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원주의와 통섭 독서

과학잡지를 보면 환원, 통섭이란 개념이 많이 등장하는 요즘이다. 관련 개념을 분명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어보여서 위키피디어및 여러 사이트에서 유용해 보이는 정보를 간추려 본다. 어제 읽어본 "쉽게 읽는 엔트로피(1993)" 란 책의 심층부분을 설명해주는 기본적인 사상이기도 하다.


환원주의 (還元主義, reductionism)

Descartes held that non-human animals could be reductively explained as automata — De homines 1662. (그림은 유명한 볼테르의 Vaucanson의 오리)

철학에서 복잡하고 높은 단계의 사상이나 개념을 하위 단계의 요소로 세분화하여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 물체는 원자들의 집합이고 사상은 감각인상들의 결합이라는 관념은 환원주의의 한 형태이다. 20세기 철학에서는 일반적인 형태의 2가지 환원주의가 주장되었다. 첫째,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존재하는 사물이나 사태를 가리키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나 감각자료로 정의할 수 있고, 따라서 사실에 대한 어떤 진술도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일련의 진술과 동치라고 주장했다. 특히 과학의 이론적 실체는 관찰가능한 물리적인 것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과학법칙은 관찰보고들의 결합과 동치라고 주장했다. 둘째, 과학의 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물학이나 심리학 같은 특정 과학의 이론적 실체는 물리학 같은 더 기본적인 특정 과학의 실체들로 정의할 수 있거나, 그 과학들의 법칙을 더 기본적인 과학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러 과학의 이론적 실체를 관찰가능한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점이 모든 과학법칙의 공통 기초를 이루는 한 논리실증주의의 환원주의도 과학의 통일을 함축한다. 이러한 환원주의는 과학에서 이론명제와 관찰명제를 만족스럽게 구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만, 한 과학이 다른 과학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반대의 개념으로는 통섭이 있다.

통섭 (通涉,Consilience)은 "지식의 통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 이론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의 본질적 질서를 논리적 성찰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두 관점은 그리스시대에는 하나였으나, 르네상스 이후부터 점차 분화되어 현재에 이른다. 한편 통섭 이론의 연구 방향의 반대로, 전체를 각각의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하는 환원주의도 있다.

(출처- 위키피디어)

환원주의의 한계상황이 바로 현재의 과학계와 사상계라고 본다. 따라서 통섭은 새로운 개념이 아닌,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에 불과하다- 다만, 그냥 과거가 아닌 더욱 성숙한 현재를 구축하기 위한 단계로 모든 지식인이 생각해야 세상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동양전통 사상체계의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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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 (야후 백과사전)

모든것을 간단한 기본 법칙으로 환원 (reduction) 할 수 있는 능력이 그 법칙들로부터 시작해서 우주를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필립 앤더슨).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능을 몇개의 수식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하는것이 그 수식으로부터 인간의 지능을 재구성 할수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주와 마찬가지로 인간 지능의 비선형성 (nonlinearity), 또는 복잡성 (complexity) 때문이다. ............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건이나 개념을 단일 레벨의 더 기본적인 요소로부터 설명하려는 입장으로, 과학철학에서는 관찰이 불가능한 이론적 개념이나 법칙을 직접적으로 관찰이 가능한 경험명제의 집합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실증주의적 경향을 가리킨다 ...... 생물학에서는 생명현상이 물리학 및 화학의 이론이나 법칙에 의하여 해명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근대과학을 이끌어 온 기본전략은 환원론 (reductionism) 이다. 아무리 복잡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잘게 분해함으로써 기본적인 단순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통찰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의 가장 극명한 방법이 수학의 해석적 (analytic) 방법이다. 직선은 단순하고 곡선은 복잡하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한 곡선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잘게 분해해서 확대해 보면 직선에 근사해 간다. 그래서 이 분할의 과정을 무한히 진행하면 곡률 0 의 온전한 직선을 얻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 복잡한 곡선은 단순한 직선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울통불통한 곡선으로 둘러쌓인 도형의 면적도 잘게 부수면 사각형들의 집합으로 환원될 것이고 이 사각형들의 면적을 합한다면 복잡한 도형의 면적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복잡한 것은 결국 단순한 것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이 대담한 형이상학은 적어도 서구의 사상 속에서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피타고라스에 까지 소급해 가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그는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우주의 구성단위 (building block) 를 찾아낼 수 있다면 모든 사물은 그 구성단위로 나뉘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이것이 "만물은 수 다" 즉 만물은 이 구성단위의 정수배라는 선언으로 나타난다.이것이 데모크리투스로 이어지면서 원자론의 전통을 만들어 내었다(이상훈) (주: 이것이 바로 서구의 개인주의라는 사회적 철학개념을 만들어낸다. 동양의 관계주의 집단주의의 전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만들어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환원주의는 복잡한 현상의 원인을 보다 단순한 현상에서 구하는 것으로서 복잡한 구조와 속성이 부분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이러한 환원주의는 기계론적 세계관과 함께 근대과학의 중심적인 특성으로 자리잡았다. 환원주의는 생물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생물학에서 환원주의는 19세기 중반에 기존의 자연철학의 생기설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나왔다. 급진적인 유물론적 환원론자들은 생명현상을 그 생명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의 물리적, 화학적 설명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기계적이고 환원적인 접근은 생물에 대한 미시적인 눈을 제공함으로써 생체분자를 규명할 수 있었고 생물의 독립적인 기능단위인 세포를 발견하게 하였다. 세포학의 도입은 생물학을 탄탄한 기초 위에 올려놓았고 생물학 발전의 획기적인 장을 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생물학의 발전은 20세기 초 슈뢰딩거가 생물학에 양자역학을 도입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양자역학자로서 그의 기계론적 환원주의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생명현상을 물리적, 화학적 상호작용으로 환원하는 경향은 분자생물학의 기본 주류가 되었다.  더불어  유전정보의 매개체인 DNA의 발견과 구조결정, 그리고 유전정보전달의 기전 규명으로 생명과학은 혁명적 도약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이와 같이 근대과학의 환원주의는 생명현상의 이해에 있어서 새로운 돌파구와 실마리를 제공하였다(박장호) (주: 그러나 최근의 전지구적인 문제들은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관이 끝나야 모두 살아남을수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출처: http://www.aistudy.com/physics/reductio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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