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클라우드- Only for love (KUTKLOUD, 1982) 음악

짧지만 강렬한 명 발라드 락. 커버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 시대만의 분위기.

Pink Cloud- Only for love (KUTKLOUD, 1982)



門戟은 모두 귀신 얼굴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고려시대 귀신/도깨비 모습) 역사전통마

일부에선 이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삼국시대와 통일시대의 귀면와들은 '귀면'이 아니라 아마 '용의 얼굴'일 것이다. 이 대담한 추정(가설도 아닌 추정에 불과)은 종종 '한국의 도깨비는 뿔이 없다'라는 담론에 연결되면서 저 기와의 얼굴들은 '귀매나 도깨비'가 아닌 '용'일 것이므로 따라서 저 뿔들은 한국의 도깨비담론에선 제외되어야 한다는 억측 (필자판단)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버젓이 이런 기록이 있음에도 말이지요 (예전 포스팅글에서 발췌).

"결정적으로 '귀와'(鬼瓦, 즉 귀신의 기와)라는 말은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조선 후기도 아닌 중기에 권별 (權鼈, 1589~1671)이 지은 [해동잡록 (海東雜錄)] "정창손 공의 집안에 대낮에 아무도 없는데 돌이 날아드는 요귀의 장난이 일어나자, 지붕에 있던 귀와(鬼瓦)를 불태워 버리자 그런 일이 없어졌다." 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 기록입니다:

본관은 동래이며 자는 효중(孝仲)이고, 갑손의 아우다. 과거에 두 번 장원급제하였으며, 우리 세조를 도와서 좌익공신(左翼功臣)에 들었고, 또 좌리공신(佐理功臣)에도 들었으며, 세 번 수상이 되었으나, 집안살림에 관심이 없었으며, 충정(忠貞)이라 시호하였다. 정창손이 정승 노릇을 30년 하였고, 거의 90세까지 살았는데 하루는 집에 귀신의 요사(妖邪)가 갑자기 일어나서 대낮에 돌을 던지기를 그치지 않아 온 조정이 모두 아주 괴상히 여겼는데, 공이 귀와[鬼瓦 지붕마루의 양 쪽 끝에 귀신 모양으로 만들어 올리는 기와]를 불태워 죽여 물리치니 그 요사함이 그치고, 공도 건강하여 병이 없었다. [청파극담(靑坡劇談)]

원문에도 분명히 '귀와'이므로 한글해석이 아닙니다:
昌孫爲相三十年。年幾九十。一日家有鬼妖忽作。白晝投石不已。擧朝大怪之。公燒殺鬼瓦以禳之。其妖遂息。公亦康强無恙

그런데 이 기록은 사실 권근이 더 전대인 15세기 이륙(李陸, 1438~98)이 쓴 [청파극담 (靑坡劇談)]에 나오는 기담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야기의 연대는 여기서 더 올라가는 데 그 이유는 이 기담의 주인공이 정창손(鄭昌孫 1402~ 1487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조선전기부터 귀면와라는 명칭과 그 내용에 '귀매'가 포함되어 있음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귀신얼굴의 귀와를 없애자 귀신이 없어졌다는 내용으로 보아). 물론 조선시대의 귀면와는 이미 삼국의 괴기스러움이 사라진 상태가 되지만, 전대부터 내려오던 이런 종류의 기와 문양중 적어도 많은 숫자가 예전부터 통칭 귀매나 도깨비류의 얼굴임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학자들이 이 기와들을 자신들의 식으로 '귀면와'라 이름붙여서 우리가 혼란스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도 사실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훨씬 이전 우리 조상들도 이 기와들을 '귀와'라 불렀다는 명확한 문헌기록입니다. 

아무런 근거없이 고대에는 건물이 모두 목조였으므로 항상 화재의 위험이 있었는데 물속에 사는 용의 얼굴을 기와로 만들어 붙여놓아 불의 기운을 제압하려 했다는 믿음을 반영했다라는 식의 '상상가설'보다 명확한 문헌기록을 먼저 보는 태도가 옳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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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창 문양에 새겨진 귀면(귀신얼굴)

그런데 [고려사]에서 이런 흥미로운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고려사 > 권72 > 지 권제26 > 여복1(輿服 一) > 의위 > 조회 의장 > 
1047년 7월 미상(음)

문하성에서 극의 문양에 대해서 건의하다
文宗元年七月 門下省奏, “謹按前典, 戟之爲制, 如槍兩歧, 施刃其端. 魏武帝門戟, 用蝦蟆頭, 以懸旛旒長一丈二尺, 雜以靑黃. 今宮殿及太廟門戟, 皆作鬼面, 實無所據, 乞依古制, 改畫爲蝦蟆頭.” 從之.

문종(文宗) 원년(1047) 7월 문하성(門下省)에서 아뢰기를, “삼가 예전의 전적(典籍)을 살펴보니 극(戟)의 제도로 삼은 것은 창(槍)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칼날이 그 끝에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위(魏) 무제(武帝)의 문극(門戟)은 청개구리 머리 모양을 사용하여 깃발을 매달았는데 길이가 1장(丈) 2척(尺)으로 청색과 황색을 섞었습니다. 지금 궁전(宮殿) 및 태묘(太廟)의 문극은 모두 귀신 얼굴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실은 근거가 없는 것이니, 청컨대 고제(古制)에 의거하여 모두 청개구리 머리를 그려 넣으소서.”라고 하니, 〈왕이〉 따랐다.

이 기록은 1047년의 것으로 여기 보면 당시까지의 고려시대 문극(門戟)의 문양이 모두 '귀신얼굴'인데 이걸 위 무제의 법도를 따라 개구리 머리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원문을 다시 볼까요?

皆作鬼面 모두 귀신얼굴로 만들다.

여기서 문극(門戟)이라는 것은 두 갈래로 갈라진 창(무기)을 말합니다. 즉, 11세기중반까지의 고려시대 무기류에는 '귀면'을 그려넣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쌍갈래 창의 실물을 볼 수 있으면 너무 좋겠습니다만 현재까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필자가 작년경 소개한 한 점의 현재는 사라진 고려시대 무기류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월부 (月斧, 도끼)입니다. 

이것이 예전에 소개한 경북 문경소재 봉암사에 1959년까지 현전하고 있었던 고려시대 도끼 (月斧)입니다. 소개당시 '뿔이 달린 고려시대 귀매류'로 알려드렸지요 (포스넘치는 고려도끼 (월부) 뿔도깨비상, 그리고 그 용도). 생김새는 전체에 고려시대의 도깨비나 괴수의 측면을 새겨 넣었는데, '뿔'이 선명하게 보이지요.
봉암사 전(傳) 고려 월부(月斧) - 1959년 행방불명 (날카로운 뿔이 보입니다)


문경 봉암사는 신라 말의 전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정진대사(靜眞大師)에 의해 고려 태조대에 (935년) 다시 중창됩니다. 따라서 10세기~13세기경 가장 사세가 웅장하던 사찰이지요 (임란때 전소). 그렇다면 이 월부는 10세기~13세기경의 것으로 대강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의 '고려시대 문극 (창류 무기)'에 귀면을 모두 새겨넣었던 1047년 (11세기중반)으로부터 그리 먼 물건이 아닙니다. 

1047년의 이 기록은 통일신라(668~935년)까지 활발하게 제작되던 '귀면와'의 얼굴이 말 그대로 '귀신'(도깨비)이지 '용'같은 것이 아닐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보충해주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그리고, '뿔 도깨비' 혹은 '뿔 귀신'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인식이 유래가 깊고 귀면와나 이런 무기류의 무서운 얼굴들이 용이나 소등이 아닌 '귀신의 얼굴'을 묘사한 것일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는 문헌기록으로 보입니다.
통일신라 귀면와 (8-9세기)



이 기홍- 영어이름을 쓰지 않는 이유

8년이 지나니 이런 훌륭한 인물도 슬슬 타나나는 듯. 

2010년에 쓴 블로그 거의 첫글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제대로 가고 있군요. 당시 국내신문기사에 이따위 기사가 뜨던 시기. 
"영어이름도 사주 따져요… 다니엘 굿!"
작명소 풍속도가 달라졌다
10명 중 한두 명은 "글로벌 시대에는 영어이름"


이기홍 화이팅!



이런 영상은 좀 많이 보시라는 의미에서 나눕니다.


손동현- 씨름도 역사전통마

한국적이라는 명제 중 틀이 먼저냐 내용이 먼저냐라는 주제를 따질 때 곰곰히 생각해볼 중요작가중 하나.


시티팝 추천 명곡 시리즈- Best 6 songs (7) 음악

벌써 7번째 시리즈글이네요.

다른 포스팅하기전에 스스로 들으면서 작업하기 위해 또 다른 시티팝 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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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시티팝중 가사에 2.4.6.가 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예 제목에 쓴 경우가 바로 지난 글에서 소개한 80년대초반의 AOR계열 중요뮤지션 켄고 쿠로즈미의 이 여름노래.

켄고 쿠로즈미- Rainy 2.4.6. (Again 앨범, 1982년)


두번째 곡은 필자가 꼽는 시티팝 전체의 최고명반 [First Light](1981)을 무려 데뷔앨범으로 선보인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인 마츠시타 마코토의 2집에 실린 수작, 모닝 블루입니다.

Blue가 형용사로 쓰일때는 '우울한'이란 뜻으로 쓰이지요. 이 곡을 들으면 비가 내려 선선한, 그러나 출근하기 싫은 회색빛 월요일이 떠오릅니다. 

마츠시타 마코토- Morning Blue (Pleasures and Pleasures 앨범, 1982년)


역시 빠지지 않는 대부 카토마츠의 80년대 한가운데의 신나는 곡, You're not my girl.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앨범인 1985년의 [No end summer]의 수록곡입니다. 베스트 10에 뽑힌 87년의 연주명반 [Sea is a lady]의 전조같은 걸작.

토시키 카도마츠- You're not my girl (No End Summer 앨범, 1985년)


1982년은 유독 좋은 시티팝 음반이 많이 발표된 해입니다. 
지난 글에서 소개한 훵크보컬리스트 마를린의 명곡으로, 그녀의 훵키한 매력이 풀풀 넘치는 곡으로 동명타이틀앨범인 이 작품은 세션도 거의 서구권 뮤지션들이 맡았습니다.

Marlene- Summer Nights (SUMMER NIGHTS 앨범, 1982년)


개인적으로 꼽는 히로시 사토의 2대걸작중 하나인 [awakening]의 수많은 수작중 하나. 피곤에 지친 저녁때 술한잔과 들으면 심신이 위로받는 느낌의 곡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4번째 82년작품.

히로시 사토- Blue and moody (awakening 앨범, 1982년)


이이지마 마리의 앨범들은 엄연히 따지자면 시티팝뮤지션으로 분류하기는 힘듭니다. 그 독특한 (스스로 만드는) 편곡과 보컬컬러때문에 아이돌로 분류하기도 힘들고, 자기영역을 확실히 만든 싱어송라이터정도로 분류하게 되지요. 그러난 예전에 소개한 Signal을 비롯 그녀의 몇몇 곡들은 충분히 밝은 시티팝에 들어갈 만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이 곡도 마찬가지. Coquettish Blue(1987년)에 실린 너무나 당시의 '이이지마스러운' 곡입니다.

이이지마 마리-  Baby, please me (Coquettish Blue 앨범, 1987년)



오늘 소개하는 곡들을 모두 맨위의 사진 (미호, 1988년)의 배경음악으로 써도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희안하게 요즘 사진과 대면 그다지 느낌이 안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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