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자동기계산機械山, 만불산, 그리고 옥루기계 역사


흔히 우리의 인식에 자리잡은 우리역사의 전근대시대 기계류는 몇가지가 있을까요? 자격루, 혼천의, 광의의 범주에서 아마도 측우기, 첨성대..

비교적 최근의 발굴 예로는 하늘을 날던 날틀, '비차'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리고 직접 제작까지 줄잡아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인식에 확실하게 그 존재를 각인시킨 예이지요 (링크: 현재 공국사관학교 전시관에 전시중인 복원된 비차).

그런데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매우 특이한 고대신라의 기계가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아주 상세하게 묘사된 '만불산'이라는 일종의 기계장치 조각산으로 경덕왕 말년에 당나라 대종에게 보낸 선물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수많은 조각상들이 저절로 움직이는 불교적 관람장치로, 신라 경덕왕의 재위기간이 742년~765년. 따라서, 이 기계는 8세기의 작품이 됩니다. 이 시기는 통일신라중에서도 불교가 그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로, 이 만불산이 남아 있었다면 국보중에서도 국보였을 것입니다.

필자가 파악하는 한 한국의 가장 오래된 '기계류'이자 '디오라마'의 기록입니다. 그럼 일단 번역본에 필자가 해석을 첨부해 보았습니다.
백제 금동대향로 확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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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불산(萬佛山) (삼국유사 )

경덕왕이 당나라 대종황제가 불교를 특별히 숭상한다는 말을 듣고 재인바치를 시켜 오색빛깔 모직담요를 만들고 또 침단목(沈檀木)을 조각하여 맑은 구슬과 아름다운 옥으로 높이가 한 길 남짓 되는 가산(주: 가짜산)을 만들게 했다. 그것을 담요위에 두고 그 가산에는 기암괴석을 만들고 개울과 동굴들로 구간을 지어 구간마다 춤추고 노래부르고 음악을 연주하는 인형이며 여러 나라들의 산천 모습을 꾸몄다. 미풍이 창으로 불어들면 벌과 나비가 훨훨 날고 제비와 참새가 너울너울 춤추어 얼핏 보아서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주: 우선 향나무의 일종인 침단목으로 본채를 만들고, 옥과 여러 보석류로 장식을 했음이 보입니다. 그리고 기암괴석을 새겨넣고 개울과 동굴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돌이나 쇠도 사용했을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또한 벌과 나비, 제비, 참새등의 작은 미니어처가 장식으로 붙어있어 바람에 흔들리도록 '모빌'류로 처리되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여러나라의 산천모습'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주변국의 산천모양의 '디오라마'라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으로 높이는 '한 길'정도. 따라서 2-3미터정도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무수한 부처를 모셨는데 큰 것은 한 치 남짓하고 작은 것은 8-9푼으로 부처의 머리가 더러는 큰 기장 낟알만하고 더러는 콩 반쪽 만하기도 한데 소라상투를 튼 흰 머리털과 눈썹과 눈이 분명하여 얼굴 모습을 남김없이 구비하니 그저 방불하다고나 할까. 자세한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름을 만불산이라고 하였다.
(주: 중요한 부분으로 '만불산'이라는 공식명칭이 나옵니다. 그리고 가산안에 수많은 부처조각을 넣었다는 것으로 보아 부조형식의 새겨넣음이 아니라, 따로따로 조각을 만들어 붙여넣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한푼이 한 치의 10분의 1정도, 따라서 약 0.3cm. 큰 부처는 3센티, 작은 것은 2.5센티정도임을 알수 있습니다. 매우 정밀한 조각들로 흰 머리털이 보인다는 부분에서 '색채조각'의 가능성도 알수 있습니다.)

다시 금과 옥을 새겨 술과 기폭이 달린 일산(주: 양산의 일종)이며 향기로운 과실 나무들과 갖가지 화초들이 장하였으며 군데군데 누각, 정각, 전각들이 대체로 작기는 하지만 그 기세는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앞에는 빙빙 산돌이하는 중의 인형이 1,000여 개 있고 아래에는 자줏빛 금으로 만든 쇠북 세 틀을 벌여놓았는데 종각과 종을 다는 고리쇠와 고래 형상으로 된 종치는 공이가 모두 있었다. 
(주: 침단목, 옥, 각종 색채구슬, 돌 등외에 '금과 옥'으로 장식을 했습니다. 일산우산을 만들었고 그 양산에는 술과 일산의 깃대에 달린 천조각인 기폭까지 모두 달려있었다고 하니 그 정교함을 알만 합니다. 그리고 각종 건물들 (전각이라든가 누각등)과 온갖 과실나무와 화초가 만들어져 있었고, 무엇보다 만불산을 360도로 빙빙 돌아다니는 1000명의 승려조각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 승려들은 기계장치로 움직이게 되는데 아래 나옵니다. 그리고 천명의 승려가 다니는 길 아래에는 금으로 만든 정교한 쇠북 세개가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종이 울면 산돌이하는 승려들이 모두 바닥에 닿도록 엎드려 절을 하면서 은은히 불경 외우는 소리가 들렸으니 대개 이러한 기능의 중심 요체는 종에 있었다. 불상이 1만개나 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주: 하이라이트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이 만불산을 복원해 볼 경우 기계장치의 핵심원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선 핵심이 '종'에 있었다는 말은 기계장치의 원동력이 종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3개의 종부분에 어떤 원동장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이 원동장치가 '풍력'일 가능성입니다. '바람이 불어 종이 울면' 이란 부분에서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종부분에서 장치가 움직이게 되면 다음으로는 천명의 승려 미니어쳐가 움직입니다. 그냥 산을 빙빙 도는 것이 아니라, 각자 절을 허리가 닿도록 해가면서 돌게 됩니다. 더군다나 '불경 소리가 울리면서' 돈다는 부분은 경이롭기 까지 합니다.)

다 완성되매 사신을 시켜 이것을 당나라에 보냈더니 대종이 보고 탄복하면서 말하기를, "신라의 재간은 하늘의 솜씨이지 사람의 재주가 아니다"하고 즉시 구광선 (광채를 뿜는 부채)를 가산의 바윗돌 틈에 두어 부처님의 광채라고 하였다. 4월 8일에는 두 거리의 승려들에게 명령하여 대궐 안의 도장에서 만불산에 예배하게 하고 고명한 중불공을 시켜 밀부진전을 1,000번 외우게 함으로써 이를 경축하니 구경하는 자들이 모두 그 용한 재주에 탄복하여 머리를 숙였다. 이를 찬미하는 시를 지었다. (주: 문물이 최고발달했던 당대 당나라에서도 거리에서 만불산이 화제였음은 당연했을 겁니다).

둥근 달은 하늘에 떠 사방불을 장식하고,
명호(주: 부처님 눈썹사이의 흰 털)는 땅에 솟아 하룻밤에 피었구나.
재주있는 솜씨로 만불을 새기니,
하늘 땅 인간에 참된 교화 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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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원문과 해석입니다. 여기에는 앞에 붙어있는 사불산, 굴불산 편까지 그대로 붙였습니다.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四佛山掘佛山萬佛山)-삼국유사(三國遺事)

竹嶺東百許里(죽령동백허리) : 죽령(竹嶺) 동쪽 100리쯤 되는 곳에 
有山屹然高峙(유산흘연고치) : 우뚝 솟은 높은 산이 있는데, 
眞平王九年甲申(진평왕구년갑신) : 진평왕(眞平王) 9년(587) 갑신(甲申)에 
忽有一大石(홀유일대석) : 갑자기 사면이 한 길이나 되는 큰 돌이 나타났는데 
四面方丈(사면방장) : 사면방장의 크기였다

彫四方如來(조사방여래) : 거기에는 사방여래(四方如來)의 상(像)을 새기고 
皆以紅紗護之(개이홍사호지) : 모두 붉은 비단으로 싸여 있었는데 
自天墜其山頂(자천추기산정) : 하늘에서 그 산마루에 떨어진 것이다. 
王聞之命駕瞻敬(왕문지명가첨경) : 왕이 이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그 돌을 쳐다보고 공경을 표하고 
遂創寺嵓側(수창사암측) : 드디어 그 바위 곁에 절을 세우고 
額曰大乘寺(액왈대승사) : 절 이름을 대승사(大乘寺)라고 했다. 

請比丘亡名誦蓮經者主寺(청비구망명송련경자주사) : 여기에 이름은 전하지 않으나 연경(蓮經)을 외는 중을 청해다가 
洒掃供石(쇄소공석) : 이 절을 맡겨 공석(供石)을 깨끗이 쓸고 
香火不廢(향화불폐) : 향화(香火)를 끊이지 않았다. 
號曰亦德山(호왈역덕산) : 그 산을 역덕산(亦德山)이라 하고 
或曰四佛山(혹왈사불산) : 혹은 사불산(四佛山)이라고도 한다. 

比丘卒旣葬(비구졸기장) : 그 절의 중이 죽어 장사지냈더니 
塚上生蓮(총상생련) : 무덤 위에 연꽃이 피었다.
又景德王遊幸栢栗寺(우경덕왕유행백율사) : 또 경덕왕(景德王)이 백률사(栢栗寺)에 거둥해서 
至山下聞地中有唱佛聲(지산하문지중유창불성) : 산 밑에 이르렀더니 땅속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命掘之(명굴지) : 그곳을 파게 했더니, 
得大石(득대석) : 큰 돌을 얻었는데 
四面刻四方佛(사면각사방불) : 사면에 사방불(四方佛)이 새겨져 있었다. 

因創寺(인창사) : 여기에 절을 세우고 
以掘佛爲號(이굴불위호) : 절 이름을 굴볼사(掘佛寺)라고 했으니 
今訛云掘石(금와운굴석) : 지금을 잘못 전해져서 굴석사(掘石寺)라 한다.

王又聞唐代宗皇帝優崇釋氏(왕우문당대종황제우숭석씨) :경덕왕(景德王)은 또 당(唐)나라 대종황제가 불교를 숭상한다는 말을 듣고 
命工作五色氍毹(명공작오색구유) : 공장이에게 명하여 오색(五色) 담요를 만들고 
又彫沈檀木與明珠美玉(우조심단목여명주미옥) : 또 침단목(沈檀木)을 조각하여 명주와 아름다운 옥으로 꾸며서 
爲假山高丈餘(위가산고장여) : 높이 1장(丈) 남짓한 가산(假山)을 만들어 
置氍毹之上(치구유지상) : 담요 위에 놓았다. 

山有巉嵓怪石澗穴(산유참암괴석간혈) : 산에는 뾰족한 바위와 괴이한 돌과 동굴(洞窟)이 있어서 
區隔每一區內(구격매일구내) : 각 구역으로 나뉘었고, 그 각 구역 안에는 
有歌舞伎樂列國山川之狀(유가무기락열국산천지상) : 노래하고 춤추고 노는 모습과 온갖 나라들의 산천(山川)의 형상이 있다. 

微風入戶(미풍입호) : 가벼운 바람이 문 안으로 들어가면 
蜂蝶翶翔(봉접고상) : 벌과 나비가 훨훨 날고 
鷰雀飛舞(연작비무) : 제비와 참새가 츰을 추니, 
隱約視之(은약시지) : 얼핏 보아서는 
莫辨眞假(막변진가) : 참인지 거짓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中安萬佛(중안만불) : 그 속에는 만불(萬佛)을 모셔 놓았는데 
大者逾方寸(대자유방촌) : 큰 것은 사방 한 치가 넘고 
小者八九分(소자팔구분) : 작은 것은 8,9푼 쯤 된다. 
其頭或巨黍者(기두혹거서자) : 그 머리는 혹은 큰 기장만 하고 
或半菽者(혹반숙자) : 혹은 콩 반쪽만 하다. 

螺䯻白毛(라고백모) : 상투와 백모(白毛), 
眉目的㠣(미목적력) : 눈썹과 눈이 또렷하여 
相互悉備(상호실비) : 모든 형상이 다 갖추어졌으니, 
只可髣髴(지가방불) : 다만 비슷하게 비유할 수는 있어도 
莫得而詳(막득이상) :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因號萬佛山(인호만불산) : 이 때문에 이 산을 만불산(萬佛山)이라고 했다.

更鏤金玉(경루금옥) : 다시 거기에 금과 옥을 새겨 
爲流蘇幡蓋菴羅薝葍花果莊嚴(위류소번개암라담복화과장엄) : 유소번개(流蘇幡蓋)·암라(菴羅)·담복·화과(花果) 등 장엄한 것과, 
百步樓閣(백보누각) : 백보(百步) 누각(樓閣)·
臺殿堂榭(대전당사) : 대전(臺殿)·당사(堂사)를 만들었는데 
都大雖微(도대수미) : 모두가 비록 작기는 하지만 
勢皆活動(세개활동) : 그 형용은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前有旋遶比丘像千餘軀(전유선요비구상천여구) : 앞에는 돌아다니는 중의 형상 1,000여 개가 있고, 
下列紫金鐘三簴(하열자금종삼거) : 아래에는 자금종(紫金鐘) 셋을 벌여 놓았는데, 
皆有閣有蒲牢鯨魚爲撞(개유각유포뢰경어위당) : 모두 종각(鐘閣)이 있고 포뢰(蒲牢)가 있으며 고래 모양으로 종치는 방망이를 만들었다. 

有風而鐘鳴(유풍이종명) : 바람이 불어 종이 울면 
則旋遶僧皆仆拜頭至地(칙선요승개부배두지지) : 돌아 다니는 중들이 모두 엎드려 머리를 땅에 대고 절한다.
隱隱有梵音(은은유범음) : 은은하게 염불하는 소리가 나는 듯하니, 
盖關捩在乎鐘也(개관렬재호종야) : 이 까닭은 그 종에 있었다. 
雖號萬佛(수호만불) : 이것을 비록 만불(萬佛)이라고는 하지만 
其實不可勝記(기실불가승기) : 그 실상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旣成(기성) : 만불산(萬佛山)이 이루어지자 
遣使獻之(견사헌지) : 사신을 당(唐)나라에 보내서 바치니 
代宗見之(대종견지) : 대종(代宗)은 이것은 보고 
嘆曰(탄왈) : 탄식한다. 

新羅之巧天造(신라지교천조) : "신라의 교묘한 기술은 하늘이 만든 것이지 
非巧也(비교야) : 사람의 기술이 아니다." 

乃以九光扇(내이구광선) : 이에 구광선(九光扇)을 
加置嵓岫間(가치암수간) : 그 바위 사이에 두어 두고 
因謂之佛光(인위지불광) : 이름을 불광(佛光)이라고 했다. 

四月八日(사월팔일) : 4월 8일에 
詔兩街僧徒(조양가승도) : 대종은 두 거리의 승도(僧徒)들에게 명하여 
於內道場(어내도장) : 내도량(內道場)에서 
禮萬佛山(례만불산) : 만불산에 예배하고, 
命三藏不空(명삼장불공) : 삼장불공(三藏不空)에게 명하여 
念讚密部眞詮千遍(념찬밀부진전천편) : 밀부(密部)의 진리(眞理)를 1,000번이나 
以慶之(이경지) : 외어서 경축(慶祝)하게 하니, 
觀者皆嘆伏其巧(관자개탄복기교) : 보는 사람들은 모두 그 교묘한 솜씨에 탄복했다.
讚曰(찬왈) : 찬(讚)해 말한다.

天粧滿月四方裁(천장만월사방재) : 하늘은 만월을 단장시켜 사방불을 마름질하고
地湧明毫一夜開(지용명호일야개) : 땅은 명호(明毫)에 솟구어 하룻밤에 열었도다.
妙手更煩彫萬佛(묘수경번조만불) : 교묘한 솜씨로 다시 만불을 새겼으니,
眞風要使遍三才(진풍요사편삼재) : 부처님의 풍도를 삼재에 두루 퍼지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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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기록을 비교해서 당대 당나라의 기록으로 찾아보고 싶기도 합니다.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라 중국땅 어딘가에 전해오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주: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 글을 쓴 2년후에 찾았네요. 만불산 당나라측 기록 (그리고 혜초대사)

흔히 우리의 인식에 서양의 산업혁명 이전 아시아사회에는 이런 기계류라는 것이 아예 없었던 것으로 착각하기가 쉬운데 사실 찾아보면 꽤 신기한 기록이 많이 등장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비차도 그렇지만, 중국쪽 기록을 조금만 소개해 보자면 우리 삼국시대보다도 더 오래된 기록으로 춘추시대의 노나라, 무려 기원전 722~ 694년의 이 나라의 기록에 이런 것이 전합니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손재주가 뛰어난 공수반(公輸般)이란 목수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나무토막과 대나무 살로 스스로 나는 까치를 만들었다. 마치 살아 있는 듯 날아오른 나무까치는 사흘 동안 땅에 내려앉지 않았다. 백성들의 박수갈채를 받은 공수반은 세상에 나무까치보다 더 교묘한[巧] 물건은 없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초반의 켐브릿지 대학 박물학 교수였던 조셉 니덤은 "Chinese Science"에서 "고대 중국의 기계 장난감은 엄청나게 많다. 앞에서 나온 비행 기계 외에도 기계로 된 비둘기와 천사· 물고기·용 들이 있고, 자동 술잔 운반기와 술 따르는 장치도 많이 나온다. 수압으로 움직이는 배가 노래하는 여자 · 동물 · 남자들을 싣고 황제의 흥을 돋구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에는 기원전 4 세기의 과학자 묵자 (墨子) 가 만들었다는, 전설상의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가 있다. 실제로 이런 수레가 있었을까? 그 밖에도 옥으로 만든 기계 인간, 나무로 만든 여러 종류의 인형, 황금 불상, 꼭두각시 악단 등이 있었다고 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기록중 유명한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만든 목유우마가 있지요. 마소를 닮은 이 기계동물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밤낮으로 군량을 실어나르고 산과 언덕을 저절로 기어오르고 혀를 돌리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전합니다.

시대는 한참 뒤지만 18세기 조선 정조때의 문인인 서유문(徐有聞:1762~?)의 한글 기행문집인 [무오연록]에 1799년 청나라에 가서 북경에서 본 기계장치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치 만불산과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기미년(1799, 정조 23) 1월11일
중략.
절 동편 어귀에 가게가 하나 있으니, 각양(各樣) 자명종(自鳴鐘)과 윤도(輪圖)를 파는 곳이라. 가게 안에 금칠한 탁자 위에 큰 궤 하나를 놓았으니, 사면 우리와 기둥을 다 침향(沈香)으로 기묘히 새겨 만들었으며, 앞으로 유리 한 겹을 가리우고 유리 안으로 수(繡) 놓은 휘장을 드리웠으니, 한가운데에 ‘인지서운(仁智瑞雲)’ 넉 자를 새겼으며, 겉으로 보아도 기이한 글씨라, 주인더러 그 속을 구경하자 하니, 주인이 궤 위로 열쇠 하나를 집어 내어 유리 안으로 한 구멍을 향하여 두어 번 트니, 가운데 한 곳이 스스로 열리고 그 안에 자물쇠는 윤도(輪圖) 모양같이 만들었으며, 밖으로 지남철(指南鐵)을 깔았으니 두어 번 저절로 돌아 궤 속에서 스스로 기이한 풍류 소리 나더니, 이윽고 수놓은 휘장이 또한 스스로 엽엽(葉葉)히 걷히며, 그 안에 대추만 한 말[馬]과 팥알만 한 사람이 무수히 나오니 다 옥(玉)으로 만들었더라. (주: 輪圖는 방위를 보는 기구로 원형(圓形)으로 만들어 24방의 위차를 쓰고 중앙 부분에 지남침(指南針)을 꽂아 사용합니다).

각각 기치(旗幟)와 부월(斧鉞)을 들었으되 황제 앞에 나열한 거장(車帳)이 낱낱이 빠진 것이 없어 두어 줄로 차차 돌아가며, 또 안에 한 겹 유리 막히었으니, 코끼리며 황옥교(黃屋轎)며 말 탄 시위(侍衛) 좌우로 벌였으되 또한 스스로 운동하고 , 그 안에 유리로 8, 9층을 만들어 저절로 틀리며 순환(循環)하니 (주: 만불산처럼 자동기계장치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 안에 사람이 요동(搖動)하는 듯싶더니 홀연 두 층 금으로 만든 탑을 놓고 누런 양산(陽傘)을 받쳤으며, 뜰 아래 천관(千官)이 조회하는 형상을 베풀었으니, 가늘고 공교(工巧)하여 살아 움직이는 듯하니 자못 귀신의 조화러라.

전후로 봉황(鳳凰)이 입에 붉은 종이를 먹고 공중으로부터 날개짓해 춤추고 내려오니, 처음 열쇠를 틀 때부터 여러 번 변화하되 풍류 소리는 잠시도 그치지 아니하니 (주: 이러한 음악에 관련된 기록을 보아 만불산의 저절로 들리는 불경소리도 허늩소리라 치부할수만은 없겠습니다), 그 소리 청아(淸雅)하여 양금(洋琴)을 치며 생황(笙簧)을 불며 경쇠를 쳐 절조상응(節調相應)하여 이같이 반나절을 하더니, 여러 겹 유리와 수놓은 휘장이 차례로 스스로 닫히고, 풍류 소리 따라 그쳐지니, 그 신묘함을 헤아리지 못할지라.

값이 백은(白銀) 800냥이라 하고, 그 밖에 자명종(自鳴鐘)이 움직이며 소리나니 제작(製作)이 정묘하고 서양국(西洋國) 윤도(輪圖) 하나의 값이 30냥 은자 되니, 한 가게에 쌓인 것이 값을 의논하면 몇 억만 냥 이나 되는지 모를지라. 중국 재물을 가히 이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더라.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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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조선시대에도 유명한 장영실의 15세기 기계장치 '옥루' (흠경각루)가 있습니다 (5년전에 이미 자격루를 만들어 그 경험으로더 정교하게 만들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물시계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이 물시계 역시 미니어쳐등을 정교하게 붙여 넣은 장식기계적 성격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인 1438년 1월에 경복궁 안 흠경각에 설치한 자동 물시계입니다. [흠경각기欽敬閣記]에 나오는 이 기계장치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흠경각 안에 호지(糊紙)로 높이 7척 가량의 산을 만들고 옥루의 기륜(機輪)을 설치하여 물을 떨어뜨려 회전케 하였다. 금(金)으로 크기가 탄환(彈丸)만한 태양의 모형을 만들었는데, 오운(五雲)이 에워싸고 산허리 위로 지나간다. 태양은 1일 1주(周)하며 태양의 모형 아래에는 옥녀(玉女) 4인이 있는데 손에 금방울을 들고 구름을 타고 4방에 서 있다가 인시(寅時), 묘시(卯時), 진시(辰時)의 초정(初正)에는 동쪽에 있는 옥녀가 금방울을 흔들어 시각을 알린다.

7척이면 약 2.1미터, 풀을 먹인 한지인 호지로 태양의 모형및 옥녀, 사신, 무사, 종지기, 고인, 징인, 십이지신등을 인형으로 배치하고, 수력으로 이들 미니인형들이 북과 종과 징등을 쳐대는 구조입니다.

아래는 대강 복원해본 옥루
실록에 더 자세한 기록이 나오는데 소개해 봅니다.

세종실록 권80 세종20년 1월 7일(임진) 기록

풀[糊]먹인 종이로 일곱 자 높이의 산을 만들어 집 복판에 설치하고, 그 산 안에다 옥루기(玉漏機) 바퀴를 설치하여 물로써 쳐올리도록 하였다. 금으로 해를 만들었는데 그 크기는 탄자만 하고, 오색 구름이 둘러서 산허리 위를 지나도록 되었는데, 하루에 한 번씩 돌아서 낮에는 산 밖에 나타나고 밤에는 산 속에 들어가며, 비스듬한 형세가 천행에 준하였고, 극의 멀고 가까운 거리와 돋고 지는 분수가 각각 절기를 따라서 하늘의 해와 더불어 합치하도록 되어 있다. 

해 밑에는 옥으로 만든 여자 인형 넷이 손에 금 목탁을 잡고 구름을 타고,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서 있어 인·묘·진시 초정(初正)에는 동쪽에 섰는 여자 인형이 매양 목탁을 치며, 사·오·미시 초정에는 남쪽에 섰는 여자 인형이 목탁을 치고, 서쪽과 북쪽에도 모두 이렇게 한다. 밑에는 네 가지 귀형(鬼形)을 만들어서 각각 그 곁에 세웠는데 모두 산으로 향하여 섰으며, 인시가 되면 청룡신(靑龍神)이 북쪽으로 향하고, 묘시에는 동쪽으로 향하며, 진시에는 남쪽으로 향하고, 사시에는 돌아서 다시 서쪽으로 향하는 동시에 주작신(朱雀神)이 다시 동쪽으로 향하는데, 차례로 방위를 향하는 것은 청룡이 하는 것과 같으며, 딴 것도 모두 이와 같다. 

산 남쪽 기슭에는 높은 축대(築臺)가 있어, 시간을 맡은 인형 하나가 붉은 비단옷 차림으로 산을 등지고 섰으며, 인형 무사 셋은 모두 갑옷 차림인데 하나는 종과 방망이를 잡고서 서쪽을 향해서 동쪽에 섰고, 하나는 북[鼓]과 부채를 잡고 동쪽을 향해 서쪽에서 약간 북쪽으로 가까운 곳에 섰고, 하나는 징[鉦]과 채쭉을 잡고 동쪽을 향해서 서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가까운 곳에 서 있어서, 매양 시간이 되면 시간을 맡은 인형이 종 치는 인형을 돌아보고, 종 치는 인형도 또한 시간을 맡은 인형을 돌아보면서 종을 치게 되며, 매경(每更)마다 북과 부채를 잡은 인형이 북을 치고, 매점마다 징과 채를 잡은 인형은 징을 치는데, 서로 돌아보는 것은 종 치는 인형과 같으며, 경·점마다 북 치고 징 치는 수효는 모두 보통 시행하는 법과 같다. 

또 산 밑 평지에는 열두 방위를 맡은 신들이 각각 제자리에 엎드려 있고, 열도 방위 신 뒤에는 각각 구멍이 있어 상시에는 닫혀 있다가 자시(子時)가 되면 쥐 모양으로 만든 신 뒤에 구멍이 저절로 열리면서 인형 옥녀(玉女)가 자시패를 가지고 나오며, 쥐 모양으로 만든 신은 그 앞에 일어선다. 자시가 다 가면 옥녀는 되돌아서 구멍에 들어가는 동시에 구멍이 저절로 닫혀지고 쥐 모양의 신도 제 위치에 도로 엎드린다. 

축시가 되면 소 모양으로 만든 신 뒤의 구멍이 저절로 열리면서 옥녀가 또한 나오며, 소 모양의 신도 일어나게 되는데, 열두 시간이 모두 이렇게 되어 있다. 오방위(午方位) 앞에는 또 축대가 있고 축대 위에는 기울어진 그릇을 놓았고 그릇 북쪽에는 인형 관원이 있어, 금병(金甁)을 가지고 물을 따르는 형상인데 누수 남은 물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흐르며, 그릇이 비면 기울고 반쯤 차면 반듯해지며, 가득 차면 엎어져서 모두 옛말과 같이 되어 있다. 

또 산 동쪽에는 봄 3개월 경치를 만들었고, 남쪽에는 여름 경치를 꾸몄으며, 가을과 겨울 경치도 또한 만들어져 있다. 《시경》 빈풍도(詩經?風圖)에 의하여 인물·조수·초목 여러 가지 형용을 나무를 깎아 만들고, 절후에 맞추어 벌려 놓았는데 칠월 한 편의 일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집 이름을 흠경이라 한 것은 《서경》 요전(堯典)편에 ‘공경함을 하늘과 같이 하여, 백성에게 절후를 알려 준다[欽若昊天, 敬授人時]’는 데에서 따온 것이다. 

대저 당우 시대로부터 측후(測候)하는 기구는 그 시대마다 각자 제도가 있었으나, 당·송 이후로 그 법이 점점 갖추어져서 당나라의 황도유의(黃道遊儀)·수운혼천(水運渾天)과 송나라의 부루표영(浮漏表影)·혼천의상(渾天儀象)과 원나라의 앙의(仰儀)·간의(簡儀) 같은 것은 모두 정묘하다고 일렀다. 

그러나 대개는 한 가지씩으로 되었을 뿐이고 겸해서 상고하지는 못했으며, 운용하는 방법도 사람의 손을 빌린 것이 많았는데 지금 이 흠경각에는 하늘과 해의 돗수와 날빛과 누수 시각이며, 또는 사신(四神)·십이신(十二神)·고인(鼓人)·종인(鍾人)·사신(司辰)·옥녀(玉女) 등 여러 가지 기구를 차례대로 다 만들어서,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저절로 치고 저절로 운행하는 것이 마치 귀신이 시키는 듯하여 보는 사람마다 놀라고 이상하게 여겨서 그 연유를 측량하지 못하며, 위로는 하늘 돗수와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으니 이를 만들은 계교가 참으로 기묘하다 하겠다. 

또 누수의 남은 물을 이용하여 기울어지는 그릇을 만들어서 하늘 돗수의 차고 비는 이치를 보며, 산 사방에 빈풍도(?風圖)를 벌려 놓아서 백성들의 농사하는 어려움을 볼 수 있게 하였으니, 이것은 또 앞 세대에는 없었던 아름다운 뜻이다. 임금께서 여기에 항상 접촉하고 생각을 깨우쳐서, 밤낮으로 근심하는 뜻을 곁들였으니, 어찌 다만 성탕(成湯)의 목욕반(沐浴盤)과 무왕의 호유명(戶츐銘)과 같을 뿐이리오. 그 하늘을 본받고 때를 좇음에 흠경하는 뜻이 지극하며 백성을 사랑하고 농사를 중하게 여기시니, 어질고 후한 덕이 마땅히 주나라와 같이 아름답게 되어 무궁토록 전해질 것이다. 흠경각이 완성되자 신에게 명하시어 그 사실을 기록하게 하심으로 삼가 그 줄거리를 적어서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바치나이다.” 

=======

이렇게 (측우기등과 달리) 우리 사회 일반에 많이 인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기계류가 많습니다. 현대의 기술로 충분히 복원이 가능해 보이는데 이렇게 좋은 자원을 가시적으로 만들어서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이 외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주: 이감님의 설명으로 흠경각의 설계도인 흠경각영건의궤가 병인양요때 소실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관련 글링크).

문화재청등에서 프로젝트로 이런 유산들을 충실하게 복원해서 중앙박물관이나 경복궁, 혹은 경주박물관 등에 전시한다면 이 또한 큰 자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관광자원을 떠나 여러가지 문화적 '상상력'에 불을 지펴주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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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존다리안 2014/04/14 13:33 #

    고대 그리스의 헤론의 증기 기계 같은 것도 보면 그렇고 고대라고 해서 정교한 기계에 대한 기술이 없던 건 아니지요. 문제는 그게 실용적으로 쓰이기에는 기술적으로 성숙치 못해서 그렇지...
  • 역사관심 2014/04/14 15:28 #

    그렇습니다. 경제적 사회적분위기도 안되었구요.
  • 진냥 2014/04/14 21:25 #

    고대 그리스의 안티키테라 기계는 천문을 읽는 것이었는데, 신라의 만불산은 부처의 극락세계의 구현이었군요. 같은 전근대 과학의 산물이라도 함의하고 있는 세계관이 다르니 이토록 개성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는데, 현대의 천편일률인 과학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종의 미학이라 하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4/04/14 21:55 #

    동감이예요. 그당시의 각 대륙은 서로 다른 플래닛같습니다. :)
  • 이 감 2014/04/15 05:31 # 삭제

    강화도 외규장각 장서목록을 보면 광해군대에 보루각과 흠경각에 관해 펴낸 의궤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책은 프랑스의 침범으로 병인양요 때에 소실됩니다(썩을 넘들). 문제는 이 책들은 유일본이었다는 것이죠. 이 책들에는 최소한 두 각루의 두 자격루의 완전한 겉모습에서 최대한으로는 자격루의 설계도까지 있었을 것이라 추측되고 있습니다. 통탄할 일이죠. 일단 보루각 자격루는 복원되었고 지금은 흠경각 자격루를 복원하는 중이라고 하는데요. 역시 녹록치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4/04/15 05:32 #

    이감님> 언제나 그렇듯 정확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영건의궤등에 대해 알게 되어 관련 정보를 가첨했습니다. 이글중에서는 방화로 소실이라고하는데, 차라리 '가져갔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pcp2010&logNo=110167817114&beginTime=0&jumpingVid=&from=section&redirect=Log&widgetTypeCall=true
  • 迪倫 2014/04/15 12:20 #

    역사 속의 기계장치를 좀 좋아해서 어릴적에 옥루 얘기를 듣고 굉장히 매혹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4/04/15 12:57 #

    저와 비슷하시네요. 저는 비교적 나이든 후에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만...^^
  • 블루제이 2015/05/20 10:07 # 삭제

  • 역사관심 2015/05/22 22:47 #

    블루제이님> 감사합니다. 사진이 제가 쓴 것과 같은 것 같습니다.
  • 고라파덕 2017/11/24 10:40 #

    엄청나군요. 왜 이런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들어보지를 못했을까요....
  • 역사관심 2017/11/24 12:09 #

    제 블로그의 하나의 주장이기도 한데, 우리는 한국적인 것을 너무 임란이후의 것에 국한시켜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선학자 선생님들의 공로는 무시할 수 없지만, 이제는 좀 외연을 넓힐 시점이 아닌가 해요.
  • 고라파덕 2017/11/24 12:13 #

    이런것들에 대해서 깊이있게 배우는게 정말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훌륭한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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