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금전각과 황금거북인장 이야기 (태평광기) 설화 야담 지괴류

[태평광기]에 이런 이야기가 전합니다. 아마도 소수의 한국인만이 접했을 이야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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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47, 1편 당헌종황제

당나라 헌종은 신선불사의 도술을 좋아했다. 원화 5년 (810년)에 내급사 장유칙이 신라국에서 돌아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다에서 산으로 된 섬 사이에 정박했는데, 문득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서 연기와 불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달빛을 받으며 한가로이 걸어서 약 1~2리쯤 갔더니, 꽃과 나무 사이로 누대와 전각의 황금창과 은 대문이 보였다.

그 안에 공자 몇 명이 있었는데, 장보관(章甫冠)을 쓰고 자하의(紫霞衣)를 입고서 느긋하게 시를 읊조리고 있었다. 장유칙은 그들이 이인임을 알아보고 마침내 뵙기를 청했다. 공자가 말했다. 

"그대는 어디서 왔소?"
장유칙이 (당나라에서 온) 연유를 자세히 말했더니, 공자가 말했다. "당 황제(헌종)는 내 친구요. 그대는 나중에 돌아가거든 대신 말을 전해 주었으면 하오." 이윽고 한 시동에게 황금 거북 인장을 꺼내 오라고 명하여 장유칙에게 주면서 보물상자에 넣어두게 하고는, 다시 장유칙에게 말했다. "황제에게 안부전해 주시오."

장유칙은 마침내 그것을 가지고 배로 돌아왔는데, 왔던 길을 돌아보았더니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황금 거북 인장은 길이가 5촌이고 위에 황금 옥인을 지고 있는데, 도장 면의 넓이는 1촌 8푼이고 그 전문은 "봉지용목, 수명무강"이라 씌어 있었다.

장유칙은 도성(장안)에 도착하자 즉시 그 일을 갖추어 아뢰었더니, 헌종이 말했다. "전생에 짐이 선인이었단 말인가?" 그리고는 황금 거북 인장을 보며 한참 동안 기이함에 찬탄했지만 그 글씨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자줏빛 진흙으로 봉인하고 옥 자물쇠를 채워 휘장안에 놓아두었다. 그 후에 종종 오색빛이 보였는데 길이가 1장 남짓 되었다. 그 달에 침전앞 연리수 (두 나뭇가지가 하나로 된 나무)위에서 영지 두 그루가 자라났는데, 그 모양이 봉황과 흡사했다. 그래서 헌종이 찬탄하며 말했다.

"'봉지용목'이란 말이 어찌 이 징조가 아니겠는가!"

원문:
元和五年,內給事張惟則自新羅使回,云:於海上泊洲島間,忽聞雞犬鳴吠,似有煙火,遂乘月閒步,約及一二里,則見花木台殿,金戶銀闕,其中有數公子,戴章甫冠,著紫霞衣,吟嘯自若。惟則知其異,遂請謁見。公子曰:「汝何所從來?」惟則具言其故。公子曰:「唐皇帝乃吾友也,汝當旋去,為吾傳語。」俄而命一青衣捧金龜印以授惟則,乃置之於寶函。復謂惟則曰:「致意皇帝。」惟則遂持之還舟中。回顧舊路,悉無蹤跡。金龜印長五寸,上負黃金,玉印面方一寸八分,其上曰:「鳳芝龍木,受命無疆。」惟則達京師,即具以事進。上曰:「朕前生豈非仙人乎?」及覽龜印,歎異良久,但不能諭其文爾。因命緘以紫泥玉鏁,致於帳內。其上往往見五色光,可長數尺。是月寢殿前連理樹上生靈芝二株,宛如龍鳳。上因歎曰:「鳳芝龍木,寧非此驗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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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선 태종의 왕후인 원경왕후의 금거북 인장, 14세기)

일단 '태평광기'는 예전 고구려의 '수정성'기록에서 한번 소개한 바 있는 책으로, 한대로부터 북송초에 이르는 소설/필기/야사등의 저서들에 수록되어 있는 고사들을 광범위하게 채록한 북송대의 책입니다. 여기 인용된 책은 거의 500여권에 달합니다 (이중 약 절반은 중국에서도 현전하지 않는 책들입니다). 태평광기는 북송대인 978년 수찬되어 981년에 판각됩니다.

태평광기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는 대체로 고려 고종 (1214~1259)이전으로 봅니다. 즉 편찬되고 약 200년 후가 되지요. 도교와 지괴류를 지양했던 것으로 보이는 조선시대에도 태평광기는 식자층의 인기책으로 세조 8년(1462년)과 명종 (1545~1567)대에는 이 방대한 저서를 축약한 본과 언해본까지 등장합니다.

오늘 소개한 [당 헌종] 편에는 그후에도 몇 에피소드가 더 전하지만, 신라와 관계된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 당 헌종(唐 憲宗)의 재위기간은 778년에서 820년까지므로, 이 에피소드는 헌종 12년 (810)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표류기의 주인공, '장유칙(張惟則)'은 어떤 인물일까요? [두양잡편(杜陽雜編)]에 다음의 기록이 있습니다.
○ 5년(810)에 내급사(內給事) 장유칙(張惟則)을 신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두양잡편

두양잡편은 당나라때 소악(蘇鶚)이라는 사람이 집필한 잡저류의 책인데 아무튼 정사류책에서도 한번 찾아봐야겠지만, 장유칙이 신라에 810년(헌덕왕 2년)에 사신으로 온 것은 사실 같습니다. 이 때 '산으로 된 섬'에 정박했는데 (아마도 신라땅) 이 곳에 황금으로 된 창을 갖춘 누대와 전각, 그리고 은으로 된 대문으로 만든 집이 있는 곳에 선인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선인들에게 당 황제는 내 친구니 이 선물을 가지고 가라고 해서 가져 온 것이 길이 약 5촌짜리 황금거북인장이었다는 것입니다. 5촌이면 약 15.15센티쯤 됩니다. 그래서 이 황금거북을 보관했더니 오색빛이 나고, 봉황과 같이 생긴 나무가 자라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나오는 (아마도 신라의) 공자가 입었다는 '장보관(章甫冠)'은 중국 은나라 때부터 쓰던 관(冠)인데, 공자(孔子)가 이 관을 썼으므로 그 후로 유생들이 즐게 쓰게 되었습니다. 자하의는 보랏빛 저녁놀색깔같은 의복이란 뜻입니다.

역시 중국의 문헌인 13세기 남송시대의 문헌통고(文獻通考)에는 장보관과 관련되어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붉고 소매가 큰 저고리에 장보관(章甫冠)과 가죽신을 신었으니, 장보는 은(殷)의 관(冠)으로서 동이(東夷)가 그것을 사용한 것이다. 옛 사람의 말에 예(禮)를 잃으매 오랑캐에게 구한다는 것이 믿을 만하다.” 하였으니, 이로 본다면 지금의 입자(笠子)가 곧 은(殷)의 후이며 장보(章甫)의 제도인데, 점차 그 제도가 변하여 모자의 위가 높고 옆 둘레가 넓어진 것이다. 고구려 사람이 이를 절풍건이라 하였는데, 지금 중국 사람들도 달리 부르지 않는다.

태평광기는 정사가 아니므로 무시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미 유교가 들어와 확립되어 있던 통일신라에서도 당시에 '장보관'을 썼을지 모르겠군요. 특히 810년이면 대표적 신라의 유학자인 최치원이 태어나기 47년전이군요.

오늘 소개한 신라의 황금거북인장 이야기는 물론 하나의 신비류 이야기로 치부하겠지만, 역시 '신라와 황금'의 관계라는 측면에서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로 주목할 만 기록 같습니다. 아직까지, 제대로 통일신라시대의 황금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각종 문헌사료를 살펴볼 때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영역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또한, 중세이전 한반도(동해건너 동방)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념이 상당히 이색적이라 매우 흥미롭기도 합니다. 다음의 기록과도 맥을 같이한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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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예전에 소개한 삼국유사의 고대한국 최초의 기계류기록인 '만불산'이 바로 이 중국저서인 [두양잡편]에 교차기록으로 전하기도 합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중국에 전해졌다던 기계이니 당대 중국측 기록을 찾아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 기록으로 만불산은 좀 더 그 실체가 신빙성을 가지게 되는 듯 합니다.

사실 만불산정도면 경주박물관에 재현해서 전시해도 훌륭한 컨텐츠가 되지 않을까요?

참조링크: 신라의 자동기계산, 만불산

재미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두양잡편(杜陽雜編)
만불산(萬佛山)

○ 대력(大曆 766~779) 연간에 신라국에서 만불산(萬佛山)을 바쳤는데, 높이가 1장가량 되며, 침단목(沈檀木)에다 주옥(珠玉)으로 조각을 하여 만들었다. 부처의 형상이 큰 것은 1촌이 넘고 작은 것은 7, 8푼 된다. 부처의 머리는 크기가 좁쌀만 한 것도 있고 콩 반쪽만 한 것도 있는데, 이목구비와 나계(螺髻), 머리털 모양이 모두 다 갖추어져 있다. 

거기에다 다시 금(金), 옥(玉), 수정(水精)으로 아로새겨, 번개(幡蓋), 유소(流蘇), 엄라수(菴蘿樹), 첨복수(簷葍樹) 등을 만들었으며, 백요(百瑤)를 얽어서 누각(樓閣)과 대전(臺殿)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새가 비록 작지만 형세는 날아오를 것만 같다. 또 앞에는 길을 가는 승도가 1천 명도 넘게 있으며, 아래에는 자금종(紫金鍾)이 있는데, 지름이 3촌가량 되며, 위에는 거북머리가 그것을 물고 있게 하였다. 

매번 그 종을 치면 길을 가는 승도들이 머리가 땅에 닿도록 예불(禮佛)하며, 그 속에서 은은한 소리가 들리는데, 이를 범음(梵音)이라고 한다. 대개 그렇게 되는 이유는 종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그 산의 이름을 비록 만불(萬佛)로 이름하였지만, 그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 위에는 바위로 된 산봉우리 사이에 구광선(九光扇)을 놓아두었다. 

사월 초파일에 양중(兩衆)의 승도들을 내도량(內道場)으로 불러들여서 만불산에 예배하게 하였는데, 이때 보는 자들이 사람의 솜씨로 만든 것이 아님에 탄복하였으며, 전(殿) 안에 아홉 가지 색깔의 광채가 퍼지는 것을 보고서는 그것을 일러 불광(佛光)이라고도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구광선이다.

上崇奉釋氏,每舂百品香,和銀粉以涂佛室。遇新羅國獻五彩氍毹,制度巧麗,亦冠絕一時。每方寸之內,即有歌舞伎樂、列國山川之象。忽微風入室,其上復有蜂蝶動搖,燕雀飛舞。俯而視之,莫辨真假。又獻萬佛山,可高一丈,因置山於佛室,以氍毹藉其地焉。萬佛山則雕沉檀珠玉以成之。其佛之形,大者或逾寸,小者七八分。其佛之首,有如黍米者,有如半菽者。其眉目口耳螺髻毫相無不悉具。而更鏤金玉水精為幡蓋流蘇,菴羅薝卜等樹,搆百寶為樓閣台殿。其狀雖微,而勢若飛動。又前有行道僧徒,不啻千數。下有紫金鐘,徑闊三寸,上以龜口銜之。每撃其鐘,則行道之僧禮首至地,其中隱隱謂之梵音,蓋關戾在乎鐘也。其山雖以萬佛為名,其數則不可勝紀。上因置九光扇於岩巘間,四月八日召雨眾僧徒入內道場禮萬佛山。是時觀者歎非人工,及睹九色光於殿中,咸謂之佛光,即九光扇也。由是上令三藏僧不空念天竺密語於口而退。傳之於僧惟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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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Esperos 2014/07/21 16:49 #

    태평광기는 거의 다 읽었는데, 이야기가 하도 많아서 (틀림없이 이 부분도 읽었을 텐데도)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
  • 역사관심 2014/07/21 17:05 #

    오 대단하십니다 . 그 방대한 분량을..^^
  • 迪倫 2014/07/25 13:02 #

    한위노국왕인(漢委奴国王印)이 연상되네요^^ http://en.wikipedia.org/wiki/King_of_Na_gold_seal
  • 역사관심 2014/07/28 04:36 #

    적륜님 덕분에 이 도장에 대해 알아보고 지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흥미롭네요~!

    특히 예전에 야스페르츠님 블로그 답글중 꽤 좋은 정보도 있었더군요.
    http://xakyntos.egloos.com/m/comment/268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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