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젯 스피너(Fidget Spinner)의 원조는 한국...

요즘 세계적으로 아이들에게 유행하고 있는 피젯 스피너 (Fidge Spinner).
피젯 큐브와 함께 피젯 토이라는 단어를 퍼뜨린 제품 중 하나인 피젯스피너.
이 대유행의 장난감이 2016년부터 서양에서 시작된걸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모르는 소리, 아닙니다. 





우리 선조들은 무려 '청동기'시대부터 이걸 돌리고 계셨다는...

국보 146-1호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傳 論山 靑銅鈴一括) 

안리 (杏里)- Remember summer days (MACROSS Bootleg) 음악

언제 출시된 것인지 알수 없는 안리의 (분명) 80년대 곡. 마크로스 부트렉이라는 이름으로 약간의 리믹스를 한 것 같은데, 시티팝적인 분위기와 이런 80년대식 애니배경에 어울리는 음악이다.  이웃인 BaronSamdi님 정보로 인해 알게된 2010년이후 장르로 이 역시 Vaporwave에 들어갈 듯.

안리의 어떤 정규앨범에도 실려있지 않은 곡인데, 곡분위기는 분명 80년대중반.

杏里- Remember summer days (??년)



23년간의 여정을 마치고 문을 닫는 [언니네 이발관] 마지막 앨범 출시. 음악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팀을 알게 된건 데뷔후 얼마후인 1998년부터 시작해서 어언 19년째이다. 

당시 한국의 음악씬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김건모등으로 대표되는 가요계의 풍성한 전성기의 밑바탕 아래 바야흐로 1997년초 H.O.T와 S.E.S.의 등장으로 바야흐로 K-Pop이라는 새로운 물결이 시작되려 하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언니네 이발관은 다시말해 그만큼 오래된 팀이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된 팀이 창작을 게을리 한것도 아닌데 고작 6개의 앨범을 낸 (그리고 하나하나 한국락의 명반인) 드문 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1998년말 12월경에 이들의 데뷔앨범인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만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뭔가 당시 드럭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홍대언더그라운드의 센 음악들과는 다른 감성적이면서도 영롱한 기타리프, 하지만 어딘가 어설픈 아마추어적 느낌이 들면서도 한국적인 그 느낌이 결코 싫지 않던 아주 매력적인 신생밴드라는 느낌이었다.

당시 홍대의 주류였던 많은 밴드의 흐름은 (이미 태평양건너에선 한물가고 있던) 그런지에 바탕을 두거나 펑크락, 혹은 브릿팝의 흉내를 내던 겉멋든 아류가 많았다. 이런 밴드들의 음악은 뭔가 그 당시의 공기를 담아내곤 있지만 확 잡아끄는 그들만의 매력이 없어서 아쉬웠다. 그런데 언니네는 바로 이 '그들만의 느낌'을 주던 정말 얼마안되는 대표적 언더밴드였다. 당시 또다른 매력적인 밴드는 같은 시기, 역시 명반이자 유일한 데뷔앨범인 [Drifting](1998)을 남기고 사라진 루시드 폴의 전신 [미선이 밴드]. 

그래서 개인적으로 언니네 이발관의 강렬했던 데뷔작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이 무렵 나온 미선이밴드의 데뷔앨범과 또 한장, 주류에서 뛰면서도 당시 가요계에선 상상도 못했던 강렬한 그로테스크함을 선보였던 패닉의 2집 [밑]이 묶여서 기억에 떠오른다.

[비둘기는 하늘의 쥐]와 [밑]을 당시 레코드점에서 1998년 같은 겨울날 구입, 이토록 발전하는 한국대중음악에 대해 뿌듯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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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언니네 이발관]이 이제 문을 닫는다... 

리더 이석원이 이미 8년전 5집때부터 공공연히 밝혀온 창작의 고통에서의 탈출을 공식화한 것이다. 공연은 계속하고 팀은 유지해도 신보는 내지 않는다. 오랜 팬으로 아쉽지만 이해도 간다 (하지만 언젠가 에너지가 차오르면 언제든 2집과 3집사이의 '멤버각자의 회사원생활'에서 다시 돌아왔듯 자신의 공언을 깨고 돌아와 주길...)

은퇴는 아니지만, 이번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출시를 계기로 1~5집까지의 곡들을 두 곡씩만 돌아본다 (고르기가 너무 어려웠다). 색감은 달라도 어느 곡이든 언니네 이발관 특유의 감성과 한국적이면서도 멜랑콜리한 기타코드가 살아 숨쉰다.

순서는 거꾸로 6, 5, 4, 3, 2, 1. 

아주 짧게 소개하자면 한국100대명반에 오른 (34, 68위, 2008년 선정)1-2집은 언더그라운드 특유의 풋풋함과 감수성이 돋보이고, 인디사상 초유의 판매고를 세운 3-4집은 세련미와 락적인 사운드의 폭발 (개인적으로는 가장 손이 자주 가던 시절), 그리고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한 5-6집은 완벽미를 추구한 성숙한 절정.

6집 [홀로 있는 사람들]- 애도 (2017년)


6집 [홀로 있는 사람들]-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 (2017년)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아름다운 것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수상)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의외의 사실 (2009년)


4집 [순간을 믿어요]- 깊은 한숨 (2004년)


4집 [순간을 믿어요]- 천국의 나날들 (2004년)


3집 [꿈의 팝송]- 울면서 달리기 (2003년)


3집 [꿈의 팝송]- 나를 잊었나요 (2003년)


2집 [후일담]- 실락원 (1999년)


2집 [후일담]- 어떤날 (1999년)


1집 [언니네 이발관]- 보여줄 순 없겠지 (1996년)


1집 [언니네 이발관]- 산책 끝 추격전 (1996년)


그동안 수고많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음악을 오랫동안 남겨줘서 고맙습니다. 
욕심이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오길.


* 1집의 가위를 든 소녀의 키치적인 커버는 90년대말 압구정동 카페로고로도 쓰였다.

*실은 며칠전 타계한 시애틀 4인방 중 하나 [사운드가든]의 리더 크리스코넬의 비극적 죽음에 관한 글을 쓰려했다가 언니네 소식을 듣고 이 글부터 쓴다. 그만큼 [언니네 이발관]은 청춘의 한 구석을 확실히 차지한 소중한 존재였나보다. 


Sonic R Original Soundtrack - You're My Number One (전용현 re-edit, 2017) 음악

작년부터 소개해온 '기린'외에 또 다른 형태의 레트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나타났다.

기린이 90년대중반의 듀스 즉, 뉴잭스윙의 뉴 기수라면 전용현이라는 이 사람은 (아마도) 80년대 신스팝을 기반으로 한 음악을 기저로 하는 듯. 그런데 뮤비가 하나같이 키치적이다. 

80년대말 코카콜라 CF를 차용한다든가, 아래 뮤비처럼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당시 영화를 가져다 쓴다든가 하는 식. 이 곡은 Sonic R이라고 되어 있어 아마도 닌텐도 게임인 [쏘닉]시리즈의 OST에 리믹스를 입힌 것 같다.

영화는 완전히 80년대처럼 보이지만 실은 96년작 [7악동]의 장면들이다.

아무튼 아이돌시대를 슬슬 넘기면서, 여려 형태의 시도들이 나오고 있어 반갑다. 맥을 같이해서 곧 그제 비극적으로 사망한 사운드가든의 보컬이자 리더 크리스 코넬과 관련한 글을 써야 할듯...

그나저나 이렇게 젊은 세대의 뮤지션들이 어떻게 태어나지도 않았던 80년대의 감각을 끌어낼수 있고, 그럴 생각을 하는지도 참 흥미롭기도.

쏘닉 R 사운드트랙- You're my number 1 (전용현, 2017년)



752년 신라 양탄자 수준과 기록들 (일본소재) 역사전통마

최근 두 개의 글에서 우리의 고대-중세의 조선후기의 미학관과는 사뭇 다른 화려미를 다룬 바 있습니다.

한가지가 2016년(작년)에 한국언론에서 크게 보도된 조선시대 양탄자인 '조선철'에 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가 이런 관점을 모아서 쓴 고작 40여년전부터야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고려불화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여러 문화재중 유독 관심을 끈 것이 '양탄자'였는데 이는 필자가 관심있는 한국 전통건축구조의 변천과 맞물려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모든 계층에 전면온돌이 발전한 17-8세기 이후, 그리고 성리학적 교리가 지배한 후기사회에는 이러한 침구형태의 아이템들은 소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필자의 여러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고려시대의 누각'이라든가, 조선전기까지 존재한 2층저택등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물건이 우리의 인식에서 사라졌다는 이야기였지요.

온돌의 발달과 카펫은 당연히 반비례합니다. 뜨끈뜨근 끓는 온돌방에 카펫을 깔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마루방위주의 조선전기까지의 또다른 형태의 한옥에서는 이러한 '깔개'가 어떤 형태로든 (귀족은 이런 고급품, 일반계층은 짚으로 만들거나)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쳐 소개하지 못한, 그리고 역시나 한국사회에 이제야 조금 알려지기 시작한 화려한 카페트가 더 있습니다. 이번에는 조선시대의 조선철시대보다도 훨씬 오래된 무려 '신라의 양탄자들'입니다. 고려불화보다도 더 후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1996년 연구를 시작으로 이제 고작 20년째입니다. 당연히 한국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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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창원의 신라 모전(毛氈)

지금부터 7년전 가을인 2009년 10월 23일, 일본 나라(奈良)현 나라국립박물관 신관에서 제61회 쇼소인(정창원, 正倉院) 특별전이 열렸습니다. 대불로 유명한 동대사 (도다이지)의 황실보물창고인 정창원에 소장된 보물중 일부를 골라 매년 가을의 20일동안만 전시하는 특별전이지요. 2009년에는 특히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즉위 20주년을 맞아 엄선된 대표유물 66점이 창고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중 1996년 재일역사학자인 이성시교수님의 연구로 신라의 것으로 밝혀진 모전(毛氈), 즉 양탄자가 나왔습니다. 다음의 사진입니다.
2009년 공개된 모전 (毛氈, 양탄자)

이 정창원의 모전은 (항상 일본의 주류학계가 의례 가정하듯) 원래 중국 서북부에서 만들어진 것이 신라를 경유해 일본에 전해졌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이를 동아시아 고대연구로 한국, 일본 양측에서 모두 유명한 재일학자인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가 1996년 "쇼소인 모전 중 2점에 제작 날짜와 장소, 만든 이의 관등이 적혀 있는 꼬리표가 신라의 이두로 적혀 있다"고 밝혀낸 바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 정창원에는 모전이 몇점이나 있을까요? 2점? 3점?

무려 45점이 있습니다. 그것도 거의 완벽한 보존상태로. 이중 단색의 모전인 색전(色氈)이 14점, 꽃무늬가 그려진 화전(花氈)이 31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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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모전들 

우선 알려진 모전들을 한번 볼까요. 위의 사진을 포함해서 7점의 사진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진골급 귀족들이 깔고 지냈다고 상상하면서 보면 더 흥미롭지요.
아래 4점은 한 논문에 소개된 것인데 이 중 왼쪽에서 첫번째 모전은 앞서 소개한 14점의 단색양탄자중 자색의 색전(色氈)입니다. 또 어떤 색양탄자들이 있었을지 무척 궁금해 집니다. 또한 세번째인 감지대화교화전은 엄청나게 정교한 것이 마치 페르시아 양탄자같지요.
그럼 이러한 양탄자가 신라산이란 것을 밝혀낸 경로를 조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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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서 경유된 사료

이 부분중 중간까지는 2009년 방영된 [역사스페셜]을 책으로 펴낸 1권에서 주로 참조합니다. 756년, 동대사를 창건했던 성무천황이 죽자 그의 부인은 천황이 쓰던 물건을 동대사 대불에 바쳤습니다. 그것이 황실의 보물창고, 정창원 (쇼쇼인)의 시작입니다.

2009년 역사스페셜 방영당시 궁내청 정창원 사무소 관리자인 기무라 노리미츠선생은 이렇게 답변하지요.

천황께서 이용하시던 물건이라는 것은 늘 주위에 두고 계셨던 물건이므로 우리들 평민들이 쓰던 물건들과는 아주 다른 훌륭한 물건들 뿐이었습니다. 그중에는 당나라에서 온것도 있고 신라에서 전해진 것도 아주 많습니다. 

꽤 유명한 동아시아 고대사 연구자로 [만들어진 고대], [일본의 고대사인식]등의 저장이기도 한 이성시교수는 1996년의 연구를 통해 이 양탄자들이 신라산임을 밝혀내는데, 결정적단서는 모전 모서리에 붙은 꼬리표들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마로 만든 천 조각에 적혀있는 글씨가 단서였는데,  정창원에는 꼬리표가 붙은 양탄자가 두 장 있었습니다. 이 꼬리표는 처음부터 붙어있었던 것으로 구입 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즉 요즘같으면 상표를 떼지 않은 상태). 
이 표들의 첫부분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여 있습니다.

行券韓舍價花氈一 
행권한사가화전일

紫草娘紫稱毛一 
자초랑댁자칭모일
두 표의 내용이 거의 유사해 두 장이 같은 용도로 사용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는데 첫 줄을 통해서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행권한사, 자초랑이 그 인물들입니다. 여기서 한사(韓舍)는 신라의 17관등 직급 중 12번째 관등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 모전은 한사의 관등에 있는 행권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만든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두번째표는 자초랑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만든 모전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럼 '한사(韓舍)'라는 관등이 중국측에도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삼국사기]에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新羅의 벼슬 칭호가 때에 따라 변천하였으므로 그 명칭이 같지 아니하여 중국과 동방의 것이 서로 섞였다. 그 중 侍中·郎中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중국 관명이어서 그 뜻을 상고할 수 있지만, 伊伐湌·伊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말로서 그 명명하게 된 뜻을 알 수 없다. 당초 시설할 때는 반드시 직책에 맡는 바가 있고, 관위에 정원이 있어 尊卑를 분별하고 인재의 大小를 택하게 하였을 것인데, 세월이 오래되고 기록이 결락되었으니 내용을 상고하여 상세히 알 수가 없다. (중략) 유리왕 9년에 17등을 설치하였으니, (중략) 12는 大舍[혹은 韓舍]라 하고, 13은 舍知[혹은 小舍]라 하고, 14는 吉士[혹은 稽知, 혹은 吉次]라 하고, 15는 大烏 [혹은 大烏知]라 하고, 16은 小烏[혹은 小烏知]라 하고, 17은 造位[혹은 先沮知]라 한다.

[삼국유사]는 고려대에 씌여진 저서라 해도, 706년 신라당대의 '금석문'에도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寺主沙門善倫 蘇判金順元金興宗 特奉敎旨 僧令携 僧
令太 韓奈麻阿摸 韓舍季歷 塔典 僧惠岸 僧心尙 勝元覺 僧玄
韓舍一仁 韓舍全極 舍知朝陽 舍知純節 匠季生 閼溫
(聖德王 5년, 706년)

즉, 한사는 신라의 당대 관직이 분명합니다. 또한 같은 정창원내에 신라산 '묵' (즉 붓글씨의 재료)도 소장되어 있는데 유사한 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新羅武家上墨 
신라무가상묵

新羅楊家上墨 
신라양가상묵

즉, 신라의 양씨 집안과 무씨 집안에서 만든 상등품 먹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양 꼬리표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염물득추오' 라는 말도 주목을 끄는데, 이 글귀들은 중국식 한문으로도 일본 고어로도 해석되지 않는 말로 이성시교수는 이를 신라식 이두 (염물- 가지고 싶은 물건)으로 추정했습니다.

첫 꼬리표의 경우 염물, 즉 원하는 물건은 실이나 면으로 해석됩니다. 즉, 일본에 가서 양탄자를 판 댓가로 실 또는 면을 받아오란 뜻이 되지요. 이같은 해석을 통해 우리는 이 꼬리표들이 어떤 용도로 쓰인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 즉 상품거래처에서 생산자가 포장한 짐에 이 물품이 얼마라고 쓰고 대가를 쓰는 형식입니다. 지금도 이런 표기를 하곤 하지요 (상품 라벨).

따라서 자초랑댁은 제조업자를 나타내는 것이고 자칭모는 오늘날의 브랜드와 대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전의 가치를 면 15근으로 나타냄으로써 제품의 가격을 표시하고 있으며, 마지막 줄은 길이 7척, 너비 3척, 4척이라는 뜻으로 제품의 치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이 제품들은 그저 친교의 목적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써 교역을 위한 일종의 수출품목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신라에서는 양을 키웠을까. 일본측 헤이안시기 사료인 [일본기략] (이 일본기략에는 우리쪽 기록에는 없는 신라구(신라해적)들의 침입기록도 있지요)에는 다음의 기록이 전합니다.

820년 5월
신라인 이장행등이 역력양 2, 백양 4, 산양 1를 보냈다
-일본기략 

뿐만 아니라 아주 비근한 시기 [삼국사기]에는 이런 구절이 전합니다.

신라 흥덕왕 9년조 (834년)
4두품이하는 구유, 탑등, 대당담 사용을 금한다
-삼국사기

이는 흥덕왕대의 복식과 관련된 규제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기록에는 모전, 탑등, 구유 등 여러가지 양털제품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당대 신라에서는 모전 외에도 여러 종류의 모직물이 사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4두품 이하의 관직은 모직물 사용이 금지되어 신분에 따라 차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이 흥덕왕대는 공교롭게도 이른바 통일신라의 최고 문화융성기로 바로 전설적 대저택 '금입택'이 35채 세워지던 바로 그 시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여러 종류의 공방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놋그릇을 만드는 철유전, 칠기 제품을 생산하는 칠전, 마구를 제작하는 추전, 가죽을 다루는 피전 등 총 29개의 공방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공방들 가운데 모전이란 이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박남수 편사연구사의 2009년 인터뷰를 보면 "통일신라시대에는 국왕직속관부로서 내성이라는 관부가 있었는데 산하에 29개 수공업 생산관사가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모전이란 관사가 있는데 후대에 취취방(聚毳房), 양털을 모아 제조하는 공방이 있었습니다. 이 관부에서는 국왕이나 진골귀족들에게 필요한 모직물을 만들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그 당시 신라의 모직제품수준을 알 수 있는 교차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당나라의 사료인 [두양잡편]의 기록입니다.

때때로 신라에서 모직물을 바쳤다.
교묘하고 아름답기가 일세의 최고였다. 
벌, 나비가 춤추는 모습은 마치 실제와 같다.
-두양잡편

필자는 이 구절을 보고 위에 소개한 7점의 모전중 [초화조문화전]을 연상했습니다.
신라추정 양탄자 [초화조문화전]

이 기록이 실린 [두양잡편]은 당나라때 소악(蘇鶚)이라는 사람이 집필한 잡저류의 책인데 이 저서에 실린 '장유칙'이라는 당나라 사신의 신라방문기록으로 당대신라의 '화려함'을 한번 간접적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즉, 장유칙은 [두양잡조]기록에 따르면 위의 모전기록과 같은 당대인 810년 신라에 사신으로 갑니다.

○ 5년(810)에 내급사(內給事) 장유칙(張惟則)을 신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두양잡조

그런데 당대 지괴류서적인 [태평광기]에 이런 흥미로운 구절이 나오지요 (원래 포스팅 링크).

태평광기 권 47, 1편 
당헌종황제

당나라 헌종은 신선불사의 도술을 좋아했다. 원화 5년 (810년)에 내급사 장유칙이 신라국에서 돌아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다에서 산으로 된 섬 사이에 정박했는데, 문득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서 연기와 불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달빛을 받으며 한가로이 걸어서 약 1~2리쯤 갔더니, 꽃과 나무 사이로 누대와 전각의 황금창과 은 대문이 보였다. 그 안에 공자 몇 명이 있었는데, 장보관(章甫冠)을 쓰고 자하의(紫霞衣)를 입고서 느긋하게 시를 읊조리고 있었다. 장유칙은 그들이 이인임을 알아보고 마침내 뵙기를 청했다. 공자가 말했다. 

"그대는 어디서 왔소?"
장유칙이 당나라에서 온 연유를 자세히 말했더니, 공자가 말했다. "당 황제(헌종)는 내 친구요. 그대는 나중에 돌아가거든 대신 말을 전해 주었으면 하오." 이윽고 한 시동에게 황금 거북 인장을 꺼내 오라고 명하여 장유칙에게 주면서 보물상자에 넣어두게 하고는, 다시 장유칙에게 말했다. "황제에게 안부전해 주시오."

장유칙은 마침내 그것을 가지고 배로 돌아왔는데, 왔던 길을 돌아보았더니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황금 거북 인장은 길이가 5촌이고 위에 황금 옥인을 지고 있는데, 도장 면의 넓이는 1촌 8푼이고 그 전문은 "봉지용목, 수명무강"이라 씌어 있었다.

장유칙은 도성(장안)에 도착하자 즉시 그 일을 갖추어 아뢰었더니, 헌종이 말했다. "전생에 짐이 선인이었단 말인가?" 그리고는 황금 거북 인장을 보며 한참 동안 기이함에 찬탄했지만 그 글씨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자줏빛 진흙으로 봉인하고 옥 자물쇠를 채워 휘장안에 놓아두었다. 그 후에 종종 오색빛이 보였는데 길이가 1장 남짓 되었다. 그 달에 침전앞 연리수 (두 나뭇가지가 하나로 된 나무)위에서 영지 두 그루가 자라났는데, 그 모양이 봉황과 흡사했다. 그래서 헌종이 찬탄하며 말했다.

"'봉지용목'이란 말이 어찌 이 징조가 아니겠는가!"

[태평광기]라는 지괴류사전에 실릴 만큼 이는 환타지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잡저류의 이야기 역시 '간접적'으로 취할 부분이 있지요. 즉, 분명 8~9세기의 신라는 당시 화려하고 융성한 시기였음이 여러 교차기록을 통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대 기록중에는 역시 같은 [두양잡편]에서 우리의 [삼국유사]와 교차기록으로 증명되고 있는 신라의 기계장치산 [만불산]기록도 나옵니다. 이 역시 766~779년대의 일로 비슷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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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년 신라왕자 김태렴기록

이렇듯 이 양탄자가 만들어졌던 8세기의 신라는 화려한 문화적 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이 양탄자들은 단순히 일본천황에게 보내는 선물품목이 아닌 엄연한 교역품에 가깝다고 했지요. 그럼 언제 전해진 것일까요?

이 과정을 풀어줄 단서가 역시 같은 정창원에 있는 병풍 속에서 90년대말 등장했습니다.새 조자에 털 모를 붙여 조모입녀도(조모입녀병풍, 鳥毛立女屛風)라고 불리는 것인데 그림속 6명의 여인이 입은 옷에 새의 깃털이 달려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병풍은 그런데 90년대말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손상된 이 작품을 손질하기 위해 병풍을 떼어내자 병풍의 뒷면에서 뜻밖의 기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조모입녀병풍(鳥毛立女屛風)

즉, 당시 일본 귀족들이 자신이 사고싶은 신라의 물건들의 종류와 수량을 적어놓은 일종의 구입신청서가 나온 것입니다.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라고 이름붙여진 그 문서입니다. 
매신라물해, 역시 2009년 당시 66회 정창원 특별전에 공개된 모습

그런데 바로 이 문서 속에서 모전, 즉 양탄자가 적혀있습니다. 매신라물해는 추후 30여 장이 더 발견됐는데 여기에 기록된 물건들은 모전 뿐만이 아니고 인삼, 향료, 유기 등 300여 점이 넘습니다. 이 기록을 통해서 볼때 당시 일본 사람들은 많은 양의 물건을 신라를 통해 사들였다는걸 알 수 있게 되었지요.

흥미롭게도 이 문서가 작성된 시기는 천평승보 4년 6월 23일즉, 752년으로 명확하게 밝혀졌습니다. 또한 추후 발견된 30여 장도 같은 해인 752년 6월 15일부터 7월 8일까지 작성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럼 752년 일본에 다녀간 신라의 사신단이나 무역단이 있었을까요? 있습니다.

752년 윤 3월 22일
다자이후에서 신라왕자 김태렴 일행이 왔음을 보고했다
-속일본기 

즉, 윤 3월 신라왕자 김태렴이 이끄는 사절단이 현지 후쿠오카인 하카다항에 입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7척의 배를 타고 온 사절단의 숫자는 700명으로 대규모 사신단이었습니다. 윤 3월, 즉 서기로는 6월의 일입니다. 따라서, 정확히 [매신라물해]가 작성된 752년 6월~7월과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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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약 8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일본소재의 신라 양탄자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즉, 신라 귀족층의 당시 화려한 생활습속과 건축구조에 대한 실마리, 그리고 이 당시 당나라의 문헌등에서 발견되는 Surreal한 수준의 신라문물에 관한 잡저식 정보와의 연관성, 또한 본문에서는 쓰지 않았지만 당시 기록에 등장하는 신라의 귀족저택들인 금입택이 보유했던 '공방의 기술수준'등, 문헌기록에서만 확인되는 당대의 문화수준의 실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실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보물들입니다 (이는 약탈품이 아닌 교역품이므로 이토록 완벽하게 보관해온 일본측에게 사실 이부분은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 양탄자들에 대한 관심은 이렇게 말하기는 그렇지만 한국사회에서 김홍도, 신윤복의 풍속도에 대한 관심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아니 비교되지 않을 만큼) 떨어집니다. 아는 사람도 극히 일부일 것입니다.

이는 '한국문화의 통시적 시각'을 저해하는 심각한 우라 필자는 생각합니다. 앞서 소개한 고려불화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비단 건축, 의복을 포함한 이런 유형문화재뿐아니라 설화, 지괴류이야기등 무형문화재영역을 포함) 21세기의 한국학의 목표중 하나는 '통시적 한국미학의 재정립'이 되어야 한다고 감히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단서중 하나는 바로 국내에서는 모두 사라진 일본을 포함한 해외에 흩어져 전하는 여러 고대-중세 문화재에 대한 대대적인 관심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적 서포트를 근간으로 하는 연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택(南宅)
북택(北宅)
우비소택(亏比所宅)
본피택(本披宅)
양택(梁宅)
지상택(池上宅)...

35채 (혹은 39채)의 880년 신라 경주 금입택중 일부입니다. 이 저택들중 진골귀족이 소유했던 저택의 마루에는 위에 소개된 저런 종류의 양탄자들이 깔려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상상만으로 흥미로운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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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25/2009102500693.html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samkukjijojo&artseqno=7576191
http://bit.ly/2rFOb54
http://m.blog.daum.net/kinhj4801/15959338?categoryId=4297
http://bit.ly/2rqZG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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