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경회루 임진왜란 이전 복원 모습 (15세기 태조대 모델)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가끔 들러보는 카페에 어떤 분이 자작으로 만들어 올린 경복궁 경회루 복원모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경회루의 본모습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 사진을 보고 찾아보니 원래 모습은 훨씬 화려하더군요. 차라리 경복궁을 모두 복원하는 지금, 원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위키에서 찾은 기록만 간단히 소개해보면:

본래 모습

원래의 경회루는 경복궁 창건 당시 서쪽 습지에 연못을 파고 세운 작은 누각이었는데,태종 12(1412) 연못을 넓히고 건물도 다시 크게 짓도록 명하여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 완성하였다. 선조25(1592) 임진왜란 불타서 돌기둥만 270 남았던 것을 고종4 경복궁을 중창할 재건하였으나 옛날처럼 돌기둥에 용을 조각하는 장엄은 베풀지 못하였다. 재건 130 년이 지난 1999 지붕 일부를 해체 수리하였다.임진왜란 전의 경회루는 유득공(柳得恭) 《춘성유기(春城遊記)》에 "남아 있는 경회루의 돌기둥은 높이가 길이나 되고 모두 마흔 여덟 인데. . ."라고 기술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흥선대원군 다시 지은 경회루와 같은 규모인 정면 7, 측면 5칸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 궁금한것이 있는데 원래 돌기둥의 크기가 세길이라면 대강 8척-10척을 한길로 칠때, 24-30척정도가 됩니다. 현재의 돌기둥 길이가 15.5척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현재 단층건물의 높이자체가 몇미터 이상-크게잡아 거의 두배 높아지게 되는것이지요. 이부분에 대해 아시는 분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연못 둘레에는 석연지,연화대 등의 석조물과 이무기 형상을 새긴 석루조가 있고 경회루 난간과 돌다리 기둥에는 여러 가지 형상의 짐승들이 조각되어 있다. 또한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기 이전에는 48개의 돌기둥에 승천하는 용들이 조각되어 있었다고 하며, 방지 서쪽에 만세산(萬歲山) 조성되어 전국의 화려한 꽃들을 심고 봉래궁(蓬萊宮), 일궁(日宮),월궁(月宮), 벽운궁(碧雲宮) 상징적인 작은 모형궁을 만들고 금·은·비단으로 장식하였다고 한다. 연못 속에는 연꽃을 띄우고 산호(珊瑚) 꽂아 놓고 황룡주(黃龍舟) 유선(遊船) 타고 왕이 만세산(萬歲山) 왕래하였다.때로는 금과 은으로 장식한 비단꽃과 동물 모양의 등을 위에 띄우고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워 밤이 낮같이 밝을 정도로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경회루 중층 (즉 3층)에 대한 기록은 성종실록에 있습니다:

지사(知事) 이극배(李克培)는 아뢰기를,

“지난번에 신이 경회루의 견양을 보니 3층(層)에 이르는데, 만약 그렇다면 지나치게 사치한 듯하니 구제(舊制)대로 수리하는 것이 편(便)합니다.”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아니다. 다만 구제(舊制- 주: 이전의 제도)를 감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니 이극배가 또 아뢰기를,

근정전(勤政殿)의 단청을 지금 고쳐 칠하려고 하는데, 신은 만약 진채(眞彩)로 하면 비용이 매우 많이 들 듯합니다. 비록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곳이라 하더라도 어찌 반드시 외관(外觀)의 아름다움에만 힘쓰겠습니까? 그 가운데 떨어져 나간 곳만 고쳐 칠하는 것이 가하고, 반드시 다 고쳐 칠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마땅히 짐작하여 하겠다.” 하였다. (주: 당시 경회루를 3층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 만들었다는 설에 의거한 복원이지요. 용기둥이야 전대인 태조대에 이미 만들었던 것이지만, 성종의 대답을 보면 '구제' 즉 예전의 모델을 쓸뿐이란 말로, 원래 경회루가 3층임을 짐작케 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후대인 연산대에는 수많은 기록이 있지만, 그중 흥미로운 것이 이구절: 

연산 58권, 11년(1505 을축 / 명 홍치(弘治) 18년) 5월 7일(신묘) 7번째기사

후원의 신대를 경회루와 같게 지으라 전교하다. 전교하기를, “후원(後苑)의 신대(新臺)를 경회루(慶會樓)와 같게 지으라.” 하였다. 


이 디지털복원에서는 간단히 용무늬 기둥과 3층으로만 복원한 것인데도 벌써 분위기가 확 다르지요. 현재의 경회루와 복원비교사진입니다. 원형기둥으로 복원하지 않았고 간단히 현재모델에 덧씌운 것인데, 만세산, 작은 모형궁등도 만들어보면 어떤 분위기일지... 사뭇 궁금하군요 (물론 연산군이 흥청망청 논것을 모두 복원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클릭하면 커집니다.
파라노말님.

참고로 연산군은 배 10척을 끌어들이고, 온갓 잔치를 경회루에서 벌였는데 연산군 말년의 기록이 간단히 그 양상을 보여줍니다 (사람 마네킹까지 만들었다는- 한국 최초의 마네킹 기록일지도;)
이때 대비는 경복궁으로 옮겨 거처하였는데, 왕은 대비를 위하여 경회루 연못에 관사(官私)의 배[船]들을 가져다가 가로 연결하고 그 위에 판자를 깔아 평지처럼 만들고 채붕(彩棚)을 만들었으며, 바다에 있는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여 가운데는 만세산(萬歲山), 왼쪽엔 영충산(迎忠山), 오른쪽엔 진사산(鎭邪山) 만들고 그 위에 전우(殿宇)·사관(寺觀)·인물(人物)의 모양을 벌여 놓아 기교를 다하였고, 못 가운데 비단을 잘라 꽃을 만들어 줄줄이 심고 용주 화함(龍舟畫艦)을 띄워 서로 휘황하게 비췄는데, 그 왼쪽 산엔 조정에 있는 선비들의 득의 양양한 모양을 만들고 오른쪽엔 귀양간 사람들의 근심되고 괴로운 모양을 만들었다.

이에 대한 최근의 보고서 기록으로는 군산대 건축공학과 송석기교수님의 한국건축사강의 교안에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즐거운 만남을 위한 누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경회루는 (휴식과 연회)를 즐기기 위한 2층 누각 건물로서 태종의 재위기간 중이었던 1412년에 지어졌다. 경회루는 현재 한국에 현존하고 있는 누각 건물 중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키가 큰 돌기둥과 장대한 지붕의 경회루는 궁궐의 서쪽 편에 있는 인공 호수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길고 부드러운 석재로 사각형의 섬을 축조한 후에 그 위에 경회루를 세웠다. 경회루로 연결되는 3개의 돌다리에 의해 인공 섬은 육지와 연결된다. 경회루 뒤쪽으로 호수를 만들면서 파낸 흙으로 아미산(峨嵋山)이라고 부르는 언덕을 만들었다. 2층의 누각을 지지하고 있는 48개의 석재 기둥에는 용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경회루는 문무백관과 외국 사신을 위한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중인 1592년 원래의 경회루는 소실되었고 석재 기둥만이 남아있었다. 1867년 경복궁이 복원될 때 경회루 역시 다시 건축되었다. 당시 석재 기둥이 교체되면서 원래의 석재 기둥이 갖고 있던 화려함은 사라져 버렸다. 이때 만들어진 석재 다리와 난간에는 동물 문양이 조각되었다. 또한 인공 호수를 따라 연못과 연꽃 문양의 기단, 물을 흘려보내기 위한 용 모양의 관이 석재로 만들어졌다.

삼국-고려때까지 가면 셀수 없이 많은 건축문화재가 소실, 일반에게 소개되지 못하고 잊혀져 있음을 깨닫곤 하는데, 멀리 갈것도 없이 조선전기-중기건물의 규모등, 경복궁내에서만 해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음에 놀라곤 합니다. 여력이 된다면 경회루의 초창기 실물모습은 보고 싶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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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et진보 2012/06/25 17:54 #

    ㄷㄷㄷㄷㄷㄷ저기에 용조각이엿엇다니...
  • 역사관심 2012/06/25 21:08 #

    놀랍죠.ㅎㅎ
  • 동글기자 2012/06/26 10:35 # 삭제

    제 눈에는 현재 경회루가 눈에 익어서인지,,,,3층으로 된 것은 약간 어색해 보이네요..^^
  • 역사관심 2012/06/26 10:42 #

    역시 눈에 익은게 좋을수도 ^^
    저는 웅장한 모습이 보고 싶긴 합니다.ㅎㅎ
  • 이 감 2012/06/29 06:44 # 삭제

    지금 경복궁은 우리가 그 모습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고종대의 것을 바탕으로 복원할 뿐더러 경회루는 고종대에 중건된 후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에 이를 임진왜란 전으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죠.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의 경우도 대화재 이전에 중층건물이었던 시절의 모습이 경회루와는 비교도 안될 자료인 사진으로 확실히 남아있어도 현재의 중화전을 대화재 이전으로 돌리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서울 근교에 경복궁 지형과 비슷한 터를 골라 부여의 '백제역사재현단지'처럼 '경복궁 공원'을 만들어서 임진왜란 바로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방송3사라든지 합자해서 초기경복궁 세트를 만드는 것도 좋겠고요. 다만 '대왕 세종'을 위해 만들었던 경복궁 세트는 광화문과 근정전 일대를 조금 축소해서 만들기는 했지만 고증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은 것으로 보여 안타까웠더랬죠.

    아무튼 본문의 복원도에서 공포양식별, 낙양각의 유무별 복원도가 그려지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 역사관심 2012/06/29 10:38 #

    동감입니다 이감님. 저도 조선전기 건물들을 따로 복원한 (예컨대 경복궁 옆이라든가) 곳을 만드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전기와 중기- 후기 건물의 비교도 될테고 말이지요.

    참고로, '셋트장'식 복원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재현단지처럼 제대로 만들어서 후세에 '문화재'가 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도 그런 재현단지가 만들어지면, 더 멋지게 촬영되더군요 (백제재현단지에서 찍는 드라마만 봐도- 경복궁에서 찍는 드라마는 말할것도 없구요). 그래서 방송국에서 '출자'는 하되 (만약 참여한다면) 입김을 넣는 것은 절대 하면 안되고, 문화재청의 주도하에 제대로 해야 할것 같습니다. 역시 '국영'사업으로 하는것이 제대로겠지만요. ^^

    어찌되었든, 조선시대도 무려 500년이 넘는데 다양한 건축군을 보고 싶습니다.
  • 보고싶은남자 2012/07/03 23:59 # 삭제

    물론, 대만은 중국을 잃었으니, 비교대상으로 그렇지만...

    대만의 경우에는 자금성을 그대로, 복제해서 tv드라마를 찍을 수 있는 세트장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있습니다.

    물론, 목제가 아닌 콘크리트제에, 색체를 입혀서 만들었지만... 그런 방안도 있기는 하지만...

    비용대비 효과에 부정적입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중국처럼, 각 시대별로 모형을 만들어서, 해당 지역에서 전시하는 것입니다.
  • 역사관심 2012/07/04 01:17 #

    저는 백제 재현단지 형식이 좋다고 봅니다. 황룡사-미륵사 처럼 직접 복원하는 것 다음으로 말이지요. 드라마 셋트장은 그닥 와닿질 않습니다만 (물론 민속촌 같은 곳을 시대별로 만들어서, 셋트장 만들고 부수고 하는게 아닌, 꾸준히 거기서 시대별로 찍는 건 찬성합니다만).

    만월대는 직접복원, 안학궁 정도는 통일하면 궁부지 바로 옆에 '중창'하면 좋겠군요 ^^ 욕심.
  • 보고싶은남자 2012/07/04 23:15 # 삭제

    글쎄요. 각자의 생각이 있는 것이니까요.

    이미, 있는 문화재를 시대별로, 실물로 만들어서 전시한다는 개념은... 너무 없어보이네요.
    우리가 그정도로 문화재가 없군요. ㅜㅜ

    현재에는, 출토지를 덮고 그 위에다가 건설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 옛궁전을 그런식으로 복원중이죠.

    굳이 옆부지를 쓸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2/07/04 23:22 #

    하긴 그럴수도 있겠군요. 일본식으로 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요는 실물을 보고 싶다는 것이니까요 (물론 최대치 고증하에).
  • K I T V S 2019/08/18 13:03 #

    훨씬 더 웅장한 경회루의 모습이... 지금은 없는게 아쉽네요ㅠㅠ
  • 한라온 2020/06/09 20:18 #

    경회루가 3층이었다니.....전망은 훨씬 더 좋았겠군요 ㄷㄷㄷ
    저 기둥의 용조각은 유구국 사신이 와서 극찬했던 포인트이기도 하다죠.
    백제문화단지가 고증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정말 많은데, 그 취지 자체는 굉장히 좋다고 봐서 조선전기 건축도 그런 테마파크 식으로 만들어 봤으면 좋겠습니다만, 역시 문제는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오는 사람들이 많을까 하는 것과 그만한 넓이의 부지가 있는가 하는 것이겠죠. 경제성이 없으면 다 허사니까요.
  • 역사관심 2020/06/14 02:45 #

    아직은 '설'일 뿐이지만, 뭔가 더 구체적인 사료가 등장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른 댓글에도 썼듯이 이젠 진짜 어떤 형태건 좀 '눈으로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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