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는 위험해도, 황룡사 복원시 수종은 소나무가 아닌 참나무 (뉴스단상)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최근 몇 황룡사 (및 광의의 삼국건축이야기) 재건관련 이야기를 한 김에 하나의 단상을 추가합니다. 오늘 이런 기사가 떴습니다.

부분발췌:
애국가 2절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30여년 뒤면 소나무보다 신갈나무 등 참나무류가 산을 뒤덮어 애국가 가사가 무색해질지도 모르겠다.

고려대 환경생태공학과 이우균 교수 연구팀은 25일 “기후 변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소나무의 생장이 저조해지고 신갈나무 등 참나무류 분포는 넓어지는 등 식생의 변화가 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연구 결과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 상승은 소나무, 일본잎갈나무, 밤나무 생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잘 자라지 않아 분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소나무는 현재 우리나라 수목 중 22%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기온 상승은 신갈나무와 졸참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등 참나무류의 생장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됐다.

강수량의 증가는 소나무나 참나무류 모두 생장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왔다. 연구팀의 논문은 최근 발간된 <한국기후변화학회지>에 실렸다. 중략. 해송이 먼저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숲은 인위적인 작용을 하지 않으면 한해살이풀에서 작은 나무(관목), 소나무(침엽수), 참나무(활엽수), 서어나무·박달나무 순으로 우점종이 변하는 자연천이 과정을 겪는다. 우리나라는 현재 산림면적이 약 640만㏊로, 활엽수림이 47%, 침엽수림이 37.8%, 혼효림(침엽수나 활엽수 어느 한쪽이 70% 이하인 경우) 11.6%, 죽림 등이 3.6%를 차지하고 있다. 강원도 활엽수림이 1995년 32.8%에서 2013년 54.9%로 증가하는 등 뚜렷한 자연천이 현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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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목에서도 등장하듯,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종이자 수백년간 문화의 상징이던 '소나무'가 위기를 자연의 변화로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참나무와 떡갈나무등이 많이 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소나무는 단지 우리의 풍광을 지배해 온 나무일 뿐 아니라, 선조들이 주로 사용하던 전통건축의 '목재'입니다. 그래서 이번 숭례문 복원에도 금강송이 유명세를 타는 등, 소나무와 문화재보존-복원-재건은 치즈버거와 치즈같은 관계로 알려져 있죠. 

황룡사재건, 경주월성재건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그리고 앞으로 해나가야 할 많은 전통건축프로젝트를 생각하면 이러한 뉴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신라나 백제의 왕궁, 탑, 사찰들을 재건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동적으로' 최근 유명세를 탄 (숭례문 덕에) '금강송'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소나무를 보존할 대책방법을 강구해야 함이 맞습니다만, 그와 별개로 '참나무계열'의 등장은 우리에게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앞서 말씀드린 삼국시대의 문화재복원및 재건에 쓰일 나무는 목재자체가 고려-조선시대와는 차등을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황룡사 중금당- 이 건축에 쓰여야 할 수종은 소나무일까?

2007년 아주 훌륭한 논문 한편이 발표되었습니다. 예전에도 짧게나마 소개한 바 있는 [우리나라 건축물에 사용된 목재 수종의 변천 (박원규, 이광희)]가 그것입니다. 이런 현장 활용성이 높은 논문이 많이 나와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조금 길지만 바쁘신 분은 굵은 체만 보시고, 관심이 있는 분은 발췌한 부분이마나 전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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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수종에 관한 자료는 이미 발표된 논문과 보고서에 대부분 수집하였다. 목조 건물이 남아 있는 고려시대 이후는 건축부재의 수종을 조사한 문화재청의 수리보고서와 학회논문 자료를 주로 이용하였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집터나 주거지에서 발굴된 숯이나 목재 中 화덕자리에서 출토된 것은 제외하고 불타 쓰러진 기둥 등 건축물 부재로 보고된 자료만을 포함하였다.2) 수종자료 중에서도 목재조직 전문가에 의해 현미경적 방법으로 식별된 것만 포함하였다.

수종 자료를 시대별(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원삼국,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로 나누어 건축물에 쓰인 수종의 변천을 조사하였다. 시대구분은 구석기 70만년전~BC 8,000년, 신석기 BC 8,000년~10세기,청동기 BC 10세기~4세기, 철기시대와 원삼국 BC 4세기~AD 1세기, 삼국시대 AD 1세기~9세기, 고려시대 AD 10세기~14세기 후반, 조선시대 1392년~1910년, 근대 1910년 이후로 구분하였다. 현존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조선시대는 다시 세분하여 前期 1392년~임진왜란(1592년), 中期 1592년~경종 말년 (1724년), 後期 영조 1년(1725년)~순종 말년(1910년)으로 구분하였다.3) 최종적으로 총 65개 유구 또는 건축물의 자료가 취합되었다(표 1). 

선사시대로는 구석기유적지인 대전 노은동 유적, 군산 내흥동 유적 등 2개, 신석기 유적지인 옥천 대천리 집터와 대전 노은동 유적 등 2개, 청동기 시대로는 평택 현화리 유적을 포함하여 총 9개의 자료를 조사하였다. 삼국시대로는 부여 궁남지를 포함한 개의 자료를 조사할 수 있었다. 고려시대 건축물 중 조사된 곳은 부석사 조사당,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등 6개 건축물이었다. 현존하는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는 조선시대로는 무위사 극락전을 포함하여 35개의 자료를 조사할 수 있었다. 근대에는 구조선총독부 청사(중앙청)와 조계사 대웅전 등 2개의 자료를 포함하였다. 최종적으로 조사된 부재 수는 5,848점이었다.4)조사된 수종의 지리적 분포, 크기, 습성 등 수목학적 특성과 목재비중, 강도, 내부후성 등재질 특성은 문헌5)을 통하여 조사하였다.

원삼국/삼국시대 이전 즉 선사시대에는 상수리나무아속(참나무속)이 94%(점유율)라는 높은 비율로 주거지 부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로 오면서 참나무는 57%로 여전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굴피나무(21%)와 밤나무(13%)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는 참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활엽수종이 건축부재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참나무 (상수리나무)

고려시대로 오면서 참나무는 줄어들고 대신에 소나무(71%)와 느티나무(22%)가 많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가 되면서 전․중기에는 소나무(73%), 참나무(14%),느티나무(9%)로 소나무의 사용이 두드러지게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소나무의 우점 현상은 더 심해져서 소나무의 점유율이 88%로 건축부재의 대부분에 소나무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인 근대에는 소나무뿐만 아니라 잣나무, 전나무, 잎갈나무, 가문비나무 등 여러 침엽수종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활엽수종은 근대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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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는 기건 비중과 압축강도, 휨강도 모두 큰 값이 나왔다(그림 4와 그림 5). 참나무는 선사시대와 삼국시대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근대로 오면서 건축부재로서의 사용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조선 전기와 중기 사찰 건물에 많이 쓰였던 수종이다. 현존 最古의 건물들인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 가장 많은 이용이 되었던 느티나무는 압축강도는 중간, 휨강도는 中上 정도였다.선시대의 대부분 건축부재에 쓰인 소나무는 참나무나 느티나무보다 강도는 떨어지나 소나무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비(比)강도 즉 단위 무게 당 강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각 건축부분별로도 정말 유용하게도 분석을 세밀하게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둥'의 경우, 
"삼국시대의 기둥에 사용된 수종은 활엽수가 가장 많았다. 삼국시대의 유적中 김해 봉황동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건축물 기둥의 수종을 살펴보면 밤나무가 8개, 굴피나무 5개, 참나무 4개, 팽나무 1개로 모두 활엽수가 사용되었고 대전 월평동 유적의 기둥은 모두 참나무(15개)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사용되었는데 부석사무량수전과 수덕사 대웅전의 기둥은 모두 느티나무였다. 반면 부석사 조사당의 기둥은 모두 소나무가 사용되었으나 전체적인 비율에서 보면 소나무 보다는 느티나무가 더 많이 사용되었다. 
느티나무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느티나무 기둥이 소나무보다 더 많이 사용된다. 해인사법보전, 관룡사 약사전의 기둥은 모두 느티나무였다. 조선중기로 오면서 소나무의 비율이 월등히 높아진다. 소나무 이외의 수종이 기둥으로 사용된 중기 건물도 있다. 화암사 극락전, 불갑사 대웅전의 기둥은 느티나무가 주로 사용되었지만 잣나무, 전나무, 참나무도 사용되었다. 법주사 대웅전의 경우도 하층 기둥이 모두 참나무로 만들어진 반면에 상층 기둥은 모두 소나무이었다. 그 밖의 조선중기 건물에서는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이 우세하다. 조선후기로 오면서 소나무의 비중이 더욱 커지며 전나무의 사용도 많아진다.

삼국시대(A.D. 1세기~9세기)의 건축부재에는 여전히 참나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밤나무, 팽나무, 가래나무 등 활엽수종이 많이 발견된 반면에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았다. 현대의 우리에게 건축재로 친숙한 소나무가 삼국시대에는 별로 이용되지 않았다. 이는 서늘하고 습윤한 기후로 삼국시대에는 소나무가 많이 자라지 않았고 활엽수종이 우점한 원인으로 보인다 (주: 서늘하고 습윤한 기후라고 하면 일본의 삼나무, 참나무 숲이 떠오릅니다)고려시대(A.D. 10세기~14세기)로 오면서 눈에 띄는 것은 참나무의 감소와 느티나무와 소나무의 증가이다. 고려시대에는 기후적으로는 중세온난기가 대부분 포함된 기간으로 삼국시대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즉 온난한 건축물이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게 해주는 사실은 우리나라 最古 건축물 중 하나인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이 모두 느티나무로 되어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삼국사기 거기(車騎)조에도 느티나무가 귀중한 우량재라고 기록되어 있다.35)

조선시대로 오면서 소나무가 건축부재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고려시대의 몽고전쟁이나 국정 문란으로 인해 인간에 의해 산림이 파괴되고 척박한 산림에서도 잘 자랄수 있는 소나무가 많이 분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 전․중기 보다 후기로 오면서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기후면에서만 보면 한랭한 소빙기가 극성을 부렸던 16세기부터 19세기 전반에는 소나무의 성장에 분명 장애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조선시대로 오면서 수종 선택에서 비기후적 영향이 커졌던 것으로 보인다. 소나무를 보호하는 정책을 조선정부가 했기 때문에 건축재로 소나무를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있었던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소나무는 수축률이 14%로서 뒤틀림이 적고 압축강도 430kg/cm2, 휨강도 747kg/cm2, 기건비중 0.47로 무게에 비해 강도는 우수한 건축부재이고 곧은 수간을 가져 건축규모가 커지며 활엽수로는 감당하지 못하였던 부재를 공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이나 창덕궁 같은 대규모의 궁궐건물에는 소나무가 대부분 쓰인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특히 후기에는 소나무가 최고의 목재로 대접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소나무의 내부후성 즉 건축재로서의 보존성은 떨어지는 수종으로 평가된다."

결론중:
조선시대 건물의 원형복원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건물도 보수를 해야 하고 선사시대나 삼국시대의 집터나 건물지에서 건물을 복원해야 한다면 원형의 목재를 사용해야 되기 때문에 소나무림 위주로 수림되어있는 문화재용 산림육성 못지않게 활엽수림의 육성 또한 중요시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건축물에 사용된 목재 수종의 변천,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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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이러한 논문은 90년대 정도에는 나와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앞으로라도 이러한 '기본이 되는' 훌륭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기를 기원합니다. 복원을 하니 마니 하는 탁상공론같은 이야기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고대-중세건축에 '접근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신실한 노력을 하는 모습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결국 황룡사 목탑과 금당은 '참나무' 와 '밤나무등 활엽수'계통의 나무가 활발하게 쓰여야 하는 것이지요. 필자의 단견이지만 이런 논의는 현재까지 진행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 연구가 고작 7년전이니). 이제 복원연구센터까지 건립이 되는 마당이니, 이런 복원의 기초를 깔아주는 훌륭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서, 부디 황룡사 재건프로젝트가 앞으로 이뤄내야 할 많은 고대건축문화재의 재건및 중건에 모범적인 사례가 되길 기대합니다.

(진행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는 단적인 이유는 백제재현단지의 대부분의 건축 역시 소나무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백제숲'까지 조성중이지요. 소나무숲이 아닌 활엽수림이 되어야 할 듯 합니다. 이 연구 전의 이야기긴 하지만, 그리고 이제까지 한국사회의 관념상 '전통수= 소나무'라는 인식이 시대별로 달라져야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입니다).

'백제역사재현단지 '백제 명품숲' 조성 순조 (제발 명품같은 싸구려 단어는 빼줘요).
도는 백제 숲 조성을 위해 한주당 3백만원부터 2천만원에 이르는 소나무 632주를 무상으로 반입하여 식재 완료 했고, 앞으로 300주의 소나무가 협의 완료되어 반입 예정에 있다. 이는 16개 시‧군에서 기증된 것 이외에 각종 공사장의 벌목대상 소나무를 직접 발품 팔아 모은 것으로 자연환경 보존은 물론 40억원 정도의 예산을 절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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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이야기로 통상 우리가 말하는 조선식 한옥을 만들때도 꼭 소나무를 고집해야 하나를 이야기하는 흐름도 있습니다 (작년 한 블로거의 글입니다). 사실 조선시대의 건축을 복원하거나 재건할때는 소나무를 고집해야하는 게 맞겠죠. 다만 이분의 이야기는 '현대한옥'을 지을 때 수종을 고집하는 일에 대한 반대의견입니다.

발췌:
초가집부터 경복궁까지 한옥에는 반드시 소나무가 있죠. 목조건물인 한옥은 기둥과 대들보는 물론 서까래 등 거의 모든 재료로 소나무가 쓰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왜 유독 소나무로 한옥을 짓는 걸까요.

사실 소나무는 목재로서 그닥 매력적인 소재는 아닙니다. 재질이 무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옹이(나무 줄기에서 가지로 뻗어나가는 시작 부분)가 많아 가공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또 송진이 많아 건조하기도 만만치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뒤틀리거나 갈라지는 현상이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수입목 중에서도 저렴한 편에 속합니다. 외국에서도 소나무는 목재 중에서 저급에 속합니다. 

중략. 문제는 이 보도가 나가고 나서 상당수의 한옥 전문가들이 발끈했다는 것. 국내산 소나무는 외국산과 다르다면서 우수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럼 우리 옛 조상들은 소나무만 썼을까요? 아닙니다. 밥상만 봐도 다릅니다. 서민들이야 흔한 소나무로 만든 소반 등을 썼지만, 양반들은 괴목(느티나무)로 만든 상을 썼습니다. 현재 앤틱시장에서 유통되는 국내 고가구 중 소나무로 만든 것이 얼마나 될까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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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 말

보통, 소나무보다 삼나무나 참나무계열의 목재가 대형건축에 더 적합한 수종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삼나무와 좀 헷갈리는 (죽죽 뻗는) 편백나무가 전통가옥의 대표적인 수종이지요. 하지만, 이들은 고대건축 재건시 한 수종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최근 그들의 고대-중세건축 재건성과인 헤이안 쿄 1차 대극전 재건의 경우에도 공포와 하중이 많이 실린 곳 (주두나 하앙등)에는 전통적으로 쓰이는 '느티나무'를 위주로, 나머지 기둥이나 벽에는 노송등이 쓰였습니다. 이는 오늘 소개해드린 것같은 그들의 연구성과아래 이뤄진 것입니다. 
나가노시 근교 삼나무 숲

또한 이 논문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또하나의 행간'은 바로 이것입니다. '고정된 전통'이란 건 죽은 전통이란 것입니다. 지금부터 지어내는 '신한옥'은 '소나무'이어야 할 이유도 당위성도 없습니다. 참나무와 느티나무가 우리 산의 주수종이 된다면, 삼국시대처럼 그에 맞는 한옥이 탄생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수백년 후 언젠가 다시 소나무가 주종이 될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참나무와 느티나무가 주종이 된 21세기 신한옥시대에는 그 목재만의 또다른 미학 (어쩌면 삼국-고려시대 선조들이 느꼈던 재질의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 와중에 소나무로 '전통한옥'을 짓고 싶은 사람은 그 수종을 선택, '조선시대식 한옥'으로 여전히 선택해서 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항상 운동하는 성질을 가진 건강한 문화의 정체성의 흐름을 보는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참나무중 처음 소개한 오늘자 기사에도 한국토양에 적합하다는 상수리 나무의 경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상수리나무는 광명시의 도덕산, 구름산, 가학산, 서독산 등지를 포함한 전국 대부분의 산림과 숲 자락, 민가 주변 농경지와 임산지의 경계부, 산정 인근의 양지 등에 집단으로 서식하는 경우가 많다. 참나무속 중에서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 수고(樹高)도 높다. 아울러 지하고(枝下高)가 높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무를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라고 되어 있어 목재로서 키우기에 적합할 듯 합니다. 또한 전문가가 쓴 글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농민분들이 만들어나가는 사이트인 다음 링크(한농민친환경지킴이 사이트)에서 이미 한국의 대표수종은 소나무, 참나무 두종류가 모두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소나무와 참나무의 생장속도에 대한 부분을 조금 발췌하면 "그러나 소나무에 비해 자라는 속도가 월등히 빠른 참나무가 우리 산을 대표하는 수종(樹種)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확하게 우리나라 대표 수종이 무엇인지에 대한 결론은 뚜렷하게 내리지 못하였지만 소나무나 참나무 모두 우리나라 대표 나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삼국시대의 건축복원을 위한 참나무 속 산림을 만든다면 황룡사 금당이나 여타 삼국시대 건축을 재건하는 데 쓸수 있을까요? 그렇진 못할 듯 합니다. 다음 링크의 '벌기령'(즉 목재로 쓸수 있는 시기)를 보면 소나무나 참나무 모두 50년이상이 걸리는 지라, 수입목재를 써야 할 듯 합니다 (기준벌기령 링크 * 이 정보는 無碍子님의 정보에 따라 수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금강송등 소나무숲을 조성하는 것처럼 장기적으로 대형목재로 쓸 '참나무 숲'등 활엽림도 따로 조성해야 할 듯 합니다. 물론 잘 쪼개지는 성질등 특성을 이해하는 장인들이 '소나무 장인'만큼 나오려면 시행착오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별 건축에 맞는 수종을 이해하는 전문가를 키우는 것 역시 필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에릭 홈스봄이 쓴 유명한 저서 '만들어진 전통'이 있습니다. 그는 곳곳에서 전통이란 개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필자는 '전통'이란 건 원래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 의미에 대해선 또 다른 기회에 여러 글간을 통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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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바탕소리 2014/07/26 15:24 #

    그러니까 지구 기후의 변화가 한국 건축에도 영향을 줬다는 말이군요.
  • 역사관심 2014/07/26 16:19 #

    그렇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의례히 특정수종만을 생각하게 되지요. 그게 어찌보면 관념의 힘이자 습관의 무서움 같아요.
  • 프랑켄 2014/07/29 21:36 #

    다시 한 번 정독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소나무의 선택은 비기후적 영향이 컸다고 나와 있는데요. 원래 한반도의 수림은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었으나 수천년간 계속된 인간의 간섭으로 인해 느티나무, 참나무 같은 활엽수 거목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소나무가 차지하게 되어 할 수 없이 소나무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이 말입니다.
  • 無碍子 2014/07/27 09:21 #

    링크하신 동아 블로그의 글에서요.
    [금강송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간다고 하지만 정작 베고 나면 금강송이 아닌 다른 국내산 소나무와도 과학적으로 구별할 수 없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미송과 백송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적송과 홍송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는 육안으로 구별할 수있을 겝니다. 저도 백송과 적송정도는 구분합니다.
    머리카락 하나로 누구 씨로 난 놈인지 알아내는 세상인데 적송과 백송을 과학적으로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은 현대과학을 우습게 아는 글로 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글
    [참나무는 보통 15-20미터까지 자라며 금강송과 달리 성장이 빨라 10여년이면 이미 목재로 쓸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참나무류의 생장은 느립니다. 신갈나무의 경우 소나무보다 매우 느리게 자랍니다. 홍송이 자라는 건 오랫동안 지켜보지 않아서 홍송의 자람은 잘 모릅니다만 홍송보다 더 빨리 자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목재로 쓴다는 나무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말이죠. 흉고직경 30cm정도 자라려면 땅에 따라 다르지만 50년이상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10년생 정도라면 표고버섯 대목을 쓰기에도 작을 것 같습니다.

    또.
    원래 처음에는 풀이 자라고 그 다음에 관목이 자랍니다. 다음에 교목이 출현하는데 양지에서 잘 자라는 소나무류 등이 등장하다가 음지에서도 자라는 활엽수가 소나무 그늘에서 자라서 소나무 군락을 뚫고 올라가 햇볕을 가리면 소나무는 도태 됩니다. 소나무가 사라지고 나서는 그늘을 상실한 음지성 나무도 사라지고 다시 양지성 교목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활엽수와 침엽수 양지나무와 음지나무가 서로 반복해 나타나는 게 너무 당연합니다. 물론 삼림전체가 일시적으로 임상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부분적으로 저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지금 소나무 과잉인데 이건 박정희정부 때 인공조림 때문입니다.
  • 역사관심 2014/07/26 18:39 #

    음 확실히 참나무 성장속도에 대해선 짧게 알아보고 쓴지라...지금은 늦어서 내일 더 보충해보지요. 소나무는 박정희 시대에 분명히 늘었음엔 틀림없겠죠. 조선시대에도 꽤 보호했고. 정보 감사드립니다~.
  • 역사관심 2014/07/27 12:46 #

    선생님> 참나무의 생장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수정하기 위해 여러모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만, 많은 정보가 말씀하신 신갈나무는 아니지만, 상수리나무등 일부 참나무의 성장속도는 아무래도 활엽수인지라 꽤 빠른것으로 나와 현재정보로 조금 더 자세히 풀어써놓게 되었습니다. 넷상의 정보라 신뢰도를 나름 추려내려고 노력한 정보만 첨부했습니다만,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소나무 참나무의 직접적 비교보다는 '생존력'에서 참나무가 앞서기 때문에 (특히 날씨가 지금처럼 온난화되는 경우 더욱 더) 소나무를 밀어내는 현상자체가 성장속도가 더 빠른것으로 착각할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벌기령시점'이 두 수종모두 비슷한지라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일단 참나무의 성장속도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대답으로 보이는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산기술연구소 갱신·육림연구실의 답변과 또다른 글을 링크로 걸어드립니다. 다시한번 정보 감사드립니다.
    http://ask.nate.com/qna/view.html?n=11730945
    http://www.koreasanha.net/board/69519
  • 아빠늑대 2014/07/26 17:43 #

    아무래도 소나무는 대형 건축물에 쓰이기에는 쓸만한 나무를 찾기가 쉽지가 않죠.
  • 역사관심 2014/07/26 18:31 #

    그런것 같습니다. 일단 저런 고대대규모 건축재로 쓸만한 놈이 너무 귀한지라...기르기도 힘들고.
  • 프랑켄 2014/07/29 21:38 #

    느티나무 같은 고대 건축물에 쓰이던 수종들은 소나무보다 생장율이 떨어져 거목 구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활엽수는 위보다는 옆으로 퍼질려 하는 경향이 커서 곧은 재목 구하기도 더 어렵구요.
  • 행인1 2014/07/26 18:46 # 삭제

    원래 우리나라 극상종이 서어나무랑 떡갈나무인데 전쟁을 거치면서 산이 많이 황폐화되면서 황폐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소나무를 많이 심은 덕분에 결국 극상종이 소나무로 보이는 거라고 저희 교수님이 이야기하시더군요.시간이 좀 더 흐르고 인위적인 조절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황폐지가 토양 개량을 하면서 우세종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 되면 알아서 우세종이 다시 우세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1960년대~1970년대 당시 산에 인공적으로 심은 나무들의 상당수가 죽어서 당시 나무 키우시던 분들은 엄청나게 부자가 되셨죠.참고로 그때 쓴 나무들은 대부분 척박지에서도 잘 자른 나무들입니다.그것들조차도 높은 확률로 죽는 상황에서 과연 척박지에서는 잘 살 수 없는 서어나 떡갈같은 나무들이 살수 있을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소나무를 선택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였죠.물론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 획일적이라고 하지만 그때에는 이거 외에는 수단이 없었다는 점을 알아두셔야 할 겁니다.
  • 역사관심 2014/07/26 19:22 #

    음 그렇군요. 다만 논문의 주제는 삼국 고려 조선의 건축목재에 관한 이야기라 그게 중요한 요지겠죠. 말씀하신 부분은 현대한옥의 경우 참조가 되겠네요. 물론 말씀하신 현대의 외적요인에 더해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에 대한 기준이 함께 작용해온걸 껍니다. 논문에서도 아마도지만 비기후적으로 일상적인 소나무관리가 조선중기이후에 이미 행해졌으리라 보고 있지요.
  • 행인1 2014/07/26 19:35 # 삭제

    원래 소나무는 고려시대때부터 정원에 심겨지기 시작했습니다.고려시대 당시에는 왕의 별장이나 권문세가들의 주택 같은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만 그게 조선시대 전반으로 퍼진 것이라죠.(고려시대 조경 관련 서적에도 소나무가 등장합니다.)
    뭐,주택에 쓸만한 목재가 과연 무엇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건축학과 출신들 중에서 한옥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들이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 개인적으로 굳이 소나무를 고집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소나무라는 녀석은 산 거나 죽은 거나 모두 벌레들이 엄청 좋아하는 녀석이라는 겁니다.그렇기 때문에 소나무로 지은 집은 관리를 제대로 안 하면 벌레 소굴이 되는 걸 봤기 때문에 굳이 환경에도 안 좋은 방부제 등을 뿌려가면서 짓느니 차라리 다른 목재를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 역사관심 2014/07/27 12:27 #

    그렇군요. 저도 목재에 대해 국내산인가 수입산인가를 따지는 것을 비롯 너무 정형화된 도식을 세워두고 따라가기보다는 이렇게 시대별 그리고 말씀처럼 유용성측면을 따져서 유연한 사고를 하는 쪽에 한표를 던집니다 .

    아 그리고 덕분에 우리나라 산림의 사이클에 대해 잘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
    http://parks.seoul.go.kr/park/common/open/forest_view.jsp?num=18&pagenum=1&search=
  • 여람 2014/07/27 10:24 #

    생각해 본 적 없던 부분인데 잘 읽고 갑니다
  • 역사관심 2014/07/27 10:33 #

    감사합니다~.
  • ㅇㅇ 2014/07/27 10:35 # 삭제

    애초에 소나무는 대형목조건물 부재로는 적합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같은 경우 전통적으로 느티나무를 많이 사용한것 같은데

    이 느티나무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되면

    한반도의 경우 개체가 많이 줄어들어서 대신에 소나무가 많이 쓰이게 됬다고 합니다

    즉 조선시대 목조건축 규모가 작아지게된 원인중에 하나가

    소나무의 사용때문이란 얘기도 있죠

    그래서 얼마전 뉴스에도 국가에서 느티나무등 대형목조건물 복원에 사용될

    적당한 나무를 많이 심자는 얘기도 나왔구요

    뭐.. 다른 얘기긴 하지만

    중국 같은 경우 원나라 이후 화북지역은 쓸만한 목재의 씨가 말라서

    대형 건물을 지을 경우 거의 대부분 현재 운남성 쪽에서 다 가져오곤 했죠

    명대 자금성같은 경우도 대부분의 목재를 그쪽에서 조달한 걸로 압니다

    사실 그렇게 하고도

    적당한 목조건축 기둥부재가 부족해서

    원나라 이후 중국 목조 건축을 보면 기둥들이 통나무가 아니고

    여러 조각을 합체시킨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 부분은

    삼림자원이 비교적 풍부하다는 일본도 마찬가지더군요

    에도막부때 재건된 동대사 대불전도 목조기둥이 그런 양식..

    아무튼 조선 후기 궁궐이나 유교서원 건축을 제외한

    다른 건축물 복원에는 소나무보다는 느티나무등을 사용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사실 소나무는 건축 부재보다는 우리나라 자연풍광 그 자체에 어울리는 나무죠

    불과 100년전만 해도 서울의 산이나 길가 심지어 궁궐안에도

    엄청 키가 큰 소나무들이 많았는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들을 거치면서

    거의 대부분 사라진게 참 아쉽습니다

    그나마 90년대 후반 이후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키 큰 소나무 심기운동을

    벌여서 서울을 비롯한 주요도시 풍광이 많이 바뀌었죠

    그점은 다행입니다
  • 역사관심 2014/07/27 12:56 #

    ㅋ 이런 자세한 정보는 어디서 얻으시는지 부럽습니다. 자금성의 경우 사실 목재가 궁금해서 찾아봐도 정보를 얻기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못 썼습니다만;).

    또한 특이한 부분이, 일부 중국전통건축도 그렇고 특히 일본의 경우 '목조기둥에 횟칠'같은 혹은 진흙으로 발라서 위를 다시 바르는 식을 자주 쓰더군요. 이게 전통건축기법인지, 비교적 최근에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쓰게 된 방법인지 모르겠습니다.
  • 프랑켄 2014/07/29 21:31 #

    느티나무가 소나무보다 건축재로서 뛰어나다는 점은 맞습니다만, 한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생장속도가 소나무의 1/3입니다. 이러니 환경파괴가 가속화된 조선 후기엔 싫어도 소나무를 쓸 수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현재로서도 느티나무를 키워 재목으로 쓸려고 하면 비용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 ㅇㅇ 2014/07/27 13:34 # 삭제

    자금성은 몇년전에 중국 cctv에서 HD 다큐 몇부작으로 방송한게 있죠
    거기에 나옵니다 명나라때도 청나라때도 자금성 재건에 운남성쪽 목재를
    엄청 사용했죠. 사실 이 자금성도 우리나라 궁궐들 못지않게
    명나라 청나라때 이것저것 손실이 많았더군요. 특히 화재가 꽤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목조건축이고 규모도 엄청크면서 궁궐이다보니 건축물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어느 한쪽에 불이나면 주변 건물까지 피해보는 경우가 많죠
    명나라때 경우 현재 태화전 건물에 벼락이 떨어져서 전소한 경우도 있고 ㄷㄷ
    ..아무튼 현재 태화전을 비롯한 자금성 대다수 목조건축물들은
    1700년대 재건된거라고 합니다
  • 역사관심 2014/07/27 15:18 #

    그렇군요. 확실히 해외다큐는 놓친게 많은지라... 한번 보고 싶습니다.
  • 2018/11/08 18:4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11/08 23:4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1/08 23:5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1/09 13: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1/11 01:3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1/11 20:4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1/12 02:4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1/12 14:2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1/12 15:2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1/12 18:0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1/13 12:3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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