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집단 '검계劍契'와 18세기 창포검 (해외유출문화재) 역사전통마

영화 '구름을 버서난 달처럼 (2010)'은 기대보다 못한 실망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다만, 볼만한 캐릭터로 일본의 자토이치같은 맹인검객으로 조선검의 달인 (황정민 분)이 등장하지요. 사실 이 양반의 검술은 진퉁이 아니라 짝퉁, 즉 '살수'(사람을 죽이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의 기술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명예따위와는 관계없이 마치 대나무지팡이처럼 생긴 평소에는 집고 다니는 지팡이속에서 칼을 뽑아 방심한 적을 베어버리는 신기한 검술을 구사하죠 (자토이치와 같습니다- 조선식 재탄생이라고 하나 영화가 잘 뽑혔을 때의 이야기고, 결과적으로 거의 모방에 그쳤습니다).  위아래 사진처럼 대나무지팡이처럼 생긴 막대기에서 별안간 검이 튀어나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저 검은 만들어낸 이야기' 혹은 '그냥 자토이치 모방'으로 생각하셨을 겁니다. 

구름을 버서난 달처럼
자토이치 (리메이크작)- 비슷한 검을 씁니다.

창포검菖蒲劒

그런데 이 칼은 실제로 조선중기 이후 살수집단에서 쓰던 현전하는 검입니다. 바로 '창포검菖蒲劒'이라는 검입니다. 칼의 몸체가 마치 창포잎처럼 일직선으로 되어 있다고 하여 창포검이라고 하는데, 위기상황시에 칼이나 혹은 창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호신용 무기입니다. 지금 전해지는 몇점의 창포검에 바로 지팡이나 대나무 막대 속에 넣어서 휴대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전형적인 지팡이형 창포검 두점
고려대등 각종 박물관에 소장중인 다양한 형태의 창포검 (대나무 형태등)
그리고 군사박물관에 전시중인 고급 창포검 두점
아직까지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또다른 한 점, 오늘의 주인공은 우선 창포검이 쓰이던 배경지식부터 설명하고 소개하도록 하죠.

영화 '구름을 버서난 달처럼'에 등장하는 지팡이칼은 이렇게 버젓히 실존하던 것입니다. 그럼, 문인의 시대로 흔히 일컬어지는 조선시대에 저런 칼들을 저 맹인검객처럼 쓰던 자들이 있었을까요?

있었습니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전문 살수집단이...


16-17세기 조선중기 살수집단 검계劍契

보통 조선시대의 도적떼하면 '홍길동'이나 '장길산'같은 선악구분이 모호한 집단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보통 탐관오리를 처단하고 못사는 이를 돕는 의적의 느낌이 대중적으로 강하죠. 그런데 여기 그런 이미지와는 전혀 거리가 먼 악의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검계劍契' (혹은 살략계(殺掠契)나 홍동계(鬨動契))라는 이름의 살수집단입니다.

검계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1684년 숙종조에 처음으로 기록이 등장합니다. 이 기록의 원전은 1724년의 [조야회통朝野會通]이고 18세기중반 [연려실기술]에 실려있습니다.

연려실기술
숙종조 고사본말(肅宗朝故事本末)
난민(亂民)을 잡아 다스리다

갑자년(1684, 숙종 10)에 왜국의 국서가 온 뒤로부터 시국에 대한 시끄러운 소문이 날로 심하여 피난하는 사람의 가마와 짐이 동대문으로 나가는 것이 서로 잇달았다. 무뢰한 무리들이 서로 모여 계(契)를 만드니, 혹은 살략계(殺掠契)라 하고, 혹은 홍동계(鬨動契)라 이르고, 혹은 검계(劍契)라 하였다. 혹은 밤에 남산에 올라 태평소를 불어서 군사를 모으는 것같이 하고, 혹은 중흥동(重興洞)에 모여 진법을 연습하는 것같이도 하며, 혹은 피란하는 사람의 재물을 추격하여 탈취하기도 하여 간혹 인명을 살해하는 일까지 있었다.

청파(靑坡) 근처에 또 살주계(殺主契)가 있었는데, 목내선의 종도 또한 들어 있어 목내선이 즉시 잡아 죽였다. 좌우 포도청에서 7, 8명을 체포하여 그 계의 책자를 얻었는데, 그 약조에, ‘양반을 살육할 것, 부녀자를 겁탈할 것, 재물을 약탈할 것’ 등이 있었고, 또 그 무리들이 모두 창포검(菖蒲劒)을 차고 있었다.

우대장(右大將) 신여철(申汝哲)은 관대히 용서하는 경우가 많았고, 좌대장(左大將) 이연하(李仁夏)는 매우 엄하게 다스렸다. 적당들이 남대문 및 대간의 집에 방문을 걸기를, “우리를 만약 모두 죽이지 못하면 종말에는 너희들 배에다 칼을 꽂고 말 것이다.” 하였다. 광주(廣州)에 한 과부의 서얼 사촌이 있었는데, 검계(劍契)의 일당이었다. 

교하(交河)의 깊은 산골에 촌사람이 많이 모였는데, 어떤 한 사람이 말하기를, “장차 난리가 일어나면 우리도 양반을 아내로 삼을 수 있다.” 하니, 숙수(熟手) 개천(開川)이란 자가 큰 소리로 말하기를, “양반의 음문[陰]은 심히 좋다는데 이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하였다. 그 마을의 양반이 듣고, 사형(私刑)으로 50대의 볼기를 쳤는데, 들은 자가 모두 그놈을 광주의 도적과 함께 베어 죽이지 못함을 한하였다. 광주의 도적을 잡아 문초할 때에, 청탁의 편지가 연달아 날아 들어오고 과부가 날마다 관문(官門)에 와서 울부짖다가 적을 죽이니, 과부도 또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조야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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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을 보면 검계라는 집단은 살략계, 홍동계라고도 불리며 양반과 하층민을 가리지 않고 살육하고 약탈하던 집단임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살주계'라는 행동지침이 있어 '양반 살육, 부녀자 겁탈, 재물 약탈'이라는 강령이 있었고, 모든 대원들이 소개한 '창포검'을 차고 있었습니다. 행동에도 거리낌이 없어 남대문(숭례문)이나 대간의 집에 '복수의 선언서'를 걸기까지 합니다.

이규상(李圭象,1727~1799년)이 쓴 장붕익(張鵬翼,1646-1735년) 포도대장의 전기소설인 장대장전(張大將傳)에 보면 검계에 대한 더 자세한 (특히 외모) 묘사가 나옵니다. 이 장붕익은 한밤중에 검계대원에게 습격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당대의 검계를 소탕하는 성과를 거두죠.

張大將傳 장대장전 중

서울에는 오래 전부터 무뢰배들이 모인 것을 ‘검계’라 하였다. ‘계’란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모인 것을 이르는 말이다. 검계 사람은 옷을 벗어 몸에 칼을 찬 흔적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낮에는 낮잠을 자고 밤에는 나돌아다니는데, 안에는 비단옷을 받쳐 입고 겉에는 낡은 옷을 입는다. 맑은 날에는 나막신을 신고 궂은 날에는 가죽신을 신는다. 삿갓 위에는 구멍을 뚫고 삿갓을 내려 쓴 뒤, 그 구멍으로 사람을 내다본다. 

혹은 스스로 칭하기를 ‘왈자’라고 하며, 도박장과 창가(娼家)에 종적이 두루 미친다. 쓰는 재물은 전부 사람을 죽이고 빼앗은 것이다. 양가 부녀자들이 겁간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대개가 호가(豪家 재산많은 권력가)의 자식들이어서 오랫동안 제압할 수가 없었다. 장대장이 포도대장으로 있으면서 검계 사람을 완전히 잡아 없애고 발뒤꿈치를 뽑아 조리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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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검계의 외양을 묘사하고 있어 조야회통과 또다른 의미가 있는 기록입니다. 우선 무조건 '검객'출신만 받아들입니다. 또한 낮에는 자고 밤에만 활동하는데, 안에는 비단옷을 입고 겉에는 거꾸로 낡은 옷을 걸칩니다. 그리고 맑은 날은 나막신, 비오는 날은 가죽신을 신습니다. 신도 완전히 거꾸로인거죠. 특히 무서운 것은 삿갓을 쓰고 눈쪽에 구멍을 뚫은 뒤 그 구멍으로 사람을 몰래 봅니다. 

이런 느낌인거죠 (17세기배경 드라마 꽃들의 전쟁중- 바로 저게 창포검입니다)
이렇게 자세한 내부정보를 이규상에게 알려준 사람은 누굴까요? 
그는 바로 검계의 구성원이며 ‘집주름’(부동산업자)인 표철주(表鐵柱)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이규경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소싯적에 “용감하고 날래며 인물을 잘 쳤으며, 날마다 기생을 끼고 몇 말의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검계의 거두였는데, 말년에도 얼굴에 사나운 기색이 있었고, '철주'라는 이름도 나이가 들어 철로 된 지팡이 (이게 창포검일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를 짚고 다녀서 붙은 이름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기록에서 그들은 스스로 칭하기를 ‘왈자’라 하는데 모든 왈자가 검계는 아니었습니다 ('왈패'같은 거죠). 아래 소개하는 연암 박지원이 지은 [광문자전]의 주인공 광문(廣文)은 원래 거지 출신으로 신용을 쌓아 신의 있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왈자였습니다. 이 사람이 역모에 연루되어 옥에 갇혔다가 무죄로 알려져 나오게 되었을 때 찾아가 이야기한 사람이 표철주였습니다. 그런데 표철주와 달리 광문은 검계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둘이 늙어서 만나는 장면이 광문자전에 나옵니다.

연암집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 광문자전(廣文者傳) 중

광문이 표철주(表鐵柱)를 가리키며,
너는 사람 잘 치던 표망둥이(表望同)가 아니냐. 지금은 늙어서 너도 별 수 없구나.” 했는데, 망둥이는 그의 별명이었다. 서로 고생을 위로하고 나서 광문이 물었다. 
중략. 광문은 머리털을 짧게 자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쥐꼬리처럼 땋아 내리고 있었으며, 이가 빠지고 입이 틀어져 이제는 주먹이 들락거리지 못한다고 한다.

“김군경(金君擎)은 지금 무슨 벼슬을 하고 있지?”
“용호장(龍虎將)이 되었다네.”
그러자 광문이 말했다.
“그 녀석은 미남자로서 몸이 그렇게 뚱뚱했어도 기생을 껴안고 담을 잘도 뛰어넘었으며 돈 쓰기를 더러운 흙 버리듯 했는데, 지금은 귀인(貴人)이 되었으니 만나 볼 수가 없겠군. 분단(粉丹)이는 어디로 갔지?”
“벌써 죽었다네.”

광문이 표철주더러 말하였다.
“너도 이제는 늙었구나. 어떻게 해서 밥을 먹고사나?”
집이 가난하여 집주릅이 되었다네.”
“너도 이제는 궁함을 면했구나. 아아! 옛날 네 집 재산이 누거만(累鉅萬)이었지. 그때에는 너를 ‘황금투구’라고 불렀는데 그 투구 어따 두었노?” 중략.

표철주의 검계시절 별명이 '황금투구'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군경'이라는 패거리도 이제는 용호장이라는 벼슬을 하고 있는데, 기생을 옆구리에 끼고 담을 뛰어넘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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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무인, 포도대장 장붕익(張鵬翼)

이렇게 악명높은 위세를 떨치던 검계는 장붕익이라는 대장에게 소탕당합니다.  이원순(李源順)이 1805년 집필한 [화해휘편]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華海彙編 화홰휘편 중
劍契至英祖朝猶作梗, 捕將張鵬翼治之, 其黨皆以劍痕爲別, 故凡身有劍痕者, 皆殺之, 遂息
검계는 영조 때에 이르러 다시 말썽을 피워 포도대장 장붕익(張鵬翼)이 그들을 다스렸다. 검계의 당은 모두 칼자국이 있는 것으로 자신들을 남과 구별했기에 몸에 칼자국이 있는 자를 모두 잡아 죽이자, 마침내 검계가 사라졌다.

여기보면 18세기검계를 장붕익이 일망타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칼자국이 있는 자들을 추려서 없애버리자 (억울하게 죽은이도 많겠죠) 검계집단이 와해되었음이 명확하게 나옵니다. 다음은 실록의 기록입니다.

숙종 10년 갑자(1684,강희 23)
2월12일 (무신)
좌의정 민정중이 도하의 무리배가 사사로이 습진하니, 원배·효시할 것을 말하다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신하들을 인견(引見)하였다. 좌의정(左議政) 민정중(閔鼎重)이 말하기를,
도하(都下)의 무뢰배(無賴輩)가 검계(劍契)를 만들어 사사로이 서로 습진(習陣)합니다. 여리(閭里)가 때문에 더욱 소요하여 장래 대처하기 어려운 걱정이 외구(外寇)보다 심할 듯하니, 포청(捕廳)을 시켜 정탐하여 잡아서 원배(遠配)하거나 효시(梟示)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신여철(申汝哲)에게 명하여 각별히 살펴 잡게 하였다.

숙종 10년 갑자(1684,강희 23)
2월18일 (갑인)
좌의정(左議政) 민정중(閔鼎重)이 입대(入對)하여 말하기를,
“포청(捕廳)에 갇힌 검계(劍契) 10여 인 가운데에서 가장 패악(悖惡)한 자는 칼로 살을 깎고 가슴을 베기까지 하여 흉악한 짓을 하는 것이 그지없다 합니다. 이제 느슨히 다스려서 그 무리가 번성하게 되면 그 걱정되는 것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니, 우두머리는 중법(重法)으로 처결하고 붙좇은 무리는 차등을 두어 죄를 다스려서 관련된 자가 옥에서 지체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중을 가려서 아뢰게 하여 참작하여 처치하는 바탕으로 삼아야 하겠다.”
하였다.

2월 18일의 기록을 보면 검계 10여명을 잡는데, 그중 어떤 놈은 칼로 자신의 가슴살을 도려내기까지하는 광포함을 보여줍니다 (창포검으로 그랬겠죠). 아무튼, 당대의 검계조직을 와해한 그 대단한 '장붕익'대장은 1735년 사망하는데, 당해 1735년 승정원일기를 보면 당시 왕인 영조가 검계에 대한 궁금증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승정원일기 영조 11년(1735) 5월 25일
1735년 5월, 국정에 대해 신하들과 토론하던 상이 검계(劍契)라는 이름이 도대체 왜 생겨났는지 궁금해 하였다. 칼을 만들기 때문에 부르는 이름인지 아니면 이들이 칼을 쓰기 때문에 생긴 것인지, 또 어떤 자들이 검계에 가입하는지 몹시 의아해 하였다. 이에 좌의정 서명균(徐命均)이 말하길 ‘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든 단체가 검계이며, 주로 양반가의 사나운 종이나 머슴들이 가입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장붕익대장이 죽기 2년전인 1733년, 검계대원으로 추정되는 자객에게 한밤중에 습격을 당해 영화에나 나올 전투를 벌입니다 (이 장면은 예전 포스팅에 소개한 바 있습니다-드라마자객과 조선자객).

영조 34권, 9년(1733 계축 / 청 옹정(雍正) 11년) 5월 12일(임진) 2번째기사
주강에서 훈련 대장 장붕익이 특진관으로 입시하자 자객에 대한 일을 묻다
주강(晝講)을 행하였다. 훈련 대장 장붕익(張鵬翼)이 특진관(特進官)으로 입시하자, 임금이 자객(刺客)에 대한 일을 물으니, 장붕익이 대답하기를,

“잠결에 창 밖의 사람 그림자를 보고서 칼을 들고 나가니, 사람이 칼을 가지고 대청 마루 위에 섰다가 이내 뛰어서 뜰 아래로 내려가므로 함께 칼날을 맞대고 교전(交戰)하여 외문(外門)까지 옮겨 갔었는데 그 자가 몸을 솟구쳐 담에 뛰어 올라 달아났습니다.”하였다. 

개인적으로 아래의 그림은 검계라고 확정은 못하지만, 그러한 당대의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위의 기록과 정확하게 동시대인 한시각 (1621년~?)이 그린 '삿갓 쓴 자'입니다. 특히 삿갓밑에 눈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강조되어 있어 섬뜩한 느낌을 줍니다.
한시각, 삿갓쓴 자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참고로 장붕익대장은 1735년 사망하던 해에도 거북선에 대한 개조를 건하는 등 대단한 업적을 남긴 무인입니다 (생각해보면 저 전투장면이 그가 무려 80세가 넘은 해의 일이죠). 이러한 그가 조선시대 '무인'에 대한 소홀함을 아쉬워하는 시가 전합니다.

나라히 太平이라 武臣을 바라시니 (나라가 태평이라 무신을 버리시니)
날갓튼 英雄은 北塞에 다 늙거다 (나같은 영웅은 북녁(귀양터)에서 다 늙어간다)
아마도 爲國丹忠은 나쁜인가 하노라 (아마도 충심은 나뿐인가 하노라)

검계劍契 부활, 18세기말-19세기

18세기초 장붕익에게 일단 와해된 검계는 그럼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아닙니다. 독버섯처럼 19세기초 다시 등장합니다. 장붕익 사망후 약 70년, 비변사등록 1803년 순조 3년 기록을 보면 검계라는 이름으로 완전부활하고 있습니다.

순조 3년 계해(1803,가경 8)
 8월9일 (신미)
사간 이동식이 법의 기강을 엄히 할 것과 전 이조 참판 이면긍의 찬배를 청하다

사간 이동식(李東埴)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문무 백관(文武百官)이 게으르고 법강(法綱)이 해이해졌으며, 검계(劍契)의 이름이 나오기에 이르러 풍속이 허물어지고 세도가 무너짐이 극도에 달했습니다. 일종의 무뢰한 무리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당(黨)을 이루고, 소와 송아지를 팔아서 검(劍)을 차고 다니며 하늘을 두렵게 여기지 않고, 돈을 추렴하여 개와 돼지를 잡지 않는 날이 없으며, 약탈하는 것을 가계(家計)로 삼고, 능범(凌犯)하는 것을 장기(長技)로 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문(朱門)에 횡행(橫行)하여 재상을 꾸짖어 욕보이고, 깊은 규방(閨房)에 돌입하여 부녀자를 때리는 등 분의(分義)를 멸절시키고 기강을 어지럽힘이 거의 여지(餘地)가 없으니 주머니를 털고 상자를 열어 물건을 훔치는 것은 단지 자질구레한 일일 뿐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사구(司寇)의 직임에 있는 자는 더욱 엄중한 법과 혹독한 형벌로써 간악한 자들을 징치(懲治)함이 마땅할 것인데, 이미 범죄한 사람을 잡아 허술하게 감단(勘斷)하고도 단서가 거의 드러났는데 소혈(巢穴)을 끝까지 조사하지 못하고 싹이 이미 텄는데도 그 뿌리를 캐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방금(邦禁)을 관장하는 뜻이 있겠습니까? 더욱이 지금 징토(懲討)가 엄중하지 못하여 죄다 제거하지 않았으므로, 사옥(邪獄)의 여얼(餘孼)들이 다시 치열해질 근심이 없지 않으니, 곧 이는 검계(劒契)가 함부로 날뛰던 바로 그 남은 여추(餘醜)입니다. 그런데 도성의 백성들이 점차 물들어 서로 이끌고 저들 편에 들어가고 있는 것은 또한 술의 소치가 아님이 없습니다. 

아! 도하(都下)의 장요(長腰)는 모두 술을 만드는 집에 들어가고, 저자의 어육(魚肉)은 죄다 술집에 돌아가니, 근래에 물가가 오르고 백성들의 생활이 고생스러운 것은 주로 이런 때문입니다. 진실로 금주령(禁洒令)이 또한 백성을 소요(騷擾)케 하는 단서에 관계됨을 알고 있으니, 비록 전연 금단(禁斷)할 수는 없다 하나, 거리에서 풍성한 안주에 술판을 벌이는 데 이르러서는 어떻게 낭비하는 데에 맡겨두어 무궁한 폐해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추조(秋曹)와 경조(京兆)·포청(捕廳)에 신칙해서 무릇 간귀(姦宄)한 이름이 검계(劍契)에 들어간 자는 한결같이 모두 기포(譏捕)해서 기필코 초절(初絶)할 것이며, 도하(都下)의 큰 양호(釀戶)도 또한 엄금함으로써 그 근원을 막게 할 것입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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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그 극악무도함이 전대의 검계보다 더하면 더합니다. 주목할 만한 기록은 '검'을 구입한 경제력에 대한 부분입니다. 소와 송아지를 팔아 검을 구입했다는 것을 보아, 무기류를 일반인이 생각보다 쉽게 마련할 수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4일뒤...

1803년 08월13일(음)
秋曹 등에서 劍契의 무리를 몰래 탐문하여 일일이 다스리고 술을 禁斷하는 일은 有司에서 裁量하게 할 것 등을 청하는 備邊司의 啓  

비변사의 계사에
“사간(司諫) 이동식(李東埴)의 상소에 대한 비지(批旨)에서 ‘상소의 사연은 묘당에서 품처하게 하라’고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 소본(疏本)을 가져다 보니 기강(紀綱)을 떨치고 형정(刑政)을 밝히라고 말하고, 이어서 검계(劍契)를 초절(勦絶)하고 큰 양호(釀戶)를 금하자고 논하였는데, 그 말이 전해들은 말이라서 혹 실정에 지나친 데가 없지 않으나 요컨대 모두 신(臣) 등이 함께 걱정하고 탄식하였든 바입니다. 대저 근년 이래로 풍기(風氣)가 무너지고 시속(時俗)이 흐려져 경악할만한 일이 거의 달마다 생겨나니 유추(類推)해 가면 일후의 우려가 어찌 대신(臺臣)이 논한 바와 같지 않을 줄 알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어찌 전부가 형정이 밝지 않고 기강이 떨쳐지지 않아서 그리된 것이겠습니까? 

중략. 
부녀자를 구박(毆搏)하고 재상(宰相)을 욕보이는 짓 등을 한 여러 죄인은 성교(聖敎)가 엄절하셔 지금 감률(勘律 죄율을 단점함 )하고 있고 혹은 해조에서 끝까지 조사하여 이미 무겁게 다스리고 있으며, 이른바 검계도 지금 차례차례 뿌리를 뽑아 거의 완악한 풍속이 그칠 줄을 알고, 간사한 무리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으나 일이 오래되면 해이해지고 법이 오래되면 흐려지기 마련이므로 되니 다시 형조와 포청 포도청으로 하여금 별도로 기형(譏詗 몰래 정탐함 )하여 하나하나 끝까지 다스리게 해야 하겠습니다. 

중략.
한강 근교에서 대낮에 약탈을 하는 것은 비록 그 말이 참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말이 도로(道路)에 횡행한 지 여러 날이 되었으니 죄인을 잡는 책임을 맡은 자로 하여금 그 도리를 다하게 하였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성문(城門)의 지척에서도 도둑이 횡행하고 여항(閭巷) 사이에 사악하고 더러운 자들이 섞여있는데도 자신이 포장(捕將 : 포도대장 )이 되어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면 어찌 감히 그 직책을 다하였다고 하겠습니까? 파추(罷推)하는 예벌(例罰 : 예사로 주는 벌 )은 죄에 상당하지 않습니다.

신 등은 이미 황송하기 짝이 없어 감히 감죄(勘罪)를 청하지 못하였지만 한편 생각하건대 견책(譴責)을 대강 시행하여 다만 설월(屑越 : 구차하고 건성임 )하다는 탄식을 끼치기보다는 차라리 죄를 짊어지고 잘못을 속죄하게 하여 그대로 상유(桑楡 : 만년(晩年)의 뜻 )의 공을 거두도록 도모하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니 우선 먼저 두 포도대장에게 별도로 신칙하여 약속(約束)을 엄히 밝히고 방략(方略)을 별도로 시행하여 사악한 부류들이 쉽게 종자를 퍼트리거나 강도와 절도가 마음을 내키는 일이 없게 하고, 다시 앞날을 살펴보아 마침내 성과가 없어서 조정의 칙령(飭令)이 한갓 공허한 말로 돌아가게 한다면 당해 포도대장은 특단으로 엄히 감처하여 법기(法紀)를 밝히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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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계에 대한 토벌이 시작되었고 성과가 있음이 보이며, 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정탐등을 통해 그 씨가 자라지 않도록 해야함을 상소하고 있습니다. 또한 산이나 거리뿐 아니라, 한강근교에서도 약탈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 '밤에만' 돌아다니던 16세기 검계와 달리 이들은 대낮에도 버젓히 이런 악행을 자행하죠.

20세기 검계단 劍契團
검계라는 이름은 놀랍게도 일제시대에도 등장합니다. 이 검계단이 이전의 검계라는 이름을 승계했을 가능성은 꽤 높아 보이는데, 이때의 검계단은 전대와 달리 바로 일제에 저항하던 의병조직이었지요. 현재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이건 필자가 찾아낸 것인데, 아직까지는 논문이나 다른 글에서 본적이 없는 기록입니다.

明治·大正篇 4門 司法及警察 
4.3 危險思想取締 
4.3.1 要視察人及團體

劍契團ノ所在ニ就テ 所在 京城北部園洞 15頁 明43.7.5 代表 崔錫夏

경성 (서울) 북부 원동이란 곳에 '검계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동은 현재의 가회동근처입니다.

*이후 조사를 통해 20세기 검계단은 독립비밀조직임을 알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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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유출문화재 18세기 창포검

돌고 돌아 오늘 소개하려는 주인공, 필자가 얼마전 해외문화재 옥션에서 찾아낸 18세기 조선의 '창포검'입니다. 앞서 소개한 군사박물관등의 어떤 창포검과도 달리 생겼지만, 매우 강렬한 인상의 검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누군가에게 Sold되었다고 나옵니다. 우리 문화재관련기관이나 국내관련자가 구입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왜냐하면 18세기면 바로 장붕익과 검계가 사투를 벌이던 바로 그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표철주같은 자가 차고 다니던 그 검이죠.

검을 뽑지 않은 모습 (전장 110센티, 날부분 81센티)- 창포검 특유의 모습으로 고동(방패막이)가 없습니다. 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잘린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검을 뽑은 상태- 18세기의 물건치고 보존이 훌륭합니다.
아주 특이한 문양이 눈에 띄는데, 바로 '창포'꽃무늬입니다. 이런 형태는 국내 어떤 창포검에서도 못본 것 같습니다.
한번 비교해 보시지요- 창포꽃입니다.
날의 상태도 최상입니다. 영문설명(아래)에 나오듯 검에 별 일곱개가 박혀있어 칠성검입니다. 아래 옥션설명처럼 아마도 유일한 '칠성 장포검'일지 모르겠습니다. 재밌는 것은 [승정원일기]에 별자리 이름을 딴 검계조직도 있었다는 것 (28수(宿)계-號稱二十八宿)
옥션에 소개된 설명입니다.
SOLD
One-Of-A-Kind 18th Century Korean Staff Sword, Changpogeom, a style of sword unique to Korea, with seven gold inlay dots on each side representing the Seven Star Spirit (Chilseong), an ancient Daoist deity that controls fortune. Antique Changpogeom are rare. It's a staff with a fighting blade inside. And a Chilseong Changpogeom (Seven Star Staff Sword) is so rare that this may be the only surviving example. It is a large weapon, 43 inches (110cm) with a a 32 inch (81cm) blade, and the blade is a very high quality fighting blade. This is truly a museum quality sword.

이렇게 창포검은 영화 '자토이치'에 나오듯, 암살용 무기임이 명백한데 그 기록이 통신사로 갔던 조엄(趙曮  1719~1777년)의 일기인 [해사일기]에 명확하게 나옵니다. 참고로 이 시대는 '검계'의 시대이기도 한지라, '창포검'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당대 널리 알려져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 기록은 1763년의 기록으로 장붕익 시대의 바로 다음입니다.

해사일기
갑신년 4월 7일(무자)

날씨가 음산하였다. 괴한[盜]이 도훈도(都訓導) 최천종(崔天宗)(崔天宗)을 살해하였다. 대판성에 머물렀다.
꼭두새벽에 갑자기 들으니, 도훈도 최천종(崔天宗)이 왜인에게 칼을 맞고 거의 사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벌떡 일어나 즉시 군관(軍官)ㆍ의관 등을 보내어 급히 가보도록 하고, 이어서 사람을 시켜 그 곡절을 물었더니,...

천종이 아직 죽기 전에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말씨도 왜인에게 찔렸음을 분명히 말했으며, 방안에 남아 있는 범행에 쓰인 흉기는 자루 짧은 창과 창포검(菖蒲劍) 같은데 거기에 새겨진 것이나 장식된 것이 다 왜인의 물건이었다. 또 흉악을 행한 범인이 도망해 달아날 때 잘못하여 격군 강우문(姜右文)의 발을 밟아 우문이 ‘도적이 나간다.’고 크게 소리 질렀기 때문에 놀라 깨어서 그를 본 사람들이 10여 명만도 아니고 보면, 범인이 왜인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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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을 보면 검에 장식하던 문양이 조선과 일본이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해외옥션에서 발견한 이 검덕분에 묵혀두었던 검계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앞으로 검계든, 검계단이든, 창포검이든 현대의 우리 미디어매체들에서 약간의 변형을 가해 (혹은 날것 그대로) 다시 좋은 소재로 쓰이면 좋겠습니다.

잔혹한 살수집단에 대한 만화 (소녀검객 아즈미)
- 공교롭게도 이 만화애 배경역시 검계의 그것과 비슷한 16세기 도쿠가와 막부초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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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한글번역되지 않은 검계에 대한 기록이 더 있습니다. 19세기말 인물인 남국억 선생 (1863~1939년)이 집필한 [동사략 東史約 ]의 기록입니다.

劍契,
司諫 李東埴上疏言, 劍契之名出而俗敗世懷, 無賴之輩嘯聚成黨, 帶牛佩犢橫行朱門, 詬辱宰相, 突入深閏毆縳婦女, 潢池赤子雖無足憂, 山東緑, 

林難保無虞, 請飭法司, 名入劍契者譏捕勦治, 從之, ○正言 沈能爕疏曰, 佳辰遊宴不害爲昇平美事, 而無賴之徒, 分朋作隊, 妓樂杯盤, 動費千金, 至於掖庭宿衛之屬, 畏戢尤別而山遊水獵, 紅衣草笠橫行於四路, 銀鞍駿鬣羅列於十里, 被酒打人不恤致傷, 聽聞莫不驚駭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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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occhi 2014/11/19 06:45 #

    아즈미...엽기적이고 폭력적이며 선정적이면서도 역사를 나름 수준 있게 뒤튼(비꼬아 놓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국내 정발은 100% 힘들겠죠 무려 소아 성애 -_-;; 까지 나오는 ...
    그런데 우리나라 해적판은 디씨체 번역으로 유명하죠 ㅋㅋ
    일본어를 알면 원서래도 사 볼 텐데...
    구름을 버서난 달 은 정말 자토이치 같더군요
  • 역사관심 2014/11/19 10:34 #

    사실 이 작가를 좋아해서 '료마를 간다'도 소설이 아닌 이분의 해적판만화로 접했죠. 그 뒤에 이즈미라는 정발이 아닌 '도'라는 역시 해적판으로 제대로 수입되기 전에 보았었습니다. 당시로써는 그 태연한 잔혹성에 놀랐었지요.
  • 낙으네 2014/11/19 07:34 # 삭제

    지팡이짚고 있다가 갑자기 칼을 쏙 빼드는걸 보고 저런게 가능한가? 싶었는데 정말로 존재했군요. 신기합니다.
  • 역사관심 2014/11/19 10:34 #

    알아보니 요즘 인기있는 '비밀의 문'인가하는 사극에서도 이 검계가 등장한다고 하더군요. 칼을 한번 유심히 보시길 ^^
  • Cheese_fry 2014/11/19 08:28 #

    와... 재미있게 읽었어요. 검계가 호가 출신이라는 부분에서 호가가 무슨 뜻인가요? 호랑이 호는 아닌 것 같고... ^^;
  • 역사관심 2014/11/19 10:39 #

    호가는 재산가 권력가를 뜻합니다- 따라서 검계가 호가출신이 아니라, 당한 여성들이 저런 상류층자제들이었다는 뜻같아요 =_=;;
  • Cheese_fry 2014/11/19 12:34 #

    그러네요. 검계가 좋은 집안 출신일리는 없고... 호의 뜻을 몰라 오해했어요;;;
  • 역사관심 2014/11/19 13:01 #

    저도 처음엔 이게 무슨소리지 했었습니다 ㅎㅎ
  • 아빠늑대 2014/11/19 14:56 #

    의외로 검계에는 좋은 집 출신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좋은 집 출신이기는 하나 서자처럼 제대로 뜻을 펼칠 수 없는 부류들이 어울리기도 했고 말이죠.
  • 역사관심 2014/11/19 15:15 #

    아빠늑대님) 아 또 그런 멤버들이~ 흥미롭네요^^; 그럼 저 부분은 그 녀석들을 뜻할수 있겠네요 반전.
  • 2014/11/19 11:32 #

    조선떄에도 좋게말하면 협객집단(다르게 깡패)가 있었군요. 잘봤습니다
  • 역사관심 2014/11/19 11:47 #

    협객보다는 살수집단에 가까운 악인들이죠. 댓글 감사합니다 ^^
  • 포스21 2014/11/19 12:09 #

    뭐 일종의 도적길드? 같은 집단으로 보이네요. 어느 사회나 범죄자 집단 비슷한건 있나봅니다.
    요즘으로 치면 조폭이랄까?
  • 역사관심 2014/11/19 12:48 #

    그렇죠. 일종의 무장조폭입니다. 조폭보다 사실 더 악독한 게 양반을 무조건 죽이라는 강령이 있었죠.
  • 바람꽃 2014/11/19 14:16 #

    조선 배경 무협지 캐릭터로 써먹으면 재미있을듯 하군요 ..
  • 역사관심 2014/11/19 15:21 #

    사실 작년인가 조선시대 살수단을 그린 작품이 있었는데 호랑이파와 늑대파라고 이름 붙였었죠. 정말 한번 보고 싶군요. 배가본드같은 작품 (너무 많은걸 바라는;)
  • 존다리안 2014/11/19 19:23 #

    이런 암살조직이 일제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아 이후에도 은밀히 한국사 뒷편에서 암약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겠군요.
  • 역사관심 2014/11/19 22:10 #

    검계단이란 조직을 그렇게 다룰수도 있겠네요:)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4/11/19 22:49 #

    진짜 이란게 있었다니.... 상상이나 소설로만 생각했는데 말이죠..

    거기다가 저런 형태의 칼이야 당연히 있겠지 싶었는데 진짜로 보니 신기하군요..

    또 검계라는 집단이 실록에도 실리다니.... 엄청난 위세의 집단이군요
  • 역사관심 2014/11/21 07:22 #

    악명높았던 무리입니다. ㅎㄷㄷ
  • 봉래거북 2014/11/19 23:00 # 삭제

    저런 좋은 물건들은 좀 국내 도검사나 무속용품점에서도 적극적으로 디자인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일본도나 사극에 나오는 일부 한국식 무기류/중국식 무기류 모방은 그렇게 잘 하면서...
  • 역사관심 2014/11/21 07:22 #

    동감입니다 . 그리고 해외옥션도 문화재청등에서 전담인력이 꼭 배치되야 한다고 봅니다.
  • 迪倫 2014/11/20 13:56 #

    한국 검객 영화의 양식이 일본과 중국 영화의 두군데 모두 영향을 많이 받고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름을 ~ 같은 경우 자토이치 같은 느낌도 들지만, 반대로 홍콩 검객 영화의 전통같은 부분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영화 자체말고 검술 장면으로는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다만 원작 만화와 영화라는 현실물 사이에서 약간 주저하다가 긴장을 놓친 감이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주제의 글 잘 읽었습니다!
  • 역사관심 2014/11/20 14:29 #

    홍콩영화에 대한 부분은 놓쳤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저도 검술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항시 아쉬운 것은 일본이나 중국처럼 어떤 '유파'의 검술계보가 전해지지 않는 '상상의 검술'들인지라 보면서 과연 진짜 조선시대의 검술은 어떤 느낌일까...라는 원천적인 궁금함을 해소시켜주지 못해 갈증이 나곤 합니다 ^^; (그런면에서 이웃나라 관객들은 어느정도 그런 궁금증은 우리보단 덜할 듯 하네요).

    항상 고맙습니다. 적륜님의 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조선검술 2015/05/02 13:56 # 삭제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처럼 민간차원에서 무술이 전승 발전되지는 못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한국 이전의 국가는 조선이고 조선은 무를 억압하여 왕권을 보호하고자 한 국가였습니다. (조선이 쿠데타로 세워진 국가다보니...)그러다보니 일본이나 중국처럼 무관이나 도장 열면 역모로 잡혀가기 일쑤였죠. 그러나 군사차원에서는 무술이 존재했고 그런 군사무술이나 중국, 일본에서 흘러들어온 무술이 여기저기 민간에 스며들었을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다만 임란 이후 일본도와 일본 검술의 강력함이 널리 알려지며 이전부터 일본도 카피로 시작했던 조선 환도가 유행하는등 일본도 스타일의 무기와 무술이 꽤 크게 유행했고 명나라 원군으로부터 전승된 18기도 꽤나 많이 퍼졌던것으로 압니다. (이런 무술들의 종합 소개서가 무예도보통지)창포검은 자토이치가 쓰는 일본도 날과 다르게 양쪽에 날이 있는 검이기에 중국 무술 혹은 조선 군사무술의 영향으로 나온 무기가 아닌가 싶네요.
  • 역사관심 2015/05/04 06:07 #

    말씀 감사합니다. 당시 조선의 철학에 대한 존경이 있지만, 사실 그런 문화컨텐츠의 다양한 모습이란 점에서는 확실히 아쉬운 점입니다. 창포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도 한번 보고싶군요.
  • 레이오트 2016/05/08 08:34 #

    그러고보니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최신작인 신디케이트의 주인공 중 한 명의 복장이 이런 창포검과 비슷한 소드 스틱에 특화되었지요.

    부디 차기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는 한민족, 더 나아가 인류의 자유를 위해 일본 제국 식민주의에 맞서 싸우는 암살단 암살자의 손에 이 창포검이 들려있기를 바랍니다.
  • 역사관심 2016/05/08 02:30 #

    오, 그런 설정도 재미있겠네요. 진짜 이런 검들도 하나하나 아이템화해서 브랜드로 만들면 좋겠어요.
  • 레이오트 2016/05/08 08:35 #

    실제로 어쌔신 크리드 신디케이트의 소드 스틱 모형이 발매되었다고 하며 그걸 베이스로 실사용 가능한 물건으로 제작한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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