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 김홍도 그림에 대한 인식- 귀신도 무서워한 명화 설화 야담 지괴류

한국 서화의 전설, 단원 김홍도(金弘道)가 정조에게 총애를 받았고, 거꾸로 정조의 죽음이후 같이 궤를 하며 5년후 사망(추정)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말할 것도 없이 20세기 이후 현대한국사회에서 그의 위치는 신윤복, 정선등과 함께 독보적입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당대의 민간이나 사대부들에게 어떠한 인식을 심어주고 있었는가 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김홍도에 대한 대중서적들을 읽어보아도 아쉽게 18세기-19세기의 그에 대한 일반대중들의 인식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기록은 풍부하게 실려있지 않아 아쉽곤 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래 두가지 '귀신과 명화'에 대한 에피소드는 단원에 대한 당대 조선인들의 인식을 꽤 명확하게 보여주는 실례라 할 것입니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어서 여러 소재로 쓰일만 합니다. 

문화컨텐츠사이트에는 번역된 '도깨비'라는 명칭으로 청성잡기의 에피소드를 번역했는데, 원문을 따라 필자는 모두 원문에 맞게 '요괴'나 '귀매'로 번역해 두었습니다 (물론 석보상절에 魘은 厭字 가지라 魅 돗가비니 性覺이 本來 거늘라는 설명이 있지만, 이 구절만으로 '매'를 돗가비=도깨비로 이야기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나중에 연구하지요). 다음이 원문입니다.

松都富家,妖魅興焉,酒甕宵破,決激有聲,篝火視之,甕固自如,夕炊方熟,廚婢暫出,鼎覆其趾,納蓋於口,剖之飯則無損,之作孽,皆此類也。求治者禳之,矇讀經呪,眴盱呵叱,良久曰,在此,乃盆植桃槎,將以接梅,取自二十里外也。亟返之故處。又婢年十四者在廚,矇遽嗅之曰,此有氣,可賣之遠,如其言而息。都下皮姓者,買第長昌橋口,棗倚於墻,伐焉。蓋宅之遽動,或嘯於梁,或語於空,但不見形耳。或投其書,字則諺也。與婦女語,皆爾汝之,人或呵之曰,不別男女耶。啞然笑曰,若凡氓也,寧足別也。其家衣裳椸懸笥儲,無一完者,並若刀殘,獨一篋完,篋底,乃有金弘道老仙畫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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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잡기- 성언(醒言)

요괴도 무서워한 김홍도(金弘道) 그림

송도(松都 개성)의 부잣집에 요매(요괴)가 나타나곤 하였다. 밤에 술동이가 깨지면서 콸콸 술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서 불을 밝히고 살펴보면 동이는 그대로 있었다. 또 저녁에 밥을 짓다가 부엌에서 일하는 여종이 잠시 나가면 솥이 뒤집어지고 뚜껑은 솥 안에 들어가 있는데 열어 보면 밥은 그대로 있었다. 귀매가 저지르는 재앙은 모두 이런 따위였다.

귀매 물리치는 사람을 찾아 굿을 하였는데, 소경(장님)이 주문을 외더니 눈을 부라리고 한참을 꾸짖다가 
“귀매가 여기 있다.” 하여 살펴보니, 바로 화분에 심은 복숭아나무였다. 매화나무에 접붙이려고 20리 밖에서 가져 온 것이었는데 서둘러 본래 있던 곳으로 옮겨 놓았다.

또 열네 살 먹은 몸종이 주방에 있었는데 소경(장님)이 갑자기 냄새를 맡고는, “이 아이에게 귀매의 기운이 느껴지니 멀리 팔아 버려야 한다.” 하여, 그의 말대로 하니 귀매가 없어졌다.

한양에 피씨(皮氏) 성을 가진 자가 장창교(長昌橋) 입구에 있는 집을 샀는데, 대추나무가 담장에 기대어 있기에 베어 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귀매가 집으로 들어와 들보 위에서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때로는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간혹 글을 써서 던지기도 했는데 글자가 언문(諺文, 한글)이었고, 부녀자들에게 말을 할 적에 모두 너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혹시라도 “귀신은 남녀도 구별하지 않느냐?” 하고 꾸짖으면, 귀신은 기가 막힌 듯이 웃으면서, “너희는 모두 평민이니 어찌 구별할 것이 있겠냐?” 하였다. 

그 집의 옷걸이와 옷상자에 보관된 옷들은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 모두 칼로 찢어 놓은 듯하였다. 유독 옷상자 하나만이 온전하였는데, 상자 밑에는 바로 김홍도가 그린 늙은 신선 그림이 있었다.
김홍도가 남긴 신선도는 십수점이지만, 역시 남극노인성(수성)을 그린 이 그림이 제격일 듯합니다 
(노신선이 들고 있는게 바로 복숭아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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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중(成大中, 1732∼1809) 의 잡록집(雜錄集)인 [청성잡기]에 실린 이 글은 두가지 면에서 흥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장님'(소경)이 퇴마사로 등장하는 점이고 또 하나는 바로 김홍도의 그림에 대한 언급입니다 (당연히). 장님이 퇴마를 맡는 경우는 꽤 일반적이었는데, 이는 눈은 멀었어도 그 덕에 또다른 눈, 즉 귀매를 보는 능력이 열렸다고 믿었던 당대의 인식때문입니다. 이러한 장님퇴마사를 흔히 '판수'라고 했는데  판수는 맹인으로 무당이 정령들을 설득하면 타협하는 것과 달리 힘으로 정령들을 다스렸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좀 특이한데, 보통 판수는 긴 막대기(약 70센티)로 귀신을 때려 내쫗거나, 병에 넣어버리는데 이 병을 막는 나무가 '복숭아 나뭇가지'로 만든 마개입니다. 복숭아 나뭇가지로 귀신을 쫓는 모습은 여러 기록에서 나오는데, 최근에도 무당이 복숭아 나뭇가지로 귀신들린 사람을 때려서 사망한 사건도 있었죠 (;). 그런데 외려 이 에피소드에서는 복숭아 나무에 귀매가 붙어버렸군요.

판수는 구한말까지 많았습니다. 19세기말-20세기초까지도 서울 거리에서 대나무 막대로 길을 더듬어가며 낮은 소리로 고객을 찾는 판수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세부적으로 재밌는 것은 '너'라고 하는 말이 18세기당시에도 '반말'이었다는 언어학적 측면이 등장하며, 김홍도가 그린 신선그림을 귀신도 어찌 못한 신성한 명화라고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皆爾汝之라는 부분중 '爾' 가 바로 '너 이'자고 '汝'는 '너 여'자입니다.

이 포스팅의 주제인 이 부분은 난리를 치며 모든 옷들을 칼로 찢어놓은 것처럼 발기발기 찢어버린 귀매조차 그의 그림이 있던 상자는 그대로 뒀다는 것인데, 18세기 당시 김홍도의 그림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습니다.

김홍도(金弘道)의 생몰년대는 1745년~ 1806년이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을 지은 성대중의 연대와 거의 일치하는 '동시대'의 인물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그가 살아있던 당시의 일이므로 김홍도의 그림에 대한 당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일화입니다.

또한 여기 김홍도 그림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장창교(長昌橋)앞의 집이라는 구절의 이 청계천 다리는 장통방에 있었으므로 장통교라고도 했습니다. 현재 장교동 한화빌딩 앞에 위치했습니다. 장교(長橋)라고도 했는데, 정말 흥미롭게도 예전에 ['17세기 남산의 귀신들']포스팅과 같이 이 한화빌딩은 '남산' 밑에 바로 위치하고 있기도 합니다. 역시 남산아래 집들은 17-18세기 귀신이 득시글 했던 것 같아요.
"한화본사 앞에는 청계천이 흐르고 한화본사 뒤에는 남산이 든든히 받쳐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홍보할 정도죠.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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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 춘명일사(春明逸史)
명화(名畫)의 신비한 일

가인(家人)이 일찍이 말하기를, “매일 밤 베갯머리에서 말을 모는 소리가 들리고, 또 당나귀의 방울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떤 때는 마부가 발로 차서 잠을 깨웠으나, 그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하였다. 

하루는 막 잠들려 할 무렵에 어렴풋하게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는데, 그 소리가 병풍에서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풍은 바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풍속화였다. 이상하게 여겨 옮겨 놓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림의 신비함이 예부터 그러하였던 것이다. 

대동전(大同殿) 벽 위의 물소리는 바로 이사현(李思玄)의 그림에서 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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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잡기]가 18세기 김홍도가 살아있던 당대의 글이라면, 이 [임하필기]는 19세기 즉 단원의 바로 다음 시대의 인식을 보여주는 좋은 글입니다. 역시 김홍도가 그린 병풍에서 말을 모는 소리, 당나귀의 방울소리가 나고, 그림의 마부가 발로 자는 사람을 차서 깨우는 신기한 현상을 보여주는 이 글은 그의 그림이 조선후기에 어떤 식으로 인식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부와 당나귀가 등장하는 김홍도의 명작, 마상청앵도

글 후반의 대동전과 이사현 이야기는 더 찾아봐야 알겠습니다만, 김홍도의 그림에 대한 당대사람들의 '신비함'이 이정도였습니다. 그의 그림과 이러한 신비감을 주제로 영화나 만화가 나와도 재미있을 듯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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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솔까역사 2014/07/14 07:09 #

    김홍도가 저런 그림도 그렸군요.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재미있는 이야기 소재가 참 많군요.
    좀 더 살을 붙이고 그림도 재미있게 그리면 좋을 거 같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이 먼저 그것을 하였고 한국은 그에 익숙해져서 지금도 일본애니를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 역사관심 2014/07/14 08:18 #

    다들 관심부족이고, 버릇(?)이 안들어서 그렇지 찾으면 쓸 소재투성이죠. 우리는 너무 정신없이 살아온 것 같습니다.
  • Nocchii 2014/07/14 07:18 #

    신비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에게는 김홍도 그림의 가치가 그렇게까지 눈에 띄이지 않을 지 몰라도 앞으로 백 년 이백 년 뒤에는 지금보다 훨씬 높게 평가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죠
  • 역사관심 2014/07/14 08:19 #

    단원의 그림은 지금도 풍속화로 참 귀중하고 널리 알려있지만, 풍속화외의 종교화나 불화등의 서화들도 더 널리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 존다리안 2014/07/14 10:22 #

    벼락맞은 복숭아 나뭇가지가 퇴마도구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류 퇴마나 주술 도구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있을지 모르겠군요.
    (게임 식으로 보면 무기나 아이템?)
  • 역사관심 2014/07/14 10:34 #

    벼락맞은 여부가 벽사기능의 차이일수도...ㅎㅎ
  • Esperos 2014/09/08 04:45 #

    옛말에는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동도지東桃枝)가 잡귀를 쫓는다 하지요. 또한 벼락 맞은 대추나무도 양기가 성하여 귀매를 쫓는다 합니다. 그런데 두 가지 이야기를 섞어서 알고 계시는군요. ^^;;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벽조목(霹棗木)이라 부르는데, 번개 전류가 흐른 부분에 따라서는 색이 변하고 더 단단해지기도 해서, 벽조목 중에서도 이렇게 변성된 부분은 목재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도 시간을 들여서 수소문하지 않으면 구하질 못하더군요. 그래서 인공적으로 대추나무에 고압전류를 흘리고 압축시켜 만든 '인조 벽조목'도 많이 쓰입니다. 대추나무가 원래 상당히 단단한 재질인데, 인조 벽조목은 '매우 단단한 재질로' 바뀌기 때문에 도장 재료나 묵주/염주알 재료 등으로 많이 쓰이지요.

    전통적인 벽사 도구로는 사인검도 유명합니다. 현대에도 도검장이 벽조목을 만들어 비싼 값에 팔기도 하는데요, 조선시대 왕실에서 만든 오래된 사인검이 인사동 등지에 나오면 소리소문 없이 팔린다더군요.
  • 역사관심 2014/09/08 08:02 #

    Esperos님> 덕분에 벽사기능 tool에 대한 좋은 정보 잘 배웠네요! 요즘도 대추나무를 저렇게 만들어 쓰는줄 몰랐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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