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란 무엇인가- 에르네스트 르낭 (1882) 독서

르낭은 뿌리깊은 인종주의자였다- 특히 아리아계 유럽백인>유대인>황인>흑인-라틴아메리카인으로 인종의 등급을 매기고, 이성적이고 진보해가는 백인에게 자리를 내주고 아시아인과 흑인은 도태되어야 할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한 인물이다 (다만, 그의 연설문을 잘 읽어보면 그것이 폭력적인 인종주의가 아닌 지성적인 인종주의-즉, 뛰어난 인종이 모두를  이끌어 모두 잘살게 한다는 이상주의적 사상에 가깝긴 하지만). 

다만, 19세기 제국주의시대에 태어나 그 중심 중력권에서 살아간 지식인의 사고의 틀의 한계는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한 관점을 탈피하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굉장한 박애주의자(혹은 이상주의자)거나 미래를 내다본 사람으로서 당시 세계에는 거의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비주류권 지식인으로 머무르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그의 배경을 염두해두고 찬찬히 그의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읽어보면, 이 연설이 비단 원래 독일의 통일을 지지하고, 범 세계적은 아니더라도, 범 유럽적인 (당시의 유럽이라면 세계라고 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유럽의 지식인들의 세계에선) 당대 (1870년 이후) 문명권의 진보를 꿈꾼 프랑스 지식인이었던 르낭이 이제는 그 독일에게 패배를 경험하고 연설한 것이란 것을 염두해 두더라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즉. 원래 그가 바라던 '독일'이라는 이상적인 문명권의 등장 대신, 독일민족의 통일의 Tool로서 그 역할을 완수하고 흡수되어야 했을 프로이센이라는 독단적인 군국주의 세력의 독일흡수라는 (즉 배꼽이 배보다 커진) 당황스러운 정세를 기반으로, 그러한 독단적인 편협한 인종적 민족주의+ 군국주의의 비이상적 독일에 대한 정치적색감을 띤 '비판'적 성격의 연설이라고 해도, 여전히 곱씹어 볼 부분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이 저서가 당시 지식인의 시대적 정치연설로 끝나지 않고, 후세에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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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쪽.
1. 많은 사람들이 종족에서 (민족이) 유래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예컨대 제가 지금 설명하고 있는 이론에 따르면, 게르만 집단은 게르만 문화권에서 흩어진 구성원들을 다시 취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심지어 그 구성원들이 서로의 결합을 요구하지 않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 이렇게 하여 왕권신수설을 내세웠던 왕들의 권리와 유사한, 일종의 원초적이며 가장 중요한 권리가 창출되었습니다.  민족의 원칙을 종족원칙으로 바꾼 것이지요. 이것이야말로 오류이며, 이러한 오류가 지배적이게 된다면 유럽의 문명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 고대 부족과 도시국가에서는 종족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고대 부족과 도시국가는 가족이 확장된 형태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스파르타와 아테네 등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비교적 가까운 촌수의 친척 관계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종족도 마찬가지였으며, 아랍의 부족들에서는 아직도 그러합니다. 로마제국으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폭력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어서 이해관계에 유지된, 전혀 다른 도시들과 지방들이 거대하게 응집되어 이루어진 로마 제국은 종족이라는 개념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합니다 (주: 물론 동시대에 존재한 아시아의 한족중심 중국제국과 동아시아 왕국들은 전혀 다른 성격이었지만.)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성격을 가진 기독교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략.

69쪽. 
그러므로 종족적인 고려는 근대 민족국가들을 구성함에 있어서 상관이 없습니다 (주: 유럽의 민족국가들). 프랑스는 켈트족이기도 하고, 이베리아족이기도 하며, 게르만족이기도 합니다. 독일은 게르만족이기도 하고, 켈트족이기도 하며, 슬라브족이기도 합니다. ..... 결국 진실은, 순수한 종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종족적인 분석에 정치의 근거를 두는 것은 공상에 기초를 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71쪽. 
종족에 대한 연구는 인류 역사에 (주: 여기서의 인류는 주로 '유럽'이었음을 잊어선 곤란) 관심을 갖는 학자들에게는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에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럽의 지도를 형성시키는 본능적 의식은 종족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며, 유럽의 중요한 민족들은 본질적으로 혼혈 민족입니다 (주: 역시 '유럽'의 상황이다. 이를 염두해 두고 읽어야 함). 그러므로 처음에는 종족이라는 것이 중요했지만, 그 중요성은 계속해서 약화될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동물과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릅니다. 그것은 설치류 동물이나 고양이과 동물들에서처럼 종족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의 두개골을 살펴보거나 "너는 우리 혈통이니까 우리에게 속한다"라면서 사람들의 목을 잡고 우격다짐할 권리가 없습니다. 중략. 저는 인종학을 매우 좋아합니다. 인종학은 보기 드문 이점을 가지고 있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자유롭기를 원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얂기를 바랍니다. 중략. 어떤 애국자는 "당신은 오해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피를 흘리셨지요. 당신은 스스로 켈트족이라 믿고 계시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게르만족입니다." 라는 말을 듣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10년후에는 당신이 슬라브족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중략. 인종학에 대해서는 오로지 (학문적)진리만을 요구합시다.

72쪽이후~끝 중 발췌.
2. 우리가 종족에 대해서 방금 말한것을 언어에 대해서도 말해야만 합니다. 중략. 미국과 영국, 스페인계 아메리카와 스페인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반면, 스위스는 서너개의 언어로 사고하는 서로 다른 집단들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져 있지만, 하나의 민족을 잘 형성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언어를 초월하는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의지입니다. 다양한 방언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통일되고자 하는 스위스의 의지는 종종 굴욕적인 사건들에 의해서 얻어지는 유사성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프랑스가 명예롭게 여겨야 할 한가지 사실은 강제적인 수단에 의해서 언어의 통일성을 획득하고자 애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상용화는 사람들은 동일한 감정과 사고를 갖거나 동일한 것을 좋아할 수 없을까요? 우리는 방금 국제 정치가 인종학에 의존할 경우 발생하는 불리한 점에 대해 말한 바 있습니다. 비교문헌학에 의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흥미로운 학문들에서 이루어지는 토의가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내버려둡시다. 그 토의들을 공평함을 그르치는 것들에 연루시키지 맙시다 (주: 즉, 언어가 민족을 구성하는 강력한 틀인 것이 사실일수도, 그리고 사고방식의 틀을 결정하는 것이 사실일수도 (필자는 영향을 크게 미친다고 생각함) 아닐수도 있지만 (예컨대 인지심리학, 뇌과학, 철학적 성과에 의해 그 결과가 드러나게 되더라도) 그것이 '이데올로기'의 앞잡이나 수단으로 오용되서는 안된다는 점- 동의한다). 중략. 

심지어 기원에 있어서도 언어의 유사성이 종족의 유사성을 초래하지는 않았습니다. 원시 아리안족이나 원시 셈어족을 예로 들어봅시다. 그들이 부리던 노예들은 주인과 동일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노예는 주인과 서로 다른 종족인 경우가 흔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인도유럽어족, 셈어족, 그리고 그 밖의 언어적 구분은 비교문헌학의 연구로 만들어진 것인데, 이러한 구분은 인류학적 구분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어는 역사적인 부산물로,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혈통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주: 이는 삼국시대의 '언어'라는 부분에 집착하는 현재의 한국역사학의 태도에도 분명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쨌든 언어라는 것이 우리가 영원토록 함께 할 집단을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영원토록 인간의 자유를 속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중략. 프랑스 문화, 독일 문화, 이탈리아 문화 이전에 인류의 문화가 있는 것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프랑스 사람도, 이탈리아 사람도, 독일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고대와의 교류에 의해서 인류정신의 진정한 교육의 비밀을 발견했으며, 거기에 몸과 마음을 바쳤습니다. 그 얼마나 잘한 일인지요!

4. 종교가 민족의 결정요소가 될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지리편.
지리, 사람들이 이른바 자연적인 국경선이라 부르는 그것은 확실히 민족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중략. 그렇다면 우리는, 한 민족의 경계가 지도상에 그려져 있으며, 그 민족은 경계선의 굴곡을 모나지 않게 하기 위해 경계를 제한하는 기능이 있다고 간주되는 어떤 산이나 강에 도달하기 위해여 필요한 것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 더 독단적이고 치명적인 이론은 없을 것 같습니다 (주: 바로 현재의 중화민국의 정책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수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더하다- 왜냐하면 '한민족'을 구분하기 위해 지리적인 경계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점령한 땅'은 모두 중화의 민족에 속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기 때문). 사람들은 그러한 이론으로 모든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그런데 우선 자연적인 국경선들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을 형성하는 것은 산들입니까, 아니면 강들입니까? 중략. 그들을 가르는 것은 어떤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것들은 어떤 것입니까? 중략. 사람들은 전략적인 이유에 대해 말하곤 합니다.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참으로 많은 양보가 불가피하게 행해져야 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하지만 이 양보들이 너무 멀리가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자신들의 군사적인 편의를 요구하게 된다면, 끝없는 전쟁이 있을 뿐입니다. 종족이 하나의 민족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듯이 영토 역시 민족을 만들지 못합니다. 땅은 투쟁과 노동의 장인 토대를 제공합니다. 사람은 영혼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인민이라 불리는 이 신성한 것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어떠한 소재도 결코 거기에서든 충분하지 않습니다. 민족은 토지라는 외형에 의해 결정된 집단이 아니라 역사의 깊은 분규의 결과로 생긴 정신적 원칙이며 영적인 집단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러한 정신적인 원칙을 창출해내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인종, 언어, 종교적 유대감, 이해 관계, 지리, 군사적 필요성들이 그것들이었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일까요?

5.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영혼이며 정신적인 원리입니다. 둘이면서도 사실 하나인 것이 바로 이 영혼, 즉 정신적인 원리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한쪽은 과거에 있는 것이며, 다른 한쪽은 현재에 있는 것입니다. 한쪽은 풍요로운 추억을 가진 유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이며, 다른 한쪽은 현재의 묵시적인 동의, 함께 살려는 욕구, 각자가 받은 유산을 계속해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하루아침에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민족 역시 노력과 희생, 그리고 오랜 헌신으로 일구어내는 기나긴 과거의 결실인 것입니다. 

조상들에 대한 숭배는 지극히 정당한 것입니다. 조상들 덕분에 현재의 우리가 있으니까요. 위대한 인물들, 영광스러운 (진정한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웅적인 과거, 그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가 민족적인 사고의 토대를 두고 있는 사회적 자산입니다. 과거에 공통된 영광 (주: 이는 영토에 관한 편협한 종류가 아니다- 인간/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도움을 주는 종류의 영광이다)을 누렸던 것, 현재에 공통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다시 말해 위대한 일을 함께 이루었고 여전히 그것을 함께하고자하는 의지야 말로 한 민족이 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들입니다. 중략. "우리는 당신들이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당신들이 될 것입니다"라는 스파르타의 노래는 가장 간결하게 요약된 모든 조국에 대한 찬가입니다 (주: 현재의 애국가도 비슷한 가사다)

고통을 함께하고 즐기고 기대하는 것, 바로 이것이 공동의 세관이나 전략적인 사고에 억지로 맞춘 국경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것입니다. 중략. 그렇습니다. 함께하는 고통은 기쁨보다 훨씬 더 사람을 단결시킵니다. 민족적인 추억이라는 점에서는 애도가 승리보다 낫습니다. 애도의 기억들은 의무를 부과하며, 공통의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은 이미 치러진 희생과 여전히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희생의 욕구에 의해 구성된 거대한 결속입니다. 중략. 한 민족의 존재는 개개인의 존재가 삶의 영속적인 확인인것과 마찬가지로 매일매일의 인민투표입니다.  그것이 신권보다는 덜 형이상학적이고, 이른바 역사적 권리보다는 덜 가혹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지시키고자 하는 바는 하나의 민족도 왕이 그럴수 없듯이 "너는 나에게 속해있느니까, 내가 너를 취하겠노라"라고 어떤 지방에 말할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하나의 지방은 곧 그 주민들입니다. 이 문제에서 자문의 상대가 될 권리가 있는 사람은 바로 그곳 주민들이지요. 한 민족은 결코 그 주민들의 의사에 상관없이 병합되거나 압류될 수 없습니다. 요컨대 민족들의 결의는 언제나 항상 살아남아야만 할 단 하나의 정당한 기준인 것입니다. 중략.

인간의 의지는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민족은 영속적인 그 무엇이 아닙니다. 민족들은 새롭게 생겨났고, 언젠가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유럽연맹이 민족들을 대체하게 되겠지요 (주: 다시말하지만, 르낭의 세계는 '유럽'에 한정되어 있는 세계다). 하지만 그것만이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기의 법칙인 것은 아닙니다. 현재 (또는 미래의 다른) 시점에서는 민족의 존재가 좋은 것이며, 심지어 필요한 것입니다. 세계에 하나의 법과 하나의 주인이 있다면 (주: One World, One Government) 필연적으로 잃어버리게 될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민족의 존재이유입니다. (주: 현재의 세계화 이데올로기화의 일부시점에 적확한 비수를 날리는 구절이다. 당연히 다양한 로컬질서와 로컬문화의 강화가 되는 것이 이상적이고 진정한 세계화). 종종 대립되기도 하는 다양한 기능들에 의해 민족들은 문명의 공통 작업에 유용하게 작용합니다. 요컨대,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가장 고상한 이상적 현실인 인류의 이 위대한 교향곡에 모든 민족들이 '음'하나씩을 가져오는 것이지요. 

만일 국경선에서 의심이 솟아나게 되면 다투고 있는 주민들에게 자문을 하십시오.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한 의견을 가질 마땅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주: 동의하는 생각이다- 다만, 당시 르낭의 이 연설은 독일에게 알자스-로렌지역을 빼앗기고 난 직후라는 것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중략. 강한자들의 멸시를 감내하는 법을 배웁시다. 아무도 결실없는 모색을 많이 한 후에야 (즉, 시행착오를 거친후에야) 사람들은 겸허한 해결책, 우리의 경험으로 검증된 해결책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미래에 옳은 편에 서는 방법은, 특정한 때에 시류에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인내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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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의 르낭의 주장은 우리역사로 고찰해보자면, 일면 삼한일통을 주장하며 등장한 통일신라와 그 정신을 단단히 한 고려시대 체제의 민족형성과 꽤 닮아있다. 물론 거기에 영토를 제외한 동일한 인종, 언어까지 강조하면서 더 강화되고 이데올로기화 된것이 우리의 역사과정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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