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얼굴만 있는 요괴, 면귀 (해동잡록 & 어우야담) 설화 야담 지괴류

오늘은 조선시대 요괴/요귀중 얼굴만 덩그러니 있는 요괴들입니다. 우선 16세기 문신인 권별(權鼈 1589~1671)의 [해동잡록]에 다음의 기이한 이야기가 전합니다. 
 
해동잡록 海東雜錄

첨중추부사 송희규(宋希奎)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였다. 일찍이 한 선진(先進)의 집을 드나들며 학업을 닦았다. 

하루는 날이 어두워 어느 인가에 투숙하려고 대문을 향해 나아가며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탱자나무 숲 속에서 한 노파가 공(公)의 어릴 적 이름을 불렀다. 그 모습이 꼭 장난치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얼굴이 울타리에 가득 찰 만큼 매우 커다란 것이 진실로 귀신이 괴이함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지경에 빠진 것이므로 벌떡 일어나 곧장 앞으로 달려가며 손을 내저으니 그 모양이 점점 사라져갔다. 

물러서서 다시 돌아보니 울타리 위에 머리만 걸려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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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등장하는 송희규(宋希奎 1494~1558년)는 16세기전반의 인물로, 1534년 흥해군수, 1543년에 상주 목사, 사헌부집의등을 역임, 1547년 명종의 외숙부인 윤형원을 탄핵하다가 유배를 당합니다. 그 뒤 풀려나와 고산(高山)에 집을 짓고 스스로 ‘야계산옹’이라 부르고 지내다가 1558년 사망합니다.

이분은 야성(야로) 송씨로 야로(야성)는 경상남도 합천군에 속해 있는 지명이죠. 하지만 이분이 태어난 고향 (즉 글중 등장하는 어린시절을 보낸 곳)은 '경북 성주'입니다. 지금은 탱자숲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한 고택 (정확히는 '한주종택')에 제주도에서 옮겨 심은 귤나무가 탱자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보면 환경적으로 탱자가 자라기 좋은 곳인 듯 합니다.

성주군 한주종택의 탱자나무 
더 흥미로운 것은 기담의 내용에, 탱자나무 숲에서 이상한 노파가 불러 송희규가 가보니 '그 얼굴이 울타리에 가득찰 만큼' 컸고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탱자나무 숲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울타리'로 뜬금없이 바뀌는 게 이상하죠. 추정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탱자나무는 예전부터 먹는 식용보다 '울타리'의 기능을 주로 하던 나무기 때문입니다 (거의 이 기능이나 관상용밖에 없습니다).

이러니 울타리가 될 수밖에...(탱자나무 울타리)
여기에 할미요괴의 얼굴이 커다랗게 걸려있었다는 거죠. 같은 경북의 안동의 유명한 하회탈중 할미탈인데,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요괴가 송희규선생의 아명 (어릴때 이름)을 불러댔다니...기괴한 느낌입니다.

조금만 더 들어가 보죠. 이 이야기에 나오는 송희규선생이 어릴 적 학업을 위해 다녔다는 '선진'의 집은 누굴까요? 또 다른 문집인 [유분록(幽憤錄)]에 해답이 있습니다. 

○ 공은 어릴 적부터 재주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일찍이 좌랑 도형(都衡)에게 글을 배울 적에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고는 하였다. 하루는 캄캄하여서야 집으로 돌아오는데 별안간 소나무 숲에서 어떤 노파가 나타나더니 꼭 과거부터 공을 아는 사람처럼 공의 이름을 불렀다. 장난치는 것처럼 앞으로 다가서는데 얼굴이 점차로 커지더니 나중에는 울타리에 가득히 찼다. 이것은 귀신이었는데 공이 재빨리 몸을 앞으로 내달리면서 그 귀신을 치려 하자, 그 형체는 차차 사라지고 오직 얼굴만이 울타리에 걸렸을 뿐이었다. 

즉, 좌랑직의 '도형'이란 인물입니다. 이 분은 1480년에 출생했으므로 송희규보다 약 14살 연상이죠. 1519년에 이분은 좌랑에 오릅니다. 하지만, 이 기록으로 이 일이 1519년 (그해 11월 기묘사화로 도형은 연루되서 파직되므로 이 한해만 좌랑입니다)에 일어난 일인지의 여부는 살펴봐야 합니다. [유분록]이란 저서가 언제 씌여진 것인지가 관건이 되겠죠 (1519년 당해에 쓰여진 것이라면 이 기담은 1519년의 일이 될터이고, 그 후에 씌여졌다면 관련성이 떨어지죠). 개인적으로 유분록에 대한 정확한 서지정보는 모르겠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탱자나무 숲이 이 기록에서는 소나무 숲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이죠.

사실 후일 첨가할 지도 모르는 '송희규'선생에 관한 기담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 [대동기문]의 한 챕터가 '송희규가 도깨비를 두들겨 쫓아내다' 라는 제목이 있는데, 이 글을 구할수가 없어 일단 미뤄두죠 (대동기문 완역문을 화일로 가지고 있는데 전부 담고 있지 않나 봅니다). 아무튼 선생이 왜소해도 담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어릴때부터 이런 요괴류와 엮이는 일이 많으셨나 봅니다.

다음은 예전에 한번 소개한 바 있는 기괴한 면상의 요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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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야담
정백창이 본 요괴 

한림(翰林) 정백창(鄭百昌)이 젊었을 때 산사(山寺)에서 독서를 하였다. 그는 여러 중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싫어해서 항상 불상 모신 상 뒤에 가서 책을 읽었다. 불상을 모신 상 아래에는 창(窓)이 없이 빈 구멍이 있었는데, 불상 등의 물건을 넣어두었다.

늦은 밤인데 갑자기 커다란 한 물체가 나와 책상 앞에 엎드렸는데, 고약한 냄새가 코에 역겨웠다. 정백창이 자세히 보니, 그 물건은 눈이 튀어나오고 코는 오그라졌으며, 입 가장자리가 귀에까지 닿고, 귀는 늘어졌으며, 머리털은 솟구쳐 있었다. 마치 두 날개로 나뉘고, 몸의 색깔은 푸르고 붉었으나, 형상이 없어 무슨 물체인지 살필 수가 없었다. 정백창은 바로 괴귀(怪鬼)임을 알아차렸으나 태연히 침착하게 책읽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대로 계산을 해가며 몇 회를 헤아리도록 태연자약하니, 그 물체가 오랫동안 나아오거나 물러나지 못했다.

정백창은 마침내 옆방의 중을 불렀다. 밤이 깊어 모두 잠들어, 서너 번 불러서야 비로소 응답했다. 그 물체는 다시 상의 구멍으로 들어갔다. 정백창이 일어나 중의 방으로 들어가 술을 찾아 큰 그릇 하나를 다 기울이고서야 그 정신이 안정되었다. 그때 정신을 차리느라고 손을 꼭 쥐고 있었는데 손톱이 손바닥을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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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유몽인(柳夢寅, 1559년~1623년)의 어우야담에 나오는 이야기이므로 16세기 후반부의 이야기라 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전 (링크)에 이미 다룬 바 있는데, 이건 일단 몸은 있지만 '얼굴이 강조된' 요괴로 묶어서 재소개 해보았습니다 (예전에 소개한 냄새나는 요괴로 분류도 가능한 놈이죠). 일단 몸색깔이 푸르고 붉었다는 말은 하지만, 형상이 없다는 말로 그 형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자세히 묘사한 얼굴이 특징적인 요귀입니다.

조선후기 당사쥬에도 면귀비슷한 녀석이 등장합니다. 아래의 녀석입니다.




덧글

  • 응가 2014/11/02 00:30 # 삭제

    흥미롭네요. 일본요괴중에서도 머리만있는 요괴가 있다고 들은것같네요. 한일관계는 문화적으로 엄청 다르면서도 비슷한면이 있는것같아요.
  • 역사관심 2014/11/02 10:23 #

    참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다양한 녀석이 많습니다. 일본의 그 놈은 '센과 치히로의 모험'에도 나왔던 거 같네요. 세 놈이 부리부리한 눈을 가지고 머리만 대굴대굴...ㅎㅎ

    한국에서도 그런 작품을 언젠가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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