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스러운 조선중기 괴담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15. 17세기) 설화 야담 지괴류


흥미로운 조선시대 괴담 두가지를 소개합니다. 이 두 괴담은 [대동야승]과 [천예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조선중기 문인인 '채수'선생이 겪은 기이한 이야기.

15세기중반 채수 괴담

대동야승- 용천담전기
빙군(聘君) 양정공(襄靖公) 채수(蔡壽)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따라 경산(慶山)에 머물렀다. 두 아우와 관사에서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 방 밖으로 나가보니, 흰 기운이 확대경 같이 오색이 현란하게 공중에서 차바퀴처럼 돌아 먼 곳에서 차차 가까워오는 것이, 바람과 번개 같았다

양정공이 놀라 황급히 방으로 들어왔다. 문턱을 넘어서자 그것이 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조금 있으니 막내 동생이 방구석에서 자다가 놀라 일어나 뛰며, 아프다고 부르짖는 소리를 지르며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버렸다. 양정공은 조금도 상한 데가 없었다. 나쁜 기운이 사람을 상하게 할 때는 그 허(虛)함을 타서 하니, 사람의 기운이 완정(完定)하면 해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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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1449~ 1515)는 조선초기의 유명한 문신이죠. 유호인등과 연복사등을 둘러보는 유명한 [유송도록]에도 참가한 대표적인 초기의 문인이기도 합니다. 이분이 어린 시절 경상북도 경산시에 머물던 어느날, 이 관사에서 두 동생과 한밤중에 소변을 누러 가는데, 갑자기 흰색의 운무같은 것이 오색으로 확 퍼지며 빙빙 돌면서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공격해온 것입니다. 놀라서 셋이 방으로 뛰어들어오자, 방안까지 이 기체가 따라들어왔는데 막내동생에게 붙어서 결국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버렸다는 기이한 이야기.

이분은 참고로 유명한 유학자이면서도 도교적 소설인 한글최초의 소설 '설공찬전'을 지은 작가입니다 (이 책의 국역본이 1997년에 극적으로 발견됨에 따라 이젠 널리 알려진 소설이 되었습니다. 그전까진 사라진 줄 알았죠, 다만 뒷부분은 날아가 버렸습니다). 따라서, 이분에게 이런 도교적 색채의 괴담이 붙은 것도 그렇게 이상한 바는 아니지요. 1469년에 장원급제를 하고 (아마도) 한양으로 가므로, 이 에피소드는 아마 15세기 중반무렵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귀신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공중에서 차바퀴처럼 돌면서 따라 날아들어왔다는 모습에서 UFO스러운 느낌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대동야승에 전하지만 원전은 1525년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라는 김안로(金安老. 1481~1537)가 귀양살이를 하며 쓴 야담집에 원전하는 글입니다. 따라서, 채수가 이 일을 겪었을 1400년대 중반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연대를 산 인물입니다. 즉, 김안로가 살아있었을 당시에 생존했을 채수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하죠. 이러한 근거를 김안로 자신이 쓴 '용천담적기 서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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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버리기로 결심하여 스스로 화를 밟으려고 결단하였으니, 비록 구렁텅에 빠져 죽더라도 또 후회할 것이 무엇 있겠는가. 천지의 귀신들이 위에 벌려 있고 옆에 나열하여 있으니 나를 죄에 얽어매려는 사람들에 대하여 나의 마음속으로는 아무것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횡액(橫厄)으로 당한 환난은 옛날 사람들도 미리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조용히 조그마한 방을 쓸고 향을 피워 마음을 고요히 하면 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남은 생명을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은 군자가 병폐로 생각하는 바라, 백번 귀양살이한 사람이 정신이 피로해서 성인의 글을 보아도 두어 줄을 읽지 못하고 마음이 심란하여 푸르고 붉은 색이 다르게 보여 문득 그 장(章)도 마치지 못하고 걷어 치워버렸다. 긴 밤과 기나긴 낮을 뜻 둘 곳이 없으면 때로 예전에 친구들이 하던 이야기를 기억하며 붓 가는 대로 기록하여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농담하는 것에 대신하였다. 또한 새로 얻는 것이 있으면 그 끝에 보충하여 번민을 덜고 적적함을 위로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였다.

비록 이런 것으로 마음을 써서는 안 되겠지만 장기나 바둑을 두거나 낮잠을 자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패관소설(稗官小說)도 충분히 박식(博識)을 돕고 잃어버리거나 떨어진 것을 주워 모을 수 있어서 역사의 편집을 맡은 사람들이 반드시 참고하여야 할 것이 있으니 어찌 끝끝내 감추어 두어 사유물(私有物)로만 할 수 있겠는가.” 하니, 나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아직 그렇게 할 수는 없고 다만 책상 안에 두어서 나의 자손들로 하여금 오늘날의 나의 불우하고 고생스런 상황을 알게 하여 자손들이 마땅히 힘쓰도록 할 뿐이다.” 하였다.

- 1525년(중종 20) 12월 상한(上澣)에 인성당(忍性堂)에서 김안로는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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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천예록]에 등장하는 '이만지'라는 무인이 겪은 괴담입니다.

17세기 이만지 괴담

천예록
I. 영남사람 이만지(李萬枝)는 힘이 세고 담력이 강해 두려워하는 것이 없었다. 하루는 집 마루에 앉아있는데, 폭우가 쏟아지며 뇌성벽력이 치더니, 큰 불덩어리가 집에 들어와 뜰에서부터 부엌으로 방으로 서너 바퀴 회전하며 굉음을 내고 휘저었다. 식구들이 다 놀라 기절했는데 그는 "죄 지은 것이 없는데 어찌 벼락을 맞겠는가?" 하고 꼿꼿이 앉아 있었다. 이윽고 불덩어리는 집안을 돌다가는 나가 집 앞의 홰나무(槐木)을 때리고 사라졌다. 이만기는 곧 기절한 식구들을 조리해 깨어나게 했는데, 그해 아내와 아들딸은 모두 죽었다.    

II. 후에 이만지가 함경도 별해 첨사가 되어 첩을 데리고 부임하니 진(鎭)의 관사에 귀매가 있어 첨사가 부임한 첫날밤에 죽는 일이 서너 차례나 일어났다. 그래서 첨사들이 관사를 비우고 가정집에 나가 거처해 관사는 다 폐사로 되어 있었다. 이만지는 바로 사람을 시켜 청소하게 하고 밤에 혼자 앉아 있었다. 

밤중이 가까워오니 방안에서 어떤 물체가 하나 나타나 앞에 앉는데, 나무뭉치에 검정보자기를 덮은 것이었다. 이어 같은 물체가 두 개 더 나타나 먼저 나타난 것을 호위하고 앉았다. 그러고는 앞으로 다가오면서 핍박하기에 뒤로 물러나다가 벽에 닿자 귀신에게 호통으로 치며 소원을 말하라 했다. 이에 귀매는 배고프다 했다. 

이만지는 알았다 하고 주문을 외면서 손가락을 퉁겨 소리를 냈다. 귀매들이 두려워하자 주먹을 쥐고 가운데 있는 것을 힘껏 내리쳤다. 귀매는 옆으로 피해 맞지 않고 주먹만 다쳤다. 세 귀매는 박대해서 물러간다 하고 사라졌다. 다음날 이만기는 음식을 많이 마련하고 무당을 불러 3일간 귀신을 달래는 굿을 했다. 이후 별해 관사에 귀매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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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만지(李萬枝)는 정확한 인물파악을 아직 못했습니다만, 아마도 1634년에 출생, 사망년도는 미상인 17세기 무신같습니다 (여기 나오는 행동거지를 보아도 도저히 문신은 아닌 듯). 다만 이분의 본관과 거주지가 원주(原州)인지라 지금은 흔히 경상도만을 영남으로 주로 부르기때문에 약간 이상합니다. 아무튼 이 글이 실린 천예록이 17세기의 글이니 적어도 그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의 집에 갑자기 폭풍우가 치던 날, '큰 불덩어리가' 집으로 날아들어와 부엌, 뜰, 방을 서너바퀴나 빙빙 굉음과 함께 돌아다녔다는 겁니다. 식구들은 놀라서 기절초풍, 불덩어리는 온 집을 돌아다니다가 집앞의 '홰나무'를 때리고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 그 여파인지 아내와, 아들-딸이 모두 당해 사망해버렸다는 결말은 앞서 소개한 채구의 동생과 비슷한 비극적 결말입니다.

무언가 '날아와서' 사람을 해한 이야기인지라 UFO 괴담으로 붙여보았습니다 (UFO란게 별게 아니라 사실, '미확인비행물체'아니겠습니까 ^^). 이만지 괴담의 두번째 이야기는 비행물체는 아니고, 귀신을 내쫓은 이야기지만 소개하는 김에 같이 포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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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제목에 '혹은 세가지'라고 적은 이유는 예전에 가장 UFO스러운 괴담을 전한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15세기초에 이순몽이 겪은 불덩어리 에피소드였죠.

이순몽 UFO 외국인 괴담 (포스팅의 두번째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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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존다리안 2014/07/25 09:15 #

    피를 토하며 죽다니... 방사능이라도 쬐었던 걸까요?
    UFO에서 나온 살인광선에 맞아 살해된 사람 괴담도 있어요.
    증세가 비슷하군요.
  • 역사관심 2014/07/26 14:10 #

    오오 이야기 링크좀 걸어주세요~~
  • 존다리안 2014/09/08 14:03 #

    으음... 인터넷에서라기보다는 "초괴기 UFO 현상 FILE"이라는 괴상한 책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 역사관심 2014/09/08 14:22 #

    아아 그런책 재미있죠 ㅎㅎ
  • 존다리안 2014/09/08 14:24 #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대사전 류로 일본책 번역한 그런 책이 많았지요.
    울트라맨이나 고지라 같은 것도 그런 책으로 나왔었고 슈퍼로봇류도 있었지요.
  • 역사관심 2014/09/08 14:43 #

    그랬죠 ㅎㅎ. 그걸로 누가 세네마네 신주모시듯 ^^;
  • bergi10 2014/07/25 09:23 #

    허... 불덩어리가 사방을 돌아다녔다..?

  • 역사관심 2014/07/26 14:10 #

    훌훌~~~ 휭휭~~~ 누가 그림으로 좀 그려주면;;
  • 천마 2014/07/25 09:48 # 삭제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그런데 이야기에 나오는 현상은 "구전번개"일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폭우와 뇌성번개사 치는 중이었으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보이고 첫번째이야기에는 날씨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구전번개현상은 흐리고 습한 날씨에도 목격된 예가 있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은 것도 첫번째이야기는 구전번개에 맞았다고 해도 설명이 가능하고 두번째의 경우 가족들이 그해에 죽었다고만 했지 어떤이유로 어떤 증세로 거의 동시에 죽었는지 차례로 죽었는지 전혀 설명이 없는 것을 볼때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 흔히 보는 과장법 아닌가 합니다.(어느집 누구가 어떤일을 저질렀는데 그 후로 그집 누구가 무슨 않좋은 사건을 당했다더라는 식의 동네괴담은 꽤 흔하죠.^^;)

    그나저나 전설의 고향같은 과거 전설이나 괴담은 저도 상당히 좋아합니다.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 토속적인 느낌이 있어서 좋거든요. (반면 도시전설이나 현대괴담등은 뭔가 어색한 느낌이라 별로^^;;;)
  • 역사관심 2014/07/26 14:11 #

    오 그럴 가능성도 있겠네요- 과학적인 분석이십니다! ^^

    저도 현대괴담보다는 (물론 들을때는 더 무섭습니다만;) 이런 이야기가 좋습니다 ㅎㅎ
  • 애쉬 2014/07/25 10:37 #

    글쓴 이 주변 사람이 죽는 치밀한 구성이네요

    미스테리하기 이를데 없는 이야기네요
  • 역사관심 2014/07/26 14:11 #

    찬찬히 살펴보면 신기한 이야기가 꽤 많죠. 특히 '짧아서' 더 그런듯...
  • 迪倫 2014/07/25 12:58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불덩어리가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해꼬지를 한다는게 왠지 SF 영화의 한장면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4/07/26 14:12 #

    누가 나중에 화면에 구현해주면 좋겠어요. ^^ 황~황~ 이런 소리 내면서 날아다니는 불덩이...
  • ㅇㅇ 2014/07/25 14:59 # 삭제

    이 포스팅과 관련은 없지만 블로그 주인장께서 관심있어 하실것 같은 뉴스기사 한개

    링크합니다. 사실 저도 관심이 많이 생기네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262&aid=0000007530
  • 역사관심 2014/07/26 14:12 #

    찬찬히 살펴봤는데 너무나 흥미만점입니다. 후일 한번 포스팅해봐야겠어요 (이거 참 밀린 게;;;). 정말 고맙습니다.
  • anchor 2014/07/28 09:00 #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께서 소중하게 작성해주신 이 게시글이 7월 28일 줌(www.zum.com) 메인의 [이글루스] 영역에 게재 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7월 28일 줌에 게재된 회원님의 게시글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역사관심 2014/07/28 09:38 #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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