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거인들- 7~9세기 신라의 거인국 (장인국) 기록과 장길손 거인신화 설화 야담 지괴류

앞(삼국유사의 여자거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설화의 남자 거인'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사실 특정성별을 '여자거인'이라고 두는 경우는 많아도, 남성의 경우 성별을 기입하는 경우가 사료나 문집에서 드물기에, 여성이라는 표기가 없는 경우는 남성을 지칭하거나 포함하는 개념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웃국과 우리 설화, 야담에 등장하는 거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지요.
신라 동쪽의 거인의 나라, 장인국 長人國
당나라 대의 단성식(段成式, ?~ 863년)이라는 사람이 편찬한 지괴류의 문집이 바로 [유양잡조(酉陽雜俎)]인데, 여기에 '신라국의 거인국'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줄거리를 살피기 전에 이 유양잡조의 의의에 대해 한가지를 첨언한다면, 흥부전의 원전이라 여겨지는 신라의 '방이전'이 여기 등장하고 있어 학자들의 관심문집중 하나입니다. 

신라국에는 제1품 귀족인 김가(金哥)가 있다. 그의 먼 조상인 방이(旁?)에게 재산이 아주 많은 동생이 한 명 있었다. 형인 방이는 동생과 분가해서 살았기 때문에 입을 것과 먹을 것을 구걸했다. 그 나라의 어떤 사람이 방이에게 빈 땅 1무(畝: 1무는 100步. 1보는 사방 6척)를 주자 방이는 동생에게 누에알과 곡식 씨앗을 달라고 했다. 동생은 누에알과 곡식 씨앗을 쪄서 방이에게 주었지만 방이는 그 사실을 몰랐다. 누에알이 부화했을 때 단 하나만 살아 있었는데, 그것은 날마다 1촌 남짓씩 자라나 열흘 만에 소만큼 커졌으며 몇 그루의 뽕잎을 먹어도 부족했다. 동생은 그 사실을 알고 틈을 엿보아 그 누에를 죽였다. 그랬더니 하루 뒤에 사방 100리 안에 있던 누에들이 모두 방이의 집으로 날아와 모였다. 나라 사람들은 그 죽은 누에를 ‘거잠(巨蠶)’이라 부르면서 누에의 왕이라고 생각했다. 방이의 사방 이웃들이 함께 고치를 켰지만 일손이 부족했다. 방이가 심은 곡식 씨앗 중에서 단 한 줄기만 자라났는데 그 이삭의 길이는 1척도 넘었다. 방이는 늘 그 이삭을 지켰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새가 그것을 꺾어서 물고 가버렸다. 방이가 그 새를 뒤쫓아 산으로 올라가서 5 ~ 6리를 갔더니 새가 한 바위틈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해가 져서 길이 어두웠으므로 방이는 그 바위 옆에서 머물렀다. 한밤중에 달이 밝게 빛날 때 보았더니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모두 붉은 옷을 입고 함께 놀고 있었다. 그 중에서 한 아이가 말했다. 중략.

비단의 거리였던 당대 경주가 등장하는 여러 사료를 다시 확인시켜주는 설화로 '누에왕'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이 설화는 주제가 아니니 이글에선 각설하고, 유양잡조에 등장하는 거인국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해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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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거인국(장인국)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기문, 옥당한화등은 유양잡조에서 출처를 밝힌 당대의 야담집들입니다. 예를 들어 옥당한화는 같은 9세기 왕인유王仁裕(880一956)가 지은 것으로, 다섯 왕조와 사회사와 전설을 골라적은 문집입니다 (참조링크).

[기문(紀聞)]
신라국은 동남쪽으로 일본(日本)과 가깝고 동쪽으로 장인국(長人國)과 인접해 있다. 장인국의 사람들은 키가 3장(丈)이나 되고 톱 같은 이에 갈고리 같은 손톱을 하고 있다. 또 불에 익힌 음식을 먹지 않고 짐승을 사냥하여 먹으며 때때로 사람도 먹는다. 그들은 벌거벗고 사는데 검은 털이 몸을 덮고 있다. 그 나라의 경계는 수천 리에 걸쳐 산이 이어져 있으며 중간에 있는 산골짜기는 철문으로 봉쇄했는데 그것을 ‘철관(鐵關)’이라 부른다. 항상 수천 명의 궁노수(弓弩手)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기 때문에 그곳을 통과할 수 없다.

엄청난 모습이지요- 약 9미터에 벌거숭이로 검은 털-갈고리 손톱 (수천명의 궁노수는 나체로 활을 들었나 봅니다).  흥미로운 것이 신라의 동쪽은 우산국 즉 울릉도인데 신기하게 우산국 관련기록에 대형화된 과일과 동물들의 기록이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세종실록에 되만한 복숭아 씨, 고양이만한 쥐, 기둥만한 대나무 등의 기록이 전하죠- 예전포스팅 글. 다시보니 이 포스팅때 우연히 필자가 '거인국'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군요. 아무튼 기문의 이 기록과 비근한 것이 [신당서 신라전]에 등장하는 신라 거인국이야기입니다. 다음의 기록입니다:
신라전
신라는 변한의 먼 후예이다. 한나라때의 낙랑땅에 사는데 횡으로 일천리, 종으로 삼천리이다. 그 동쪽은 장인(長人)의 나라에 닿고, 동남쪽은 일본, 서쪽은 백제, 북쪽에 고구려가 있다.

이러한 장인국은 어떠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까요? 약 200년 앞선 7세기 당나라인의 자세한 장인국 표류모험담이 다음에 등장합니다.

[기문(紀聞)]
[唐나라 玄宗] 천보연간(天寶年間 742 ~ 756)에 [당조정에서] 찬선대부(贊善大夫) 위요(魏曜)를 신라국에 사신으로 보내 어린 임금을 책립(冊立)하게 했는데, 위요는 연로했기 때문에 그 일을 심히 꺼렸다. 당시 신라를 다녀온 적이 있는 빈객이 있었기에 위요가 그를 찾아가서 [신라로 가는] 여정에 대해 물었더니, 빈객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高宗] 영휘연간(永徽年間 650 ~ 655)에 당나라는 신라·일본과 모두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사신을 보내 두 나라에 모두 보답했다. 사신이 신라에 도착한 후에 장차 일본으로 가려 했는데, 해상에서 풍랑을 만나 수십 일 동안 그치지 않고 파도가 크게 일었다. 사신은 파도를 따라 표류하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바람이 멈추고 파도가 잠잠해지더니 어떤 해안가에 도착했다. 그때는 해가 막 지려고 했으므로 몇 척의 배에 함께 타고 왔던 사람들이 곧장 배를 대고 해안으로 올라갔는데 약 100여 명이었다. 해안의 높이는 20 ~ 30장(丈) 가량 되었는데, 멀리 집들이 보이자 사람들은 그곳으로 다투어 달려갔다.

그 집에서 거인들이 나왔는데 키가 2장이나 되고 몸에 옷을 갖춰 입었으며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나라 사람들이 온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그들을 에워싸서 집안으로 몰아넣은 뒤 바위로 문을 막고 나서 모두 떠나갔다. 얼마 후 같은 거인 종족 100여 명이 서로 뒤따라 도착하더니 당나라 사람들 중에서 몸이 포동포동한 자를 검열하여 50여 명을 뽑은 뒤 모두 삶아서 함께 모여 먹었다. 아울러 진한 술을 꺼내와 함께 잔치를 즐기면서 밤 깊도록 모두 취했다. [살아남은] 당나라 사람들은 그 틈에 여러 정원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후원(後院)에 30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들은 모두 지금까지 풍랑에 표류하다가 사로잡혀온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이 스스로 말했다. 
“저들은 남자들은 모두 잡아먹고 부인들만 남겨놓아 옷을 만들게 했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저들이 취한 틈을 타서 도망가지 않고 뭐합니까? 우리가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당나라 사람들은 몹시 기뻤다. 부인들은 자신들이 누인 명주실 수백 필을 꺼내 짊어지고 난 후에 칼을 가지고 가서 취해 있던 거인들의 목을 모두 베었다. 그러고는 도망쳐서 해안에 도착했는데 해안이 높은 데다가 날이 어두워서 내려갈 수 없었다. 그래서 모두 명주비단으로 몸을 묶어 매달린 채 내려오는 방법으로 서로를 매달아 내려 주어 물가에 도착한 뒤 모두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 배가 출발할 때 산꼭대기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기에 내려왔던 곳을 뒤돌아보았더니, 이미 거인 천여 명이 쫓아오고 있었다. 거인들은 줄줄이 산을 내려와 순식간에 해안에 이르렀지만 이미 배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자 호랑이처럼 울부짖으며 펄쩍펄쩍 뛰었다. 그리하여 사신 일행과 부인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로 이 자체로 하나의 컨텐츠가 되는 소재입니다. 1장을 대강 3미터로 잡으면 2장이니 6미터급 거인들입니다. 당인들과 말이 안통하며 식인종입니다. 그러나 앞서 살핀 거인들과 달리 의복도 갖춰입었습니다. 다른 출처인 9~10세기초 [옥당한화]에도 장인국은 또 등장합니다.

[옥당한화(玉堂閒話)]
육군사(六軍使, 唐代 皇宮의 禁衛軍) 서문사공(西門思恭)이 한번은 어명을 받들고 신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바람과 물살이 순조롭지 못하여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망망대해에서 몇 달 동안 표류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남쪽의 한 해안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도 밭두둑과 경물이 보이자 마침내 육지로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얼마 후 신장이 5 ~ 6장이나 되는 거인 한 명이 나타났는데, 옷차림이 특이하고 목소리가 천둥치는 것 같았다. 거인은 서문사공을 내려다보며 마치 경탄하는 듯하더니, 곧장 다섯 손가락으로 그를 집어 들고 100여 리를 가서 한 바위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늙고 어린 거인들이 모여 있다가 번갈아 서로를 불러모아 다투어 와서 서문사공을 구경하며 가지고 놀았다. 그들이 하는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모두들 기뻐하는 얼굴을 하며 마치 신기한 물건을 얻은 듯한 표정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구덩이 하나를 파고 서문사공을 그곳에 넣어 두었으며, 또한 때때로 와서 그를 지켰다. 이틀 밤이 지난 후에 서문사공은 마침내 기어 올라가 구덩이를 뛰어나온 뒤에 곧장 이전에 왔던 길을 찾아 도망쳤다. 서문사공이 겨우 배로 뛰어 들어갔을 때, 거인이 이미 뒤쫓아 이르러서 곧장 거대한 손으로 뱃전을 붙잡았다. 이에 서문사공이 검을 휘둘러 거인의 손가락 3개를 잘랐는데 손가락이 지금의 다듬이방망이보다도 굵었다.

거인이 손가락을 잃고서 물러가자 서문사공은 마침내 닻줄을 풀고 배를 출발시켰다. 배 안에서 서문사공은 물과 식량이 다 떨어져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결국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을 씹어 먹었다. 나중에 그는 마침내 북쪽 해안에 도착하여 거인의 손가락 3개를 조정에 바쳤는데, 조정에서는 그것에 옻칠을 하여 궁중 창고에 보관했다. 서문사공은 주군(主軍 : 六軍使)이 되고 나서부터 차라리 금옥(金玉)은 남에게 줄지언정 평생 음식은 손님에게 대접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지난날 식량이 떨어져서 당한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는 무려 5~6장, 즉 16~19미터급 거인들입니다. 손가락뼈는 지금도 중국에 전해지고 있을까요~. 주인공인 서문사공이 실존인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행로전이라는 설화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당시 신라로 가는 해상길은 상상의 나래가 활짝 펼쳐진 모양입니다. 네버엔딩스토리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유양잡조(酉陽雜俎)]
근자에 어떤 해상(海商)이 신라로 가던 중에 한 섬에 잠시 정박했는데, 그곳은 온 땅이 모두 검은 칠한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덮여 있었다. 그곳에는 커다란 나무가 많았는데, 그 사람이 나무를 올려다보았더니 숟가락과 젓가락은 바로 그 나무의 꽃잎과 꽃술이었다. 그래서 그는 숟가락과 젓가락 100여 쌍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사용해보았는데 너무 투박해서 쓸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것으로 차를 저어보았더니 젓는 대로 녹아 없어졌다.

마치 현대 동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섬이 아닐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한국의 남성거인신을 소개해봅니다. 숙종대의 유명한 도적 장길산과 혼동되기 쉬우니 조심. 이 장길손은 키가 9만리에 달했던 중국 창세거신 반고를 연상시키는데, 국내로 보면 마고에 비견되는 남신입니다. 한반도 창세신화중 또다른 신은 대별왕-소별왕도 있습니다 (주호민 작 [신과함께] 3권의 주요인물들이기도 하죠).

한국의 거대거인신 장길손

고대에 장길손이라고 하는 거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몇십 리 길도 한 발자국만 떼어놓으면 갈 수 있었다. 귀 길이가 30척이나 되었고, 몸집이 엄청나게 커서 한 번에 쌀을 수십 섬씩 먹어야 했다. 그는 온 천지를 헤매고 다녔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밥 한번 마음껏 먹어보지 못했다. 늘 배가 고픈 그는 먹을 것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왔다. 사람들은 쌀 수십 섬으로 밥을 지어 장길손에게 내주었다. 배가 부른 장길손은 자기 모양새를 바다에 비춰보았다. 그런데 칡덩굴로 사타구니만 가리고 있는 몰골이 참으로 볼품이 없었다. 그래서 장길손은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옷을 입어보고 싶다고 간절히 소망했다. 이번에도 역시 사람들은 장길손에게 남쪽에서 한 해 동안 나온 베를 전부 내주면서 옷을 해 입으라고 했다. 

장길손은 옷을 입어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흥이 나서 들 한가운데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그가 몸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그의 몸이 해를 가리고 그림자가 백 리 밖까지 드리워졌다. 장길손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쪽에는 우중충하고 검디검은 그늘이 져서 쌀이며 보리며 온갖 곡물이 조금도 자라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장길손이 춤을 추며 팔을 휘두를 때마다 옷자락에서 태풍 같은 바람이 일어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마을 앞에 서 있던 오래된 정자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지붕이 날아가고 돼지도 닭도 날아갔다. 장길손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산을 넘고 들을 지나 북쪽으로 북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북쪽은 인심도 좋지 않고 먹을 것도 없었다. 굶어서 걷기조차 힘든 장길손은 너무 배가 고파 돌이든 나무든 흙이든 닥치는 대로 주워 먹었다.

그러나 계속 배가 아파 배를 움켜쥐고 뒹굴다가 배 속에 있는 것을 모두 토해내고 설사까지 했다. 입 속에서 나무, 흙, 돌, 바위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어찌나 많이 먹었던지 그가 토해놓은 것이 쌓이고 쌓여 큰 산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백두산이 되었다. 그리고 설사가 흘러 내려간 것이 태백산맥을 이루었고, 똥덩어리가 튀어 멀리 떨어져 나간 것이 탐라(제주)가 되었다. 나무와 돌 바위 따위를 다 쏟아낸 장길손은 남쪽이 그립고 자기 처지가 한심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가 흘린 눈물은 한없이 흘러 동서 양쪽의 두 줄기로 갈라져 내려갔는데 한 줄기는 압록강이 되고 또 한 줄기는 두만강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강들의 지류도 생겨났다.

마음껏 울고 난 장길손은 뒤를 돌아보며 길게 휴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소리가 거친 바람이 되어 주변에 있는 것을 다 날려보내는 바람에 이번에는 만주벌판이 생겨났다. 그제야 정신이 든 장길손은 자기를 후대한 남쪽 농민들에게 뭔가 보답하고 싶었다. 그는 남쪽 사람들에게 거름이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가 토해놓은 백두산 위에 서서 남쪽을 향해 오줌을 누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의도와 달리 홍수를 이루어 북쪽 사람들은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고, 남쪽 사람들은 더 아래로 떠내려가서 그중 살아남은 사람들이 일본 사람의 시조가 되었고, 북쪽에서 떠내려온 사람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우리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출처- 한국인의 신화, 한상수, 1987- 저서링크)

어떻습니까. 아마 처음 이 신화를 들어본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한반도 전체를 만들어낸 또 하나의 신화이지요. 마고할미중 가장 큰 버젼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장길손에 대한 단편적인 설화들은 따로 전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구절도 있지요:
...백성들이 흉년이 들게 한 장길손을 불러다 벌을 내리라고 청하여 왕이 그를 잡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길손을 잡으러 갈 것도 없이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바닥에 엎드렸더니 머리가 대궐 마당에 닿았다. 볼기 오십 대를 치라고 했는데, 볼기짝이 하도 멀어서 하인들이 볼기짝 쪽으로 가다가 지쳐 죽었다. 

이렇게 흥미만점의 소재들이 현대화로 각박한 우리사회에서는 아무런 컨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어 아쉽기만 합니다. 어디서도 삽화조차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다음에 올릴 포스팅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지만, 많이 알려져서 많은 이들이 알게 되고 이용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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酉陽雜俎 원문:
新羅國, 東南與日本隣, 東與長人國接. 長人身三丈, 鋸牙鉤爪. 不火食, 逐禽獸而食之, 時亦食人. 裸其軀, 黑毛覆之. 其境限以連山數千里, 中有山峽, 固以鐵門, 謂之‘鐵關’. 常使弓弩數千守之, 由是不過. (出<紀聞>) 

又天寶初, 使贊善大夫魏曜使新羅, 策立幼主, 曜年老, 深憚之. 有客曾到新羅, 因訪其行路, 客曰: 永徽中, 新羅 · 日本皆通好, 遣使兼報之. 使人旣達新羅, 將赴日本國, 海中遇風, 波濤大起, 數十日不止. 隨波漂流, 不知所屆, 忽風止波靜, 至海岸邊. 日方欲暮, 時同志數船, 乃維舟登岸, 約百有餘人. 岸高二三十丈, 望見屋宇, 爭往趨之. 有長人出, 長二丈, 身具衣服, 言語不通. 見唐人至, 大喜, 于是遮擁令入宅中, 以石塡門, 而皆出去. 俄有種類百餘, 相隨而到, 乃簡閱唐人膚體肥充者, 得五十餘人, 盡烹之, 相與食?. 兼出醇酒, 同爲宴樂, 夜深皆醉. 諸人因得至諸院. 後院有婦人三十人, 皆前後風漂, 爲所擄者. 自言: “男子盡被食之, 唯留婦人, 使造衣服. 汝等今乘其醉, 何爲不去? 吾請道焉.” 衆悅. 婦人出其練縷數百匹負之, 然後取刀, 盡斷醉者首. 乃行至海岸, 岸高, 昏黑不可下. 皆以帛繫身, 自?而下, 諸人更相?下, 至水濱, 皆得入船. 及天曙船發, 聞山頭叫聲, 顧來處, 已有千餘矣. 絡繹下山, 須臾至岸, 旣不及船, ?吼振騰. 使者及婦人?得還. (出<紀聞>) 

又近有海客往新羅, 次至一島上, 滿地悉是黑漆匙?. 其處多大木, 客仰窺, 匙?乃木之花與鬚也. 因拾百餘雙還, 用之, 肥不能使. 偶取攪茶, 隨攪隨消焉. (出<酉陽雜俎>)

又六軍使西門思恭, 常銜命使于新羅, 風水不便, 累月漂泛于滄溟, 罔知邊際. 忽南抵一岸, 亦有田疇物景, 遂登陸四望. 俄有一大人, 身長五六丈, 衣?差異, 聲如震雷. 下顧西門, 有如驚歎, 于時以五指撮而提行百餘里, 入一巖洞間. 見其長幼群聚, 遞相呼集, 競來看玩. 言語莫能辨, 皆有歡喜之容, 如獲異物. 遂掘一坑而?之, 亦來看守之. 信宿之後, 遂攀緣躍出其坑, 逕尋舊路而竄. ?跳入船, 大人已逐而及之矣, 便以巨手攀其船舷. 于是揮劒, 斷下三指, 指粗于今槌帛棒. 大人失指而退, 遂解纜. 舟中水盡糧竭, 經月無食, 以身上衣服, ?而?之. 後得達北岸, 遂進其三指, 漆而藏于內庫. ?拜主軍, 寧以金玉遺人, 平生不以飮饌食客, 爲省其絶糧之難也. (出<玉堂閒話>)

그림출처: 마지막 거인 (프랑스와 플라스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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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솔까역사 2014/04/24 08:37 #

    의외로 신라거인에 관한 기록이 오래되었고 또 많군요.
    페르시아의 설화 쿠쉬나메에는 신라를 낙원으로 그리고 있는데 우리가 인도를 동경하고 이상사회로 상상하듯이 중국이나 페르시아도 한국에 대해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무튼 몰랐던 설화를 알게 되어 재미있고 그 발전 가능성에 기대감이 생기는군요.
  • 역사관심 2014/04/24 23:09 #

    그러게 말입니다- 시황제때 불로초 이야기부터 그 기원이 꽤 깊어보입니다. 여러 버젼이 있어 재미있습니다- 동화책, 만화를 중심으로 일단 많이 알려지면 합니다.
  • bergi10 2014/04/24 08:50 #

    이야... 되게 재미있네요 ㅎ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4/04/24 23:09 #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ㅇㅇ 2014/04/24 10:33 # 삭제

    뭔가..울릉도스러운것 같기도 하네요 (해안가 절벽얘기도 그렇고)

    근데 울릉도는 이미 삼국시대에 신라에 복속된걸로 아는데 저 기록에 따르면

    걍 독립국이라고봐도 무방하니 ㄷㄷ 신라 관리들도 잡혀먹혔나

    그건 그렇고 한반도 최초의 거신이 반고라고 하셨는데

    반고는 중국의 전설적인 시조(?) 중 한명 아닌가요?

    중국 반고도 엄청 거대했다고 들었는데 ..

    아무튼 장인국과 울릉도의 연관성은 살펴볼 필요가 있네요

    그렇지 않아도 울릉도의 청동기 유적지나 신라 유적지 발굴 얘기가 좀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울릉도 자체가 자연보호측면에서 볼때 생각보다

    워낙 잘된 곳이라서,, 현재 남한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가 자라고 있다죠

    예상 수령만 4500년이 넘는걸로 아는데

  • 역사관심 2014/04/25 02:34 #

    우산국은 지증왕때 한번 망하긴 하지만 사실 고려대에까지 계속 들쑥날쑥 명맥을 이어갑니다. 의외로 질기지요.

    반고는 당연히 중국거신인데 사실 한국에도 수입(?)된 전력이 있어서...말씀듣고 보니 약간 수정을 가해야 하겠습니다.

    말씀하신 울릉도 최고 고목에 대해서 다룬적이 있습니다 (향나무).^^
    http://luckcrow.egloos.com/2192203
  • 아르니엘 2014/04/24 10:34 #

    장길손 이야기는 어릴때 동화에서 봤는데 그립네요 그때는 산을 집어먹다가 토했다고 기억했는데 토한게 산이 되었던거군요. 마지막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나지않지만 좋은 포스팅 잘봤습니다!
  • 역사관심 2014/04/24 23:13 #

    벌써 동화책으로 나온 적이 있었군요- 반갑네요!
    장길산만 유명하고 장길손은 안 알려져서..^^
  • 아르니엘 2014/04/25 10:31 #

    근 30년이 다 되어가네요. 아마 웅진에서 나왔던걸로 기억하는데...
  • 시쉐도우 2014/04/24 10:45 #

    오딧세이아와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본 듯 한 장면들이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그 시절에도 동서문명의 교류를 한 흔적일까요?
  • 역사관심 2014/04/24 23:15 #

    꼼꼼하게 오딧세이나 천일야화를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말씀을 듣고 보니 흥미가 돋습니다. 한번 비교해봐야겠네요.

    이런 설명들은 흔한데, 본격적인 연구를 한적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http://folkency.nfm.go.kr/munhak/dic_index.jsp?P_MENU=01&DIC_ID=6581&ref=T2&S_idx=6&P_FIELD=L02&cur_page=1
    (궤네깃당 본풀이)

    "영웅서사시의 전례가 후대의 영웅소설이나 애정소설로 바뀌는 사례가 많은데, <라마야나>, <오디세이>, <마나스>, <게사르>, <장가르>에서도 이러한 요소가 확인된다. <돗제본풀이>는 세계의 영웅서사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 존다리안 2014/04/24 11:59 #

    그나저나 식인거인이라니.... 무섭군요. 모 만화 생각도 나고....
  • 역사관심 2014/04/24 23:18 #

    저렇게 간단하게 묘사해둬서 그렇지, 집어먹는 장면을 (진격..)을 생각하면 -_-;
  • 초록불 2014/04/25 14:32 #

    그냥 소재로 써먹은 거긴 하지만, 거인 이야기는 제가 <역사 속으로 숑숑> 6권과 9권에서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4/04/25 15:28 #

    아 그러셨군요.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
  • 초록불 2014/04/25 15:32 #

    웬만한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4/04/25 15:46 #

    한번 봐야겠네요. 정보 감사합니다 :)
  • 낙으네 2014/04/27 04:36 # 삭제

    옷 해 입어서 좋다고 춤을추니 광풍이 몰아치고 분뇨를 누니 산이쌓이고 홍수가 났는데 또 그런 자기가 불쌍해서 울었다니 뭔가 거인이면서 순박한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재밌군요 ㅋㅋㅋㅋ
  • 역사관심 2014/04/28 01:20 #

    ㅎㅎㅎ 이 소재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 남중생 2016/06/05 03:02 #

    저는 어렸을 때 읽은 저 "마지막 거인" 그림책이 참 인상깊었는데 말이죠... 심지어 거인국 지도가 고래 이빨에 새겨져있다는 것부터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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