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태, 현실태 (조광제) 독서

주요 부분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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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 생성을 겪으면서 현존하고 있는 존재자를 우리는 현존자라고 했다. ... 그런데 현존이 본질을 훼손한다고 할때 그 뜻은 나쁜 뜻이 아니라, 지니고 있던 본질을 다른 것으로 바꾼다는 의미의 훼손이다.

현존을 통해 새로운 본질을 갖게 된다고 할 때 이전의 본질과 새로운 본질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씨앗이 발아하여 싹이 된다고 하면 본질적으로 씨앗을 싹으로 바뀔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즉 씨앗의 본질은 싹의 본질로 바뀔 수 있다. 이때 새로운 본질을 기준으로 이전의 본질을 생각할 때 이전의 본질을 지녔던 과거의 현존자를 새로운 본질을 지닌 지금의 현존자에 대해 '가능태' (Potentiality, Dynamix, 씨)라고 하고, 지금의 본질을 지니고 있는 현존자를 '현실태'(Enegeia, Actuality, 싹) 라고 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개발한 개념들이다. 무조건 지금 여기의 현존자는 그자체로 현실태다. 그런데 이 현실태로서의 현존자가 생성을 통해 새로운 본질을 받아들여 아픙로 그렇게 될 미래의 현존자에 대해서는 가능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현존자는 현실태인 동시에 가능태이다. 

중요한 것은 '가능'이란 말이 지니고 있는 묘한 뜻이다. 가능이라는 말에는 앞으로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암암리에 들어 있다. 그러니까 가능태라는 말에는 지금 여기의 현실태로서의 현존자가 항상 미래를 '꿈꾸며' 나아가고자 한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만약 모든 현존자가 그렇다고 여기면 목적론적인 우주관이 탄생하게 된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을 목적론이라 할때 바로 그런 뜻을 갖는다 (데카르트는 반대다. 우주의 모든 생성은 기계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고 해버린다).

(인간의 삶은 당연히 그러하고)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향유하는 현실적인 삶의 내용을 미래에 향유하게 될 현실적인 삶의 내용을 위해 심화확대하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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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제 '철학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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