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전통, 그리고 인식현상 (마뚜렐라 & 바렐라) 독서


......그러므로 우리는 순환고리인 우리의 인지적 영역에서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다. 중략. 효과적인 행위는 효과적인 행위를 낳는다. 이것은 우리의 과정적 존재를 특징짓는 인지적 순환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자율적 체계로서 존재하는 방식의 표현이다.

우리가 산출한 세계는 끊임없는 재귀과정 속에서 자신의 기원을 감춘다. 우리는 현재속에서 존재한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를 사는 방식일 뿐이다. 중략. 생명활동은 자신의 기원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지 않는다. 우리는 존재함과 동시에 인지적 '맹점'을 산출한다. 이것을 없애려면 또 다른 영역에서 또 다른 맹점을 산출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어떤 상호작용때문에 정상상태가 깨질 때, 이를테면 다른 문화적 환경 속에 갑자기 놓이게 될 때, 그리고 그것에 관해 성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형태의 관계들을 산출하면서 "전에는 그것들을 깨닫지 못했다"거나 "당연한" 것으로 보았다고 설명한다.

한 사회적 집단의 접속이 지닌 모든 규칙성들은 그 집단의 생물학적, 문화적 전통을 말해준다. 전통이란 무엇을 보고 행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감추는' 방식이기도 하다. 전통은 사회적 체계의 역사를 통해 당연하고 규칙적이며 받아들일 만하게 된 모든 행동방식들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이 행동방식들을 산출하는 데에는 성찰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이것들이 주의를 끌게 되는 것은 오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뿐이다. 바로 이때 성찰이 시작된다.

중략. 곧 인식(활동)이란 객체들과 아무 관계도 없다. 인식활동이란 효과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인식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산출한다.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인식하기란 어느 고정된 점에서 출발하여 직선적인 설명으로 모든것을 완전히 설명할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인식하기란 오히려 에셔의 작품 '화랑'에서 소년의 처지와 비슷하다. 소년이 바라보는 그림은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변해서 소년과 화랑이 있는 도시로 바뀌어버린다. 여기서 어느 한군데를 (밖? 안? 도시? 소년의 의식?) 출발점으로 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인지적 순환을 깨닫는 것은 인식현상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거기서 출발해야만 인식활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앎을 알면 얽매인다. 앎의 앎은 확실성의 유혹에 대해 늘 깨어 있도록 우리를 얽어맨다. 또한 우리가 가진 확실성이 진리의 증거가 아님을, 누구나 다 아는 이 세계는 오직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타인과 함께 산출한 어느 한 세계임을 깨닫도록 우리를 얽어맨다. 그것은 우리가 다르게 살 때만 이 세계가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도록 우리를 얽어맨다. 앎의 앎은 우리를 얽어맨다. 왜냐하면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알면 더 이상 우리 자신이나 타인 앞에서 마치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의 '공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야'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색깔'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색채공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마뚜렐라, 바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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