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학 (슐라이에르마허 외) 정보와 인지심리

해석학은 복잡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오직 텍스트의 해석이라는 관점에서 흥미가 있다. 검색으로 도움이 될만한 부분만 추려본다.

전통적인 해석학-- 전통적인 해석학은 쓰여진 텍스트의 의미에 관심을 갖는 해석이론을 포함한다. 그런 이론들은 저자와 독자 그리고 텍스트 사이에 발견된 관계들에 초점을 둔다. 히쉬(E.D. Hirsch)는 주장하기를 한 텍스트의 의미는 저자의 의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텍스트의 의미는 저자를 넘어서, 독자의 지평과 저자의 지평이 만나는 지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폴 리꾀르(Paul Ricœur)는 텍스트는 저자의 의도와 원래의 독자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독자가 텍스트의 의미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은 본문으로 부터 의미를 끌어내는 이해의 학 또는 이해의 예술로(theart of understanding) 정의한다. 여기서 이해는 이해되고 있는 과정이 중요하며, 예술이란 하나의 기술이며, 주관성을 말한다. 이해 자체에 해석학의 관심을 두고 이해가 일어나는 조건을 분석하고, 이해가 성취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해란 저자의 정신적 과정의 추체험으로 규정한다. 객관화 된 고정된표현을 통해 그것이 연원한, 저자의 정신적 삶에 도달하는 과정으로본다. 오해를 피하는 기술로서 해석학을 정의하며, 문제의 전적인 발전은 텍스트 보다는 저자에 집중되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문법적 심리적인규칙을 제한한다.


* 슐라이에르마허의 해석학

슐라이에르마허는 근대 해석학의 아버지로 불리워진다. 해석학의 보편적인 범위를 파악했고 그 결과로 얻은 이해에 대한 철학적 이론을 체계화 시켰다. 슐라이어마허는 성서 해석, 법전 해석 등 모든 해석들이 지켜야 할, 보편적 해석 원리인 ‘해석학적 순환 이론’을 적립하였다. 반틸은 해석학의 출발점을 절대의 의존 감정으로 본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세계에 관한 해석을 관찰이나 어떤 공간-시간 사건의 개념적인 해석이나 또는 사건들에 근거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절대의존 감정에 근거한다는 것이다.(C. Van Til, The New Hermeneutics, p.59).


보편 해석학- 저자와 해석자의 공통적 인간성을 그 전제로 한다. 텍스트에 구별없이 적용되는 이해의 방법이다.

해석학적순환-- 전체는 부분을 통해 이해되고 부분은 전체를 통해 이해된다는 것. 변증법적 상호 작용에 의해 의미가 전달된다. 단어는 문장에 의해서 해 석되고 문장의 의미는 개별적 단어의 의미에 의해 파악된다. ex) 저자의 저서와 저자의 삶의 관계. 저서와 그의 언어의 관계. Hermeneutics: The Handwritten Manuscripts (Atlanta: Scholars Press, 1997)


*해석 방법이 역사 비평에서 문학 비평으로 전환되었다. 본문의 문법적인 해석(객관적인 언어학 자료들의 사용)과 더불어, 심리학인 해석으로, 저자의 의식을 통찰하는것이다. 본문 자체의 메시지 보다 메센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이해된것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의 예술이다.

(Hermeneutics deals only with the art of understanding, not the presentation of that which has been understood. The presentation of what has been understood could be only one special part of the art of speaking and writing, and that part could be done only by relying upon general principles. . . . It is commonly believed that by following general principles one can trust one's common sense. But if that is so, by following special principles, one can trust one's natural instincts. Ibid., p. 96)


해석에 있어서 심리적이며, 예술적인 것을 강조했다. 해석자는 저자가 느낀 것을 느껴서 그 느낌을 적용한다. 이런 심리학적인 측면은 해석자가 자신 안에서 해석의 재 창조를 요구하기 때문에 전이해라고 부른다. 결국 텍스트의 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해석자 자신의 이해라는 결론을 만들어 낸다. 좀더 넓게 보면 해석이란 인간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게 된다.해석학이 삶의 정황만을 포함하지 않고 우리들이 서로를 인식하고,이해하고,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는 모습들에도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해석학의 공헌

*해석학을 이해의 학, 이해의 기술로 이해함

*저자와 해석자의 공통점이 존재함을 말함으로써 체험적인 면을 강조

*해석자가 자기 자기 자신을 저자의 마음 속에 놓음으로서 저서 구성의 내적 기원을 이해하게 하는 점

*이해의 개념을 삶의 관계로 부터 파악하였다. 이것은 후에 딜타이와 하이데거에 영향을 주었다.


해석학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이런 것이 있었다.’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전개과정이나 심화과정, 특별히 고민스러운 부분을 캐려 애쓰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해석학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이성이나 언어 같은 것만 중요시했지만, 200년쯤 지난 후에 보면 이성이나 언어, 해석은 그 자체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 속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해석학의 5인물 (슐레이에르마허 포함)

하이데거의 평생의 학문적 과제는 존재탐구였다. 하이데거의 존재연구에서는 인간 개개인의 삶의 모습이 반영된다.

딜타이는 자연을 아는 방식 외에 세상을 보는 다른 방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다머는 훌륭한 스승이자 해석학자인 하이데거가 도대체 왜 나치에 동조했는지 무려 10여 년 동안이나 이론적으로 탐구한다.

리쾨르는 해석학의 전개에 따른 귀결을 원죄 문제에 적용하려 하였다. 원죄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일련의 역사적 체험 망 속에서의 것으로 드러난다.

반성택교수의 해석학홈피

딜타이강좌중 인상적인 부분:

2004년 KAIST에서는 이공계의 히딩크를 목표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러플린을 총장으로 초빙한다. 그러나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한 권의 책을 남긴다. 러플린은 저서 『한국인, 다음 영웅을 기다려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불행히도 어린 자녀들을 너무 일찍 적극적으로 국제화시키는 것에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즉 어린이들은 그러한 두 개의 자아(국내형 인간과 국제형 인간)를 공존시키면서 탈 없이 지내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을 뒤섞기 때문에, 결국 조국을 상실한 인간으로 자라나게 된다. 나는 해외에 있는 한국인, 특히 과학기술 공부를 하는 한국 젊은이들에게서 이런 현상을 많이 봐왔다. 그들은 전문 분야에서는 매우 뛰어나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대책 없는 혼돈상태에 빠져 있다. ... 국제형 인간이란 진짜 어려움이 닥칠 때는 아무 의미도 없어지는, 가상의 자아라는 점을 아이들은 자라면서 알아차리게 된다. 이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전에는 그렇게 우습게 얕보았던 자그마한 고향 마을이, 사실은 멋진 곳이란 점을 발견하는 것과 흡사하다.”

딜타이의 초점은 통일적인 세계에 나가기 위한 밑바탕으로써, 출발점은 나의 체험이라는 것이다. 어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는 터전에 몸소 놓이는 것이다. 일어를 배우면서 일본 사람들이나 문화를 빼고 언어만 배울 수 없다. 언어를 통해 그들의 직접적인 체험을 경험하는 것이다. 치즈를 경험하려면 냄새만 맡아보는 것이 아니라, 입에 넣고 씹는 구체적인 체험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런 딜타이의 생각과 러플린의 생각은 맞닿아있다.

*참고자료
로버트 러플린 『한국인, 다음 영웅을 기다려라』한스미디어, 2006


덧글

  • 홍차도둑 2012/02/25 11:59 #

    제가 요즘 축구 글을 쓰면서
    '동네 조기축구회에서라도 뛰어보았는가?' 를 외치는 것과 비슷한 시각입니다.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맞닿아보고 배우고 가르치는 입장에 서 봐야 그런 것을 알수 있지요.
    역사관심님께서 제가 올렸던 스포츠마케팅과 웸블리에 대한 글을 좋게 봐 주시고 한 것도 그러한 경험에 의거하는 겁니다.
    실제로 저는 2002년부터 2009년까지 각 구단에 머천다이징 상품을 제작-공급하는 일까지 했었거든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봐야 그냥 '자기의 투덜거림'이라는 것을 깨닫은게 바로 그 2002-2009사이였습니다.
  • 역사관심 2012/02/25 15:21 #

    네, 홍차도둑님의 시각과도 분명 맞닿는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서두에서 이야기했듯 텍스트의 해석문제에 국한해서 올려본 포스팅입니다만, 텍스트뿐 아니라 어느 기호혹은 심볼(그것이 축구든 야구든 어느 분야든)의 제공자와 이용자의 접점에서 만들어지는 문제(혹은 담론)이기 때문에 분명 말씀하신 부분이 해당되겠지요 ^^

    다만, 그 이용자들의 경험의 차이가 분명 '해석'의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 역시 그러한 MLB구장들이지만 경험을 했기에 시각을 가지게 된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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