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언) 산사귀승도에 나오는 교각형태, 그리고 월정교 누다리 역사전통마

김홍도가 1700년대말 그린 그림중 실사경인지 상상화인지 모를 귀중한 그림 한점이 있습니다. 그림의 제목은 '산사귀승도'로, 고승이 자신의 사찰로 돌아가는 장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주제는 고승이 아니라 마치 골짜기를 연결하는 나무다리로 보일 정도로 교각이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뜻 보기에도 특이한 형태죠. 그 이유는 바로 '누각'을 다리위에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리를 '누다리' 즉 '누교'라 합니다.

산사귀승도 김홍도 (18세기말)
이런 형식의 누교 (누다리)는 현재 한국에 거의 남아나지 않았는데, 순천 송광사부근에 이 누교의 미학을 아주 잘살린 다리들이 있습니다. 바로 송광사의 카메라포인트인 삼청교와 사역내에 있는 청량각누교입니다.

송광사 누다리 삼청교- 이 삼청교를 볼때면 떠오르는 다리가 '월정교'입니다. 이유는 아래서 말씀드리지요 (사진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청량각 누다리 (송광사 가는 길에 있는 누교)

이 누교들은 길이가 짧음에도 정말 운치가 있어 송광사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큰 미학을 주는 아름다운 다리들입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해 이 두 교각은 [산사귀승도]의 형태와는 좀 다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아랫부분이 돌로 되어 있고, 홍교(무지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산사귀승도에 나오는 다리는 누각뿐 아니라, 다리자체도 목재죠. 그런데, 이런 비슷한 유일한 다리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바로 곡성의 능파각 대교입니다.

곡성 능파각대교
능파각 대교
이름은 대교인데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전남 곡성 태인사를 가는 길목에 있는 누교로, 전체가 목조입니다. 다만, 김홍도의 누다리와는 기둥-난간의 모습이 많이 다릅니다. 난간부분이 낮아서 다리위가 '내부'라는 느낌이 약하죠.

개인적으로 가본 누교중 오히려 가서 이 그림에서 느낀 운치를 가장 비슷하게 느낀 다리는 오래된 다리도 아니건만, 일본의 쿠로가와 온천마을에 있는 누교들입니다. 목재로 만든것도 쇠를 섞은 것도 있었는데, 일단 삼청교처럼 석재교가 아니고 또한 저 '산사귀승도'처럼 계곡을 이어주는 느낌이 강했다고 할까요- 또한 난간도 높습니다. 아무튼 관광지에 이런 누교들이 있으니 정말 여행객입장으로 이국적이더군요.
이 다리에선 프로포즈하던 커플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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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교 누교와 홍예교 가능성

사실 이 글의 주제는 김홍도의 '산사귀승도'에 나오는 것 같은 다리가 좀 더 많아지면 (예를 들어 우리의 계곡사찰들에) 좋겠다. 필자가 산중의 혹은 온천지에서 저런 다리를 경험해보니, 정말로 동양적인 느낌이 나서 좋았다 라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또한, 산사귀승도가 실경이라면 재건도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글의 주제는 아니지만 서두에서 이야기를 꺼냈기에 월정교 이야기를 아주 조금만 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런 생각이 들곤 하는데, 고려시대 '김극기'가 쓴 월정교가 '홍교'라는 의미가 혹 송광사 누교들 (삼청교와 청량각)의 이런 형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월정교를 정확하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삼국사기에 798년 (8세기말)에 궁남의 교량이 화재를 입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는 다리위에 회랑식 형태의 건물이 있었던 다리가 아니었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월정교의 기록이라면 누각으로 볼수 있는 것이, 목조다리가 아니면 화재가 날리가 없는데 현재유구를 보면 월정교의 교각부분은 돌다리임이 드러나므로, 결국 윗부분에 목조 누각이 있었음을 추정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추정과 배치되는 기록이 항상 고려시대 김극기의 싯구입니다. 홍교도영조문천(虹橋倒影照蚊川) 의 홍교라는 표현으로 '무지개다리'라는 이야기가 되죠. 그런데 무지개다리는 그냥 돌다리지 보통 누교형태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 기록으로 월정교에 누각이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지개 다리,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를 바로 아래 모습만 생각하죠.

창녕군 영산면 만년교 (전형적인 홍교, 조선후기)
그런데 아직은 어떤 학술적 근거도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필자는 삼청교를 볼 때마다 항상 월정교가 떠오릅니다. 그 이유는 누교임에도 아랫부분이 무지개다리 즉 홍교의 아치를 간직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건축학 논문을 봐도 누교는 다리 윗부분에 건물이 있으므로 일반 교량보다 지지력이 더욱 커야 했기 때문에 목교보다는 자연히 석교로, 널다리 보다는 홍교로 한 경우가 많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혹시 김극기가 보았던 무지개라는 아치는 이런 형태가 계속 반복된 긴 다리형태가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필자가 얼마전 발견한 이 문장과도 배치되지 않습니다만.
송광사 삼청교
즉,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사진은 북한의 영변성 (철옹성)에 있는 철옹성의 북문 역할을 했던 북수구문 (혹은 북문루, 수구문루, 음박루)입니다. 이 감님께서 알려주셨는데 바로 이 모습이 제가 생각하던 월정교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특히 월정교는 남산불국에서 경주월성으로 들어가는 상징적인 '문'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높기에, 특히 이 영변성의 교각뿐 아니라 '북문'역할을 했던 이 누교는 월정교복원에 한번 꼭 검토해볼만한 것 같습니다. 

기단부의 홍예뿐아니라, 난간부도 높아서 교각내가 '내부'라는 느낌이 산사귀승도처럼 강합니다.

평안북도 영변성 북수구문, 수구문루(水口門樓), 음박루(飮博樓)
- 한국전쟁으로 현재는 파괴되어 없습니다. 정말 한국의 네번의 대전은 수없이 많은 문화재를 앗아갔습니다.
물론 현 재건모습도 이제껏 남아있던 유구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만든 모습이라 생각합니다만,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 같습니다. 또한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듯, 김극기가 본 신라대에서 내려오던 월정교와 1280년에 중수한 월정교의 형태가 달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복원중인 월정교
현재 복원중인 월정교와 가장 비슷한 교각은 역시 아래 누각이죠.

중국 호남성 보수교 (클릭하면 자세히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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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월정교를 떠나, 산사귀승도의 저러한 형태의 누교가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네요. 






덧글

  • 솔까역사 2014/06/08 11:26 #

    누교는 다리+정자군요.
    송광사 누교의 운치가 아주 좋네요.
    월정교도 사람들에게 역사의 향기를 전해주는 다리가 되길 바랍니다.
  • 역사관심 2014/06/09 00:22 #

    사오십년만 지나도 운치가 있을듯 합니다.
  • 2014/06/08 12:04 # 삭제

    개인적으로 이 나라의 복원능력을 믿지못하기에 전혀 기대는 안돼네요. 특히 고려시대 객사문 복원은 정말이지...
  • 역사관심 2014/06/09 00:23 #

    객사문 담장 ㅠㅜ.. 문화재청산하에 지자체복원을 관리하는 제대로된 복원중건센터가 하나 제대로 지원받고 설립되야 한다고 봐요.
  • 2014/06/08 12:06 # 삭제

    아오 그 담장만 생각하면 열불이...
  • 이 감 2014/06/08 22:54 # 삭제

    조선시대 홍예누교로 유명한 것으로 영변읍성(철옹성)의 문과 수구역할을 하는 성곽시설이면서 성곽로를 연결하는 교각시설이기도 한 북수문 혹은 북수구문이 있죠. 수원화성의 화홍문도 누각이 홍예 시설 전체에 걸쳐있지는 않지만 홍예누교로 볼 수도 있고요.
  • 역사관심 2014/06/09 07:10 #

    화홍문을 넣을까하다 뺐습니다. 특히 누각형태가 겹치는 감이 있어서 ^^; 철옹성에 누교가 이었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 찾아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홍예누교가 많은데 김극기시의 표현에도 저런식으로 복원하는건 다이유가 있으리라 믿고 싶네요. 설마 중국 보수교를 모델로 했다는 단순한 이유는 아니길...
  • 이 감 2014/06/09 04:03 # 삭제

    월정교와 북수문의 문은 기능하는 위치가 좀 다릅니다. 북수문의 문은 사진 맨 왼쪽 끝(아니면 오른쪽 끝) 홍예가 성 안팍을 드나들 수 있는 성문이지요.
  • 역사관심 2014/06/09 04:13 #

    아 그렇군요. 월정교 경우는 다만 실질적인 문이 아닌 불교적 상징성을 가진 관문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논고를 본 적이 있고 동의하는지라 약간 무리가 있지만 써 봤습니다. ^^
  • 응가 2014/08/07 23:27 # 삭제

    영변성 북수구문이 6.25동란중에 파괴되었는지는 몰라도,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구글어스로 확인해본결과 수구문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다만, 지금의 형태는 ㄷ자가아닌 ㄴ자에 가깝습니다.
  • 응가 2014/08/07 23:33 # 삭제

    맘같아서는 제가 캡쳐를하여서 올려드리고 싶네요ㅠㅠㅠ 그것말고도 구글어스이용하시면, 금강산4대사찰터나 함경북도 온성의 3층짜리 수항루, 개성만월대 같은 다양한 이북의 문화유적을 보실수 있어요. 다만 아쉬운점이있다면 입체가 아니라는게 좀 아쉽네요.
  • 역사관심 2014/08/08 01:32 #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 구글어스로 예전에 안학궁터등은 본적이 있는데 북수구문을 찾아볼 생각은 못했네요 . 한번 보고 캡쳐할 수 있으면 해봐야겠습니다. 귀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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