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안 고구려비 “장수왕이 건립” 2013.04.10 역사뉴스비평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641331
(KBS 영상)

오랜만에 발굴후 후속기사가 뜬 경우네요. 계속 알려주길
개인적으로는 국내학자들의 해석과, 무엇보다 전문이 알려지길 기대합니다 (중국학계와 협력하면 좋겠지만 뭐 동아시아특성상 이런 상식선도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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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에서 장수왕으로 물러난 고구려비
중국측 지안비 건립시기 수정… 뒷면 글자도 판독 

(서울·베이징=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차대운 특파원
입력시간 : 2013.04.10 
장푸여우(張福有) 중국 지린성(吉林省) 사회과학원 부원장이 10일 발표한 '지안 고구려비' 연구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비석 건립 시기다. 

장 부원장은 작년 7월 지린성 지안(集安)에서 발견된 '지안 고구려비'가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 대에 건립됐다는 견해를 내놨다. 지난 1월, 이 비석 발견 사실을 공개할 당시 중국 측이 내세운 광개토왕 건립설을 스스로 철회, 수정한 것이다. 

나아가 훼손이 심한 것으로 알려진 비문 뒷면에서도 17글자를 새로 판독했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평양 천도한 427년, 장수왕이 건립" = 중국 지린성 문물국이 조직한 지안 고구려비 연구팀에 참여한 장 부원장은 비석에 새겨진 총 218자 가운데 개인적으로 190자를 판독해냈다고 밝혔다. 국내외 학계의 가장 큰 관심거리인 비석의 건립 시기와 관련해 장수왕 15년인 427년에 건립됐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장 부원장은 비석에서 판독한 '정묘세간석(丁卯歲刊石)'이라는 다섯 글자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한 427년(丁卯年)에 비가 건립됐다는 것이다. '정묘세간석'이란 정묘년에 비석에다가 글을 새겼다는 뜻이니, 이는 곧 비석이 건립된 연대가 된다. 

또 그동안 지안 고구려비의 건립 시기를 밝혀줄 핵심 단서로 꼽힌 비문 7번째 줄의 '戊○'(○는 훼손된 글자)는 '무신(戊申)'으로 판독했다고 밝혔다. 무신년은 408년(광개토대왕 8년)으로, 이 해는 광개토대왕이 율(律)을 정한 해이며 비석을 세운 해는 아니라는 게 장 부원장의 주장이다.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는 '戊□'를 광개토대왕 부왕인 고국양왕 388년 '무자년'(戊子年)과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 때인 418년 '무오년'(戊午年) 중 어느 것으로 볼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조법종 우석대 교수는 "'정묘세간석'은 앞서 중국 측이 처음 공개한 탁본에서는 확인되지 않던 부분"이라면서 "비석 건립 시기로 '정묘년'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장 부원장이 발표한 글은 중국 당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학자 개인의 견해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장 부원장은 비석 뒷면에도 20여개의 글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고 그 가운데 '○○國煙○守墓煙戶合二十家石工四煙戶頭六人(국연수묘호이십가석공사연호두육인)' 등의 17글자를 판독해냈다고 밝혔다. 공석구 한밭대 교수는 "비석 뒷면에 어떤 글자가 있는지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개인적인 견해지만 비석 뒷면 글자를 처음 소개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가짜설.조작설 반박..비문의 원전 제시 = 장 부원장은 국내 일각에서 제기된 비석의 가짜설 혹은 조작설에 대해 "고구려비의 진실성은 '의심할 바 없다(毋庸置疑)'"고 잘라 말했다. 

장 위원장은 고구려 역사, 장백산(백두산) 연구 등을 총괄하는 고위직 관료이기도 하다. 

장 위원장은 또 지안 고구려비의 비문 내용이 진(晋)나라 시인 도연명의 '감사불우부'(感士不遇賦)', 주례'(周禮), '후한서'(後漢書) 등에 보이는 글귀와 유사하다며, 그 근거를 제시했다 (주: 이 부분 국내에서 주의해서 보면 합니다)그러면서 지안 고구려비가 "예스러우면서도 전아(典雅)하다"고 평가했다. 이런 해석에 공석구 교수는 "중국의 역사 속에서 고구려사를 해석하려는 중국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지안 고구려비에 나오는 중국 고전을 활용한 표현들은 당시 고구려인들의 수준 높은 한자 활용 능력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비석은 왜 세웠나? = 장 부원장의 이런 견해는 다음달 초쯤 중국 측이 발간할 공식 보고서에 수록될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이런 견해가 중국 국가문물국을 통해 공식 보고됐다는 점에서도 이런 글의 요지는 중국 측의 공식견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 장 부원장은 이 비석을 장수왕이 왜 세웠는지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수묘(守墓)라는 말이 여러 군데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 비석 또한 광개토왕비와 마찬가지로 역대 고구려 왕릉의 묘역을 관리하기 위한 규정과 그것을 위반했을 때 처벌 규정 등을 담은 수묘비라는 데는 학계에 이견이 없다. 

중국 측은 애초에 이 비석이 광개토왕비문의 기록에 근거해 이 비석을 광개토왕이 생전에 특정한 선조 왕의 무덤 관리를 위해 세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장 부원장 발표는 이런 종래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광개토왕비와 마찬가지로 이 비석 또한 장수왕이 세운 것이라고 수정한 것이다. 

이런 발표에 곤혹스럽기는 국내 학계도 마찬가지다. 이 비석이 애초에 알려지자, 국내 연구자들도 거의 예외없이 중국 측 주장을 의심하지 않고, 광개토왕이 특정한 고구려 선대왕이 묻힌 무덤을 관리하고자 세운 비석이라는 견해를 따랐다. 그렇지만 중국 측이 그것을 수정하고 장수왕 건립설을 들고 나옴에 따라 이 비석의 건립 연대는 물론이고, 그 성격에 대해서도 다시금 논란이 재연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 비석이 과연 특정한 왕이 묻힌 하나의 무덤을 관리하기 위한 비석인지, 아니면 고구려 선대왕릉이 밀집한 왕가의 공동묘지 전체를 관리하기 위해 세운 무덤인지도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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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전문을 옮겼습니다. 국내학계에서도 활발한 토론을 기대합니다.


덧글

  • ㄴㅇㄹ 2013/04/12 15:11 # 삭제

    고구려인이 직접 남긴 글을 온전히 보기가 너무도 힘드네요.
    유기나 신집이 완벽한 보존 상태로 발견되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만 ㅎ
  • 역사관심 2013/04/12 15:13 #

    그럼 얼마나 좋을까 매년 신년소망으로 꼽기도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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