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덕이에 대하여. 역사

바우덕이의 본명은 金巖德(김암덕)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남사당패 꼭두쇠였던 인물로 23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비운의 예인이지요. 아래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은 정보입니다.
조선후기(1848년(헌종 14)∼1870년(고종 7))에 열 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여자로써 남사당패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되어 남사당패를 이끌던 천재 예인이다. 1848년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1853년에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남사당패에 맡겨져 줄타기, 살판 등의 남사당 놀이를 익히게 된다. 바우덕이가 15세 되던해에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연로하여 새로운 꼭두쇠를 선출할 때 바우덕이가 어린 나이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이후 바우덕이가 이끄는 남사당패는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지친 노역자를 위로하기 위해 남사당패를 불러서 공연을 펼쳤는데 그 때 뛰어난 공연으로 고종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는다. 바우덕이는 이후에도 전국을 돌면서 남사당을 대중공연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힘든 유랑 생활 속에서 폐병을 얻어 1870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무덤이 있다. 출처: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바우덕이의 이름에 대한 유래는 세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위틈에 버려진 아이를 주어다 기르면서 “바우덕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박우덕”인데 부르다보니 바우덕이가 됐다는 설, 세 번째는 지금 안성시에서 주장하는 설로 김암덕(金岩德)인데 암덕을 풀어서 바우덕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바우덕이의 동상입니다만, 이 분에 대한 책이나 드라마같은 것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아서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요. 아래는 무덤입니다. 경기도 안성 청룡사에 무덤이 있습니다만, 바우덕이가 죽었을때 냇가에 묻었는데, 그 흔적만 남은 무덤을 다시 제대로 약 25년전에 만든것이 현재의 (아래사진) 무덤이라고 합니다 (봉분이라고 할것도 없는 흔적이 누군가가 소나무 두 개를 칡으로 묶어 만들어 놓은 외나무다리 건너에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이름에 비해 그다지 관리나 홍보가 잘 되고 있는 느낌은 아닙니다.

바우덕이가 정말로 3품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합니다만, 여자로써 꼭두쇠를 한것은 대단합니다. 그 자체로 조선시대의 천재예인이라 봐도 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무덤이 원래 흔적만 희미하게 개울가에 있었다는 것은 사후 그녀에 대한 인식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분에 대한 활발한 조명이 언젠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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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에서 전격적으로 밀어오던 드라마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래 기사를 보면 예산낭비라는 여론으로 취소되었다고 하는데 (2010년), 잘 읽어봐도 왜 취소되었는지 그 궁극적인 이유가 없습니다. 인물에 대한 제대로 된 고증연구가 없이, 그저 돈벌이로 대장금운운하며 또다시 천민자본주의적 발상을 한 것이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탄탄한 연구아래 이런 인물이 자연스레 살아나서, 고장에서도 명물이 되고 사랑받고, 그렇게 무르익어 문화상품이 되는 것이지, '돈'을 먼저 보고 얄팍한 철학아래 억지로 문화를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게임뉴스와 그닥 동떨어진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군요.

바우덕이 드라마 전격취소- http://www.shinmoongo.net/sub_read.html?uid=20730&section=s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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