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대상으로의 실체로서의 실현상태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독서


예를 들어, 어떤 것은 이렇게 놓여 있음으로써 문지방이다 (또는 문지방으로서 있다). 그리고 문지방에게 '있음'은 그것이 '이렇게 놓여 있음'을 뜻한다. 

이로부터 분명한 점은, 실체가 '각 사물이 있음'의 원인이라면, 우리는 그런 차이성들 중에서 어떤 것이 '개별 사물들이 저마다 있음'의 원인인지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차이성들은 어느 것도, 설사 밑감(재료)와 짝 지어진다 하더라도 실체가 아니며, 그것들은 각 경우 실체와 유사한 것일 뿐이다. 

이로서 분명한 점은 밑감의 종류가 다르면, (거기에서 나오는) 실현 상태나 규정(꼴)도 다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현 상태나 규정은 어떤 것들에서는 결합에서, 어떤 것들에서는 혼합에서, 또 다른 어떤 것들에서는 앞서 말한 것들 중 어느 하나에서 성립한다. 그렇게 때문에 집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는 사람들 중, "돌들, 벽돌들, 나무들이다"라고 정의를 내리는 사람들은 잠재 상태의 집을 말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집의 밑감(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유물이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수용공간이다"라고 또는 이와 비슷한 정의를 내놓는 사람들은 (집의) 실현상태 (꼴)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을 결합하는 사람들은 이 둘로 된, 셋째 종류의 실체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차이성들을 통해 이루어진 규정은 꼴(형상)이나 실현 상태에 대한 규정이고, (어떤 것 안에) 들어있는 것(구성요소)들에 바탕을 둔 규정은 밑감에 대한 규정에 가까워보인다). 예를 들어 무풍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량의 공기안의 고요함이다. (여기서) 공기는 밑감이고, 고요함은 실현 상태이자 실체이다.

감각되는 실체가 무엇이며 또 이것이 어떻게 있는지 분명해졌다. 그것은 밑감(재료)으로서 있기도 하고, 형태나 실현형태로서 있기도 하며, 셋째로 이 둘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이름은 결합된 실체를 나타내는가, 실현 상태나 형태를 나타내는가
예를 들어, '집'이란 말이 '결합된 것'에 대한, 즉 '이렇게 놓여있는 벽돌들과 돌들로 이루어진 보호소'에 대한 언어적 표현물인지, 아니면 실현 상태나 꼴에 대한, 즉 '보호소'에 대한 표현물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 물음은 다른 논의와 관련해서는 의미가 있겠지만, 감각되는 실체에 대한 탐구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있다는-것은-무엇-이었는가'(어떤것의 본질)는 꼴과 실현상태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혼'과 '혼-임'(혼의 본질)은 같은 것이지만, 혼이 바로 "사람"이라고 불리지 않는 한, "사람-임"(사람의 본질)과 '사람"은 같지 않다. 이렇듯, 사물은 어떤 점에서는 제 본질과 같고, 다른 어떤 점에서는 같지 않다.

(이 문제를) 계속 탐구해 보면, 소리마디(음절)이 자모+ 이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또 집들도 벽돌들+ (이것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점은 맞다. 왜냐하면 결합이나 혼합은 결합이나 혼합의 대상이 되는 것(부분)들로(만, 필자 첨가)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지방은 그 놓임새로 말미암아 문지방이지만, 이 놓임새는 문지방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오히려 문지방이 놓임새(와 밑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들이 그저 밑감(재료)라면, 이것들 외에 다른 어떤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요소도 아니고 또 요소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실체(꼴)인데, 이것)을 사람들은 정의에서 생략하고 밑감만을 말한다. 그런데 그것이 "(집의)있음"의 원인이라면, <그리고 그 원인이 집의 실체라면>, 밑감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실체를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라지는 (소멸되는) 것들의 실체들이 '따로 독립된 것'인건지는 아직은 전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몇가지 경우에선, 예를 들어, 집이나 가재도구처럼 개별적인 실물들과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없는 것들에선 분명히 그 실체들은 독립적이지 못하다. 아마도 바로 이런 것들은 실체가 아닐 거고, 자연에 의해 형성되지 않은 나머지 것들도 마찬가지로 실체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본질)만을, 사라지는 것들에 든 실체로 놓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 실체는 완성상태(의 것)이자 일정한 실재다. 그리고 숫자와 마찬가지로 "꼴"(형상)이란 뜻의 실체도 '정도의 차이(덜과 더)'을 허용하지 않는다. 밑감(재료)를 가진 실체만이 그것을 (속성과 관련해서) 가질 뿐이다.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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