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시대 배경 컨텐츠와 삼국-고려시대의 천년공백 (1편) 역사전통마

꽤 오래된 질문중 하나.
우리나라에는 왜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아직까지 단 한 편도 없을까? 

왜 이런걸까요? 뒤에서 이론적으로 차분하게 더 짚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배경이 되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지요.

천년의 공백, 현대한국사회
우선 '삼국시대'의 범위를 좁혀, 세 나라 (가야나 옥저-동예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지만)가 치열하게 공존하던 시기는 4세기에서 668년 고구려멸망까지 약 200여년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후 10세기초까지 이어지는 통일신라(남북국)시대와 10세기초~14세기말까지 관통하는 기나긴 고려시대까지, 정확히 1000년정도의 어마한 긴 시대를 우리는 말 그대로 '잊고' 살아왔습니다. 마치,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대한민국만이 기억에 남아있는 국가처럼 살았고, 그것이 그대로 해외의 시각이 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당연합니다- 국내에서 소비되지 않으면 해외의 이미지는 거울처럼 그것을 반영하니까요).

대한민국이 건국된 1948년 이후, 설화를 다루는 전설의 고향을 제외하고 그나마 드라마에서의 이 시대의 컨텐츠 활용의 시발점은 21세기가 넘어가고 중국의 동북공정 도발로 이후 방영된 히트작 '주몽' (2006-7) 입니다 (고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2000년의 태조 왕건이전에 대한민국 역사에서 고려대를 다룬 드라마는 1983년의 '개국'이 유일했습니다). 즉, 해방이후 무려 60여년간의 멀티미디어 컨텐츠 공백 (소설, 드라마, 만화, 애니, 영화등)이 있었고, 그 결과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입니다.

질문을 한번 던져보지요.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시대" 하면 머리에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개인차는 있어도 아마도 몇몇 이미지가 조각난 채로 떠오르실 겁니다- 예를 들어 신라금관, 백제의 미소(와당부조), 고구려벽화, 고려청자, 석굴암, 불국사, 화랑, 고려무신... 이 정도가 아마도 대체적인 현재 한국사회 일반대중의 1,000 여년간의 인상일 겁니다. 그에 비해 임란-호란등으로 엄청난 피해가 있었지만, 그나마 건축물들과 문화재가 살아남은 조선시대의 경우, 머릿속에 조선시대 주막의 모습도, 거리의 모습도, 양반의 의복도, 방아간도, 관아도, 궁궐도 선명하게 떠오르실 겁니다.

조선시대는 500년, 삼국~고려는 그 두배인 1,000년입니다. 물론 후자는 더 오래된 시대입니다. 당연히 건축물도 문화재도 기록도 살아남기 힘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이웃국들에 비해 광범위하고 철저한 문화재의 손실이 있는 국가입니다 (삼국시대-통일신라의 경우 그나마 최근 복원한 백제재현단지를 제외하고는, 단 한채의 건축물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imbalance의 '근본원인'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모든 이유를 대더라도 작금의 이러한 극심한 편차는 한 국가의 정체성 측면에서 심각하게 정상범위를 넘어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작금의 한국사회는 아주 긴 시대의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사회라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은 쉽지만 또한 중요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그래왔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더 밸런스를 갖춘 인식을 우리사회가 가질 수 있느냐니까요 (이를 위해서 문화컨텐츠닷컴, 한국설화DB등 많은 공적 사적 기관과 자료들이 최근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드는 것은, 정치적으로 가장 먼 나라이기는 허나 (요즘의 한심한 작태는 할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가장 지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빈번한 문화교류를 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국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현대사회로의 자연스런 접목과, 컨텐츠이용이라는 면에서 세계적으로 미국, 유럽의 몇 국가와 함께 손꼽힐 수 있는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극영화, 소설, 드라마 등에서의 활발한 재현과 이용은 물론이지만 그 범위가 너무 방대해지므로 여기서는 애니메이션과 만화에만 포커스를 둡니다.

우리의 삼국~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일본역사는 고분시대후기- 아스카- 나라- 헤이안- 가마쿠라 막부시대에 걸칩니다. 이중 사료가 부족하고 신화에 가까운 고분시대를 제외하면, 아스카 (538-710)~가마쿠라시대(1185~1333)가 되는데 이 시대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인식은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한국인들에 비해 훨씬 구체적이고 선명할 겁니다. 근본적이고 이론적인 이유는 후일 살펴보기로 하고, 이글에서는 우선 만화-애니계에서 구현된 몇몇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간접적으로 쓰인 예까지 들자면 '원피스'에 온갖 닌자물에, 사무라이가 간접동기가 된 건담의 디자인등 헤아릴 수도 없이 많지만, 이글에서는 '직접적으로 쓰인' 경우만 들어보지요.

우선 2014년 6월 국내개봉이 확정된 (오늘자 뉴스), 지브리의 거장 다카하타 이사오감독의 '가구야 공주 이야기 (2013)'입니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설화인 다케토리 모노가타리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의 시대배경은 통설로 890년대, 즉 9세기 후반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헤이안시대의 전성기이자 한국의 통일신라시대 말기입니다.

공개된 몇 컷을 잠시 보시지요. 외국인의 눈에도 '헤이안 시대'의 신비한 (우리로 말하면 조선시대인 에도시대와도 확실히 다른 분위기의) 분위기가 잘 구현된 그림들입니다.

포스팅의 모든 그림은 클릭시 확대됩니다.
한국으로 치면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경주모습 (어딘가 분위기상 비슷할 것 같습니다)

헤이안시대 여성의 복장과 머리스타일을 잘 고증.

타카하타 감독은 원래 80년대-90년대걸작인 추억은 방울방울, 헤이세이 너구리전쟁 폼포코등을 통해 '일본적'인 것을 구현하는 데에 관심이 많은 양반이었습니다. 특히 폼포코같은 작품은 일본전통 설화의 캐릭터가 대거 등장하고, 불교와 도교적 색채가 현대와 잘 버무려져 있습니다 (소개링크).

같은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유명한 작품으로는 역시 '음양사'가 있습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만화를 만든 90년대 작품입니다. 921년 태어나 1005년 사망한 아메노 세이메이라는 실존했던 퇴마사를 소설-만화에서 걸출하게 되살린 작품입니다 (세이메이는 단지 이작품뿐 아니라 여러 작품에서 이미 재현된 바 있습니다- 링크). 

같은 소설을 근간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소년 음양사'.
이 음양사를 읽어보시면 느껴지겠지만, 작가가 그 당대를 경험했을리도 없을텐데 흥미롭게도 그 신비로운 시대의 느낌이 각 컷을 통해 절절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작품입니다. 스토리구조도, 작화도, 편집의 느낌도 그러합니다. 이러한 느낌을 한명의 작가가 '가지고 있다는 것' 아니 적확하게 말하자면 '가질 수 있는 것'은 어디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시대는 더 후기인 16세기 에도시대배경이지만, 의외의 감독이 작년(2013) 또하나의 완벽하게 과거의 일본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내놓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미지와 동떨어진 사이버펑크 명작 '아키라'(1988)의 감독인 오모토 가츠히로의 '쇼트 피스'입니다. 

오모토 가츠히로의 '쇼트 피스' 중.
당시 두루마기형태의 그림책 형식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당시 거리모습을 줌인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당시의 가옥형태를 그대로 반영한 모습

기실 이런 예들은 너무나 많고 (만화에서도 슬램덩크를 그린 다케히코가 다음작을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대기를 그린 '배가본드'로 잡은 것등), 여기서 나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차이가 나며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느냐가 중요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럼 대체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날까요? 


본론- 두 사회 차이의 이유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유럽적인 화풍과 범지구적 주제에 관심이 많던 미야자키 하야오도 80년대말 토토로를 통해 처음으로 '일본에게 진 빚을 갚은 느낌으로 만들었다'라는 인터뷰 이후, 계속해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모험 (아카데미상 수상)', 그리고 은퇴작인 '바람이 분다'까지 결국 일본적인 것으로 돌아갔다는 점 말입니다.

이는 일본 (뿐 아니라 중국의) 많은 감독들에게 두드러지는 점중 하나로, 앞서 소개한 SF의 대가 '오모토 가츠히로' 역시 최신작인 옴니버스형태의 작품 '쇼트 피스'(2013)을 통해 철저히 일본적인 전통과 미학에 충실한 작품을 선사한 바 있구요. 마치 연어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듯 '일본적인 색채'를 그려내곤 합니다.

또한 '일본적'이 아니더라도, '전통'자체를 나이를 먹으면 중시하는 경향이 드러나곤 하는데, 예를 들면 독특한 화풍과 주제로 유명한 '모호시로 다이지로'의 경우, 젊은 시절에는 개그물/부조리극에 가까운 작품들을 그리다가, 점차 일본신화와 지괴류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그리고 파푸아 뉴기니 신화 (머드맨), 그리고 중국의 지괴류이야기 (특히 중국 지괴소설의 원류인 4세기 '수신기')를 재해석한 '제괴지이' 시리즈, 그리고 삼국지의 탁월한 재해석인 '서유요원전'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런 비슷한 예로 '기생수'로 유명한 작가 이와아키 히토시 역시, 요즘 고대 그리스의 모습을 잘 해석해낸 '히스토리에'를 한창 집필중입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한국에서도 매니아층이 생겨날 만큼 한국의 독자들이나 시청자 역시 이러한 전통에 근거한 작품들에 대한 갈증과 수요는 분명합니다.

제괴지이 중

이는 창작의 영역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은퇴후 일본인들이 노후에 가장 살고 싶어하는도시 1위가 현대도시가 아닌 바로 고도 교토라든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보이는 장면인데, 성공한 일본인들은 대부분 전통가옥에서 일본문화의 내음이 충실한 다도라든가 의복차림으로 지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중국의 갑부들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전통문화 이용이라든가 구현이 누가 시켜서 혹은 부추겨서  (예를 들면 정부가 내놓는 관련펀드라든가 상 (Award)으로) 이뤄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애국심'이 한쪽 사회가 더 투철하거나 타고난 국민성의 차이일까요? (안타깝게도 한국의 전통 컨텐츠 관련부분에서는 자주 이러한 방향으로 시행착오를 겪는 중입니다. 정부의 투자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말많은 한식세계화라든가, 광범위하게 보자면 애국심마켓팅에 기댄 최근 논란이 된 서경덕교수님의 추신수 비빔밥광고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No, 단언컨데 아닐 것입니다.

심리이론중 중 아주 상식적이면서도 자주 쓰이는 녀석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Mere Exposure Theory 이며 "단순노출효과"로 불리우는 1968년에 Zajnoc라는 학자가 발표한 이론입니다. 제임스 커팅이 2006년 발표한 저서중 이 이론에 대한 인용을 한 부분입니다. 
Through repeated occurrences of objects and events in our lives, we acquire information and attitudes, even our aesthetic references. It is a biologically sensible mechanism and it works for many kinds of creatures. ... Moreover, as human being grow up, they enlarge upon the familiarities of their domiciles to include the familiarities of neighborhoods, and eventually for those of their culture, both broadly and narrowly defined.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는 삶에서 반복적인 실체들이나 이벤트들을 통해서 정보나 생활'태도'를 얻게 되는데, 중요한 점으로 이에 (하나의 사회구성원의) 'Aesthetic reference' 즉 미적기준 조차 영향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태도'라는 것은 한 인격의 인생자체의 전반적인 태도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이것은 어떤 도덕적 성찰이나 의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생물학적인 합리적 매커니즘'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이 (사회구성원들이) 성장하면서 그들의 근거지의 친숙함을 그 사회의 문화적인 친숙함으로 확장시켜나간다는 겁니다.

즉, '전통'에 대한 구성원의 어릴 적부터의 두 사회의 '습관'과, 그에 따라 만들어져 있는 '시선'이 다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인성이나 타고난 천성이 아니란 것입니다. 전통이 박제화되어 있는 한쪽 사회와, 현재형으로 각계각층에서 (그것이 문화계건, 건축계건, 요식업계건, 의류업계건) 쓰이고 있는 사회에서 자란 구성원들의 '행동패턴'이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인 채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즉 몸이 기억하는 형태가 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문화계를 떠나, 거시적으로 한 사회구성원의 행동패턴 전반, 그리고 결국은 하나의 국가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예전에도 한 두번 언급했지만 예를 들어, 해외의 한식당의 분위기가 국적불명인 것은, 우리 교민의 애국심이 일식당주인의 그것에 못해서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냥 '머리에, 뇌리에 각인된 '자국문화의 이미지'자체가 부족할 뿐입니다. 하고 싶어도 뭘 어떻게 해야 한국적인 분위기가 나는 것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럼 '반복적인 실체'가 이러한 문화현상 (담론의 하나라고 합시다)보다 먼저일까요, 아니면 담론이 실체를 만들어낼까요?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실체'란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이야기가 조금 깊어집니다.

글이 길어지니, 2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지만 더 미루면 게을러질것 같아 우선 첫편을 올렸습니다. 후속글에서는 단순노출효과 이외의 철학적 이야기도 조금 (생각하는 모두는 아직 아니더라도) 더 섞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필자가 생각하는 더 나아지는 방향을 미약하고 부족하나마 조금 제시해보겠습니다 (다만, 글을 올리는 시기는 좀 늦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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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그나마 반가운 소식은, 애니메이션에서는 전무하지만 최근 들어 적어도 만화에서는 몇편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바람의 나라, 비흔, 용잡이 등이 그것입니다. 다만, 고증이 부족하여 현실감이나 당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데에는 모두 실패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 고구려 중심의 자국만세 느낌의 만화들이라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작품이 대부분입니다. 아직까지 한국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중 이러한 시대배경 (아니 조선시대까지 포함해서도)을 가진 작품이 하나의 사회현상을 일으킨 작품은 전무하다고 보야야 하겠지요.

비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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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네비아찌 2014/05/07 07:55 #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문화유산'이 남았냐 안남았냐 아닐까요? 일본은 전란은 잦았지만 전부 내전이었고 따라서 일왕이 있는 교토 인근은 전쟁의 피해를 받지 않았죠. 또 자국 문자가 빨리 만들어졌죠. 그래서 당시의 건축물, 당대의 의복과 머리모양을 기록한 그림, 당대 사람들의 생생한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으니 현대에 와서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하기가 쉽지요. 반면 한반도는 잦은 외침, 특히 반도 전체를 유린한 몽골 침입으로 건물도 그림도 다 불탔고, 자국 문자의 제정이 늦어 옛 사람들의 기록도 생생함이 떨어지는 한자기록이었고. 조선시대가 친숙하다지만 그것도 그림 자료가 남아있는 임란 이후의 생활상이지 조선 초의 의복이나 가옥은 2000년대 이후에야 창작물에서 어느정도 고증하려는 시도가 되는 판국이지요.
  • 역사관심 2014/05/08 00:45 #

    다음 글의 주제중 하나가 되는 부분을 잘 짚어 주셨습니다. 앞으로의 방향은 탁상공론, 개념화에서 나아간 가시적인 재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저 당위론이 아닌, 그 이론적인 바탕부터 마련해보려 합니다.
  • 동글동글 바다코끼리 2014/05/08 13:52 #

    교토(京都)는 천황이 사는 궁궐을 포함시키고, 몇 번이나 전소하고 있습니다. 오닌의 난이나 막부 말기의 전란. 그 때마다, 노력해서 재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2차대전의 미군에 의한 공습에서는 전국 200이상의 도시가 괴멸했습니다. 일본이 피해를 입지 않고 있다라고 하는 것은 틀림입니다.
  • 진냥 2014/05/07 09:52 #

    일본 헤이안 시대의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일본의 독특한 종교 전통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헤이안 시대에 천황제가 확립되면서, 아마테라스의 손자 니니기=진무천황=현재의 천황을 동일시하는 종교의식이 연연이 이어내려져왔고, 천황과 귀족 가문의 의복이나 풍습 등이 기록으로 많이 남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천황가의 전통 의식 때에는 헤이안 시대의 예복을 의례복으로 입곤 하지요.
  • 역사관심 2014/05/08 00:48 #

    사실 무시못할 부분이기도 하지요. 우리의 경우 종교의 변천사가 좋은 면도 있지만, 문화적 측면에서는 많은 단절을 초래한 부분도 분명 있어 보입니다.
  • 동글동글 바다코끼리 2014/05/08 13:53 #

    일본은 혁명에 의한 정권교대, 외부생력에 의한 정복이 없었던 것도 이유입니다.
  • BaronSamdi 2014/05/07 10:02 #

    머드맨은 파푸아뉴기니가 배경일겁니다. 제가 모로호시 다이지로 팬이라서요 ㅎㅎ
  • 역사관심 2014/05/08 00:44 #

    저도 팬인데, 유일하게 아직 구입못한 책이 머드맨이라;; 수정했습니다. ^^
  • 迪倫 2014/05/07 11:20 #

    삼국시대가 다시 비주얼화 된것은 일단 신라가 유신시대에 관제역사화 되면서 전개된 후 80년대 후반 민족주의가 약간 과열되면서 고구려가 다시 판타지화된 정도. 실제 백제같은 경우 풍납토성발굴같은 대형 뉴스마저 살리지 못한 느낌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는 글입니다. 다음 이어지는 글 좀더 기다려보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4/05/08 00:53 #

    정확하십니다. 이게 참 오묘한 것이 '가시적인 인식정도'와 문화에 대한 접근성 (유-무의 차이), 그리고 담론형성, 그리고 당시의 정치적 상황등이 맞물려 있는 주제인지라. 개인적으로는 그 고리를 돌리는 손잡이, 즉 '시발점'을 거의 확신하고 있습니다만... 학문적으로 조금더 정제가 필요한 지라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군요.

    항상 감사합니다.
  • ㅇㅇ 2014/05/07 14:49 # 삭제

    근데요 솔직히 앞으로도 별로 기대안되요

    컨텐츠 생산자들은 물론이고 소비자들도 여전히 기존 관습에 좀 찌든면이 있어서

    전통문화의 여러모습들에 대해 지나치게 조선편향적 그것도

    기존 사극에서 줄곧 묘사되던 용인민속촌 프레임에서 한발국도

    못벗어난것 같거든요..
  • 역사관심 2014/05/08 00:49 #

    저와 같은 답답함을 가지고 계십니다 ^^. 그래도 뭔가 해야하는 시점이고, 늦은 건 없다는 것이 제 신념인지라. Be the change that you wish to see in the world. 가장 좋아하는 문구중 하나입니다.
  • 동글동글 바다코끼리 2014/05/08 13:55 #

    일본에서도, 헤이안(平安)시대나 가마쿠라(鎌倉) 시대, 무로마치(室町) 시대 등을 무대로 한 작품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나라(奈良) 시대, 아스카(飛鳥)시대(한 반도의 3국시대)이 되면, 거의 없습니다. 역시 가장 많은 것은, 근세의 이야기합니다. 1000년이나전의 문화는, 가령 자국문화이여도 친숙해지기 어렵습니다. 역시 근세라면, 현대와 통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 공감을 낳기 쉽다.
  • 역사관심 2014/05/08 14:05 #

    그렇군요.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많은 참조가 되겠습니다.
  • 동글기자 2014/05/08 15:47 # 삭제

    이번에도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자료도 남아있는게 너무 너무 적고, 만화 등 콘텐츠 제작하시는 분들의 관심이나 전문성도 아직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은 과제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 역사관심 2014/05/10 10:04 #

    맞습니다. 2000년대 들어 고려시대부터 조금씩 시작하던 것이, 동북공정으로 불이 저급한 수준이지만 붙고, 어찌되었든 이로 인해 (그간의 갈증을 생각하면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백제재현단지등이 건립된 계기가 되었죠. 그리고 경주왕경정비사업까지, 이제 시작단계인데,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것이 자칫 천민자본주의에 휩싸인 지자체사업으로 공망하느냐, 혹은 진정한 전통국가로의 발돋움이 되는 시대로 기록될것이냐는 결국 학계에서 철학적인 탄탄한 접근을 제시해줘야 하는데, 부족한 제 눈에는 아직 많이 연구가 부족합니다. 그런 면에서 미약하나마 접근하고 있습니다.
  • 낙으네 2014/05/09 02:21 # 삭제

    제가 하고픈 말을 다 해주시네요. 님과 같은 분이 제발 앞으로 더 많아져야 할 텐데요.

    우리나라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으며, 주목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 긴 역사속에서 형성된 소재는 매우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많이 써먹은 소재도 있고요. 그런데 문제는 물타기에 합류하듯이 갑작스레 일어났다 가라앉은듯한 것이 많고, 역사적 사실이나 개념만 가져와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도 많아서 정작 그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는 거죠.

    그리고 자국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지적해 주신것에 동감합니다. 급격한 경제발전과 서구식 가치의 추구로 인한 전통의 붕괴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한국적 이미지' 라는 것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전통문화라는 것은 사극에서나 보고 국사책에서나 보고 정작 생활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그러니 마음에 와닿을리 없고, 혹은 역사적 이해의 무지에서 오는 잘못된 가치관에 의해 오히려 자국의 것에 등을 돌리는 현상이 점점 퍼지고 있으니 큰 문제입니다. 세계의 온갖 문화가 범람하는 이때에 자국문화에 대해 무지하거나 왜곡된 시선을 가지면서 자연스레 자국문화에 대한 자존감도 없어지고 결국 매일같이 벌어지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까지 들춰내면서 우리나라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나 모멸감마저 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 역사관심 2014/05/09 03:32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이 블로그의 기본취지와 맥이 닿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어떻게'인데, 지금까지 개별적이고 말씀대로 트렌드에 기대는 시도가 꽤 있었지만 그와 달리 근본적인 문제를 조금 건드려 보려 합니다. 역시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드는군요.

    그와는 별개로 여러 컨텐츠를 발굴해내는 당장 할수 있는 일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 니터 2014/06/12 18:32 # 삭제

    이번 봄에 교토에 갔다 왔어요. 일본 여관인 료칸도 제일 오래된 300년 된 곳에서 무지 비싼데 묵었구요.
    솔직히 감동이었습니다.
    문화를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그 정도 아름답게 가꿔져 있을 거고 남아있을거라 생각을 못했으니까요.
    한편으로 우리나라를 생각하면서 가슴 아팠습니다. 외국에 있는 한식당의 국적 불명을 보면 속이 상했구요.
    교툐에 갔다와서 우린 왜 그래야 할까 다 타서 없어져서 그런가 한동안 생각이 많았죠.
    일본이 싫지만 교토엔 다시 가고 싶은건 왜일까요?
    올리신 글에 제가 왜일까 답은 없을까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감사했습니다.
  • 역사관심 2014/06/13 09:57 #

    바로 잘 지적해 주셨네요 . 그 부분을 조금 깊게파고 들어가는 중입니다 ㅡ. 자주 들러 주세요 ^^ 후속글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 니터 2014/06/18 15:27 # 삭제

    질문이 있는데요. 백제 재현 단지를 보니 단청이 되어있고
    잘은 몰라도 약간의 차가 있으나 조선시대와 궁궐과 차이가 별로 없는데 정말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역사는 잘 모르지만 사라진 백제 문화를 알려면 나라를 가보라고 하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 말이 맞는 말인지 모르지만요.
    나라는 안가보았지만 교토와 비슷하다고 하고 블로그들의 사진을 봐도 그렇더군요.
    다음엔 나라를 꼭 가려고 해요.

    제가 하고 싶은 질문은 나라나 교토의 궁들은 단청이 없고 옻칠을 해서 나무는 검고 벽은 흰데
    그게 독특하고 나름 단아한 것이 아름답더군요.
    백제는 일본에 왕자들도 많이 가있었고 왕래가 잦았던 듯한데 건물 형식이 너무 다르지 않나 싶어요.
    다를 수는 있으나 왕래가 잦았으면 무언가 닮은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상상했어요.
    여행을 가볼까 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백제는 무언가 다르고 독특할 줄 알았는데
    매력을 못느껴 별로 가볼 맘이 안생기네요^^
    쓸데없는 질문 같은데 저 나름 백제를 상상했던 그림이 있는데 넘 실망이라 질문드려요.~~
  • 역사관심 2014/07/23 03:56 #

    우선 답변이 오래 걸려 죄송합니다. 여러 글을 준비하다보니, 해야지하면서 하루이틀 미루다 이제야;;
    =======
    백제 재현단지에 대해 여러 사람이 비판과 관심을 가지는데, 개인적으로는 현재 소수의 비난처럼 대강 지은 건축들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단청의 경우 여러 당대 주변국가들(특히 고구려포함)의 문양과 색감을 충분히 고증하지 않은 면이 아쉽긴 합니다만, 그외 건축물의 모양이나 양식은 나름대로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한 느낌이 들더군요.

    일단 뉴스에 자주 나온 '하앙식공법'은 당연히 칭찬할 만한 일이고, 그외에도 기본적으로 백제식 기둥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는 고려 수덕사 대웅전의 배흘림기둥양식도 능사금당등에서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에 만든 불상 역시 조선시대양식이 아닌 삼국시대 양식으로 만들었더군요. 기둥양식 역시 조선초기에 발달한 다포식이 아닌, 삼국-고려의 주형식인 주심포형식입니다 (제가 알기로 다포식은 한 부분도 없습니다). 지붕 역시 삼국시대의 여러 자료에 이미 팔작지붕까지 대부분의 한국 전통건축 지붕양식이 확립되었으므로 구현한 모습은 틀리다고 할 수 없겠지요 (다만, 처마선의 길이라든가, 각도등의 세부사항은 직접 눈으로 봐야 알겠습니다). 솔직히 부연을 썼다고 뭐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삼국시대에도 이미 부연은 고급건축에 쓰입니다 (겹처마 역시 마찬가지). 당연히 고려초에 들어온 '잡상'도 없고, 그 대신 치미가 들어갔구요. 따라서 막 지은 셋트장수준의 건축은 절대 아닙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치미가 오히려 더 튀어나왔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구식기단 또한 신라계와 다르게 그냥 단순하게 장식없이 만든것도 좋았습니다.
    http://postfiles16.naver.net/20140509_175/lnn0909_1399561409128WBgnu_JPEG/K-1.jpg?type=w1

    다만, 말씀하신대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단청과 건물의 색채감등 구조미라기 보다는 장식미적인 부분이 더 시간을 들여 고증하에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역시 외적으로 구조미 못지 않게 '확 다가오는 부분'이 단청등 색채감이므로 이 부분은 재고할 여지가 분명 많습니다. 학계의 성과에 나와 있는 단청도 제대로 쓰지 않은 감이 많으니까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구려벽화에는 저런 초록계열 단청보다는 역시 붉은색이 주로죠). 불행중 다행인 것은 구조적인 부분은 고칠수가 없으나, 이런 장식적인 부분은 후일에 다시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 역사관심 2014/07/23 03:34 #

    또 직접 가보신 분들 이야기가 사진과 다르게 직접보면 너무 일본틱해서 오히려 특이한 경험이었다고 하더군요 ^^;

    단청을 칠하지 않은 자료지만, 지붕모양등을 볼수 있으실 겁니다. 이 그림은 왕궁리 백제건물을 재현한 것입니다.
    http://postfiles12.naver.net/20140511_27/lnn0909_139973597416737jsU_JPEG/K-2.jpg?type=w1

    그리고 이건 삼국당시의 다실형 건축입니다. 서까래와 주심포 형식이 재현된 능사건축과 비슷합니다.
    http://postfiles13.naver.net/20140521_252/lnn0909_1400643825205Q5H29_JPEG/K-4.jpg?type=w1

    이건 능사건물입니다.
    http://c2down.cyworld.co.kr/download?fid=64221834166bc703886e1a34acb665ce&name=1946118857154741994110007.jpg
  • 역사관심 2014/07/23 03:58 #

    마지막으로 바닥에 깔려있는 전돌역시

    재현단지 바닥:
    http://m1.daumcdn.net/cfile207/R400x0/13661B4C4F3F472024FC01

    부여출토 백제 전돌:
    http://cfile25.uf.tistory.com/image/1572144E4DB8ECC62D7435
  • 니터 2014/06/18 17:36 # 삭제

    여기 저기 찾아보니 제 생각이 맞네요^^
    제가 교토에 갔을 때 헤이안 신궁이 1800년대에 짓긴 했어도 헤이안 시대의 궁을 재현한거고
    헤이안 시대엔 당나라 풍으로 지었다고 일본에도 궁 앞에 설명이 되어있었어요.
    나라의 복원한 헤이조궁 찾아보니 헤이안 신궁보다 화려하진 않아도 당나라 풍이었구요.
    그럼 우리나라도 중국과 왕래가 많았으니 당나라시대의 대명궁과 일본의 헤이안신궁, 헤이조궁
    과 비슷하면서 완전한 모방은 없으니 약간 한국적인 것이 들어가야 답인듯합니다.
    그런데 7000억이나 들여서 그게 뭔 짓인지 속상합니다.
    단청은 몽골식으로 한거라고 하네요.

    전 역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역사 다큐멘타리를 많이 찾아보는데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한지 몰라도 일본의 문화재 복원하는 명장이 일본으로 귀화한 한국인이었어요.
    복원은 예술성과 고증과 상상력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에서 안알아주었는데 일본에서 그 분의 가치를
    알고 엄청 러브콜해서 데리고 간거라고 하던데요. 그곳에선 엄청 존경받고 국보급으로 알더라구요.
    일본이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는 어디서 나온거고 우리나라가 이러는건 왜일까요?
    무지 속상합니다. 혈세 7000억으로 저렇게 밖에 못하다니...
    원래는 당나라풍으로 디자인까지 해놓고 한국적 운운하면서
    문화를 모르는 윗분들이 이상하게 만들어 국적 불명의 몽고풍 단청 넣어 백제를 재현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참 속상합니다.
  • 역사관심 2014/06/18 17:43 #

    좋은 댓글에 답글을 드릴 시간을 조만간 내기 힘들어 양해를 구합니다. 시간이 날때 다시 답글을 달겠습니다. ^^
  • 역사관심 2014/07/21 11:01 #

    말씀대로 입니다. 다만, 윗 댓글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시면 좋겠네요. ^^;
    한국의 '재건'문화는 이제부터이니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듯 합니다. 당장 '황룡사'복원부터 정말 여러 학구적 성과를 최대한 그야말로 최대한 응집시킬 수 있는 투명한 행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죠. 일본의 헤이안교 복원만큼이나 중국의 대명국 복원만큼이나 중요한...

    이 복원(재건) 성과에 따라 앞으로 한국의 복원/재건문화는 결정나버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 니터 2014/06/19 16:30 # 삭제

    네^^ 죄송합니다.
    편할 때 답글 달아주세요.
  • 역사관심 2014/06/20 01:20 #

    감사합니다.
  • 니터 2014/07/24 15:40 # 삭제

    바쁘신데 성의있는 답글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4/07/24 16:51 #

    아닙니다. 늦어서 죄송해요.
  • 안즈 2016/02/16 22:40 #

    뒤늦게 좋은 글 보고 가서 댓글 남기고 갑니다 저도 역사관심 님처럼 조선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진 한국사 문화 컨텐츠에 대해 아쉬움이 너무 많았거든요..
    (자료가 너무 없는게 문제이긴 하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조선사 이상으로 매력적인 부분이 많이 있는 고대사,고려사이고 그나마 나온 문화 컨텐츠들도 조잡하게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_-;;)

    아직은 부족한 면이 있지만 최근 복원된 백제 마을의 사례처럼 조금이나마 고대사에 대한 연구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현상이라고 여기고 이걸 계기로 우리나라 고대사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램입니다
  • 역사관심 2016/05/12 23:03 #

    고맙습니다. 이 글 뒷편은 사실 한 두세편정도로 길게 쓸 분량이 있는데, 확정되지 않아서 질질 끌고 있네요. ^^;

    말씀대로 (항시 이야기하듯) 한국사회는 비단 역사뿐 아니라 거기서 파생된 '문화'적 면에서 거대한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개선할 유일한 시작은 역시 '재건'밖에 없겠지요. 말씀대로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백제재현단지같은 시도나 월정교등의 재건등도 그 시발점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도가 많아질때, 사회내에서 그 시대의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도 점차 늘어나는 (웹툰, 영화등) 것이겠죠.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망국의 미학만 되네이는 이전의 모습에서 벗어나기를 요망하고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하고 자주 들러주시면 기쁨이겠습니다.
  • 쿠사누스 2017/05/10 21:17 #

    본문에서 언급하신 Zajnoc의 단순노출효과 이론을 보면서 저 이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민족은 바로 이탈리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확 떠오릅니다.
    진짜 이탈리아 사람들의 디자인 감각 특히 색채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황토색 소렌토 골드를 베이스로 해서 온갖 색채효과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게 이탈리아 사람들인 것같습니다.
    특히 각종 색채조화(유사조화,대비조화) 효과를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이 조자룡 헌창 다루듯한 솜씨를 보면 색채에 대한 천부적인 능력이 이탈리아인들의 DNA에 새겨져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이탈리아 영화 '그레이트 뷰티'를 보면 주인공의 수트 색깔의 깔맞춤부터 탄성을 나오게 합니다.
    그런데, 역사관심님께서 언급하신 단순노출효과 이론으로 보자면 역시 이탈리아인들도 고대 로마 문명과 르네상스 문명이라는 두 찬란한 시대의 유산들로부터 끊임없이 노출되어 온 덕분에 천부적인 색채, 디자인 감각을 얻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역사관심 2017/05/15 03:17 #

    오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이런 이론이 참 흥미로우면서도 어려운 것이 '실험'으로 밝혀내기가 여간 힘든 분야가 아닌지라... 뭔까 딱 떨어지는 증거를 내놓기가 힘드니, 자칫하면 나혼자 망상 혹은 뜬구름잡는 이야기가 되버리기 쉽지요.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로 흐르면 '민족성'이 나오는 이데올로기적 이야기로 변질될 가능성도 크구요. 그래서 조심스럽긴 한데 그래도 확실히 이 이론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어떤 집단구성원들의 특징(감각)을 설명할 수 없지요. 이런 이론은 실제로 생물학적/뇌과학적 관점에서도 요즘은 부분적으로 증명되고 있구요.

    말씀 감사합니다.
  • 여리여리한 북극여우 2020/05/06 21:34 #

    해외의 교민들이 운영하는 한식당의 애매함을 예시로 든 단락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정말 공감가네요...2편 글은 어디있나요?
  • 역사관심 2020/05/07 02:55 #

    2편글은 현재 6년째 진행중입니다. 언젠가 (희망적으로 조만간) 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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