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과 삼국지연의 역사

2013년 유네시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중일기 등재 시 자문을 맡았던 노승석 선생님이 최근 펴내신 [증보교감 완역 난중일기] 에서 흥미로운 책소개부분을 발견했다.

난중일기 전문가 노승석은 새로운 일기 32일치를 발굴했고, 초고본과 이본을 비교검토하고 오류를 바로잡아 교감 완역하였다. 2013년에는 이순신이 <삼국지연의> 내용을 난중일기에 옮겨 적은 내용을 최초로 발굴하였다.

여기 보면, <삼국지연의>에 대한 내용이 처음으로 작년에 발견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충무공 전문가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21일 출간한 단행본 '이순신의 승리전략'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충무공은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4년 말의 '난중일기' 기록 중 ①밖에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고, 안에는 계책을 세울 기둥 같은 인재가 없다(外無匡扶之柱石, 內無決策之棟樑)' ②배를 더욱 늘리고 무기를 만들어 적들을 불안하게 하여 우리는 그 편안함을 취하리라(增益舟船, 繕治器械, 令彼不得安, 我取其逸)는 문장을 적었다이 문장들은 '삼국지연의' 22회 '조조가 군대를 나눠 원소에게 맞서다'에 나오는 문장과 동일하다. ①은 유비가 조조에게 대항하기 위해 원소의 도움을 요청할 때 학자 정현(鄭玄)이 써 준 추천서에 나오는 문장이며, ②는 원소가 유비를 도우려 하자 모사 전풍(田豊)이 간언한 말이다. 모두 '후한서' 등의 정사(正史)에 비슷한 문장이 나오지만, '난중일기'는 유독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표현과 똑같이 썼다는 것이다.

노 소장은 "1594년 9월 장문포 해전 직후 일본군과의 해전이 소강 상태에 들어간 시기에, 충무공이 인재를 모으고 배와 무기를 늘리는 등 다시 닥칠 전투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는 의미"라며 "'삼국지연의'가 충무공의 전략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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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필자가 올해 소개했던 글에 이 '삼국지연의'에 대한 야사가 전한다. 바로 '성대중 (1732∼1809)'이 쓴 18세기의 잡저인 [청성잡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성언(醒言)
충무공의 숨은 벗

충무공에게는 세상을 등지고 은거한 절친한 벗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충무공만은 그를 인정하여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때마다 상의하곤 하였다. 왜적이 침입하자 공은 인편으로 편지를 보내 국사(國事)를 함께 도모하자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늙은 부모가 있어 갈 수 없었기에 다만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공에게 보내면서 “이 책을 잘 읽으면 국사를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는데, 공이 이 책에서 도움 받은 것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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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는 한 개인학자의 의견일뿐, 학계에서 더 살펴봐야겠지만 야담집을 쉽게 흘려보낼 수 없다는 한 가지의 케이스가 보태질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혹 저 세상을 등진 벗도 실재인물일까?




덧글

  • 존다리안 2014/08/26 10:49 #

    삼국지연의보다는 삼국지 정사가 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말이죠.
    자치통감이라든가 배송지,진수의 삼국지라든가...
  • 역사관심 2014/08/26 12:30 #

    그렇습니다. 그런 고금의 책들도 또한 섭렵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ㅇㅇ 2014/08/26 10:59 # 삭제

    요즘 명량이 유행이던데 관련 포스팅 한개 링크합니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365193
  • 역사관심 2014/08/26 12:31 #

    아, 이 소식 알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영화밸리에서 어떤 분이 '영화에 나오는 오글거리는 민중의 도움'때문에 영화를 망쳤다는 부분의 반론으로 이 글을 댓글로 달아드린적이 있습니다.
  • 별일 없는 2014/08/26 16:53 #

    삼국지연의는 명너라때 나온걸로 아는데 당시 사람인 이순신 장군이 알 가능성이 얼마나 될련지요? 진린과 조명함대때라면 이해가 갈지도..
  • 역사관심 2014/08/27 04:12 #

    안녕하세요, 삼국지연의는 명초(늦어도)에 제작된 것이고, 이미 선조당대에 공식적으로 실록에서까지 나옵니다 (이때가 명량 28년전인데, 이미 유포되고 있음을 알수 있죠). 참조되시길:

    선조 3권, 2년(1569 기사 / 명 융경(隆慶) 3년) 6월 20일(임진)
    상이 문정전 석강에 나아갔다. 《근사록(近思錄)》 제2권을 진강하였다. 기대승이 나아가 아뢰기를,
    “지난번 장필무(張弼武)를 인견하실 때 전교하시기를 ‘장비(張飛)의 고함에 만군(萬軍)이 달아났다고 한 말은 정사(正史)에는 보이지 아니하는데 《삼국지연의(三國志衍義)》에 있다고 들었다.’ 하였습니다. 이 책이 나온 지가 오래 되지 아니하여 소신은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간혹 친구들에게 들으니 허망하고 터무니 없는 말이 매우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천문(天文)·지리(地理)에 관한 책은 이전에는 숨겨졌다가 나중에 드러나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사기(史記)의 경우는 본래 실전되어서 뒤에 억측(臆測)하기 어려운 것인데 부연(敷衍)하고 증익(增益)하여 매우 괴상하고 허탄하였습니다. 신이 뒤에 그 책을 보니 단연코 이는 무뢰(無賴)한 자가 잡된 말을 모아 고담(古談)처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잡박(雜駁)하여 무익할 뿐 아니라 크게 의리를 해칩니다. 위에서 우연히 한번 보셨으나 매우 미안스럽습니다. 그중의 내용을 들어 말씀드린다면 동승(董承)의 의대(衣帶) 속의 조서(詔書)라든가 적벽(赤壁) 싸움에서 이긴 것 등은 각각 괴상하고 허탄한 일과 근거없는 말로 부연하여 만든 것입니다. 위에서 혹시 이 책의 근본을 모르시는 것은 아닐까 하여 감히 아룁니다. 이 책은 《초한연의(楚漢衍義)》 등과 같은 책일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종류가 하나뿐이 아닌데 모두가 의리를 심히 해치는 것들입니다. 시문(詩文)·사화(詞華)도 중하게 여기지 않는데, 더구나 《전등신화(剪燈新話)》나 《태평광기(太平廣記)》와 같은 사람의 심지(心志)를 오도하는 책들이겠습니까. 위에서 무망(誣罔)함을 아시고 경계하시면 학문의 공부에 절실(切實)할 것입니다.”
  • 별일 없는 2014/08/27 13:02 #

    흠 제가 틀렸군요. ㅎ
  • 역사관심 2014/08/27 13:04 #

    틀렸다기 보다, 저도 같이 배웠습니다 ㅎㅎ.
  • 고구려인 2015/05/05 19:56 # 삭제

    그 삼국지연의 1560년대 본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kyj2164/10088347164
  • 역사관심 2015/05/06 02:24 #

    고구려인님> 반갑습니다. 흥미로운 사료를 소장하고 계시군요! 혹 충무공 야담에 나오는 본이 그 본일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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