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13세기초)-최자의 삼도부 강도(강화)편과 고려왕궁위치 역사

한참 미뤄뒀던 작업하나를 끝냅니다. 최자의 삼도부중 마지막 편인 강도(강화도)편을 무려 2년만에 포스팅하는군요. 삼도부중 앞의 세도시 (개경(개성), 서경(평양), 동경(경주))을 2011년에 다룬 바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걸어둡니다.

개경편

서경편

동경편


강도는 사실 고려의 삼경에는 ( ① 중경·서경·남경 ② 중경·서경·동경 ③ 서경·남경·동경) 들어가지 않았던 임시수도인 '강화도'를 뜻합니다. 최자선생이 이 글을 집필했던 것이 13세기초이니만큼 강화천도를 감안, 엄연히 삼도부의 한켠을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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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가 말하되 / 大夫曰

두 분이 일찍 강도(주: 강화도)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 二客豈亦曾聞江都之事乎


그 시초를 대략 둘러보니 / 略擧一緖

손을 뒤집어 날려 의론하리다. / 揚攉而議

동해의 크기는 지아비 같아/ 夫東海之大

무릇 아홉 강, 여덟 하수를 / 凡九江八河

한 알의 겨자처럼 삼키었고 / 吞若一芥

구름으로 쓸고 해에 물 대듯/ 蕩雲沃日

물살이 세차고 용솟음쳐 물결이 배가 되었네. / 洶湧澎湃

(주: 동해라는 표현은 송나라의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그 가운데 화산(花山)이 있어 / 中有花山

금빛 자라가 우뚝 솟아있네 / 金鼇屹戴

물가를 침범하여 잎을 안았는데 / 涯凌葉擁

물가는 차츰 편해지고 가지는 친근해 지네 / 渚崥枝附

 

강화도는  꽃이 만발한 곳입니다. 지금도 중심산인 고려산에서 진달래축제를 열곤 합니다 (강화도 진달래축제 홈피). 4월에는 경관이 대단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삼도부에서도 '가운데' 꽃산(화산(花山))이라고 지칭하는데 강화도 최고산인 마니산은 남쪽에 치우쳐있고 가운데 위치한 산이 다름아닌 '고려산'입니다.


강화 꽃축제에서도 모르는 듯한데, 삼도부의 '꽃산'으로 소개해도 좋을 듯 합니다. 사족으로 고려산에는 50여기 이상의 고인돌이 집중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를 근거로 마한의 소국중 하나가 강화도에 있었으리라 추정도 합니다). 또한,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태어난 곳이라는 설화도 전해져 옵니다.

고려산 진달래

그리고 금빛자라라는 이야기는 두가지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하나는 고려산의 정상인 '낙조봉'- 말 그대로 낙조때 금빛으로 물드는 모습이 금빛자라같다고 표현한 것. 두번째는 오두돈대가 있던 곳. 오두라는 말은 말그대로 '자라머리'를 뜻합니다. 오두돈대자체는 조선시대에 건설된 것이나, 그 지명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첫번째 가정이 더 맞는 듯 하군요.


고려산의 낙조봉


그 고운 가지와 잎은 모래처럼 흩어지고 바둑돌처럼 깔았는데 / 麗其枝葉而沙散碁布者

강가의 상인이 바다(海)에서 장사하고 늙은 어부 소금쟁이 늙은이의 집들로 엮어져 있네./ 江商海賈漁翁鹽叟之編戶也

(주: 흥미로운 구절로, '바다'에서 상인들이 배로 장사를 했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집들이 엮여있다는 구절은 바닷가의 집들이 촘촘히 모여있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신령스러운 큰 산에 꽃술이 열려있고 / 神岳蘂開

신령스러운 언덕에 꽃처럼 받치니 / 靈丘萼捧

그 꽃송이ㆍ꽃받침을 시렁에 걸어두니 날아가는 새가 둥글게 하네/ 架其蘂萼而暈飛鳥聳者

황제가 살고 제왕의 거실과 높은 관리들, 선비와 평민의 집이 용마루처럼 늘어섰네. /皇居帝室公卿士庶之列棟也 

(주: 임시황성과 민가의 형상을 표현한 구절로, 황제-제왕이라는 표현, 그리고 당시 30만이 이주했다는 기록처럼 강화도의 인구와 건물의 위용을 짐작케 합니다)


안으로 마리ㆍ혈구가 무겁게 둘러섰고 / 内據摩利穴口之重匝 

(주: 강화도는 고구려때 혈구군, 신라때 혈구진, 삼국사기에 혈구도라고도 불립니다. 마리는 '마리산', 즉 마니산입니다)

밖으론 동진ㆍ백마의 사면을 요새로 하니 / 外界童津白馬之四塞

출입을 누가 어찌하랴 / 出入之誰何 

(주: 삼경때와 다르게 강도의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 즉 몽골과의 전쟁시입장을 보여줍니다)


산골짜기가 강화의 빗장을 채웠고 / 則岬華關 

그 동쪽에 외빈을 맞고 보내는 데/ 其東賓入之送迎

풍포 객관이라 / 則楓浦館 (주: 당산리의 풍포관을 뜻하는 것일겁니다.)


그 북쪽에는 두 화산(華山)이 문지방이 되어 / 其北兩華爲閾 

두 효산(崤)으로 근본이 되었다. / 二崤爲樞 

참으로 천지의 요새라/ 眞天地之奧區也 


앞의 두 문단은 강화도의 지형을 보면 금방 이해됩니다. 그런데 이 두 구절은 필자의 생각으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도의 A는 무시)

이 부분은 개인적인 생각에 현재 진행중인 '고려왕궁찾기'에 실마리를 던져줄수도 있는 구절들이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보통 수비적인 입장을 이야기할때 수도의 중심 (왕궁)을 놓고 이야기하지요. 따라서 북쪽에 두 산이 동쪽은 외빈을 맞고 보내는 곳이 있고, 라는 이야기는 그러한 지형을 바라보는 곳에 중심지가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해집니다. 두 산은 '봉천산'과 '고려산'일 것입니다. 


결국 북쪽과 서쪽, 그리고 마니산등이 위치한 남쪽이 아닌, 가운데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왕성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구절에 직접 지명이 나오는 '풍포객관'은 당산리 즉, 동쪽해안가의 가장 북쪽에 있습니다- 섬의 가장 동북해안에서 사신등을 맞이하고, 동쪽해안을 끼고 스트레이트로 내려오면 궁궐. 말이 되죠 (산맥을 넘지 않아도).

그렇게 보면, 올해 2013년 5월 (바로 저번달)에 발굴된 '신정리' 유적이 고려궁궐의 위치가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집니다. 2009년의 인화리는 너무 서북쪽이지요. 관심있는 분은 포스팅을 한번 보시면 합니다.--> 강화도 고려궁궐들

2013년 발굴중인 신정리 대형건물지


이에 안으로 자줏빛 성을 둘러 쌓고 / 於是乎内繚以紫壘

밖으로도 단장한 성가퀴로 둘렀으니/ 外包以粉堞

물이 도와 빙 돌아 두르고 / 水助縈回

(주: 직접 왕성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거나, '강화외성'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1237년 당대에 직접 쌓은 성이죠- 동쪽해안을 끼고 내려가는 모습으로 "물이 도와 빙 두르고"란 표현 그대로입니다. 역시 신정리와 매우 가깝게 외성이 지나갑니다. 조선시대에도 그 역할을 계속합니다.)


아래 18세기 강화지도의 검은색 부분이 강화외성입니다. 약 23킬로미터. 내륙의 선은 정족산성과 문수산성이구요.


산은 다투어 높고 험하여 / 山爭岌嶪

구푸려 임하면 깊은 못인가 오싹하다. / 俯臨慄乎淵深

우러러 보니 절벽이 우뚝 서있네. / 仰觀愁於壁立

오리ㆍ기러기도 날아들고 / 鳧鴈不能盡飛 

늑대와 범이 엿보지 할지라 / 犲虎不能窺闖

(: 역시 삼도부의 다른 수도들과 다르게 '수비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에 의의를 둡니다).

.........

성과 시가 포구와 가까워 / 城巿卽浦

문밖이 바로 배라 / 門外維舟 

(주: 이 역시 강화천도시 왕궁의 위치를 추정할수 있는 구절입니다. 역시 신정리에 부합합니다. 현재 거의 퇴락했지만 더리미포구가 신정리 소재에 있습니다.)


꼴 베러 가거나 나무해 올 때에도 / 蒭往樵歸

조그만 배에 둥실 실어 / 一葉載浮

뭍에 쉬이 닿으니 / 程捷於陸

채취와 수송이 쉬워 / 易採易輸

땔감 부족 없고 / 庖炊不匱

마굿간의 꼴도 넉넉하니 / 廐秣亦周

힘 덜 들고 씀씀이 넉넉하다. / 人閑用足力小功優


장삿배와 공물 받치는 큰 배가 / 商船貢舶

만 리에 돛을 이어 / 萬里連帆

묵직하니 북쪽에 대고 / 艤重而北

가벼운 돛대 남쪽에 대어 / 棹輕而南

돛대머리 서로 잇고 / 檣頭相續

뱃고물이 서로 꼬리를 물고 / 舳尾相銜

바람 하나에 기울어 내니 / 一風頃刻

여럿이 모여 서로 모임이 되네 / 六合交會

(주: 당시 얼마나 많은 상인배와 거대선들이 강화도를 오가고 정박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절)


마땅히 산은 해(海)와 섞이어 / 山宜海錯

싣지 않은 물건 없네 / 靡物不載

옥을 찧고 구슬을 찧어 / 擣玉舂珠

만 개의 돌을 묶어 돌무더기 되어/ 累萬石以磈

쌀과 보배 가죽으로 감싸 / 苞珍裹毛

여덟 지경으로 나누어 풀 열매처럼 가득하다.  / 聚八區而菴藹


배들이 다투어 와서 닻 내리자 / 爭來泊而纜碇

갑자기 거리가 가득차고 항구가 왁자지껄 / 倐街塡而巷隘

둘러보니 매매가 사뭇 손쉬우니 / 顧轉移之孔易

어찌 말 짐이 예쁘지 않을 손가 / 何䭾負之賽倩

(주: 강화부에 계속 나오듯 당시의 산업이 해상상업-무역에 큰 무게를 두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손에 들고 어깨에 메고 / 爾乃手挈肩擔

이따금 발걸음 내딛어 / 往來跬步

관가에 쌓여지고 / 堆積于公府

민가에 흘러 넘쳐 / 流溢於民戶

산이 높지 않고 / 匪山而巍

샘물처럼 두루 넘치네 / 如泉之溥

곡식을 늘어놓아 서로 썩을 지언 정 / 菽粟陳陳而相腐

큰 한(漢-백제의 한성漢城?)의 풍요로움과 넉넉함에 미치지 않을 손가. / 孰與大漢之富饒 

(주: 경제적으로 강도(강화)가 매우 풍족했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삼도부라는 시자체가 도시끼리 서로 자랑하는 형식이므로 과장이 섞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강화천도 초기에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나중에는 인구증가로 큰 간척사업을 벌여야 할 정도가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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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강도, 즉 고려의 대도시중 강화도에 대한 부분을 알아보았습니다. 강화도의 당대 모습, 특히 상업과 성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고, 무엇보다 왕성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을수도 있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평범한 섬이 아닌 무려 40년간 한 국가의 도읍지였던 강화도의 고려시대 면모가, 정궁및 관청들의 발굴로 잘 드러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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