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라진 대표다리 (3)- 신라 귀교(鬼橋)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신라 도깨비 문양 기와

이번에 소개하는 사라진 거대다리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신라의 비형랑이 하룻밤새에 놓은 귀신다리 귀교입니다. 이 귀교는 신라시대 형산강에 놓여졌던 최초의 석교이자 금교와 함께 서천을 건너던 교량이었습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제26대 진평왕 17년(597)에 비형으로 하여금 귀신을 부려 신원사 북쪽 개천에 다리를 놓으라 하였더니 비형이 그의 무리를 시켜 돌을 다듬어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놓았으므로 귀교, 즉 귀신의 다리라고 불리게 됩니다.

실제로 저녁무렵의 형산강은 그 분위기가 대단합니다 고즈넉히 아름다우면서도 신비한 분위기.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자세히 전설을 써보자면.
때는 신라 제 25대 진지왕(576-579년). 왕은 어느 날 사량부에 사는 여인인 도화랑이라고 불리는 딸이 너무나 예쁘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궁중으로 불러 자신의 첩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러나 도화량은 정조는 결코 뺏길수 없으며 현재 자신은 남편이 있는 몸이기 때문에 왕의 말을 따를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진지왕은 죽음의 위협까지 하나 도화랑은 뜻을 꺾지 않습니다. 집요한 왕은 이에 "그렇다면 네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라고 물으니 "그때는 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한 뒤에 비로소 그녀는 왕으로부터 풀려 날 수 있었습니다 (주: 이 말이 실수...)

579년 진지왕은 난으로 말미암아 폐위되어 얼마되지 않아 죽고 맙니다. 왕이 죽고 그 2년뒤 (581년) 도화랑의 남편이 죽습니다. 남편의 죽음후 백일째 되던 날 밤, 진지왕의 혼이 도화랑을 찾아갑니다. 왕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도화의 방으로 들어가 "지금 네 남편이 없으니 옛날 약속한 것을 지켜라!" 하고 말합니다 (주: 엄청난 호색가이거나 도화랑에게 엄청나게 끌렸거나 둘중 하나군요...).  그녀는 이를 부모에게 알렸으나, 군왕의 명이므로 거역할수 없다는것이 부모들의 의견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도화랑은 왕의 현신과 7일간 부부의 정을 가집니다. 왕의 혼령이 머무는 동안 오색 구름이 지붕을 덮고 향기가 방에 가득하더니 7일이 지나자 왕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도화랑에게 태기가 있고 아들을 낳는데 그 순간 천지가 진동했다고. 이러한 기묘한 스토리를 거쳐 나온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그 유명한 '비형'입니다. 
2012년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KBS 대왕의 꿈에서의 비형랑 (좀 자주 여러 형태로 쓰이길)

제 26대왕인 진평왕이 (주: 이때 왕의 나이가 불과 13-14세) 이 아이에 대한 사연을 듣고 비형을 궁중에서 기릅니다 (주: 사실 전대왕인 진지왕의 혼령의 아이인지라 찜찜할수도 있을텐데). 관대하게도 왕은 비형랑이 15세가 되자 집사라는 벼슬을 내립니다. 여기서부터가 비형랑의 놀라운 스토리.

그는 매일밤마다 궁중에서 밖으로 나가 귀신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놀다가 새벽에 절의 종소리가 들리면 귀신들도 흩어지면 돌아오곤 합니다. 밤마다 멀리 도망가서 노니 왕은 용사 50인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는데, 매번 월성(月城)을 날아 넘어 서쪽 황천 언덕 위(경주서쪽에 있음)에 가서 귀신들을 거느리고 놀았습니다 .진평왕은 이 사실을 알고 비형으로 하여금 귀신들을 이끌고 신원사 북쪽의 개천에 다리를 놓도록 명합니다. 왕의 속셈으로는 모량내, 기린내, 그리고 물개내 세물줄기가 합쳐지는 이곳은 조금만 비가 와도 물살이 거세 왠만한 돌다리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귀신을 부리는 비형랑은 왕가숲 귀신들을 불러모아 다리를 만들게 합니다. 왕가숲은 경주의 많은 고대유적이 그렇듯 현존하지 않습니다. 다만 왕버들, 소나무, 팽나무 등으로 구성되었다고 전합니다. 

이게 왕버들입니다 (경주 오릉소재)
윗사진들은 경주 반월성의 팽나무로 이러한 나무들이 빽빽했다면 왕가숲의 분위기를 짐작할수 있습니다 으스스...

산림이나 정원 전문가의 의견으로 팽나무는 거목으로 자랄경우 엄청난 위압감을 주고, 더우기 왕버들의 줄기에는 큼직한 공동이 있어 귀신이 거처한다고 생각하기 쉬운 나무들이라고 합니다. 약간 이야기가 새지만 귀신들의 숲이라는 왕가숲을 설명하는데 있어 '수종'은 큰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왕버들에 대한 글을 잠시 인용해보면 (출처 링크):
"왕버들은 습기가 많은 곳, 때로는 거의 물 속에 잠긴 채로 수 백년을 넘 게 삶을 이어 간다. 그래서 나무 속이 잘 썩어 버리고 줄기에 큰 구멍이 뚫리는 경우가 많다. 구멍 속에 잘못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고 죽어 버린 곤충이나 설치(楔 齒)류에 들어있던 인(燐)의 작용으로, 비 오는 여름날의 밤에는 아름드리 왕버들의 줄기에서는 푸른 불빛이 번쩍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름하 여 도깨비불이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가 다 그러하듯이 왕버들의 푸른 도깨비도 무섭고 두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왕버들의 또 다른 이름은 귀류(鬼柳, 귀신버들)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종이 들어찬 왕가숲은 당시 신라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이었을지 간접적으로나마 기분을 맛볼수 있습니다 (아래사진도 경주지역의 왕버들).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왕가숲의 귀신들에게 일을 시켜 돌을 다듬어 단 하룻밤 사이(!) 새벽이 가까워서 신원사 범종소리를 비롯 경주의 무수한 사찰에서 범종소리가 울릴 무렵 거대한 석교를 완성시켜버리게 됩니다. 경주사람들은 사람의 재주로 도저히 이룰수 없는 훌륭한 다리를 하룻밤새에 지었다하여 귀교(鬼橋)라 이름을 붙입니다.

진평왕은 당시 삼십대초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관대함과 현명함으로 (그리고 서양고사에 흔히 나오는 이러한 유의 슈퍼내추럴 인물에 대한 질투나 두려움없이) 이에 감탄하여 비형랑에게 오히려 귀신들의 무리중에 인간으로 현신하여 조정의 정사를 도울만한 자가 있으면 추천하라 합니다 (주: 개인적으로 비형랑의 귀신무리는 그가 이끌던 부하들이 아닐까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이에 비형은 길달이라는 귀신을 천거합니다. 이 귀신은 임용하자마자 일을 일사천리로 해내고 곧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자식이 없는 각간의 임종에게 그를 주어 이 뛰어난 귀신의 현신을 양자로 삼게 합니다. 

양아버지가 된 임종은 아들 길달에게 명령하여 홍륜사 남쪽에 문루를 세우게 하고 길달을 매일 밤 그 문루위에서 자도록 했다고 합니다. 흥륜사의 금당 동쪽 벽에는 아도, 이차돈, 의상, 혜숙, 안함, 서쪽 벽에는 표훈, 사복, 원효, 혜공, 자장 등 10명의 고승을 진흙으로 조성하여 모셨다고 합니다. 흥륜사 남문은 어느덧 ‘길달문(吉達門)’이라고 신라사람들에게 불리게 됩니다. 어느날 사람의 형상이 지겨워졌는지 길달은 여우로 변하여 도망가버립니다. 비형랑은 부하귀신 기신을 시켜서 길달을 냉혹하게 잡아 죽여버립니다. 이 소식은 신라의 귀신들에게 좌악 퍼져 모든 귀신들은 비형을 매우 무서워하여 그의 이름만 들어도 달아나게 됩니다. 신라왕성과 민가에는 어느덧 이러한 노래가 퍼지게 됩니다.

"성제의 혼이 아들을 낳았으니 바로 비형랑의 집이었네. 
날고 뛰는 귀신의 무리들아, 
여기에는 머무르지 말라!. "
훗날 경주사람들은 이 가사를 적어 문에 붙여 두어 귀신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주: 마치 약 300백년후의 후배 '처용'을 연상케 하는 전적이죠).
이런 식이었을지도...

이러한 부적붙이기에 대해 조금더 들어가보면 비형을 가사로 한 것을 써서 대문에 붙여 두면 잡귀신을 물리친다는 향속이 생겨났고 이것을 목랑 또는 두두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왕가숲은 어느덧 목랑을 붙이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되는 거목들의 숲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

덧붙여 비형랑의 주인이었던 진평왕의 죽음 역시 신비한 일로 가득합니다. 632년에 승하하기 2년인, 630년에는 대궁 뜰이 갈라지는 일이 있었고, 631년 2월에는 흰 개가 궁궐 담장에 올라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 세달후 반란이 일어나나 진평왕은 이를 물리칩니다. 그 다음으로는 흰 무지개가 궁궐 우물에 들어가고, 토성이 달을 침범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때가 진평왕의 나이 60대, 만약 살아있었다면 비형랑은 어느덧 50대가 되어 있었을 겁니다. 비형랑은 귀교건설과 길달처치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록이 없습니다. 만약 630년에 살아 있었다면 자신을 위해준 왕을 위해 최고 퇴마사로서 무언가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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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귀교전설' '비형랑전설'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정신차리고 현실적으로 유적에 대해 조금 살펴 보지요. 귀교라는 전설적인 석교의 정확한 위치는 2007년까지도 신원사(神元寺) 북쪽이라는 것외에는 관련기록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경부고속도로 경주 IC에서 서라벌대로를 따라오다보면 첫 교량인 금성교(金城橋)를 지나는데 그 남쪽에 귀교보(鬼橋湺)가  있으며, 그 일대로 추정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최근 2000년대들어 귀교추정지가 활발하게 발굴중입니다. 문화재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귀교의 추정지는 지금의 신원사 북쪽개천 오릉 북쪽으로 현재 콘크리트로 된 문천교하류 약 100m 지점 하상에 십여점의 다리부재가 흩어져 있습니다. 현재 신원사는 폐사되고 없으나 노출되어 있는 석재유구는 다리 부재임을 알수 있게 하며. 이는 귀신이 하룻밤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하나 우수한 다리였음을 의미하며 앞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 더욱 귀교에 관한 사항이 밝혀지리라 기대된다고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아래의 지도로 월정교-일정교-귀교의 대강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아래사진들에 보이듯 엄청나게 유구가 남은 일정교보단 덜해도 주춧돌만 남은 월정교보다도 더욱 많은 원석재가 발견된 다리입니다.

탑동 오능부근 신원사터에서 발굴중인 실제 귀교 추정지 (경주문화재관리국 출처)
유구들의 규모로 다리의 규모를 추정해 볼수 있습니다.
어느덧 5년전이 된 조사에 대한 최신보고가 더 활발히 소개되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귀교는 다리의 축조재료 종류가 석재임을 밝혀주는 최초의 기록으로 또한 한국의 역사에 한획을 긋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월정교 복원 (제대로 제발...)이 끝남과 함께 일정교와 귀교에 대한 엄밀한 조사와 복원이 있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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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2007년 발굴이전인 2000년에도 귀교의 위치에 대한 뉴스가 있었습니다 (클릭 원기사링크)
발췌: 전설로만 여겨져 오던 귀교(鬼橋)가 경주시 황남동 오릉 북쪽에서 발견됐다.이번에 확인된 유구는 길이 25m, 너비 2.5m, 높이 1.8m 규모로 남북으로10여개의 교각이 설치돼 있으며 멍애보와 세로보 각각 30개와 교량을 덮었던 판석 75개도 발견됐다. 또 교각을 지탱하기 위해 땅을 파고 자갈 등을 채워 다져 놓은 직경 50cm 내외의 원형과 네모형의 초석 106개도 발견돼 상당히 큰 규모의 교량이었음이 확인됐다. 이번 발굴은 1997년 오.하수 배수관로 매설 작업중 일부 석조유물이 노출되면서 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이 일대 800여평에 대해 작업을 벌이게 됐다. 경주문화재연구소측은 "출토된 교량 부재용 석재가 500여m 동쪽에 위치 한 월정교 석재와 거의 유사한 것으로 귀교가 상당히 정성을 들여 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출처를 절대 확인할수 없으나 꽤 흥미있는 비형랑이 데려온 귀신의 면면을 소개한 글이 있어 재미로 붙입니다.
다음의 귀신들이 비형랑의 귀신부하들:
라이프귀신 (뜻은 모르겠습니다)
풍금귀신
벌건얼굴을 가졌으나 스스로 백합이라 부르는 귀신
봄내귀신
거미귀신
고추잠자리귀신
할미꽃을 닮았는데 스스로 해당화라는 귀신
곱상하게생겨 남들 손탈까봐 이름을 가시나무라는 귀신
사는동네 이름을 딴 해오름귀신
등등 444종류의 귀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다른 글:
도깨비와 귀신(鬼神)
비형랑(鼻荊郞)이 어떤 도깨비들과 놀았는지 알아보자.
비형랑(鼻荊郞)의 뒷조사를 했던 군사(軍士)들이 올린 정보보고서(情報報告書)에는 
다음과 같은 도깨비들의 이름들이 거론(擧論)됐을 것이다.

  도깨비, 돗가비, 도채비, 독각비(獨脚-)
  두억시니, 두옥시니(斗玉神-), 두옥신(斗玉神), 야차(夜叉)
  어덕서니, 어둑서니, 어둑귀신(-鬼神), 그슨대
  저퀴, 청계, 가위
  손, 손각시, 손말명, 몽달귀신(-鬼神), 도령귀신(-鬼神)
  허깨비, 곡두, 곡도
  뜬것, 부행신(浮行神)
  영감(令監), 대감(大監), 할아버지, 동자(童子)
  망태할아버지(網-), 물할머니
  성주(-主), 성조(成造), 상량신(上樑神), 터주(-主), 부리, 조왕(竈王), 부뚜막신, 
  주당, 굴왕신(屈枉神)
  태주, 명도(明圖), 명두(明斗), 명도귀(明圖鬼), 태자귀(太子鬼)
  삼신할미(-神-)
  고스레, 고수레, 고시레
  굿, 굿것, 신령(神靈)
  나티
  목두기

(귀신들에 대한 출처와 자세한 설명: http://kr.blog.yahoo.com/buja100kim/18)- 작년까지 있던 글인데 사라져 버렸군요. 이 귀신들에 대한 기록은 우선은 신빙성없는 믿거나 말거나 정보로 아시고 계시길. 만약 더 정확한 정보가 있다면 알려주시거나 추후 편집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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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의 사족으로 재작년 발견된 경주 사천왕사지의 석교입니다 (연결부위가 명확히 남아있는 매우 귀중한 발굴이라 일단 첨부합니다)
경주 사천왕사지에서 통일신라시대 석교 발견 2011-10-25자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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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솔까역사 2013/04/08 07:22 #

    잠시 동심에 젖게 하는군요.
    어릴 때는 달걀귀신과 비자루 귀신이 유명했는데 지금은 사라졌죠.
    강당지을 때 용이 되려던 이무기를 죽이는 바람에 소풍가는 날은 꼭 비가 왔습니다.

    저런 전설들을 알면 서라벌 유람이 더욱 재미있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3/04/08 09:57 #

    귀신이라는 존재가 조금 더 한국사회의 일상에 예전처럼 친근하게 혹은 두근대게 다가오면 합니다. 항상 우리 곁에 있던 문화컨텐츠인데 말입니다. 경주같은 고도에서는 말할것도 없겠죠.
  • 迪倫 2013/04/08 12:34 #

    아! 귀교의 위치와 사진들은 전혀 모르고있었는데 흥미있습니다!
    경주가 헤이안교에 전혀 모자라지않는데 저는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언젠가 음양사 못지않은 작품이 나오리라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 그런데 귀면와는 용머리를 정면으로 묘사한거라는 학설도 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3/04/08 13:43 #

    하...님과 텔레파시가 통했나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번주에 뒤늦게 '음양사1'을 보고, 우리도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이런 작품이 하나 나오면 좋겠다..라는 감상을 올리려고 초고를 써놓은 상태였습니다.

    귀면와에 대한 정보 감사합니다 몰랐네요~^^
  • 나모 2013/07/03 01:02 # 삭제

    귀교의 위치를 검색하다가 왔습니다.
    이렇게 제가 바라던 자료가 딱! 있으니 정말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
  • 역사관심 2013/07/03 01:09 #

    나모님>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
  • 낮술먹은 눈꽃마녀 2020/03/26 16:04 #

    귀교에 대해 찾다가 잘 읽었습니다. 자료 조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역사관심 2020/03/27 00:10 #

    도움이 되셨다니 기쁩니다. 좋은 밤 되세요.
  • 한라온 2020/06/14 21:19 #

    아니 세상에, 화랑세기에 적힌 내용이라 그냥 재밌는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귀교라는 다리가 실제로 존재했다니;;; 터가 남아있다는 것은 난생 처음 들었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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