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청명상하도에 등장하는 고려인과 고려도경, 그리고 위가 둥근 갓 역사

현재 중국의 국보 1호라는 별명이 붙은 회화가 송대에 그려진 중국회화의 블랙홀 청명상하도입니다. 그야말로 극세계화의 끝을 보여준 작품으로 후대에도 이만한 작품은 보기 힘들죠.

2012년에 흥미로운 단신뉴스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그림에 12세기 당대의 고려인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죠. 아래부분입니다. 기사- 청명상하도의 고려인 복식 (자단 박물관이라는 중국측에서 발견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2011년 한국 블로거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링크글)
청명상하도가 그려진 해가 1120년, 즉 [고려도경]의 저자 서긍이 고려에 오기 딱 3년전입니다. 따라서 이 고려인은 고려도경에 묘사된 고려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선 비슷한 기록을 찾아보자면 '급사'편에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 재상에게는 배속되는 정리가 4인, 구사는 30인이다. 영관이 수행한다. 앞에는 청개가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수십 보 밖에 급사가 서 있다. 말을 탈 때는 두사람에게 고삐를 잡게 한다. 재상 이하는 앞에 청개를 사용하지 않고, 말을 타되 두 사람이 고삐를 잡지는 못하게 한다. 일반 백성이 말을 탈 때는 스스로 채찍을 들고 고삐를 잡아야 한다. 정리의 대부분은 앞에서 몰고 급사는 수건巾이나 병甁, 그리고 물건을 들고 뒤에서 따라간다. 중략.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더 새삼스러운 그림이죠. 물론 저 기록은 '고려 국내'에서의 모습이지만, 일단 앞에서 고삐를 잡은 사람이 한사람인지 두사람인지 살피는 것도 흥미로울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사람으로 보입니다만. 뒤에 두명 이상이 물건도 지고 가죠. 이 사람이 사신인지 여행온 귀족인지등부터 파악하는게 맞겠지요. 화질은 안좋지만 확대해 봅니다.
보통 원대(1271~1368년)의 영향을 받아 고려시대의 갓모양은 위가 둥글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전대인 송대(960~1279년)의 갓(전립)은 시각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위가 둥글고 꽤 큰 전립형태가 적어도 여행시 쓰는 형태로 보아도 무방하겠군요. 한국 전립역사를 끌어올리는 발견같습니다. 참고로 한국 '갓'의 최초 형태는 다음의 두가지. 둔황석굴 61호분 의 신라인과, 4세기중엽~ 5세기초의 감신총(龕神塚)에 새겨진 고구려인이 쓴 갓입니다. 조선시대에만 쓴게 아니죠.

최근 둔황석굴에서 발견된 신라인모습 (왼쪽 갓쓴 인물)- 이외에도 수두룩 나오죠.

확대해서 큰 그림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이걸 보면 삼국시대에는 갓을 쓴 기마무사도 있었음을 알 수 있죠. 생소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감신총은 평안남도 남포시에 있습니다.
감신총 착립기마인물도

고구려, 신라 두 갓 모두 송-원대처럼 그리고 연산군대에 슬슬 깍여나가서 모가 나기전의 위가 둥근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관성이 있는 거죠. 아래 보시면 이후 조선시대의 변천사를 대강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아빠늑대님의 글에서 퍼왔습니다 (링크)
그나저나, 항상 아쉬운 것이 우리 선조들도 실경 계화계통 그림이나 일본같이 실경풍속화 좀 남겨두지 하는 생각...중국인들은 당대 문화사를 고스란히 그대로 복원할 수 있는데 (일본도 그렇고). 조선중기이전까지는 온통 중국배경 산수화나 불화뿐이니 이렇게 조각조각 파편적으로 파악하는 수 밖에 없군요. 결과론이지만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청명상하도의 갓은 최근 잇달아 발견되는 삼국시대 인물상들과 연계해서 한반도 국가들의 '모자'에 대한 하나의 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핑백

  • 까마구둥지 : 고려시대 누관(樓觀)의 모습 (고려도경 그리고 청명상하도) 2015-02-26 11:25:35 #

    ... 한 논문이나 연구는 전혀 없는 것으로 압니다만, 예전에 이 그림에 나오는 고려인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필자가 고려도경에 나오는 말잡이의 모습과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관련글... 재상에게는 배속되는 정리가 4인, 구사는 30인이다. 영관이 수행한다. 앞에는 청개가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수십 보 밖에 급사가 서 있다. 말을 탈 때는 ... more

덧글

  • 엑스트라 2014/09/14 06:03 #

    당시 조선시대에서는 갓을 귀하게 여기고 만들고 파는 사람을 천하게 여기는 양반들의 쓰레기 의식이 생각난다는........ 갓이 없으면 어떻게 체통을 지키냐하는 대사도 생각났는데 그깟 모자 하나가 무엇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해진건지 어렸을때부터 궁금했었는데.....(과격해서 죄송합니다만,,,, 그당시의 신분차별은 정말 안좋아해서 말이죠....)
  • ㅇㅇ 2014/09/14 06:26 # 삭제

    갓이 없으면 체통을 어떻게 지키냐는 말은 현대로 치면 난닝구만입고 체통을 어떻게 지키냐는 말이에요. 그 당시 사람의 관점으로 생각을 해야지 국제회의에서 난닝구 입고 회담하는걸 일상적으로 여기는 미래인이 "21세기 사람은 그깟 셔츠 자켓이 뭐라고 쓰레기 허례허식 ㅉ" 이러면 기분 좋겠나요
  • ㅁㄴㅇ 2014/09/14 08:44 # 삭제

    요즘 말하자면 정장을 갖추는 일인데 쓰레기란 말까지 들어야 할지는 모르겠군요.
    이쪽이 신분질서라는 면에서 엄하긴 했겠지만 딱히 이쪽만 높으신 분들이 상것들 무시한 게 아니라서요.
  • 엑스트라 2014/09/14 11:03 #

    그렇군요. 전 당시 조선 시대의 신분차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강하다보니......
  • ㅇㅇ 2014/09/14 11:14 # 삭제

    조선 중기 이전 현존하는 회화가 주로 중국 산수화 스타일이거나 불화 위주인건

    말그대로 현존하는 작품들이 극히 드물어서 그래서 그렇게 느끼는 걸수도 있겠네요

    (드문것도 드문거지만 아직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해외 유출 작품들이 너무 많음)

    개인적으로 불화나 풍속화 기타 민화를 떠나서 회화 자체의

    세밀함, 정밀도, 화려함은 조선 중기 이전이 그 이후보다

    거의 모든면에서 뛰어나다고 봅니다

    이건 회화 뿐만 아니라

    각종 석조 탑 부조 전돌 기단 기타 조각 등 거의 대부분이 그러한듯

    불상의 모습 이런건 더 말할것도 없구요

    물론 시대 유행에 따라 그런거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일단 조선 중기 이전과 그 이후 시대가 너무 차이가 나니

    하는 말이죠





  • ㅅㅅ 2014/09/14 12:07 # 삭제

    한국 회화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모르고 막 말한다는 느낌을 들게 하시는 발언이네요;
    조선시대의 회화들에 대한 견문 자체도 적고 미술사적인 지식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조선후기라고 해서 딱히 화려함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조선후기는 되레 조선전기, 중기에 비해 사치풍조를 나타냄과 동시에 극도의 미니멀리즘 혹은 현대미술이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다양하면서도 클라스 있는 예술품까지 만들어지던 시기입니다.

    예술에 대해서 평하기 전에 견문을 좀 더 넓히셨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진보만세 2014/09/14 21:18 #

    오호, 귀한 자료..

    늘, 중-일에 비해 의복이나 실생활을 다룬 회화나 조각들이 태부족하다고 느끼던 차에 그 시대를 조명하고 복원함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깊어가는 가을, 건필하시길 ^^
  • 역사관심 2014/09/15 13:26 #

    감사합니다 ^^
  • 응가 2014/09/14 22:05 # 삭제

    위가 둥근갓이 아직도 남아있지 않나요?? 옥로립같은것은 둥글게 처리하여 옥로를 올렸습니다.
  • 역사관심 2014/09/15 13:27 #

    한번 찾아 봐야겠네요 .고맙습니다.
  • ㅁㄴㅇ 2014/09/14 22:50 # 삭제

    이건 좀 다른 말이지만 갓이란 물건이 참 독특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맛이 있죠. 현대 한국인이 쓰고 다니기엔 적합하지 않지만 제법 아름다운 형태의 모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 역사관심 2014/09/15 13:27 #

    동감입니다 :)
  • 플로리몽 2014/09/15 16:54 #

    글쎄요..저런식의 갓은 이미 중국에서도 많이 쓰고 있던 지라...
    딱히 고려인의 그것이라고 보기엔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https://www.google.co.kr/search?q=%E6%9D%B1%E5%9D%A1,+%E7%AC%A0&newwindow=1&espv=2&biw=1100&bih=661&source=lnms&tbm=isch&sa=X&ei=qJoWVJ2XOc-B8gWM2YDoDA&ved=0CAYQ_AUoAQ#imgdii=_
  • 역사관심 2014/09/16 00:11 #

    링크글이 클릭이 안됩니다. 제 눈에는 기사처럼 현재로썬 고려인으로 보입니다만. 당시에 교류가 많았으니 당연히 중국에도 있었겠죠 (에도시대 기생이 갓쓴 에마키도 있는걸요). 다만, '주로 쓴' 국가가 어느 국가냐로 파악하면 갓은 역시 고려-한국이죠. 그리고 이런 문화사는 생물학계와 달리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혹은 것이 맞다고) 봅니다.
  • bergi10 2014/09/15 23:55 #

    유행따라 오르락 내리락하는 건가요?

    단순히 멋에 따라 변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조조의 위나라만 봐도 모개 같은 지식인들도 유행따라 두건을 썼다 벗었다 했었다던데....
  • 역사관심 2014/09/16 00:08 #

    아직 모자에 관한 전문 공부는 일천한지라 모르겠네요. ^^; 다만, 동시대에 엄청나게 많은 모자가 있었으니 한 맥락으로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보고 있습니다. 동시에 '주류'로 썼던 모자를 파악해서 정리하는 연구도 필요하리라 보구요 (저 도표가 그 연구의결과이길 바랍니다만, 출처를 아직 모르겠군요).
  • ㄹㄹㄹㄹ 2014/09/28 13:07 # 삭제

    박익선생의 묘에 그려진 고분벽화에도 둥근 갓이 등장합니다
  • 역사관심 2014/09/28 14:54 #

    그렇군요 한번 살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쿠사누스 2014/10/08 01:13 #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가설이긴한데, 실경풍속화가 등장하려면 일단 서민문화가 등장하고 크게 발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서양 다 마찬가지인데, 근대 소설이라든지 풍경화들이 대부분 서민 혹은 시민 문화가 발전하고, 또 중산층 서민들의 자의식이 생겨나야 합니다.
    우선, 그렇게 서민 문화가 발전하기위해서는, 그 이전에 상공업이 발전해서 자본이 중산계급에서도 많이 축적되서 문화를 즐길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겠죠.
    네덜란드 17세기 황금기 시절 회화를 보면 그 이전에는 종교화가 대다수였다가, 자본주의 무역으로 떼돈을 번 네덜란드 상인들이 자신들의 초상화나 생활모습을 본격적으로 화가들에게 주문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화가가 바로 유명한 베르마르같은 화가죠. 일본 쵸오닌 문화도 그렇고, 청명상하도의 배경인 송나라는 두말할 필요없이 서민과 상인들의 제국이었고...그런데, 우리나라는 비로소 조선후기가 되어서야 서민문화가 발전한 것같습니다. 신윤복과 김홍도가 후기에서야 등장한 것을 보면 말이죠.
  • 역사관심 2014/10/08 03:14 #

    음...말이 되네요. 이에 대한 연구가 있을법한데 좋은 생각거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 ㅇㅇ 2014/10/27 09:59 # 삭제

    실제 조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많이 없는 이유는 많은 국가들이 그랬듯이 조선후기에야 서민들이 문화생활을 하기 시작했던 이유도 있지만, 그때 즈음에 '소중화사상' 이라고 해서 중국이 오랑캐 세상이 되어 온 세상이 오랑캐소굴이며 조선만이 문명국이라는 조선식의 중화사상이 퍼져나가면서 부터인 이유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 이전에는 보기 힘들던 민화와 장식화, 주술화, 기타 상품화된 그림, 실경산수화 등의 다양한 장르의 미술품이 만들어지는거죠..
  • 역사관심 2014/10/27 11:36 #

    복합적이유중 그런면도 분명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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