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령사 전탑에 조각된 통일신라 건물모습 (황룡사복원 단상)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최근 경주복원사업이 한창입니다. 특히 황룡사 재건의 경우 국책문화재사업으로 (필자가 생각하기엔) 향후 한국의 고대-중세 전통건축재건 프로젝트의 리트머스가 되는 숭례문 못지 않은 사업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학계의 고증 연구성과가 최대한 반영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합니다. 황룡사가 지어지고 건재하던 신라-통일신라대의 건축유구는 기단부와 주춧돌을 비롯 와당과 치미일부등 부분을 제외하면 그 전모를 알기가 힘듭니다. 물론 이웃 문화재와 비교검증이 유용하지만, 국내에 남아있는 2차 자료 즉, 각종 조각과 회화등의 중요성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얼마전 소수의 연구자가 이미 논문을 낸 바 있는 황룡사 승려였던 '연기법사'가 발주한 [대방광불화엄경]의 추정 통일신라 건축 변상도에 대해 살펴본 바 있습니다. 


불령사와 천불탑

그런데 통일신라시대의 당대 건축모습으로 추정되는 중요한 사료가 한 점 더 있습니다.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호랑산 비룡골 기암절벽 아래에 있던 '불령사(佛靈寺)'란 절이 있습니다. 이 사찰은 통일신라시대에 즉, 645년(善德女王14년)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년)가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20세기에는 1912년 봉주스님이 중건하고 1930년 이종태스님이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사찰터에 예전부터 남아있던 고전탑이 한 기 있습니다. 
불령사

국내에 드문 '전탑'인데, 공식명칭은 불령사 천불탑이라고 합니다 (불상이 천개 새겨져 있다는 뜻). 특히 이런 '문양'이 새겨진 전탑은 이 탑을 제외하면 경주 삼랑사지 전탑뿐입니다. 따라서 전탑은 많은 관심을 받아왔습니다만,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탑자체형식'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뿐, 여기 새겨진 당대 전각을 보여주는 건축문양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검색능력 내에서). 

이 전탑은 현재 대웅전 위 암반에 세워져 있는데, 원래 60년대 발견 당시에는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전돌이 마구 쌓여져 있었습니다. 사실 3층 모습역시 원래 건립당시의 모습인지는 모릅니다. 왜냐하면 원형은 임진왜란 때 허물어졌는데, 조선중기에 전탑을 3층으로 보수했고 그 탑이 1960년 허물어졌던 것을 당시 주지였던 최유화스님이 1968년 5층으로 다시 건립했던 것입니다.

2009년 이전 임시복원했던 5층시절 천불탑 모습 
그랬다가 2009년 원형복원을 위해 현재는 3층으로 복원했습니다 (아래 원형사진을 비교하면 조금 비례가 안맞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경북문화재 294호입니다.
비교적 최근 확인된 것으로 아는 조선후기 전탑사진입니다.

조선후기 천불탑 사진
전탑에 대한 통일신라 당대 문헌을 살피자면 삼국유사 권4에 선덕여왕(재위 632~647)대의 장인인 '석양지'가 작은 전탑을 만들어 석장사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음의 기록입니다:

삼국유사 권 4
석양지의 조상이나 고향은 알 수 없고, 오직 그 행적이 선덕왕 때 있었다. 석장 끝에 배주머니를 걸어 놓으면 그 석장이 저절로 날아 보시하는 집에 가서 흔들어 소리를 내며 그 집에서 알고 공양미를 널어서 자루에 차면 절로 돌아왔으므로 석장사라 했으니 신기함이 이러해서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재주가 능통하여 신묘하기 비할데 없으며, 또한 문장이 능숙하였다. 

영묘사의 장육삼존 천왕상과 전탑(殿塔)을 덮은 기와, (사)천왕사탑의 팔부신장, 법림사의 주존 삼불과 좌우 금강신이 모두 그가 만든 것이고, 영묘사, 법림사의 액자도 썼다. 또한 일찍이 벽돌을 새겨 조그마한 탑을 만들고 아울러 불상 3천여 개를 만들어 그 탑에 봉안하여 절 안에 두고 예배했다. 영묘사 장육존상을 만들 때도 스스로 정을 들어 정수(正受)에 상대되는 것으로 법식을 삼았다. 그러므로 장안의 남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운반하였다.
(*영묘사는 곧 한번 다룰 예정입니다)

석양지는 선덕여왕대에서 문무왕 19년(679)때까지 유명했던 최고의 조각가이고 거장이었습니다. 이 문헌사료덕분에 한국역사에서 적어도 7세기말 이전에 전탑이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불령사 천불탑은 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할까요? 전탑의 양식을 보면 번갈아 가며 배치된 문양전(文樣塼)에 연화 좌대 위 이중 광배를 두른 3구의 불상과 2기의 탑을 반양각으로 새기고 있는데, 이는 통일 신라 시대 유행한 양식 중 하나입니다. 이 양식적 측면덕에 전탑의 건립 연대를 통일 신라 시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이 천불탑의 벽돌들은 장연리에 있던 장연사(長淵寺址)에서 구워 한 장씩 신도들이 옮겨와 탑을 세웠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이 장연사 역시 신라시대에는 거찰이었으나, 흔적도 없고 현재는 감 과수원밭이 되어 있지요.


통일신라시대 전각과 불탑의 모습

본론인 전각의 모습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다음의 사진에 보이듯이 건물이 한두개가 아니라, 탑 주위를 빼곡이 두르고 있습니다. 확대사진이 없어서 아쉬운데, 세가지 층에서 각기 다른 형태와 규모의 건축임을 쉽게 알수 있습니다. 특히 비죽이 튀어나온 층의 주심포형식 건축이 가장 대형으로 보입니다.

간략하게 불상과 탑조각을 언급하자면 불상은 불신과 몸 전체를 감싸는 거신광배(擧身光背), 연화대좌(蓮花臺座)까지 모두 갖춘 모습으로. 불상의 머리에 큼직한 육계를 씌웠습니다. 불탑은 3층으로 이중기단에 상륜부까지 완전하며 체감율과 기단 형태 등, 양식적으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 전탑이 통일신라의 것임을 뒷받침해 줍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통일신라시대 '목탑'으로 보이는 부조도 있어서, 당대 목탑구현에도 1차사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탑의 형태는 한가지가 아닙니다. 여러 모양을 가지고 있어 역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탑과 불상조각 역시 연속해서 계속 이어져 있습니다.


소형건물 부조
주인공인 건축물의 모습입니다. 이 것은 윗사진의 상층에 보이는 소형건축입니다. 건축비율상 치미와 처마가 큰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심포형식으로 기단부도 잘 묘사되어 있고, 문까지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좀 더 음영이 강한 사진으로 다음의 세 사진은 같은 모델의 모두 다른 조각들입니다.
당대 무늬도 새겨져 있고, 보시다시피 건축물 사이에는 운무 (구름)무늬도 운치있게 새겨져 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대형건물부조
다음은 가운데 층에 자리잡고 있는 '대형건축'으로 보이는 조각입니다. 사실 이 부조가 매우 흥미를 끄는데, 소형전각의 경우 더 후대지만 고려시대 청동경에도 나오는데 비해, 이러한 대형건물로 보이는 국내부조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하단에 위치한 것이 추정 대형건물입니다. 클릭하면 확대해서 볼수 있습니다.
화질이 좋은 사진을 찾지 못해 가장 아쉬운게 이 부분인데, 아쉬운대로 일단 확대사진 세장입니다. 역시 처마가 굉장히 깁니다. 모두 우진각지붕으로 보이며 건물마다 도리나 창방의 모습도 조금씩 다릅니다. 참고로 황룡사 금당도 우진각으로 추정합니다. 사실 현재 남아있는 국내 대형목조건축물의 경우 대부분 팔작지붕이라 만약 황룡사 대금당이 우진각으로 재건된다면 우리가 잊고 지내던 새로운 미학을 맛보게 될 듯 합니다 (백제 재현단지의 능사 금당도 팔작으로 지었습니다).

대형건물부조
흥미로 소개한 바 있는 대방광불화엄경 (754년추정)에 나오는 회화와 비교해 보지요 (원은 무시해주시길).
참고로 백제재현단지의 대형건축도 거의 다 팔작지붕입니다 (사진은 사비궁 중궁).

마지막으로 잠깐 소개한 울산 농소 중산리사지에서 발견된 전탑문양입니다. 역시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연구는 미비합니다. 사진도 이 한장외에는 접한 적이 없습니다. 어딘가 일관성이 있어보이는 모습입니다.

아무튼 아무쪼록 이 전각문양과 목탑문양에 대한 좀 더 세밀한 연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현재 진행중인 경주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청도는 경주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사진출처:
http://blog.daum.net/okgolf/5465163?bz=article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8kHG&articleno=5465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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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솔까역사 2014/07/23 17:26 #

    벽돌에도 저런 그림을 새겨 넣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복원에 좋은 참고가 되겠군요.
  • 역사관심 2014/07/24 03:01 #

    이 정도 되는 자료는 필수참고로 보이는데 아직까지 어디서도 관련조사나 연구를 본적이 없어 한편으로 의아합니다.
  • 익명 2014/07/23 19:33 # 삭제

    의외로 경주의 신라테마파크에 복원된 통일신라 건물과 유사하네요. 의외로 실제와 가깝게 복원되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4/07/24 03:17 #

    최근 유리로 만든 경주 동궁원은 오히려 비슷한데(유리건물이고 틀만 따온거라 처마각은 처지지만) 밀레니엄파크는 대부분 팔작이라 다양성에서 좀 아쉽습니다 ^^;
    http://www.gyeongjuepg.kr/upload/board/board_0043/bod_408/bod_1372384896.jpg
  • 부산촌놈 2014/07/25 15:57 #

    본문에서도 지적하셨지만 우진각지붕이 우세하군요..
  • 역사관심 2014/07/26 10:10 #

    오랜만입니다. 네 확실히 웅장한 맛도 더 있을것 같습니다. 이런 자료는 많이 알려져야 할텐데...
  • 부산촌놈 2014/07/27 23:40 #

    근데 구조도 좀 더 복잡하고 특유의 윤곽도 아름다워서 팔작지붕이 선호될 것 같은데, 의외로 웅장한 건물들은 우진각지붕을 채택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자금성 태화전도 그렇고, 한양 도성 성문이나 궁성문도 그렇고... 왜 그럴까요?
  • 역사관심 2014/07/28 05:46 #

    사실 어느 글에서 읽었지만 (동감하기에), 삼국중 한국이 유독 대형건물을 팔작으로 지어온 감이 있긴 합니다. 거꾸로 보면 중국이나 일본에서 보기에는 더 직선적이고 웅장함을 주는 우진각을 두고 왜 팔작을 고집하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죠.

    듣기로는 우진각이 팔작보다 내구성이 훨씬 좋다고 하더군요. 이게 팔작지붕은 합각이 커져서 풍판이란 것으로 합각을 꾸밀수 밖에 없는 데 이런 형식이 약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금성이나 동대사도 합각을 포기하고 그대신 내림처마선을 길게 빼서 웅장함을 주는 방식으로 갔으리라는 생각이지요.

    또한 조선시대에는 처마와 서까래 (즉 장연)의 길이에 한계를 두었으므로 제한된 장연을 가지고 우리지붕의 특성인 처마를 길게 빼내려면 결국 우진각으로 짓기에는 무게중심이 불안해지므로 대형건축은 팔작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한것처럼 소나무로 수종이 변하면서 목재자체가 대형을 구하기 힘들어서 저런 제한된 규모에서 지어야하는 법령이 지정된 감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우진각지붕이 대형건축의 경우 더 들어맞고 (목재만 구할수 있다면), 더 웅장한 미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번 황룡사나 미륵사 금당의 경우 팔작과 우진각의 조화를 보여주는 (특히 대금당과 대강당의 경우는 우진각으로) 새로운 고대-중세 한국건축미학을 확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 M i d s e n 2017/09/04 18:52 #

    팔작지붕이 아름답긴 하지만 대규모 건물일수록 풍판도 커져야돼서 그 부분이 썩어버리기 쉽게되죠. 우진각은 윗면을 기와로 다 막아버리니 더 내구성이 좋구요..

    그리고 중간의 부조된 탑은 목탑이 아니라 석탑으로 보입니다
  • 역사관심 2017/09/06 02:26 #

    우진각 건물좀 정말 보고 싶어요. 한국은 문화적 프레임이 어찌나 강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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