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라진 대사찰 (3)- 1000칸의 대찰, 고려 광통 보제사 普濟寺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이번 포스팅과 다음 시리즈는 기록과 터로 전하는 고려시대의 거대사찰들을 소개합니다.
모두 개성등 북한에 있는지라, 황룡사-미륵사등에 비해 우리에게 알려지 있지 않을 뿐 훗날 많은 연구와 명성을 떨칠 우리의 문화유산들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고려 대사찰들에 대해 무관심한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이 보제사를 비롯 최대사찰인 흥왕사터등에 대한 사진을 인터넷, DB등 어디서도 볼수 없더군요).

고려 시대의 불교 융성은 민간 신앙 요소와 통합되어 종래의 가람 양식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금당이 한국특유의 대웅전, 능인보전, 나한보전으로 이름이 바뀌고, 칠성각, 응진전, 영산전, 산신각등의 건물이 새로이 생겨 납니다. 그리하여 후기의 건축은 평지에 자유로이 배치를 가진 특이한 사찰이 많았습니다. 어두운 공간에서 밝은 공간을 만날때 느끼는 극적 효과를 노려 중문을 누형식으로 만들고 누 아래에 있는 계단을 통하도록 하였습니다 (고려는 궁궐도 계단을 이용하는 공법이 많았는데 사찰도 같은 구조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출처:http://www.lingualreport.com/1206082)


광통 보제사(廣通 普濟寺, 조선시대에는 연복사)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037년(정종 3)에 정종이 이 절에 거둥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절이 창건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경성이었던 개경의 한복판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찰이 바로 광통보제사입니다. 이 사원은 얼마나 거대했는지 당사唐寺 혹은 대사大寺 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아는 사람은 많이들 아는 유명한 사찰이라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보제사에는 건물이 1천여채나 되었으며 절 안에는 세개의 연못과 아홉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1천채는 말이 안되고 혹 1천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유명했던 것은 5층 목탑으로서는 세계적으로 몇 손가락안에 들어갈법한 규모라는 연복사 5층 목탑이 있었는데, 높이가 무려 60미터에 이르렀습니다 (포스팅참조- 미륵사 9층목탑과 같은 수준입니다). 이 탑은 200척으로 당시 개성의 모든 사람이 이 탑을 어디서나 보았다고 합니다 (경주와 황룡사탑, 익산의 미륵사 목탑과 같은 느낌이었겠죠- 황룡사포스팅참조 (중간사진참조)). 특이한건 9층목탑이 아닌, 5층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재현단지에 복원된 능림사지 5층목탑 (37미터)보다 2배가 조금 안되게 높은 탑인데 한층의 규모가 어마했을 겁니다- 간접추정으로 한층 한층 공간이 있었으리라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상상만 해도 대단한 탑입니다). 이 추정은 비단 제 직감뿐 아니라 아래의 싯구로도 알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들밑에 쓰죠-<명산답사기>).


아래가 7세기에 중건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탑인 호류지의 5층목탑입니다 (백제장인들이 만들었다는 설이 있죠). 황룡사 9층목탑을 재건할때 참조로 쓰일 탑중 하나인데, 이 목탑역시 5층이며 사람이 올라가는 구조로 되어있는 듯합니다만, 31.5미터입니다. 이걸 보면 그 두배 높이였던 연복사 5층목탑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그리고 층간이 넓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백제와 같이 하앙식구조로 건설된 호류지 목탑- 재현된 능사 5층목탑과 같습니다)


따라서, 간접적으로 연복사 5층목탑의 모양과 규모를 추정해 볼수 있는 탑은 오히려 최근 (1996) 제작된 보탑사 3층목탑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목탑은 현재 남한에 있는 최대규모의 목탑으로, 전혀 쇠를 쓰지 않고 나무못의 전통방식으로 지었졌습니다. 3층이지만 큰 층간규모로 해서 재현단지의 능사 5층목탑보다도 더 높습니다. 높이가 42.7 미터. 물론 층간에 암층이 두개있어 실질적으로는 5층과 같은 내부구조라는 한계와, 삼국양식 (황룡사9층목탑을 목표로) 을 최대한 따랐다고는 하나 사찰자체가 최근에 지어진 곳이라 실증적인 면으로는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연복사 5층목탑의 대강의 규모와 모습을 비교하는데 현재 남한의 목탑중 가장 근접한 모습은 이 탑이라 생각합니다- 즉, 저 위에 2층높이가 더 있었다고 보면 되겠지요.


진천 보탑사 3층목탑

김영택 화백의 보탑사 3층목탑 펜화


보제사 (연복사) 5층목탑을 묘사한 시입니다.

"십천교를 지나 곧바로 가서 연복사에 이르렀다.
한 중앙에 우뚝 선 5층 누각이 온 성중을 압도하고 있는데
창문과 기왓장에 저녁놀이 비친다.
참으로 웅장한 건물이다.
"

-유호인의 <명산답사기> 중-

(5층탑이 아닌 '누각'으로 표현하고, 창문이란 표현이 보입니다. 한층 한층 공간이 컸다는 의미로 저 '탑'이 60미터라는 것이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학계의 연구로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 건축물은 한국의 어떤 건축물보다도 특이한 고대건축이 될수 있을것입니다. 탑이라기 보다는 5층짜리 금당에 가까울 듯합니다) (유호인은 1445년 ∼ 1494년의 사람이니 적어도 15세기, 혹은 16세기까지는 이 탑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송나라의 문신이었던 서긍은 이 보제사의 정전인 '나한보전'을 보고 왕실의 건물을 능가하는 웅장함이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승당과 법당은 100명의 인원을 수용할만하다고 했으니 이 광통보제사가 얼마나 거대한 사찰이었는지를 손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려대 궁궐의 규모에 대해서는 3층 건물을 짓기 위해서대들보를 올리던 인부들이 대들보에 깔려 죽었다는 고려사절요의 기록이 있습니다.)


보제사가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보물은 거대건물도 거대탑도 아닌, 2층 각루건물인 장경전이었습니다. 이 건물에는 당대 1만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당대 지식인들이 '고금총지 집거보제' (지금까지의 모든 지혜가 보제사에 모여있다)라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개성시민들을 위한 뛰어난 의료기관자비전에는 사시사철 병자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제사는 태조 10사찰 중 하나였고,승과가 열리기도 했었던 사찰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모습 그대로 현존하고 있는 한국의 5대 명종중 하나인, 보제사 대종 (연복사 대종)에 대한 소개입니다.

보제사의 종에 그려져있는 삼존

선화봉사고려도경 제17권 (송나라 서긍의 고려도경) 사우(祠宇) -광통보제사(廣通普濟寺) 편에 소개된 정보입니다:
"광통보제사는 왕부의 남쪽 태안문(泰安門) 안에서 곧장 북쪽으로 백여 보의 지점에 있다. 절의 액자는 ‘관도(官道)’에 남향으로 걸려 있고, 중문의 방은 ‘신통지문(神通之門)’이다. 정전(正殿)은 극히 웅장하여 왕의 거처를 능가하는데 그 방(榜)은 ‘나한보전(羅漢寶殿)’이다. 가운데에는 금선(金仙)ㆍ문수(文殊)ㆍ보현(普賢) 세 상이 놓여 있고,곁에는 나한 5백 구를 늘어놓았는데 그 의상(儀相)이 고고(古高)하다. 양쪽 월랑에도 그 상이 그려져 있다. 정전 서쪽에는 5층 탑이 있는데 높이가 2백 척이 넘는다. 뒤는 법당이고 곁은 승방인데 1백 명을 수용할 만하다. 맞은편에 거대한 종이 있는데 소리는 가라앉아 시원하지 못하다. 전례에 따라 예물의 나머지 말과 고려에서 정사와 부사에게 준 것 도합 2필에 백금 2근을 더해 향화(香花)와 과속(果? 과일과 채소)의 비용으로 주고, 불사(佛事)를 하고 불승을 공양하였다. 정사와 부사는 몸소 가지 않고 다만 도할관(都轄官)과 제할관(提轄官) 이하 삼절을 보내어 의식을 거행하게 하였다."


보제사(연복사)는 14세기까지 현존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소실됩니다.

연복사종(演福寺鐘)은 남아있습니다- 1346년(충목왕 2년) 원나라 사람이 만들어서 연복사에 걸었던 범으로. 1563년 (명종 18년) 연복사가 불타버리자 개성남대문 누각에 옮겨 달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걸려있죠). 높이 324cm, 무게 약 14t이 되는 거종입니다. 한가지 의문이 드는 점은 '원나라'사람이 만들었다는 저 기록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대종은 고려후기에 다시 만들어진 대종이겠지요. 그 전대인 송나라 사신이 와서 보고 간 기록과는 다른 종일테니까요 (혹은 이 기록이 틀렸거나, 다시 만들었어도 원래의 종모양 그대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서긍이 묘사한 자세한 대종의 모습입니다:

큰 종은 보제사(普濟寺)에 있는데, 형체는 크나 소리는 시원하지 않다. 위에는 이뉴( 紐 이무기 꽃을 한 종을 매다는 부분)가 있고, 중간에는 한쌍의 비선(飛仙)이 있다. 각명(刻銘)은, ‘갑술년주 용백동 1만 5천 근’(甲戌年鑄用白銅一萬五千斤)이라고 되어있다. 고려인이 말하기를, ‘전에는 중루(重樓 이중의 높은 전각)에 설치했었는데, 소리가 글안(契 )에까지 들리므로 선우( 于 본래는 흉노(匈奴)의 군장, 여기서는 물론 요(遼)의 군주를 말하는 것이다)가 싫어하여 지금은 이곳에 옮긴 것’이라고 한다. 틀림없이 과장한 말로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진은 연복사 대종 (보제사 대종).


연복사종은 1940년초 보신각종 처럼 제야의 종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신문사진은 잘못된 정보로 경주 봉덕사종)

연복사대종은 지금도 개성 남대문의 종루에 걸려있습니다 (남대문의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지죠)

(기본출처 http://levi.tistory.com/233 -정보가첨)


한국의 사라진 궁궐 (1)- 고려 만월대

한국의 사라진 대사찰 (1)- 신라 황룡사(와 신라삼보)

한국의 사라진 대사찰 (2)- 백제 미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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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1/03/24 14:16 #

    포스팅을 올리고 느끼는 점은 임진왜란만 안겪었어도, 참 많은 문화재가 살아남았겠구나..하는 점입니다. 특히 목재로 지어진 건축물들의 경우. 물론 한국전쟁도 있었지만, 문화재에 일부러 불을 질러서 태워버린 만행은 임진왜란에 비해선 별로 없지요.
  • 부산촌놈 2011/03/26 20:34 #

    승과가 열렸던 사찰이라...

    대단하군요.

    근데 보탑사의 목탑 형태로 봤을 때는 형태미가 다른 목탑들보다는 덜한 것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1/03/27 04:38 #

    부산촌놈님> 그렇죠 ^^ 보탑사 목탑형태는 96년에 현재의 최고장인들이 만든것이라, 고려시대 형태라고는 할수 없겠지만, 국내의 고대-중세건물중 층간크기가 넓다는 (누각형태) 점에서 참 특이한 구조물이라 생각합니다.
  • 부산촌놈 2011/03/27 21:45 #

    그나저나 개성 나성은 잘만 연구하면 통일 후에 좋은 관광 명소로 거듭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 역사관심 2011/03/28 00:20 #

    나성에 대해서도 언제 한번 알아볼 생각입니다. 다시 알려주셔서 의지가 생기네요 ^^
  • 이 감 2012/05/05 04:52 # 삭제

    지금 남아있는 연복사 종은 고려도경의 종과는 다른 종일 것입니다. 양식 역시 중국식으로 고려양식이 아닙니다. 따라서 고려도경에 묘사된 종이 고려종이라면 지금의 연복사 종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겠지요. 종의 명문에 충목왕 때 왕실의 주문으로 만들었다고 써 있으므로 조성연대는 확실하고요.

    요새 남원에서는 남원읍성의 북벽과 만복사지에 대한 추가발굴과 연구에 들어간다고 하니 남한에 있는 대표적인 고려시대 평지사찰인 만복사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만복사의 목탑도 5층탑이었지요.
  • 역사관심 2012/05/05 05:48 #

    역시 그랬군요. 정확히 언제 현존하는 연복사종이 만들어진 건지 알고 싶군요.

    만복사...꼭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 이 감 2012/05/05 14:25 # 삭제

    본문에 쓰신대로 1346년 충목왕과 덕령공주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종입니다. 원나라 사람들이 금강산에 들어와 원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종을 만들 때 고려 왕실에서도 요청을 해서 만든 것이라고 하지요.
  • 역사관심 2012/05/29 13:09 #

    그렇군요. 오래된 포스팅이라 써놓고도 잊어버렸었습니다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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