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 카- 역사가와 그의 사실 (역사란 무엇인가 중). 독서

E.H. 카 선생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를 정독하고 있다. 비역사학도로서 글을 쓰고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쓴다면 비역사학도로서 추구해야 할 (오히려) 더욱 다양한 스펙트럼이 분명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스펙트럼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결국 역사뿐 아니라 여러 관련분야에서의 엄밀한 학식이 필요하다. 본저는 필자가 추구하는 바와 많은 부분이 닿아 있으며 구름처럼 애매했던 부분을 걷어주는 역할을 해준다. 스스로 정리가 필요하기에 우선 '역사가와 그의 사실' 챕터중 핵심부분을 정리해 본다.
============================

배러 클러프 (영국의 역사가)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비록 사실에 기초하고는 있다고 해도, 엄격히 말하면 결코 사실 그것이 아니라 널리 승인된 일련의 판단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1955) (26쪽).

(주: 매우 흥미롭게 이 부분은 라캉의 텍스트론과 비견될수 있다고 생각) - 그 어떤 문서도 고작 우리에게 그 문서의 작성자가 생각한 것을- 그가 일어났다고 생각한 것을, 혹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자기가 생각한 것처럼 생각해주기를 원했던 것만을, 혹은 심지어 자신이 생각했다고 자기 스스로가 생각한 것만을- 말해줄 수 있을 뿐이다. (29쪽).

그 문서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슈트레제만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것만을, 혹은 그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원했던 것만을, 아니면 아마도 무엇인가가 일어났다고 그 자신이 생각하고 싶어한 것만을 말해줄 뿐이다. (33쪽).

물론 사실들과 문서들은 역사가에게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숭배하지는 말아야 한다 (33쪽).

크로체 (1866-1952)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 (당대사 Contemporary history)'라고 선언했는데, 그것은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 원문: "모든 역사적 판단의 기초가 되는 실천적인 요구는 모든 역사에 "현대사"라는 성격을 부여한는데, 왜냐하면 그렇듯이 상세하게 서술되는 사건이 시간상으로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 역사가다르는 것은 현재의 요구와 현재의 상황이며, 사건은 그 안에서만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36쪽).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사유의 역사'이며, '역사란 사유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가 그 사유를 자신의 정신 속에 재현하는 것'이다." (38쪽).

사실들의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역사가를 연구하라. ...... 사실들은 정말 생선장수의 좌판 위에 있는 생선과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들은 때로는 접근할 수 없는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고기와 같다; 그리고 역사가가 무엇을 잡아올릴 것인가는 때로는 우연에, 그러나 대개는 그가 바다의 어느 곳을 선택하여 낚시질하는지에, 그리고 어떤 낚시도구를 선택하여 사용하는지에 좌우될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요소들은 그가 잡기 원하는 고기의 종류에 따라서 결정된다. 대체로 역사가는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사실들을 낚아올릴 것이다. 역사는 해석을 의미한다. (41쪽).
==============

두번째는 더욱 상식적인 것으로서, 역사가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그들의 행위의 배후에 있는 생각을 상상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내가 '공감(Sympathy)'이 아니라 '상상적인 이해 (imaginative understanding)'라고 말한 이유는 공감이 동의 (agreement)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41쪽)
....... 자신의 종교를 수호하려고 살인하는 것은 사악하고 미련한 짓이라고 믿도록 교육받아온 19세기의 자유주의 역사가가 30년전쟁에서 싸운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만일 역사가가 자신의 서술대상인 사람들의 마음과 어떤 식으로든 접촉할 수 없다면 역사는 쓰여질 수 없을 것이다.

세번째로, 우리는 오로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달 할 수 있다는 점이다. (42쪽).
그들도 (고대 그리스어를 쓰는 현대사가들) 역시 현재에 살고 있으며 클라미스나 토가를 걸치고 강연한다고 해서 더 훌륭한 그리스 역사가나 로마 역사가가 될 수 없듯이, 낯설거나 쓸모없게 된 단어들을 사용한다고 해서 과거로 숨어들어갈 수는 없다. ....... 언어의 사용은 그가 중립적이 되는 것을 허락치 않는다. (43쪽).

(즉) 역사가의 기능은 과거를 사랑하거나 과거로부터 해방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로서 과거를 지배하고 이해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44쪽).

여기에서, 역사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는 이론 대신에 의미는 무한하다는 이론, 즉 그 어떤 의미도 그것과 다른 어떤 의미보다 더 올바르지 않다- 이것은 결국 어떤 의미든 거의 똑같다는 것이 되는데- 는 이론을 얻게 된다. 뒤의 이론이 앞의 이론만큼이나 옹호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어떤 산이 보는 각도를 달리 할때마다 다른 형상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 산은 객관적으로 전혀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거나 무한한 형상을 가진다고는 할 수는 없다.  ....... 나는 나중에 역사에서의 객관성이란 (그리고 객관적 해석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 반드시 고찰하겠다.

(하지만) 만일 역사가가 반드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눈을 통해서 자신이 연구하는 역사적 시대를 바라보아야만 하고, 또한 과거의 문제들을 현재의 문제들의 열쇠로서 연구해야만 한다면, 그는 사실에 관한 순전히 실용적인 견해에 빠져서 올바른 해석의 기준은 현재의 어떤 목적에 대한 그 해석의 접합성(Suitability)라고 주장하지 않을까? 이러한 가설에 따른다면 역사의 사실은 무가 되고 해석이 전부가 된다.
....... 그렇다면 20세기 중반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의무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 그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주제나 자신이 제시하려는 해석과 어떤 의미에서이건 연관되어 있는 모든 사실들을, 자신이 알고 있거나 알 수 있는 모든 사실들을 그려내도록 애써야만 한다. (47쪽).

------- (주:여기서부터는 역사가의 저작작업 방식)
비전문가들은 이따금 나에게 역사가는 역사를 쓸 때 어떻게 작업하느냐고 묻는다. 
(두 단계(방법이 옳은 표현일듯)가 있는데) 우선 역사가는 자신의 사료들을 읽고 그의 노트를 사실들로 채우는 데에 오랜 준비시간을 보낸다: 그리고나서 그의 사료들을 치워놓고 노트를 꺼내 든 채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쓴다. 이런 모습은 나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내 경우는 주요한 사료라고 생각되는 것들 중에서 몇가지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너무나 좀이쑤셔 쓰기 시작한다. 그런 후에는 읽기와 쓰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읽기를 계속하는 동안 쓰기는 추가되고 삭제되며 재구성되고 풍부해진다: 쓰면 쓸수록 나는 내가 찾고 있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되고, 내가 찾고 있는 것의 의미와 연관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 경제학자가 말하는 '투입(input)'과 '산출(outcome)'이라고 부르는 그 두과정이 동시에 진행되며, 또 실제로 그 두 과정은 단일한 과정의 부분들이라고 확신한다. 만일 그것들을 분리시키거나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두 가지 이단론들 중의 어느 하나에 빠지게 된다. 여러분은 의미나 중요성이란 조금도 없는 가위와 풀의 역사를 쓰거나 아니면 선전문이나 역사소설을 쓰면서,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종류의 글쓰기를 장식하려고 과거의 사실을 이용할 것이다.

..... (앞에서 살펴보았듯 역사가는) 과거에 무게중심을 두는 역사관과 현재에 무게중심을 두는 역사관 사이에서 어렵사리 항해하는 그런 상태에 놓이게 된다. ..... 우리는 이 강연에서 사실과 해석의 이분법과 똑같은 이분법을 다른 모습-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 경험적인 것과 이론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으로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역사가의 (이러한) 곤경은 인간의 본성을 반영한다. 인간은 아주 어렸을 때나 아주 늙었을 때를 제외하곤 자신의 환경에 완전히 매몰되지도 예속되지도 않는다. 반면, 인간은 결코 그의 환경에서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고 지배자가 될 수도 없다. 인간과 그의 환경과의 관계는 역사가와 그의 연구주제의 관계와 같다. .......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이다. 연구중에 있는 역사가가 잠시 일을 멈추고 나서 자신이 생각하고 글을 쓰는 동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다 알 수 있듯이,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만들어내고 또한 자신의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둘 중 어느 한쪽을 우위에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 그리고 이 상호작용 (사실과 해석사이의) 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도 역시 포함되는데, 왜냐하면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며 사실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이다.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자신의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다. 자신의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라는 것이다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

카의 이야기는 영역만 바꾸면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에게 한 이 말과 일맥상통한다.
"선생이 어떤 사물을 관찰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선생이 활용하고 있는 이론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이 관찰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이론입니다 (대상자체가 아니라)".




2019 대표이글루_음악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4 대표이글루

마우스오른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