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조광제) 독서

주요부분만 발췌.

=====
전통적으로 현존은 본질과 대립되는 것이었다. 코스모스 내의 존재자들은 어떻게든 현존해야 한다.

현존한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생성을 겪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존하다'라는 말의 뜻을 더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현존하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는 'existere 엑시스테레'다. 이 말을 분석하면 'ek-sistere'가 된다. 여기에서 'ek'는 '바깥'을 뜻한다. 그리고 'sistere'는 '서 있다'를 뜻한다. 그러니까 'existere'는 바깥에 서 있다 라는 의미다. 문제는 어디의 바깥일까하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바깥이다. 말하자면 현존하는 것들은 항상 자기 바깥에 존재한다. '자기 바깥'은 생성과 직결된다. 생성중인 것은 이미 늘 기존의 본성을 적든 많든 다른 본성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금 생성중인 것은 지금의 자신임을 벗어나서 다른 것이 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은 이미 늘 자기 바깥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지금은 자기 동일성 (identity)를 지닐 수 없고 오로지 차이에 의해서만 존립한다.

현존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근원적으로 자기 동일성을 지닐 수 없다는 뜻이다. ... 그렇지만 우리는 현존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든 '어떤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현존자는 본질을 가진다고 했다. 그 본질이 근본적으로 현존에 의존한 파생적이고 이차적인 것인지, 하니면 현존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일차적인 것인지가 문제다.

그러니까 현존자는 본질의 계기와 현존의 계기를 함께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현존은 본질을 훼손하는 경향이 있다. 무슨 말이냐하면 현존자가 생성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은 현존자의 본질 때문이 아니라 현존 때문이다. 어느 특정한 나무가 불에 탈 때 불타고 있는 그 나무가 현존자이고, 그렇게 불타면서 생성을 겪고 있음이 바로 현존이다. 말하자면 현존상태는 본질이 바뀌고 있는 상태인 반면, 본질은 자기 동일적인 상태를 굳건히 유지하는 데서 성립한다. 따라서 현존은 항상 본질을 훼손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는 현존은 없고 오직 본질 자체로만 있을 뿐이다.
 
중략. 그 반대로 인간 본질보다 인간 현존, 즉 이미 늘 지금 여기에서 생성을 겪는 삶이 인간의 근본이라고 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본질을 너머서 있는 현존자가 될 것이다. 이런 입장을 강력하게 밀고 나간 인물이 하이데거와 사르트르다. 그래서 그들의 철학은 '실존철학'이라기 보다 '현존철학'이다.

=====

조광제 '철학라이더'중.




2019 대표이글루_음악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4 대표이글루

마우스오른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