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 카- 사회와 개인 (역사란 무엇인가 중) 독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사회와 개인간의 관계를 분석한 장.
역사의 경로를 끊임없이 몸을 뒤트는 행렬로 비유한 부분은 그야말로 탁월하고 무릅을 치게 만든다. 그리고 숫자와 위인의 중요성과 역할, 그리고 구조주의를 연상케하는 사회와 개인간의 관계에 대한 해석 역시 곱씹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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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며, 서로를 조건짓는다. ...... 개별 구성원들의 성격과 사유를 형성시키며 그들 사이에 일정한 정도의 통합성과 균일성을 만드는 근대적인 민족공동체의 힘이 원시적인 부족공동체의 그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약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위험스러운 일일 것이다. 생물학적 차이에 기초하여 민족성을 이해하는 낡은 관념은 오래전에 타파되었다; 그러나 사회와 교육의 민족적 배경이 다른데에서 비롯되는 민족성의 차이는 부정하기 어렵다. ......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혹은 달리 말하자면 사회가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태도에서의 차이로 나타나는데,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전체로서의 미국 사회, 러시아 사회, 인도 사회간의 차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결국 개개의 미국인, 러시아인, 인도인 간의 차이를 연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53쪽).

상식적인 역사관은 역사를 개인에 의해서 쓰여진 개인에 관한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견해는 19세기의 자유주의 역사가들에게 의심없이 수용되었고 또한 조장되었는데, 실제로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 주장은 너무 단순하고 부적절하기에, 좀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가의 지식은 오로지 그만의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다: 아마도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그리고 수많은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그 지식의 축적에 참여해왔을 것이다.  ...... 나는 역사를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현재의 역사과와 과거의 사실 사이의 대화로 설명했다.이제 나는 등식의 양쪽에 있는 개인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의 비중을 조사해보고 싶다. 역사가들은 어느정도까지 단일한 개인들이며, 어느 정도까지 그들의 사회와 시대의 산물인가? 역사의 사실은 어느정도까지 단일한 개인들에 관한 사실이며 어느정도까지 사회적 사실인가? (57쪽).

매우 공감가고 돋보이는 부분:
우리는 때때로 역사의 경로를 '움직이는 행렬'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가는 그 행렬을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그런 존재가 결코 아니다. 그는 그 행렬의 한 부분에 끼어서 걷고 있는 또 하나의 개인일 뿐이다. 그리고 그 행렬이 어느 때는 오른쪽으로 어느때는 왼쪽으로 틀어지면서 또는 때때로 갑자기 반대쪽으로 되돌아가면서 굽이칠 때마다, 그 행렬의 여러부분들의 상대적인 위치는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고 (주: S자 행렬을 생각해보자), 그래서 가령 중세는 한세기 전의 우리 증조부들에게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더 가깝다고 말한다거나 단테의 시대보다 카이사르의 시대가 우리에게 더 가깝다고 말하는 뜻이 완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주: 삼국시대가 조선시대보다 우리에게 더 가까울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행렬이- 그리고 그것과 함께 역사가가- 움직여나감에 따라서 새로운 광경과 새로운 시가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역사가는 역사의 일부이다. 그 행렬 속에서 그가 있는 그 지점이 과거에 대한 그의 시각을 결정한다. (주: 역사가 뿐 아니라, 한국학이나 한국미를 다루는 미학자들에게도 연관있는 것). (58쪽)

첫째, 여러분은 역사가 자신이 연구에 들어가면서 가지게 되는 입장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 둘째, 그 입장자체는 어떤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뿌리박고 있다. 언젠가 마르크스가 말했듯, 교육자 자신이 반드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세뇌하는 사람의 머리자체가 이미 세뇌되어 있는 것이다. 역사가는 역사책을 쓰기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역사의 산물이다 (64쪽).

지난 50년동안에 (주: 20세기 전반) 세계를 뒤흔든 사건들을 겪었지만 자신의 세계관에는 그다지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고 솔직하게 주장할 수 있는 역사가가 있다면, 과연 그를 부러워해야 할 것인지 나로서는 자신이 없다. 나의 목적은 다만 사회안에서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가 그 사회를 자신의 연구에 얼마나 면밀하게 반영하는가를 보여주는 데에 있다. 흐름 속에 있는 것은 단지 사건만이 아니다. 역사가 자신도 그 속에 있다. 여러분이 역사책을 집어들때, 책표지의 저자이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간일자나 집필일자도 살펴보아야 한다. 똑같은 강물에 발을 두번 담글수는 없다는 한 철학자 (헬라이클레이토스)의 말이 옳다면, 한사람의 역사가가 두가지 책을 쓸 수 없다는 말도 어쩌면 마찬가지로, 그리고 똑같은 이유에서, 진리일 것이다 (68쪽).

첫번째 강연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라. 이제 나는 이렇게 덧붙이려고 한다: 여러분은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

이제 역사가에 관해서는 그만 이야기하고, 나의 등식의 다른 항- 역사의 사실-을 동일한 문제틀에 비추어 고찰해보자. 역사가의 연구대상은 (즉 사실) 개인의 행동인가 아니면 사회적인 힘의 작용인가? ...... 개인의 천재성을 역사의 창조력으로 간주하려는 욕망은 역사의식의 원시적인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주: 카는 그 예로  고대 그리스인들의 영웅시들과 르네상스시대의 많은 예를 듦). ...... 그 이론은 사회가 보다 단순했던 그리고 공적인 일들을 소수의 유명한 개인들이 수행했던 것처럼 보였던 시절에는 어느정도 그럴듯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복잡한 사회에 대해서는 분명히 들어맞지 않는다; 따라서 19세기에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한 것은 이 증대하는 복잡성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그러나 오래된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도 '역사란 위인들의 전기다'라는 말은 여전히 존중받는 금언이었다. (72쪽).

문제는 인간을 개인으로 보는 견해가 인간을 집단의 성원으로 보는 견해보다 다소간 잘못된 것이라는 데에 있지 않다; 진정한 문제는 그 둘사이를 '구별하려는 그 시도'이다. ...... 예전의 생물학자들은 새장이나 어항이나 진열장속에 들어있는 새, 짐승, 물고기의 종을 분류하는 일에 만족했으며 그 생물체를 그 환경과의 연관속에서 연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 사회과학도 오늘날 그런 원시적인 단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심리학과 사회에 관한 사회학을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지 않은 심리학자는 큰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77쪽).

나는 신의 섭리를, 세계정신(헤겔)을, 명백한 운명(미국의 백인운명주의)을, 대문자 H로 시작되는 History(보편적법칙에 의해서 이끌리는- 거대역사)를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의 마르크스의 견해에 무조건 찬성하겠다: 역사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지도 않으며 전투를 벌이지도 않는다.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은, 소유하고 싸우는 것은 오히려 인간, 즉 현실의 살아있는 인간이다. (78쪽)

이 문제에 관하여 나는 두가지의 경험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첫째, 역사란 상당한 정도 '수'의 문제라는 것이다. ...... 칼라일과 레닌의 주장에서의 수백만은 수백만의 개인들이었다: 거기에는 비인격적인 것이란 전혀 없었다. ...... 역사가는 일상적인 상황속에서라면 불만을 품고 있는 한사람의 농민이나 하나의 촌락에 관해서 알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천 개의 촌락에서 수백만 명의 농민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역사가라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된다. ...... 역사에서 수는 중요하다. (80쪽).

(두번째 견해) 톨스토이는 애덤스미스를 본따서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있지만, 그러나 역사에 남을 인류의 보편적인 목적을 성취하는 일에서는 무의식적인 도구가 된다' 고 말했다 (주: 이 부분 분명 구조주의적 성격이다). .... 버터필드 교수는 '역사적 사건속에는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경로를 틀어버리는 어떤 성질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 역사의 사실이란 사회속에 있는 개인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 그리고 개인의 행동에서 의도했던 것과 자주 모순되거나 가끔 상반되는 결과를 생겨나게 하는 사회적 힘에 관한 사실인 것이다 (82-3쪽).

군주와 반역자는 똑같이 그들 시대와 나라의 특정한 조건의 산물이었다. 와트 타일러와 푸가초프를 사회에 저항하는 개인으로 묘사하는 것은 잘못된 단순화이다. 그들이 역사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추종한 대중덕분이며, 따라서 그들은 사회적 현상들로서 중요한 것이지, 그렇지가 않다면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83쪽).

역사에서 위인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위인은 한사람의 개인이기도 하지만, 탁월한 개인이기 때문에 현저히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 비스마르크가 18세기에 태어났다면- 그렇게 되었다면 그는 비스마르크가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는 어리석은 가정이지만- 그는 독일을 통일시키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결코 위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톨스토이처럼 위인을 '사건에 이름을 붙여주는 꼬리표'에 불과한 존재로 취급하면서 평가절하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 내가 반대하고자 하는 견해는, 위인을 역사의 밖에 놓아둔 채 그들은 위대하기 때문에 역사에 간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즉 그들을 마치 '알 수 없는 곳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와 역사의 진정한 연속성을 방해하는 요술상자 속의 잭' 과 같은 존재인양 생각하는 그런 견해이다.

나는 지금도 다음의 헤겔의 고전적인 정의에 고칠만 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치 않는다:
그 시대의 위인이란 자기 시대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고, 그 의지가 무엇인지 그 시대에 전달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행하는 것은 그의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실현한다.

위인은 항상 기존세력의 대변자이거나, 아니면 현존하는 권위에 도전할 생각으로 그가 힘을 쏟아 형성시키려는 세력의 대변자이다. ...... 또한 우리는 자신의 시대보다 훨씬 앞서갔기 때문에 그 이후의 세대에 의해서만 그 위대함이 인정되었던 위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인을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자 대리인이면서 이와 동시에 세계의 모습과 인간의 사유를 변화시키는 사회적 힘의 대변자이자 창조자인 탁월한 개인으로 인식하는 일이다. (86쪽)

...... 그러므로 사회와 개인의 대립을 가상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다른데로 돌리게하는 혼란스러운 미끼에 불과하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사이의 상호작용의 과정, 그 대화라고 불렀던 과정은 추상적이고 고립적인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사이의 대화이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만 이해될 수 있다;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 이것이 역사의 이중적인 기능이다.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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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길어졌지만 핵심만 추려내도 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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