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후반 매미소리 요괴와 요괴불, 그리고 요괴의 정의 (어우야담) 설화 야담 지괴류

더워지는 계절, 다시 한번 조선시대 기담입니다. 16세기중후반 야담집인 [어우야담]의 귀신편에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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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야담 

이경희에게 붙은 귀신

이경희(李慶禧)의 집에는 귀신이 붙어 온갖 이상한 일을 부리니, 혹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가르기도 하고 남의 등을 때리기도 하며 먹는 음식에 오물을 섞기도 하고 물건을 부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여러 해 동안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경희가 개성도사(開城都事)로 있던 어느 날, 때는 겨울인데도 거처하는 곳 벽 사이에서 매미 소리가 났다. 집안 사람들은 귀신이 서울에서부터 따라온 것이라 생각하고 매우 걱정하였다. 한 교생(校生)이 팔뚝을 걷어 부치고 떨쳐 일어나며 말했다. “인간 세상과 귀신 세상의 길이 다른데 귀신이 어찌 감히 요망한 일을 하는가. 내가 마땅히 물리치리라.”

온 집안 사람들이 그를 청하여 벽 사이로 들어가게 했더니 과연 매미소리가 났다. 높았다가 낮아지고 느리다가 빨라지며 마치 나무 사이에서 우는 것처럼 했다. 교생이 듣고 있다가 성을 내며 꾸짖기를 “어떤 요망한 귀신이 감히 겨울에 매미 소리를 내느냐.” 하며 칼을 빼어 기둥을 쳤다. 

한동안은 조용하였지만 갑자기 공중에서 어떤 물체가 교생의 상투를 잡아채고 채찍으로 때렸다. 온 집안에 소동이 났다. 교생이 피를 흘리며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들이 부축하여 내 왔다. 며칠간 고생한 끝에 간신히 일어났다.

이경희가 본 요괴불
이경희가 임기를 마치고 농장으로 내려가 농사짓는데 가을걷이를 하고 들판에 낟가리를 여러길 높이의 볏단으로 산처럼 쌓아두었다. 한 봉우리당 오륙십섬은 낼 정도 였다. 그러한 봉우리를 다섯 개 쌓아두었다. 

그런데 어느날
 밤에 다섯 개의 봉우리에 모두 불이 붙어 화염이 치솟고 하늘가득 퍼졌다. 온 동네 사람들이 밤새 불 끄느라 고생했는데 아침에 보니 낟가리를 전혀 불에 타지 않았다. 

이튿날도 불이 나 사람들이 불을 껐는데 아침에 보니 역시 불탄 것이 없었다. 사흘째도 불이 붙자 이웃들이 말하기를 "이틀동안 귀신이 장난친 것이지 진짜 불난 것이 아니었지 않습니까"하고 불을 끄러 와주지 않았다. 이날 밤 다섯 봉우리에 모두 불이나버리고 아침에 보니 남은 것이라곤 없었다.

이른바 물괴라는 것은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는 것과 달라서, 특정한 사물이 오래되면 신령해져서 그 형체를 빌어 요망하게 되는 것이다. (귀신이란 것은) 죽어 태공으로 돌아가 막연하게 흩어지는데, 그 사이에 원한을 품어 기가 흩어지지 않고서 인간에게 요사함을 부리는 것이다. 천백가운데 한둘이 그렇다.

하지만 사물이 오래되면, 즉, 곤충, 초목, 물고기, 자라 등의 정기가 오래 되어 영기를 머금고 형체를 빌어 능히 기를 얻어 허상이 되는 것이 빈번히 있다. 하지만 이는 사기(邪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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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오는 이경희(李慶禧) 1508년출생, 명종대에 1546년 진사가 되었고, 1562년 문과에 급제한 뒤 양주목사와 상서원정을 지낸 인물입니다.

첫 에피소드는 겨울에도 온집안에 나는 매미소리이야기로 만약 저 매미소리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정신없는 매미 한마리가 집안에 붙어있었다가 겨울까지 연명한 것인가 할 수 있겠지만, 첫시작과 마지막부분에 폴터가이스터적인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귀신류임을 증명합니다.

이분은 저렇게 관직에 있을때도 요괴에게 변을 당하고, 임기가 끝나고 논장으로 내려가서도 요괴불을 만납니다. 한밤중에 훨훨 불이 나서 온 마을사람들이 동원되어 불을 실컷 끄고 났는데, 집단환각격으로 다음날 그자리에 가보니 낟가리는 멀쩡. 그일이 두번이나 반복되자, 세번째 불이 났을때는 늑대소년이론으로 저건 또 귀신장난이려니 했는데 정말 화재였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귀신과 요괴의 구분
마지막에 나오는 사기邪氣라는 뜻은 "요망(妖妄)스럽고 간악한 기운"이란 뜻입니다. 사실 어우야담의 이 에피소드는 한국학 특히 민속학의 귀신-요괴연구에 정말 중요한 부분중 하나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물괴' (요괴는 아니지만)라는 단어가 '귀매 망량 귀신'과 차별되어 나오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곤충, 수목, 조수, 어별등의 정기가 오래되면 생기를 얻어 물괴가 된다는 말로, 사람의 혼령인 귀신-귀매류나, 혹은 피묻은 빗자루등이 변한다는 도깨비류와 차별해서 '요귀'라는 단어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요괴'의 정의와 거의 흡사합니다.

중국에서 요괴의 뜻은 '변해선 안될 것이 변해서 만들어진 사악한 존재'를 뜻하므로 이에 꽤 부합하기도 합니다. 도깨비와 귀신을 요괴의 일종으로 보는 관점도 있는데 분명 어우야담에서는 이 둘의 존재를 아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어 현재의 한국학에서의 요괴류에 대한 담론이 얼마나 '안이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조선시대에 이러한 요괴류에 대한 생각을 볼수 있는 증거가 있느냐고요? 있습니다. 예전에 필자가 소개한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해상명부도'에 수십마리의 요귀-요괴류가 등장합니다 (이미 소개한 바 있어 이번엔 일부만 소개합니다).

뱀과 두더지같은 녀석이 요괴화된 것들
맹수류와 수목이 변한 요괴병졸
오징어요괴, 복어요괴, 양요괴, 물고기요괴 등 (클릭확대하면 아래 업혀가는 두꺼비요괴도 확실히 보임)

분명 저자가 '요괴불'에 가까운 설명까지 해둔 이러한 이야기조차 현재 문화컨텐츠제공 사이트들에서는 '도깨비 불'이라는 광의의 (심하게 말해 되는대로) 타이틀을 붙여둔 상태입니다. 다시 한번 관련 연구의 정론화를 촉구하고 기대합니다. 

그나저나 16-17세기에는 야담집이 풍부해서 정말 기담이 많습니다.




덧글

  • 솔까역사 2014/06/20 00:39 #

    귀신 도깨비도 족보가 있군요.
    역사관심님이 한번 분류하고 정의해 보면 좋을 듯합니다.
    더 많이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듯해요.
  • 역사관심 2014/06/20 00:47 #

    감사합니다. 사실 기담류도 공부해보고 싶으나 아직 여력이 안되는군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긴 합니다.
  • asd 2014/06/20 11:09 # 삭제

    그림이 한국에서 그려진 것이 맞나요?
  • 길손 2014/06/20 12:36 # 삭제

    조선후기 민화계열로 조선화가 것입니다.
  • 동글기자 2014/06/20 16:07 # 삭제

    잘 보고 갑니다. 이경희란 분은 귀신이 잘 붙은 분이셨나 봅니다. ㅎ~
  • 역사관심 2014/06/20 16:17 #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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