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악취나는 조선 요괴들- 고리눈 장발귀, 함경도 안개요괴, 금천 뱀 요괴 설화 야담 지괴류

조선시대의 요괴들중에서 유독 '악취'를 풍기는 요괴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세 놈을 소개합니다.

16세기 머리 긴 고리눈의 악취 요괴

어우야담(於于野談)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선생이 경성(京城)의 백악(白岳) 산기슭에 있는 청송당(聽松堂)에서, 황혼에 홀로 시중드는 아이도 없이 앉아 있는데, 홀연히 한 물체가 와서 집 귀퉁이에 섰다. 몸에는 감색 옷을 입었는데, 그 길이가 발꿈치까지 이르고 풀어 내린 머리가 땅에까지 닿았는데 바람을 따라 엉클어졌다. 
어지러운 머리 사이로 고리 같은 두 눈이 번득여 두려워할 만했다. 

선생이 그에게, "너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묵묵히 답이 없었다. "앞으로 오너라."하니, 마침내 창 밖 가까이 왔는데 누린내가 코를 찔렀다. 선생이 말하였다. "네가 도적이라면 우리 집에는 아무 것도 없다. 네가 귀신이라면 사람과 귀신은 길을 달리하니 속히 가거라." 말이 끝나니, 바람 소리가 나며 사라졌는데 간 방향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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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침(成守琛 1493∼156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청송당은 지금도 터가 남아 있습니다. 대학자로 널리 알려진 우계牛溪 성 혼(成渾: 1535~1598년)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원래부터 북악산 (백악白岳산)을 사랑했습니다. 이는 그의 아버지인 성세순(成世純: 1463~1514년) 때부터 였는데, 손자인 성혼이 지은[성세순 행장行狀]에 이런 구절이 전합니다. “백악산 아래 집을 정하였는데 숲이 깊고 땅이 외져 자못 산수의 멋이 있었다. 공무를 마치면 지팡이를 들고 신발을 끌며 왕래하였다. 계곡마다 두루 찾아다니며 시를 읊조리고 돌아갈 줄 몰랐다”.

성수침 선생은 이 터에 '청송당'을 짓고 제자들을 많이 키워내며 지냅니다. "낮은 담을 두르고 소나무, 잣나무, 단풍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국화, 두충 등을 심어 놓았다. 담 밑에 구멍을 내어 산속의 샘과 통하게 하고 앞뒤에서 굽이돌아 버드나무가 있는 개울로 흘러들게 하였다. 그 위에 다리를 놓아 청송당으로 가는 사람들이 건너다닐 수 있게 하였다" 라는 내용으로 이 곳을 얼마나 아름답게 꾸몄는지 알 수 있지요.
이제는 터만 남은 청송당 (저분은 겸재 선생입니다)

이렇게 애정을 두고 가꾸던 '청송정'에 이상한 악취나는 요괴가 나타난 것이니, 그가 물러설 리 없습니다. 요괴의 모습은 기괴한데 감색옷을 입고, 머리카락이 땅까지 닿을 만큼 풀어헤친 기괴한 모습입니다. 그 풀어헤친 머리 사이에 '고리같은 두눈이 번쩍였다'니 그야말로 요괴 자체입니다.

홀연히 나타난 이 요괴에게선 이상한 누린내가 납니다. 선비다운 기상으로 들어오게 해서 귀신이면 갈길을 가라고 하니, 다시 사라져 버립니다 (만약 비굴하게 굴었다면 헤코지를 했을 지도 모르지요).

이런게 고리같은 눈입니다.
안타깝게도 성수침선생이 사망하고 곧 청송당은 폐허로 변합니다 (50여년후 중건하지만 19세기에 다시 사라지죠). 이 요괴의 짓일까요.

정선이 그린 청송당 (이것은 성수침 사후, 재건한 것입니다)

다음의 두 이야기는 17세기 기담집 [천예록]에 전합니다.

16세기 함경도 악취 거대 안개요괴

천예록
오래 전에 함경도 북쪽 변경의 한 고을에 악취를 풍기는 괴물의 소동이 있었다. 이 고을의 수령이 부임하여 10여일이 지나면 갑자기 죽었고, 이후 연이어 오륙명의 수령이 부임하였으나 모두 죽어나갔다. 연달아 대여섯 사람이 죽게 되자, 모두들 그 곳에 발령이 나는 것을 꺼려 피하였다. 비록 그러한 재앙을 모면할 수 있는 온갖 계책을 일러 주어도 기꺼이 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한편 어떤 무인 하나가 벼슬길에 나섰으나 전도가 고단했던 차 (뒤를 봐주는 이가 없어), 마침내 이 고을수령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는 평소에 담력과 용기가 있었고, 힘이 빼어났다. 스스로의 생각에, '비록 마귀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어찌 다 죽으란 법이 있으랴. 내 한 번 가보리라.' 하고는 곧바로 조정에 하직하고 부임하였다. 그는 관아에 도착해서는 혼자 동헌에 거처했고 장검 한 자루만은 항시 몸 가까이 놓아두었다. 

부임 첫날 초경 무렵이 되자, 바람을 따라 비릿하게 고기 썩는 냄새가 바람을 따라 약간 나기 시작하더니 날로 점점 짙어졌다. 5, 6일이 지나자, 안개 같은 기운이 짙게 깔려 밀러오는데. 악취는 그 안개 속에서 나는 것이었다. 안개가 날로 짙어지더니, 냄새를 더이상 참고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이렇게 10일이 지났다. 이제 수령이 으레 죽어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관속들과 통인, 급창 등은 하나같이 모두 달아나 그를 모시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부임 초부터 앉아 있는 자리 옆에 술항아리를 가져다 놓고, 날마다 술에 취해 스스로 견디며 날짜를 보냈었다. 10일째 되는 날은 한층 술에 푹 취한 채 앉아 있었다. 

밤이 되자 무언가가 다가와 동헌의 대문밖에 섰다 안으로 들어왔다. 안개 같은 기운이 뭉쳐서 형체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크기가 네댓 아름 가량 되어 보였고, 길이는 거의 몇 장쯤 되었다. 그 몸뚱이나 얼굴, 손발의 형체는 없고, 다만 위를 보니 위쪽 가장자리에 두 눈이 번쩍이는 것이 매우 밝았다. 수령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분연히 뜰로 내려서서는 크게 부르짖으며 돌진했다. 힘껏 칼로 내리치자 소리가 벼락이 치는 듯 울려 퍼졌다. 그러자 안개 같은 기운이 즉시 한 점도 없이 흩어졌다. 그에 따라 기분 나쁜 냄새도 금방 사라졌다. 그는 칼을 땅에 던지고 취하여 쓰러져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관속 등이 그가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하며 시신을 거두려고 와서 보니, 수령이 대문 안에 쓰러져 있었다. 모두들 이렇게 말하였다. "그 전에 죽은 원님들의 시신은 모두 동헌 위에 있었는데, 이 양반은 어떻게 뜰 아래 있을까. 이 또 하나 괴변일세." 두어 사람이 다가가 들어 거두려고 하자, 사또가 일어나 앉아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이들은 너무 놀라 물러나 엎드려서 두려움에 떨었다. 

이 악취나는 괴물의 재앙은 이때부터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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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북쪽 함경도 변경의 어떤 마을 이야기입니다. 이 요괴는 그야말로 작정하고 '악취'로 사람을 공격하는 요괴입니다. 마치 안개같은 모습에 밝은 두 눈만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으로, 이 고을에 부임하는 수령이 무려 6명이나 죽어 나갑니다.

뒤를 봐주는 이가 없어 어쩔수 없이 부임한 무인출신의 새로운 수령은 부임당일부터 작정하고 술만 마시며 이 요괴를 기다립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10일이 지나자 안개속에서 악취가 나며 두 눈이 접근해 오는데, 그 안개의 크기는 네댓 아름 (즉 팔벌렸을때 길이의 약 4-5배)이며 길이는 수장, 1장이 3미터이니, 즉 적어도 10미터가 넘어갑니다.

이 무사가 둥둥 떠오는 이 안개를 향해 돌진, 들고 있던 장검으로 벼락같이 달려들어 두 눈을 내려치니, 천둥치는 소리가 나며 사라집니다. 악취도 싹 사라져 버립니다.

천예록의 이야기지만, 오래전이라고 되어 있으니, 최소 17세기이전, 줄잡아 15-6세기의 일일 겁니다. 지명과 인명이 확실하게 남아 있지 않아 아쉽군요. 마지막은 주인공과 지명이 확실한 기담입니다.


16세기 하연 별장의 죽음의 악취, 뱀요괴

금찬에 재상 하연河演의 집터가 있다. 하공은 성조 태평시절의 명재상이었다. 별장이 금천에 있어서 하공은 평소 이곳에 있을 때가 많았다. 이 별장의 규모가 제법 커서 작은 집이 아니었다. 하공이 죽고 나서는 자손들이 이 곳에서 대대로 눌러 살게 되었다.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하공의 후손에게 있었던 일이다. 그는 집안 다락 위에 커다란 항아리를 두고 거기에 보릿가루를 담아두곤 하였다. 어느날 계집종이 이 보릿가루를 꺼내 쓰려고 항아리 뚜겅을 들고 그 안을 보니 큰 뱀이 항아리 가득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너무 커서 보릿가루는 가려서 보이지도 않았다.

계집종은 너무 놀라 이 땅에 나자빠졌다. 헐레벌떡 내달려 와서 주인 마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주인은 사내종을 시켜 항아리를 들쳐메고 마당으로 내려가 깨뜨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속에서 뱀이 기어 나오는데 크기도 보통이 아니었지만 생김새 또한 기괴하고 특별한 놈으로 이전에 보지 못한 종류였다. 주인은 장정 두셋을 시켜 큰 작대기로 마구 패서 죽인 다음 쌓아서 태워버렸다.

그러자 고약한 냄새가 안개처럼 둥둥 어지럽게 떠다니면서 집안을 가득 채웠다. 이 악취를 맡은 집안 사람들은 누구나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온 집안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날 모두 한꺼번에 죽었으며 그 집을 출입한 다른 사람들도 다 죽어버렸다. 이 때문에 감히 이 집에 들어온 이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에서 저절로 불이 나서 온 집이 다 타버리고 이 빈터만 달랑 남게 되었던 것이다.

이곳은 지금까지도 흉가 터로 전해져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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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河演)은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1376~1453년, 즉 14세기말의 인물입니다. 이 하연이 즐겨 찾던 별장이 금천에 있었는데 그 후손들이 머물러 살게 되면서 이 별장에서 기이한 일을 겪습니다. 참고로 금천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로 구로동과 시흥동, 그리고 광명시에 인접한 곳입니다. 

지금은 어디가 터인지 알지 못하겠지만, 하연이 이 곳에서 정치에 전혀 관계하지 않으며 자적했음은 이러한 시에서 잘 드러납니다.

영의정 하연(河演)의 묘소에 치제한 글

영릉의 시대에 / 英陵之世
그 재상은 누구였던가 / 其相維何
황희(黃喜)와 허조(許稠)였으니 / 維黃維許
구공을 이에 노래하였네 / 九功是歌
경이 실로 이들을 이었으니 / 卿實承之
조참(曹參)이 소하(蕭何)의 뒤를 이은 것과 같았는데 / 若曹于蕭
재상 댁의 문이 깊고도 근엄하니 / 相門如海
술 단지에는 순주(醇酒)가 있네 / 樽有醇醪
세상은 인수의 경지에 오르고 / 世躋仁壽
백성들은 영일을 구가하네 / 民頌寧壹
녹야당에 물러나기에 이르러 / 曁于綠野
노령에도 정정하였네 / 康彊大耋 중략.

이 하연의 묘소에 바친 시에 등장하는 '녹야당은' 당 나라 배도(裴度)의 별장을 말합니다. 그는 재상으로서 당나라 중기 부흥에 큰 공을 남기나, 후일 환관들이 판치자 동도(東都)에 녹야초당(綠野草堂)이라는 별장을 지어 명사들과 글과 술로 세월을 보내며 세상일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하연 역시 그러한 행적을 따랐다는 비유지요.

각설하고. 하연의 후손 중 한명이 이 별장에서 거취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여자종 한명이 다락 보릿가루 항아리에서 커다랗고 기괴하게 생긴 뱀을 발견, 후손은 이걸 쏟아내고, 종들을 시켜 막대기로 패죽이고 사체를 태워버립니다. 그러자, 그때부터 악취가 둥둥 퍼지면서 집안의 남녀노소, 출입자까지 모두 그자리에서 죽어나갑니다. 그후 이 집은 폐가가 되어 흉가로 아무도 살게 되지 않았다는 기담. 

하연의 생몰년대로 미루어보아, 이 이야기는 적어도 14-5세기 이후의 일임을 유추해 볼수 있습니다. 또한, 생몰년대가 명확한 하연의 세 아들인 하우명(河友明) 하제명(河悌明) 하효명(河孝明) (15세기의 인물들) 대신 후손이라고 얼버무린 것으로 보아, 아들들이 아닌 더 후손의 일임을 유추해보면 천예록이 17세기이니, 16세기정도의 일로 대강 판단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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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예록의 특징 중 하나가, 현대한국에 널리 퍼진 교훈적 성격이라든가 따뜻한 결말을 갖춘 설화양식이 아니라, 열린 결말, 비극, 뜬금없는 전개등인데, 이는 우리 설화, 야사, 기담류의 또 하나의 축으로 자리매김하며 여러 특징을 갖춘 이야기 구조의 밸런스를 맞춰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이런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취' 요괴들을 모아 보니 신선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군요.


덧글

  • 이선생 2014/09/30 07:12 #

    호오 전 장발귀 밖에 몰랐는데 악취와 관련된 괴물들이 더 있었군요.
    다른 괴물들도 대단히 흥미롭네요.
  • 역사관심 2014/09/30 07:14 #

    장발귀는 예전에 이선생님 블로그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아 냄새나죠 이것들 ㅎㅎ ㅜㅜ^
  • 이경호 2014/09/30 08:39 #

    크헉 악취나는 요괴라니....냄새먹는 하마를 옆에 사용해야겠군요.ㅋㅋㅌ
  • 역사관심 2014/09/30 11:40 #

    쉭쉭 뿌리면 사라질지도~.
  • 松下吹笙 2014/09/30 09:42 #

    성수침 선생이라고 말씀하신 동판조각의 인물이 성수침 선생이 맞나요? 동판 조각의 원본은 정선의 그림인 독서여가인듯 한데.... 독서여가의 인물의 주인공은 정선 자신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4/09/30 11:35 #

    애매했는데 역시 아니었군요 ^^ 수정합니다 고맙습니다.
  • anchor 2014/10/02 08:49 #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께서 소중하게 작성해주신 이 게시글이 10월 2일 줌(zum.com) 메인의 [이글루스] 영역에 게재 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10월 2일 줌에 게재된 회원님의 게시글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역사관심 2014/10/02 09:04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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