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령사 15미터 대동불과 대불전 또다른 묘사 (성현의 시, 15세기)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16세기 개성 송악산에 있던 '복령사'에는 같은 송악산 기슭에 있던 불운사(佛雲寺)의 거대동불 세구 (15미터급)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15미터면 적어도 높이는 현재 일본의 동대사에 있는 최대 동불인 대불과 거의 비슷한 규모입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예전 포스팅글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 예전 글에서 필자는 '복령사'가 이러한 규모의 동불들을 안치할 정도였다면 그 규모가 상당했으리라 추측하고 관련된 기록을 찾아본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12세기 '김극기'의 싯구와 '박은'의 복령사 라는 싯구, 그리고 채수의 [유송도록]의 기록만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 기록들을 통해 복령사는 1309년에 중창기록이 있는 신라대에 창건된 절이며, 박은이 시를 지은 1502년까지 이러한 신라시대 건축물과 대불들이 현전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필자가 관심이 있던 복령사의 규모 (즉, 대동불들을 안치할 만큼의 불전들)에 대한 간접적 기록으로 김극기의 싯구를 찾아낸 바 있습니다. 다음의 싯구입니다:
“넓고 넓은 큰 현묘한 고향에, 높고 높은 불당[虛白堂] 있는 것이. 달빛 아래 청정한 모습 장엄하고, 무지개 채색 원광(圓光)이 빛나누나"

그런데, 최근 [유송도록]을 통해 채수뿐 아니라 같이 동행했던 '성현'(成俔, 1439년∼1504년) 역시 복령사의 불전모습을 그의 시에 담았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동불'의 모습으로 보이는 부분까지 묘사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싯구라고 판단됩니다.

다음의 시입니다.

복령사 벽에 있는 시에 차운함 - 성현成俔

아름다운 경치가 
나를 흔들어 홀로 시를 읊게 하고

성의 서쪽으로 나서니 
경계가 더욱 깊어진다

새가 지저귀며 사람을 부르는데
마치 유심한 듯 하고

구름이 한가로이 골짜기에서 나오는데
마치 무심한 듯 하구나

절집의 문을 여니
갑자기 우뚝하게 황금을 입힌 동인 (동불)이 서있고

누각들은 높이 솟아
크고 작은 푸른 나무들을 압도한다

지난 일들은 아득하여
물어볼 곳이 없는데

부질없이 산의 경치만
지금까지도 여전하구나.

======

이 시는 1477년 개성여행을 바탕으로 씌여진 것입니다. 따라서, 12세기의 김극기의 묘사와 1502년 박은의 기록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차천로가 '후대에 (동불을) 녹여 총대를 만들었다'라는 기록이 16세기의 것이므로 시기적으로도 동불이 존재하던 시기의 기록이며, (만약 저 황금동불이 불운사의 대동불이라면) 적어도 대동불이 1477년에는 복령사로 옮겨져 있었음도 이 기록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김극기나 박은의 시에는 신라대의 건축이 있었고, 그 규모를 유추할수 있을 정도였지만 황금을 입힌 불상에 대한 언급은 없었는데 반해, 성현의 이 시에는 전각의 문을 열자 갑자기 우뚝 선 황금빛 동불이 있었다는 구절이 묘사되어 있어, 불운사에서 옮긴 대동불이 처음으로 확인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금칠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다음 구절에 '누각들이 높이 솟아 주위 나무들을 압도한다'라는 구절에서 앞서 살핀 김극기의 '높고 높은 불당'과 일맥상통하는 '고층 전각들' 의 모습을 주위 나무보다 높다는 상세한 구절로 묘사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현재 북한자료에 대한 한계로 복령사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아마도 복령사에 대한 세밀한 연구는 한국학계에서는 활발하지 않을 듯 한데, 이 동불들과 복령사에 대한 관심이 지금보다 활발해지길 기대합니다.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복령사 사진 (조선중기까지의 기록밖에 못찾았는데, 재건된 것인지 보존된 것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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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ㅇㅇ 2014/07/10 13:51 # 삭제

    위에 사진은 그냥봐도 임진왜란 이후 재건된 건물 같네요

    하여간 임진왜란 이전 한국 전통 목조건축물들...

    한국 역사학계나 건축학계에서 너무 관심이 없는것 같아 아쉽습니다

  • 역사관심 2014/07/10 13:53 #

    동감입니다. 통일이나 되어야, 고려시대 건축부터 다시 활발하게 연구될런지... 역시 일단 눈으로 터라도 봐야 문헌사료와 맞물려 의욕이 생기긴 하겠지요.
  • ㅇㅇ 2014/07/10 22:05 # 삭제


    솔직히 남한 지역만 따져도 그리고 조선전기만 따져도 임진왜란 이전 역사건축물에 대한 연구할 꺼리 엄청 많을텐데 말이죠. 일단 고려시대 까지 갈것도 없이 조선 전기 만이라도 연구성과 좀 많았으면 합니다. 유송도록 하나만봐도 우리가 조선 전기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게 많은지 쉽게 알수 있죠. 하긴 조선 전기를 떠나서 조선 후기 아니 조선 말기 19세기말 유리 원판 사진에 보이는 구한말 전통건축 주변 경관에 대한 연구도 아직 그다지 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것 같습니다. 일례로 세키노 타다시가 1902년 대한제국 왔다간후 집필한 한국건축조사보고 라던가
    서양 선교사들이 1880~1890년대 까지 촬영한 사진들 보면 확실히 주변 생태계부터 지금과 다르더군요. 당장 창덕궁 인정전만 봐도 인정전 뒷 언덕엔 소나무와 전나무가 아주 울창하고 키도 엄청 크더군요.이건 그당시 경복궁도 마찬가지.. 그 나무들 지금 다 어디 갔을까요?
    요즘 궁궐 복원하면서 키 큰 침엽수들 인위적으로 많이 심는것 같던데.. 아무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식생이 너무 많이 바뀐것 같아 안타까울때가 많습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 식생이 너무 많이 변했더군요. 이게 단순히 나무 벌레 때문만은 아닌것 같은게
    나무 벌레 라는게 어떤 지역만 나타나고 그런게 아니고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거거든요
    그리고 한반도 기온 변화로 판단하는 것도 무리인게 서울 수도권에서 키큰 침엽수가 전멸했는데 왜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는 상당부분 그대로 여태까지 남아있는지 그것도 의문이죠
    ..하여튼 참 답답합니다
  • 역사관심 2014/07/11 04:16 #

    옳은 말씀입니다 . 당장 있는 자료들이나 기껏 애써 연구한 학계성과도 실무에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현실은 고쳐져야 합니다.
  • 낙으네 2014/07/11 06:12 # 삭제

    일본속의 한국불교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니, 동대사 노사나불 좌상을 만드는데만 구리 74만 근, 백은 1만2000근, 연금1446냥, 수은 5만8600냥이 들었고, 3년간 7번의 실패를 겪으며 8번째 가서야 만들었는데 그 마저도 도금할 수백kg의 황금이 부족해 곤란을 겪었다고 합니다. 백제 의자왕의 4대손인 경복이 금 640kg을 보내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규모의 불상이 무려 세 구나 같은 사찰에 모셔져 있었다니 불가사의합니다.
  • 역사관심 2014/07/11 06:17 #

    저도 의아한데, 사실 속이 비어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뱃속에 책들이 있었다고 하니까요. 좌고가 15미터이고 제일불상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 보면 분명 거대불은 확실한 듯 합니다만 (세구 중 하나만 5장이고 나머지는 그보다 작은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녹여서 대포들을 만드는 데 쓰인 것만 봐도 느낌이 오지요. 만복사에도 35척 (약 10미터이상)짜리 동불이 있었던 걸 보면 고려대까지의 거대한 불상이나 무인정권인물등의 건축들은 확실히 우리가 현재 아는 규모에서 벗어나 있었던 듯 합니다.
  • 낙으네 2014/07/11 06:27 # 삭제

    아아 속을 비게 만들었을 것을 생각 못했군요. 그래도 만드는데 꽤 애를 먹었을 텐데 황룡사 장륙존상도 그렇고 말씀대로 옛날에 큰절 큰불상 만드는게 드문 일은 아니었나봅니다.
  • 역사관심 2014/07/11 06:38 #

    사회총생산량면에서는 확실히 후대로 갈수록 앞섰지만, 역시 강력한 중앙집권제가 있던 시절이라 관료제가 더 강하던 조선중기이후보다는 확실히 역량집중면에서 달랐던 것 같기도 합니다. 건축들규모만 봐도 수십미터 넘는 강당을 갖춘 사찰만 수두룩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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