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과 개인사 단상 (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 중) 독서

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중, 라캉 부분. 매우 인상적이고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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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어활동의 기능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내는 것이다. 내가 언어를 말하면서 찾고 있던 것은 타자로부터의 응답이다. 나를 주체로서 구성하는 것은 나의 물음이다. 타자로부터 나를 승인받기 위해서는 내가 '예전부터 있었던 일'을 이제부터 일어날 것으로 말하는 수밖에 없다. (중략) 나는 언어활동을 통해서 자기동정(自己同定)을 달성한다. 그와 동시에 대상으로서는 모습을 지운다. 내가 말하는 '역사=이야기' 속에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실제로 있었던 것을 말하는 단순 과거가 아니다. 그런 것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내 속에서 일어난 것을 말하는 복합 과거도 없다. '역사= 이야기'속에서 실현되는 것은 내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을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이미 된 것으로 말하는 전미래前未來 인 것이다." [정신분석에서 말하기와 언어의 기능과 영역]에서.

라캉에 따르면 피분석자가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말할 때의 시제는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말하는 단순 과거형이 아니라 미래의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해서 그때에 이미 완료한 행위를 나타내는 전미래형입니다 ('나는 저녁까지는 일을 끝마칠 것이다'-예).
내가 과거의 사건을 '생각해내는'것은 지금 나의 회상에 귀를 귀울이는 사람이 '내가 이런 인간'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즉 타자에 의한 승인을 얻기 위해 과거를 생각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서 과거를 생각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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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의 분석은 물론 '정신분석학'의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철학이란 분야에 속하며, 철학은 인문학의 기초골격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여러 생각을 해볼수 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저 위에 말하는 라캉의 구절을 혹은 저자인 타츠루가 이야기하는 아래구절의 '자신(개인)'을 '국가'로 대체해보면 어떨까 하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개인의 과거 (즉 개인사) 못지않게, '국가의 역사' (각국의 역사) 역시 타자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역사의 맥락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내 국가의 회상에 귀를 귀울이는 사람이 나의 국가가 이런 역사를 가진 국가이다(그리고 그런 국가가 될것이다)'라고 생각해주길 바라는 것이라는 것.

또한 역사를 '이미지'로 대체해보면,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특정 국가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창출된다. 그리고 이미지는 타자(타국인-타문화권)을 향해 '보여주고 싶어하는 이미지형상'으로 항상 재편되고 만들어진다. 그런 것을 잘하는 국가가 역시 문화국가라 불리고, 관광강국이 되는 것일 터이고.

전통도, 이미지도, 역사도 만들어지며, 만들어가는 것 (물론 당시의 상황을 직접 기록한 1차사료같은 데이터는 다른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그것 역시 사관의 개인적 해석이 전혀 없다고는 할수 없다- 이건 역사공부하는 분들에겐 상식이지만.).
물론 이중 역사/역사가는 끊임없이 가장 순수한 과거모습 (영도의 역사)를 추구하는 태도가 앞의 두 개념보다 훨씬 강한 기본태도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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