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눈의 검은개 두마리와 흉가를 도는 의관귀신, 그리고 퇴마견 신구神拘 설화 야담 지괴류

지괴류집에 가까운 17세기의 기담집 '천예록'에는 다음의 기괴한 이야기가 전합니다 (예전에 두억시니 이야기로 소개한 책이지요).
남부(南部) 부동(部洞) 흉택(凶宅)에 대해
남부 부동에 또 폐가 한 채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이창李廠이 형제들과 함께 들어가 보았다. 

대청에 붉고 검은 개 두 마리가 양끝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고 붉은 눈만 뜨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도 짖지도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니 이 두 마리 개가 뜰에 내려가 날뛰면서 요란하게 소리치니 얼마 후 조정관리 의관을 갖춘 한 장부가 집 뒤에서 나와 대청에 와 앉았다.

이어 대여섯의 잡귀들이 마루 밑에서 나와 남자 앞에 나아와 절했다. 곧 남자가 일어나 집안을 한 바퀴 도니 잡귀들과 개도 따라 돌았다.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두 마리의 개는 여전히 마루 양쪽에 엎드려 있었다. 

이튿날 이창은 마루 밑을 살피니 낡은 빗자루와 헌 키가 있었고, 또 집 뒤를 살피니 굴뚝 뒤에 역시 낡은 비가 있기에 모두 꺼내 함께 불살랐다. 

그리고 그날 밤 다시 동정을 살피니, 지난밤과 똑같이 그 의관을 갖춘 남자가 잡귀와 개를 거느리고 집을 돌기에, 이창은 곧 그 집을 나와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우선 여기 나오는 부동(部洞)은 바로 현재의 중구에 있는 필동(筆洞) 입니다. 조선 한성부(漢城府) 5部 중의 하나인 남부의 부사무소(部事務所)가 이곳에 있었으므로 부동(部洞)이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발음이 같은 음을 빌려와 붓골이라 하다가, 部의 음과 筆의 훈이 서로 같기 때문에 붓골을 필동으로 표기하게 된것이지요.

그럼 이 이야기의 시대는 정확히 언제일까요? 주인공인 '이창李廠'이 누구인지를 보면 됩니다. 그는 조선중기 광해군대의 선비인 이시함(李時馠)의 아들중 삼남입니다. 이시함은 1611년에서 1660년의 인물로 성품이 온화하고 학문에 뛰어났지만 계속 과거에는 낙방하다 뒤늦게 관직에 진출한 선비였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17세기 중후반의 이야기로 보면 무방할 것입니다. 이 괴담이 나오는 '천예록'의 저자인 임방이 이창과 거의 같은 시대 (1640~1724년)의 인물이므로 저자가 동시대에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을 겁니다.

저기 나오는 '형제들'이란 형인 이휴(李, 이상하게 이휴에 대해선 기록이 희미, 2남 4녀라는 기록도 있고), 이하(李廈)를 말합니다. 이 삼형제가 현재 필동에 있던 흉가에 가보았는데, 눈이 붉은 개 두마리를 이끄는 관리 의관의 귀신을 만나게 된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의관귀신은 바로 귀신무리의 '리더'였다는 점인데, 대여섯의 잡귀가 마루 밑에서 나와 절하고, 검은개 두마리와 이무리가 집을 빙빙 돌았다는 장면입니다. '빗자루'가 놓여있어서 (도깨비= 빗자루 공식은 흔하죠) 이를 모두 태웠는데, 역시 '천예록'은 흥미롭습니다. 거기서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질 않아요.

빗자루를 몽땅 태워도 그 다음날 다시 그 의관남자와 잡귀들과 검은개들이 그 집을 돌았다는 결말. 

조금만 더 파고 들어가 볼까요? 이 '의관남자'에 대한 정보가 궁금해집니다. 사실 위의 버젼외에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이 붙은' 판이 있습니다.

남촌의 부동에 또 다른 흉가가 있었다. 이창의 가족들은 갈 데가 없어 이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형제와 친구들과 같이 그 집에 들어갔더니 황구黃狗 와 흑구黑狗 두 마리가 마주 보며, 대청마루 양 귀퉁이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조복 朝服과 조관朝官을 입은 한 장부가 집 뒤편에서 나타났다. 장부는 대여섯의 잡귀 들과 개 두 마리를 거느리고 집을 몇 바퀴나 둘러보면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참 뒤에야 장부가 사라졌다. 그러자 잡귀들은 대청 아래로 들어가고 개들은 대청 위로 올라가 양 모퉁이에서 서로 마주 보며 엎드렸다.

그들은 이튿날 대청마루 아래서 망가진 키 와 닳아빠진 빗자루 두세 개 그리고 집 뒤편에서 닳은 빗자루 하나를 찾아내어 모두 태워 버렸다. 그 날도 밤이 깊어지자 조복과 조관을 한 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대여섯의 잡귀들과 같이 다시 그 집을 빙 둘러서 살피고는 한참 만에 흩어져 나왔던 곳으로 들어갔다 전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이 집을 버리고 달아났다. 이 창의 얘기를 들은 어떤 사람이 그의 형인 휴 와 하 에게 이 사실을 다시 확인해 보았더니 모두 "그렇다"고 하였다.

여기 이 버젼에서 보면 일단 검은 개만 두 마리가 아니라, 누런 개와 검은 개 한 마리씩입니다. 그리고, 장부는 조복과 조관을 입었다고 하는데, 조선중기 이후 이 관복은 4품관까지로 제한된 주로 제사나 행사등 큰일때 입는 관복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귀신은 생전 4품관이상의 고위관직자였을 겁니다. 또한 뭔가를 찾는 걸로 보이는 행동을 했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 버젼에서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결말후, 이 괴담에 대해 제3자가 이창의 형인 이휴와 이하에게 (같이 들어갔던 2인) 실제로 경험한 이야기냐고 확인한 과정이 붙어있다는 점.

조선대 조복朝服- 이런 옷을 입고 한밤중에 검은 개들과 잡귀와 집을 빙빙..가까이 가고 싶지 않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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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神拘
조선시대에도 퇴마사 기록이 꽤 나오는데 (언제 한번 다뤄볼 예정), 필자가 퇴마사라면 저 검은 개들의 상대로는 아마도 귀신잡는 개 '신구神拘'가 적격이라 판단하고 풀었을 겁니다. 신구는 귀신이 보기에도 무서운 네눈박이 퇴마견으로 토종견의 모습에 눈이 네개입니다. 칠흑같은 옛날 밤에도 저 네개의 눈으로 귀신이나 이물을 퇴치하던 개들입니다. 중요한 아이템으로 목에 달고 있는 요괴나 귀신을 쫓는 방울이 필수.

요놈 한마리 풀었으면 상황 끝났을지도 (눈, 세개가 아니라 네개입니다).
이 두녀석도 모두 신구들입니다 (조선민화)
가장 그로테스크한 버젼의 신구
만날 이야기해서 그렇긴 하지만, 이 '신구'에 대해서도 아는 현대한국인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이 알려져서 이용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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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신구야 상상수이지만, 현실에서도 우리만의 전통 퇴마견이 있으니 바로 그 유명한 '삽살개 (삽사리)'입니다. 삽살개의 원래 의미는 액운을 쫓는 개이다. 살(煞)이란 액운, 즉 사람을 해치는 기운을 말하며, 삽은 퍼낸다, 없앤다는 뜻을 지니는데 삽살이, 삽사리로도 불려진 삽살개는 말 그대로 악귀를 쫓는 개를 뜻하는 것이다.” 라는 주장이 삽살견 공식보존협회에 실려있는데 이견도 있습니다 (링크). 

개이름 자체야 다른 뜻의 어원일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삽살견이 퇴마견의 역할도 했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민화분위기에서 드러나듯 말이지요. 특히 저 어유봉의 삽살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란...

민화-삽사리 (조선)
삽사리- 기원 어유봉 (조선, 1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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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4/04/28 09:47 #

    천예록에는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지요. 지괴담 외에도 내조를 잘 한 기생 이야기라든가.... 이러한 이야기의 보물창고가 어찌하여 들여다보는 이 없이 썩어들어가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ㅠㅠ
  • 역사관심 2014/04/28 09:49 #

    맞습니다. 어우야담. 청구야담, 천예록, 임하잡기...수도 없는 컨텐츠가 아직 진주속 보물처럼 묻혀있는 우리사회입니다. 많이 발굴해서 알려지고, 이용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 BaronSamdi 2014/04/28 10:52 #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괴기담이라면 사족을 못쓰는지라
  • 역사관심 2014/04/28 16:47 #

    감사합니다 ^^
  • ㅇㅇ 2014/04/28 11:03 # 삭제

    붉은 눈의 검은개는 중세유럽전설에 등장하는 헬 하운드 (hell hound)와 굉장히 흡사하네요.

    몇년전 디스커버리 채널 로스트 테이프라는 방송에도 한번 나온적이 있는데

    그 개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사고로 다 죽었다는 ㄷㄷ 헬 하운드도 귀신인지 악령인지가 부리고 다녔죠

    조복입은 귀신은 조선전기 사화로 희생된 걸까요 아님 임진왜란때 왜군에게 살해된 걸까요

    그리고

    퇴마사와 신구라는거 일본 전통 문화에 자주 보이는 건데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저런게 꽤 많았군요. 고려시대까지만 저런게 존재한줄 알았는데

    아무튼 흥미롭습니다. 한국 전통문화 저러한 다양한 모습이 어서빨리

    국내대중과 외국에 널리알려져야 할텐데 말이죠

  • 역사관심 2014/04/28 16:49 #

    그런 녀석이 있었군요. 저도 한번 찾아보려했는데 꽤 접점찾기가 힘들더군요...의관귀신.
    신구는 정말 여러 퇴마사들과 하께 좀 많이 알려지면 합니다. 이런게 한둘이 아니지만...
  • 닉으네 2014/04/28 13:18 # 삭제

    오오... 검은 개와 조복입은 귀신 무리라니 소설이든 만화든 영화든 쓰기 좋은 소재군요. 그리고 신구라는 게 있는줄 처음 알았습니다. 중국 서유기에 보면 천신 이랑진군의 개로써 요괴를 제압하는 효천견이 나오는데 그거랑 비슷하군요.
  • 역사관심 2014/04/28 16:50 #

    동감백배입니다.
  • 존다리안 2014/04/28 14:36 #

    신구의 머리가 세개....ㅜㅜ
    지옥의 수문장 케르베로스인가요?
    어쩐지 대 언데드 능력이 높더라....
  • 역사관심 2014/04/28 16:50 #

    ㅎㅎ 머리는 하나고 눈이 네개입니다.
  • 동글동글 바다코끼리 2014/05/01 16:40 #

    이것은 재미있다! 신구입니까, 그림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정말로 무섭다!
  • 역사관심 2014/05/01 22:59 #

    감사합니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자주 활용되면 좋겠습니다.
  • 무명병사 2014/06/10 12:33 #

    신구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개가 있었구나.
    그건 그렇고, 두 마리 개와 잡귀를 거느린 장복입은 자라. ......혹시 저승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아니었을까요?
  • 역사관심 2014/06/10 13:24 #

    오 그럴수도 있겠네요! ^^
  • 이선생 2014/12/08 21:10 #

    흠...관복을 입은 괴물에게 잡귀들이 절을 하는 것은 제가 다룬 적이 있는 수탉괴물과 비슷한 이야기로군요! - http://lsm20418.egloos.com/2986371
    그나저나 이창 이양반은 왜 자꾸 흉가를 찾아다니죠? 흉가체험의 선두주자였나?
  • 역사관심 2014/12/09 04:26 #

    재밌게 교차하네요 그 부분 ㅎㅎ.
    천예록에 따르면 이창이란 분은 슬프게도 '돈이 없어서' 이 집 저 집 흉가라 해도 살만한가 하고 뒤지고 다니셨다고 T.T
  • 봉래거북 2014/12/08 21:31 # 삭제

    <신화 속 상상동물 열전>을 보니, 저 그로테스트한 신구와 비슷한 네눈박이 호랑이 그림도 있었다고 하네요. 야나기 무네요시가 일본에 소개하자 난리가 났다고...
  • 역사관심 2014/12/09 04:27 #

    아 이 책 살까말까 고민했었는데, 살걸 그랬군요. 네눈박이 호랑이그림, 찾아봐야겠어요.
  • 평론가 2015/07/26 19:31 # 삭제

    그로테스크한 신구 자료 출처 좀 알려주실수 있나요?
  • 역사관심 2015/07/30 16:18 #

    지금은 당장 찾기가 요원하네요, 좀 된 포스팅이라. 원화일을 지워버렸습니다. 찾으면 답글로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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