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본능적 단상 (개벽, 1923년) 독서

예전에 갈무리해 둔 글로, 1923년 당시 조선지식인의 인상적인 생각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이 글을 쓴 김석(金錫)이란 분은 1905 6월 11일 문학작품집을 냈다는 단편정보외에는 찾을 길 없는 당시 지식인입니다.

이른바 문화식민정책시기인 1920년 발간되어 6년동안 활발한 활동을 하던 잡지 [개벽]에 실린 글로, 그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 개혁을 위한 신문화운동을 이끌던 잡지이기도 합니다. 일제에게 탄압도 혹하게 받습니다. 그 유명한 이상화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바로 개벽의 1926년자에 실리기도 합니다.

아래 글이 실린 개벽 35호 (1923. 5.1일자)표지
글이 옛스럽긴 합니다만, 현대한국인도 충분히 읽을수 있을 듯 해서 원문을 그대로 싣습니다. 찬찬히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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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洋사람이 朝鮮사람 寫眞찍는 것을 보고서
잡지명- 개벽 제35호  
발행일- 1923년 05월01일  
기사제목- 西洋사람이 朝鮮사람 寫眞찍는 것을 보고서  
필자- 金錫  
기사형태 세태비평  

西洋사람이 朝鮮사람 寫眞찍는 것을 보고서 (서양사람이 조선사람 사진찍는 것을 보고서)
金錫 (김석)

지내간 4월 6일에 나는 싀골로서 처음 올나 온 親友 한 사람과 그 외 두어 同侔와 가티 창경원 구경을 갓섯다. 처음에 동물 구경을 하고 다음에 박물관 구경을 하엿다. 그런데 박물관을 구경하야 차차 동편쪽에 잇는 2층 진열관을 향하야 石階를 올을 적에 그 겻흐로 무슨 인적이 잇기에 나는 유심히 한참동안이나 보앗다. 서양 남자 두 사람과 여자 세 사람이 나타나 보인다. 그 중에 여자 한 사람은 나히 30이 넘어슬 뜻하고 그 외 네 사람은 다 30이 될락말락한 젊은 사람들이다. 아마도 자기 어머니를 모시고 동부인하고 온 듯하다. 그런데 한 27,8세된 여자의 손에는 사진기를 들엇다. 

그 즘에 우리 동포 남녀 10여명도 2층 진열관을 향하야 올으게 되엿다. 그 중에는 갓(笠)쓰고 망건(網巾)쓰고 크다란 흰 周衣에 긴 담배대 든 남자도 잇섯고 또 風冬耳가튼데다가 금구슬(金球)을 주렁주렁 꿰어 달고 雙囍를 노아서 관도 갓고 모자도 갈은 것을 쓰고 분홍 비단 저구리에 녹색 치마를 입은 여자도 잇섯다. 그 갓쓴 양반은 한 50 넘엇고 여자는 한 30쯤 되여 보인다. 그 결에 서양 사람들이 다 그들을 보앗다. 그리고 서양 남자 한 사람이 자기 부인에게 말하기를 「자 우리 저것을 사진찍자 하는 것」갓다. 그리더니 그 남자가 朝鮮 여자 곳 그 자들 눈에 이상하게 채린 것으로 보이는 그 여자에게 가서 사진을 찍자 하엿다. 그러나 그 여자는 듯지 아니 하엿다. 그리하야 그 西洋者들이 그 여자는 촬영하지 못 하엿다. 

그리고 그 겻헤 잇는 朝鮮 남자 곳 그 서양 사람들에 별하게 飾服(식복)한 것으로 보이는 그 노인의 겻헤 가서 사진을 좀 찍자고 하엿다. 그 노인으로 말하면 아마 아모 것도 모르는 무식한 노인갓다. 아모 말도 못하고 묵묵하니 고개를 숙으리곊  섯다. 그 사진을 찍고자 하는 서양 여자는 득의양양하야 태도 가락을 하면서 사진을 찍으려 한다. 그 때 그것을 본 나는 나의 정신에 이상한 감각이 생기엿다. 그 서양 사람들은 한 흉독한 惡魔로 화하야 보이엿다. 그래서 나는 나의 聲音을 다하야 여보시오 노인님 사진 찍히지 말고 이리로 올라 오시요 하고 여러번 소리를 질럿다. 그러나 그 노인은 나의 말을 듯지 아니 하엿다. 그 서양 사람 다섯명은 다 만족한 낫으로 그 노인을 촬영하엿다.
일제강점기 창경궁

아- 이상하고도 괴의하고나. 저 서양 사람들아 동양 사람이나 서양 사람이나 인류는 마찬가지다. 엇지 그리 교만한 태도로 사람을 촬영하여 보고 웃으랴느냐? 응 朝鮮 아니 우리가 너히만큼 문명되지 못하여 각양 제도가 다 너히만치 정연하지 못하니깐 자연 의관의 구조와 신체의 자세가 불완전할 것은 사실이다. 이 점에 부처서 너희가 우리들이 가티 모멸하느냐 야! 너무도 검방지지 아니하냐? 너도 밥 먹고 똥 싸며 우리도 밥 먹고 똥 싼다. 다시 말하자면 너희가 문명하면 우리도 문명할 수 잇다. 오히려 우리가 너희보다 먼저 개화하고 문명하엿든 우리이다. 몃 100년전을 회고하라. 그 때에 우리는 문화의 낙원에서 살엇다. 그 때 너희는 아주 보잘 것 업든 것이 아니냐. 넘우 우리를 모멸하며 무시하지 말지어다. 우리도 너와 가흔 사람이다.

너희가 평등 자유와 정의 인도를 부르지즈니 우리를 모욕함이 평등과 정의에 조곰이나 무엇이 부합되느냐. 이것이 인권 무시에 한 큰 것이 아니냐. 인권은 평등이다. 권리 계급이나 무권리계급이나 무산계급이나 유산계급이나 동일한 인권이 잇다. 여하간 우리가 너희만 못하니깐 그러한 嗤笑라도 밧는 것이지마는 너희가 그러한 행동을 함으로 인하야 얼마나 더 장하여지며 더 문명하여지겟느냐? 돌이어 너희가 우리를 嗤笑함으로 인하야 그것만한 그것을 아니 그것보다 더 큰 그것을 타인에게 바들 것이다.

아- 문명인아. 너의 소위 문명이란 무엇이냐. 이러한 계급적 사상과 차별적 행동하는 것을 문명이라 하느냐. 나는 이것은 절대 불찬성이다. 세계를 공통하야 다 평등으로 사는 것이 과연 찬연한 문명이라고 생각한다.
아- 여보시요. 우리 동포 형제 자매들이시여. 이 수치가 그 노인의 수치뿐이 아니라 우리 전반 조선사회의 수치의다. 勇然히 奮作하야 남부끄럽지 안케 되도록 奮闢力戰합시다. 최후 1인까지 최후 일각까지 (完)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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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대 당시 지식인들의 눈에 비친 조선민중들의 모습. 서양인이 시골 조선노인을 사진찍는 모습에서 (저자의 주관적인 감상이겠지만 그냥 찍은 게 아닌 느낌인듯), 무언가 오리엔탈리즘의 느낌을 받은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우리도 문명할수 있다...로 시작하는 굵은 체부분 (필자가 굵게 지정). 여기 보면 몇 백년전에는 동양사회가 서양을 앞서있다는 인식이 분명한데, 이러한 인식은 최근의 세계사의 연구라고 생각했는데, 객관적인 지식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인식을 당대 우리 선조가 하고 있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또한 사해평등의식이 이미 자리잡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인식이 소중화의식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일 듯 합니다.

굉장히 옛날인듯 하지만, 생각해보면 91년전. 겨우 두 세대 정도 전의 이야기. 상전벽해입니다.
1920년대 창경궁 벚꽃


덧글

  • Cheese_fry 2014/09/16 06:51 #

    그 때만 해도 제국주의, 기독교적 선민사상 등이 지배했던 시절이라 사진을 찍은 서양인들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잘했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요.우월적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인식은 20세기 말 들어 생겨났으니까요.
  • 역사관심 2014/09/16 23:06 #

    그랬겠죠. 정치권인사나 일부 지식층 (잭 런던 같은) 사람들은 분명 오리엔탈리즘을 가지고 아시아를 접근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저 여행객의 느낌으로 신기해서 다닌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또한 말씀대로 평등사상이란 개념자체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닌점도 분명 맞죠.
  • Cheese_fry 2014/09/17 05:26 #

    저는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을 무척 좋아하는데, 나중에 보니 러일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한국을 방문했더군요. 하긴 꽃게잡이에 금광 등등 여러직업을 두루 거친 작가이긴 합니다. ㅎㅎㅎ
  • 역사관심 2014/09/17 05:39 #

    저는 White Fang을 좋아하는데, 확실히 경험이 많다는 건 작가로써 큰 도움이 될 듯 해요. ^^
    참고로 잭 런던의 러일전쟁시 기록은 단행본으로도 나왔습니다.
    http://hi007.tistory.com/1300
  • 낙으네 2014/09/16 09:12 # 삭제

    동양사람이나 서양사람이나 인류는 마찬가지다 라는 대목이 참 와닿는군요.
  • 역사관심 2014/09/16 23:06 #

    깨어있는 분입니다.
  • 루나루아 2014/09/16 09:17 #

    지금에 와서도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부끄럽습니다.......이젠 우리가 저짓을 하고 있으니....
  • 역사관심 2014/09/16 23:06 #

    역사에서 배우는 게 있어야 하는데;;
  • 이경호 2014/09/16 11:25 #

    아 역시 우리선조님짱
  • 역사관심 2014/09/16 23:07 #

    저런 깡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냈겠죠. 워낙 빨리 해서 전통단절등 병폐도 많았지만, 추진력은 확실한 게 한국인.
  • 이경호 2014/09/17 00:59 #

    너도 밥먹고 똥싸며 우리도 밥먹고 똥싼다...!!! 이것이 91년전이라니 참..91년 후 우리 선조가 우리를 보고 있을때 답답하구나 우리 후손들아 하겠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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