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라진 대표다리 (1)- 고구려 대동강 대목교 (평양)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중 이번에는 다리편입니다.
폭 9m에 길이 375m에 달하는 거대 고대다리였던 대동강 대목교입니다. 이 다리는 5세기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즉, 장수왕때로 봐도 무방하리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기본정보를 바탕으로 제가 덧붙인 소개입니다. 글중 나오는 안학궁, 대성산성, 정릉사등은 이미 시리즈에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평양을 관통하는 대동강에 위치한 이 대교는 지난 1981년에 발굴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고대다리에 '대'라는 글자가 붙는 이유가 바로 '길이'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대부분 1000미터를 넘는 한강대교들의 반에 못미치는 길이지만, 당대보다도 300년후 건설된 또하나의 걸출한 다리인 통일신라의 월정교/일정교의 길이가 60 여미터인 것을 비교하면 어마하게 긴 다리였음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더 조사해봐야 확실하겠지만,
디지털 문화재 복원 전문가 박진호(서울예술대학 ATEC연구소 연구원)의 2004년 인터뷰에 의하면 당대의 중국목교도 100미터가 넘는 길이는 없었다고 합니다. 폭은 현재까지 추정으로는 9미터로 광진교규모인 14미터에 (4차선규모) 달하는 월정교보다는 좁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선 대동강목교의 추정도입니다 (클릭하면 커짐).
대목교가 있던 정확한 터
위치를 살펴보면 평양시 대성구역 청호동과 대동강유역 휴암동에 있었습니다. 다리 북쪽은 고구려의 정궁인 대성산성과 안학궁이, 서북/동북쪽에도 역시 고구려 유적인 청암리성과 고방산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대목교가 고구려의 궁궐로 직접 향하는 진입로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되며 (아래 지도참조), 따라서 고구려의 문화역량을 월정교에 못지않게 쏟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 많은 유물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 추정대로 만약 장수왕때 만든 다리라면, 평양천도하고 바로 건설한 안학궁 (장수왕 15년, 427년)과 함께 동시에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안학궁의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라면 이 대목교의 분위기도 감지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목교 바로근처인 청암리성터 출토물인 고구려 도깨비기와들 (맨윗것은 안학궁출토 귀신기와)
청암리성에서는 아래와 같은 기와 수막새뿐 아니라, 이러한 화려한 금관까지 출토된 바 있어 5세기당시 고구려의 문화수준을 잘 보여줍니다 (사진은 북한도록)- 불꽃무늬가 화려합니다.

대교의 부분을 살펴보면, 다리의 동쪽 입구에는 귀틀모양으로 짜올린 등불대터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고, 다리에 쓴 골조는 대부분 폭 38m, 두께 26cm, 길이 8~10m의 굵은 나무각재입니다. 다리 가운데 부분은 이미 없어졌지만 남아 있는 부분을 통해 본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데, 귀틀모양으로 짠 듬직한 지지기둥 위에 가로와 세로를 견고히 맞물린 지지보를 놓은 다음, 두터운 깔판을 대고 난간까지 설치해서, 그 길이를 400미터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골조의 기둥구멍

또한 다리터에서 나무골조와 더불어 고구려의 기와조각과 도편이 많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이 고구려 대목교는 당대로 따져서 세계적으로도 오래된, 규모가 큰 다리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리의 부재물들의 구조가 고구려 사람들의 높은 목조건축기술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대목교 잔해들
참고로 처음 소개한 추정복원도는 기본모양의 추정일뿐입니다. 실제로 평양측의 실측조사를 보면 "이 다리의 골조에 해당되는 부재는 골재(38cm x 25 cm)로 발굴조사 결과에 의해 이 다리의 형상을 유추해 보면 다리의 입구부분은 부채살모양으로 깔판을 붙여 깔아 출입에 편하게 하였고 교각위에는 종량과 교량을 놓고 그 위에 두꺼운 판자를 깔아 다니기에 편리하게 한 목교였다고 보고 되어 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중간에 어떤 아치모양이나, 조각, 혹은 지붕형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목교위치를 보여주는 지도.
지도에서 보다시피 마치 월정교/일정교와 같이 도시를 흐르는 강의 북쪽에 궁궐 (경주로 치면 월성/ 여기선 대성산성과 안학궁)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월정교의 경우, 북쪽으로는 속세의 궁궐, 월정교를 지나 남으로 가면 바로 불국토라 여겼던 (실제로 수많은 불교유적의 단지인) '남산'이 등장하는 하나의 속세와 불국토를 잇는 상징성의 의미도 지니던 다리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평양의 불교유적들을 살펴본다면 대동강다리의 상징성도 한번 검토해볼만 하지 않을까요.

대동강은 한강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기는 강입니다. 아마도 한강-대동강-압록강-두만강-낙동강이 그러한 상징성을 가지는 강들이 아닐까 합니다. 대동강의 조선시대 사진 두장입니다.

우선 힘만 있으면 할수 있었던 유명한 봉이 김선달이야기에도 나오는 대동강 물장수
그리고 조선시대말 대동강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입니다. 대동강의 얼음을 채취해 얼음창고에 저장해서 여름에 사용하던 것은 평양의 오랜관습이었다고 합니다. 얼음캐낸 자리에선 아낙들이 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 우리 선조들의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웅장한 대동강전경입니다.

분단되지 않았더라면 월정교만큼이나 유명했을 대동강대목교. 우리에겐 생소한 대동강 대목교가 널리 알려지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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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으로 고구려의 다리기술에 대한 짧은 정보입니다 (통한교, 연고교, 청운교, 백운교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띕니다):
고구려는 삼국중 고대국가로 가장 먼저 체제를 정비하여 문화적인 수준도 다른 두 나라보다 앞섰다. 고구려가 최초로 도읍을 정한 곳은 현재 혼강유역으로 생각되는 비류강 유역의 졸본부여(BC 37)이다. 유리왕 2년 (AD 3) 국내성 (지금의 통교)으로 이도하였고 다시 장수왕 2년 (427) 평양대성 산하로 이도하여 평원왕 28년 (586) 장안성(지금의 평양)을 축조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구제궁에는 통한,연고, 청운, 백운의 사교가 있었다하나 현재 위치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이다.
한편 5C 초의 고구려시대 다리유구인 고구려 대동강 다리터에 대한 발굴조사 보고가 있다. 이에 따르면 고구려 왕궁인 안학궁 전면으로 이 다리는 오늘날 토성구성과 청호동과 사동구역, 휴함동을 연결시켰던 큰 대교였다고 하는데, 이 다리의 규모는 길이 375m, 다리폭 9m로 당시 이 정도 규모의 다리를 대동강에 설치 하였다면 세계적인 규모라고 생각된다. (참조: http://nexpop.culturecontent.com/menu01/menu010101.asp)

덧글

  • 부산촌놈 2011/08/18 11:29 #

    오랜 세월이 지났을 텐데도 목재가 꽤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네요.
  • 역사관심 2011/08/18 11:51 #

    부산촌놈님> 그렇습니다. 진흙에서 보존이 된것인지 다행히 제대로 남아있습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1/08/18 12:29 #

    잘 봤습니다. ^^
  • 역사관심 2011/08/18 13:12 #

    WA> 감사합니다~ ^^
  • 초효 2011/08/18 18:54 #

    일설엔 저런 목교가 3개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왕과 귀족들 전용, 하나는 민초들 전용, 또 하나는 死者 전용.
  • 역사관심 2011/08/18 22:48 #

    초효님> 정보 감사합니다. 혹 그 3개가 대동강목교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 net진보 2011/08/18 22:08 #

    다리 관련글을 보니 지방방송에서 다리관련한 다큐를 햇엇는데말입니다;;;찾아보고;;;알려드리겠습니다.
  • net진보 2011/08/18 22:16 #

    mbc에서한 <한국의 다리라는 다큐>이군요 참조해서 찾아보시길 ㅇㅇ
  • 역사관심 2011/08/18 22:48 #

    net진보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꼭 찾아보지요.
  • 루리도 2011/08/20 02:17 #

    시대적으로 보면, 당시 사람들에겐 정말 길게 느껴졌을 것 같네요..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셨지만, 정말 보존상태가 좋군요..

    그나저나, 역사관심님 블로그를 오다보면,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신지 은근히 궁금해지네요..^^;
    아예 본업이 역사쪽 학자분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닌데도, 이 정도면 참 대단하신 듯...)
  • 보고싶은남자 2011/08/26 21:17 # 삭제

    오, 역사관심님 블로그에 초효님이 방문하시다니, 대박인데요.
  • 역사관심 2011/08/26 23:29 #

    초효님이 유명하신 분인가 보네요. ^^
  • kimtaewoo 2011/12/23 07:53 # 삭제

    가장 먼저 고대국가가 된 국가는 백제입니다 고이왕때 백제가 먼저 율령반포하고 고구려느느 소수림왕때 율령반포했는데...
  • 한라온 2020/06/14 21:29 #

    전금문과 부벽루의 모습이 인상적이군요.
    그나저나 5세기 초에 건설됐던 다리 터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함경도의 만세교가 떠오르는 다리네요.
  • 역사관심 2020/06/23 04:06 #

    저도 저 유적은 정말 놀랐습니다. 북한쪽 이야기라 100% 믿을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그나저나 좋은 댓글을 많이 달아주셨는데, 여력이 없어 한번에 답글을 못 다는점 양해바랍니다)
  • 한라온 2020/06/23 07:06 #

    아닙니다. 생업도 바쁘실 텐데 이런 좋은 글들을 볼 수 있게 올려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 응가 2021/04/12 17:20 #

    조선시대때도 필요에 따라 목교를 꽤나 많이 축조한것 같아보이는데, 이 부분은 가려지는듯해서 좀 아쉽습니다.
    함흥 만세교가 250여m에서 차차 늘어나서 구한말엔 500m까지 늘어났고, 만세교 같은 다리는 아니지만 대동문 앞에도 부교가 있었고, 진주교, 밀양교같은것들이 전부 부교가 전신이었다 하더라구요.
  • 역사관심 2021/04/13 04:15 #

    만세교는 그렇지 않아도 글을 쓰다가 저장해놓고 묵혀둔지 한참 되었네요. 너무 많이 알려진 목교라 중간에 흥이 나지 않아서 그만 두었던 생각이 납니다. 다시한번 살펴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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