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연합군 일본침공 함대침몰 당대(?) 일본측그림 그리고 전함발견뉴스 (2011.10) 역사

우선 그림을 먼저 보시죠.
상단의 그림은 필자가 발견한 일본측이 그린 여몽연합군의 군함침몰도로 태풍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확한 연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파악하는대로 업데이트 할것입니다 (적어도 검색으로 한국에서 이 그림이 소개된 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 포스팅을 준비했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고려선박(특히 전함)의 모습이 궁금해서 찾던중 발견한 중요한 그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이 실현될지도 모르는 발견이 지난달 (10월) 일본에서 있었군요. 포스팅 아래 소개합니다. 우선 위 그림의 전함침몰 부분을 확대해 봅니다 (선명도의 한계로 형체파악이 힘들지만, 어느정도 선체모양에 단서를 줄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기존에 이미 몽골내습도등, 회화적 자료가 남아있기때문에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몽골내습도 (태극방패를 든자들이 고려군사라는 설이 있지요)

여몽연합군의 일본침공시 기록들중 일부입니다.
고려사
<몽한군 2만 5천명 아군 8천명 초공 인해 수수 6천 7백과 전함 9백여소로써 일본을 정벌하는데 일기도에 이르러 1000여급을 격살하고 길을 나누어 써 나아가니 왜인이 달아나매 시체가 삼대같이 쓸어졌다. 일모에 이르러 늦추어주었더니 마침 밤에 큰 풍우가 있어 전함이 암애에 부딪쳐 많히 파손되고 김신은 익사하였다>
<일기도에 이르러 1000여 명을 죽이고, 길을 나누어 진격하니 왜인이 퇴각 도주하였는데, 죽어 넘어진 시체가 삼대 쓰러진 것처럼 많았으며, 날이 저물 무렵에 포위를 해제하였다>


일본측 사료 本土防衛戰史

<세도우라에서 平景隆은 일족의 郎黨(낭당: 武家의 家臣) 100기를 이끌고 서쪽의 가쓰모토를 향해 출진했지만, 中途의 히츠메城(勝本町 新城) 앞에 이르면 연합군의 대부대와 조우하게 된다. 景隆은 古來의 戰場儀式(전장의식)에 따라 휘하의 1騎에 명해 鳴鏑(명적: 소리 내며 나는 화살)을 쏘아 開戰의 신호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몽골군은 古代의 開戰 의식 따위는 아예 무시했다. 그리고는 鍾과 징을 요란하게 치면서 자신의 家系와 이름·戰績 등을 길다랗게 외치며 뛰어나오는 이 日本 무사를 에워싸고 개 패듯 때려 죽여버렸다.>

<10월19일 이마쓰(今津) 해안에 상륙한 몽골군 支隊는 이마쓰의 監視隊를 밀어내고 포진, 그 일부가 다음날 하카타灣 중앙부인 모모치(百道) 해변에 상륙할 主力軍을 엄호하기 위해 해안을 따라 東進하여, 모모치하마의 남방 소하라(祖原)山을 점거했다. 그때 祖原지구의 방어를 책임진 것은 하라다(原田) 一族과 마쓰우라(松浦)黨이었는데, 몽골군의 集團戰法과 新兵器의 위력 앞에 무참히 패퇴했다. 하카타 地區 前線사령관인 카게쓰케(景資)는 고려軍의 상륙작전을 보고 아카자카(赤坂)지구를 맡고 있던 菊池武房에 출격을 명했다. 그럴 때 소하라(祖原)山을 점거하고 있던 몽골軍 부대가 고려軍의 상륙부대를 엄호하는 가운데 격전이 전개되었다. 이 전투에서 고려軍은 白道原을 완전히 확보하고 東進하여 현재 후쿠오카의 중심부인 鳥飼·別府·赤坂를 강습했다. 하카타의 이키노하마 앞바다로 침입한 몽골軍의 主力도 이키노하마와 하코자키(箱崎)에 상륙하여 少貳·大友·島津의 부대를 패퇴시켰다. 이로써 일본군 측의 하카타灣 해안방위선 30km가 모두 붕괴되었다.>


물론 2차원정시 태풍으로 실패한후 일본에 남아있던 연합군은 전원 참수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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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된 중요소식으로:
지난달에 일본에서 여몽연합군측의 전함이 통째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뉴스가 있었군요. 왜 이리 놓치는 중요한 역사뉴스가 많은 건지. 이 배가 고려전함일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즉 원의 요구로 만든 900여척의 전함중 한대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발견된 장소가 나가사키현 해안이란 점이 그렇습니다 (1차원정이 아닌 2차원정때 장소로, 이때 900여척은 고려가 거의 모두 건조했습니다)

우선 고려의 전함건조 능력에 대한 짧은 관련 글입니다.
당시 여진(동여진)의 해적들은 동해안 각지에 자주 침범하여 현종 2년(1011) 8월에는 100여 척이 떼지어 경주에 침입한 적도 있을 정도로 피해가 막심했다. 이에 고려는 해군기지사령부라 할 수 있는 선병도부서(船兵都府署)를 각 지에 두어 대치했는데 이때 동북 방면에 배치된 군선이 바로 과선이다.

고려 군선의 우수성은 1268년 원나라와 함께 일본을 원정할 때 증명된다. 『원사』에 원나라의 왕운이 해전에서의 실패에 대해 태풍을 만나 파도 때문에 서로 부딪쳐 크고 작은 많은 우리 함선들은 파괴되었으나 오직 고려의 군함만은 견고하여 정상적으로 전투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라는 기록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원의 세조가 일본에 원정할 대함(大艦) 300척을 포함한 군용선 900척을 요청하자 고려의 김방경은 배를 중국식으로 만든다면 노동력과 비용이 많이 들고 기일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설계도면으로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를 관철시켰다.

이 당시 원은 군량미 3000∼4000섬을 싣고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를 요구했는데 군량미가 3000∼4000섬 정도라면 현재의 단위로 약 250∼320톤이 되므로 이 배의 배수량은 400∼500톤이 된다. 그런데 고려에서는 이들 배를 단 4개월에 만들었다는 것을 볼 때 고려의 조선 기술이 얼마나 앞선지를 알 수 있다.


한편으로 다른 잔해의 분석으로 여몽연합군이 실패한 이유는 군함이 (6차례의 몽골과의 항쟁으로 피폐해진 고려측의 입장때문에) 재질과 못등에서 어쩔수 없이 부실한 전함을 만들었기때문도 큰 이유라는 설도 있습니다.  기사원문과 발췌부분입니다.
원문: 13세기 여몽연합군 日 정벌 때 침몰한 전함 발견
13세기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 다시 말해 여몽(麗蒙)연합군의 일본 정벌 당시 침몰한 여몽연합군의 전함 한 척이 나카사키현(長崎縣) 연안에서 발견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6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일본 오키나와(沖繩) 소재 류큐(琉球)대학의 발굴단은 나가사키 연안 해저에서 길이 약 12m의 전함 용골(龍骨·큰 배의 선체를 받치는 길고 큰 목재) 부분을 발견했다.

발굴단이 초음파탐지기로 해저 밑 1m 지점에서 발견한 용골의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견된 부분은 이물(뱃머리)에서 고물(꽁지부리)까지 이어지는 길이 12m, 폭 50㎝의 용골과 그 양쪽 뱃전을 이루는 폭 15∼25㎝, 두께 약 10㎝의 외판(外板)으로 추정된다. 바닷속에 파묻힌 용골의 길이는 더 길 수 있어 배의 전체 길이가 20m를 넘을 가능성도 있다.

침몰한 전함 주변에서는 도자기 파편,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벽돌, 포탄 등 무기 파편, 돌로 만든 닻 등 4000점 이상의 유물이 발견됐다. 전함은 수심 20∼25m 해저 모래에 1m 깊이로 묻혀 있었다. 그 덕에 7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온전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 발견 영상입니다 (뭐 언제나 그렇듯 일본측에서 만든 영상이라 제목에 고려의 고짜도 없고 몽골리안 쉽이라고 나오죠. 실제 건조된 대부분의 함선은 고려에서 다 만든 것임에도).


개인적으로  답답한 점은 이렇게 많은 수의 군함과 병력이 참가해서 전력으로 싸웠음에도 해외의 이 전투를 소개하는 구절들에는 '고려' (Goryeo)라는 단어는 눈을 비비고 봐도 찾을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저 몽골대 일본으로 나옵니다 (필자가 해외에서 이때껏 찾아본 모든 서적이 그렇습니다). 

위에서 보았듯 일본측 사료에서도 엄연히 몽골군과 고려군으로 나누어서 명기하고 있지요. 이런 부분도 한국측에서 개선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속국신세-제후국-였어도 몽골이 영토로 편입해 지배한 여타지역과 달리 고려는 엄연한 개별왕조였지요). 이건 필자가 해외에 가면 항시 느끼는 답답증중 하나지만, 아마도 일본측이 거꾸로 일정기간 몽골에 복속되어 한국을 침략했다면 해외서적들은 연합군에 분명 일본군의 존재를 부각했을 것 같습니다 (현재의 입김은 그만큼 큰 요소입니다).

그나저나, 편향적인 방송문제는 분명 있지만, 이래서 (매달 중요발굴, 발견) 한국은 역사스페셜같은 주간 역사관련 다큐는 (혹은 적어도 2주마다 한번 방송되어도) 달마다 쏟아지는 역사관련 소식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관점에서라도 꼭 필요한 듯 합니다.

참고글
고려몽골군의 일본상륙: http://drlee.org/mongolia/kamikaje/kamikaje3.html
고려전함소개- http://www.carlife.net/bbs/board.php?bo_table=information&wr_id=1874&sca=%C4%AE%B7%B3&page=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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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Warfare Archaeology 2011/12/10 09:57 #

    오오~여몽 연합군의 전선이라!!! 이거 정말 대박입니다!!!!!!!!! 좋은 소식 정말 감사드립니다!
  • 역사관심 2011/12/10 11:24 #

    그렇죠? ㅎㅎ 저런 뉴스가 있는줄도 몰랐습니다.
  • 마광팔 2011/12/10 14:13 #

    항상 좋은 역사글을 올려주시니 정말 잘읽고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1/12/10 14:37 #

    고맙습니다~.
  • 부산촌놈 2011/12/10 14:41 #

    일본원정 당시에 몽고가 고려에 거의 모든 전함의 제작을 맡기지 않았나요?

    그러면 저건 틀림없는 고려전함일 텐데 말이죠..
  • 역사관심 2011/12/10 14:45 #

    저도 틀림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속뉴스를 좀 잘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우리 언론의 역사뉴스의 문제점이 발견되었을 당시에만 동시다발로 떠들고는 잠잠해져버리는 것인데...(외국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항시 궁금합니다. 후속소식을 기자들에게 직접 메일로 여쭤봐도 무답이니까요. 결국 다큐나 논문이 나올때까지 기다려야한다는;
  • ㅇㅇ 2011/12/16 16:34 # 삭제

    1000년전의 유물을 가리키며

    "이 유물은 중국의 물건이다" 일본인들"아~그렇군.."

    "이 유물은 한반도의 유물이다" 일본인들 "이건 일본고유의 유물이거나 중국에서 수입한 유물!!!"

    항상 이런반응.?
  • 역사관심 2011/12/16 17:45 #

    그런 예가 있으면 링크를 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 평론가. 2012/05/08 11:14 # 삭제

    위 배에 탄 병사들은 중국원나라식이고 배도 중국식입니다..고려전함으로 알려진건 다른쪽에 그려져있지요.
  • 평론가 2012/05/08 11:16 # 삭제

    http://cafe.naver.com/corean2009/2063
    위에서 아래로 3번째 그림을 대략 고려전함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2/05/08 11:21 #

    감사합니다. 그런데 세번째 그림은 배가 아니라서 어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평론가 2014/04/06 15:25 # 삭제

    첫번째 사진이 고려군으로 추정되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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