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신사 선박 모델들에 대해 (그리고 통시적인 한국선박의 정리에 대해)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에 걸쳐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들이 타던 배는 어떤 배였을까?

보통 세그룹의 배로 보냈다고 하는데 (통상 대-중-소선 2척씩 총 6척), 리더인 정사와 부사, 그리고 기록관인 종사관이 타던 배가 세척으로 '기선', 그리고 나머지 세척에는 물품이 실렸는데 이들은 '복선'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배들은 보낼때마다 수군에서 따로 건조되었는데, 대선의 경우 대형전선과 같은 규모로 지어졌다.

다양한 타입의 통신사선 모델들 (일본자료들)
사실 저 자료에 따르면 아래 그림 (후쿠야마시 역사민속자료관)의 세척의 배가 그럴싸 해보인다. 왜냐하면 세척의 배의 크기가 달라보이기 때문인데, 오른쪽의 배와 왼편의 두척은 확실히 크기가 다르다. 배안에는 갓을 쓴 조선인들이 보이고, 아래 작은 배로 상륙전 마중을 나온 일본인들이 보인다. 이 배들은 현재 복원되어 있는 통신사배와는 꽤 다른데, 고물쪽에 장루는 아니지만 누가 보이기 때문이고 선수의 돌출형태도 다르다. 또한 닻줄물레도 없다. 오히려 닻이 선수아래 물레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1719년 9차 조선통신사 선단도 병풍중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 간나베 역사민속자료관 소장) 클릭하면 커짐
논문등 학술자료를 들여다보지 않아 확실치는 않지만, 이 후쿠야마시는 원래 도모노우라라는 옛지역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찾아본 바로는 이 도모노우라에 통신사 8회와 10회의 리더들, 즉 정사였던 조태억 (수하 500명), 홍계희(수하 475명)의 기록이 전하고 있다. 이때의 인원수는 12차례중 역대 1위와 공동4위일정도로 대규모집단이었다. 따라서 그러한 규모의 인원을 태운 선박들을 보고 이러한 그림을 그렸음을 추측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1711년과 1748년의 일로 18세기초중반. 흥미로 도모노우라는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의 '벼랑위의 포뇨'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정하에 한국측에선 정보를 얻기 어려워 일어검색으로 찾은 정보는 다음과 같다. 위의 그림은 8. 10차가 아닌 9차 통신사 (1719년)의 그림이란 것. 일본측 사이트에 따르면, 당대 일본인들이 묘사한 통신사 선단의 모습이 마치 '하나의 섬이 움직여 오는듯한 느낌'이라고 적고 있다. 위 오른쪽 배의 뱃머리를 확대한 그림. 선수의 형태를 잘 파악할 수 있다.

통신사가 1600년대부터 약 200년에 걸쳐 파견되었음을 생각하면 '통신사선'의 종류도 당연히 변화해갔을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주로 알고 있는 통신사선은 아마도 아래 소개할 게이오대학 모델과 행주도를 근거로 한 모델만이 존재하고 있어,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한 듯 보인다.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는데 검색으로 한국의 한 블로그에서 최대규모의 500명 인원이던 이 8회 1711년 조선통신사 선단을 그린 그림이 한점 있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한국측 사이트에서 얻은 정보인데 조금 후 다른 정보를 얻을수 있었다). 바로 [조선통신사 가미노세키 래항도]라는 그림이다. 아쉬운건 온라인상으로 이 버젼외에 더 자세한 모습을 볼수 있는 고화질의 그림을 한국에선 보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이 그림들에 대한 연구도 본 적이 없다.
한국사이트에서는 찾을수 없어 한자로 검색했더니 더 나은 화질의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블로그의 설명과 달리, 이 그림이 1711년 8차 때의 모습임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번민 9,700여명이 동원되서 대접했다는 사실도. 또한 낙관에 1821년이라고 되어 있어, 아마도 후대의 일본화가가 마을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현한 그림일것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 그림과 위의 후쿠야마시 조선통신사선에 대한 정보는 아직 정확한 것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1711년 8차 통신사선단도
배부분을 확대한 그림 (클릭하면 더 커짐)
아래 그림은 행주도라 알려진 그림인데, 정확히 어디 소재이며 언제 그려진 그림인지를 소개한 글이 없어 궁금했다. '行舟'는 거친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배란 뜻이라고 하는데, 크기를 보아선 중선급에 해당되는 듯 했다. 
 조선통신사 행주도(行舟圖)
그래서 일본의 원화를 찾아봤다. 다음과 같은 정보를 얻을수 있었다. 이 그림은 행주도라는 이름이 아니라, 원래는 [통신사선예인도]라는 그림이다. 그리고 정확히 10차때, 즉 1748년의 통신사를 그리고 있다. 통신사측의 대-중-소 6척이 모두 그려져있다고 하며 일본측의 예인선까지 모두 400척이 그려져 있다고... (이 그림에 대해 아는 한국인도 별로 없는 듯하다). 맨 윗그림이 행주도라고 소개된 저 선박이고, 다른 배도 세번째 그림에 소개되고 있다. 

1748년 10차 통신사선 수장격인 정사가 타는 배 (클릭하면 커짐)
부관격인 부사가 타는 배
더욱 큰 수확은 일본에서도 아주 최근에 발견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는 다음 그림이다. [通信使室津湊御船備図屏, 통신사실진주어선비도병] 라는 병풍인데, 일본선박이 정박한 조선통신사 선박에 너무 접근했다가 좌초된 것도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정확히 어떤 부분인지는 아직 살펴봐야 할듯). 아마도 국내에서 2014년 현재, 이 그림의 존재는 전혀 알려지고 있지 않을듯 하다.
마지막으로 이런 통신사선 또한 존재한다. 일어설명으로는 "勝本浦에서는 백여 마중 배가 조선 통신사 일행을 맞았다."라고 씌여 있다. 앞의 중선급들보다 더 커보인다. 勝本浦 라는 곳은, 이키섬의 카츠모토항구이다. 이키제도는 고대왕국이 있던 곳으로 대마도와 규슈사이의 기착지. 필자가 찾아본 바로 카츠모토항구에 도착한 확실한 통신사기록은 1763년의 10회와  마지막 12회인 1811년의 일행이 이키섬의 포경작업을 본 기록이다. 그래서 일본측 기록을 더 찾아보았다. 있다. 1763-4년의 11회 통신사선단의 모습이라고 한다- 현재 효고현 다쓰노 미츠도시 (참고사이트).
1763년 11차 통신사선
부분 확대도 (얼핏보기엔 복원된 모델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일단 이층누각이 높낮이가 다른 두개가 있다. 그에 따라 돛대의 위치도 다르다)
1763년의 기록으로 11차 통신사 조엄(趙曮 : 1719~77)이 직접 쓴 해사일기가 있는데, 흥미로운 구절이 있다. 바로 대-중-소선들의 '모양'에 관한 것이다.

해사일기(海槎日記) 9월 13일(정묘)
맑음. 부산에 머물렀다.
오늘은 곧 우리 성상(聖上)께서 탄생하신 날이다. 새벽에 망궐례(望闕禮)를 행하였다. 식사한 뒤에 국서를 모시고 위의(威儀)를 갖추고 일행이 동시에 배를 탔으니 배에 오르라고 한 날이기 때문이다. 모든 절차를 한결같이 바다를 건너는 예(例)와 같이 하여 닻을 올리고 배를 띄워 바다 어귀 10여 리까지 나왔다가 바람이 순조롭지 않으므로 정박하여 육지에 내렸는데, 의장(儀仗) 등 모든 것이 성대하게 갖추어 졌다고 할 만하였다. 여섯 척의 배 모양이 같아 구별하기 어려우므로 등촉(燈燭)의 수 및 초롱의 빛깔과 쏘는 포(砲) 및 쏘는 화전(火箭) 숫자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기선(騎船)ㆍ복선(卜船)을 분별하려고 새로 조목(條目)을 정했었는데, 이날 시험해 보니 역시 모두 명령대로 하였다.

이 구절은 크기만 다를뿐, 세가지 배가 모양이 모두 같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다시 앞그림들을 보자. 맨 처음 그림인 1719년 9차 통신사선의 일본그림, 그리고 1748년의 10차 통신사선, 그리고 여기 1764년의 11차 통신선까지 대중소선등 배들의 규모만 다를뿐, 각횟수의 여섯척의 배가 모두 같은 모델임이 드러난다. 이 구절은 맨 앞의 9차통신선도의 신빙성도 높여주고 있다 (누각덮개나 선수에 치장한 색깔만 다를뿐 같은 모델의 배들이다). 또한 10차 통신사 [통신사선예인도] 역시 정사가 타는 대선과, 부사가 타는 중선이 똑같은 모델로 그려져 있다.

역시 11차 통신사선이 실제로 선박을 '보고' 그린 그림임을 뒷받침해주는 기록이 한가지 더 등장한다. 바로 같은 해사일기의 이 기록이다.
1764년 10월 19일
맑고 서북풍이 불다가 늦게야 서풍으로 돌았다. 서박포(西泊浦)에 닿았다.
진시(辰時)에 배를 띄워 6척의 배가 일제히 포구를 나왔다. 멀리 풍기(豐崎)를 바라보니, 파도가 거세게 넘실거려 흰 눈처럼 솟아오르고 바위 모서리가 불쑥 솟아나 성곽바위처럼 둘러서서, 바라보니 참으로 두려웠다. 대개 듣건대, 바위 맥(脈)이 바다속에 있어 우리나라의 장기(長鬐) 지방까지 연결되어 풍기에서 바다로 수십 리를 들어가면, 노출되기도 하고 안 보이게 깔려 있기도 하여, 물이 솟구치고 파도가 뒤집혀 부딪쳐서 남아나지 못하므로, 배를 운행하는데 익숙한 저 사람들도 오히려 반드시 바람을 타고 조수에 맞추어 왕래한다 한다.
왜의 작은 배 3척이 ‘천(川)’자 모양으로 기(旗)를 세우고 암석의 모서리 사이에 나누어 서 있어, 마치 문(門) 모양과 같았다. 재판왜가 탄 배가 앞에서 인도하여 지나가고, 부복선(副卜船)과 삼복선(三卜船)이 다음에 가고 내가 뒤따라 가는데, 배의 격군들이 일제히 모두 분주하게 힘을 다하여 순조롭게 건널 수 있었다. 타루(柁樓)에 나가 기대서서 뒤따라 오는 배들을 돌아보니 역시 모두 잘 건너서, 그 다행함이 바다를 건너올 때와 다름이 없었다.

굵은 체를 보자. 작은 왜선들이 통신사선을 인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11차 통신사선을 그린 저 그림의 모양그대로이다. 물론 서박포는 저 그림이 그려졌다는 '이키섬' (풍본포(風本浦))는 아니다. 이 곳은 이키섬이 아니라 '니시도마리우라'라는 곳으로 '대마도'의 항구. 이곳을 떠나서 이키섬으로 간 것이다. 11차 통신사는 해사일기에 따르면 11월 13일에 이키섬에 도착했다가, 12월 3일에 남도(조선)로 떠난다. 이 때 그려졌다는 그림이 저 그림이고, 내 천자가 나오는 구절은 한달 먼저 서박포에서의 모습이다.

한가지, 더욱 이 그림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해사일기의 부분은 이키섬 도착당일 (11.13), 배의 '치목' 즉 '키'가 부러져버리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기록. 따라서, 저 그림이 일본측정보처럼 '勝本浦에서는 백여 마중 배가 조선 통신사 일행을 맞았다'를 표현한 것이라면, 바로 사고당일이다. 따라서, 도착한 그러나 항해불능상태의 통신선사를 일본배들이 포구안으로 이끌어가는 그림일 가능성이 매우 커지는 것이다.

이 그림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포스팅을 보시려면 (배의 치목이 (아마도)부러진 모습포함):



2012년 복원된 국립해양박물관의 통신사선
그럼 한국에서 현재 홍보하고 있는 통신사선은 어떤 모델일까? 2년전인 2012년부터 공개중인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실제 크기의 1/2인 조선통신사선의 모양은 다음과 같다 (기왕할거면 원래규모로 하면 좋았을 것을).
선수의 귀신(혹은 용)그림은 위의 행주도를 따른 듯 하다. 고물쪽에 그린 점도 같다.
위에서 본 모습
하지만 배의 전체적 모습은 아래의 그림에 따른 것 같다. 조선선 입진지도(朝鮮船入津之圖) 란 작품으로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 대학 도서관에 소장중인 통신사선 그림으로 누의 모습과, 고물쪽의 닻줄물레도 같다. 다만 누각을 그림보다 약간 중간에 배치했다. 

그렇다면 이 게이오대학 소장 통신사선은 언제 그려진 그림일까? 

조선선 입진지도 (게이오대학 도서관 소장)- 역시 클릭하면 커짐
확대도
이 그림은 다음과 같은 설명이 실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朝鮮船入津之圖』は、安政2年(1855)に対馬に赴いた訳官金継運一向の船を描いたものとされ." 해석하자면 '조선선입진지도'는 1855년에 대마도에 다녀간 역관 김계운의 배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는 것이다. 이 글은 '碇石による海域間交流の研究' 이라는 일본 논문에서 발견한 것으로 오가와 미츠히코 (小川 光彦) 선생의 2012년 논문에서 발췌했다.

그럼 김계운은 누구인가? 
역관 김계운은 이미 '정식 통신사'행차가 1811년에 끊긴후인 1855년'역지통신 易地通信'이라는 이름으로 대마도(쓰시마)와 왕래를 하던 19세기 중반에 대마도를 다녀왔던 인물이다. 이 때 (1855.2월) 김계운이 탄 배가 풍랑으로 침몰할 뻔 하는데, 이때의 순간을 회상, 1858년에 유숙에게 그리게 한 작품이 바로 [범차도(泛槎圖)]이다 (*적륜님 정보)

대마도에 '역지통신'이라는 정식외교활동으로 왕래하던 조선배의 누각부분과 닻줄물레의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한 그림이라는 데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있겠다. 실제로 '조선선입진지도'에 등장하는 선박의 누각이 풍랑으로 날아갔다고 추정하면, 범차도의 선박과 굉장히 비슷한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가설에 더욱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는 부분으로 이 선박의 사각형루들의 아랫부분, 즉 아래에서 두번째 칸 지붕을 잘 보시기 바란다. 무언가가 뜯겨나간 자국 (검은 색의 점들이 가장자리를 따라 찍혀있다)이 보인다. 이 지점은 정확하게 위의 일본그림의 '누각'부분에 해당한다.

 범차도(泛槎圖)- 1856년 역지통신선 묘사
사실 저런 형식의 누각은 조선후기 18세기 이성린의 사로승구도(1748)에서도 확인된다.
사로승구도 일부확대 (왼쪽 아래 배)
자 이렇게 되면 약간 혼란스럽다. 즉, 최근 복원된 해양박물관의 통신사선과 가장 비슷한 그림이며, 많은 한국측 사이트들에서 '통신사선'으로 소개된 그림인 '조선선입진지도'의 조선선박은 사실 공식적으로 통신사행차가 끝난 19세기중반의 모델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모델은 가장 '후대의 통신사선 타입'일 가능성이 높다. 그 근거로 다음을 들수 있다. '19세기 역지통신과 조선'이라는 이와카타 히사히코(岩方久彦)씨의 논문을 보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 눈에 띈다:
현학노는 조인영과 상의한 후 覺을 제출하면서 구체적인 조선 측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그 내용에는 조선이 잇따라 흉년을 만나서 통신사를 병오년(1846년)에 보내기 어려우니 병진년(1856년)봄으로 연기하되, 통신사의 절차 및 예단은 신미년(1811년)의 예와 조금도 차이가 없도록 한다고 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대마도는 10년이 너무 길다고 하며 시기를 앞당기려고 했으나, 재정 압박에 시달린 막부는 오히려 10년 연기를 쉽게 받아드렸다. 조선의 ‘遷延策’을 일본이 수용한 것이다.

이 구절은 [대마도종가문서 對馬島宗家文書] 에 등장한다 (관련링크). 이 기록에 따르면 적어도 1856년, 즉 범차도에 등장하는 (그리고 조선선입진지도에 등장하는) 조선선박의 모델이 공식통신사의 마지막회로 알고 있는 제 12차 통신사 (1811년)의 그것과 같을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로써 2012년 복원되 현재 부산의 국립해양박물관에 1/2 크기로 전시중인 '통신사선'은 19세기 중후반, 즉 통신사의 극후반 선박에 가까울 것 같다는 결론이다. 또한, '범차도'에 등장하는 선박은 단순한 대마도를 다녀오던 선박이  아닌, 12차 통신사선중 (규모로 볼때) 중선이나 소선일 모델일 가능성 역시 커진다.

관련단체나 연구자가 한번 살펴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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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으로 판옥선 역시 한번 살펴볼 기회가 있으면 하는데, 가장 유명한 두 그림조차 역시 타입이 좀 달라보인다. 누각의 위치라든가, 도깨비문양의 유무라든가 돛대의 위치라든가, 전혀 달라보인다.
조선후기-각선도본 판옥선
(─船海陣圖) 해진도 판옥선- 역시 재일동포가 85년 기증하기 전까지는 한국에서 전혀 모르던 그림. 역시 조선후기추정
건축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선박들- 특히 '같은 이름'이 붙은 조선통신사선이라든가, 판옥선이라든가, 거북선등 같은 조선의 선박이라도 수백년에 걸쳐 변화해갔을 모델들에 대한 통시적인 분석과 자료정리, 분류가 된 글, 그림이 들어있는 책을 만나보고 싶다. 

찾아봐도 아주 옛날에 나온 각각 90년과 94년출판된 '한국의 배'라는 개괄서 두권밖에 찾지를 못해서 답답한 감이 있다. 한권은 이원식선생, 한권은 맨앞의 통신사선에 대한 정보출처인 김재근선생이 저자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 다루었던 6-7층급의 윤선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는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당장 올해 하반기 극장가 최대작 '회오리바다- 명량'에 등장할 거북선과 판옥선의 타입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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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2:
가끔 돌아다니는 아래의 배 (조선국선)에 대해선 이미 엄정한 비판이 있다. 거의 일본인들이 중국의 고선박인 정크선을 아무렇게나 한국배로 이름붙여 집에 붙여두었던 그림이라 비판하고 있다. (조선국선- 엔하위키 비판)

핑백

  • 까마구둥지 : 조선 초기 통신사선? 2014-03-05 06:19:46 #

    ... 이가 보인다. 2012년 복원된 조선통신사선 (국립해양박물관)본 그림의 정보에 대해 아는 분이 있으면 답글을 주시길 부탁합니다. 관련글: 조선 통신사 선박 모델들에 대해 (통시적인 한국선박의 정리에 대해) ... more

  • 까마구둥지 : 조선통신사 선박에 대한 앞선 포스팅의 수정과 새로운 발견 (임시글) 2014-03-06 08:03:01 #

    ...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많은 수정을 가한 두 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본 포스팅은 하루동안만 임시로 올리고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1811년 近江名所圖會에 등장하는 조선통신사선 (수정) 조선 통신사 선박 모델들에 대해 (그리고 통시적인 한국선박의 정리에 대해) ... more

  • 까마구둥지 : 大-中-小 통신사선들의 모델과 일본그림들의 진위보충기록 2014-03-07 03:33:15 #

    ... 그림의 모양과 똑같습니다.1763년 11차 통신사선을 왜선들이 끄는 모습*오늘 소개한 내용은 맥락상 문체만 바꿔 앞선 포스팅에 첨가합니다.http://luckcrow.egloos.com/2459989 ... more

  • 까마구둥지 : 한국의 사라진 선박 (6)- 왕건의 10세기 대누선(大樓船) 2015-09-08 09:04:12 #

    ... 시대별 그리고 종류별 대표선박들의 가시적인 회화라든가 모델의 제공이 매우 부족합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다음의 글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한국의 사라진 선박- 여러타입의 시대별 통신사선에 대한 고찰 컨텐츠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도 이러한 작업은 하루빨리 시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문화컨텐츠닷컴에서 일부 제공되지만 부실해 ... more

  • 까마구둥지 : 2018년 통신사船 실물크기복원과 시급한 과제 (시대별 통신사船 구현) 2017-03-24 11:25:54 #

    ... 조선통신사 선박 모델들에 대해 (1)</a>1814년 近江名所圖會에 등장하는 조선통신사선 (2)大-中-小 통신사선박은 각기 어떤 모양일까, 일본그림들의 진위보충기록 (3) 이 글들은 1719년 제 9차 (후기) 통신사선부터 살펴 본 글들로 그 이전의 1~8차 통신사선에 대해서는 살피지 못했다 (아주 짧게 오늘 소개하는 글을 따로 소개한 바 있긴 하지만). 그런데, 최근 [용주유고]라는 저서에 제 5차(조선후기)에 해당하는 1643년 통신사선에 대한 상 ... more

덧글

  • 2014/03/04 09:0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3/04 09: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迪倫 2014/03/06 09:48 #

    오! 흥미로운 연결이군요. 덕분에 저도 여러가지 새로 배웠습니다.
  • 역사관심 2014/03/06 09:58 #

    감사합니다. 적륜님 덕분입니다 ^^
  • 2014/04/07 22:40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역사관심 2014/04/07 22:50 #

    감사합니다. 네 출처만 남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 봉래거북 2014/08/30 11:25 # 삭제

    엔하위키의 조선국선 글 밀어버린 게 사실 접니다-_-;;; 그때 한창 한선에 삘이 꽂힐 때라 목포 해양유물전시관까지 2번이나 가서 도록을 질러대던 시절이었죠; 그때 쿠투넷의 조선국선 글을 그대로 옮겨온 것을 보고 쿠투넷까...지 가서 깽판치는 건 리즈시절 부흥에서 활동할 때도 불가능한 일이었고 결국 엔하만 손본 게 링크하신 글입니다.
  • 역사관심 2014/08/30 11:49 #

    그러셨군요 ^^; 객관적인 정보로 필터해주셨네요. 잘 하셨습니다. =)
  • 2018/06/27 10:2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6/28 02: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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