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 비트겐슈타인 독서

본다는 체험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설명중.

체험에 대한 생리학적 설명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이러할 것이다: (어떤) 도형을 고찰할 때 시선은 그 대상을 특정한 궤도를 따라 되풀이하며 훑는다. 그 궤도는 눈동자가 바라볼 때의 특별한 진동 형식에 대응한다. 이러한 운동방식이 다른 방식으로 급전하여, 그 둘이 서로 교대하며 나타나는 일이 일어날수 도 있다.  어떤 운동 형식들은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는 예컨대 입방체 도식을 두 개의 서로 관통하는 프리즘으로서 볼 수 없다. 등등. 이것이 그 설명일 것이다.- "그렇다, 그것이 일종의 ''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지금 당신은 봄의 새로운, 생리학적 기준을 도입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오래된 문제를 숨길 수 는 있어도,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러한 고찰의 목적은 그러나, 생리학적 설명이 우리에게 제공될 때 무엇이 일어나는 가를 우리 눈앞에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심리학적 개념은 이러한 설명에 의해 해결되지 않은채 떠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의 본성은 이로써 더 분명해진다.

나는 실제로는 매번 다른 어떤 것을 보는가, 또는 내가 보는 것을 나는 단지 상이한 방식으로 해석할 뿐인가? 나는 전자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왜?- 해석한다는 것은 하나의 생각, 하나의 행위이다; 본다는 것은 하나의 상태이다.

자, 우리가 해석하는 경우들은 알아보기가 쉽다. 우리가 해석하는 경우, 우리는 거짓으로 실증될지도 모르는 가설들을 세운다. - "나는 이 도형을 ...로서 본다"는 "나는 빨간색을 본다"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오직 그런 뜻으로만) 검증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두 맥락에서 "본다"는 사용에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다만, "봄의 상태"가 여기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은 미리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말라! 사용이 그 의미를 당신에게 가르치게 하라.

본다는 것에서 어떤 것이 우리에게 수수께끼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본다는 것 전체가 충분히 수수께끼같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 집들, 나무들에 관한 사진을 관찰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진의 입체성이 떠나지 않는다. 그 사진을 평면상의 색채 반점들의 집합으로 기술하는 것이 우리에게 쉽지 않을 것이다. ...

상의 개념은 상상의 개념과 근친관계이다. 즉, '이제 나는 그것을 ...로서 본다'는 개념은 '나는 지금 이것을 상상하고 있다'와 근친적이다. 어떤 것을 특정한 테마의 변주곡으로 듣는 데에는 상상이 들어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것을 통해 어떤 것을 지각한다.

"그것이 이렇게 변했다고 상상해보라. 그러면 당신은 다른 것을 가지게 된다." 상상을 하는 가운데 우리들은 증명을 할 수 있다.

상을 보는 것과 상상하는 것은 의지에 종속되어 있다. "이것을 상상하라!" 라는 명령과 "이제 이 도형을 이렇게 보라!"라는 명령은 존재하지만, "이제 그 꽃잎을 초록색으로 보라!"라는 명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 철학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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