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위 경험 의식 (철학라이더를 위한 개념어사전 중) 독서

조광제선생의 철학라이더 중, 정리.
==============

편위
현재가 열려 있다는 말을 했다. 만약 현재가 열려 있다는 것이 가장 근원적인 시간의 형식이라면 고정된 과거는 이 열려있는 현재로부터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이를 바탕으로 한 철학이 바로 현존철학이다. 현존은 항상 열려 있는 현재에 입각해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존을 영원성을 띤 본질보다 더욱 더 근원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현존철학이다. ... 본성은 말과는 달리 항상 운동하는 것, 즉 변화하는 것이다. ... 결국은 '열려 있는 현재 속에서 항상 운동, 변화하는 본성을 지닌 것들'만이 진정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의 운동을 낙하운동과 원자들의 충돌에 의한 직선운동만을 인정한 반면 에피쿠로스는 여기에다 원자자체의 편위에 의한 운동을 더했다고 한다 ('원자의 영혼', '원자의 저항과 고집' by 마르크스). 원자는 분명 가장 단순한 것이지만 그 자체 아무런 본성도 지니지 ㅇ낳은 것이다. 그러니까 원자의 편위는 일체의 본성들이 운동, 변화하는 바 '본성아닌 본성', 혹은 '본성을 넘어선 본성'이라 해야 한다. 

그러니까 편위는 일체의 결정론을 근원에서부터 분쇄해주는 원리다. 결정론은 원자간의 충돌에 의거한 운동만을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정론은 직선인 반면 편위는 직선을 요동치게 한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미분적인 기울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편위이다. 본질적으로 결정된 것, 영원한 본성을 지니는 것, 영원히 동일한 것 등 일체의 현존자들을 근원에서부터 불가능 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말하자면 편위는 '열려있는 현재'에서 그 '열려 있음'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이다. 이는 사회, 역사, 문화등 모든 인간행동의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 이러한 열려있는 현재가 어떻게 성립하는 가를 설명해주는 개념이 바로 '편위 declination<-clinamen'일 것이다.  또한 편위가 극미의 원자차원이라면 코나투스는 '복합체'의 차원에서 설명되는 또다른 변화의 설명이다. 데카르트는 신이 우주를 창조할때 일체의 것들이 '운동'의 상태로 창조되었는데, 계속 운동하려는 원리가 바로 코나투스라고 했다. 즉 물리적 관성이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존재하는 일체의 것들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 강화하려는 경향'을 지칭한다. 여기서 유지는 데카트트적 기계론적 관성과 유사하고, '강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완전태'를 위한 목적론적 사유와 일정하게 일치한다. 중략. 일체의 것들을 생명적이게 하는 것, 역동적이게 하는 것이 바로 코나투스다. 이는 베르그송의 '엘랑 비탈'과 비견해서 말해지기도 한다.

경험
... 순수한 이성과 지성을 분명하게 구분한 철학자가 바로 칸트다. 칸트는 순수한 이성은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감각과 무관하게 사유하는 능력이고 지성은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감각들을 사유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칸트 이전에는 이성과 경험이 얽혀 있는 것으로 여겨서 그저 이성적으로 고안되었을 뿐이고 경험되지 않는것들도 마치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인 양 착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칸트는 감각적으로 경험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진리가 성립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즉 감각적으로 경험될 수 없는 세계에서는 모순된 두 명제가 동시에 성립하는 이율배반(antinomy)가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했던 것이다. 예컨대 우주가 끝이 없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증명되고 우주가 끝이 있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증명된다는 것이다. 우주가 끝이 있는지 없는지는 감각적으로 경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그저 이성적으로 사변될 뿐이다. 경험적 인식과 적극적으로 대립되는 것은 사변적인 이성에 의한 인식이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엄밀하게 말하면 인식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참거짓의 구분이 아예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칸트에 따르면 신이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주장은 참도 거짓도 아니고, 그저 사변적인 사유놀이에 불과하다. 그러고 보면 참다운 인식은 오로지 경험적인 인식밖에 없는 것이다

의식
후설은 "의식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이다" 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다. 간단히 말하면 의식은 그 자체만으로 존립할 수 없고 오로지 대상에 대한 의식만으로 존립한다는 것이다. 의식작용과 의식대상 간에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후설이 제시한 의식의 지향성은 고대철학에서부터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예사로 전제되어온 의식의 실체성, 즉 의식은 대상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파기한다. ...
그런데 후설의 현상학에 크게 영향을 받은 메를로퐁티는 의식에서 몸-주체의 근본성을 내세운다. 이에 따르면 순수의식, 절대의식, 초월론적 의식등은 성립할 수 없고 오로지 체화된 의식만이 현존할 수 있다. ...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체화된 의식은 근본적으로 몸에서 임시로 발현했다가 다시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어떻든간에 의식이란 근본적으로 대상을 향해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향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 의식이 자기 자신을 향한다 할지라도 그때 자기 자신을 향한 의식자체는 그저 작용일 뿐,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을 실체라고 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셈이다. 의식을 실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정신이니 영혼이니 하는 것들조차도 의식과 마찬가지로 다른 무엇인가에 의존해서 성립할수밖에 없는 파생적이고 기생적인 것이라는 의미이다.

=============

내 토픽과 밀접한 중요한 부분들.





2014 대표이글루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마우스오른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