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자객들과 조선자객! 역사전통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항시 이와 같이 고위층을 암살하거나,
아예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매력적인 전통소재인 '자객'.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자객'의 역사나 그 기원이 자세하게 알려져 있어, 문화컨텐츠 소재로 쓰여도 신빙성이 있어보이지만, 언뜻 '유학의 나라' 조선에서 저런 자객들이 그것도 저런 복장으로 활동했을까...의심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그래서 실록의 수많은 자객기록중 몇가지 흥미로운 구절들을 살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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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자객의 복장을 보여주는 오래된 기록입니다.

세조 31권, 9년(1463 계미 / 명 천순(天順) 7년) 12월 22일(병오) 1번째기사
우익위 변포로 하여금 자객의 기계를 써서 군사를 훈련하게 하다
백사정(白沙亭)에 거둥하여 습진(習陣, 진을 만드는것)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사자위(獅子衛)·사대(射隊)·겸사복(兼司僕)과 좌상(左廂)·우상(右廂)으로 하여금 우전(羽箭)을 서로 쏘게 하고, 주창(朱槍)을 서로 찌르게 하였다. 우익위(右翊衛) 변포(卞袍)에게 명하여 흑의(黑衣)를 입고 고립(高笠)을 쓰고 깃 화살을 가지고 겸사복(兼司僕)을 거느리고 기계(奇計)를 써서 좌상(左廂)과 우상(右廂)에 뛰어 들어가서 대장(大將)을 쏘게 하고서 말하기를,
“이것은 자객(刺客)의 무리이다.” 
하였다. 변포(卞袍)가 우상(右廂)에 이르러 들어가지 못하고, 좌상(左廂)에 이르러 진영(陣營)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대장(大將) 심안의(沈安義)를 쏘았다. 임금이 말하기를,
“표신(標信) (주: 궁중의 급변을 전할 때나 궐문을 드나들 때 표)없이 뛰어 들어가는 자가 어찌 적(賊)이 아닌 줄 알고 가볍게 진(陣)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는가? 한계미(韓繼美) 같은 자는 훌륭하다.”
하고, 명하여 한계미·변포 등에게 각각 말 1필(匹)을 내려 주었다.

--> 세조대, 즉 15세기중반의 이 구절은 '자객의 복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즉 자객부대를 가상으로 만들어 부대를 습격하는 가상훈련을 하는 모습인데, '흑의를 입고 고립을 쓰고 깃 화살을 가지고..." 란 굵은체 구절이 우리가 영화에서나 보던 자객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즉, 검은 옷을 입고, 고립 즉, 높은 삿갓 (아래 사진이 '립'입니다)을 쓰고 깃털달린 화살을 쏘는 모습입니다. 고립역시 아마도 흑의와 같이 검은 색일 가능성이 높겠지요. 저 위의 포스터주인공 혹은 아래 사진의 흑립을 쓴 모습일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단 말이지요.
선조 40권, 26년(1593 계사 / 명 만력(萬曆) 21년) 7월 1일(계축) 4번째기사
자객을 만난 유정에게 선전관을 보내 문안하고 위로하다
상이 유정(劉綎)이 영중(營中)에서 자객(刺客)을 만났다는 소식을 듣고 선전관(宣傳官)을 보내어 문안하고 예물(禮物)을 증정하였으며, 글을 지어 보내어 위로의 뜻을 전하였다.
--> 선조대에, 임진왜란(1592~98)초기에 영중營中 즉 진영이나 자택안에서 자객을 만난 명국장수 유정에게 위로하는 장면입니다. 바로 첫번째 사진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그나저나 죽이려 한건 역시 일본측이었을까요 아니면 조선이나 명의 어떤 조직이었을까요.

중종 39권, 15년(1520 경진 / 명 정덕(正德) 15년) 4월 16일(계유) 2번째기사
이신이 김식이 망명한 정상을 말하다
중략
전일 최운(崔澐)이 저를 보고 말하기를 ‘네가 곤궁하거든 내집에 오너라.’ 하였으므로 드디어 회덕현(懷德縣)에 있는 그의 처부(妻父)의 집에 갔더니 최운이 있었는데, 저를 보고 자못 기뻐하며 말하기를 ‘너는 김식이 도망하여 붙여 있는 곳을 아느냐?’ 하기에, 신이 모른다고 대답하였더니, 최운이 말하기를 ‘김식이 반드시 무주(茂朱)에 있는 오희안(吳希顔)의 집에 갔을 것이다.’ 하고 곧 식량을 주어 오희안의 집으로 가게 하였습니다. 김식이 있는지를 물으니 ‘김식이 지금 없으나 내집으로 돌아올 것이니 다시 중이 되지 말라.’ 하고 이어서 조정의 기별을 말하기를 ‘듣건대 심정(沈貞)이 주초대부필(走肖大夫筆)이라는 참서(讖書)를 궐내(闕內)에 떨어뜨렸으므로 상께서 매우 놀라셨고, 그뒤에 홍경주(洪景舟)의 집에 가서는 말하기를 「상께서 외로우신 것을 사람들이 아느냐?」 하였는데, 홍경주가 드디어 소매안에서 대내(大內)에서 나온 글을 내어 보이니, 심정이 매우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런 일을 성주(聖主)께서 과연 이미 아시는구나.」 하고 홍경주와 함께 남곤(南袞)의 집에 가려 하였으나 홍경주가 가지 않았고, 그뒤에 심정이 사람을 시켜 엿보아 홍경주가 남곤의 집에 간 것을 알고 심정도 가서, 세 사람이 둘러앉아 함께 이야기한 뒤에 정광필(鄭光弼)의 집에 가서 말하니, 정광필이 말하기를 「상께서 그 사람을 워낙 흠결 없게 대우하시는데 어찌 그런 일이 있겠느냐.」 하였으나, 드디어 11월 16일에 신무문(神武門)을 거쳐 들어가 참소하여 해치는 일을 꾸몄다고 한다. 너는 이 말을 김식에게 가서 말하라.’ 하였습니다.

신이 그 말을 듣고 오희안의 집에 갔더니 과연 김식이 있었는데, 그날은 1월 12일이었습니다. 김식을 보고 최운의 말을 죄다 전했더니 김식이 말하기를 ‘소인이 하는 일을 내가 이미 아나, 다만 어떻게 하는지를 몰랐었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그 상세한 것을 알았다.’ 하였습니다. 김식은 심정을 미워하여 저에게 말하기를 ‘내 둘째 아들 김덕순은 건장하고 용맹한 사람이다. 심정을 쏘려 꾀하였는데 내가 말린 적이 있다. 너와 내 아들은 자객(刺客)이 될 만하다. 김윤종에게 보검(寶劍)이 있으니 그 검으로 심정을 먼저 없애고 또 남곤과 홍경주를 없애면 일이 자못 쉬워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듣고 이틀을 묵은 뒤에 김식이 저를 데리고 함께 영산(靈山)에 있는 이중(李中)의 집에 갔는데, 이중도 말하기를 ‘내 매부 김억지(金億之)는 자못 장건하여 손으로 벽을 뚫을 수 있다.’ 하니, 김식이 도리어 말하기를 ‘정백(丁白)9937) 이 근일 간고(艱苦)한데, 한 고을에서 3백여 인을 불러 모을 수 있으니, 이런 무리를 서너 고을 모으면 군사를 일으키기도 쉬울 것이다.’ 하였습니다. 중략

--> 자객의 자질을 보는 장면으로, 그 무술이나 힘을 인정해야만 자객의 자질을 갖출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객이 아무나 (즉 도둑떼같은)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자객이란 존재가 한 군대의 선봉대같은 중요한 역할도 했음을 추측케 하는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광해 123권, 10년(1618 무오 / 명 만력(萬曆) 46년) 1월 7일(정묘) 14번째기사
좌참찬 허균이 흉소의 일로 올린 상소문
중략
신이 기반도 미약한 처지에서 화근을 제거하자는 논의를 극력 주장하였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이 오래전부터 신을 죽이려 하였는데, 지금은 기가(奇家)973) 에서 원한을 품고 사람을 사주하여 흉소(兇疏)를 올리게 하였습니다. 이병은 곧 신과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않은 자로 전일 아뢰면서 ‘군부를 위해하려 모의한다.[謀爲君父]’는 네 글자를 스스로 지어 신에게 덮어씌우기까지 하였는데, 기준격(奇俊格)974) 의 소가 내려지기도 전에 이병이 무슨 수로 미리 알고서 갑자기 불측한 이름을 덮어씌우게 되었는지 신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국문하는 자리에 나아가 기필코 이병과 대질 신문을 벌여 신이 군상을 위해하려 모의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 곡절을 물어보고 싶었습니다만 단지 서서히 결정하겠다고 전교하셨으므로 신은 거적을 깔고 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자헌이 유배되어 나갈 적에 다시 혈소(血疏)를 진달하여 함께 대질 신문을 벌이려 하였습니다만 곧바로 ‘대간의 논계가 처치되지 않았으니 서서히 정배보내라.’는 분부를 내리셨으므로 신은 그저 입대(入對)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지금 자객(刺客)이 횡행하면서 신을 먼저 없애려 하고 있으니, 신이 한번 죽고 나면 신의 원통함을 풀 길이 없겠기에 감히 대론이 한창 일어나고 있는 때에 번거롭게 해드리는 일을 피하지 못한 채 우러러 간절한 충정을 진달하게 되었으니, 그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중략
--> 광해군대의 이 기록은 자객이란 존재가 그리 드문 존재가 아니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조선시대 역시 서로 정치적인 숙적을 해하는데 자객이 꽤나 많이 쓰였음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영조 16권, 4년(1728 무신 / 청 옹정(雍正) 6년) 3월 20일(경오) 13번째기사
오명항이 진위의 남쪽에 진을 치다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의 군사가 진위(振威)로 행군하여 현(縣)의 남쪽 들판에 진을 쳤다. 날이 처음 어두워질 무렵에 나졸이 보고하기를,
“궁검(弓劍)을 찬 장교(將校)가 와서 말하기를, ‘가도사(假都事)가 평택(平澤)에서 죄인을 잡아가지고 진(陣) 밖에 와서 머물러 있는데, 거느린 기마병(騎馬兵)과 보병(步兵)이 반초(半哨)가 넘어 밤에 지나가면 놀라고 의심을 받게 될까 두렵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오명항이 군중(軍中)에 명하여 그 장교를 잡아 묶게 하고 계엄하여 기다리게 했다. 얼마 후 가도사 김성옥(金聲玉)이 만나기를 청하므로 묶어 들이게 하였다. 이때가 밤 2경(二更)이었는데, 진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고 포시(炮矢)가 어지럽게 날자 백의를 입은 군졸들이 종횡으로 달려 달아났다. 김성옥 역시 소란한 틈을 타고 어지러운 군사 속으로 도망하므로 중군(中軍)이 마침내 김성옥을 잡아 묶었다. 또 한 적도가 칼을 휘두르며 대장의 장막을 침범하였는데 군관(軍官) 신진숙(申震熽)이 달려가 칼을 빼앗고 목을 베었다. 이때 밤은 어둡고 갑자기 변이 일어나 군사가 장차 크게 궤멸하게 되었는지라, 종사관 조현명(趙顯命)이 옷소매를 잘라 종자(從者)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이것으로 징표로 삼으라.”
하였다. 얼마 후 군사가 조금 진정되어 김성옥 등 정탐(偵探)하러 온 10여 인을 모두 효수(梟首)하고는 다시 항오를 정돈하고 수검(搜檢)을 계속하여 또 몇 명의 적을 찾아 참하였다. 어떤 적이 막 묶이면서 갑자기 몸을 솟구쳐 진을 뛰어넘어 도망했는데 잡지 못했으니, 이는 바로 적장(賊將) 이배(李培)였다. 이배는 후에 국문하는 자리에 나와 스스로 말하기를,
“자객(刺客)이 되어 진위의 도순무(都巡撫) 진영에 들어갔으나, 묶였다가 도망하였다.”
라고 했다.
---> 더욱 후대인 영조대 즉 18세기에도 자객은 등장합니다. '변희량의 난'에 관한 부분인데, 이배란 자가 '자객'이 되어 적진에 들어갔다가 잡혔다가 탈출한 기록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자객의 무술기량이 어느정도임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영조 109권, 43년(1767 정해 / 청 건륭(乾隆) 32년) 7월 15일(정축) 2번째기사
포도 대장 이태상을 찌른 도둑을 현상금을 걸어 잡게 하다
임금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영의정 김치인(金致仁)이 ‘어제 새벽에 어떤 도둑이 포도 대장 이태상(李泰祥)의 배를 칼로 찔렀다.’고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웃 나라에 알려지게 해서는 안된다.”
하였다. 이어 전교를 쓰라고 명하기를, 중략.
--> 직접 '자객'이란 단어는 없지만, 무려 '포도대장'이 한밤중에 영중에 들어 도둑에게 찔리는 장면입니다. 아마도 '자객'이 아닐까요.

영조 34권, 9년(1733 계축 / 청 옹정(雍正) 11년) 5월 12일(임진) 2번째기사
주강에서 훈련 대장 장붕익이 특진관으로 입시하자 자객에 대한 일을 묻다
주강(晝講)을 행하였다. 훈련 대장 장붕익(張鵬翼)이 특진관(特進官)으로 입시하자, 임금이 자객(刺客)에 대한 일을 물으니, 장붕익이 대답하기를,
“잠결에 창 밖의 사람 그림자를 보고서 칼을 들고 나가니, 사람이 칼을 가지고 대청 마루 위에 섰다가 이내 뛰어서 뜰 아래로 내려가므로 함께 칼날을 맞대고 교전(交戰)하여 외문(外門)까지 옮겨 갔었는데 그 자가 몸을 솟구쳐 담에 뛰어 올라 달아났습니다.”
하였다.

--> 가장 흥미로운 부분으로 왕인 영조께서 훈련대장에게 자객의 모습을 묻자, 훈련대장 장붕익이란 자가 간밤에 아마도 대궐 (혹은 자택)에 침입한 자객의 모습을 그린 부분입니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장면을 글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믿기힘든 구절입니다. 

대청마루에서 싸우다가 뜰로 뛰어내려 다시 칼싸움, 그리고 몸을 솟구쳐 담을 뛰어 올라 도망갔다는 장면으로, 아래 보이는 대궐 담 정도를 한숨에 뛰어오를 무술 실력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재밌는 구절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조'시대의 자객 하나만 소개하고 마무리해보지요.

정조 4권, 1년(1777 정유 / 청 건륭(乾隆) 42년) 8월 11일(갑진) 1번째기사
이찬을 추대하여 반정을 꾀하려던 일당을 복주시키다
중략
홍신덕은 공초하기를,
“올해 6월 무렵에 홍상범이 그의 집에다 제적(諸賊)들을 모았을 적에, 최세복(崔世福)과 박해근(朴海根)이란 자가 있었는데 모두 홍술해의 적소(謫所)에서 와서 함께 비밀로 모의(謀議)하는 것에 참여했는데, 그 모의는 자객(刺客)을 모집하여 먼저 도승지(都承旨)를 해치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중략
개련(介連)을 국문하였다. 개련은 홍술해의 첩이다. 공초하기를,
“신이 홍술해의 집에 있을 때에 취오(炊鏊)하며 비손을 하는 상항을 보았고, 또 홍술해의 아내가 감정(甘丁)과 정이(貞伊)의 무리를 보내며 돈을 가지고 무녀(巫女)의 집에 가서 저주(詛呪)하게 하는 일도 보았습니다. 신도 역시 일찍이 국가를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서 효임(孝任)과 함께 협력하여 치밀하게 하였으니, 안으로는 자객(刺客)에 관한 일과 밖으로는 저주하는 일들을 함에 모두 함께 공모한 것이 사실입니다.”
중략
효임(孝任)이 요망한 무녀(巫女)와 결탁하여 흉악한 것을 만들어 묻고 석천(射天)하는 짓을 하게 된 것도 또한 너희가 역적 이찬(李禶)을 추대하는 데서 연유하게 된 것이고, 홍상범·홍상길 등이 몰래 자객(刺客)을 끌어들여 칼을 품고 대궐에 들어가게 된 것도 또한 너희들이 역적 이찬(李禶)을 추대하는 데서 연유하게 된 것이다. 여러 역적들의 천만 가지 죄악이 오로지 추대하기로 하는 음모(陰謀)에서 연유한 것으로 그 앞날을 위한 일을 삼은 것이다. 어서 빨리 지만(遲晩)하게 되었다고 하라.”
중략
6일 뒤에 홍술해(洪述海)를 친국(親鞫)하고, 다음 달에 홍지해(洪趾海)를 추국(推鞫)했는데, 홍술해는 귀양갈 때에 부적(符籍)과 주문(呪文)을 간직한 일을, 홍상범(洪相範)은 변을 일으키려고 자객(刺客)을 모집한 일을, 효임(孝任)은 요망한 무녀(巫女)와 흉악한 것을 만들어 묻은 일을, 홍계능은 추대(推戴)하려고 흉악한 모의를 한 일을 귀양간 뒤에도 오가며 지휘(指揮)하였음을 승복(承服)하였고, 홍지해(洪趾海)의 공초도 또한 같았다.

--> 자객을 한명 쓰는 일도 있지만, 위와 같이 '집단'으로 모집해서 쓴 일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특히 '대궐안에 칼을 품고' 들어가는 집단자객은 아래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허구같은 모습입니다. 하긴 맨 처음 기록인 '세조'때의 기록도 '이것은 자객의 무리이다' 라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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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포스팅을 위해 자료조사를 할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 드라마에서 나오는 자객의 모습이 나와주리라고는 전혀 기대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선시대에는 자객이 드물었고 저러한 복장은 아니었겠지 라고 생각하고 조금 제대로 고증하길 바란다는 느낌으로 쓰려고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느낀 점을 몇가지 정리해보면 의외로 '자객의 복장, 무술실력, 그 규모'등이 자세히 실록에 나와 있다는 점. 그리고, 유교와 선비의 시대였던 조선시대에도 수백년에 걸쳐 자객의 존재가 꽤 빈번하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쓰였다는 것.

마지막으로, 조선이 이정도라면 그 전대인 고려나 삼국시대에는 과연 어떠한 무술집단이 판을 쳤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진은 무려 신라시대의 현존하는 삿갓- 원효대사元曉, 617년 ~ 686년의 삿갓, 포항 고찰 오어사(吾魚寺) 소장).

앞으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조선대나 그 이전대의 자객의 모습'. 더 이상 그 존재나 모습을 허구로 보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러한 자객의 존재를 더 부각시켜 여러 컨텐츠나, 프라모델이나 로봇물등으로 발전시켜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자객의 존재는 특정국가(예컨대 일본)만의 것이 아닌 '동아시아'전체의 문화같은 느낌입니다.

사진은 영화 낭만자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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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耿君 2013/02/11 21:44 #

    선조 때(1593년) 자객을 만났다는 유정은 명나라의 장수인 듯 합니다만... 이때는 임진왜란 시기로, 영중은 유정이 머무는 진영 안을 이야기함이 아닐는지요?
  • 역사관심 2013/02/11 21:49 #

    급히 쓰느라 '유정'이란 이름을 보고도 신하로 써버렸군요. 확실히 그러한듯 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솔까역사 2013/02/11 22:03 #

    이거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고대사의 유명한 자객으로는 누유, 황창랑, 김천이 있다고 하네요.
    출처 삼천리
    http://db.history.go.kr/url.jsp?ID=NIKH.DB-ma_15_059_0060
  • 역사관심 2013/02/11 22:12 #

    오 이거 참 재미있네요, 삼국의 자객! 언젠가 2부로 올려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솔까역사 2013/02/11 22:38 #

    출처를 잘못 말했네요.
    삼천리가 아니라 별건곤입니다.
    누유는 삼국사기에 나오는데 반해 황창랑과 김천은 기록이 모호합니다.

    황창랑관련:
    http://kallery.net/index.php?g_clss=forum&g_prcss=thrd&g_tmplt=&g_brd=20&g_thrd=1825

    고대에는 자객이 많았습니다.
    왕들이 자객에게 죽는 일이 많았죠.
    그런데 자세한 설명이 남아있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 역사관심 2013/02/11 23:04 #

    역시 추측대로군요. 역시 삼국사기에도 흥미로운 소재가 엄청 많습니다.
  • 동글기자 2013/02/15 10:48 # 삭제

    오호~ 잼난 내용 잘보고 갑니당.!!!
  • 역사관심 2013/02/15 10:58 #

    오랜만입니다~! 설 연휴 잘 보내셨길. 감사합니다~~ =)
  • 레이오트 2015/03/14 11:45 #

    현실적인 자객은 오히려 일반인의 복장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근래 나온 각종 매체물, 특히 어쎄씬 크리드 시리즈 덕분에 암살의 정의가 바뀌었지요.
  • 역사관심 2015/03/16 22:54 #

    안녕하세요 레이오트님> 일반인 복장의 자객이 많았겠죠- 그래야 구별하질 못하니... 크리드 이전에 일본의 닌자가 가장 이미지를 고착화했던 것 같아요. 크리드자체가 닌자영향을 받았으니;

    그런데 그런면에서 가장 첫 사료의 기록은 참 흥미롭습니다. 흑의에 삿갓을 입었다는 그 기록말이죠...
  • 레이오트 2015/03/16 23:19 #

    흑의는 암살작전이 주로 수행되는 야간을 고려한 것이고 삿갓의 경우에는 얼굴을 가리면서 동시에 의심을 덜 사기위해 선택된게 아닐까 싶네요.
  • 역사관심 2015/03/17 02:07 #

    그럴수도 있겠네요. 삿갓은 많이 이용되었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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