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토지름 47미터 왕릉급 백제무덤 발굴- 전남함평 (2013. 6.26) 역사뉴스비평

짧은 내용이고 사진의 나열이나마 영상이 있어 좋습니다.

그에 비해 아래 연합뉴스기사는 조금더 자세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발췌:
동신대 유적조사단(단장 이정호 교수)은 함평군(군수 안병호)이 지원하는 함평군 학교면 마산리 산16-2번지 마산리 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 제122호) 중 봉토 규모가 가장 큰 제1호분(봉분 지름 47m)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무덤 주인공을 안치한 봉분 내부 시설인 석실(石室)은 장방형이며 길이 523cm, 너비 250cm, 높이 290cm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26일 말했다.

이런 석실 규모는 현재까지 확인된 전남지역 삼국시대 고분 중 최대 규모이며, 백제지역에서도 최상위그룹에 속하는 초대형에 속한다. 지방에서 발견된 무령왕릉에 비견된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조사 결과 석실은 입구에 문이 있고, 그 안쪽에 석실을 마련한 횡혈식 석실분으로 드러났다.무덤은 이미 극심한 도굴 피해로 출토 유물이 거의 없는 편이지만 석실 내부에서는 백제 토기 조각 약간과 함께 겉면에 유약을 바른 시유도기(施釉陶器) 일종인 동전무늬 장식 전문도기(錢文陶器)가 파편화한 상태로 출토돼 비상한 관심을 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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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게 '횡혈식' (굴식돌방무덤)이란 것같습니다. 백제 전기에 한성을 중심으로 발달하다가 5세말 웅진시대까지 나오는 양식인데 함평지역에서도 이런 대형 횡혈식이 나왔다는건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지도에서 보다시피 서울은 물론, 대전의 동북쪽에 위치하는공주와도 한참 떨어진 곳이 지도에 마크된 함평입니다.

위치가 영산강유역의 옹관묘가 발굴된 바 있는 함평이란 점에서 저 무덤의 시기가 밝혀진다면 영산강토착문화인 옹관묘와의 관계도 흥미롭게 밝혀질듯 합니다.

아마도 '전문도기'가 나온 이상 분명 3세기중반 이후는 확실하겠지요. 재밌는 사실은 함평의 대형옹관묘유적도 3세기라는 것. 공존했을까요? 두 형태의 무덤이.

Warfare Archaeology님의 관련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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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오늘자 뉴스를 보니 6세기초 무덤이라고 하네요. 백제유물이 나온것으로 보아, 6세기초에는 적어도 함평지역까지 정치적 시스템의 통합으로 들어갔다고도 볼수 있겠습니다. 무령왕아니면 전륜성왕때인데...참 흥미로운 시기죠. 아무튼 같은 지역의 대형옹관묘 세력과의 관련성은 연구주제같군요.

덧글

  • 행인1 2013/06/28 08:27 #

    정말 가치있는 발견이긴 한데 이미 싹 털렸다니...;;;
  • 역사관심 2013/06/28 11:43 #

    언제나 그렇듯.

    정작 궁금한건 저런 유물들은 지금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을까 하는것입니다...궁금합니다. 개인소장으로 보관들이나 잘 되고 있다면 다행인데 (출처표기와 함께).
  • 고전압 2013/06/28 16:55 # 삭제

    영산강유역이네요... 이제 백제 임나기원설이라도 나와야 할려나 ㅋㅋㅋㅋ
  • 역사관심 2013/06/29 00:40 #

    영산강 유역은 정말 흥미롭죠.
  • 1234 2013/06/28 17:05 # 삭제

    규모는 크지만 유물이 아쉽네요. 그런 점에서 보면 무령왕릉의 발견은 너무나도 감사한..(발굴과정은 논외)
  • 역사관심 2013/06/29 00:41 #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인간군중 하나가 도굴꾼들. 그야말로 역사의 죄인들이죠. 그 돈으로 자식들 밥먹여가며 보기 부끄럽지도 않나.
  • Warfare Archaeology 2013/07/08 11:58 #

    그 사람들 중...우린 이 지역에서 오래 살았고, 이 무덤들 또한 다 우리 선조들꺼다. 선조들이 후손들 밥 벌어먹고 살게 해줬으니 고마운게 아닌가~뭐 이런 마인드 가진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제가 세종시 발굴했을때 마을 어르신들이 자기 30~40대때 트럭에 써치라이트 달고 오밤중에 여기 있는 무덤 싹 털어서 이제는 아무것도 없다고...웃으면서 얘기하는 걸 보고 식겁했었죠. -.-;;
  • 역사관심 2013/07/09 03:44 #

    WA님> 와하하...라는 웃음만 씁슬하게 나오는군요. 확 고발해버리시지.
  • Warfare Archaeology 2013/07/14 03:28 #

    ㅋㅋㅋ 그냥...그러려니...-.-;; ㅎㅎ
  • Warfare Archaeology 2013/07/08 12:00 #

    함평지역에서 옹관묘와 저런 대형 석실분이 같이 공존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백제토기 편년에 근거해 6세기 이후로 보고 있고, 그땐 이미 함평지역뿐만 아니라 영산강 일대에서 옹관묘 전통이 사라진 이후니깐요. 개인적으로 두 묘제가 공존했을 가능성보다는...저기에 저렇게 정형화된 대형 석실분을 두고 안치될만한 인물이 누구였느냐는 겁니다...상당한 수준의 지방수장층이어야만 하는데 말이죠. 흐음~
  • 역사관심 2013/07/09 03:47 #

    저도 궁금합니다. 과연 중앙에서 내려온 인물일지, 지방의 수장이었을지...
    그리고, 말씀대로 공존은 아니었을것 같고 (3-4세기라면 모를까), 다만 궁금한건 옹관묘세력과 그 후에 들어온 이 횡혈식석실분 집단의 관계입니다. 과연 대치했던 것인지, 흡수된 것인지, 공존형태였는지...사료가 없으니 궁금할 뿐이네요.

    그리고 일부언론에서는 이번 발굴에서 백제유물출토를 근거로, 약간은 섣부르게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역공'을 시도한 것도 보았는데, 이 부분도 학계에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
  • Warfare Archaeology 2013/07/14 03:29 #

    임나일본부설 운운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보고서가 나오고, 조사단 내부적으로 의견이 모아져야 할꺼 같구요.
    섣불리 논문같은게 나올 자료는 아니니깐 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개인적으로 담로제도를 이해하는게 해답일 듯 합니다.
    흐음...암튼, 백제사는 공부할게 너무 많아요. T.T
  • 역사관심 2013/07/14 07:42 #

    그렇군요. 논문 마무리에 바쁠텐데 답변주시고 고맙습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3/07/18 00:04 #

    아닙니다. ^^ ㅎㅎ 날 궂은데 건강 챙기세요~
  • 동산선생 2015/03/11 20:48 #

    영산강 유역의 정치적 실체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논의와 이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일본서기에서 일본의 왕이 한반도 남부에 대한 연고건을 주장한 대목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 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분명 일본의 건국의 주체는 시대에 따라서 여러 세력들이 있고 그들이 일본에 들어가는데,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광개토대왕이 처내려와 공주 부근을 먼저 공략하고 돌아서 서울에서는 항복만 받고 갔다는 이 사실에서 당시 공주 이하에 굉장한 왕권이 있엇다고 볼 수 밖에 없다는 지적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그 실체가 무엇일까? 기존의 역사자료만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데 푸는 사람들이 있군요
  • 역사관심 2015/03/12 00:15 #

    저 부분에 관해서는 저도 알음알음 알아가는 중이라 궁금하기는 하나 어떤 확신도 들지 않는군요. 위의 Warfare Arhaeology님은 고구려전공인데, 이쪽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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