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의 퇴마 선비들 (임실선비, 횡성귀신구슬, 그리고 독각귀) 설화 야담 지괴류

흔히 사람들은 관념적으로 한 시대를 묶어서 (뭉뚱그려)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도 조선시대 500년을 불교와 도교는 철저히 배제한 유교 (성리학, 주자학)의 세계로만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16세기중반 성리학의 치열한 논의와 발달, 그리고 사회지배이념으로서의 공고함이 다져지기 전까지, 조선사회에도 불교나 도교의 사회적인 영향력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한 배경이 바로 11세기초의 이영간같은 도술인의 뒤를 잇는, 16세기의 도교적 인물들인 전우치라든가 남사고같은 인물들을 조선중기에도 만나게 해주게 했던 것입니다. 서경덕같은 유학자에게도 이시대의 야담에는 '도교적' 느낌이 물씬 나는 이야기들이 많이 전하니까요 (이 때문에 서경덕은 비판받습니다만...).

17세기 들어서는 이런 본격적인 퇴마사, 도술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퇴마'의 영역은 여전히 남아있어서 그 퇴마사의 역할을 바로 '선비들'이 행하는 이야기로 바뀝니다. 오늘은 몇몇 이러한 17세기의 퇴마 선비들의 이야기를 소개해 봅니다.

귀신병사를 부리는 임실의 선비

一.
효종 갑오·을미년 사이에 임실의 어떤 선비가 스스로 능히 귀신을 부릴 수 있다고 하면서, 그가 늘 부리는 것은 두 귀졸 (鬼卒)이라고 하였다. 

하루는 어떤 사람과 마주앉아 장기를 두며 약속하기를, 지는 사람은 볼기를 맞기로 했다. 상대방이 이기지 못하였는데도 약속을 어기고 볼기를 맞지 않았다. 선비가 말하였다. "만약에 순순히 벌을 받지 않으면 나중에 더욱 해로울 것이오." 그래도 그 사람이 끝내 받아들이지 않자, 그 선비는 공중을 향하여 마치 누구를 불러 분부하듯 하였다

그 사람이 즉시 제 발로 뜰에 내려가 볼기를 드러내니, 공중에서 채찍으로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여섯 차례 때리자, 그의 볼기 곳곳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그가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애걸하니, 선비가 그때서야 웃으며 그를 풀어 주었다.

二.
또 일찍이 어떤 사람과 이실 관아에 앉아 있었는데, 그 뒷동산에 대숲이 있었다. 대숲 밖에 있는 마을에서 마침 굿을 하느라고 북소리가 둥둥 울렸다. 

선비가 홀연 뛰어 내려가더니 동산이 이르러 대숲을 향해 버럭 성을 내며 큰 소리로 꾸짖는가 하면 눈을 부릅뜨고 팔을 휘두르는 것이 마치 무엇을 쫓아내는 모습 같았다. 한참 만에 돌아오자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물었다. 

선비가 대답하였다. 
"한 떼의 잡귀가 굿하는 곳으로부터 이 대숲에 모여들었소. 꾸짖어 쫓지 않으며 수풀에 깃들여 인가에 해를 끼칠 것이므로, 내가 화가 나서 쫓았을 뿐이오."

三.
또 하루는 어떤 선비와 함께 길을 가다가, 문득 길가에서 공중을 향해 꾸짖는 것이었다.
"너는 어찌 감히 이 죄 없는 사람을 붙잡아 가느냐? 네가 만약 놓아주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벌을 줄 것이다."
말투가 매우 성나 보여서, 함께 가던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으나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저녁에 어느 촌가에 묵으려고 하니, 질병이 있다고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비가 종을 시켜서 꾸짖고 억지로 들어갔다.  주인의 아내와 딸이 자주 창틈으로 그를 내다보고 무어라고 지껄이며 놀라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두워진 뒤에 주인 늙은이가 주안상을 차려 가지고 와서 사례하며 말하였다.

"저에게 딸이 있는데, 갑자기 중병이 들어 오늘 죽었습니다. (죽은 줄 알고 난 후) 한참 뒤에 다시 소생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귀신 하나가 나를 데려가더니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귀신을 꾸짖으며 놓아주라고 하자, 그 귀신이 매우 두려워하며 곧 저를 놓아주어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문틈으로 선비님의 모습을 보더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분이 귀신을 꾸짖던 사람입니다.' 

딸년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존귀하신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만, 선비님은 신선이십니까, 부처이십니까? 이는 다시 살려주신 은혜이므로 감히 하찮은 음식으로나마 사례를 올립니다."

선비가 웃으며 음식을 받고 말하였다. "당신의 말이 망령되오. 내가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소." 그 선비는 그로부터 7,8년이 지난 후에 병들어 죽었다고 한다.

평하건대, 귀신을 부린다는 이야기를 예전에는 듣지 못했다. 말세에 이르러 비로소 생겨났으니 어찌 괴이하지 않겠는가!
한공의 친척은 수만의 귀신을 거느리면서 능히 준엄하게 다스려 인간 세상에 재앙이 생기지 않도록 하였다. 임실의 선비는 다만 두 귀졸을 데리고 또한 요사스러운 재앙을 금하게 하였다. 비록 이름 없는 선비이나 은혜를 베풀지언정 해를 끼치지 않았으니, 전우치보다 어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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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배경연대는 17세기중반인 1654- 1655년(효종 재위:1649년 ~ 1659년)으로 명확합니다. 여기 나오는 무명씨 선비퇴마사는 전북 임실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무명 선비의 능력은 매력적인데 무엇보다 '두 귀신을 데리고 다니면서' 능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소환술과도 또다른 의미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귀신을 그는 '귀졸'(즉 귀신병사)라고 부르는데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을 귀신병사들에게 공중에서 매질을 해주게 하는 물리적 능력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그는 잡귀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으며, 소리로 쫓아낼 수 있는 퇴마능력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문단의 이 인물에 대한 저자의 평에서 본 인물이 전우치와 비견될 만한 도술가임을 추정하게 해줍니다. 글 처음에 소개한 전우치는 서경덕과 도술을 겨루었던 유명한 술사로 이 이야기의 배경인 17세기보다 한세기 전인 16세기의 인물입니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임방(1640~1724)의 [천예록]에 실려 있으므로, 저자인 임방이 15-16세때 일어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무명 선비의 이야기는 문화컨텐츠로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비슷한 시기이나 조금 전대인 17세기초반의 이야기로, 위의 이야기 가장 끝 부분(밑줄친 부분) '한공의 친척'의 정말로 기이한 이야기입니다. 마치 삼국유사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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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무리를 점호하는 선비 퇴마사

서평(西平) 한준겸(韓俊謙)에겐 호남에 사는 먼 친척 한 명이 있었다. 배운 것도 없고 집도 가난하여 가끔 서평을 찾아오면 서평은 불쌍하여 옷과 음식을 주고 오래도록 머물게 하였다. 하루는 그가 한공을 만나러 왔다가 갑자기 가겠다고 하였다. 공의 만류로 섣달 그믐까지 머물다가 사정을 한공에게 아뢰었다. 

즉 그에게는 귀신을 부리는 재주가 있어서 설날 아침마다 귀신을 점호하였다고 했다. 만약 그것을 하지 않으면 귀신이 속한 바가 없어서 인가에 화를 미치게 되는데, 한공의 집에 머물게 되었으니 한공의 집에서 귀신 점호를 하겠으니 놀라지 말라는 것이다. 한공은 놀랐으나 그리 하도록 하였다. 한공의 허락으로 대청에서 귀신 점호할 준비를 하고 한공은 밖에서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기괴한 형상을 한 귀신들이 무수히 들어와 그 앞에 나열하였고, 그는 귀신명부를 살피며 점호하는데 2경에서 5경에 걸쳐 관부에서 검열하듯 하였다. 점호에 빠져 나중에 왔거나, 담을 넘은 귀신이 있어 그 까닭을 물었다. 늦게 온 귀신은, 먹고 사는 일이 어려워 영남의 어느 선비 집에 마마를 옮기다가 멀어서 늦었다고 하였다. 담을 넘은 귀신은, 오랫동안 굶어 경기 지방의 어떤 사람 집에 병을 옮기다가 점호가 있음을 알고 급히 왔으나 제 때에 이르지 못할 것 같아 담을 넘는 죄를 범했다고 하였다. 그는 성난 소리로 말하였다. 

“너희 귀신들은 금령을 어기고 전염병을 퍼뜨린 죄가 이미 무겁고, 귀한 재상의 댁 담장을 넘었으니 죄가 더욱 무겁다. 늦은 자는 백 대, 담을 넘은 자는 수백 대를 쳐서 칼과 족쇄를 채어 옥에 가두거라” 하였다. 또 귀신들에게 인간 세상에 재앙 주지 말 것을 다짐하고 점호를 마쳤다. 귀신들은 한참이 걸려 하직인사를 하고 떼를 지어 갔다. 

한공은 놀라워하며 그에게 재주를 배우게 된 경위를 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어렸을 적에 산사에서 책을 읽다가 다 죽게 된 노승을 보고는 불쌍히 여겨 음식도 가져다주고 후히 대접을 했다. 하루는 노승이 거짓으로 그를 꾀어, 절 뒤에 있는 골짜기의 경치가 좋으니 함께 가보자 하였다. 노승과 함께 그 곳에 이르러 노승은 품고 있던 책 한권을 꺼내주며 말했다. 

“내게 이런 재주가 있으나 늙어 장차 죽을 것 같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지 한지 오래이다. 온 나라를 두루 다녔으나 사람을 찾지 못하다가 이제 자네를 보니 내가 찾던 그 사람이라, 이것을 전하고 한다. 이 책을 펴보면 귀신 다루는 부적과 귀신 명부가 있고 귀신을 다루는 법도 있다.” 

노승이 부적 하나를 써서 태우니 삽시간에 귀신 수만이 모였고, 노승과 그는 나란히 앉아 귀신을 일일이 점호하였다. 또 노승은 귀신들에게 앞으로는 그가 점호할 것이라며 그의 말을 따를 것을 말했다. 다음날 새벽에 보니 노승은 죽어 있었다. 

그로부터 수 십 년 동안 그는 이 재주를 행하였다. 서평은 기이해 하며 자신도 그런 재주를 배울 수 있는 지 물었다. 그 사람은 한공의 정력으로 보면 충분히 할 수 있으나 이는 시골의 궁벽한 재인들이나 하는 일이지 재상이 할 수 있는 바는 아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가서는 다시 오지 않았다. 서평이 사람을 시켜 가보니 첩첩 산중에 작은 암자를 짓고 혼자 살면서 불러도 오지 않았다. 그 뒤에는 집도 옮기고 종적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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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준겸(韓浚謙, 1557년 ~ 1627년)은 인조대의 사람입니다. 1592년부터 1600년대초까지 여러 관직을 제수하며 활약했던 문신으로, 이 사람의 친척중 귀신의 무리를 마치 신라시대의 '비형랑'처럼 다룰 수 있던 조선대의 인물이 있었다는 놀라운 이야기. 이 이야기는 역시 [천예록]에 담겨 있습니다.

매해 설날 귀신떼를 모아서 '점호'를 하는 이 장면에서 영남, 경기지역등에 각종 병을 옮기던 역귀를 '곤장을 때러서 감옥에 가두기'까지 합니다. 수천 수만의 귀신들이 모여서 점호를 하는데 그 시간이 무려 밤 9시(2경)에서 새벽 5시(5경)까지해야 끝났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귀신이 모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귀신의 명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매력적인 이야기.

이 퇴마사 선비가 어떻게 이런 능력을 얻었는지도 상세히 나오는데, 어떤 이름모를 노승이 전해준 '귀신들을 마음대로 다루는 비서'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이 노승이 하던 일이 귀신을 점호하는 일이었는데, 그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필자가 서두에 밝혔던 이야기. 즉 17세기초까지도 도교적 색채가 비록 '도술사'라는 이름의 직업은 사라져가고 있었을 지언정, 민간에서는 유교와 함께 그 영향력이 강했던 느낌이 듭니다.역시 위의 임실의 선비처럼 호남의 한 선비였다고 나옵니다 (바로 전대고 지역도 비슷하므로 첫글 말미에 비교했을 가능성이 있지요). 사실 이 두 이야기의 연대차는 이십여년밖에 안되므로 같은 인물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수 없습니다. 종적을 감췄다는 이 분이 나이가 들어 수만의 귀신중 둘만 뽑아 병사로 데리고 다녔을 지 모를 일이죠.^^


이번에는 약간 하드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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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읍의 자줏빛 검은색 도깨비구슬 두개 

횡성읍내(橫城邑內) 한 여자가 살았다. 출가한 뒤에 밤마다 한 장부가 방에 들어와서는 겁탈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온갖 방법으로 항거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장부는 밤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왔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그녀에게만 보였다. 그녀의 남편이 옆에 있어도 어렵지 않게 같이 앉아 있다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 장부와 교합을 할 때마다 몹시 고통스러워 그 아픔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장부가 도깨비인 것을 알았으나 물리칠 방법이 없었다. 그 뒤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서 사람을 보아도 피하지 않았다. 

다만 그 장부는 여자의 오촌 당숙을 보기만 하면 도망가 피했다. 이 일을 들은 오촌 당숙은 말했다. 
“내일 만약 그 도깨비가 오거든 몰래 무명실을 꿴 바늘로 그것의 옷 뒷자락에 꿰매 놓아라. 그러면 그 도깨비가 간 곳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튿날 그 계책대로 바늘에 실을 꿰어 그 도깨비의 옷깃 아래에 꽂아두었다. 그 때, 당숙이 방에 뛰어 들어가자 그 도깨비는 놀라 일어나서는 문 밖으로 피했다. 무명 실꾸리가 차차 풀려나가자 그 실을 따라갔다. 당숙은 무명실만 보면서 쫓아갔는데, 따라 가보니 집 앞 수풀이 우거진 나무 아래에 이르러 풀려 나가던 실이 멈추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실은 땅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실이 들어간 곳을 몇 치 가량 파 보니 썩은 절구공이가 하나 있었다. 실은 그 절구공이 아래에 꿰어져 있었고, 절구공이 위에는 자줏빛 나는 구슬이 하나 있었는데, 큰 탄환만한 것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당숙은 구 구슬을 뽑아 주머니에 넣고 절구공이는 태워 버렸다. 그 뒤로는 결국 도깨비의 발걸음이 끊어졌다. 

어느 날 밤, 당숙 집 대문 밖에 홀연 어떤 사람같은 것이 하나 찾아와서 애걸했다. “그 구슬을 돌려달라. 돌려준다면 부귀와 공명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있으리라.” 당숙이 허락하지 않자 그 사람은 밤새도록 애걸을 하다가 가버렸다. 네댓새 동안 매일 밤 이렇게 했다. 

어느 날 밤 그것이 또 찾아와서 말했다. “그 구슬은 내게는 매우 긴요한 것이나 당신에게는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다른 구슬로 바꾸어 주겠다. 이 구슬은 당신에게 유익한 것이다.” 

당숙은 말했다. “보여주기나 하게.” 그러자 그 도깨비는 밖에서 검은 빛이 나는 구슬을 들여 보냈다. 크기와 모양이 자줏빛 나는 구슬과 같은 것이었다. 당숙이 그 구슬마저 빼앗고 돌려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 도깨비는 통곡을 하더니 곧 형체도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다. 

당숙은 매번 그 구슬을 남들에게 자랑했지만 어디에 쓰는 것인지를 묻지 않은 것을 참으로 애석하게 여겼다. 그 뒤 당숙이 출타했다가 술에 흠뻑 취하여 돌아오는 길에 노숙을 하였다. 잠에서 깨어 보니 구슬 두 개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틀림없이 그 도깨비가 가지고 간 듯하였다. 

횡성읍 사람들은 그 구슬을 본 사람이 많았다. 그들이 내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서 여기에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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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며칠전 필자가 주장했던 현대한국이 일괄적으로 묶어버리려고 시도하는 '순박한 도깨비'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난 도깨비/귀매류의 또다른 좋은 예가 됩니다. 여기 등장하는 도깨비는 말 그대로 여자를 끊임없이 성폭행하는 그야말로 '악귀'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비라고는 나오지 않으나, 이 피해여성의 '오촌 당숙'으로 이 인물은 도깨비/귀매를 어떻게 퇴치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본 이야기가 담겨있는 [기문총화]는 작자미상의 야담집으로 정확한 편찬년도는 모르며 18-9세기경 여러 본으로 편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이야기는 오직 그 내용에서 연대를 추정해 보아야 합니다.

이야기의 유일한 단서인 횡성읍이라는 단어에서 17세기로 이 이야기를 추정해 보면 대강이나마 시대를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현재 강원도 횡성군에 소속되어 있는 횡성읍은 1413년부터 계속 '횡성'이라는 지명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실록에서도 '횡성'이라는 지명은 계속 나오는 반면, 현재의 '횡성읍'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구역명은 보통 갈풍(역)(葛豊(驛))으로 나오다가, 17세기 '인조'때에 (1623년 ~ 1649년 재위) 비로소 '횡성읍 橫城邑'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인조대에 횡성읍이라는 구역으로 정확히 바뀌었는지는 자료를 더 찾아보아야 확실한 일이겠습니다만, 100여년 전대인 중종(1495∼1506 재위)까지도 갈풍葛豊 이라는 지명만 등장하다가, 본 야담과 똑같은 '橫城邑內'라는 표현까지 갑자기 나오는 시대가 바로 인조대입니다. 또한 17세기이후로는 갈풍이라는 지명은 더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 이야기의 연대를 17세기로 추정해 보았으며, 앞서 소개해드린 17세기의 무명씨 선비씨와 같은 시대로 엮을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이야기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아주 유명한 '독각귀'이야기입니다. 독각귀이야기를 여기서 소개하는 것은 물론 시대가 17세기이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의 본질이 퇴마적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독각귀 그림

독각귀 獨脚鬼

재상 이유(李濡)는 인후(仁厚)한 인품을 가졌다. 옥당(玉堂) 시절에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종묘 옆 순라곡(巡邏谷)을 지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도롱이 입고 삿갓을 쓴 외다리 귀매가 껑충껑충 뛰면서 달려오더니 관리에게, “가마가 지나가는 것을 못 보았느냐?” 하고 물었다. 관리가 못 보았다고 하니 독각귀(獨脚鬼)는 바쁜 듯이 달려갔다.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삿갓과 도롱이 차림이 특이할 것은 없었으나, 그 사람의 눈은 이글이글 타는 횃불과 같았고, 다리는 하나뿐인데도 바람처럼 내달렸다.

이 공이 생각하니 조금 전 제생동(濟生洞) 입구에서 한 가마를 보았기 때문에, 급히 말을 돌려 그 귀매를 쫓아 제생동으로 행했다. 

독각귀가 들어가는 집에 가니, 이 집은 이 공의 이성 삼종(異姓三從)에게 친척 뻘 되는 집으로, 이 공의 이성 삼종 자부가 병이 들어 여러 달 앓다가 거의 죽게 되어, 오늘 환자가 가마를 타고 이 친척집으로 피접(避接)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병을 일으킨 이 독각 귀신을 피해 온 것인데, 찾아서 따라온 것이었다. 

이 공이 사정을 얘기하고 환자가 있는 방에 들어가니, 그 귀매가 환자 베개 옆에 앉아 있다가 이 공이 노려보니 문밖으로 나가 뜰에 서 있었다. 

다시 이 공이 나와 역시 노려보니 귀매는 지붕으로 올라갔고, 또한 이 공이 쳐다보니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러고 나니 환자는 병이 깨끗이 나아 이 공이 돌아왔다. 

이 공이 가고 나니 환자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공이 또 와서 많은 종이쪽지를 만들어 이 공이 자기 서명을 해 사방에 빈틈없이 붙여 놓으니, 부인의 병은 완전히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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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유(李濡)는 17세기 사람입니다. 이분은 1645년에 태어나 1721년에 사망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외다리 귀신인 독각귀는 역신(疫神)의 풍모를 풍깁니다. 이유가 집요한 역귀를 따라가서 자신의 친척을 구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이 기담에서의 이유는 아직 홍문관(옥당)의 하급관리 시절이었지만, 훗날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이유가 보여준 능력은 비단 '노려보기'만이 아니라, 독각귀가 다시 찾아온 이후, '종이쪽지' 즉 퇴마관련 부적을 이 집 곳곳에 붙여서 퇴마를 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선 두 기담은 퇴마 선비의 능력이 문화컨텐츠로서 매력있다면, 역시 이 [청구야담, 1826-35]의 유명한 기담은 '독각귀'라는 귀매가 흥미진진한 소재가 될수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17세기까지도 퇴마적인 이야기는 여기저기 전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아직까지 도술가들의 영역이 남아있던 시대, 즉 15-6세기의 도술가들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중 한분인 '황철'은 이미 소개한 바 있습니다- 조선중기 최고 퇴마사 황철).

고려시대 금강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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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존다리안 2014/06/03 11:41 #

    오노 후유미의 고스트 헌트같은 이야기도 가능하겠군요.
  • 역사관심 2014/06/03 11:46 #

    그 이야기를 한번 찾아 봐야겠네요 .:)
  • Nocchii 2014/06/03 11:57 #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선비의 복장은 뭔가 비실용적 인 게 퇴마사랑 은근히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ㅋㅋ
  • 역사관심 2014/06/03 16:01 #

    감사합니다. 듣고 보니 정말 퇴마와 어울리는게 선비복장 같네요~
  • 페리 2014/06/03 13:07 #

    재밌는 옛날얘기 읽듯 술술 읽었네요 ㅎㅎ
    이런 이야기들도 꽤 있군요 ㅎㅎ 우리나라 옛날 얘기들중엔 이런 이야기 없나...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말이죠 ㅎ
  • 역사관심 2014/06/03 16:02 #

    가끔 소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번역하면서 발견되고 있는 컨텐츠라 앞으로 기대됩니다 .
  • 암흑요정 2014/06/03 13:21 #

    지나가는 선비는 퇴마사의 소질도 있더라!?
  • 역사관심 2014/06/03 16:02 #

    바람처럼.... 멋지죠.
  • 2014/06/03 14:53 #

    잘 읽었습니다
  • 역사관심 2014/06/03 16:05 #

    감사합니다~
  • nenga 2014/06/03 14:54 #

    오래된 물건은 영물로 변한다는 이야기는 여러 문화권에서 자주 보이는 듯하군요
  • 역사관심 2014/06/03 16:04 #

    맞습니다. 지금도 누가 내놓은 가구는 함부로 집에 들이지마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옛날에는 ^^;
  • 솔까역사 2014/06/03 18:20 #

    역시 토속적인 냄새가 풀풀 나는 귀신들입니다 ^^
    횡성읍 이야기는 앞 부분이 견훤설화와 좀 비슷하네요.
    왕건설화에도 김유신의 누이 이야기와 비슷한 부분이 나오고...
    그리고 이제 보니 설화가 굉장히 많네요.
    이런 설화들을 계통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하는 연구도 필요할 거 같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이야기도 있을 것이고 서로 섞이거나 변형된 것도 있을 것이고...
    연구소가 하나 있어야 겠네요.
  • 역사관심 2014/06/04 00:48 #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군요. 명주실을 따라간다는 것도 그렇고.
    지금은 한국학 학자들이 각계격파식으로 논문들을 내고 있는 실정같은데, 말씀대로 하나의 연구분야로 자리잡을 필요가 분명 있어보입니다. 이런 웹툰들이 젊은 세대들에게서 나오고 소비되기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 (그것이 일본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았건 어쨌건) 우리 사회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에 대한 '갈증'이 존재해왔다는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학계가 아니라, 웹툰 등에서 자발적으로 한국 설화, 야담, 신화를 적극 재발굴하고 대중화하는 데 힘쓰고 있고 '신과 함께'등 성과를 내고 있는데, 학계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준다면 금상첨화일듯 합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향토지리연구소, 고려대학 민족문화연구소, 연세대 국학연구소,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북방문화연구소, 또 각 대학의 한국학 혹은 아시아문화연구소등등 여러가지를 치고 있는데,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 '설화-야담-기담-신화' 전문 연구를 하기에는 너무 가지가 많고 (또한 그 성격상 한계가 보이고), 전문적이지 못한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산하조직인 '한국학지식정보센터'밑의 '문화콘텐츠 편찬실'과, 중점연구센터 산하의 '전통한국학연구센터'의 관심전문가들을 추려서, 하나의 팀 (한국신화설화전설 연구센터 같은 이름)으로 꾸려서, 기존의 한국고전번역원과 콜라보형태의 전문적 기관하나를 만들면 좋겠군요. 그럼 두 연구원의 이름으로 시대별 야담집이나, 주제별 야담집, 그리고 한국의 신의 계보라든가, 도깨비종류의 정리도 될 듯 합니다.

    지금처럼 side로 되는 대로 흥미있는 연구자들이 번역하고 논문을 내는 형태는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각 연구자별 주장에 따른 이전 포스팅의 "한국도깨비 뿔" 논란같은 검증없는 속설을 사회에 퍼뜨릴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확고한 Credibility를 갖춘 센터가 필요해 보입니다.
  • 2014/06/03 18:5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6/04 00: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스탠 마쉬 2014/06/03 20:25 #

    이런게 있는지는 몰랐군요
  • 역사관심 2014/06/06 02:58 #

    예전부터 알려진 것도, 최근 다시 재조명되거나 번역, 발굴되는 자료도 많습니다. 많이들 알려지면 좋겠어요.
  • ㅁㄴㅇ 2014/06/03 20:35 # 삭제

    인조대 즈음이면 괴담 다루기 좋게 시대도 을씨년스럽고 의복도 그럭저럭 현대인이 상상하는 조선의 그것이니 적절히 얽어서 내놓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확실히 근대 들어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게 아쉽군요,
  • 역사관심 2014/06/04 00:39 #

    생각해보면 17세기는 조선시대중에서도 특이한 정치상황과, 그에 걸맞는 야담들이 넘치는 문화적으로는 꽤 풍부한 시대로 보입니다. 말씀대로 당시 분위기를 잘 살려서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 이경호 2014/06/03 21:41 #

    아웅 내가 원하는 자료중 하나입니다. ㅋㅋ 나는 이런 역사같은 것을 알고 싶었다구요...크하하하...감솨합니다.
  • 역사관심 2014/06/04 00:40 #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낙으네 2014/06/07 05:26 # 삭제

    선비 퇴마사라니 흥미롭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에서 구체적 이미지를 제시한 것은 영화 <전우치>에서의 화담이 선두일 듯 합니다. 비록 영화에서는 타락하지만요.
  • 역사관심 2014/06/07 07:11 #

    말씀대로 같습니다. 서경덕선생은 전우치를 능가한다고 했으니..^^;
  • 테츠코 2014/10/05 18:09 # 삭제

    여인을 겁탈한 도깨비의 정체가 다름아닌 "절굿공이"였다니 뜨어하네요. 절구를 찍는 행위가 성교의 은유로 작용하곤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지금까지도 "떡을 친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니까요) 아예 이런 설화까지 있었을 줄이야... 절굿공이에 절구를 함께 묻어두었더라면 혹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지 생각해봅니다.
  • 역사관심 2014/10/06 22:52 #

    아, 그 부분은 글을 옮기고도 생각조차 못했군요 -_-; 절굿공이라;;; 과연 그러네요. 구슬에만 신경이 쏠려서 생각못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 지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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