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한양 풍경 묘사한 '성시전도시(詩)' 발굴 (2013. 3월) 그리고 14세기 진신도팔경시 역사

2013년 3월, 18세기의 한양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생활사적측면의 커다란 경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정조대의 성시전도시의 부분이 새롭게 발견된 것입니다. 
이 기사를 소개하기 전에 신병주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교수께서 설명해두신 정도전의 14세기 서울풍경을 묘사한 시인 '진신도팔경시'에 대한 설명을 쓴 글이 있어 우선 소개합니다. 중간중간 필자의 의견과 해석 및 사진을 첨부합니다.

시(詩), 한양을 예찬하다
  현대에도 ‘럭키 서울’, ‘서울의 찬가’, ‘서울 서울 서울’ 등 서울을 찬미하는 노래들이 유행한 적이 있지만, 조선시대에도 시를 통해 수도 한양의 번성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건국의 최고 주역인 정도전(鄭道傳:1345~1398)은 ‘진신도팔경시(進新都八景詩)’에서 새로 도읍지가 된 한양의 모습을 찬미하면서 대대로 복을 누릴 것을 기원했다.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에는 기전산하(畿甸山河:기전의 산하), 도성궁원(都城宮苑:도성의 궁원), 열서성공(列署星拱:여러 관청이 늘어서 있음), 제방기포(諸坊碁布:여러 동리가 배열된 모습), 동문교장(東門敎場):동문에서 군사를 훈련하는 교장, 서강조박(西江漕泊:서강에 배를 정박함), 남도행인(南渡行人:남쪽에서 물을 건너오는 행인들), 북교목마(北郊牧馬:북쪽 교외에서 말을 기름) 등 8가지 주제로 한양의 모습을 예찬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기전산하(畿甸山河)
기름지고 비옥하도다 천 리의 기전 / 沃饒畿甸千里
안팎의 산과 물은 백이(百二)1)로구나 / 表裏山河百二
덕교에다 형세마저 아울렀으니 / 德敎得兼形勢
역년은 천세기를 기약하도다 / 歷年可卜千紀

도성궁원(都城宮苑)
성은 높아 천 길의 철옹이고 / 城高鐵甕千尋
구름은 봉래 오색(蓬萊五色)2)을 둘렀구나 / 雲繞蓬萊五色
해마다 정원에는 앵화 가득하고 / 年年上苑鶯花 (주: 앵화라는 표현은 봄날에 꾀꼬리가 울고 꽃이 만발한 모습을 표현하는 관용구입니다)
세세로 도성 사람 놀며 즐기네 / 歲歲都人遊樂

열서성공(列署星拱)
줄지어 선 관청은 우뚝하게 서로 마주서서 / 列署岧嶤相向 (주: 당시 한양의 관청 모습들을 추정하게 해줍니다)
마치 별이 북두칠성을 끼고 있는 듯 / 有如星拱北辰
새벽달에 관가는 물과 같으니 / 月曉官街如水
명가(鳴珂)3)는 먼지 하나 일지 않누나 / 鳴珂不動纖塵 (주: 명가는 말굴레의 장식품으로 따라서 길거리가 깨끗했음을 말하는 구절입니다).

제방기포(諸坊碁布)
제택은 구름 위로 우뚝이 솟고 / 第宅凌雲屹立 (주: 살림집과 정자(亭子)를 통틀어 제택이라 합니다.)
여염은 땅에 가득 서로 연달았네 / 閭閻撲地相連 (주: 여염은 보통 살림집이 모여있는 형태)
아침과 저녁에 연화(煙火) 잇달아 / 朝朝暮暮煙火 (주: 연화는 연기와 불로, 백성들이 밤을 아침저녁으로 지어먹는 모습을 유추하게 해줍니다. 도성에 연기가 훨훨...상상이 가는군요).
한 시대는 번화롭고 태평하다오 / 一代繁華晏然
동문교장(東門敎場)
북소리 두둥둥 땅을 흔들고 / 鐘鼓轟轟動地
깃발은 나풀나풀 공중에 이었네 / 旌旗旆旆連空
만 마리 말 한결같이 굽을 맞추니 / 萬馬周旋如一 (주: 동문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모습으로 말을 열지어 맞추는 모습)
몰아서 전장에 나갈 만하다 / 驅之可以卽戎

서강조박(西江漕泊) (주: 西江은 서강나루터가 있던 한강(漢江)의 마포(麻浦)와 양화진(楊花津) 사이입니다. 지금 서강대교(西江大橋) 북쪽끝 잠두봉(蠶頭峰) 앞 일대가 바로 서강으로 이때 교역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싯구)
사방 물건 서강으로 폭주해 오니 / 四方輻湊西江
거센 파도를 끌어가네 / 拖以龍驤萬斛
여보게 썩어 가는 창고의 곡식 보소 / 淸看紅腐千倉
정치란 의식의 풍족에 있네 / 爲政在於足食
현재의 서강대교 근처
남도행인(南渡行人)
남도라 넘실넘실 물이 흐르나 / 南渡之水淊淊
사방의 나그네들 줄지어 오네 / 行人四至鑣鑣
늙은이 쉬고 젊은 자 짐지고 / 老者休少者負 (주: 당시 노인에 대한 배려를 잘 보여주는 싯구)
앞뒤로 호응하며 노래 부르네 / 謳歌前後相酬

북교목마(北郊牧馬) (주: 北郊은 서울 북쪽 교외를 뜻합니다).
숫돌같이 평평한 북녘들 바라보니 / 瞻彼北郊如砥
봄이 와서 풀 성하고 물맛도 다네 / 春來草茂泉甘
만 마리 말 구름처럼 뭉쳐 있으니 / 萬馬雲屯鵲厲
목인은 서쪽 남쪽 가리질 않네 / 牧人隨意西南

바로 이 그림이 이 모습그대로일듯 
(일본소재- 14-15세기 조선, 방목도- 현재 강북 아차산근처의 조선왕실 목마장)
1) 백이(百二): 산하(山河)의 험고(險固)함을 말한 것이다. 《사기(史記)》에 “진(秦)나라는 땅이 험고하여 2만 명만 있으면 족히 제후(諸侯)의 백만 군사를 당할 수 있다.” 하였다.
2)  봉래 오색(蓬萊五色): 봉래궁(蓬萊宮)은 당(唐)나라 대명궁(大明宮)인데, 여기서는 우리 궁궐에 비유하여 쓴 것이다. “천자(天子)의 정궁(正宮)이어서 그 뒤에는 항상 오색의 서운(瑞雲)이 떠 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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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부분은 올 3월에 발견된 성시전도시의 부분이전에 이미 알려져 있던 이덕무 파트입니다.

조선후기에도 한양을 예찬한 시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정조의 명으로 신하들이 쓴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이다. 정조는 신하들과 함께 시문을 주고받는 것을 즐겼는데, 1792년 4월 여러 신하들에게 번성하는 서울의 모습을 묘사한 시를 지어 바치게 하였다. 검서관 박제가ㆍ검교직각 이만수ㆍ겸검서관(兼檢書官) 유득공ㆍ검교직각 서영보ㆍ좌부승지 이백형ㆍ검서관 이신모 등이 시를 썼고 우등(優等)인 여섯 사람의 시권에는 각각 어평(御評)을 가했다.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시권에는 아(雅)자를 썼는데, 이덕무의 문집인 『청장관전서』 제20권 「아정유고(雅亭遺稿)」의 응지각체(應旨各體) 편에는 성시전도(城市全圖) 칠언고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덕무의 시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금척의 산하 일만 리가 / 金尺山河一萬里
한양 서울 황도 속에 번성하네 / 漢京翼翼黃圖裏
황도 한 문안에 큰 도회지 / 黃圖一案大都會
역력히 펼쳐 있어 손금을 보는 듯 / 歷歷鋪敍掌紋視
글 맡은 신하 그림에 쓰는 시 지을 줄 알아 / 詞臣解撰題畫詩
성한 일에 왕명을 받았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 盛事何幸承恩旨
동월(董越)이 부(賦)를 지은 것4) 조금 뜻에 맞고 / 董越作賦差强意 (주: 동월은 명나라사신으로 15세기 조선을 방문한 후 보고 들은 모습을 글로 남깁니다- 그것이 조선부인데 현전합니다. 곧 한번 소개해보지요, 흥미진진합니다.)
서긍(徐兢)이 그림을 만든 것5) 어찌 혼자 아름다우랴 / 徐兢爲圖豈專美 (주: 고려도경에 관한 이야기로 고려못지 않게 조선도 아름답다는 자존심을 부립니다)
조선 만세의 꺾이지 않는 기초 / 朝鮮萬世不拔基
문물 번화한 것이 모두 여기에 있네 / 文物繁華盡在此
… 
육조와 백사는 여러 관원을 거느리고 / 六曹百司領大小 (주: 해설이 약간 이상해보이는데 육조백사란 육조의 관리들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팔문과 사교는 멀고 가까운 곳을 통하네 / 八門四郊通遐邇 (주: 사대소문과 다리들을 뜻하는 듯)
팔만여 민가는 오부가 통할하고 / 八萬餘家統五部 (주: 이 부분은 꽤 중요해 보이는데 팔만여 민가가 있다는 말로 당대 한양의 인구파악에 도움이 됩니다)
사십구방은 세 저자를 끼고 있네 / 四十九坊控三市
빙 둘러 돌로 쌓은 성 금구와 같으니 / 週遭石城似金甌
이것이 왕경의 대략이로다 / 此是王京大略耳
북쪽 산은 백악처럼 좋은 것 없고 / 北山無如白岳好
우편으로 인왕산을 끼었으니 백중과 같네 / 右把仁王伯仲似
영특한 기운 모여 돌빛이 푸르르니 / 英靈所鍾石氣靑
그 아래 기이한 선비가 많이 난다네 / 其下往往生奇士
남쪽 산은 자각처럼 수려한 것 없어 / 南山無如紫閣秀
푸른 기운 하늘에 솟았으니 하늘도 지척이라 / 翠眉浮天天尺咫
이것이 달아나는 말이 안장을 벗는 형국인데 / 云是奔馬脫鞍形
평안도의 봉홧불을 남쪽 변방에 알린다 / 平安火擧通南鄙
동쪽 산은 낙봉처럼 묘한 것이 없어 / 東山無如駱峯妙
공자의 사당이 그 기슭에 자리하고 있네6) / 玄聖門墻枕其趾
청계천 한 줄기 북영을 관통하고 / 淸溪一道貫北營
응암의 왜송(倭松) 푸르러 시들지 않네 / 鷹岫倭松靑不死
홍정은 세검천을 둘렀으니 / 紅亭繞以洗劍川
백추지 다듬는 방망이 소리 빈 골짝 울리고7) / 空谷砧鳴白硾紙
외로운 정자 홀로 대명(大明) 하늘을 이니 / 孤亭獨戴大明天
백대의 청풍 밝고도 깨끗하다8) / 百代淸風皎不滓
세심대 꽃이 필운에 비치니 / 洗心臺花弼雲映
영광의 빛 천송이 만송이로다 / 寵光千葩與萬蘤
원각사에 우뚝한 백탑은9) / 亭亭白塔大圓覺 (주: 원각사 팔층석탑으로 현재 탑골공원 소재)
열네 층을 공중에 포개었네 / 層給遙空十四累
운종가에 있는 흥천사의 큰 종은 / 興天大鐘雲從街 (주: 아래 사진입니다)
커다란 집 가운데에 날 듯하여라 / 傑閣堂中翼斯跂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갔다 또 오는 사람들 / 來來去去去又來
인해가 망망하여 끝이 보이지 않네 / 人海茫茫不見涘 (주: 당대 한양의 번화한 모습)
원각사 8층석탑 (국보 2호)
흥천사 동종
거리 좌우에 늘어서 있는 천간 집에 / 沿街左右千步廊 (주: 千步廊은 보폭으로 천번을 갈만큼 대저택이란 뜻)
온갖 물화 산처럼 쌓여 헤아리기 어렵네 / 百貨山積計倍蓰
비단 가게에 울긋불긋 벌여 있는 건 / 錦肆紅綠班陸離
모두 능라(綾羅)와 금수(綿繡)요 / 紗羅練絹綾縠綺 (주: 능라는 두껍고 얇은 비단의 통칭이고 금수는 수를 놓은 최고급 비단)
어물 가게에 싱싱한 생선 도탑게 살쪘으니 / 魚肆新鱗足珍腴
갈치ㆍ노어ㆍ준치ㆍ쏘가리ㆍ숭어ㆍ붕어ㆍ잉어이네 / 鮆鱸鰣鱖鯔鮒鯉 (주: 당시 한양에서 먹던 생선류입니다 흥미..)
쌀가게에 쌓인 쌀 반과산 같으니 / 米肆隣近飯顆山
운자 같은 흰밥에 기름이 흐른다 / 白粲雲子滑流匕 (주: 백미를 으뜸으로 쳤군요 이때도)
주점은 본래 인간 세상이나 / 酒肆本自人間世
웅백성홍(熊白猩紅)10)의 술빛 잔에 가득하네 / 熊白猩紅滿滿匜 (주: 아래 설명 10을 참조)
행상과 좌고 셀 수 없이 많아 / 行商坐賈指難僂
자질구레한 물건도 갖추지 않은 것 없네 / 細瑣幺麽無不庀
4) 동월(董越)이……것: 명나라 사신으로 1488년 조선을 다녀온 후 조선의 풍토를 기록한 「조선부(朝鮮賦)」를 남겼다.
5) 서긍(徐兢)이……것: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사신으로 와서 견문한 내용을 『고려도경』으로 남겼다.
6) 공자의……있네: 공자를 모신 성균관 대성전을 묘사한 것이다.
7) 백추지……울리고: 세검정 앞 홍제천에서는 실록의 저본이 되는 사초를 세초(洗草)하였다. 세초한 종이는 재활용하였는데, 이 부분은 바로 세초 후 종이를 만드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8) 백대의……깨끗하다: 김상용의 집터인 청풍계(淸風溪)의 바위에 ‘대명일월(大明日月) 백세청풍(百世淸風)’의 글씨를 새겨 놓은 것을 묘사한 것이다. 지금도 청운동의 주택에 ‘백세청풍’이라는 바위 글씨가 남아 있다.
9) 원각사에……백탑은: 원각사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백탑이라 하였다. 정조대에는 이곳에서 박지원을 중심으로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백동수 등 소위 ‘백탑파’ 학자들이 활동을 하였다. 현재의 탑골공원 이름도 원각사 10층탑에서 유래한 것이다. 
10) 웅백성홍(熊白猩紅): “곰이 겨울이면 흰빛의 기름이 가슴에서 옥처럼 뭉치는데, 그 맛이 매우 좋으므로 사람들이 웅백이라 한다.”고 했고, 성홍은 성성(猩猩)의 피처럼 붉은 빛을 말한 것인데, 여기서는 술을 가리킨다. 

이덕무는 「성시전도시」에서 조선후기 번영하는 한양의 모습을 시로서 예찬하였다. 5부 49방으로 구성된 도시 구성, 백악산ㆍ인왕산ㆍ남산ㆍ낙산으로 둘러싸인 형승과 청계천ㆍ응암ㆍ세검정ㆍ청풍계ㆍ세심대ㆍ필운대 등 한양의 명승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거리 좌우에 늘어서 있는 천간 집에 온갖 물화 산처럼 쌓여 헤아리기 어렵네’라는 표현에서는 활기에 가득찬 시장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정조는 1791년 신해통공(辛亥通共)을 단행하여 금난전권(禁亂廛權)을 폐지함으로써 특권 시전 상인 이외에 영세 상인들의 도성 진출을 허락하였다. 조선후기 상업의 도도한 발전을 정치권이 수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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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원래 알려져 있던 성시전도시(18세기)부분과 진신도팔경시(14세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이 올해 발굴된 새로운 성시전도시의 부분입니다. 본문링크-안대회 교수 18세기 한양모습 '성시전도시' 발굴 소개
그림은 경기감영도 (18세기후반)- 현재의 서대문네거리 적십자병원일대

18세기 조선의 수도 한양의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가 새롭게 발견됐다. '성시전도시'는 정조의 명으로 신하들이 쓴 시로, 정조는 1792년 한양 전체를 담은 '성시전도'(城市全圖)를 그리게 하고 이 그림을 소재로 규장각 문신들에게 시를 지으라고 명했다. 

국내 대표적인 한문학자인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논문 '성시전도시와 18세기 서울의 풍경'과 '새로 찾은 성시전도시 세 편과 평양전도시(平壤全圖詩) 한 편'에서 '성시전도시' 12편을 소개했다. 국내에서 '성시전도시'를 본격 분석한 것은 이 논문들이 처음이다. '성시전도시'는 7언 백운(百韻) 고시(古詩)로, 200구(句) 1천400자(字)에 달하는 장편시다.

안 교수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성시전도시' 작품은 모두 12편. 정조의 명을 받아 1792년 신광하, 박제가, 이만수, 이덕무, 유득공, 서유구, 정동간, 이희갑, 김희순 등 규장각 문신들이 지은 시 9편과 신택권, 이학규, 신관호가 규장각 문신들의 '성시전도시'를 모방해 지은 시 3편이다. 정조는 1792년 4월 24일 규장각 문신들에게 한양의 풍경을 그린 그림 '성시전도'를 주제로 사흘 안에 장편의 시를 지으라는 명을 내렸다. 정조는 신하들이 지은 시를 읽고 직접 등수를 매겼다. 병조정랑(兵曹正郞) 신광하가 1등을 차지했다. 2등은 당시 검서관(檢書官)이었던 박제가였다. 이어 검교직각(檢校直閣) 이만수와 승지 윤필병이 3, 4등을 각각 차지했고 겸검서관(兼檢書官) 이덕무와 유득공은 공동 5위였다. 정조는 1등을 한 신광하의 시는 '소리가 있는 그림'(有聲畵), 박제가의 시는 '말할 줄 아는 그림'(解語畵)이라고 평가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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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내용처럼 이덕무의 시가 바로 위에 소개한 부분이고, 올해 발견된 새로운 부분은 박제가(1750-1805)을 포함해서 유득공의 개인소장시, 그리고 정동간, 이희갑, 김희순등의 완벽히 새로운 시를 발견했습니다. 안대회교수는 이 부분을 미국의 버클리대학소장중인 청나라 학자가 간행한 박제가 저술의 '정유고략'이란 고서에서 발굴합니다 (맨 윗사진). 이는 박제가의 작품이 중국에서도 많이 읽힌 증거가 되기도 하는데, 이 책의 간행은 청의 당대 장서가였던 오성란이 맡았습니다. 또한 "안 교수는 조선후기 국왕의 동정과 국정운영을 일기체로 정리한 '일성록'(日省錄)과 규장각일기인 '내각일력'(內閣日曆), 개인 문집 등에서 '성시전도시' 작품들을 찾아냈다".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안 교수는 구한말 정치가이자 문인인 김윤식(1835-1922)이 '성시전도시'의 영향을 받아 '평양전도'(平壤全圖)를 보고 지은 장편시 '제평양전도병풍백일운'(題平壤全圖屛風百一韻)도 소개했습니다. 또 19세기 전반의 한양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시로는 "한양가"가 있습니다 (작자미상으로 한양의 궁전과 정각(亭閣), 승정원과 선혜청 등 관아의 모습, 도성의 성문과 시장의 풍경, 각종 놀이와 복식, 가무의 모습, 기생의 점고, 과거시험 모습, 궁궐의 건축모습, 왕의 수원 행차, 문·무과 과거시험 등으로 구성, 아주 생생한 기록입니다). 여러 기사중 어떤 부분이 정확히 새로 추가된 부분인지 알수 없어, 일단 흥미로운 부분만 소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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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전도시(18세기)중 일부
박제가
“청년들 한 무리가 떼 지어 몰려갈 때 / 팔뚝 위 보라매는 털과 부리 으스댄다… 눈먼 장님 호통치나 아이놈들 깔깔대고 / 건널까 말까할 때 다리는 벌써 기우뚱”  (주: 고려대의 트랜디보이들의 상징 해동보라매가 조선후기까지 일반화되어 있었군요)

“물가주막엔 술지게미 산더미일세.~ 눈먼 장님 호통치니 아이놈들 깔깔 거리고~개백정이 옷 갈아 입으면 사람들은 몰라뵈도, 개는 쫓아가 짖어대며 성을 내며 노려본다."

“배우들 옷차림이 해괴하고 망측하다. 동방의 장대타기는 천하에 없는 거라. 줄타기와 공중제비하며 거지처럼 매달렸다. 한 곳에선 꼭두각시 무대에 오르자 동방에 온 칙사(勅使)가 손뼉을 친다. 원숭이는 아녀자를 깜짝 놀라게 해 사람이 시키는대로 절도 하고 꿇어도 앉네.”

신택권
“위로는 정승판서부터 아래로는 가마꾼까지/안으로는 규방서부터 외방고을의 기생까지/입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가 즐기지 않으며~잔치자리 첫 대면에는 이 물건을 못빼놓고 비변사 공무로는 저것을 넘어서는 게 없네/연다(烟茶·담배)와 술은 어느 것이 좋은가?” 

“특히 집주름(가쾌·부동산 중개업자)이 나타나 생업을 꾸리니~천 냥을 매매하고 백냥을 값으로 받으니(千민買賣百緡價) 동쪽 집 사람에게 서쪽 집을 가리킨다.” (주: 부동산 중개료가 판매가의 10분의 1)

“남촌과 북촌에는 이름난 집들이 몰려있어/부귀한 자는 성세(聲勢)에 기대야지/예부터 양반은 조용하고 외진 곳을 좋아했으나(自古兩班喜靜僻)/지금은 사대부가 시끄럽고 낮은 데를 탐낸다.(而今士夫貪喧비)” 
(서민)“외진 골목에 팔짱끼고 살자니 생계가 어려워/빈촌에 둥지 틀어 시장 가까이 산다”

김희순
"아직도 연조(燕趙)의 협객을 사모하는 풍모가 남아 말 달리고 투계(鬪鷄) 하면서 한 자나 되는 칼을 찼네. 문득 의기투합하는 자를 만나면 술집과 찻집에서 손바닥을 부딪히네.(酒樓茶肆掌一抵), 취한 뒤엔 고담준론, 공자들을 압도하며 한평생 호화로움 언제나 자신하네.(醉後高談凌五公 一生豪華長自恃)’ (주: 조선후기의 하이파이브 모습입니다)

이학규
“바닥에 쌓인 생선에선 비린내 살살 풍겨오고/사람보고 냅다 달리는 놈은 돼지라네.~까만 머리 어른 계집종은 정수리에 동이를 이고/동이가 울며 쏟아지려 하자 머리를 치켜든다.”

신관호
“가련타! 광통교 색주가는 별자(別字) 쓴 등을 걸고 탁자에 늘어놓았네./가련타! 구리개 약파는 늙은이는/망건쓰고 어슬렁거리며 주렴 안에 머무네.” (주: 이 부분은 현대의 전통술집에서도 쓸만한 부분입니다 '등에 별別 자를 썼다는 구절 말이지요)
한양시 (19세기전반)의 일부
'팔로를 통하였고 연경, 일본 닿았구나. 우리나라 소산(所産)들로 부끄럽지 않건마는 타국 물화 교합하니 백각전(百各廛) 장할시고. 칠패의 생어전에 각색 생선 다 있구나. 민어·석어·석수어며, 도미·준치·고도어(高道魚)며, 낙지·소라·오적어(烏賊魚)며, 조개·새우·전어로다. 남문 안 큰 모전(毛廛)에 각색 실과(實果) 다 있구나. 

청실뇌·황실뇌·건시·홍시·조홍시며, 밤·대추·잣·호도며 포도·경도(瓊桃)·오얏이며, 석류·유자·복숭아며, 용안(龍眼)·협지·당재추로다. 상미전(上米廛) 좌우 가게 십년지량(十年之粮)을 쌓았어라. 하미·중미·극상미(極上米)며, 찹쌀·좁쌀·기장쌀과 녹두·청태·적도·팥과 마태(馬太)·중태·기름태로다. 되를 들어 자랑하니 민무기색(民無飢色) 좋을씨고. 

수각(水閣) 다리 넘어서니 각색 상전(商廛) 벌였어라. 면빗·참빗·얼레빗과 쌈지·줌치·허리띠며 총전·보료·모탄자며 간지(簡紙)·주지(周紙)·당주지(唐周紙)로다'

'큰 광통교 넘어서니 육주비전 여기로다'
'일 아는 열립군(列立軍)과 물화를 맡은 전시정(廛市井)은 큰 창옷에 갓을 쓰고, 소창 옷에 한삼(汗衫) 달고 사람 불러 흥정하니 경박하기 측량없다'
광통교 (김영택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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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부분만 소개하지만 전문을 언제 확인하면 나누어보겠습니다. 안대회 교수는 처음으로 성시전도시를 분석해 박제가의 작품 등 12편의 성시전도시를 알렸는데, 이 올해 논문이 국내최초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새로 찾은 ‘성시전도시’ 세 편과 ‘평양전도시’ 한 편>, ‘문헌과 해석’ 봄호, 문헌과 해석사, 2013) .



덧글

  • 양화소록 2013/10/09 07:20 # 삭제

    원예학과 다닌 사람이라 과일들에 흥미가 가는군요. 청실뇌, 황실뇌, 경도(瓊桃), 협지, 당재추는 무슨 과일일런지 궁금합니다. 용안(龍眼)이라 함은 아마 Dimocarpus longan을 지칭하는 모양인데.... 열대과일이긴 하지만 말린과육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리 놀라울 것은 아니겠군요.

    곡물 중 적도와 마태(馬太), 중태, 기름태는 무엇일런지.... 붉은 벼와 콩의 품종들이려나;;

    흥미로운 기사 소개해주셔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3/10/09 07:24 #

    양화소록님> 저도 그쪽은 문외한인지라..ㅎ *용안에 대한 추측 흥미롭네요*. 요즘은 문화컨텐츠 온라인백과사전등이 잘되어 있으니 한번 찾아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 ㅇㅇ 2013/10/09 14:56 # 삭제

    사진이 잘못 됬네요
    저건 원각사탑이 아니고 경천사탑입니다

    그건 그렇고
    조선 전기 원각사 규모를 예전에 서울 항공사진으로 파악한 적이 있었는데
    탑골공원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더군요.
    원각사 중심 권역은 현재 세운상가 건물인 것 같습니다
    즉 원래 원각사 규모는 탑골 공원 전체의 2~3배는 된다는 거죠

    또하나 이 포스팅에서 18세기 후반 한양 민가가 8만여로 나오는데
    통상 그당시 한양 인구를 25만명 정도로 쳤을때
    일률적으로 호당 4~5명 곱하기는 안되는군요

    근데 조선전기 한양 인구 10만명 조선후기 한양 인구 20만명은
    솔직히 너무 적게 잡은 수치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긴뭐 고려 개경 인구를 10만명으로 잡는 사람들도 있으니..
    (몽골 침략 당시 강화도로 이주한 개경 인구가 30만인데
    평상시 개경 인구가 10만명이라는 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그런데 조선후기 한양 인구가 25만명에 육박하면서
    특히 영정조 시기되면 청계천을 비롯해서 한양 전체의 위생 상태가
    아주 안좋아졌다고 기록에 나오더군요
    심지어 현재 광화문광장은 무슨 똥냄새가 진동했다는 얘기가 나올정도
    뭐.. 이런 상황은 비슷한 시기 유럽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인구 25만명의 한양이 이지경이니
    남북국시대 신라 서라벌 100만 고려시대 개경 50만 인구에서
    수도의 위생 상태는 과연 어떠했는지 궁금하네요

    일단 고려당시기록보면 이미 고려 중기에 개경 주요 하천들이
    엄청 더러워졌다는 얘기가 나오긴 하지만..

    근데 이건 편견인지도 모르겠지만
    조선후기 한양쪽이 신라나 고려보다 인구수에 비해
    위생상태가 그닥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 건 있더군요

    수도 면적이 좁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주변 하천유량의 문제인건지,,

    아무튼 그렇습니다


  • 역사관심 2013/10/09 15:06 #

    이런 사진 실수를...수정합니다.
    인구에 대한 논문은 아직 체계적으로 볼 기회는 없었지만, 항상 정답이 없는 문제 같습니다. 가장 객관적인 것이 어느것인가로 접근해 들어갈수 밖에 없는 거겠지요.

    말씀마따나 영정조때 위생이 안좋아졌다는 기록은 저도 본 기억이 납니다. 사실, 소개해드린 싯구의 8만여호이야기면 가족당 3-4으로 쳐도, 대충 비슷한 수치가 나오네요 (25-30).
  • ㅇㅇ 2013/10/11 04:35 # 삭제

    그런데 사진이나 딱히 특벼한 자료도 없는데 개경 서라벌의 위생상태를 대체 어떻게 파악하신거죠?
  • 역사관심 2013/10/11 04:43 #

    ㅇㅇ님> 답글에 드린 정보는 영정조의 한양의 이야기입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서라벌의 위생상태 (혹은 개경)는 저도 모릅니다 ^^
  • ㅇㅇ 2013/10/12 11:42 # 삭제

    고려시대 개경의 위생상태나 하천오염상태 같은 건 고려사, 고려사절요등 기록에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요즘 고려시대 개경연구모임등 역사학계에서도 고려 개경 도시발전과정 연구하면서 논문발표등으로 알려진 얘기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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