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깨비는 뿔과 방망이가 없었을까? 역사전통마

귀면와 (통일신라, 국립경주박물관)

어떤 학문분야든 철저하게 알아보지 않고, 특히 극단으로 가는 경향은 지양해야 할 주의점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신화-설화연구라는 분야에서도 이는 엄연히 적용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는 일제시대의 잔재라면 치를 떨고 모든 것을 없애려는 즉흥적인 감성주의가 여러 분야에서 눈에 띄는데,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이해가 되지만, 적어도 학문의 분야에서는 주의해야 할 태도입니다. 오늘 이야기하는 우리의 '도깨비' 연구도 그 예외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90년대중반 이후, 한국의 도깨비에 대한 '외형'연구에서 가장 큰 주장이자, 이제는 한국사회에 어느덧 만연해가는 주장은 이 문구로 보입니다:
뿔이 달리고 가시가 박힌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는 무서운 도깨비들은 일본의 오니(鬼)의 이미지다. 우리의 도깨비는 뿔과 방망이가 없거나 나무방망이를 들고 있으며, 털이 많으며 순박하며 어리숙하고 사람과 씨름을 좋아하는 존재이다.
다음은 2010년대들어 한국의 대표프로그램 EBS에서 소개한 한국 도깨비에 대한 오해에 대한 영상물입니다.

동영상이 안되면 링크를 클릭하면 볼수 있습니다- EBS 도깨비를 찾아라 (2012. 9월 방송)

웃기고 동시에 씁슬한 사실은 같은 방송국 (EBS)에서 이 방송후에도 계속 아동용 프로그램에 '오니'를 그대로 내보내고 있다는 점인데, 이렇게 우리 사회에 오니의 뿌리는 깊다는 반증일 겁니다 (사진은 작년 2013년 방송된 EBS 아동용 프로그램, 몽몽인형극장- 도깨비 삼형제 편).
아무튼 방송을 보시면 앞에서 말씀드린 이야기를 주장하고 있지요 (물론 일본의 오니 모습이 분명한 모습의 저런 모습은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한국의 도깨비는 일괄적으로 "뿔이 없고 방망이가 없는 순박한" 한 종류의 모습일까요? 

적어도 필자가 파악하는 바로는 그렇게 일괄적으로 단정지을 일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다, EBS에서 다룬 대표적으로 일본에서 왔다는 '혹부리영감' 설화자체도 한일 양국에 예전부터 공통적으로 내려오던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전 초록불님의 글- 혹부리영감의 비밀, 그리고 후속 발견한 조선의 도깨비와 혹떼기설화). 


설화와 야담에 전하는 뿔 달린 도깨비의 기록

다음의 기담은 [청구야담]에 전하는 이야기로, 염동이라는 사람이 조선시대에 야차를 만난 경험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야차'는 불교적 색채가 들어간 개념이며 도깨비와 달리 폭력적인 존재를 뜻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아직 주요귀매들에 대한 개념정리가 충분치 않은 현대 한국사회에서 도깨비라는 광의의 범주에 두억시니건 야차건 포함이 된다는 점에서 반드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이야기 마지막에 이 귀매들이 사라지는 모습에서 '빗자루나 뼈다귀'가 인화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으로 빗자루가 도깨비화되는 흔한 케이스에 포함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또한 글중 원문을 보아야 확실하겠지만, 도깨비와 야차라는 단어를 섞어 쓰는 모습에서 적어도 이 야담에서는 둘을 구별하지 않고 있습니다 (외려 야차를 도깨비의 하위종류로 파악하는 것이 눈에 띕니다). 이야기자체도 흥미만점이니 주제와 관계없이 한번 차분하게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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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염 동이는 본래 승정원(承政院) 사령(使令)의 수행원이었다.
 
동이가 승정원 심부름으로 편지를 가지고 남산골에 갔다 오는 길에, 장악원(掌樂院) 앞길에서 어떤 사람이 절을 하고는 말했다. "형님, 평안하십니까? 팔도를 둘러보아도 제가 도움 받을 사람이 형님만한 분이 없습니다. 제 면신례(免新禮) 날이 며칠 안 남았는데 술과 고기를 아직 다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형님은 남의 말이라고 그만두지 마시고 탁배기와 개고기를 잘 차려, 아우가 동료를 잘 대접해서 허참하고 조사(曹司)의 역(役)을 면할 수 있게 해줍쇼. 그럼 제가 천 냥으로 갚으리다."
(주: 면신례는 고려우왕대부터 이어지던 신입관리가 선배들에게 성의를 베풀던 신고식입니다).

때마침 7월 보름이라 밤은 삼경이 깊었는데 궂은비가 막 개고 밝은 달빛이 구름 사이로 새었다. 동이가 취한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것은 패랭이를 쓰고 베 홑것을 걸치고 허리에 전대를 두르고 손에 채찍을 쥐었는데, 키가 8척 (약 2미터 40센티) 이요 걸음걸이는 뒤뚱거렸으며, 말은 매우 공손하고 용모는 퍽 기괴하여 사람 같으면서 사람도 아니었고, 귀신 같으면서 귀신도 아니었다

동이는 마음속으로 혼자 말했다. 
"통금이 지엄한 이 밤중에 저게 어떤 사람인데 감히 야경을 범한단 말인가? 도깨비 이매(?魅) 따위가 아닐까?"

생각이 여기 미치자 마음이 섬찟 무서웠지만, '사람은 양명(陽明)의 바탕이요, 귀신은 幽陰(유음)의 기운이다. 양(陽)이 차면 본성 진(質)을 이루고, 음(陰)이 비어 외형 형(形)을 이루는 것이니 저것이 내게 화를 끼칠 이유가 있겠는가? 자고로 지금까지 이런 것들과 잘 사귀어서 돈을 번 사람들도 많다던데…….'라 생각하고, "당신은 어떠한 사람이며, 허참은 어느 날에 하시오?" 하고 물었다. 

그는 "사람들이 저를 으레 김첨지(⾦僉知)라 부릅니다. 면신례는 내일 모레로 기약이 되어 있지요. 형님과는 전생의 인연이 있는 고로 이같이 형님을 번거롭게 하는 것이지요." 동이는 다시 물었다. "술과 고기는 얼마나 가져야 부족하다는 말을 듣지 않겠소?" "술 열 말에 개 다섯 마리면 적당하지요. 형님, 십분 생각하셔서 어김없이 해 주십쇼." 하고 재삼 분명히 당부하는 것이었다. 

동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오. 당신이 약조를 어기지 마오." 그는 기뻐하며 사례하고 가다가 다시 돌아서 말하기를 "고맙기 짝이 없으나 다만 특별히 청하고 싶은 것은 살쾡이 고기면 더욱 좋겠는데, 형님 그걸 구할 수 있겠수?"

"이왕 남을 위해 마련을 하는데 그야 무어 어려울 것이 있겠소. 단 내일 모레는 너무 촉박한데 앞으로 5일을 물려 정해서 힘껏 준비해 보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거야 가장 쉬운 일이오. 오간수(五間⽔) 수문 밖에 영도교(永渡橋) 위에서 모일 것이니, 형님은 혼자 어둔 밤에 거기서 기다리면 좋겠소." 이에 동이는 집안사람을 속여서 손님을 전송한다는 핑계를 대고 술과 고기를 거판으로 차렸다. 사람을 시켜 살쾡이 30여 마리를 구해서 양념을 치고 잘 삶아 쪘다. 그리고 동대문 밖으로 운반해 놓고 천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물새는 숲에 깃들고 풀숲에 이슬이 구름처럼 드리웠는데, 이윽고 구름 사이로 달이 나왔다가 들어가곤 했다. 만물이 고요한 삼경인데 반딧불만 숲 앞으로 넘나들어 사람으로 하여금 수심을 자아내게 했다. 동이는 일어섰다 앉았다 하다가 밤이 장차 늦어졌는데, 좌우를 둘러보아도 아무런 형체도 나타나는 것이 없었다. 심히 무료하여 속으로 탄식하기를 "내가 취중에 허망한 것들과 서로 약속을 했지. 그게 만약 도깨비라면 필야 신의가 있을 텐데 어찌 사람과 약속을 어기는 일이 있을까? 

참 이상도 하다." 잔뜩 망설이는 즈음 문득 눈을 들어 바라보니, 광희문(光熙⾨) 밖에 들불 야화(野⽕) 수십 자루가 환하였으며, 또 영도교 아래에도 들불 수십 자루가 환하게 비치었다. 양편의 들불이 서로 호응하여 꺼졌다 밝아졌다 하면서 동쪽으로 내달으며 변화무쌍하더니, 멀리서부터 점차 가까이 일제히 몰려드는 것이었다. 동이는 몸을 감추고 엎드려서 그 하는 양을 엿보았다. 기기괴괴한 형상의 무리 40여 귓것 귀(⻤)들이 둘러싸고 앉았는데, 그 중 상석에 앉은 귓것은 머리에 뿔(⾓)이 하나 돋쳤고, 붉은 털에 푸른 몸뚱이를 한 '야차(夜叉)'라 하는 물건이었다. (주: 광희문은 동대문바로 남쪽에 있던 조선시대에 시체가 드나들던 대표적인 문으로 '시체문'으로 불리던 무서운 장소였습니다).

야차가 '적각(⾚脚, 붉은 다리 도깨비)'을 부르자 김첨지가 나와 염동이를 불러다 소개했다. 살쾡이 고기를 좋아하며, 이를 포식한 귓것들은 동이에게 자신들을 동이의 집 구석진 곳에서 대접해주면 이익이 있을 것이라 했다. 동이가 승낙하자 그것들은 비밀로 하자고 하고는 닭 울음이 들리자 취해 비틀거리며 흩어졌다. 동이가 집으로 돌아와 술과 고기를 준비하자 매달 삼경쯤 귓것들이 귀한 물건들을 뜰에 쌓았는데, 10년이 지나자 동이는 광장한 부자가 되었다. 

동이는 이제 그것들을 떼어내고자 하여, 적각에게 '횡재하면 상서롭지 못하다'는 핑계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의논했다. 적각은 눈물을 흘리며, '주육을 장만해 대접하다가 모두 취한 틈에 커다란 전복에다 두더지를 잘 삶아 내놓으면, 그 자리에서 녹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동이가 그대로 했더니 귓것들은 중얼거리며 구슬피 탄식하다가 모두 죽었다. 그러자 빗자루며 뼈다귀들이 자리 위에 낭자했다.

한 가닥 맑은 바람에 등불이 까막까막할 뿐이었다. 대개 도깨비 따위가 침울하고 더러운 기운으로서 물건에 붙어 형체를 이룬 것이었다. 동이는 그것을 모아 태워버렸다. 얼마 후 적각이 찾아와 이제 작별이라며 천 냥을 주고 사라져 그 후로는 발길을 하지 않았다. 이후로 세상에서 부자를 말할 때 염동이를 일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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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시대배경은 사실 서두에 등장하는 장악원 (掌樂院)이라는 음악담당 관청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보면 '남산골앞의 장악원'이라고 나오지요. 장악원 건물은 1466년 세조대에 처음에는 서부 여경방(餘慶坊)에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습니다 (선조대에 현재 명동에 재건되었다가 일제시대에 소멸됩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적어도 15세기중반 이후의 것임을 우선, 유추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도깨비들이 영도교 (현재 동대문옆의 숭인동과 황학동사이의 청계천에 놓여있습니다)에서 모였다는 구절로, 시대를 더 좁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도교는 조선초에는 왕심평대교(旺尋坪大橋)라고 불리었고, 성종 (1457~ 1495년)대에 영도교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6세기이후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중요한 것은 시대보다도 저 '야차'라 불리던 것의 묘사부분입니다. '머리에 뿔이 '하나' 돋쳤고'라고 외뿔(독각)도깨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신라 귀면와 (독각)

다음으로 살펴볼 이야기는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오는 쌍두귀(雙頭鬼)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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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소공주동(⼩公主洞)은 남부(南部)에 있는데 그곳에 신막정(申莫定)의 집이 있다. 그 집은 늘 비어 있고 주인도 없어서 다른 사람이 임시로 빌려 살고 있었다. 

그 까닭을 물어 보았더니,  처음에는 주인이 새로 사서 살았으나, 그 집에 귀신이 있어 주야를 막론하고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말하는 것이 평상인과 같으나, 단지 그 형체만 볼 수 없을 뿐이라 했다

그 주인을 주옹(主翁)이라 부르며, 노복이 주인을 섬기는 것같이 하고, 청하는 것을 반드시 바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늘 음식을 때가 없이 요구하는데 주지 않으면 곧 성내고 괴이하게 굴었다. 밤마다 주옹 부부가 함께 침상에 누우면, 항상 귀신이 침상 아래 엎드려서 웃었다. 

주옹이 그것을 괴로워하여 다른 곳으로 피하려고 하면 귀신은 또 따라가기를 청했다. 주옹이 말하였다. "네가 내 집에 있은 지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벽에다 모습을 그려보아라."

귀신이 말하였다. "보면 놀라실 테니, 주인님으로 하여금 놀래고 두려워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옹이 말했다. "시험 삼아 그려 보거라."

얼마 지나 벽 위에 그림이 그려졌는데,  머리가 두 개에 눈이 네 개이고, 높은 뿔은 우뚝 솟고입술을 쳐지고, 코는 오그라지고, 눈동자는 모두 붉어, 그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주옹이 얼굴을 가리고 속히 지워버리라고 했다. 주옹이 은밀히 방사(⽅⼠)에게 귀신을 죽일 처방을 물으니, 방사가 말하였다. "귀신이 주리면 밥을 요구할 테니, 들쥐를 잡아 고기를 구워 그에게 주면 반드시 죽으리라." 그 말대로 하여 들쥐 고기를 얻어 시렁 판자 위에 놓고 그를 기다렸다. 귀신이 밖으로부터 와서 말했다. "오늘 멀리 놀러 갔다 왔더니, 매우 배가 고픕니다. 원컨대 주옹께서 소인에게 음식을 먹여 주십시오." 

주옹이 말하였다. "우연히 좋은 고기를 얻었기에 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그에게 주니, 귀신이 한번에 그 그릇에 있던 것을 모두 비우고는 얼마 안 되어 크게 통곡하며 말하였다. 

"주옹이 나를 속였도다. 이것은 들쥐 고기니 나는 지금 죽게 되었소." 드디어 통곡하고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로부터 집에 귀신이 없었다. 주인은 이로 인해 노량 강가에 살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다만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 그 값을 받았다. 

내 맏형이 일찍이 그 집에 붙여 살았었는데 집주인의 하녀에게 세밀히 물어 보니 헛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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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기 등장하는 쌍두귀는 귀신에 속하는 것으로 엄밀하게 말해 도깨비는 아닙니다. 이 기담은 매우 독특한데, 요괴자신이 본인의 모습을 벽에다 그립니다. 이 모습은 눈이 붉고, 머리가 두개고, 뿔이 달리고, 기괴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뿔이 달린" 귀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념을 충분히 엿볼수 있는 중요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설화뿐 아니라 '실록'에서도 뿔달린 요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다음은 중종실록 10년조 기록.

중종 22권, 10년(1515 을해 / 명 정덕(正德) 10년) 5월 16일(임인)
비밀히 정원에 전교하여 요언을 퍼뜨린 내수사 노비 억천을 추고시키다    

비밀히 정원에 전교하기를,
“전일 홍문관의 차자(箚子)에 ‘부인(婦人)의 사설(邪說)에 미혹(迷惑)되지 말라.’고 하였는데, 내가 이와 같은 일이 있는가 염려하여 궁중에 물으니 모두 모른다고 하였다. 다만 내수사(內需司)의 여비(女碑) 억천(億千)이 본래 요사함이 많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를 의심하여 문초(問招)하니, 처음에는 완강히 숨기더니 마침내 덮어 숨기지 못하고 대답하기를 ‘내가 경복궁에 있을 때 중궁(中宮)이 승하하신 뒤, 밤 2경(更)에 꾼 꿈에 강녕전(康寧殿) 뜰에 늙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창호(窓戶)를 난타하였으며, 또 꿈에 폐주가 뿔이 둘 달린 귀신을 이끌고 와서 중궁이 있는 곳을 물으며 담을 넘어 들어와서 사람을 때리는 등의 일을 보았다고 거짓말을 꾸몄습니다.’라고 하였다. 만약 홍문관의 차자가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내가 이를 매우 가상(嘉賞)히 여긴다. 억천은 추고(推考)하여 엄중히 다스리는 것이 좋겠다. 즉시 의금부로 보내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다른 일은 일수(日數)를 계산하여 형추(刑推)5669) 하는 것이나, 이와 같은 큰 사건은 마땅히 일수를 계산하지 말고 형추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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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夢見, 또 꿈에 보길
廢主率兩角鬼, 폐주가 양각귀 (쌍뿔귀신/도깨비)를 거느리고 와서
問中宮所在, 중궁이 어딘지 물었다.

1515년, 궁중내의 곡식, 노비등을 관리하는 직책인 내수사의 여비 (여자종)중 '억천'이란 여자가 요사스러운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니는데, 굵은체의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녔다고 문초끝에 자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 나오는 '폐주'란 바로 전대임금인 '연산군'입니다. 따라서 그녀가 꾼 꿈에 이 연산군이 "뿔이 둘 달린" 귀신을 이끌고 와서 사람을 해하는 장면을 연출했다는 것이죠. 이 역시 16세기초 당대 요괴 혹은 도깨비류의 생김새에 대한 당대 조선인들의 하나의 '인식'을 살필 수 있는 기록입니다. 이외에도 '다섯갈래 뿔'이 달린 요괴아이가 등장하는 등, "뿔 난" 귀신/요괴/도깨비 류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인식은 분명히 강렬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예전에 소개해드린 백두산 설화 중 하나인 '천지속 용궁설화'에도 뿔달린 경비병이 등장합니다. 또한 용왕도 뿔이 있죠.

부분발췌:
천지 밑에는 수정으로 지은 웅장한 궁궐이 있었다. 

궁궐에는 큰 대문이 나 있었고 대문 양켠에는 푸르싱싱한 용뇌나무가 서있었다. 그 나무 밑에는 용검을 든 무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보초병들의 얼굴은 사람과 비슷하였지만 머리에는 뿔이 나 있었고 허리에는 은회색날개가 달려있었다. 장우는 이러한 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다.

'자, 가자요.' 갑자기 처녀의 맑은 목소리가 정답게 들려왔다. 온몸이 연분홍색깔인 연분홍처녀가 생글생글 웃고 있지 않는가.  '저어...'  '호호... 전 빨간 잉어래요. 우리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셔요.'  처녀는 장우의 옷자락을 허물없이 잡아끌었다. 처녀는 푸른 세계에 홀로피어난 한송이 연꽃처럼 고왔다. 장우는 연분홍 처녀를 따라서 용궁 안에 들어섰다.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 이따금 둥둥 북소리도 들려왔다. 궁궐 복판에는 수염이 가득한 용왕이 용상에  앉아있었다. 코밑수염은 좌우로 갈라져 양볼로 구불구불 올라 뻗어서 뿔에 걸려있었고 턱수염은 가슴을 가리웠다가 다시 뻗어 올라서 어깨를 덮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로 올라간 것은 붉은 수염이고  왼쪽어깨로 올라간 것은 흰수염이었다. 으리으리한 궁궐, 엄엄한(=몹시 엄한) 용왕을 처음으로 마주한 장우는 겁이 나서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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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984년 경기도 포천군에서 수집한 [포천군지]에 최초로 실리고 2000년 이근영·이병찬 등이 엮고 포천 문화원에서 간행한 [포천의 설화]에도 있는 이 지역 민담에도 뿔있는 도깨비가 나옵니다 (이런 설화가 과연 일제잔재인지를 밝히는 것은 또다른 연구과제겠지만, 조선시대부터 내려왔을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어느 마을의 한 할아버지가 도깨비와 친하게 사귀었다. 밤만 되면 도깨비가 할아버지네 집으로 찾아와서 놀다가 돌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할아버지가 냇가로 나가 세수를 하다가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할아버지는 몸을 떨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니, 머리에 뿔이 나 있지 않은가? 참으로 기절초풍을 할 노릇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자기 모습이 영락없는 도깨비 그대로였다. “아뿔싸! 이런 변이 있나. 이건 틀림없이 내가 그 도깨비와 가까이 지내서 그럴 거야. 내 앞으론 그 놈의 도깨비와는 사귀지 말아야 되겠는 걸. 아암, 두고 보라고.”

할아버지는 이렇게 결심을 했다. 그러고는 도깨비를 떼어 버리는 방법을 낮에 생각해 두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도깨비가 할아버지네 집으로 놀러 왔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낮에 생각해 두었던 말을 도깨비에게 했다.

“도깨비야, 도깨비야. 넌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뭐니?”
“제일 무서운 것? 제일 무서운 거야 있지만, 아이 무서워. 생각만 해도 몸이 오싹 해져.”
“이 겁쟁이야. 내가 있잖아? 그게 뭔지 어서 말해 보란 말이야.”
“쇠피[소의 피]. 아이 무서워. 난 쇠피만 보면 겁이 나서 도망을 치게 돼. 헌데, 영감은 이 세상에서 뭐가 제일 무섭냐?”

할아버지는 지체하지 않고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응, 우리 사람들은 돈을 제일 무서워하지. 이 세상엔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게 없단 말이야. 어이 무서워.”
이리하여 할아버지는 도깨비를 떼쳐 버리는 방책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날이 밝자, 장에 가서 시뻘건 쇠피를 사 왔다. 그러고는 도깨비가 오기 전에 집안 벽은 물론, 마당과 대문과 골목에까지 시뻘건 쇠피를 뿌려 놓았다.

이윽고 밤이 되어 도깨비가 찾아왔다가, 그 쇠피를 보고 고함을 지르며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 마당에 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것은 도깨비가 앙갚음으로 할아버지가 무서워한다는 돈을 가져다 놓은 때문이었다. 결국 할아버지는 그 도깨비를 떼쳐 버렸고, 뜻밖에도 횡재까지 해서 그 후 잘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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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예전에 필자가 소개한 고려시대의 야차그림에도 분명히 뿔이 달린 모습이 나옵니다: 고려시대 양뿔도깨비와 야차들의 재발견.  이 그림에는 여러 야차가 등장하는 데 '양각'의 모습이 분명한 도깨비/야차가 등장합니다.

고려불화 중 쌍각요괴 (12세기)


금방망이
서두에 소개한 또하나의 새로운 선입견은 우리의 도깨비에게 '방망이'가 없고 이는 일본의 오니에게서 와전된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유명한 흥부전의 원전중 하나로 꼽히는 신라시대의 고대 설화인 '방이설화'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방이전에는 금방망이를 든 도깨비가 등장합니다 (방이설화이전 포스팅링크). 다만 일본설화인 '혹부리영감'에서처럼 은방망이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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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발췌:
그러자 그 아이가 금방망이 하나를 꺼내 바위를 두드렸더니 술과 술그릇이 모두 차려졌다. 또 다른 한 아이가 “음식이 필요해”라고 하자, 그 아이가 또 금방망이를 두드렸더니 떡과 국과 불고기 등이 바위 위에 차려졌다. 한참 후에 그들은 음식을 다 먹고 떠나면서 금방망이를 바위틈에 꽂아두었다. 방이는 크게 기뻐하며 그 방망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망이를 두드리는 대로 원하는 것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방이는 나라와 맞먹을 정도로 부자가 되었다.

 방이는 늘 진주와 구슬을 동생에게 넉넉히 주었는데 동생이 말했다.
“나도 어쩌면 형처럼 금방망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방이는 동생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깨우쳐 주었으나 듣지 않자 그의 말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 동생도 누에알을 부화시켜 단 하나의 누에[원문은 ‘金’이라 되어 있지만 <酉陽雜俎> <續集> 권1 <支諾?上>에 의거하여 ‘蠶’으로 고쳐 번역]를 얻었지만 보통 누에와 같았다. 곡식 씨앗을 심었더니 역시 한 줄기가 자라났는데, 그것이 장차 익을 무렵에 또 새가 물어가 버렸다. 동생은 크게 기뻐하며 그 새를 따라 산으로 들어가서 새가 들어간 곳에 이르러 한 무리의 도깨비를 만났다. 그러자 도깨비가 화를 내며 말했다.
“이놈이 우리의 금방망이를 훔쳐간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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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이설화는 '신라시대의 도깨비' 이야기로, 따라서 뒤에 소개할  신라의 일부 귀면와들과의 관계도 살펴 볼 동기를 주는 중요한 설화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꼼꼼히 살펴보면 우리의 설화나 기담에는 "뿔 달린 귀매" 도 "방망이를 든 도깨비"도 분명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방망이를 든 도깨비는 후대인 조선의 여러 설화-민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명한 '개암설화'가 있지요.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과 함께 사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나무를 해다가 식구들을 먹여 살렸는데 비록 어리지만 어른스럽고 효성이 지극했다. 어느 날 산에 나무를 하러가서 나무를 해놓고 보니 개암이 조롱조롱 달린 개암나무가 보였다. 마침 잘 됐다 싶어 가족들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개암을 따 모았다.

그런데 개암 따는 데 정신이 팔려 날이 저무는 줄도 몰랐다. 당황한 소년이 사방을 둘러보니 먼 곳에 기와집 한 채가 보였다. 나무를 지고 허겁지겁 그 집으로 가 보니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이었다. 밤이슬을 피하기 위하여 마루 밑에 들어가 웅크리고 잠을 청하려는데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어디서 도깨비들이 몰려와 방안에 모여 앉아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면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방망이를 두드리면 나오라고 하는 음식이 수북이 나왔다.

소년은 마루 밑에서 배가 고파 호주머니에 있는 개암을 한 알 꺼내어 깨물었다. “딱!” 소리를 내며 개암이 깨지자, 도깨비들이 그 소리에 놀라 음식과 방망이를 그대로 둔 채 모두 달아나 버렸다. 소년은 방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도깨비 방망이도 챙겨 내려와 음식도 실컷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

이웃집에 사는 욕심쟁이가 그 소문을 듣고는 소년의 집으로 찾아와 부자가 된 까닭을 물었다. 마음씨 착한 소년은 숨기지 않고 욕심쟁이에게 전후 사정을 모두 말해 주니, 욕심쟁이도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겨 그대로 따라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산에 올라가서 먼저 개암을 따고, 날이 어둡기를 기다렸다가 빈집으로 가 마루 밑에 숨어 도깨비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밤이 되자 도깨비들이 나타나 음식을 만들고 잔치를 하면서 웅성거렸다. 욕심쟁이는 마루 밑에서 개암을 ‘딱!’ 깨물었다. 그러나 도깨비들이 달아나지 않고, 도리어 마루 밑으로 달려들어 욕심쟁이를 끌어내어다가 방안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도깨비들은 ‘네가 그때 그 도둑놈이로구나!’하면서 욕심쟁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흠씬 두들겨 맞은 욕심쟁이는 정신이 가물거리면서도 ‘도깨비 방망이, 도깨비 방망이’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1980년 8월 10일 경상남도 진양군 금곡면 검암리 운문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8-3]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비슷한 설화는 경기도포천시 일동면-이동면등 전국 곳곳에 있으며 이는 일본 '오니설화'와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원전을 '방이설화'로 보기도 합니다만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한 방이설화의 플롯과 다른 구조도 있습니다.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의 조선시대 설화는 윤생원이 도중에 다투는 도깨비에게서 도깨비 방망이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옛날에 윤씨가 살았는데 과거에 들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있었다. 글을 잘 하는데 과거 시험을 보러 가면 항상 낙방을 했다. 있던 살림을 다 없애 버리고 부인이 품팔이를 해서 먹고 살았다. 한 번은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두 사람이 방망이를 가지고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싸우는 것을 보았다. 이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윤생원이 도깨비인 것을 알아채고 그 방망이가 자신의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두 명의 도깨비가 방망이를 주었다. 윤생원은 방망이를 받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쓰는지를 몰라 도깨비에게 물으니, 돈 나와라 하면 돈이 나오고 밥 나와라 하면 밥이 나온다고 가르쳐 주었다. 중략.
=========

또한 '쇠뭉치 방망이'형태도 기록이 전합니다.

서계집(西溪集) 권 6 소차(疏箚) >
가자(加資)와 겸대(兼帶)한 홍문관 제학을 사직하는 소 기묘년(1699, 숙종 25)

신이 이러한 은혜를 받은 또 다른 한 가지 까닭은 신이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는 절개가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신이 반평생 동안 비슷한 자취를 핑계하여 세상과 전하를 속여 특별한 은혜를 받은 것이 이전에 이미 한두 번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설령 신이 이러한 절개로 중론(衆論)의 추중을 받은 것이 진실하여 허망한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좌우 신하들의 진언(進言)이 또한 이처럼 번독해서는 안 되고 장려하는 성지(聖旨)도 이처럼 소홀히 내려서는 안 됩니다. 신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장차 ‘두드릴 때마다 떡이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라고 할 것이니, 어찌 사방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중략.

서계집은 서계 박세당(朴世堂:1629~1703)의 문집으로 이 글은 1699년의 글입니다. 글서두에 소개해드린 이전 글에서의 한국도깨비에 대한 글들이 대부분 설화중심임에 반해, 특이하게 (그리고 중요하게) 이 글은 박세당이 당시 국왕인 숙종에게 사직의 변을 고하는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그는 '두드릴 때마다 떡이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라는 비유를 마치 요즘 우리가 쓰듯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혹 국역본에서 역자가 마음대로 쓴 것인지 확인해 보지요. 다음이 원문입니다.
必將曰魍魎之椎 (반드시 장차 망량(도깨비)의 쇠방망이(쇠뭉치 추椎)라 할 것이다)
每叩得餠 (매번 두드려 떡을 얻다)
========

귀면와 (귀와 鬼瓦)
마지막으로 신라와 고구려의 귀면와 (용면와포함)들입니다. 뿔에 한정시켜 말하자면 크게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뿔이 없는 것들과 '양뿔'을 가진 것들입니다. 도깨비에 대한 개념만큼이나 '귀면와'에 대한 접근 역시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이 소재에 대한 논의는 보통 귀신/도깨비다에서 90년대말이후 치우를 묘사한 것이란 주장으로, 또 최근에는 '용의 얼굴을 그린 용면와'라는 주장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귀면와는 너무나 다양해서 그렇게 한가지 개념에 근거해서 한종류로 단정지을 문화재가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예를 들어 첫사진의 통일신라시대 와당은 결코 용면와로 분류할 수 없는 얼굴입니다- 사람얼굴에 가깝죠. 또한 세번째의 삼신사출토 신라귀면와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귀와'(鬼瓦, 즉 귀신의 기와)라는 말은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조선 후기도 아닌 중기에 권별 (權鼈, 1589~1671)이 지은 [해동잡록 (海東雜錄)] "정창손 공의 집안에 대낮에 아무도 없는데 돌이 날아드는 요귀의 장난이 일어나자, 지붕에 있던 귀와(鬼瓦)를 불태워 버리자 그런 일이 없어졌다." 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 기록입니다:
본관은 동래이며 자는 효중(孝仲)이고, 갑손의 아우다. 과거에 두 번 장원급제하였으며, 우리 세조를 도와서 좌익공신(左翼功臣)에 들었고, 또 좌리공신(佐理功臣)에도 들었으며, 세 번 수상이 되었으나, 집안살림에 관심이 없었으며, 충정(忠貞)이라 시호하였다. 정창손이 정승 노릇을 30년 하였고, 거의 90세까지 살았는데 하루는 집에 귀신의 요사(妖邪)가 갑자기 일어나서 대낮에 돌을 던지기를 그치지 않아 온 조정이 모두 아주 괴상히 여겼는데, 공이 귀와[鬼瓦 지붕마루의 양 쪽 끝에 귀신 모양으로 만들어 올리는 기와]를 불태워 죽여 물리치니 그 요사함이 그치고, 공도 건강하여 병이 없었다. [청파극담(靑坡劇談)]

원문에도 분명히 '귀와'이므로 한글해석이 아닙니다:
昌孫爲相三十年。年幾九十。一日家有鬼妖忽作。白晝投石不已。擧朝大怪之。公燒殺鬼瓦以禳之。其妖遂息。公亦康强無恙

그런데 이 기록은 사실 권근이 더 전대인 15세기 이륙(李陸, 1438~98)이 쓴 [청파극담 (靑坡劇談)]에 나오는 기담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야기의 연대는 여기서 더 올라가는 데 그 이유는 이 기담의 주인공이 정창손(鄭昌孫 1402~ 1487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조선전기부터 귀면와라는 명칭과 그 내용에 '귀매'가 포함되어 있음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귀신얼굴의 귀와를 없애자 귀신이 없어졌다는 내용으로 보아). 물론 조선시대의 귀면와는 이미 삼국의 괴기스러움이 사라진 상태가 되지만, 전대부터 내려오던 이런 종류의 기와 문양중 적어도 많은 숫자가 예전부터 통칭 귀매나 도깨비류의 얼굴임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정창손의 이야기는 단지 야담집에 실린 것만 아니라 당대의 유명한 이야기인지 성종실록에도 전합니다.정확히 1486년 겨울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종 17년 병오(1486,성화 22) > 11월10일 (신해) 
특진관 예조 판서(禮曹判書) 유지(柳輊)가 아뢰기를,
성안에 요귀(妖鬼)가 많습니다. 영의정(領議政) 정창손(鄭昌孫)의 집에는 귀신이 있어 능히 집안의 기물(器物)을 옮기고, 호조 좌랑(戶曹佐郞) 이두(李杜)의 집에도 여귀(女鬼)가 있어 매우 요사스럽습니다. 대낮에 모양을 나타내고 말을 하며 음식까지 먹는다고 하니, 청컨대 기양(祈禳)하게 하소서.” 하자, 임금이 좌우에 물었다. 홍응이 대답하기를,

“예전에 유문충(劉文忠)의 집에 쥐가 나와 절을 하고 서서 있었는데, 집 사람이 괴이하게 여겨 유문충에게 고하니, 유문충이 말하기를, ‘이는 굶주려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다. 쌀을 퍼뜨려 주라.’고 하였고, 부엉이가 집에 들어왔을 때도 역시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는데, 마침내 집에 재앙이 없었습니다. 귀신을 보아도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면 저절로 재앙이 없을 것입니다. 정창손의 집에 괴이함이 있으므로 집 사람이 옮겨 피하기를 청하였으나, 정창손이 말하기를, ‘나는 늙었으니, 비록 죽을지라도 어찌 요귀로 인하여 피하겠느냐?’고 하였는데, 집에 마침내 재앙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부엉이는 세상에서 싫어하는 것이나 항상 궁중의 나무에서 우니, 무엇이 족히 괴이하겠는가? 물괴(物怪)는 오래 되면 저절로 없어진다.” 하였다. 유지가 아뢰기를, “청컨대 화포(火砲)로써 이를 물리치소서.” 하니, 임금이 응하지 아니하였다.

요즘 일부에서 귀매를 쫓기 위한 벽사기능으로 저런 문양을 썼는데 어떻게 그 문양이 귀매일수 있겠느냐라는 논리로 귀면와의 문양이 '용'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이는 단편적인 사고로 보입니다. '귀매'를 '더 강한 귀매'로 쫓을 수도 있다는 논리도 조금만 생각하면 충분히 타당성이 있는 주장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와당 (도깨비얼굴)
신라귀면와 2점 (삼신사 출토)

백제 산경귀형무늬전돌 (역시 확실히 도깨비류의 귀매 전신)

백제 익산 왕궁리 출토 청동귀면 (역시 확실히 도깨비류)


통일신라 귀면와 (출처미상)
 통일신라 녹유귀면와 (안압지 출토) 

결언:
본 포스팅은 한국의 도깨비에 '뿔이 있었다'라고 단정짓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형태의 도깨비들이 있었음을 '열어 두고' 연구나 조사를 진행하자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신라나 고구려의 귀면와들, 혹은 앞서 소개한 고려대의 야차그림을 보면 쌍각이 많아보이므로 이도 연구해야 할 부분같습니다 (또한 소개해드린 야담처럼 독각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도깨비'라는 개념자체가 다른 유사존재와 확연하게 구분이 안되는 현 상황에서 이러한 주장은 분명 무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급히 개제할 개념이 아니란 것이지요.

"한국의 도깨비는 일본의 오니나 중국의 치우천왕과는 다르다. 즉 한국의 도깨비가 머슴이나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했다면 일본이나 중국은 뿔달린, 기괴한 물체, 괴물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김규원, 2009).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우리 야담집에 전하는 수많은 '기괴한 물체, 괴물'등에 대한 도깨비와의 개념을 달리하는 명확한 분류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조선시대 이전 삼국- 통일신라- 고려대의 수많은 유구와 기록을 통시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오랜 기간동안 우리에게도 수많은 다양한 요괴류나 귀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오니는 어찌보면 저 야차그대로의 모습에 일본색을 입혀서 하나의 훌륭한 '형식'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반감이 본 글의 아래 수많은 링크글처럼, 후속조사로 계속 나오고 있는 우리조상들이 남긴 회화에 남아있는 귀매류에 대한 무시로 연결되는 우를 범해선 곤란할 겁니다 (오니화되었다고 해서 저 야차들이 우리것이 아닌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인식에 있던 다양한 도깨비류 (요괴류)중 ‘뿔 도깨비’류와 비슷한 오니를 자주 접하면서 회화로 남아있지 않았던 우리의 인식에 오니가 치고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이 그린 민화 中- 뿔달린 18-19 세기 조선 양각요괴 (해외유출 문화재 중)- 링크

우리의 도깨비 담론이 '내용'에 그치지 않고 '매력있는 외형구축'에 힘을 실을 수 있으려면 '성격'상분류에만 천착, 이런 조상들이 남긴 조각조각들의 시각적/가시적 성과들을 무시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어불성설입니다 (막말로 거꾸로 요즘들어 나오는 나무방망이를 들고 뿔이 없는 도깨비 그림- 우리 역사상 남아 있는 그림, 단 한 점도 없습니다).

야차를 도깨비와 구분하건, 도깨비를 상위범주에 두고 상위도깨비류로 묶던, 이러한 수많은 가시적정보를 참조, 이용해서 현대를 사는 한국인들이 도깨비의 외형을 성립하는 작업은 맨땅에 헤딩하는 식의 창조보다 훨씬 의미있는 성과물이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필자의 믿는 바중 하나입니다만, 문화라는 동물은 이렇다라는 개념을 미리 정하고, 그에 하부구조를 꿰맞추는 '연역접'적인 접근으로 그 실체가 잡히는 녀석이 아닙니다. 하나하나 개별적인 실체를 구현하고 파악하면 그 어렴풋한 (그러나 어느 순간 가시적인) 전체상이 뇌리에 그려지는 귀납적인 동물입니다. 

무리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이웃국들처럼 장기적으로 꼼꼼하게 '요괴류'에 대한 분류및 체계를 구성하고 그 상위개념을 차분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현재의 '도깨비'라는 커다란 코끼리를 한번에 잡으려는 시도보다 훨씬 나아 보입니다.

고려 신장도

=====
사족: 도깨비담론에서 일제시대의 잔재가 있다면 그건 야차가 정형화된 일본의 오니가 아니라, '그들과는 달라야 하기에', 역시 소중한 우리의 문화인 야차나 뿔이 달린 귀매류들을 과감하게 어떤 치열한 연구나 고민없이 담론에서 배제시켜버리는 컴플렉스성 이데올로기화된 태도, 그래서 수많은 우리 문화적 대상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태도. 바로 그것이 다름아닌 '일제시대가 남긴' 우리의 심각한 문화적 적폐라 해도 과언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건 요괴담론뿐 아니라 건축담론, 나아가 한국미 담론에서도 흔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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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솔까역사 2014/05/29 09:42 #

    귀면와는 수염이 달린 사람 모습도 있군요.
    이 주제는 방대해서 학자들이 작심하고 파고 들어야 할 거 같습니다.
    이 글만 읽어도 기존의 주장들이 얼마나 성급했는지 바로알 수 있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4/05/29 10:56 #

    그렇습니다. 사실 2000년대 들어 활발해지는 분야로 보이는데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리거나 조선시대 몇몇 설화에 틀을 한정시켜 한국사전반의 귀매 요괴류를 규정짓는 오류가 눈에 띕니다. 차분하고 꼼꼼하며 무엇보다 ' 선입견'을 배제한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 존다리안 2014/05/29 11:20 #

    뿔달린 인간형 괴물
    서양의 사튀로스나 거기서 기반한 악마의 외모
    라든가 동양의 야차류는 대체 어디서 기반한
    디자인인지가 궁금합니다. 다들 은근히 비슷비슷하게 생겼더군요.
  • 역사관심 2014/05/29 12:14 #

    ㅎㅎ 정말 그렇군요. 그것도 문명의 교류인지...혹은 인간의 무의식인지..
  • 존다리안 2014/05/29 12:40 #

    뿔난 인간은 고대에는 왕 같은 신성한 존재 취급 받기도 한 것 같은데...(왕관 보면 알 수 있죠.)
  • 역사관심 2014/05/29 13:06 #

    뿔이 나는 병 (이름은 잊었습니다만)이 걸린 이를 괴물로 보았다는 추정을 한 글도 읽은 기억이 납니다.
  • JOSH 2014/05/29 13:47 #

    인간이 아님을 표현하거나 인간과 다른 능력을 가진 것을
    소 말 늑대 사슴 등 짐승류의 모습에서 찾고
    그중에 뿔이라는 형태로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 역사관심 2014/05/29 15:36 #

    Josh 님) 그런 정보도 본 기억이 있습니다.
  • ㅁㄴㅇ 2014/05/29 11:47 # 삭제

    뭐 도꺠비야 말 그대로 도깨비 아니겠습니까ㅎㅎ
  • 역사관심 2014/05/29 12:15 #

    도깨비같이 다양한 도깨비입니다 ㅎㅎ
  • 최근에 2014/05/29 13:07 # 삭제

    X맨인가요? 거기서 보니 한국형 히어로인지 해태 변신하는 캐릭터도 있던데
    국내설화에서도 불가사리나 해태처럼 파고들면 문화적으로 쓸만한 캐릭터도 많아보이는데 말이죠.
    (불가사리는 북한영화에서 다시 갈가메스와 포켓몬 중 한 종의 영향을 준걸 보면 말이죠)
  • 역사관심 2014/05/29 13:12 #

    맞습니다. 그래서 문화컨텐츠닷컴등 여러 매체에서 최근 힘을 쏟고 있습니다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성공적인 시발점, 케이스가 터져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선순환의 단계로 들어서기가 힘든것인데, 일단 들어서면 알아서 굴러가는 것인지라... (사실 더 큰 문제는 우리사회의 (특히 위에서 아래로의) 문화경직성입니다).
  • rumic71 2014/05/29 16:48 #

    갈가메스야 원체가 불가사리 리메이크니까요.
  • K 2014/05/29 13:13 # 삭제

    거기에 아동이 많이 보는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애니메이션의 경우
    일본걸 들어올 때 이름이나 명칭만 한국적인 걸로 바뀌어
    어렸을때부터 일본과 한국의 요괴에 대해 큰 혼란을 주었죠.

    뭐 거기에 한국의 요괴란걸 쉽게 알수있는 서적도 엄청 드문편이니까요.
    이런 건 참 일본이 부러울 뿐입니다.
  • 역사관심 2014/05/29 13:22 #

    일본은 에도말기에 이미 요괴에 대한 분류연구가 활발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야 이제 시작이지요 (괴력난신! --;). 문화컨텐츠화가 될수 있는 좋은 분야라 포기하면 안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게렉터님'의 블로그의 이야기나 이선생의 신화 블로그등의 자료가 체계적으로 삽화와 정리되서 나오면 좋겠어요 (전문 연구와는 또 별개로).

    저도 도깨비하면 '오니'부터 떠오른다는;; 어린이들에게 인식..강력하고 중요하죠.
  • 아빠늑대 2014/05/29 13:14 #

    도꺠비라는 것들이 특정 형태를 확정해 둘 수 없는것으로 아는데 최근 덩치큰 사람 정도로 이야기 하는게 흔한 것 같습니다. 넓게 보면 鬼 종류를 통칭해서 도깨비라고도 하던데 말이죠.
  • 역사관심 2014/05/29 13:21 #

    맞습니다. 사실 이런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정의부터 세부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겠지요.
  • 르혼 2014/05/29 13:24 #

    독각귀가 변해서 도깨비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니, 꼭 뿔이 없는 것이 도깨비라고 말하기도 무리가 있죠.

    제가 알기로는 옛 문헌을 참고로 해도 도깨비에게는 뿔이 '없다'가 아니라, 뿔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쪽에 가까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 역사관심 2014/05/29 13:30 #

    그렇습니다 사실, 우선 '도깨비'에 대한 통일된 개념정리가 우선 이루어져야 생산적인 토론이 나오리라 봅니다. 그러해야 소개한 저런 요괴, 귀매들은 어떤 것인지가 자리잡을 수 있을테니까요 (포함이 되든, 타종으로 분류가 되든).
  • 아끼또끼 2015/05/07 17:26 # 삭제

    독각귀의 한자는 獨脚鬼 입니다. 즉 외다리 귀신이죠..... 뿔과는 상관없습니다.
    도꺠비와 씨름을 하면 한쪽다리만 진짜이고 다른 하나는 가짜다리라 가짜다리를 노리면 이길수 있다고 하는 것에서 흔적을 찾아볼수 있습니다.
  • 진주여 2014/05/29 14:11 #

    도깨비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으니 나머지는 거의다 의미가 없어집니다.
    기존 설화같은것을 몇개 들어만봐도 좀 뻔해지는데, 종족 : 도깨비 외형 : XX 이런식으로 전해진게 아니다 보니까 당연히 전부 케이스바이 케이스라고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같은고장에서도 강가를 끼고있는 대장간에 관한 이야기와, 큰 산을 끼고 있는 고을에서 도꺠비가 전해지는것도 틀리죠(풀무질을 하는도깨비, 산골자기를 넘는사람과 시름하는 도깨비) 결국에는 연구가 별로안된거라고 생각해여
  • 역사관심 2014/05/30 01:45 #

    맞습니다 . 사실 여러 이형의 여러 존재를 아직 개념정립이 안되서 도깨비 장난, 홀리기등 편의대로 마구 붙이고 있지요. 그뿐 아니라 고전의 한문번역도 도깨비, 야차, 두억신, 이매, 망량등을 그냥 번역자도 참조할 기준부재로 편의대로 막 붙이는 것도 큰 문제예요.
  • 루나루아 2014/05/29 14:13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도깨비는 원래 뿔이 없다는 설이 정설처럼 돌아서.. 비록 일부 문화재나 유물에 뿔있는 귀신들이 보이긴했으나... 전문가들의 말이라니 런가 했는데, 쓰신 글을 보니 그렇지 만도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 역사관심 2014/05/29 15:31 #

    고맙습니다. 대중적인 인식확산에 자신들의 글이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특히 저러한 방송감수시) 유념하시면 합니다..
  • 누군가 2014/05/29 14:38 # 삭제

    정말이지 이런건 일본이 부러워요.. 예전부터 전설들이 상대적으로 깔끕하게 정리되서 전해지는걸보면..
  • 역사관심 2014/05/29 15:35 #

    중국도 그렇지요. 그 고대의 지괴류 책이 현전하니...우리는 유교로 인해 한번 꺽이고 근대화로 인해 거의 물밑으로 사라진 존재들...(한국의 전통신들도 함께). 늦었지만 우리도 하면 됩니다. ^^

    천년이상된 사회는 만만한 게 아니죠. :)
  • 바람불어 2014/05/29 15:49 #

    울나라 귀신얘기는 표준화가 되지않아서 그런게 아닐까싶네요. 봉건왕조시대엔 그냥 재미있고 무서운 이야기에 불과했던것이 근대가 되면 '민속'이라는 학문으로 체계화됩니다. 지금 휩쓸고 있는 일본만화의 많은 내용이 귀신류인데 원래부터 그런 얘기를 좋아하고 남기고한 자료가 있어서 만화화되고 퍼지고 이런거죠.

    근데 우리나라는 특히 조선시대는 괴이한 얘기를 사회적으로 즐기고 소비하던 문화가 아닌탓도 있을듯합니다(불어괴력난신) . 일본만화보면 귀신 얘기, 무슨 퇴마사 이런 거 참 좋아하더군요. 문화와 풍토의 차이도 있을듯합니다.

    아울러 저런 귀신얘기와 함께 '종교'를 대하는 태도도 조선시대엔 (뭐 알아서 다들 믿고 궁궐에 절도 짓고했지만) 일단 겉으로는 종교 자체를 사이비, 헛된것으로 취급하는 문화인데 반해 일본은 불교 신도 등 온갖 이상한 종교가 뒤덮인 나라라 대중의 관심도 차이가 나는것같네요.
  • 역사관심 2014/05/29 15:50 #

    네 맞습니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어요. 또한 말씀대로 괴력난신타파의 조선중기이후 풍토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심리는 이런류의 소재를 즐기는 지라 조선후기의 여러 야담집들에도 기담형태로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천예록같은 저서가 고려대정도의 것으로 어딘가에서 발견될 것같기도 한데... 그럼 좋겠죠 ;^^
  • 바람불어 2014/05/29 16:06 #

    네 아무리 유교적으로 현실만 중요하다! 외쳐도 사람들은 백성부터 임금까지 귀신과 종교에 맘이 가게되어있죠^^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귀신을 상상하는 재미까진 어쩔수없었겠죠.

    그리고 아울러 이른바 문화컨텐츠 개발과 관련이 있는 주제인것같은데요. 어떤 반박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 풍토에 기반한 우리식 컨텐츠를 찾는것도 중요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굳이 옆나라의 잘 된 특정 분야를 따라잡자고 하지는 말자는 그런 얘기)

    우리민족,국가는......중국처럼 수많은 왕조와 (지방) 군벌이 휩쓴 거대한 영토가 아니니 애초에 강호무림이라는 건 존재할수 없었고, 일본처럼 전국시대니 어느 지역의 공주니 영주니 하는건 일찌기 중앙집권을 끝없이 시도해온 우리 역사상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되니 그것도 무리고.

    그래서 허구헌날 궁중암투 아니면 지방관으로 파견된 고위공무원이 겪은 괴담, 국가고시 치러 서울 가던 선비가 겪은 여행담 이런게 많잖습니까. 균질한 사회, 중앙집권 국가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될수밖에 없죠. 차라리 이런 특성에 맞게 특화(?) 시키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다른 나라도 물론 있겠지만 우리풍토의 어떤 스토리나 주제를요.

    그리고 후삼국 이전의 얘기가 삼국사기,삼국유사 거의 두권이 소스의 대부분인게 안타깝습니다. 뭐 ,,,어느 유적을 팠는데 거기서 갑자기 삼국시대 정사와 개인문집 패관기록 이런게 쏟아져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
  • 역사관심 2014/05/29 16:38 #

    좋은 말씀 공감됩니다. 저와 같은 바램이시네요!
  • roness 2014/05/29 16:25 #

    그런데 이게 꼭 요괴 뿐 아니라

    한국의 전통무기나 전통 갑옷, 전통 무예 등
    이런것도 일반인 입장에선 머리에 ??? 가 뜨는게 많죠.
    일례로 아직 거북선의 정확한 모습도 모르니까요.

    뭐 우리나라의 전통신앙중 하나인 무당도
    천한것 잡스러운 걸로 보는게 또 안타까울뿐입니다.

    발전도 좋고 새로운것을 배우는것도 좋지만
    전통적이란 것을 대부분 모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참 아쉬울뿐입니다.

  • 역사관심 2014/05/29 16:40 #

    동감입니다... 그래서 자꾸 발굴하고 개발하고 소비되야겠지요.
  • rumic71 2014/05/29 16:49 #

    오니도 뿔 두개가 대표적입니다. '쇠뿔을 닮았다'고 표현하지요.
  • 역사관심 2014/06/04 01:09 #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수정해야겠습니다.
  • 에레메스 2014/06/01 07:37 #

    저도 한국 도깨비는 뿔이 없는 것으로 알고 거기에 딱히 의문을 품은 적 없었는데, 좋은 글 읽었습니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음 해서 페이스북에 링크했습니다! ^^
  • 역사관심 2014/06/01 08:23 #

    감사드려요. ^^
  • 주복 2014/06/10 11:06 # 삭제

    한국 민속설화와 요괴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학생입니다.
    위 글의 도깨비는 뿔이 있을지 모른다의 예로 나온 '귀면와'의 귀면은 인도의 '키르티무카'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불교의 영향이 있을 수 도 있는데, 용의 정면 어굴을 조각했다해서 귀면와가 아닌 용면와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구요. 귀면과 우리의 도깨비는 그닥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하마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7204&cid=85&categoryId=2644
    용면와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70000000745/3/70070000000745/20051003/8234051/1
  • 역사관심 2014/06/10 11:40 #

    이런저런 학설은 많은데 귀와라는 단어가 조선중기에 나온 이상 무시할순 없다 봅니다 - 기록에 대한 연구가 뒷받침되야 할 것 같아요). 글에서 언급했듯 귀면와를 시대를 통틀어 한종류로 파악하려는 시도는 무리로 보이네요. 좋은 정보 감사드려요 (용면와 저 글은 많이 봤습니다: 그닥 동의는 안되지만 일부 참고할 연구라 봅니다. 강우방 선생님의 연구는 걸러 들을 부분이 많다는 개인적 판단이라 그렇기도 하구요. 문종기록은 흥미롭군요).
  • kingkang 2014/07/14 17:43 # 삭제

    중국의 귀(鬼)의 영향

    중국의 귀(鬼) 혹은 독각귀(獨脚鬼)와 우리의 도깨비를 혼동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우리 민족이 도깨비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생긴 왜곡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용재총화>를 보면 도깨비불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귀화(鬼火)’라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특별히 도깨비를 지칭하는 한자가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독각귀(獨脚鬼)나 이매(?魅)나 망량(??)의 경우도 모두 중국 귀의 일종인데, 우리 도깨비와 일부 속성에서의 비슷함 때문에 그 명칭을 표기의 수단으로 차용한 것뿐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귀면와(鬼面瓦)에서 우리 도깨비의 형상을 찾는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문헌에 도깨비를 귀(鬼)로 기록하는 것에서 유추하여 귀면와의 형상이 도깨비의 형상일 것이라 이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잘못된 것이다. 귀면와의 형상은 용의 형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우리 도깨비와 중국의 귀(鬼)와 혼동하고 있는 것은 우리 도깨비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한자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벌어진 오해라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도깨비의 특징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의 도깨비), 2003, 한국콘텐츠진흥원)
  • 역사관심 2014/07/14 23:05 #

    ㅎ 이것도 하나의 설일뿐입니다. 애초에 돗가비란 말이 최초로 등장하는게 세종대거든요. 그전의 귀매류를 도깨비로 싸잡는 건 분명 자가당착이고 연구노력부족입니다. 귀면이 용이란 설 역시 강우방선생등 소수의 의견일뿐인데 당시 참신해서 유명세를 탔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다른 자료를 모두 포괄할수 있는 정의인양 네이버등에서 갖다 붙인다고 그게 정의가 되진 않습니다. 이분야는 아직 누가(특히 한둘 연구자의 연구만이) 옳다고 단정짓기엔 연구자도 치밀한 케이스별 분석 및 분류도 행해진바 없습니다. 이제 시작인 분야라 단정짓는 일은 피해야한다는게 제 포스팅의 요점이기도 합니다.
  • 작자미상 2014/08/22 04:44 # 삭제

    안녕하세요. 제가 평소에 도깨비에 대해 의문이 많았었는데, 다행히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중 본글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제가 이글루스를 하지 않아서 그러는데요, 혹여 피해가 되지 않고 또 허락을 해주신다면, 미진하지만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해당 주소를 복사해서 붙여놓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끔씩 와서 읽을 수 있도록 말이죠. 비록 스크랩은 아니지만, 그래도 허락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위글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일제의 잔재 청산은 둘째치더라도, 오니나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도깨비나 크게 보면 불교 문화권 내에서 향유하는 공통의 뭔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짜라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정신은 좋으나 그렇다고 한국의 도깨비는 다르며 인간과 가까운 존재였다는 식으로 미화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드는 바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동영상을 보면서 의문이 든 것은, 만약 전통적 도깨비가 그렇게까지 인간과 가깝과 또 인간과 친근하게 지내는 존재였다고 한다면, 왜 굳이 도깨비를 쫓아낼 방안을 마련을 하였을까라는 것입니다. 도깨비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면이 분명 있었을 것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여타 다른 귀신들과 도깨비가 혼용이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약 후자라고 한다면, 이 또한 한국의 도깨비의 모습일테니 위의 동영상에서 언급하듯이 도깨비를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튼 정말 재밌게 잘 읽었고,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4/08/22 05:57 #

    작자미상님> 출처만 남겨주신다면 블로그에 올리셔도 무방합니다 ^^
    말씀처럼 사실 들여다보면 들여다 볼 수록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깊은 우물'같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교과서나 정사에서 다루는 부분은 극히 피상적인 일부이고, 고고학적 발견이나 여러 다른 사료들을 보면 아직도 갈길이 먼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비단 '역사'나 '문화재'뿐 아니라 그 지류인 이런 야담류나 설화류의 민속학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더하면 더하겠지요). 도깨비나 우리의 여러 괴수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어느 누구도 철저하게 이 분야를 파고 들어 정리한 사람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급한 결론이 나올리 없고, 나올수가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요. 차근차근 축적된 분석을 근거로 언젠가 도깨비류, 여러 이물류에 대한 정의가 세워지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 작자미상 2014/08/26 16:46 # 삭제

    블로그에 주소를 복사해서 붙였습니다. 허락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종종 들러 좋은 글 보고 많이 배워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 역사관심 2014/08/26 17:43 #

    네 반갑습니다. 저도 가끔 들르겠습니다 ^^
  • 육식 2014/09/21 18:12 # 삭제

    정말 좋은 글이네요.
    본문이나 위 댓글들에도 계속 언급되다시피 역시나 도깨비의 외형은 한가지로 딱 정의할 수 없다라는게
    정답에 가깝겠죠. 비단 도깨비 뿐 아니라 고전 설화,민담에 나오는 존재들이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구요.
  • 역사관심 2014/09/21 23:38 #

    그렇습니다. 아직 할일이 많은 분야라 열어두고 차근차근 연구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 번역안된 책들만 해도 아직 산더미고 된 것도 파악이 안끝난 시점에서 큰 개념을 정의부터 내리고 접근해선 안되겠죠. 고맙습니다.
  • 양고기 2015/03/19 17:13 # 삭제

    전부터 궁금했었던 내용인데 새롭게 알게되었습니다! 유익한 포스팅 잘봤습니다
  • 역사관심 2015/03/19 21:14 #

    도움이 되셨다니 기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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