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체성- 탁석산 (2000, 책세상문고) 독서


본인이 한국의 객관적인 (아니 객관적이지 못한) 위상을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체험한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답답증을 처음으로 글로 나름 정리할수 있게 해줬던 책이다. 당시에는 2권인 [한국의 주체성]에 더 관심이 갔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책세상 문고의 제 1권이었던 이 책 [한국의 정체성]을 다시 집어들어보니, 최근 몇년 관심있던 주제인 우리문화의 정체성 (한국이란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많은 질문거리와 나름의 정의를 제시해준 저서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현시점에서 깨끗한 해답은 주지 못하지만 (당연하다) '정리'를 해주게 한다는 점에서 최근 일각에선 책장수로 변심했다는 오명을 쓰고 있는 탁선생님의 초기작인 이 저서는 우리에게 앞으로도 (이 거시적인 주제가 나름 정리된 후에도) 큰 역할을 해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만약 다른 일부관련 저서들처럼 '어설프게 한국문화와 철학을 '정의''내리려 했다면 본저서는 그다지 역작으로 남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주제를 그 후 더 파고 들지 않은 탁석산씨의 행보가 아쉽다.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거나 생각할 부분들을 갈무리 해보았다.

1장 서문
외래어 간판으로 뒤덮인 종로 2가 거리를 걷다가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우리의 전통이 나타난다. 전통을 파는 가게들은 도심의 한복판에 외로운 섬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것도 아주 좁은 면적만을 차지하고서. 왜 우리는 생활 전반에서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우리의 전통을 만날 수 없을까? 인사동 골목에서 전통적인 것이 고립되어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전통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잘못되었기 때문인가? 새로운 것과 전통적인 것이 만나고 충돌하는 곳에는 언제나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정체성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나는 이 장에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전에 정체성이란 문제 자체가 무엇인지를 말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한국적인 것'이란 문제는 정체성의 한 예에 속하기 때문이다. (주: 본인의 고민도 이웃국가들에 비해 빈약한 바로 이러한 서울의 모습에 그리고 우리나라사람들의 생활문화에 대해 답답하다는 개인적 시각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외국의 한국에 대한 시각으로 고스란히 옮겨진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세계의 한국에 대한 문화적/역사적 이미지일 것이다).


22쪽
만득이가 아프리카의 한 소국을 방문한다고 가정하자. 만득이는 자랑스러운 대한의 남아로서 세계 최강국인 조국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한 소국에 도착하고 보니 공항의 건물이 모두 한옥 양식이다. 만득이는 약간 의아스럽다. 이 나라는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민족이라는데 왜 자신들의 고유한 건축 양식을 완전히 포기했을까? 그는 의구심을 가진채 호텔로 가기 위해서 택시를 탄다. 택시기사는 한국어를 구사하려 애쓴다. 만득이는 한편으로는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이므로 기사가 한국어를 하려고 애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사가 한국어를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에 다시금 의구심이 생긴다. 여기는 기사의 나라가 아닌가?

기사는 어색함을 덜기 위해 라디오를 켠다. 라디오에서는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가 신나게 흘러나온다. 기사는 한국어로 설운도가 이 나라에서는 최고의 인기가수라고 말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직전에는 이 나라를 방문하여 유력한 후보를 만나기까지 했다고 한다. 만득이는 눈길을 차창 밖으로 돌린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있다. 디자인도 한국의 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또한 거리 곳곳에는 한정식이란 간판을 단 고급 식당이 눈에 띈다. 만득이는 여기가 과연 아프리카의 전통국가인가 하고 의아해한다.

택시가 모퉁이를 돌자,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들은 '한국놈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휩쓸 태세이다. 그들은 주체적 국가와 주권사수를 맹렬히 외친다. 하지만 그들 역시 대부분 한복을 입고 있다. 택시 기사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막걸리와 한국산 소주를 가장 좋아하며, 한국 가수인 조용필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또한 한국사람이라면 단지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나라에서 취직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만득이가 보기에 이 나라는 의식주 모두가 거의 한국화되었고, 음악, 미술, 영화등도 예외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만득이는 과연 이 나라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의심을 갖는다.(주: 조금 오버한 부분도 분명 있지만 국수주의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 전반적인 오래된 문화전통국가로써의 국가철학부재의 모습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30쪽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자신을 각각 중국인, 일본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외양, 행동, 사고방식 등에서 별다른 차별을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 있다. 이 경우 한 사람은 중국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일본인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어떻게 각각 중국인, 일본인의 정체성을 확보하는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만득이처럼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해도, 그것을 한국인이 되는 필요충분조건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국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까? 혹자는 한국적인 특질에 의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답은 매우 형식적이다. 왜냐하면 그럼 한국적인 특질이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고, 그 답으로는 한국을 다른 나라와 구별해주는 그 무엇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순환논리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 순환을 멈추게 하려면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맹이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이 알맹이가 존재하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그럼 개인과 집단의 유추를 이용하기 위해 편의상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살펴보자.... 중략... 결국 전혀 진척이 없는 셈이다. 이런 곤경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체성의 문제가 형이상학적 난제이기 때문이다.
........
우리가 겪고 있는 정체성 확립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의 문제이다. 그런데 그 동안 우리는 이 점을 간과한 채 한국의 정체성 문제를 논해온 것이 사실이다. 정체성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문제로 여긴 나머지 정체성이란 용어를 언급하면서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정체성의 위기'라는 말은 일상어가 되었으며 '국적 없는' 이란 표현도 흔히 들을 수 있다. 영화 <서편제>를 볼 때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를 두고 한국적인 미와 정서를 논하지는 않는다. 이는 정체성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두 영화 모두 한국인이 만든,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한국의 이야기이다. 국악이나 조선시대의 풍물 (주: 삼국-고려때까지 가면 또 한국적이란 타이틀이 없어지곤 한다) 혹은 6.25동란을 소재로 하면 무조건 '한국적'이란 수식어를 붙이면서, 왜 현대의 문제나 정서를 담은 우리 영화에는 그런 수식어가 붙지 않는가? 우리의 정체성 논의가 언제나 빈 껍데기로 남아 있는 이유중 하나는 그것이 극히 난이도 높은 형이상학의 문제라는 점을 도외시 했기 때문이다 (주: 쉽게 말하자면, 한국적이란 것에 대한 전반적인 깊은 연구나 시도없이 되는대로 관성적으로 붙여온 타이틀이란 것, 동의한다). 정체성이란 것이 상당히 난해한 문제임을 안다면, 그렇게 쉽게 한국적인 것을 논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 역시 동감. 그렇기 때문에 체계적인 그리고 거시적 미시적 연구가 동시에 필요한 어려운 주제이다)

37쪽 (이하 부분은 바로 윗글에서 제시한 '형이상학'적인 한국적인 것에 대한 설명부분이다).
그러나 한국이란 집단의 정체성을 논할 때는 한국과 관련된 여러 분야에서의 공통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는 문학, 건축, 음악, 미술, 의상, 영화, 서예 등 여러 분야가 있다. 이들 각각은 개별자가 아니라 범주이다. 따라서 범주 간의 공통 속성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건축과 한국 음악은 표현양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기법이나 정신 혹은 작품의 정서나 분위기 측면에서 공통 속성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아직 그 공통속성이 무엇인지는 모를지라도 (주: 그렇다, 우린 우리것이 뭔지 명확히 모른다. 근대화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고 그 결과물을 현대한국의 각계에서 '알게 모르게' 보고 있는 것) 공통 속성의 존재가능성을 용인할 수는 있다.

41쪽.
분명 한국의 정체성 탐구는 한 집단에 관한 논의이다. 하지만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의 조급증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한국인의 가족 집단주의의 유래는 무엇인가, 한국인의 권위주의의 실상과 폐해는 무엇인가 등의 문제는 이 책의 관심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개개의 특성들은 한국의 정체성 탐구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급하고 가족 집단주의가 팽배하며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또다른 국가나 집단이 존재할 수도 있으므로, 이런 특성만으로는 한국을 다른 국가나 집단과 구별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조급성이나 집단주의는 우연적 속성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한국인의 성향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일시적 혹은 우연적 속성을 한국의 정체성 판단 기준으로 삼기는 곤란할 것이다. 실제로 한국인의 성향은 근대화 전에는 자연귀의적이었지만 현재의 한국인이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략.

이 책의 관심사는 어떤 특성이 한국이란 집단과 다른 집단을 구별시켜주며, 그 특성이 정말로 한국의 정체성을 확보해 주는가를 탐구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나는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구별했다. 하지만 양자의 구별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양자의 관계 해명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한국인과 한국적인 것을 두부 자르듯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득이가 한국인이라면, 한국적인 것을 갖고 있으리라고 추론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다시 말해서, 한국적인 것이 만득이에게 스며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 한국인이 한 명도 살고 있지 않다면, 즉 땅만 있고 거주자와 어떠한 시설물도 없을 경우에 한국적인 것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또 땅과 건축물, 각종 시설, 문화공간 등이 남아 있을 경우, 즉 지금의 상황에서 사람만 제외하고모든 것이 남아 있는 경우는 어떠한가? 나는 후자의 경우 여전히 한국적인 것이 남아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즉 한국인도 없고 그들이 만든 그 어떠한 것도 남아 있지 않다면 한국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주: 필자가 주장하는 한국의 역사적 랜드마크 건축물의 복원중요성도 이 연장선상에 속한다.관련포스팅: 일반인의 관점에서 본 문화재복원 문제. 다시 말하지만 '집은 우리가 만들지만 그 집은 우리를 만든다'). 다시 말해서, 한국인은 한국적인 것을 만드는 주체이지만 무엇인가 만들어진 후라면 주체인 한국인이 없어도 한국적인 것은 존속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잉카 문명의 흔적에서, 잉카인이 사라진 후에도 잉카 문명의 특성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한국의 정체성 탐구는 한국인에 대한 탐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주: 한국인에 대한 탐구 ⊂ 한국의 정체성탐구가 아닐런지...).

45쪽.
둘째, 한국과 관련된 각 분야에 공통 속성이 있는가를 검토하여,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방법이 있다. 즉 한국적인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떤 것인가를 논의해보는 것이다 (주: 일본의 19세기 국학연구가 이러한 작업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집단의 정체성 탐구는 각 분야의 공통 속성을 추출하여 형상화함으로써 가능하다. 중략. 한국 건축에 한국적인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한국 음악에도 한국적인 것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각 분야에서 한국적인 것을 일차적으로 발견하고 이것들을 바탕으로 공통되는 특성을 찾을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한국적인 것이 될것이다. 이런 작업은 작업의 성격상 추상화 작업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 결과는 생각보다 빈약할 수도 있다 (주: 좋은 지적이다. 현재 몇몇 한국문화에 대한 책들의 한계가 바로 이러한 점과 닿아있다. 물론 '추상화'적인 작업은 거시적연구에서 피할수 없는 현지원과 연구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아래 단락의 '주'에서 말하겠지만, 귀납적인 방법론도 그러한 추상화가 힘을 가지는 즉 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론이 될수 있을것 같다). 중략.
한국인이 하는 모든 음악을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수없이 많은 다양한 형식과 장르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어떤 공통 속성이 곧 한국적인 것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또한 어떤 것을 한국적이라고 부르는 가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 해도 과연 공통 속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중략.

음악이 아닌 미술은 어떠한가? 중략. 한국인의 정서나 혼, 독특한 화풍등이 그 후보가 될 것이다. 중략. 그런데 미술에는 회화뿐 아니라 조각이나 서예도 있다. 외연을 확장할 수록 공통 속성은 더욱더 추상적으로 되어간다. 그리고 추상적일수록 내용은 점점 빈곤해지기 마련이다. 미술 분야에서 요행히 공통 속성을 찾았다고 하자. 그럼 음악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만약 두 분야에서 공통속성을 찾을 수 있다면, 그 공통 속성은 더욱더 추상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영화, 건축, 의상, 스포츠 등으로 영역을 확대한다면, 알맹이 있는 충실한 답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
주: 공감한다. 이렇게 연역법적인 접근보다는 정체성의 문제는 어느나라, 어느 문명권할것 없이 귀납법이 옳은 추론 방식일 것이다. 즉, 개별자의 특징적인 속성 하나하나가 (서로 같거나 다르거나 상관없다) 모두 총합적으로 그 나라의 특징을 규정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연구해나가는 것이 옳바르다. 무언가 보편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뜬구름을 잡게 되거나, 혹은 잡았다 하더라도 인류보편적인 특성에 머무르게 되기 쉽상이다- 관련 포스팅: 무슨 한국적 정서?).
하지만 이런 추측은 섣부른 것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한국의 각 분야에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탐구가 아직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한분야에서조차 한국적인 것을 찾기가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는 우리의 예측과 다를수 있다. 미국에서 히트하지 못한 곡이 유독 한국에서만 인기가 있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정서에 맞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막연히 우리의 정서라고 말하지 말고 과학적으로 음악적 요소들을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국악이나 민요와 조용필의 노래를 비교 분석한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수도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도 이미 비틀스와 고전음악의 관계를 연구한 바 있다. 이런 작업이 성공적일 경우 한국의 문화 전반을 꿰뚫는 한국적인 특성이 도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 공통적인 특성으로서의 한국적인 것은 정신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주: 역시 동의하나, 이 부분은 저자자신이 주장한 보편자에 대한 개별자의 세계의 우선이라는 전제와 상충된다. 이렇게 보면 이해가능하다- 즉, 개별자의 연구 (음악이면 음악, 회화면 회화)를 통해 공통적인 무엇인가를 '결과적'으로 도출할 '수'도 있다는 식의 이야기로 이해하면 될듯 하다).


이 포스팅이 책의 크기는 작지만 큰 주제를 이야기하는 이 문고본에 대한 모든 감상은 아니다- 책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발췌만 일단 해보았다 (기회가 되면 후반부도 포스팅하겠다). 필자의 주관심사인 책제목 그대로의 한국의 정체성이란 주제가 나올때 마다, 이 책은 빠질 수 없는 참고서적이 될 것이다.

사족1: 작게 보자면 이런 현상도 바로 이 철학부재 (국가철학이라 할수 있는)에 속할수 있을것이다.
공공기관 '영어집착' 도 넘었다.

관련포스팅:
5년전 외국인이 본 한국의 전통문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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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동글기자 2011/08/02 14:21 # 삭제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정리해 주시고 선별해 주신 부분만 봐도 여러가지 생각하게 합니다.
  • 역사관심 2011/08/02 20:58 #

    고맙습니다. 이번에 출간하신 것 축하드려요!
  • 동글기자 2011/08/02 22:34 # 삭제

    부끄럽습니다,,.역사관심님께서도 역작을 곧 선보여 주세요..^^.저는 사실은 출간된지는 이제 1년정도 됩니다.이젠 서점에서 구경도 좀 힘들긴 합니다.
  • 역사관심 2011/08/02 23:23 #

    저는 내공이 한참 쌓여야 할것 같습니다 ^^ 제 머리도 정리가 안된 시점이라 ^^;
    온라인으로 구매해서 읽어볼 예정입니다~ 좋은 책 또 발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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