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때부터 내려오던 복령사 불전 기록 (16세기초, 읍취헌유고)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이전에 소개한 바 있는 개성 '복령사' (아직 우리에겐 많이 낯선)에 대한 추가정보입니다.

이전 두 글에서는 같은 송악산에 있던 불운사에서 옮겨졌다는 15미터짜리 대동불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사실 복령사에서 문화재적인 관점으로 또다른 관심은 신라대부터 이어져왔다는 불전에도 주어집니다.

현전하는 삼국-통일신라대의 건축이 적어도 남한에는 존재하지 않음을 생각할때, 두 가지 궁금증이 생겨나지요. 한가지는 북한에는 혹 연구부족으로 인해 아직 남아있는 당대건축이 있지 않을까하는 점과 고대건축은 과연 언제 사라졌나 (혹은 거꾸로 언제까지 현전했나)라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의 가능성을 모두 보여주는 것중 하나가 복령사 기록인데, 흔치 않은 '신라대 건축의 조선시대 기록'이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꽤 흥미를 끌만 합니다. 필자가 소개했던 (연대별로) 12세기 김극기의 싯구와, 1477년의 성현의 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많이 알려진 1502년 박은의 싯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모두 불전 관련 부분만 발췌):

복령사- 김극기
“넓고 넓은 큰 현묘한 고향에, 높고 높은 불당[虛白堂] 있는 것이. 달빛 아래 청정한 모습 장엄하고, 무지개 채색 원광(圓光)이 빛나누나"

복령사 벽에 있는 시에 차운함 - 성현成俔
"절집의 문을 여니
갑자기 우뚝하게 황금을 입힌 동인 (동불)이 서있고
누각들은 높이 솟아
크고 작은 푸른 나무들을 압도한다"

복령사- 朴誾(박은) 
"伽藍却是新羅舊 가람은 실로(도리어) 신라시대 옛 건물 
千佛皆從西竺來 천불상은 다 축국에서 가져온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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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포스팅에서 마지막 박은의 시를 근거로 다음과 같이 설명해 드린바 있는데요:
박은이 1479~ 1504년의 인물이고 이 시를 지었을 때가 24세 (즉 1502년). 대강 연대로 짐작해 적어도 15세기초까지 신라의 건축물이 당대의 복령사에 남아 있었음을 추정해 볼수 있습니다 (이미 500-600년이상 된 건물들이었겠죠). 물론, 박은이 건축전문가일리도 없거니와 당시 조선의 연대추정능력에 의심을 해볼수 있겠습니다. 중략.

사실 15세기에 박은이 보았던 이 건물이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던 불전'인지, 아니면 '창건년대가 신라'이고 그 후 중건된 건물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습니다 (복령사는 1309년 일부 중건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박은의 시 복령사가 실려있는 [읍취헌유고]의 다른 싯구에서 복령사 전각에 대한 귀중한 정보가 전한다는 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의 싯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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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금장굴에 묵으며 증(增)
복령사부분만 발췌:

송악 기슭과 나란히 걸어가니 / 步竝松嶽麓
여기부터는 짚신을 단단히 묶는다 / 從此理芒屨

복령사는 신라 시대의 절이라 / 福靈新羅寺
옛목재에서는 뱀과 좀이 나오네 / 古木產蛇蠹

바람 우레가 때로 한바탕 뒤흔들면 / 風雷時一掀
골짜기에 위세등등 노기를 돕는 듯 / 洞壑助威怒

불상은 월지국에서 왔다고 하니 / 像說自月支
향화를 피운 지 얼마나 오래일까 / 香火幾朝暮

복지라 여기는 가장 명승이니 / 福地斯最勝
산령이 잘 보호할 줄 알리라 / 山靈解呵護

밝은 달빛은 희뿌옇게 빛나고 / 蒼蒼朗月前
교룡이 치달리듯 울창한 모습 / 鬱鬱蛟龍騖

지팡이 꽂아 놓고 그늘에 쉬노니 / 植杖借餘陰
두건과 소매가 찬 이슬에 젖었네 / 巾袂濕寒露

야로인들 이 절의 연대를 기억하랴 / 野老寧記年
세월을 지나온 것 새가 나는 듯해라 / 閱世鳥飛度

시를 남겨 두어 주승에게 사례하니 / 留詩謝主僧
그 뛰어난 구절 귀신이 토한 것인가 / 莊語神豈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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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체로 된 부분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복령사는 신라시대의 절이라' 라는 구절은 그가 지은 '복령사'와 별 다를게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에 나오는 '옛목재에서는 뱀과 좀(벌레)가 나오네' 라는 구절에서 그가 언급하는 전각이 아주 오래되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적어도 조선초기에 중창된 건물로 그가 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은 확실해 보이지요.

다음에 나오는 구절도 이 사찰이 당대까지 굉장히 오래된 고찰이었음을 보여주는 부분들입니다. '불상'이야기는 인도 (천축국)에서 왔다는 천개의 소상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소상들과 원나라에서 전해졌다는 십육나한상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복령사가 당대까지 신라건축을 유지했을 가능성은 꽤 높아보입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박은은 이 고찰이 굉장히 오래된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야로(노인)인들 이 절의 연대를 기억하랴, 세월을 지나온 것 새라 나는 듯하여라' 라는 구절은 분명 이 절의 전각들이 오래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은의 다음 기록에서 복령사에 대한 정보를 언급되어 있는 사람들의 저서를 중심으로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복령사 벽에 수십 사람의 이름을 쓴 것이 있는데, 자획이 뚜렷하여 바래지 않았다.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정몽주, 정도전(鄭道傳), 권근 등 여러 분이 있는데, 나도 요즘에 직접 보았다. 나머지는 쓰지 않는다."

복령사 불전의 연대에 대한 짧지만 귀중한 정보라 생각됩니다. 북한의 관련 연구자료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어 여전히 미스테리한 사찰중 하나입니다. 

불령사 전탑의 통일신라시대추정 전각모습 부조 (클릭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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