 영상 (신디로퍼, 휴이루이스, 킴 칸스 부분)



Soloists (in order of appearance)
Lionel Richie
Stevie Wonder
Paul Simon
Kenny Rogers
James Ingram
Tina Turner
Billy Joel
Michael Jackson
Diana Ross
Dionne Warwick
Willie Nelson
Al Jarreau
Bruce Springsteen
Kenny Loggins
Steve Perry
Daryl Hall
Huey Lewis
Cyndi Lauper
Kim Carnes
Bob Dylan
Ray Charles

Chorus (alphabetically)
Dan Aykroyd
Harry Belafonte
Lindsey Buckingham
Mario Cipollina
Johnny Colla
Sheila E.
Bob Geldof
Bill Gibson
Chris Hayes
Sean Hopper
Jackie Jackson
La Toya Jackson
Marlon Jackson
Randy Jackson
Tito Jackson
Waylon Jennings
Bette Midler
John Oates
Jeffrey Osborne
Anita Pointer
June Pointer
Ruth Pointer
Smokey Robinson


아마존 프라임 뮤직을 쓰면서 첫번째로 느끼는 점.

미국기업은 미국기업.

확실히 미국음악이 많고 영국음악은 기본적인 것도 없다.
(자미로콰이, 컬쳐클럽, 왬 음악조차 기본적인 곡들이 없음. 스윙아웃시스터나 에브리씽밧더걸정도까지 가면 아예 거의 없고).

그래도 BTS는 있다!

인삼밭의 고구마 (펌) 애니메이션/만화 & OST

예전에 크게 공감했던 만화 (원문링크).

인삼= 자존심
고구마= 자존감

원출처는 [일단 나한테 잘합시다]  by 장미영 작가

참고로 [자존심과 자존감의 7가지 차이] (사실 간단히 말해 반비례관계).


조선소주는 아시아에서도 유명한 독주(毒酒)였다 음식전통마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TV프로그램에서 러시아 소녀들의 방문편에 이런 장면이 있었죠.

또한, [영혼을 뜨겁게 하는 술 독주(毒酒)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올해 (2018) 1월자 기사가 있었습니다.

겨울의 문턱, 유라시아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로 향하던 열차의 좁은 객실. 네 명이 함께 쓰는 좁은 방에서 카스피해 서안 바쿠(아제르바이잔의 수도) 태생의 한 사내와 사흘간 숙식을 같이했다. 아침부터 맥주를 들이켜며 술 얘기를 나누던 중에, 그가 한국의 소주를 비웃었다.
   
“그 정도면 칵테일이네. ‘사마곤’이나 ‘차차’ 정도는 마셔줘야지!”
   
“사마곤? 차차? 그렇게 대단한 술이야?”
   
설명 대신 사내는 병째로 술을 마신 뒤 가슴이 타는 동작을 취했다. 얼마나 독하길래…. 나는 처음 들어보는 독주(毒酒)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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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반응도 이해가 되는 것이 우리의 '소주사(史)'는 90년간 35도에서 13도로 무려 평균 22도를 낮추는 여정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링크) 클릭하면 확대


위의 그림중 맨 왼쪽의 진로소주는 전통식 증류소주 (무려 35도)였지만, 65년부터 증류식이 금지되면서 희석식만이 나오게 되지요.

이렇게 낮춰만 가던 소주의 도수는 그러나 2010년대중반을 기점으로 증류식 소주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면서 본격적으로 다시 20도를 넘는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좋은 예로 2016년 5월부터 출시되고 있는 '증류식 소주', "대장부"라는 25도와 21도짜리 소주가 있습니다 (이제껏 우리가 마셔온 건 희석식 소주). 당연히 증류식소주가 우리의 원래 전통소주제조법이지요. 사진의 흰색병이 25도고 초록병은 21도.

그런데 원래 증류식 소주가 희석식보다 세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정말 우리 조상들이 마시던 소주는 어느 정도 강도였을까요?

우선 [정통 증류식 소주 대장부 솔직후기]라는 블로그 글을 가보시면 첫 줄에 이런 평이 있습니다.

대장부 마시고 느낀 한줄 정리 
내가 마셨던 소주들은 설탕 물이었구나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고려대부터 줄기차게 몇백년간 마시던 소주는 동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강한 술'이었음이 문헌기록으로 나옵니다. 위에 25도짜리 대장부를 마시고 우리가 마시던 희석식소주는 설탕물이구나라고 할 정도였는데, 우리 조상님들은 이보다 훨씬 센 도수를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들이 있어 소개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비단 센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맛에 길들여져 우리 조상님들은 이런 독주를 즐기셨음도 엿볼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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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고 기절, 고려대 소주

우선 고려말 문헌인 [동문선]에는 권근(權近, 1352~1409년)이 쓴 기록이 나오는데...

동문선 설(說) 
김공 경혐 설(金公經驗說)

권근(權近)

전(前) 판사(判事) 김(金)공이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박주(博州)에 취임하였을 때에, 나를 따라간 손이 있었는데, 고독(蠱毒)에 걸려 해가 다하도록 낫지 않더니, 목구멍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이 따끔따끔하고, 배가 북같이 커져서 먹고 마시지를 못하여 거의 죽게 되었었다. 하루는 매우 속이 답답하여 나를 보려고 기어서 왔는데, 숨이 거의 넘어갈 지경이었다. 

내가 불쌍히 생각하여 먹고 싶은 것을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먹고 싶은 것이 없다.’하였다. 내가 망령스럽게 말하기를, ‘소주(燒酒)는 능히 가슴속의 체기를 내리게 한다.’하고, 한 잔을 마시도록 하니, 그 사람은 문득 사절하였다. 내가 다시 억지로 권하여 연거푸 두 잔을 마시더니, 그 사람이 바로 취하여 기어서 밖으로 나가며 기침을 몹시 심하게 했다. 

겨우 두 잔을 마셨다고 바로 취하는데 기어서 나갈 정도. 다음 역시 고려시대의 기록입니다.

속동문선 제7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여름날 목이 말라 혼자 찬 소주를 가져다 과하게 마시고 기절하였으므로 온 집안이 통곡하여 삽시간에 서울 장안에서 아무개가 술로 죽었다고 전파되었다. 처자가 얼음을 깨어서 입에 많이 넣었더니 날이 저물어 깨났는데,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조금도 피곤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난 것을 기록하여 숙강에게 보내니 대허들과 화답해 주오

원문을 다시 볼까요?

酌冷燒酒過飮 찬 소주를 과하게 마시고
氣絶 기운이 끊어졌다.

氣 기운 기 絶 끊길 절, 즉 요즘말로 하면 필름이 끊긴 겁니다. 그런데 그냥 필름이 끊긴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호흡곤란으로 식구들이 사망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

이렇듯 고려시대의 소주는 매우 강한 증류주였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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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도 독주毒酒, 조선시대 소주

중국반응(청대)

소주의 도수가 세다는 기록은 소개할 필요없이 조선시대에도 많습니다. 이보다는 오늘 소개하는 기록들은 당대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의 반응으로 그 강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들만 추렸습니다.

우선 홍대용(洪大容 1731~ 1783년)의 [담헌서]를 볼까요.

항전척독(杭傳尺牘) 
건정동필담 속 (乾淨衕筆談 續 )

기잠이 “해동(海東)은 옛날에 무슨 술이 있나요? 역시 홍모소주(紅毛燒酒)와 같은 것입니까?”

내가 “동방에는 쌀이 많이 나오므로 술도 또한 아름답지요. 홍로(紅露) 등 여러 종류가 다 그 명칭이 있는데, 계당주(桂糖酒)라는 것은 매우 독하여, 즐겨 마시면 사람을 상하는 일이 많습니다.”

평중이 “대개 동국의 술은 중국 것보다 배나 더 독합니다.”

이 기록은 홍대용이 1765년겨울에서 1766년 봄까지 북경에 다녀온 기행기입니다. 여기 보면 기잠이라는 청나라 사람이 조선에는 어떤 술이 있느냐라고 하자 (홍모소주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홍로(紅露)라는 술은 관서홍로주라는 술로 역시 우리의 전통독주입니다), 계당주(桂糖酒)같은 술이 있는데 매우 독해서 먹으면 건강이 위험할 정도라고 합니다. 여기 나오는 계당주는 계피와 꿀을 '소주'에 넣은 술입니다. 

그러자 또다른 청나라인인 평중이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조선의 술은 보통 중국 것보다 두배는 독하다'라고 말하지요. 고량주의 나라에서 말입니다.

이의현(李宜顯, 1669~ 1745년)의 [경자연행잡지]에는 더 직접적인 기록이 나옵니다.

경자연행잡지
술은 계주(薊州) 술이 가장 좋다고 하지만, 독하지 않아서 쉽게 깬다. 어떻게 담그는 것인지 모르지만, 대개 찰수수로 만드는 것 같다. 우리나라 소주(燒酒)는 연중(燕中) 사람들은 너무 독하다고 해서 마시지 않고, 마셔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첫 구절에 나오는 계주(薊州) 술은 우리것이 아니라 중국술로 북방의 최고 명주였습니다. 광서성을 계주라고 했는데 이 지역에서 계화라는 꽃으로 담근 술이 계주술입니다. 
지금도 판매중인 계주


이 계주를 이의현은 '순하다'라고 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조선소주는 북경사람들이 너무 독해서 마시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확실히 조선의 소주는 당대 청국에서도 강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이런 독한 조선소주를 매우 즐깁니다. 이정신(李正臣, 1660~1727년)의 [역옹유고]중 연행록(燕行錄)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역옹유고/ 연행록
次到吾舘舍。곧이어 나는 관사에 도착했다.
請甞朝鮮燒酒 아침에 청해서 조선소주를 맛보았다.

연행록은 1721년에 이정신이 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파견되었을 때 지은 글입니다. 이미 음력 5월에 연경에 도착했으니 이 일기가 씌여진 6월은 당연히 중국에서 작성된 것입니다. 즉, 청나라 관사에 도착하자마자 조선소주를 청해서 마셨다는 것인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청나라에서도 조선소주를 구할 수 있었다는 점이지요.

이 뿐이 아닙니다. 이로부터 50여년후인 1777년 이압(李坤, 1737~1795년)의 역시 연행기인 [연행기사]를 보면 당대 조선인들의 자국 소주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습니다.

연행기사(燕行記事)
문견잡기

손님을 대접하는 예절은 손님이 아무리 많더라도 딴 상을 차리지 않고 손님과 주인이 식탁을 함께 하는데, 다만 각 사람 앞에는 젓가락과 술잔 1개씩을 벌여 놓는다. 그리하여 다 마시면 시자(侍者)가 다시 따른다. 술 마시는 법은 죽 들이키지 않고 조금씩 마시므로 한꺼번에 다 기울여 없애지 않는다. 술잔도 작다. 

소주(燒酒)는 우리나라 맛에 비하면 무척 떨어진다. 마신 뒤에 뱃속이 또한 편치 못한데 이는 회(灰)를 타서 빚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환소주(還燒酒)를 저 사람들은 대단히 좋아하지만 한 번 마시면 목구멍을 찌르기 때문에 한 번에 다 마시는 자는 하나도 없다.

청나라 소주는 灰 (회)를 타서 빚는다고 하는데 이건 '재'입니다. 이런 식으로 만든 청국소주는 맛이 조선소주에 비해 너무 떨어진다고 하고, 덧붙이기를 청나라 사람들은 조선의 환소주를 대단히 좋아한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환소주(還燒酒)라는 것은 '소주를 다시 한번 내린 (두 차례 증류한 술)입니다 (...). 이 기록은 위의 기록과는 대비되는데 앞의 기록과는 56년이라는 시차가 있기에 유행이 바뀌었을 수도, 혹은 조선소주가 더 발전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도 조선소주가 굉장한 독주임이 나오는 구절은 이 부분.
우리나라 환소주(還燒酒)를 저 사람들은 대단히 좋아하지만 한 번 마시면 목구멍을 찌르기 때문에 한 번에 다 마시는 자는 하나도 없다.

國之還燒酒。彼人甚喜 우리나라의 환소주를 저사람들도 대단히 좋아한다.
而一飮戟喉 한 모금에 목구멍을 찌르기에
故絶無傾盃者 잔을 비우는 자가 없다

비슷한 시기 박지원(朴趾源, 1737~ 1805년) 역시 이런 반응을 보이지요. 다음은 1780년 청나라에서 있었던 대화.

술이 다시 두어 순배 돈 때에 이생이,
“이 술 맛이 귀국의 것과 비교하여 어떠합니까.”
하고 묻는다. 나는,
이 임안주는 너무 싱겁고, 계주주는 지나치게 향기로워서, 둘 다 술의 애초부터 지니고 있는 맑은 향기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엔 법주(法酒)가 더러 있습니다.”
한즉, 전생은,
“그러면 소주(燒酒)도 있습니까.”
하고 묻기에 나는,
“예, 있습니다.”
하고 답하였다. 전생이 곧 몸을 일으켜 벽장에서 비파를 끄내어 두어 곡조를 뜯었다. 

[열하일기]의 한 장면으로 박지원이 청나라의 계주주와 임안주를 마시는데, 둘다 너무 싱겁고 향기롭다 (즉 달달하다는 뜻도 될겁니다)라는 말을 하지요. 당대 조선인들에게는 약한 술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음이 자주 보입니다. 임안주(臨安酒)라는 술은 중국 남방산 명주입니다.

이 두 가지 술들은 사실 당대 청국 최고의 명주들이었임을 다음 기록에서 볼 수 있지요.

수사록(隨槎錄) / 풍속통고(風俗通考)
음식(飮食)
(청나라) 술은 종류가 매우 많은데, 임안주(臨安酒)와 계주주(薊州酒)를 최고로 치며, 백소로(白燒露)ㆍ사괴공(史蒯公)ㆍ동정춘(洞庭春)ㆍ불수로(佛手露)ㆍ장원홍(壯元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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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반응
17세기 남용익(南龍翼,1628~1692년))이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기록한 [부상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부상록 
扶桑日錄 / 八月 
十二日癸亥

동풍이 불었다. 다시 아미타사(阿彌陀寺)로 돌아왔다. 
의성ㆍ중달ㆍ소백이 차례로 와서 뵙고 밤이 깊도록 가지 아니하므로 간략하게 과일 상을 차려 소주를 대접하였더니…의성이 몹시 술을 마시려고, “내가 다른 나라의 술을 두루 마셔 보았으나 조선 소주처럼 맛이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므로 나는 억지로 입술에만 대고 그에게 권하였다. 그는 사양하지 아니하고 연거푸 큰 잔으로 다섯 잔을 기울이더니 크게 취하여 경망하게 뛰고 함부로 지껄였다.

남용익선생이 일본의 아미타사에서 묶게 되는데 이날 일본인 셋이 찾아옵니다. 그 중 '의성'이라는 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죠.

吾遍飮他國之酒。내가 다른나라의 술을 두루 마시지만
而無如朝鮮燒酒之味云。조선소주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조선에서 가져온 소주를 주자 5잔을 마시고 취해서 주사를 부렸다는 기록. 이보다 약간 더 후대인 1719년 부산에서 출발한 기해 사행(己亥使行) 당시 신유한 (申維翰,1681∼미상)이 쓴 사행록인 [해유록]에서도 역시 조선주의 도수에 대한 강조가 나옵니다.

海游錄[上] 申靑泉維翰著 

내가 행장 속에서 자화주(紫火酒)를 꺼내어 밀과(蜜菓)를 안주로 마시기를 권하였다. 의(儀)가 본시 술을 즐겼다는데 두 잔을 마시고는 그만두며 말하기를,
“조선 술은 맛이 너무 독하여 더 마실 수 없습니다.”
하였다.

여기서는 소주라고는 안나오고 자화주(紫火酒)라는 술이 나오는데 이 술은 문헌기록으로도 이 기록에만 한번 등장할뿐 어떤 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시한번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조선술은 맛이 너무 독하여 더 마실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의역이고 사실 엄밀히는 약간 뉘앙스가 다릅니다.

원문을 다시 보지요.

酌行中紫火酒 술을 돌리는 중에 자화주를
以蜜果佐飮 단 과일로 술안주를 삼고
儀素嗜酒。술을 즐겼다.
飮兩鍾卽止曰 두병을 마시고 멈추더니 말하길
朝鮮酒味最烈 조선주의 맛이 가장 강렬하다.

'조선주의 맛이 가장 강렬하다'라고만 되어있지 '독해서 더 못마시겠다'라는 말은 전혀 없지요. 왜 이런식의 번역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조선시대에도 과일안주를 즐기셨군요.

조선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술을 즐기고 아꼈음은 (그리고 익숙해져 있었음은) 여러 기록을 보면 유추가능한데 (위에서 청나라 관사에 도착하자마자 조선소주를 찾는다든가), 아래의 기록 역시 그런 문맥으로 읽을 만합니다.

동사일기 東槎日記
문견록

식사에 있어서는, 밥은 한 끼가 두어 홉 쌀에 불과하고 나물국ㆍ생선회ㆍ간장ㆍ무 등 두어 가지뿐이다. 한 그릇에 담은 것은 매우 적으나 먹는 데 따라 다시 보태고, 회도 매우 굵은데 초(醋)를 섞는다. 식사 뒤에는 청주를 마시고 다음엔 과일을 먹으며 과일 뒤에 차를 마신다. 하루에 두 끼를 먹되 노동을 할 때엔 세 끼를 먹으며, 하천한 무리들은 혹 밥을 두서너 숟가락 뭉쳐 한 덩이를 만들어서 불에 구워 먹는다. 그리고 찐 떡을 씹고 혹은 소우주(燒芋酒)를 마시는데, 술은 가양주가 없고 반드시 술집에서 사 마시되 제백(諸白)을 제일 상품으로 삼는다. 이것은 백미(白米)로 누룩을 만들고 또 백미로 술밥을 하기 때문에 제백이라 하는 것이다. 또 인동주(忍冬酒)ㆍ복분주(覆盆酒)ㆍ연주(練酒)ㆍ소주(燒酒)ㆍ남만주(南蠻酒)ㆍ유구주(琉球酒)가 있는데, 혹 향내와 매운 맛이 많기는 하지만 다 우리나라에서 빚은 술만 못하고, 또 나무통[木桶]에 담았기 때문에 통 냄새가 싫을 정도이다.

임수간(任守幹, 1665~1721년)이 1711년 일본에 가서 2년간 머물며 보고 경험한 것을 적은 [동사일기]입니다. 여기 보면 당시 일본의 술풍습이 나와 있는데 역시 가양주가 아닌 이미 술집에서 사마시는 문화였음이 나오지요. 그런데, 인동주, 복분주, 연주, 소주, 남만주, 유구주등 여러 지방과 타국의 술들을 이곳에서 모두 경험한 후 임수간선생은 이런 평을 합니다.

'향내와 매운맛이 많지만 다 조선주만 못하고, 나무통에 담았기 때문에 통냄새가 싫을 정도이다'.

요즘은 오크향이니 뭐니하면서 나무통에서 만든 술을 좋아하지만, 당시 조선지식인에게는 이상한 내음일 뿐이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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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이 글의 주제는 조선소주가 잘났었어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당대 조선 지식인들이 우리술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특히 다른 나라술들을 모두 섭렵하면서),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조선소주가 얼마나 독한 술로 통하고 있었는지 한번 기록을 훑어보는 기회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또한, 희석식 소주로 계속해서 은은하고 단 맛의 소주를 개발해온 90년 근대소주사에서 그건 그것대로 노하우를 살려나가고, 맥이 끊어졌던 원래 우리 강한 맛의 증류식 소주를 다시 살려서 '강한 소주의 미' 역시 현대한국사회에서 다시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해 보았습니다.

2016년부터 발동이 걸렸고, 2017년부터는 마켓 자체가 커지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얼마 전에 이강주를 끝냈는데, 전통주외에도 요즘 나오는 이런 새로운 증류식 소주제품도 마셔보고 싶군요.

사족: 대장부 25도는 작년 (2017)에 상도 받았군요.


아직 서부 캐나다에서 맛본 사람은 드물겠지만, 이미 미국 주당(酒黨)은 엄지손가락으로 치켜세우다 못해 상을 준 소주, 대장부 25가 있다. 

알코올 도수 25도 대장부는 미국 내 최대규모 주류품평회 SIP(Spirits International Prestige)에서 지난 달 12일 소주 부분 은상을 받았다. 전문 평가단 98명이 캘리포니아주에 모여, 한국 소주뿐만 아니라 일본 쇼추와 중국 바이주까지 모아놓고 두 차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결과다.  

한국으로선, 특히 50년 전통 증류기술을 자랑하는 롯데주류는 쾌거다. 2009년 첫 품평회가 시작된 이후로 소주가 상을 받은 적이 없는데 대장부가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https://sipawards.com/results/ (올해기록까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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