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세기 거대뱀와 야광주 기담들 설화 야담 지괴류

'15세기 이상한 구슬' 포스팅에서 예고한대로 구슬중에서도 특히 거대한 뱀의 배에서 나온 구슬 기담들을 세 편 소개합니다. 제주 김녕 거대뱀 설화등 유명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 이야기는 처음 보는 분이 많을 겁니다. 우선은 17세기의 천예록의 신기한 모험담입니다.

천예록
표류한 섬의 거대뱀에게서 두 섬의 구슬을 줍다

예전에 바닷길을 통해서 조천하는 사신의 행렬이 있었다. 사신 일행을 실은 배가 바다 한가운데 이르러 어떤 섬에 닿게 되었다. 그런데 바람이 섬에서부터 불어오기 시작하더니 배 주위를 돌며 파도를 일으켜 집어삼킬 듯하였다. 이때문에 배는 앞으로 나아가기는 커녕 금방이라도 뒤집힐 판이었다. 사공의 말이, "배 안에 필시 수신(바다의 신)이 가지려는 물건이 있어서 이러하답니다. 그 물건을 바다로 던지면 무사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분명 위태로워 질겁니다"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신 일행은 가지고 온 물건들을 바다로 내던지고 상황을 보았으나, 바람은 그래도 여전하였다. 그러자 사공이 다시 말하였다. "그렇다면 필시 잡으려는 사람이 있어서 이러할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사신은 대동하던 역관과 부관들 중 한 사람을 섬안에 내려놓고 보기로 하였다. 수십 명이 차례로 내려가 보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자 모두 배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한 역관이 섬으로 내려갔는데, 그가 섬에 내리자마자 바람의 세기가 갑자기 잦아들며 물결도 잠잠해졌다. 사신일행은 이구동성으로, "이 사람에게는 안타깝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고 말하며, 쌀과 나머지 식량을 잔뜩 내려주고, 죽 그릇과 칼 도끼등의 물품은 물론 역관이 소지했던 의복과 행장도 모두 꺼내 주었다. 서로 이별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으나  마침내 사신 일행은 배를 띄워 출발해 버렸다.

이곳은 원래 사람이 살지 않은 빈 섬으로, 잡짐승들도 없이 수목과 대나무만 울창하게 우거져 있을 뿐이었다. 남겨진 역관은 작두로 나뭇가지를 잘라 해안에다 나무집 한 채를 얽고 대나무를 베어다가 지붕을 이어 잠자리를 마련하였다. 밤이 되어 누워 있는데, 바다에서 '쉬익 쉬익'하는 소리가 섬쪽으로 들려왔다. 몸을 숨긴채 밖을 엿보니 한 거대한 이무기가 나타났다.

어찌나 큰지 몸뚱아리는 집채만하고 길이는 수십 길이나 되었다. 섬의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더니 한참 뒤에 다시 섬에서 내려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데 '쉬익 쉬익'하는 소리가 귓청을 울렸다. 매일 밤 이렇게 나타나며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리고 가고 오는 길이 정확히 일치하여 조금도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일본인 미즈키 시게루가 그린 한국의 뱀요괴- 용마 (대구시 대구천 설화)

역관은 대나무를 잘라 끝을 뽀족하고 예리하게 꽂아두고 그것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날 밤, '쉬익 쉬익'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큰 이무기가 바다에서 나와 가던 길로 오고 있었다. 섬 위로 올라와 수십길을 전진하더니 그만 멈추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그대로 엎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날 가보니 이무기는 사력을 다해 대나무로 만든 못 위를 지나가다가 가슴과 배가 모두 찢겨 속이 터진 채 죽어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어 이무기의 몸뚱아리는 다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온 섬을 덮었다. 역관은 나무 조각으로 그릇을 만들어 그 썩은 고기를 담아 모두 바다 속으로 던져 버렸다. 

그런데 주검이 있던 그 밑을 보니 크고 작은 명주(밝은 구슬)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널려져 있었다. 모두 두 섬 남짓 되었다. 역관은 갈대와 대나무를 베어 두 개의 가마니를 만들어 채워 넣고 다시 해변의 둥글고 희어 보기 좋은 조약돌로 구슬 위를 덮어 안 보이게 하였다.

몇달이 지나 사신의 선단이 돌아와 이 섬에 당도하였다. 역관이 무사히 살아남아 있는 것을 목격하고 여러 사람들은 모두 놀랍고 반가워 환성을 지르며 배를 대고 그를 맞았다. 역관은 가마니 두 섬을 배로 옮겨 실었다. 여러 사람들이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고 묻자, 역관은 '내가 몹시 아끼는 해변의 조약돌로 직접 주워 모았으며, 짐이라곤 이것뿐이니 버리지 말고 실어주기 바란다'고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모습에 기쁜 나머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흔쾌히 실어 주었다. 아무도 이것이 명주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역관은 마침내 이것을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구슬을 거내 일부는 나라 안에 팔기도 하고, 또 일부는 왜관에 팔았다. 대부분 대단한 가치가 있는 보석이라 셀 수 없을 정도의 돈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나라의 거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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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이야기에는 몇 가지 극적인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째는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중 특정인이 제물로써 태풍을 멈출 수 있었다는 점. 두번째는 이 무인도에 마치 신밧드의 모험에나 나올만한 수십길 (수십미터)짜리 거대한 뱀이 그것도 바다에서 나타나서, 섬의 꼭대기까지 매일 정확한 시간과 경로로 올라간다는 점 (대체 뭐하러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요, 일광욕?). 마지막으로, 주인공 역관이 뱀을 죽이고 수십개나 되는 '구슬(명주)'를 획득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15세기 이상한 구슬담과 똑같이 '왜관'에 내다팔아 부호가 된다는 결말입니다. 이를 보면, 일본측에서 얼마나 '명주'에 관심이 있었는지 추정이 가능해 집니다. 예를 들어 [동사강목]의 기록에도 6세기 백제에 왜가 야명주 (밤에도 빛나는 구슬)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동사강목

기유년 신라 실성왕 8고구려 광개토왕 18백제 전지왕 5(진 안제 의희 5, 409)

 

4월 고구려는 왕자 거련(巨連)을 태자로 세웠다.

7 고구려가 나라 동쪽에 독산(禿山등의 여섯 성을 쌓아서 평양의 민호() 옮겼다.

○ 왜가 야명주(夜明珠)를 백제에 보냈다.


이 기록과 거의 비근한 기록이 '청구야담' 과 '동야휘집' (각기 19세기)에 '박 화포장'이라는 사람의 기담으로 전합니다. 남중생님이 짚어주신 기록을 링크해둡니다. 

이 야명주에 대한 기록은 글서두에 언급한 이전 포스팅에서도 '필원잡기'의 경주부 기담, 중국 수나라의 명월주 이야기등 자주 등장하죠. 다음의 기록에는 세 마리 거대뱀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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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 진산(晉山)에 강(姜)씨인 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과거 보러 서울에 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책을 짊어진 짐꾼 한 사람과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초재[草岾]를 넘다가 중도에 날이 저물었다. 산은 깊고 숲은 빽빽하였으며 호랑이 발자국이 길 여기저기 나 있어서 강씨는 무서워서 어리둥절하였으며, 사방을 돌아보아도 투숙할 만할 곳이 없었다.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얼핏 보니, 한 동굴의 그윽한 바위 사이로 흡사 등불 그림자 같은 빛이 있는 것을 보고서 사람 사는 곳인 줄 알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 쪽으로 가 보았다. 동굴이 마치 집과 같는데 초목이 빽빽하고 그 앞은 가시 울타리를 만들어둔 것이 황폐하여 사람의 인적이라곤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늙은이가 굴안에 홀로 앉아 있는데 모습이 매우 작아보였으며 바위 쪽에 은은한 빛이 반사되어 머리카락까지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선비가 마음속으로는 이상하게 여겼으나 이러지저러지도 못하여 하는 수 없이 몸을 맡겨 쉬어 가기를 청하니, 그 늙은이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묻기에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늙은이가 말하기를, “내가 어찌 나그네의 하룻밤 잠자리를 아껴서 하는 말이겠습니까마는, 나에게는 장성한 아들 셋이 있어서 산 서쪽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곧 돌아올 때가 되었습니다. 혹시 그들을 거스릴까 염려되오니, 조심하여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였다. 

선비가 무서워하면서 그곳을 나왔으나, 밤은 깊고 하늘은 어두워 방향을 알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숲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자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새벽을 기다렸다. 

조금 후에 갑자기 산골짜기에서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나무와 풀이 쓰러지며 무엇이 내려왔다. 선비가 숨을 죽이고 개미처럼 엎드리고 살펴보니, 수레의 굴대 만한 세 마리 큰 뱀이 굴속으로 들어가더니, 곧 세 사람의 장부(壯夫)로 변하고 늙은이 앞에 줄지어 앉았다. 늙은이가 일이 잘 되었는지를 일일이 물으니, 첫째와 둘째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는데, 셋째는, “잘 되었습니다.” 하고, 마치 사람을 물어뜯고 사람의 혈기를 빨아 먹은 공을 말하는 것 같았다. 

늙은이가, “무엇이 잘 되었단 말이냐.” 하고 물으니, 셋째가 말하기를, “산길과 마을 길을 가로질러 갔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용궁현(龍宮縣)의 집들이 조밀한 곳으로 들어가 우물가 창포밭 속에 도사리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더니, 그 고을에서 우두머리쯤 되는 관리가 마침 밤에 술에 취하여 목이 말라 물을 찾고 있는데 한 여자가 물항아리를 이고 나왔습니다. 

그때 제가 그 여자의 발꿈치를 물어서 그녀의 혈기를 실컷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하였다. 늙은이가 놀라서 말하기를, “너는 왜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다 죽을지도 모른다.” 하므로 “왜 그러십니까.” 하니, 늙은이가, “고을에서 우두머리 관리라면 그는 구해서 못 얻을 것이 없다. 약을 찾고 재액을 퇴치하기 위해 반드시 극도로 노력할 것이니, 만약 정월 첫 해일(亥日 돼지날)에 만든 참기름 (세속에서는 콩기름이라고 한다) 을 얻어 끓여서 그 상처에 바르고, 또 그것을 낫자루 구멍에 발라서 울타리 어중간쯤에다 그것을 꽂아 두면 우리들은 다 죽고 마는 것이다.” 하고는, 오래도록 한탄하였다. 

선비가 가만히 들어 두었다가 용궁현으로 곧장 달려가서 그 여자 집을 찾아서 물어보았다. 과연 여자가 밤에 물을 긷다가 뱀에 물려서 지금 앓고 있었으므로 선비가 산에서 들은 이야기를 낱낱이 알렸다. 그때는 2월이라 정월이 지난 지 오래되지 않았다. 마침 관리 집에 정월 해일(亥日)에 짠 기름이 아직도 병에 조금 남아 있었다. 그것을 선비의 말대로 바르고 또 재액을 퇴치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그 굴에 가 보았더니 네 마리의 큰 뱀이 서로 베고 엉켜서 죽어 있었다. 여자의 통증도 얼마 되지 않아 나았다.

천 년 묵은 정기가 사람 모습으로 변해서 바위에 비추는 것이 야광주(夜光珠)가 아닐까. 내가 살고 있는 이웃에 재남(在南)이란 선비가 있어 그 일을 자세히 듣고서 그 방문(方文)을 전해주었는데, 꼭 정월 해일(亥日)에 기름을 짜서 약으로 간직해 두었다가 뱀에게 물린 마을 사람들에게 주었더니 낫지 않는 이가 없었다. 뱀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판별할 수 없었으니, 뱀굴을 찾아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약이란 모두 상극성(相克性)을 지녔으니, 의원들의 말에 생선가시가 걸린 데는 어망(魚網) 태운 재를 쓰고 말에게 물린 데는 말채찍 태운 재를 쓴다는 것으로, 이런 종류는 매우 흔하다. 돼지가 뱀을 잡아먹기 때문에 뱀은 돼지를 가장 두려워한다. 뱀이 해일(亥日)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 때문일까. 옛적 손오(孫吳 중국 삼국 시대의 오 나라) 시대에 영강(永康) 사람이 큰 거북 한 마리를 잡아 오왕(吳王)에게 진상하려고 커다란 고목에다 매어 두었다. 그런데 밤중에 그 나무가 거북을 불러 말하기를 “고달프겠구나. 거북아, 어쩐 일이냐.” 하니, 거북이 대답하기를, “내가 삶아 지려면 남산의 나무를 다 써도 안 될 걸.” 하였다. 나무가 말하기를, “제갈원손(諸葛元遜 원손은 제갈각(諸葛恪)의 자)은 박식한 사람이니, 반드시 그 일을 도와줄 걸. 만약 나 같은 것들을 구하게 한다면” 하니, 거북이, “너무 말을 많이 하지 마라. 화가 네게도 미치게 될 것이니.” 하자, 나무가 잠잠했다. 거북을 가져오니 손권(孫權)은 삶으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나무를 때도 여전히 말을 지꺼려댔다. 제갈각(諸葛恪)이 말하기를, “그럴 게다. 묵은 뽕나무라야 삶기지.” 하니, 거북을 진상한 자가 거북과 고목끼리 주고 받은 얘기를 말했다. 손권은 즉시 그 나무를 베어와 거북을 삶게 했더니 즉시 익었다. 그 뒤로 거북을 삶을 때는 뽕나무를 쓴다고 하니 앞에서 말한 일과 매우 비슷하다. 거북과 고목이 제갈원손의 박식함을 헤아려 알고, 늙은 구렁이가 능히 우두머리 관리의 재액 퇴치 방법을 짐작하였으니, 어찌 지혜롭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리 비밀스러운 말도 몰래 엿듣는 이가 있다는 교훈을 지키지 않아서 모두 화를 당했으니, 말을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됨이 이와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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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담은 김안로(金安老,1481~1537)의 [용천담적기]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세마리의 거대한 뱀이 인간들로 변한다는 이야기인데, 셋째 뱀이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었다는 곳은 바로 경상도의 '용궁현'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경상북도 예천군의 현재 용궁면/개포면/지보면/풍양면에 걸쳐있던 옛 지명입니다. 태종 13년인 1413년에 용궁현이라는 지명이 되었으므로 이 이야기는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15세기이후의 일입니다. 따라서 저자 김안로의 나이를 생각할 때, 거의 동시대에 들은 이야기가 됩니다.

등장하는 선비가 노인뱀의 이야기를 엿듣고 참기름으로 네 마리 뱀을 모두 죽이는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더 특이한 것은 이 이야기에도 '야명주'가 등장한다는 겁니다. 이야기 첫부분에 나오는 '노인의 머리카락 한올까지 비추는 빛'을 용천담적기의 저자 '김안로'선생은 아마도 야명주 (본문에선 야광주)가 비추는 빛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야광주의 원리를 이런 오래된 뱀요괴에서 나오는 빛과 같은 정기가 모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실제로 뱀이나 벌레에 물렸을 때 참기름이나 들기름으로 바르면 아픈게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동의보감]에도 씌여 있습니다. 또한, 글 후반부에 나오는 돼지와 뱀이 상극이란 건 유명한 상식으로 지금도 궁합같은 걸 보면 돼지띠와 뱀띠는 상극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직접적인 뱀이야기가 아니라, 마지막 문단에 뱀이 명월주를 물고 와 보답하는 일화를 보탠 글입니다. 이 이야기자체의 주인공은 거북같이 생긴 이상한 벌레, 금돼지가 자신의 부하들이라고 말하는, 에 대한 것이지요. 이 역시 같은 [용천담적기]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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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원(松原)의 어떤 선비가 한 산을 얻어 집을 지으려 하였다. 

처음 그 터를 닦아 흙을 두어 자쯤 삽으로 파니 흙과 돌 사이에 거북 같은 여러 벌레들이 한군데 엉켜 있는데, 깊이 팔수록 더욱 많았다. 그 벌레들을 모두 잡아 죽이고는 집을 다 짓고서 그곳으로 이사해 갔다. 1년이 못가서 그 선비의 아내가 갑자기 미친병이 나서 귀신 같은 말로 선비에게 말하기를, “네가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우리 사는 곳을 빼앗아가며 우리 종자를 모조리 죽였는가. 우리는 땅속의 금돼지라서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 사람이 도리어 우리를 이렇게까지 몰살시키는가.” 하니, 그 선비가 놀라고 괴상히 여겨 묻기를, 

“네가 금돼지라면 내가 너희 족속들을 죽인 일이 없는데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네가 내 아내를 병들게 하니 사실은 너희들이 사람에게 해독을 끼치는 것이다. 내가 너희들의 집을 모두 파헤쳐서 가차없이 다 죽여버릴 것이다.” 하니 아내가 말하기를, “너에게 잡혀 죽은 거북 같은 벌레가 모두 나의 종들이다. 나는 깊이 황천 밑에 살고 있으니 비록 온 나라의 군사들을 다 동원해서 손끝이 닳도록 파헤쳐도 어찌 그 단단하고 두터운 것을 다 통하도록 판단 말인가.” 하였다.

선비가 공손하게 사과하고 말하기를, “저승과 이승이 같지 않으며 깊은 곳과 얕은 곳이 서로 다른데 어찌하여 이다지도 서로 방해를 한단 말이오.” 하니, 그 아내가 말하기를, “이미 우리 무리들을 죽였으니 어찌 다시 용서하겠는가.” 하였다. 말이 끝나자 아내의 병이 더욱 심해져 죽고 말았다. 선비가 두렵고 겁이 나서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 되지 않아 병이 식구들에게 퍼져 결국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두 죽어버렸으니 매우 괴상한 일이다. 

옛날 송 나라 장군 조빈(曹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집이 너무 허름해서 자제(子弟)들이 수리하도록 청하였다. 장군이 말하기를, “지금은 한 겨울인 만큼 담장이나 기왓장 사이에 벌레들이 칩거하고 있을 것이니 그들의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 하였다. 어진 사람들의 마음씀이 이러하여야만 옳은 것이다. 그런데 저 선비는 거북 같은 벌레를 모두 다 죽였으니, 하늘이 낸 생물들을 거의 표독(慓毒)스럽게 죽여버렸던 것이 아닌가. 생물들의 원한에 대한 갚음이 이치상 없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수후(隋侯)의 사주(蛇珠)와 공유(孔愉)의 거북과 인(印) 같은 것을 이루 다 거론할 수 없다. 수후(隋侯)가 뱀이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고 약을 발라 치료해 주었다. 그 후 어느 날 뱀이 명월주(明月珠)를 물고 와서 보답하였다. 진(晉) 나라 공유(孔愉)가 거북을 샀다가 다시 놓아 주었다. 그랬더니 거북이 왼쪽을 돌아보면서 사라졌다. 공유가 봉후(封侯)가 되어 금구(金龜)를 만들려 했더니 거북의 모양이 삐뚤어지기를 세 번이나 하였다. 그 거북은 흡사 자기가 살려주었던 거북과 비슷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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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배경무대인 '송원'은 아마도 함경남도 함주군내의 지명이 아닌가 합니다. 이야기는 매우 괴이한데, 이 곳의 선비가 집터를 만들려고 땅을 파다가, 거북이를 닮은 이상한 벌레들을 발견 죽여버립니다. 그런데, 얼마후 그의 아내가 미쳐서 지껄이는 소리가 '난 황천밑에 사는 금돼지인데, 네가 나의 부하들을 죽여버렸으니 댓가를 치를 것이란' 말을 합니다. 이야기의 구성은 우리가 흔히 보는 전통동화집과 달리, 마치 [천예록]과 비슷한데, 선비가 진심으로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물론 그 선비의 일가는 몰살을 당해버립니다.

사실 언젠가 기회가 될런지는 모르겠으나, 이 '금돼지'기록은 꽤 의미심장한 기록입니다. 왜냐하면 도깨비의 기원을 '금돼지'신앙에 두는 연구가 최근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논문에 필자가 소개한 이 기록은 빠져 있습니다). 여하튼 금돼지가 거북을 닮은 벌레를 부하로 둔다는 설정자체가 아주 특이합니다. 글의 마지막에 나오는 수나라의 '명월주'이야기는 이미 이전 포스팅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아무튼 '뱀과 야명주(명월주, 야경주)', 즉 밝은 구슬의 관계는 예전에 남중생님이 소개한 '흡독석, 슬랑가스텐, 용골'이야기와 같이 읽으면 아주 흥미로울 겁니다.

참고로, 며칠전 소개한 '면령' 역시 일본의 기록에서도 등장하는 기이한 구슬입니다.


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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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세오 2014/11/06 11:38 #

    기담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는 또 없지요.
    다른 이야기도 보고 싶어 링크에 추가했습니다. ^^
  • 역사관심 2014/11/06 12:03 #

    반갑습니다.^^
  • Nocchi 2014/11/06 12:17 #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오나라 손권 이야기를 보면 당시 오나라는 거북이가 아무리 삶아도 삶아지지 않는다 는 것은 중요하지만 거북이가 말을 한다는 것은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 였나 봅니다 ㅋㅋ
  • Nocchi 2014/11/06 12:34 #

    솥에 넣어져 삶겨질 운명에 처했는데도 죽을 때 까지 지껄이는 거북이라
    항상 근엄하고 사실적인 '고전' 속에 뜬금 없이 들어 있는 '디즈니 만화' 같은 클리세가 어째 괴담 보다 더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
  • 역사관심 2014/11/06 12:37 #

    역시 고대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현세와 어우러져 있는 시대인지라...^^ 재밌죠..그냥 그대로 많은 변형없이 현대극으로 극화해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 Esperos 2014/11/08 00:50 #

    고대 중국의 서적 분류에서 '소설'류(한자는 같으나 현대에서 말하는 '소설'이 아님)로 분류되는 책들은 대개 저런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당송시대에 떠돌던 (소설로 분류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모은 '태평광기'(10세기 송나라 때 편찬)란 책에는 저와 비슷한 이야기가 문자 그대로 수천 편이 실려 있습니다. 저 뽕나무로 거북을 삶은 이야기는 원래 수신기란 책에 실려 있는데, 태평광기에도 "이거 수신기에서 나온 이야기임"하면서 수록돼 있죠.

    우리말로 번역된 태평광기 완역본을 거의 다 읽었는데,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뭘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입니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중국 고서에는 정말 별별 이야기가 다 있어요.....
  • 역사관심 2014/11/08 00:51 #

    Esperos님, 지금 태평광기 전질을 질러야하나 마나로 꽤 고민중입니다만, 혹시 넷상에 태평광기를 볼수 있는 곳이 없을까요?

    아니면, 태평광기의 내용에 대한 목록이라도 구하면 좋겠습니다. 21권 전질을 한번에 구입하기보다, 내용을 보고 골라서 사고 싶은데, 온라인서점들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어 당최 권당 내용이 뭔질 알길이 없네요. 어떻게 저렇게 서비스를 하는지...2001년 책인데 말이죠.
  • Esperos 2014/11/08 00:57 #

    역사관심// 인터넷으로는 방법이 없습니다 (______) 또한 태평광기 목차도 내용을 요약해서 제시하기보다는 그냥 권제1,2,3 이런 식으로 숫자로만 표기하기 때문에 역시 제대로 된 목록을 구할 수 없습니다.

    전 도서관에서 태평광기를 한 권씩 빌려서 읽었는데, 제가 다니는 도서관에 마지막 몇 권이 없어서 땅을 쳤지요.
  • 역사관심 2014/11/08 07:25 #

    Esperos> 흑 그렇군요. 이거참... 교보문고같은데도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골라 살수 있을지..; 막막하네요 (특히 고구려 수정성 관련 부분이 나오는 권부터 꼭 사고 싶은데...;)

    Nocchi님 댓글로 자꾸 달아 귀찮게 해드려 미안하네요. 일단 여기서 끊겠습니다 6^^
  • 야명주말인데요 2014/11/06 14:01 # 삭제

    야명주가 방사성 동위원소가 함유된 물건이라(트리튬같은거) 그걸 가지고있던 사람들이 방사능피폭으로 빨리죽었다는 소문이 ㅋㅋ
  • 역사관심 2014/11/06 16:42 #

    ㅎㅎ
  • 존다리안 2014/11/06 22:43 #

    야명주라...용의 여의주와도 비슷한 걸까요?
  • 역사관심 2014/11/07 04:02 #

    남중생님의 글을 보면 그렇게 당시에는 평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뭔가 물건이 있었으니 이런 말들이 나올텐데... 뭔지 궁금하네요 ㅎㅎ.
  • Cheese_fry 2014/11/07 04:29 #

    그림이 은근히 오싹하네요.(제가 겁이 많아서...;)
    얼마전에 서점에서 중세, 르네상스시대 지도에 등장하는 바다괴물들,이란 책을 흥미롭게 구경하다가 살까,했지만 역시 무서워서 그냥 놓고 나왔어요. -.-

  • 2014/11/07 05:4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Cheese_fry 2014/11/07 06:23 #

    네. 맞아요. 무섭거나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 잘 못 봅니다. 예전에 복수는 나의 것보다가 마지막 10여분 남기고 영화관에서 뛰쳐나와서 아직도 결말을 모르고 있어요. ㅎㅎㅎ
    그런데 기담은 옛날 이야기라 오싹하면서도 재미있는 구석이 있어서 무서운데도 읽으면서 멈출 수가 없어요.
  • 역사관심 2014/11/07 06:45 #

    뛰쳐나오시기 까지;;; 하긴 저도 사실 잔인한 영화는 질색입니다.
    무서운 것과 잔인한 건 엄연히 다른 장르로 보는지라...

    심리호러와 고어물은 중 전자는 팬, 후자는 혐오쪽입니다 ㅎㅎ.
    기담은 전자에 속해서 좋아합니다.
  • Esperos 2014/11/07 08:39 #

    일본 신화에 보면, 대한해협 쪽에서 다가오는 '빛을 내는 뱀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동해 쪽에 면한 일본 마을들 중에는 '한국에서 찾아오는 뱀신'에 대한 신앙이전해오기도 하죠. 뭔가 지금은 잊혀진, 하지만 역사적인 연관이 있었을 가능성을 이 글을 읽으니 더욱 생각해보게 되네요.
  • 역사관심 2014/11/07 09:25 #

    허 그런 이야기가 또 있나요.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정보 고맙습니다!
  • Esperos 2014/11/08 00:19 #

    제가 읽은 자료는 김후련 교수님이 쓴 '타계관을 통해서 본 고대일본의 종교사상'(제이앤씨, 2006) 275-281쪽입니다. 이 책에서는 고사기, 그리고 일본서기 일서가 전하기를 '오모노누시'라는 신이 빛을 내면서 바다를 건너 이즈모로 왔다고 하는데, 이 오모노누시 신이 뱀 형상을 했다고 설명하는군요. 또한 고사기에 나오는 '호무치와케'(스닌 천황의 아들) 기록, 그리고 일본서기의 스닌 천황 23년조, '오와리노쿠니 풍토기'에서도 호무치와케가 이즈모로 가서 히나가히메란 여자와 함께 살았는데 알고 보니 이 여자가 뱀인지라 배를 타고 도망갔더니 빛을 내며 쫓아왔다는 전승을 기록하는군요.

    그런데 이즈모는 음력 10월에 일본의 모든 신들이 모인다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이 즈음에 이즈모 앞바다에서는 바다뱀들이 밀려오는데, 사람들은 이 뱀을 신이 보낸 사자라 하여 신사에 모신다고 하는군요. 또한 가라카미사라기(韓神新羅) 신사(스사노오를 모시는 신사. 또한 이름부터가 '한국 신라'란 뜻이니..)에서는 이 즈음에 밀려오는 바다뱀을 한국에서 온 신의 사자라고 생각한다나요.
  • 역사관심 2014/11/08 00:37 #

    Esperos님 덕분에 김후련 교수님이란 분을 알게 되었네요. 찾아보니 신공황후에 대한 논문도 쓰셨고 재밌는 글이 많군요. 감사합니다.

    고사기를 뒤져보니 말씀대로 이런 부분이 있군요:
    "...여기서 미코는 히나가히메와 연을 맺었다. 그런데 침상에서 몰래 히메를 엿보니 정체가 뱀이었다. 공포를 느낀 미코는 그곳에서 즉시 도망쳤다. 이에 히나가히메는 슬퍼하면서 해상을 비추며 배로 쫓아왔다."

    뱀이 빛이 난다는 이야기는 달빛등에 비늘이 비춰서 그럴수도 있다고 억측을 한다하더라도, 이즈모 지역에 있는 '박혁거세'를 모신다고만 알고 있던 가라카미사라기 신사였는데, 한반도쪽에서 밀려오는 바다뱀이라는 존재는 처음 알았습니다.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는데 구할길이 막막하네요 ^^;
    추후 관련정보를 얻는대로 연작 포스팅을 해볼 수도 있게되어 흥미롭습니다. 감사드려요!
  • 역사관심 2014/11/08 00:48 #

    생각해보면 韓神(가라카미)山 이라는 지명자체가 한반도의 신이란 뜻이네요...

    그리고 찾아보니 이런 글도 있습니다.

    시마네와 경상도는 동종동문(同種同文)인가?

    도래(渡來)의 모래 밭
    八束水臣津野命 (야츠카미즈 오미츠노노미코도)는 ꡔ이즈모국 풍토기(出雲國風土記)ꡕ의 서두를 장식하는 건국신화의 주인공이다. 그 창조신을 모신 나가하마신사(長浜神社)를 옆으로 끼고 자동차로 3분 여, 소토조노(外園)해안에 나서면 싱그러운 바다바람을 느낄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넓고 한없이 푸른 일본해, 그것을 넓게 휘감는 듯 오른편으로 불쑥 튀어나온 키즈키(杵築-大社町의 옛 지명)의 곶(岬)으로부터 검푸른 소나무 산과 흰모래의 띠가 대사만(大社灣)을 남쪽으로 늘어트리고 왼쪽으로는 아득하고 단아하게 잠시 멈춰 서서 사히메(佐比賣-三甁山)산의 가슴으로 사라져 간다. 이것이 ꡔ풍토기ꡕ에서 말하는 소노(薗)의 나가하마이다. 그것은 오미츠노神 한반도 신라(新羅)곶으로부터 나라를 끌어당길 때(くにびき-편집자 주)사용하였던 밧줄이 변한 것이라 한다. (ꡔ풍토기ꡕ∙나라끌기 편)

    파도가 밀어닥치는 곳에는 사철(砂鐵-편집자 주; 사광상(砂鑛床)의 한가지. 화성암이 풍화 침식에 의하여 분리된 자철광 알갱이가 물의 작용으로 운반되어 하상(河床) 또는 해안에 퇴적된 것. 철제 원료로 하는 외에 티탄 및 바나듐의 채취 원료로 중요시 됨)이 띠 모양으로 층을 이루며 파도와 희롱하고 있다. 하지만 모래사장에는 이 아름다운 경관을 엉망으로 만들만큼 심하게 많은 표착물. 드물게는 남방의 야자열매가 보이고 겨울에는 재바다뱀(편집자 주;)이 흘러들어 신의 사자라고 숭앙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샌달∙비닐용기∙어업용 부유물 등으로 어느 것에나 한글이 적혀져 있다. 틀림없이 한반도의 동남부인 경상도연안 부근으로부터 쓰시마(對馬)온류를 타고 북서풍에 떠밀리어 표착한 것이리라. 필자는 한반도의 학자가 방문하게되면 반드시 이 해변의 모래밭으로 안내한다. 함경북도 태생이라고 하는 어원연구가 박병식(朴炳植)씨는 바다를 향하여 양손을 펼쳐 “아아! 나의 조국이여”라고 외쳤다. 역사가 이진희(李進熙)씨는 표착물을 비닐백에 가득히 담아 가지고 돌아갔다. 그것이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특별한 무엇인가가 이 해변의 모래밭에 있는 것이다.

    소노노 나가하마(ソノノナガハマ)의 소(ソ)는 신라의 옛 명칭, 노(ノ)는 ‘토지’라고 해석하면 ‘신라인 도래의 해변’이라 할 수 있다. 또는 소(ソ-한글의 소)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면‘금속’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이즈모신화의 영웅신(英雄神) 스사노오(スサノヲ)는 신라의 소시모리(ソシモリ)로부터 이즈모로 도래하였다(풍토기 제4장 1서)고 하지만 이곳은 코오베천(神戶川)의 하구(河口)지대. 스사노오(スサノヲ)가 원고의2쪽 한단치(韓鍛治-からかめち-편집자 주; 한반도로부터 도래한 철을 다스리는 철기문화의 소유자)라고 한다면 사철의 층을 보고 옳거니 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http://blog.daum.net/tasofhso/9626992
  • 역사관심 2014/11/08 00:55 #

    같은 글에 이런 부분도 나오는군요. 일본측 연구가 흥미로운 게 많은 듯 합니다:

    자연인류학의 제1인자 우에하라(植原和郞) 전 동경대교수의 논문 ꡔ일본 초기 도래자 수의 측정ꡕ원고3쪽(ꡔ인류학 잡지ꡕ 제9권 제3호)은 시뮬레이티브한 연구이지만 획기적인 ‘한일 동일조상론’이라고 하여도 좋을 만하다. 즉 지금으로부터 약2,300년 전 야요이시대 초에 일본열도에 있던 토착인(죠몬인)수는 75,800명(또는 163,000명)이라고 하는 의외로 적은 숫자였다. 그런데 야요이시대 초기로부터 AD700년까지 도래한 사람들의 수는 3,024,156명(또는 2,890,412명)이나 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도래인의 주체는 북방계의 신몽골로이드, 그 대부분이 한반도로부터의 도래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인류학의 형태학적 측면으로부터 연구결과이다.

    이것에 대하여 필자는 1983년 시마네현 사람들의 형질적 특징으로서의 혈액형분포율을 분석하여 ‘고대 이즈모와 신라는 동종(同種)’이라는 가설을 발표하였다(졸저ꡔ이즈모의 왕권은 존재하였다ꡕ 山陰中央新報社). 그 대강의 줄거리는 - 민족의 비교연구 혈연의 親疎, 민족의 루트를 찾는 구체적인 수단으로서 혈액형 분포율에 의한 조사가 대표적인 방법이다. 그것은 혈액은 유전하는 형질로 동일민족의 혈액형분포율은 타민족과의 혼혈이 일어나지 않는 한 수 백년이 지나도 일정할뿐더러 혼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에 비례해서 규칙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古畑 種基 著ꡔ혈액형 이야기ꡕ).

    헌혈자를 대상으로 일본적십자사 혈액사업부가 실시했던 1982년도의 전국혈액형분포조사결과는 전국 평균치로서 A형이 38%, O형이 29.3%, B형이 22.2%, AB형이 10.5% 이었다. 대략적으로 4∙3∙2∙1의 비율이었다.

    그런데 시마네현 사람들의 A형 비율은 41.3%로 전국에서 최고이었고, 전국평균을 3.3%나 상회하는 통계이다. 반대로 시마네현 사람들의 B형 비율19.9%는 전국최저여서, 각각 돌출된 형질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세부적으로 이즈모 사람들의 A형 비율은 42.9%, B형 비율은 역시 19.9%이었다. 근소한 통계치이기는 하지만 이즈모인은 A형 비율에 있어서 동아시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것과 필적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곳은 한국의 경상남도로 42.8%이며, 다음으로 중국강남의 호남성(湖南省) 사람들의 비율 36.68%(古畑 種基 통계)이다. 지금의 경상남도로 말하면 일찍이 낙동강 연안에 번영하였던 변한 지역으로, 가야문화권이 주체이지만 경상북도를 북으로 두고 있는 연유로 A형 비율은 낮아졌고 오히려 B형 비율이 높아졌다. 하지만 한반도를 통 털어서 경상도의 A형 비율은 제일 높다고 할 수 있다.
  • Esperos 2014/11/08 01:04 #

    헐헐. 별도로 알아보셨군요. ^^;; 일본 쪽 학자들도 스사노오가 한반도 도래계 신이며, 이즈모 등에 한반도 도래인들이 많이 건너와 살았음은 다들 인정합니다. 그런데 혈액형으로 그걸 뒷받침하는 연구가 있었는 줄은 또 몰랐네요. 다만 저는 종종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기신화에 나오는 천계 다카마노하라를 구태여 한반도 지방으로 비정한다거나.... 이런 건 꽤나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 역사관심 2014/11/08 01:27 #

    궁금한건 못참는 성격이라 ^^;;
    동감합니다. 이런 흥미로운 연구도 있는 반면, 목적의식을 먼저 맞춰놓고 연구를 진행한 글들을 보면 어떨때는 좋은 주제를 망치는 느낌마져 들곤 합니다.

    또 어떨때는 글의 부분내용은 분명 귀담아 들을만 한데, 전체적인 프레임이 말씀하신대로인 글들은 한숨이 나옵니다. 그 부분내용을 쓰고 싶어도 어쩔때는 오해(?)를 살만한 전체논지를 견지하고 있는 논문같은 건 인용하기가 꺼려지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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