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회루 용기둥과 황룡주(黃龍舟) 유선에 대한 단상 - 필원잡기 中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1487년 서거정(徐居正)이 쓴 수필집인 [필원잡기]에 고종 (1867년)때 재건한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임진왜란 이전 원래의 경복궁 경회루에 대한 모습이 나옵니다.

요즈음 유구국(琉球國) (주: 지금의 오키나와) 의 사신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조선에 이르러 세 가지 장한 일을 보았는데, 경회루(慶會樓)라 이르는 누각 돌기둥을 용의 문채로 둘렀는데, 매우 기이하고 웅장하였으니, 첫째로 장한 일이요, 압반재상(押班宰相 반열 선두에 선 재상)이 있어 긴 수염이 눈같이 희고 풍채가 준수하며 노성한 덕이 있으니 둘째로 장한 일이다.” 하였으니, 이는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인 영의정 정창손(鄭昌孫)을 가리키는 말이요, 또 “사신을 대하는 관원이 큰 술잔으로 셀 수 없이 대작하여 한 섬의 술을 마실 수 있었으니, 셋째로 장한 일이었다.” 하였으니, 이는 성균관 사성 이숙문(李叔文)을 가리키는 말이다.


1876년 일본에 강제병합되어 오키나와가 된 류큐국 (유구국)의 사신이 15세기말 자신이 직접 경험한 조선의 세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논하는데, 그중 첫손으로 꼽은 것이 바로 경회루의 용기둥들이었습니다. 이 구절이 '용재총화' (1525년)에는 더 자세히 묘사되어 나옵니다. 
[유구국 왕의 사신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성종께서 경회루 밑에서 접견하였는데, 사신이 퇴관(退館)하여 통사(通事)에게 말하기를, “내가 귀국에 와서 세 가지 장관(壯觀)을 보았소.”  하였다. 통사가 그 까닭을 물으니, 사신이 말하기를, “경회루 돌기둥에 종횡으로 그림을 새겨서  나는 용의 그림자가 푸른 물결 붉은 연꽃 사이에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니, 이것이 한 가지 장관이요,... 중략]

뿐만 아니라 조선전기-중기까지의 경회루는 방지 (즉 호수) 서쪽에 만세산(萬歲山)이 세워지고, 조선 전국의 화려한 꽃들을 심고 봉래궁(蓬萊宮), 일궁(日宮), 월궁(月宮), 벽운궁(碧雲宮) 등 상징적인 작은 모형궁을 만들어 금은, 비단으로 장식했습니다. 또 연못 속에는 연꽃을 띄우고 산호(珊瑚)를 꽂아 놓고 황룡주(黃龍舟)란 유선(遊船)을 타고 왕이 만세산을 왕래하였습니다. 때로는 금과 은으로 장식한 비단꽃과 동물 모양의 등을 물 위에 띄우고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워 밤이 낮같이 밝을 정도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현재 이러한 모습을 볼수 있는 곳은 경복궁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2006년 임금의 유람선이라고 언론에 홍보되며 (황룡주) 유선을 띄워놓긴 했는데, 너무 초라해보입니다. 유선하면 강이나 호수에서 띄우는 놀잇배를 뜻하는데, 왕이 타던 유선치고는 너무 작고, 또한 '황룡주'라는 이름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입니다 (황룡부조등도 없습니다). 이 배는 사실 '동궐도'에 있는 작은 평저선을 근거로 복원한 배인지라, 경회루의 원래 용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사실 이 유선은 경회루가 아닌 동궐도중 '창덕궁의 부용지' (부합루앞의)에 등장하는 작은 배입니다. 규모자체가 경회루와 맞지 않습니다. 부용지 (가로세로 30미터)는 규모면에서 경회루 연못 (한면 128미터)과 비교가 안됩니다. 
또한 부용지의 작은 배조차 '용머리'가 있는데, 이조차 반영 안된 것은 문화재청의 나태함을 꼬집을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실록중 연산군대의 '황룡주'는 규모가 다음과 같습니다.
[...... 찬란한 금빛이 햇볕에 빛나는데, 흥청(興淸)으로 하여금 그 안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또 수백 명이 탈 수 있는 황룡주(黃龍舟)를 만들고 채단으로 꾸며, 상(上)이 그 용주를 타고 만세산을 왕래하였다..]
이 용주는 임란때인 선조때까지 등장합니다.

저 기록에 등장하는 연산군대와는 좀 떨어져 있지만, 일본의 에도시대의 놀잇배가 이런 규모와 형태였습니다 (이것은 물론 바다인 도쿄만에서 타던 유선입니다만). 전체적인 형태는 차치하고라도 황룡주라는 이름에 오히려 용머리를 가진 이 배가 뱃머리는 더 어울립니다.
하다못해 20년대 중국의 지방호수인 자싱의 놀잇배도 이런 규모입니다 (난후(南湖)의 유선).
멀리 안가고, 국내의 평양감사의 조선시대 놀잇배도 이 정도는 됩니다.
복원을 할때 그냥 조선시대는 중기이후 미학인 절제미를 중시한 성리학국가였으니 작은 규모였을 것이라는 선입견, 혹은 단원이나 신윤복등 조선후기그림만을 가지고 고증하는 대신, 각종 사료와 당대이웃국가등의 그당시 사료 역시 철저히 살피고 만들면 합니다. 장담컨대, 조선시대 전반을 통해 훨씬 오랜기간 떠있던 황룡주는 현재 경회루에 떠있는 규모나 형태의 평저선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배의 주요목적중 하나가 경회루에 떠있는 부회물을 제거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경회루라는 조선최고의 연못건축앞에 떠 있는 상징적 존재가 분명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당연히 '왕이 타던' 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야기가 용기둥에서 황룡주 유선으로 잠시 샛군요. 경회루의 원래 모습에 대해서는 많은 사료가 남아 있어, 예전에도 포스팅을 쓴 바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전의 원형 경회루 모습.

3층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확실하게 남아있는 48개의 용기둥에 대한 복원에 대한 재고는 한번쯤 해볼 만 한 듯 합니다. 항상 생각하지만, 당장의 복원이 힘들다면 경복궁에 하다못해 모형이나 박물관내에라도 '조선전기-중기'의 경복궁의 모습에 대한 가시적인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이는 멀리보면 한국사회의 '한옥'전반에 대한 통시적인 시각의 부족함을 공공건축에서부터 다시 세울수 있는 계기가 될수도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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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사족이지만, 오키나와는 130년만인 작년, 독립의 기치를 세웠군요 (이와중에 중국은 헛소리- 오십보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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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플로리몽 2014/02/10 11:38 #

    매번 아쉬운게 대원군이 기왕 힘 좀 써서 용조각을 올렸더라면 싶은것이었는데..
    아쉽네요.

    그리고 용선 지적해주셨는데 관계기관에서 참고했으면 싶은 생각이 듭니다.
  • 역사관심 2014/02/10 12:12 #

    궁내의 박물관에서라도 전기~중기의 경복궁 모형이라도 우선 제대로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당장 경복궁의 전기대형건물터도 많이 나오고 있거든요.

    유선은 2006년에 복원한 것인데 동궐도 (즉 19세기 순조대)를 참조해서 만들었다는 설명과 달리 이러한 기사, 즉 조선전기~중기까지 떠 있던 임금의 유람선을 400년만에 복원한다는 내용이 씌여있어, 대체 어느 시대를 근거로 이 배를 제작하고 어떤 의도하에 (즉, 청소용인지 왕의 유람선이라고 만든건지) 만든건지 전혀 알수가 없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81007

    청소배를 만들었다면 정확히 동궐도에 의해 그러한 용도'로만' 쓰인다고 설명을 붙여두던가, 왕의 유람선을 만들려면 정확한 고증하에 더 웅장한 규모로 만들던가 해야겠지요.

    경복궁관리처나 문화재청에서 다시 한번 관심을 가질만한 부분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부산촌놈 2014/02/10 14:47 #

    말씀하신대로 조선사의 중대한 분수점인 임진왜란의 전후 경복궁의 모습을 사람들이 비교 · 대조할 수 있도록 어떤 조치가 취해졌으면 좋겠네요.

    유선에 관한 건은 정말 실망스럽군요.

    하긴 국보 1호 복원에도 이런저런 논란이 쏟아지는 판에, 악세사리에 제대로 신경이나 썼을라구요...
  • 역사관심 2014/02/10 15:58 #

    그렇습니다. ㅜ.ㅜ
  • 은열공 2014/03/17 18:59 # 삭제

    운하에서 좌우에 수천명을 동원해 용주를 끌며 뱃놀이를 즐겼다는 양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 역사관심 2014/03/18 06:34 #

    양제가 그랬죠...나라를 말아먹은. ㅋ
  • 평론가 2014/04/07 19:56 # 삭제

    http://cafe.naver.com/corean2009/7648
    http://cafe.naver.com/corean2009/2778
    http://cafe.naver.com/corean2009/81
    위 자료들을 통해 우리나라 용선을 대충 짐작은 해볼수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4/04/07 22:40 #

    평론가님 감사합니다! 세번째 자료는 좀 써도 될까요? 첫-두번째는 어디가 용선인지 찾기가 힘듭니다만...
  • ㅇㅇ 2014/04/08 02:21 # 삭제

    창덕궁 그림 속에 있는 배에도 이미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는것 같은데요?

    http://cafe.naver.com/corean2009/81 이 그림 속에 있는 배와 같은 모습이네요.
  • 역사관심 2014/04/08 02:25 #

    이거 놓친 부분이네요. 워낙 그림이 작아서..(바로 정보를 첨부하지요).
    그렇다면 복원된 배는 고증이 엉망이란 이야기군요.
  • ㅇㅇ 2014/04/08 03:21 # 삭제

    굳이 황룡주 찾겠다고 중국 일본까지 갈 필요도 없었네요. 바로 그림속에 그려져 있는 것을;; 문화재청은 믿을게 못됩니다.
  • 역사관심 2014/04/08 03:34 #

    정말이지 예산문제부터 해결, 전문인력배치부터 제대로 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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