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령공주의 에미시 복원작업 엿보기 (미야자키 하야오 출발점 중) 역사전통마

미야자키 하야오의 90년대 대담을 보면 원령공주 작업때 어떤 식으로 상상복원/재현을 해내는지 잘 살펴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작게는 한국의 창작자들, 넓게는 문화복원사업 관련자들에게 도움이 될 듯해서 발췌한다.
원령공주 (모모노케히메)가 1997년 여름에 개봉했으므로 이 인터뷰는 대략 95-96년 정도로 추정된다. 출처는 '출발점 (1979-1996)'. 배경설명으로 원령공주의 시대적 배경은 무로마치 시대 (1336~ 1573년). 무대는 일본의 동북지방 (홋카이도 포함), 즉 개간이 안된 야생지역이던 곳이며 이 곳에 살던 에미시(蝦夷) 또는 에조 혹은 에비스인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홋카이도하면 생각나는 일본의 소수민족인 즉, 현재 일본인의 주류인 야마토(대화)인과는 다른 민족으로 흔히 생각하는 아이누는 중세이후~근세의 에조를 이야기 할때 포함되는 협소한 의미다. 홋카이도까지 포함하는 현대의 일본지도는 1669년 아이누봉기이후 점차 편입되다가 18세기말 적극적인 홋카이도 공략으로 형성된 것이다.

사실 무로마치시대는 우리로 따지면 고려말~조선전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논란이 많지만) 대강 중세말에 해당한다. 따라서 영화에서 언뜻 느껴지는 무슨 '고대'시절도 아니다. 그럼에도 원령공주의 분위기를 보면 '신화시대'로 그려지고 있어, 이 쪽 지방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알수 있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그 당시에도 이곳은 대화족의 영토가 아니었기때문에, 고대만큼이나 역사적으로 생소하며 에조지내의 역사구성에 대해서는 상상력의 여지가 많을 수 밖에 없는 형국.

어찌되었건 이런 배경설명을 한 이유는 이 글의 요지가 '상상의 여지가 많은 시대'를 (그것이 중세건 고대건) 현재에 어떻게 그려내는가 하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고대의 에미시와 야마토 (출처-위키)- 고구려가 있어 일본의 최소 아스카시대 (6-7세기)지도이다. 물론 배경이 되는 무로마치시대 (14세기~16세기)는 훨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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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 사실 지금 작업하는 영화에도 숲과 정령이 나옵니다. 숲을 베는 인간과 그에 맞서 싸우는 신들의 이야기로, 신들은 짐승의 형태를 하고 나와요. 힘든 테마로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시바- 그 숲은 유럽풍인가요?

미야자키- 아뇨, 조엽수림입니다 (주: 애초에 활엽수대신 '조엽수'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이 일본인이다. 조엽수림 이론은 이 원령공주로 다시 주목받는다. 이론링크)

그 숲에 에미시족 소년이 찾아옵니다. 무대는 무로마치 시대입니다. 왜 무로마치시대에 에미시족의 소년인가 하면, 이젠 칼을 들고 상투를 든 주인공이 등장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시대극의 기성개념에서 벗어난 주인공을 만들어봤어요. (주: 우리로 치면 머리에 머리띠를 한 삼국시대-고려시대 무사를 깬 주인공이랄까. 보통 상투만 틀지 아래로 치렁한 머리카락은 없어야 한다 (고려시대 남자는 모두 총각인가 링크글). 물론 미야자키의 이 발언은 기존의 대화족중심의 시대극의 틀을 깨고 싶다는 뉘앙스이므로 고증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긴 하다. 사진은 고려시대 배경 드라마)
중략.

시바- 상상력에 현실을 주기 위해선 직접 가봐야 하는군요.

미야자키- 영화를 만들다 보면 그런 일들의 반복입니다. 예를 들어 무로마치 시대의 논밭을 그리게 되어 무로마치의 논밭일수록 작고 불균형하다는 걸 스태프들과 얘기 나눕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려보면, 아무래도 끝에서 끝까지 균등한 밭을 그리고 말죠. 이건 옛날 풍경과는 다르다고, 이번엔 시골 사람들에게 얘기를 듣습니다. 그러면 옛날엔 밭일을 나가면, 자신의 밭 왼쪽의 소나무 숲에서 도시락을 펼칠 수 있었다고 하네요. 그게 지금은 정비사업등으로 소나무가 잘려나가 모두 밭이 되어 버렸습니다. 밭에 가서도 도시락도 못먹고 재미없어져 버렸다는 얘기를 들어요. 좋아, 그 기분은 잘 알겠다. 자 복원해 보자, 라고 생각하죠.
...

미야자키- 다음은 무로마치 시대의 마을 변두리를 그리게 됩니다. 이것도 역시 잘 몰라요. 길은 어땠을까. 자갈을 넣을 순 없고, 차는 없으니 사람이 밟아 굳어진 땅이겠지. 그 주위 풀들은 베어져 있었을까. 이렇게 하다보면 끝이 없습니다.
(주: 이러한 과정은 현재 복원된 많은 일본의 고대-중세건축들의 구축과정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헤이안시대 (8~12세기)의 건축인 대극전복원과정도 보고서를 보면 이런 상상을 당대 주변건축들과의 연계성과 맞추어서, 물론 이러한 문화창작과정보다 훨씬 학구적인 Rationale하에, 차근차근 재현해낸다. 당시의 설계도가 없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이 과정자체를 하나하나 소개함으로써 현재 만드는 고대건축에도 그것이 셋트장이 아니라는 Authority를 부여한다. 관광객들도 '아 이렇게 생각하고 만들었구나' 라고 보는 과정자체가 관광지의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이다. 문화유산 최신이론에 유로중심유네스코의 일방통행 가이드의 대안으로 Community Based Authority 이론이 요즘 나오는데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다).

시바- 길은 좁았겠죠. 풀은 베었을지도 모릅니다. 흔히 기타규슈의 사람들이, '사가 사람들이 걸어간 자리에는 풀도 자라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데, 사가 사람들이 교활하다는 뜻이 아니라, 사가 현은 평탄해서 산촌이 적었습니다. 풀을 벨 장소가 없어서 조금 자란 풀도 바로 잘라버렸죠.

미야자키- 풀이 비료였어요. 녹비라고도 하니까요.

시바- 그러니까 도로변엔 풀이 더부룩 자라있진 않았을지도 몰라요.

미야자키- 애당초 에미시의 모습을 잘 모르겠어요. 에미시는 농경민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궐수도란 칼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부탄이나 태국 북쪽에서 화전농법을 하던 사람들의 모습에 가깝지 않았을까. 멋대로 상상만 하는데, 꽤 즐겁습니다. 그럼 머리 모양은 어땠을까.
(주: 여기서 에미시의 모습을 모르겠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림등이 전해지지 않아서 인데, 흔히 이야기하는 아래의 에미시 즉 아이누는 처음에 언급했듯이 고대-중세의 에미시보다 협소한 의미기 때문에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 것).
시바- 이것도 어렵네요. 교토의 궁정귀족을 제외하곤 농민에 이르기까지 사카야키로 머리를 밀었었습니다. 진순신씨의 얘기인데, 중국의 주변민족은 모두 일종의 사카야키로 밀었다고 합니다. 몽골인은 편발이었고, 퉁구스도 각도는 달랐지만 민다는 점은 마찬가지였어요. 그럼 일본에선 언제부터 사카야키로 했을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사카야키는 야요이식 농경집단의 증표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에미시는 머리를 밀지 않았을지도 모르고요.

미야다키- 에미시의 풍속은 보란 듯이 남아있지 않죠. 그려진 그림을 보면 귀신같은 것들 뿐이에요. 아이누와도 전혀 다르고요.

무로마치 시대 불화- 하루히카만다라春日鹿曼陀羅 (등장하는 사슴의 모티브가 되었다)
시바- 다르죠. 에미시는 요컨대 단순한 (일본의)동북인입니다. 그걸 에미시란 이름으로 로맨틱하게 부를 뿐이에요. 지금 미야자키 씨의 영화이야기를 들으면서, 켈트인이 생각났습니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반도에는 켈트인의 정취가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이 삽니다. 일본으로 말하자면 동북이죠. 지금 프랑스에선 켈트인 소년이 로마군과 싸우는 만화가 유행한다고 합니다. 이건 제 프랑스관을 뒤집어 놓았죠. ...

미야자키- 사무라이와 농민이란 형태로만 시대극을 만드는 것은 역사를 빈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중략.

-출발점 (1979~1996)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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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을 보면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보아온 원령공주가 일본의 정통 사극에서 꽤 벗어난 지점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미야자키 감독이 90년대중반까지의 일본사극이 다루는 소재의 언밸런스한 상태를 꽤나 타파하고 싶어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성공. 특히 해외에 있어 일본 역사, 사극에 대한 관점은 이 작품으로 인해 훨씬 풍부해졌다. 사무라이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구나, 이러한 풍부한 소재가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데 성공했다.

또한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의 문화재복원도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다는 것. 무조건 원형고집이 아니라 유연성이 있으면서도 최대한 고증으로 가는, 그러나 원칙은 '복원에 한표'를 던지는 긍정적 사회분위기. 모르는 것은 최대한 근처의 사료와 자료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구현해내는 자세. 그리고 무엇이든 그림으로라도 그려내서 가시성을 확보하는 형태의 움직임. 

그러한 '노력'에서 탄생한 문화재나 문화작품은 사람들에게 그 진정성과 Credibility가 전해진다. 원령공주를 보고 있으면 그런 느낌이 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이런 작품들이 다루는 역사적 시각성은 '에이 저럴리가 있어?'가 아니라 '진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전통'의 재현과 진정한 창조이다. 부정적의미가 아닌, 긍정적의미의 '만들어진 전통'은 그렇게 탄생한다.

사극을 만들때의 태도나, 복원에 대한 시각이 이렇게 할수 있는 한 철저하면서도 상상력의 즐거움이 더해지는 유연하고 긍정적인 자세라는 것은 분명 배울 점같다. 원형고집과 돈벌이라는 양극단을 포함하는 모아니면 도, 한계를 그어버리는 경직성과 그 반대로 스스로 목을 죄는 경박함으로는 아무것도 생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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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4/09/21 14:39 #

    삼국시대는 광개토대왕, 근초고왕, 진흥왕 이하 라인이 등장해야 하고, 여말선초는 왕건 궁예 견훤 등이 등장해야 하고....
    이런 천편일률적인 서사보다, 그 시대의 분위기가 어땠는가- 숨쉬는 공기가 어떠했을지 상상하게 해주는 한국사 문화컨텐츠가 참 절실해지네요ㅠㅠ
  • 역사관심 2014/09/21 15:32 #

    어떤 도식적 의무감이전에 그 시대를 다시 만들어낸다라는 과정의 즐거움을 관련자들이 느낄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 낙으네 2014/09/22 00:18 # 삭제

    동감합니다. 우리나라 사극도 맨날 정치나 전쟁 이야기 하지 말고 좀 더 신선한 주제 혹은 소소하면서 특이한 주제 등을 가지고 사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면 고려대장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주제로 하거나,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들이 등장한다던지... 그런것 말입니다. 그런데 요세 텔레비전을 보면 그냥 시대와 장소, 복식만 빌려와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만한 재미난 이야기 엮기 이외에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 역사관심 2014/09/22 05:51 #

    좋은 아이디어네요. 정말 그런 드라마글이나 영화들이 많아지면 재밌을 것 같아요. 또한 글주제처럼 현대적 스토리가 아니라 그 시대를 느낄수 있는 장치들을 창작자들이 즐겁게 고민할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지면 이상적이겠습니다.
  • Scarlett 2014/09/22 12:01 #

    그동안 수많은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접하면서 칼 들고 씨우는 사무라이들이나 시대극을 봐도 한번도 멋있다는 생각을 못해뵜는데, 원령공주의 세계관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으니까 역시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시대극을 배경으로 창작을 하는 자세에 있어 참고할 만한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 역사관심 2014/09/22 14:36 #

    저도 동감합니다. 워낙 미야자키나 다카하타 감독이 70년대 명작만화극장시절부터 이런 식으로 실제 배경에 가서 고증을 해가며 작업하지만, 특히나 역사물을 다룰때의 여러 고증과 상상력을 더하는 자세는 비단 애니뿐 아니라, 영화/드라마, 그리고 나아가 사료가 부족한 시대의 문화복원에도 참고할만 하다고 생각해요.

    예컨데, 아런 식의 복원이라면 백제재현단지나 앞으로 만들어질 월성복원등에도 국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하나의 Credibility를 주는 중요한 스토리가 주어지겠지요.
  • 수달 2014/09/22 16:39 #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산에는 호랑이가 득시글 할텐데.... 원령공주처럼 무속과 호환 등이 판치는 영상을 보고 싶기도 하네요. (...... 어떤 종교 때문에 안될려나요...)
  • 역사관심 2014/09/22 22:31 #

    우리 역사를 다루는데 특정집단의 눈치를 볼 이유는 단 1%도 없죠. 국교없는 자랑스러운 국가에서 ;)
    전적으로 동감입니당.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4/09/23 14:00 #

    역시 사람은 아는만큼 보이네요... 모노노케 히메를 하야오의 철학과 엮어서 생각은 많이 해봤지만 복원과 관련해서는 아예 생각도 못해봤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4/09/23 14:15 #

    과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 Nocchii 2014/09/24 09:36 #

    잘 읽었습니다
    이런 것이 일본의 문화적 역량이겠죠
    무시 할 수가 없네요
  • 역사관심 2014/09/24 11:51 #

    사실 어찌 보면 상식적인 작업순서인데, 선진국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식이 얼마나 통용되는 사회인가 아닌가가 그 척도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 Nocchii 2014/09/24 09:43 #

    요즘 제가 (재미로) 생각하고 있는 스토리가 두 개 있는데요

    하나는 거제현령 안위가 주인공인 명량해전 이야기
    하나는 옥포만호진의 일개 무명 군관이 주인공인 임진왜란 발발직전 이야기

    뭐 이런 것 입니다
    충무공이나 이런 사람들은 그저 '배경' 이 되어 주고요
    심심할 때 간혹 구상중입니다

    물론 글 쓰는 능력도 의지도 없으니 공상으로 그치겠지요ㅋㅋ
    그런데 누구 능력있는 분이 이런 거 잘 만들어 주면 한국판 원령공주 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역사관심 2014/09/24 11:52 #

    좋은데요? 아주 신선합니다 =)
    블로그에 올리시면 관심있는 분이 연락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은 e-세상으로 꽤 많은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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